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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결국 모두 같다.
작성일 : 19-11-10 13:26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1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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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의 시상식은 브라운관에 나오는 “연기대상”처럼 저녁 늦게 시작했다. 7시에 시작한다는 걸 들었을 때, 무영은 레드카펫을 상상했다. 다른 점이라면, 모두 한 손에 타블렛을 든 채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무영은 회식을 하자는 영어학원 사람들을 뿌리치고 겨우 지하철에 올랐다. 벌써 시간은 7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서둘렀다. 하영을 축하해줄 사람은 몇 없었다. 그는 미리 사 둔 작은 꽃다발을 조심스레 들었다.

 무영이 도착한 곳은 여의도에 위치한 작은 빌딩이었다. 블루문이란 기업은 웹툰 플랫폼으로 뛰어든 신생 기업이었다. 하지만 웹툰만을 서비스하는 곳 중에선 1세대 격으로, 빠르게 자신들의 지평을 넓혀갔다. 특히나 작가들의 환경 개선을 내세우며, 중견 만화가들이나 네임드 웹툰 작가들을 계속 영입 하고 있었다.

 건물의 소강당은 꽤 넓었다. 강당 내부는 무대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넓어지는 형태였다. 벽과 천장이 밝은 원목으로 이루어져 있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무대에선 큰 스크린으로 블루문의 소개 영상이 한창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반 이상이 채워져 있었다. 8팀밖에 되지 않았지만, 각 팀에 연결된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 한 팀은 그림 작가와 이야기 작가 둘로 구성되었다. 특히나 그림 작가들은 만화창작과 대학생이거나, 다른 작가 밑에서 어시스트로 일하며 사사받은 사람들이었기에, 기존 작가들과 만화가들이 많이 와 있었다. 게다가 블루문의 웹툰 공모전은 신생 기업이라고 하기에는 작품성으로 유명했다. 그에 따른 협찬 및 협업하는 타 플랫폼 관계자들 또한 참석한 상태였다.

 무영은 하영이 긴장하는 모습을 상상할 순 없었지만, 빨리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그는 한참을 찾다 중간으로 향했다. 검은 색 자켓과 흰 셔츠를 입은 그녀는 단정히 머리를 편 상태였다.

 “ 나 너 후드 티 안 입은 거 처음 보는데 ”

 하영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를 보고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그녀는 똑 부러져 보였다. 자켓과 셔츠가 살짝 품이 커 보였는데, 작은 얼굴과 함께 큰 눈이 더욱 부각 되어 보였다.

 “ 수훈이는 밖에 잠시 담배 피우러 나갔어. ”

 무영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 아버지는? ”

 “ 말 안 했어. 나 만화 그리는지도 모를 테고 ”

 둘은 조용히 무대를 보았다. 지루한 영상은 곧 끝이 나고 진행자가 앞으로 나왔다. 몇 명의 귀빈을 소개하고, 심사 위원들의 소개가 시작됐다. 블루문의 공모전은 수많은 작품들이 네티즌 투표로 8강까지 진행되고, 8개의 작품은 현역 작가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의 평가로 마지막 결과가 나왔다. 오직 두 개의 작품만 연재할 수 있었다. 그 공평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개최한 측은 기업이었다. 그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이 데리고 온 작가들에게 전문성과 잠재력을 판단하게끔 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였다.

 “ 마지막 포털 바래의 이기균 작가님을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소개를 끝내겠습니다. ”

 하영은 어느새 급격히 긴장한 듯한 얼굴로 굳어 있었다. 그녀는 농담도 멈추고 조용히 무대만을 보았다.

 “ 아 무영아 왔구나 ”

 수훈은 늦게 자리로 돌아왔다. 그도 긴장한 그녀의 태도를 눈치챘는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셋은 그렇게 수상을 기다렸다.

 “ 8위는...”

 무영은 갑자기 나온 순위가 당황스러웠다. 어디에서도 이런 시상식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8위로 불린 팀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감정의 과잉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조언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왜 떨어졌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제시하고, 후학들의 꿈을 접게 하지 않도록 달랜다는 취지처럼 보였지만 석연치 않았다.

