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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별이 흐르는 강
작가 : 윤지산
작품등록일 : 2019.11.10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녀와 열등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소년.
소녀는 돈을 벌기 위해 남자행세를 하고 소년은 안전을 위해 그녀에게 호위를 맡기게 된다. 성별, 신분, 성격, 성장 과정 등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

 
18회 나란?
작성일 : 19-11-10 16:26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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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어둠으로 인해 주위를 식별하지 못하는 탓에 자신이 얼마나 걸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의 경과가 애매해지자 불안감만이 커졌다. 그럴수록 빗물에 시린 온도가 몸에 스며들어서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초조함에 발걸음이 빨라지던 중 어슴푸레 불빛이 보였다. 아주 작은 빛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

 

  사람이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몸을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빛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곳에 엎드려 정황을 살폈지만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빛도 하나고 움직임도 없자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집?’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라는 생각에 잠시 망설여졌다. 계속 이렇게 숲으로만 이동할 것인지 아니면 정체 모를 빛을 따라가 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한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방향도 알 수 없는 짙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보다 마을로 내려가 조금이라도 닦아진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목적지가 마을인 것은 아니지만 추격자가 없는 지금은 일단 길을 찾아서 도주하는 것이 나았다.

  추격자가 있다 하여도 빗물에 자신이 걸어온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안전한 길로 이동하는 쪽을 택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마을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되었다.

 

 ‘사람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자신을 이해시키며 빛이 보이는 쪽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빛을 따라 숲 밖으로 나아갔다. 숲 가장자리에 있는 마지막 나무 뒤에 숨어 주위를 살폈다.

  숲 속보다는 주위가 밝아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조금 전보다 옅어진 빛이 창가로 새어 나오는 아늑해 보이는 오래된 가옥이었다.

  빛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작아지던 빛은 울타리 안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팍하고 꺼지고 말았다.

 

 ‘커다란 나무.’

 

  울타리에 다가가자 자신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아주는 나무의 존재가 정답게 다가왔다. 울타리 안쪽은 텃밭이라 이렇게 큰 나무가 도움이 될 리 없음에도 이곳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 쉬어갈까.’

 

  어둠 속을 헤매며 많이 지친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눈앞에 보이는 아늑함에 충동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문과 일직선으로 길이 뚫린 울타리.

  외부로부터 언제든 안전하다는 것이 전제된 모습에 침울함을 느끼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춥다.’

 

  나무 아래, 비가 새지 않는 곳에 몸을 뉘었다. 추위 때문일까 긴장했기 때문일까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텃밭에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 몸을 가려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뭇가지 끝으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빛 먹구름이 가득해 있었다. 이런 비 오는 날 텃밭을 돌보는 이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추격대가 따라오더라도 이곳에 몸을 숨기면 되지 않을 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에 실소를 터뜨렸다.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눈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

 

  기나긴 꿈을 꿨다. 얼마나 잠들어 있던 것일까 강한 햇살이 눈꺼풀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날이 밝은 지금 자신은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것이 도망이건 몸을 숨기는 것이건 뭔가를 해야 한다.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무서워.’

 

  하지만 무섭다. 이제 눈을 뜨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에게 들켜서도 안 된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은 없다.

 

 ‘너는 이렇게 되기 전의 기억이 있어. 또한 그때에 대한 그리움마저 가지고 있지.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형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에 때늦은 대답을 하듯 말을 꺼냈다.

 

 “이미 돌아갈 곳은 없어요.”

 

  말을 꺼내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짖는 이유가 서러워서라기에는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아마도 앞으로의 막막함에 의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그럼 우리 집에 가자꾸나.”

 

  바로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텃밭과 울타리 사이의 좁은 공간, 노파는 눈앞에 몸을 쭈그리며 앉아있었다.

  급하게 물러나려 하였다. 뒤로 물러났다기보다는 뒤로 기다시피 팔과 다리를 휘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무상하게도 몸을 제치는 것만으로도 등에 닿는 울타리가 퇴로 없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이런 곳에서는 고뿔이 들 테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등에 닿은 차가운 나무의 냉기 때문인지 머리가 차게 식고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노파가 자신이 노예인지 몰라서 호의를 베풀려는 것일까. 그럴 수 있었다. 산에서 구르고 찢어졌어도 이 옷은 재질부터가 달랐다.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평범한 옷은 아니리라.

 

 ‘호의에 따른 보상을 원하고 있는 건가.’

 

  지금으로써는 산에서 조난당한 부호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어서 일어나지 않고 뭐해.”

 

  노파는 말을 끝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는 제게 손을 뻗어 갈색 모포를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모포는 어느새 몸 위에 덮어져 있었다.