 

 특히나 무대와 관객석의 온도 차이가 상당했다. 순위가 불리고, 심사위원들의 평이 끝나는 데 10분이 넘지 않았다. 피드백들이 고리타분한 격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사람들의 슬픈 감정은 오랫동안 유지 되었다. 무영과 수훈은 아무 말 없이 참담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유명한 심사위원들의 권위와 전문성은 사람들의 눈물을 휙 하고 닦고는 조용하게 만들었다. 무영은 오늘 시상식의 목적이 심히 궁금해졌다. 상을 주기 위해 발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들러리를 선정하기 위해 판을 벌인 듯했다.

 “ 아쉽게 되었습니다. 5위는 강주훈 작가님의 이세계의 요리사 입니다 ”

 어느새 사회자는 아쉽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영 뒤에서는 아. 하는 탄식의 소리가 나왔다. 장내는 계속해서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더 높은 순위와 기대에서 탈락할수록 떨어지는 소리는 더 크고 잔인했다.

 그런데도 무영은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하영의 작품은 다른 7개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두 배 이상 되는 네티즌 투표수를 기록했다. 수훈도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무리 이곳이 진흙탕 같아도 일단 하영의 데뷔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하영에게는 그런 사실이 상관없어 보였다. 그녀의 낯빛은 시시각각 변하였고, 굉장히 어두웠다. 무영은 그녀의 무수한 노력의 날들과 빛나는 재능들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 전체적으로 줄거리 흐름이 훌륭했지만, 주인공과 여러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

 심사위원과 귀빈이라고 불린 사람들의 말을 하는 도중에도 사회자는 계속 큐시트를 쳐다보았다. 벌써 다음 순서를 준비하는 듯했다.

 “아. 4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무영은 사회자의 표정이 아주 짧게 뒤틀렸다 돌아온 것을 보았다.

 “ 4위는 김하영 작가의 경주마입니다. ”

 장내는 파도에 씻겨나간 듯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인 듯했다. 무영의 느긋함은 뜬금없이 호명된 그녀의 이름으로 무참히 조각났다. 수훈은 입을 벌리고 뻥끗 거렸다. 하영은 큰 눈을 뜨고 멈춰 있었다.

 “저희 공모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었습니다….”

 장내는 사회자가 제재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그런데도 꿋꿋이 정해진 차례를 지켜나갔다. 기차는 늦게 온 손님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달려나갔다.

 “ 훌륭한 작품이지만, 너무 정형화된 표현, 특히나 경직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이 작품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가장 한계가 명확히 보인 작품이랄까요 ”

 무영은 멍하게 심사위원들의 말을 흘려들었다. 큰 벌떼가 근처에 있는 듯 했다. 마이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길게 셋 주위를 맴돌았다. 특히나 마지막 심사위원은 전에 있었던 평과는 달리 작품의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마이크를 든 살집 있는 손 밑에는 ‘이기균 작가님’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하영은 두꺼운 눈물을 끊임없이 떨어뜨렸다. 그녀의 셔츠와 바지는 벌써 얼룩덜룩했다. 수훈과 무영은 갈등했다. 그녀를 추슬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게 이성적인 것 같았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억울함과 분함은 그들의 발을 자꾸만 무겁게 만들었다.

 무영은 압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모르는 그가 봐도 작화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보다 자연스러웠고, 인물들의 비율은 아름다웠다. 특히나 하영의 만화는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과 차이가 두드러졌다. 두 배였다. 호불호가 갈리는 스릴러 장르임에도 2위와 정확히 두 배 차이인 표차는 보증수표 같았다.

 “3위부터는 블루문 컴퍼니의 김용배 이사님의 축사를 듣고 이어 가겠습니다. 후보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셋이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아직 발표되지 않은 작품 세 개가 큰 스크린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기 전, 후보 배우들의 얼굴이 한 화면에 다 같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 나가자. 하영아. ”

 하영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도장으로 낙인 찍힌 것 같았다. 그녀는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조용해졌다. 무영은 네티즌 투표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족히 1년 반 동안 준비했던 작품이 혹평을 받고, 그대로 스러져버린 작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림을 포기하려고 했던 하영이었다. 그랬기에 협을 만난 이후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작업을 했고, 도움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오랫동안 만화를 준비했다.

 그는 지금 있는 곳이 공무원 시험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의 제기를 할 수도 없었고, 많은 업계 사람들이 두 눈을 뜨고 하영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떨었다. 처음은 손에서만 그 진동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 몸 전체가 흔들거렸다. 바스락거리던 셔츠는 식은땀과 눈물로 형편없이 젖었다. 수훈은 큰 외투를 덮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무영은 그녀가 단화를 신었음을 알아챘다. 매일이 운동화였기에 굽이 낮은 단화조차도 불안한 느낌이었다. 수훈은 그녀를 옆에서 받치고, 무영은 뒤에서 밀었다. 둘은 보조바퀴처럼 그녀를 받치고 위태롭게 계단을 올랐다.