  하지만 더욱 경악하게 된 것은 처음 보는 모포 때문이 아니었다. 덮어져 있던 모포가 사라지며 눈에 들어온 현재 자신의 상태 때문이었다. 넝마가 된 옷 위로 진흙이 엉겨 붙어 아무리 봐도 부호의 자식으로는 보이지 않을 거 같았다.

 

 “빨리 일어나.”

 

  노파는 역정을 내며 재촉해왔다. 첫인상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노파는 인자함과는 거리가 있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호통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따라 들어와.”

 

  멍하니 노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소매로 벅벅 닦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왜 저에게 호의를 베풀려 하십니까?”

 “돈 안 받으니까 따라와! 도와주려도 잔말이 많아서 애를 썩게 할 녀석이구먼.”

 

  끌끌 혀를 차며 노파는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도망쳐도 상관은 없겠지만 노파의 말처럼 몸에 한기가 돌고 있어 이성적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망쳐야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걸음은 이미 노파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이상 들어오지 말고 그거 다 벗어.”

 

  다 벗으라는 말에 순간 멍하니 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다 벗어라는 말은 모든 옷가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일갈하듯 쏘아붙이며 한 노파의 말에 주저하면서도 웃옷과 신발을 벗어들었다. 노파는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하얀 연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물을 가득 담은 통을 끌고 나왔다.

 

 “차게 식었으면 옷부터 벗어야지 아직도 왜 그러고 서있어!”

 

  통을 발아래 내려두시더니 다른 방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일갈했다.

 

 “빨리 벗어!”

 

  골난 어투에 순간 몸이 움찔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금방 돌아온 노파는 도끼눈을 뜨며 노발대발하며 외쳤다.

 

 “왜 아직도 옷을 입고 있어! 아주 요즘 것들은 제대로 분간도 못하면서 의심만 많아지니까 이렇게 자기들이 손해를 보지 손해를 봐.”

 

  한 아름 천을 안고 온 노파는 들고 온 천중 크고 작은 두 장을 통에 넣고는 나머지는 가까이에 있는 낮은 서랍장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의심가고 신경 쓰이면 난 방에 가있을 거니까 알아서해!”

 

  노파는 차게 돌아서며 말한 대로 방문을 세게 닫으며 들어갔다. 화난 노파의 행동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는 것은 조금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저 옷은 입으라고 두신 거겠지?’

 

  서랍장 위에 올려진 깨끗한 옷과 커다란 천은 누가 봐도 목욕 후 사용할 것들이었다.

  잠시 노파가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다 한 겹 한 겹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런 생활공간에서 옷을 벗어본 적이 없어 어색했지만 빨리 마치고 갈아입는 게 상책이었다.

 

 “아.”

 

  우선 물통에 손을 뻗어 천을 건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물에 닿은 손끝이 아릿하니 뜨거움이 전해져 급하게 손을 뺐다.

  뜨겁게 대펴진 손끝을 반대쪽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가워.’

 

  물에 담갔을 때 손이 아팠던 이유는 물이 뜨거운 것이 아니라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반대쪽 손도 물에 담갔다. 순간의 통증을 참아내자 따뜻함이 서서히 퍼져갔다.

 

 ‘따뜻하다.’

 

  옷을 벗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에 쉬이 손을 뺄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손을 담그고 나서야 간단한 목욕을 재개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현재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일단은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거겠지.’

 

  깨끗해진 발로 맨바닥을 밟았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나무바닥 느낌은 기억도 희미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움을 뒤로한 채 신발을 신었다.

  이곳보다도 훨씬 작았던 집을 떠올리며 천천히 문으로 다가갔다.

  똑똑 문을 두들기자 가볍고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저택에서 자주 들려오던 문 두들기는 소리는 딱딱하고 중후한 느낌이 들었었다.

 

 ‘문소리조차 다르구나.’

 

  분명 자신이 살던 집의 문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었을 터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것에 신경쓸만큼 정신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리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따뜻하게 몸을 풀어주고 나니 조금은 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끝났습니다.”

 

  말을 마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나오신 노파는 제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시고는 한참동안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셨다.

  조금은 익숙한 눈길에 자연스레 입을 닫고 몸을 바로 하였다.

 

 “멀뚱히 뭣하고 있어. 저 물은 밭 옆에 옮겨두고 저기 저 통에다가 담아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지시에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본부대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물이 가득 든 물통을 안아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밭 옆에 물통을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울타리 쪽으로 다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변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주변은 너무도 고요했다. 적막감마저 드는 주변공기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이른 아침인 듯하였다.

 

 ‘빨리 떠나야겠다.’

 

  몸이 안 좋기는 했던지 일어났을 때는 시간을 가늠할 생각도 하지 않고 노파를 따라 들어간 것이었다.

 

 “다 끝냈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노파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일하던 자신이지만 주방은 익숙하지 않은 곳인지라 함부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앞에 서 있었다.

 

 “거기 막고 있지 말고 저기 앉아.”