 “ 이기균. 이기균 이 시발럼아. 네가 그렇게 잘났나. ”

 하지만 그들은 고함 소리에 멈추어 섰다. 무영과 수훈이 뒤 돌아 무대를 보았을 때 한 남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무대에 있는 심사위원 석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영은 힘이 풀린 듯이 주저앉았다.

 중년의 남자는 힘겹게 비틀거리는 오른 다리를 갈무리하며 계단을 올랐다. 용석이었다.

 

 

 강당에는 한차례 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중년 남자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회사 이사로 소개된 사람은 그를 보고 황급히 무대 아래로 손짓을 했다. 하지만 당장 무대에는 드잡이질이 시작되었다. 몇 사람들이 올라와 그를 말렸지만 왜소한 몸의 남자는 아귀를 놓지 않았다. 그의 주먹 끝에는 이기균 작가의 머리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 미안하다 하영아. ”

 수훈은 그 말과 함께 무대로 달려나갔다. 무영은 정리되지 않는 상황을 멍하니 보았다. 이미 욕설과 고성으로 가득 찬 강당은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이 새끼야. 너가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

 “ 변하지 않았어. 김하영. 똑같아. ”

 용석과 심사위원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둘을 떼 놓으려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용석의 한쪽 아귀는 그의 셔츠에 붙어 있었다. 이기균이라고 불린 작가는 욕을 하는 용석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 이번에 그렇게 디테일 집착하는 꼴 보아하니 변한 거 하나도 없었어. 알아? 사람 똑같이 그리는 건 만화가가 아니라 모사꾼이야. ”

 수훈은 무대에 나가 용석을 잡아채 떨어트렸다. 하지만 이미 불이 붙은 듯,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사람들을 밀쳐내며 욕을 뱉고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 시발. 의미 없다고 너희 것들. 다 하나같이 양산형에 퀄리티는 갈아버린 놈들 왜 뽑아”

 이기균 작가는 수상권에 들지 못한 작품들을 덩달아 욕을 해 버렸고, 그 모욕을 들은 작가들 또한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완벽한 아수라장이었다.

 “ 당신 딸 간수나 잘 해. 남은 다리도 병신 되고 싶어?”

 하영이 무영의 손을 뿌리친 채 무대로 걸어나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그녀는 발이 불편한 듯 단화를 벗어 버리고, 수훈이 준 외투를 던졌다. 그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무영은 그녀를 잡았지만, 강렬한 원망으로 가득 찬 눈은 보이는 모든 것을 저주하고 있었다. 충혈은 되었지만 더 눈물은 나오지 않는 듯했다.

 하영은 거칠게 손을 쳐 냈다. 벗겨진 단화 안에는 빨개진 발뒤꿈치가 숨어 있었다. 그녀는 곧 무대 앞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아직 욕을 하고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곧이어 그들이 들은 것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조각이 흩어지는 소리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영이 서 있었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고, 유리 조각들이 찢어진 꽃들과 함께 흉하게 조각나 있었다.

 “ 당신이 심사위원으로 나올지 알았으면, 내지 않았을 거야. 아니 애초에 만화를 시작 안 했겠지. ”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있었다.

 “ 나 당신 평생 저주해. 이기균. 결국 너도 급 떨어지는 새끼야. 알아? 모사꾼의 작품을 모사한 건 너무 별로잖아. ”

 무대 아래 홀로 서서 그들을 올려보는 하영의 머리칼은 조명에 빛났다.

 “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다 진짜 ”

 하영은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을 주워 오른손 사이에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몇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는 빨간 피가 흥건히 고였다. 흰색 융단에는 사람들의 충격을 수놓듯 자극적인 꽃이 피었다. 수훈과 용석은 괴음을 지르며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들을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협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이제는 밤에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춥지 않았다. 봄이 지나고 완연한 더위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티셔츠는 땀으로 인해 꼴사납게 몸에 붙어 있었다.

 9시의 응급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괴성을 질러 댔고, 짜증에 섞여 간호사와 의사를 부르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협은 두리번거리며 넓은 응급실을 지나쳤다. 많은 침상에는 다양한 외상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협은 키가 작은 여자를 확인했지만 자기가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커튼을 헤치고 있을 때 저 멀리 덩치가 큰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훈이었다. 협은 수훈에게 도착했지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멈췄다. 얼굴에 작은 멍이 든 중년 남자와 수훈은 침대 옆에 서서 협을 보았다. 침대에는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 어 협 왔어? ”

 “ 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

 협은 붕대로 감긴 손을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하영은 아무 말 없이 끅끅거리며 울었다.

 “ 괜찮으니깐 다들 앉으면 안 될까? ”

 무영은 젖은 셔츠가 불편한 듯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는 다친 손을 흔들며 그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협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영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 그만 좀 울어 그만 좀 ”

 밀려 들려오는 사람들과 끙끙거리는 아픈 소리들은 무영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 치료도 끝났는데 나갈까 이제? 나 괜찮아 ”

 “ 그래도….”

 무영은 용석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용석의 어깨를 꽉 잡았다. 협과 수훈은 둘을 잠시 보았다. 무영이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다섯은 주루룩 밖으로 나왔다. 무영은 알콜 냄새가 풍겨 오지 않아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았다. 가장 크게 다친 건 하영 같았다. 그녀는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흐느꼈다. 누구도 그녀를 멈출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한 채 온 얼굴이 부어올라 있었다. 쉽사리 그 죄책감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지 않았다. 용석은 딸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사실 모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영은 용석을 속였고, 수훈은 몰래 용석을 시상식으로 불렀으며, 이기균 심사위원을 보고 몸을 내 던진 건 용석이었다. 마지막 차례는 무영이었다. 그는 하영을 말리려다 그녀의 증오에 베이고 말았다.

 다섯 명의 남녀는 응급실 입구에서 또다시 멈췄다. 입구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상하게 보았다.

 “ 다들 이제 집에 가죠. 저 괜찮아요. ”

 무영은 숨을 크게 쉬며 팔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녀를 쓰다듬고는 용석에게 부탁했다. 하영은 갈라진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겨우 냈다. 그렇게 다시 몇 분간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수훈의 통제로 무영은 간신히 하영과 멀어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레드 카펫과 연예대상을 생각하고 왔던 무영의 기대는 엉망으로 끝이 났다.

 

 *

 

 무영은 협과 함께 길을 걸었다.

 “나는 하영이랑 수훈이가 참 부러웠던 것 같아”

 그는 다행히 손이 아닌 손목 윗부분이 베였고 신경이 다치진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영이 눈을 감고 있었기에 도중에 힘을 빼지 못했다. 무영은 그녀의 손을 잡아 세우려다 베이게 된 것이었다.

 “왜 ”

 “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도 자신이 배팅할 수 있는 건 다 걸어버리잖아. ”

 둘은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 오늘 그 맨날 천날 끼고 다니는 크로스 백은 어디 놔두고 왔어. ”

 그는 그녀의 한쪽 어깨가 비어 있음을 알아챘다. 아주 작은 차이였지만 홀가분해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이었지만, 유독 그녀에겐 그 검은색 크로스 백이 짐처럼 느껴졌다. 수납공간이 아닌, 애초부터 넣을 공간 하나 없는 큰 짐처럼 느껴졌다.

 “ 놔두고 왔지 ”

 늦은 시간이 되니 여의도에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밤이 된 길거리엔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가끔 불어왔다. 무영과 협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친 그들은 한마디 말 없이 공원의 초입에 닿았다. 불이 환히 켜진 공원엔 운동하는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영은 그녀와 그 길을 걷다 갑자기 느낀 피로에 잠시 벤치에 앉았다. 협도 그의 옆에 앉았다.

 “ 협 ”

 “ 말해 ”

 “ 나는 평생 나에게는 어떤 종류의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희를 가까이에서 봐버린 거야. 갑자기 미술관에서 튀어나온 어떤 사람 때문에 ”

 “ 거긴 내가 먼저 와 있었어. ”

 무영은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 그런데 재능이 다가 아니구나. 왜이리 개같냐. 응? ”

 무영의 셔츠는 팔이 찢어져 너덜거렸고, 이곳 저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느와르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협은 눈물을 흘리는 무영을 보았다. 무영은 감정이 북받친 지 붕대 부분으로 얼굴을 마구 닦아내었다.