 

  턱짓으로 식탁을 가리키신 노파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혼란이 가시자 자신을 도와준 노파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일정하지 않게 굽거나 모양이 달라진 손가락과 굽어 있는 등의 형태는 한 눈에 보아도 삶의 노고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퍼뜩 안 앉고 뭣하냐.”

 

  익숙하지 않은 타박에 몸을 움찔 떨었지만 염치라는 것이 있었기에 지금 말해야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만 가봐야 합니다.”

 

  도움을 주신 이에게 피해를 당하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다면 늦던 빠르던 이분께 피해가 가해질 것이 역력한데 떠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저기 않으라 하지 않았냐. 네가 지금가면 저 빨래는 그럼 나보고 하라는 것이냐?”

 

  시선조차 주지 않고 하는 말이었지만 낮게 가라앉은 노파의 목소리는 언짢은 것처럼 들렸다.

  더러워진 옷을 담아 놓은 통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넣어놓은 옷 말고도 적은 양의 옷가지고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밥 먹고 빨래라도 도와주고 가던가 해라.”

 

  이미 옷을 갈아입었고 도움도 받아버린 상태이기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달아난다면 의심을 피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이 최선인 상황임을 상기하고 다시 의사를 말하려하였다.

  노파의 잔뜩 찌푸려진 이맛살을 보는 순간 자동으로 입이 닫혔다. 노파는 저를 지그시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일단 앉거라. 내가 적적해서 그러는 거니까.”

 

  갑자기 누그러진 말투에 조금 모질게 대할 수 없어 자리에 앉았다.

 

 “저는 빨리 이곳을 떠나야합니다.”

 “그리 보이는 구나.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네가 지금 바로 길을 나선다 하여 어디를 갈 수 있겠느냐.”

 “그래도 가야합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합니다.”

 

  여전히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느린 손길로 음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신분패도 없는 것 같은데 어딜 갈 계획이냐”

 “어디로든 갈 겁니다.”

 

  익숙하지만 색이 좀 다른 스프가 나무그릇에 담겨 식탁에 올려졌다. 자신의 앞으로 먼저 놓아진 그릇에는 노파의 것보다 많은 양이 담겨 있었다.

 

 “쫓기기라도 하느냐?”

 

  그릇을 바라보던 중 머리 위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측에 지나지 않는 말이었지만 사실이었기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릇의 모서리만 바라보았다.

 

 “접시에 코 박지 말고 고개 들거라.”

 

  조심스레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나 걱정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물며 무엇 때문에 쫓기는 지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 한 점 띠우지 않은 눈으로 직시해왔다.

 

 “꺼림칙하지 않으십니까?”

 “네가 사람을 죽였느냐? 아니면 누군가를 능욕했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장난으로 남의 소중한 물건에 손을 대었느냐?”

 

  전부 아니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노라 답하였다. 그러자 노파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왜 찜찜하게 여겨야 한다는 게냐.”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답이 어딘가가 우스웠는지 노파는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늙은이가 뭐 무서운 게 있겠느냐.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도 무섭지 않을 거다.”

 

  먼저 접시에 숟가락을 얻은 노파는 자신에게도 음식을 권하였다.

  삼일 동안 굶은 데다 한 밤 중에 숲은 뛰어다녔으니 배가 고프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입맛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억지로 권할 생각은 없는지 말없이 자신의 식사를 시작한 노파를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흙탕물 같다.’

 

  스프를 한 수저 떴을 때 처음 떠오른 감상이었다.

  물론 스프의 색이 그런 색을 띠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음식을 흙탕물과 비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한 건 보통 스프는 물처럼 흘렀지만 이 스프는 떠냈을 때 뜬 부분이 잠시 자국이 남을 정도로 점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득하게 흐르는 스프를 보며 무엇을 넣었기에 이렇게 되는지 궁금해 하면서 맛을 보았다.

  한 수저. 한 수저. 입으로 급하게 날랐다. 맛을 보고 나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맛있었다.

 

 “아무리 스프라도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단다, 얘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릇이 비자 바로 스프를 더 떠주시며 더 먹기를 권해주셨다. 그녀는 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맛은 괜찮니?”

 “맛있어요.”

 “오늘은 든든하게 먹으려고 감자를 많이 넣었단다. 빨래를 하고 돌아오면 고기를 얻어올 테니 고기를 넣어서 먹자구나.”

 

  어딘가 기시감이 있는 대화였다.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얼마 전, 잠결에 들은 형들의 대화에서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가 넣고 싶은 재료를 넣은 수프를 먹는다. 무엇이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산다. 일이 힘들 때면 친구와 술을 마시며 안주를 먹는다. ……이런 게 아닐까?’

 

  리암 형은 자신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며 부러운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었다. 노엘 형은 자신은 분명 그런 일을 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그릇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둘이다.

  빈 그릇에는 어느새 눈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또 혼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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