 “ 하영이는 그저 좋아하는 아버지를, 멋있는 캐릭터로 등장시키고 싶었대 ”

 뭉개지는 발음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협은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하영은 쉽게 웃고, 시원히 자신이 감정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 그녀와 그 주변의 독이 되고 말았다. 하영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끝까지 설득시켜 어린 나이에 프로 작가의 어시스트로 일하는 경험을 얻었고, 일은 그때 터지고 말았다.

 이기균 작가는 그때 이미 자신의 작품을 꽤 널리 알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영의 작품의 캐릭터를 뺏겨 상의 없이 자신의 만화에 출연시켰고, 그 캐릭터 중 하나가 용석이었다. 하영은 자신이 준비 중인 작품 속에서 용석의 비중을 굉장히 크게 잡고 있었다. 용석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무뚝뚝한 행동과 태도 속에는 딸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따뜻했기 때문에, 하영은 그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만화 속에서 용석은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사람들은 살뜰히 챙기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기균의 만화 속에 모사된 용석은, 비열한 악역이었다. 단면적인 캐릭터였고, 자극적인 그의 표현에 용석이 가지고 있는 매력들은 다 사라졌다. 심지어 그는 만화에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하영이 그의 어시스트를 하면서 용석이라는 캐릭터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기균의 작품은 초창기 웹툰 시장에 등장했을 때 많은 인기를 쓸어 담았다. 그리고 그때야 하영은 용석을 포털 웹툰창에서 발견했다. 이기균이 손쉽게 베껴버린 악역은,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메인 캐릭터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였다.

 

 “ 그 새끼 웹툰이 인기가 정점에 올랐을 때, 누가 찔렀대. 버스에서 용석을 본 어떤 사람이 아저씨 다리를 그어 버렸대 ”

 무영과 협은 농구공이 튀기며 울리는 조그만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무영은 왼손으로 담배를 겨우 꺼내 물었지만 불붙이기가 힘들어 보였다. 협은 조용히 그녀의 라이터를 그의 입에 대 주었다. 무영은 손을 조금씩 떨면서 벤치에 완전히 기댔다.

 “ 협아. 하영이도 그렇고 수훈이도 그렇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잖아.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거로 말이야. 그러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

 “ 누가 행복하게 해주는데?”

 “ 누구든지 ”

 “ 아니야 ”

 협은 그를 지긋이 보았다.

 “ 내가 말했잖아. 모두 똑같다고. 결국 ”

 협은 그와 같이 담배를 태웠다. 둘은 아주 깊게 연기를 넣고 다시 꺼냈다. 조금이라도 먹먹한 기분이 같이 나오기를 바랐다. 그녀는 찢어진 셔츠를 잠시 만졌다.

 “ 너 이 구린 거 입고 공모전도 나가려고 했지 ”

 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 그만 집에 가자 ”

 

 *

 

 무영은 한성대입구역에 가까워 왔을 때 몸을 일으켰다. 그때 협이 그의 손을 잡았다. 무영은 당황스럽게 그녀를 보았다.

 “ 너 수유역 가 봤어?”

 무영은 지하철 노선도를 쳐다보았다. 수유역은 자신이 내리는 역에서 네 정거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술 먹고 자다가 수유에서 내린 적 있다. 돈 아까워서 그냥 한성대로 거슬러 걸어온 적 있어

 “거기가 내가 지금 사는 곳이야. 같다가 다시 걸어 내려가든가 해 ”

 무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덥석 잡힌 손을 뿌리칠 정도로 그는 바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수유에서 내렸다.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건물들 사이의 간격이 더 넓었다.

 “ 난 저 큰 다리 밑을 지나면 같은 4호선이 아닌 것 같아. 사실상 너랑 내가 살고 있는 거리가 꽤 된다는 거지. ”

 무영은 수유와 한성대 입구역 사이에 있는 큰 교가를 보았다. 그 밑으로 높게 언덕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은 정확한 설명이 되는 것 같았다. 이 곳은 뭔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있었다. 한성대와 지역상으로 아주 가까웠지만, 낯선 분위기는 쉽게 여유를 내주지 않는 듯했다. 협은 그를 이끌고 걸었다.

 15분 정도를 중심가에서 벗어난 협은 천천히 그의 앞을 걷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지고 가로등은 점점 빨개졌다. 그는 협의 걸음걸이에 긴장이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불확실하게 발을 내디뎠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돌의 위치, 방해물들을 넘거나 밟으며 나아갔다. 둘은 오래된 건물에서 몸을 멈췄다. 1층처럼 보이는 건물은 애매하게 높이가 높았다. 그곳엔 페인트가 곳곳이 벗겨진 작은 간판이 달려 있었다.

 “ 옥수 수선집 ”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영은 입구에서부터 가득 쌓여 있는 옷들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쉽게 볼 수 있는 기성복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옷들은 정장이었다. 온갖 색의 어두운 양복들이 천장에 붙은 봉에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그는 가게 한복판에 서 있는 협을 따라 가게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여러 테이블엔 옷이 언덕을 만들고 있었고, 매달린 옷들은 시야를 제한했다. 꼭 미로를 지나는 것 같았다. 그는 협의 바로 뒤에서 몸을 멈췄다.

 중간에는 재봉틀을 만지고 있는 중년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정수리에 꽤 많은 흰머리를 드러내며 조용히 옷을 이리저리 다듬고 있었다. 다소곳이 뒤로 묶여있는 머리는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 뭐하느라 이제 들어와? ”

 “ 일 좀 하다가 ”

 중년의 여자는 협을 보지도 않고 말을 건넸다. 협도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재봉틀의 기어는 일정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 고모 손님 하나 데리고 왔는데. 옷 좀 봐줘 ”

 그때야 그녀는 끼고 있던 작은 돋보기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무영을 보았다. 눈에 충혈된 부분이 많았다. 다른 곳보다 눈에 주름이 많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무영은 배꼽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신의 꼴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어디 한 군데 깨끗한 곳이 없었다.

 “ 좀 벗어 봐 ”

 “ 나 이너 안 입었는데 ”

 “ 알고 있으니까 벗으라고 ”

 협은 꼭 아이를 씻기기 위해 어르듯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영은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는 애쓰며 옷을 벗었다.

 “ 가만히 좀 있어 봐 ”

 그러던 중 느껴진 차가운 촉감에 움찔거리며 몸을 보았다. 협이 셔츠를 매끄럽게 벗겨 내고 있었다. 마지막 다친 손까지 능숙히 빼낸 그녀는 더 셔츠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옷을 고모에게 건넸다. 겨울날 차가운 금속에 닿은 것처럼 그의 나체에는 닭살이 돋았다.

 “ 2층 가서 기다려. 얼마 안 걸리니까 ”

 무영은 두 귀를 의심했다. 이 건물의 높이는 도저히 2층처럼 보이지 않았다. 협은 고모 뒤에 나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영은 놀라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폭의 계단이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무영은 중년의 여자에게 어색한 웃음을 건네고는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2층은 1층에 반도 안 되는 높이였다. 무영은 머리를 숙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넓이와 폭보다, 모양에 놀랐다. 2층은 중간에 나 있는 복도에 따라 방이 나누어져 있었다.

 총 네 개의 방이 두 개씩 양쪽에 있었는데, 문 앞에는 조그만 마루가 솟아 있었다. 협은 제일 끝 방 앞에 도달하여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그리고 힘겹게 미닫이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시골집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는 2층이었다. 그는 구한말 시절의 숙박업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협이 불을 켜기 전까지 2층은 완전히 어둠에 쌓여 있었다. 닭살이 더 심해지기 전에 그는 서둘러 협을 따라 들어가려 복도 끝 방으로 갔다.

 “ 거기서 기다려. 들어오지 말고 ”

 그 말과 함께 미닫이문은 거칠게 닫혔다. 그리고는 불이 꺼지고 협이 다시 나왔을 때는, 그녀 손에 품이 넉넉한 흰 반팔 티가 걸려 있었다.

 “ 이거라도 입어. ”

 무영은 옷을 받아들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협을 따라 들어갔다. 그녀가 혼자 쓰는 방인 듯했다. 낡은 책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방에는 이불과 작은 앉은뱅이 테이블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에 있는 책꽂이에는 가득 화집과 책들이 꽂혀 있었다.

 둘은 방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영은 어색한 상황에 어찌할 줄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 뭘 자꾸 봐. 눈 좀 돌리지 마 ”

 무영은 그녀의 핀잔에 머쓱히 눈을 거뒀다. 방은 불을 켜도 그리 밝아지지 않는 듯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로 눈을 돌렸다. 둘은 모두 피곤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무영은 순간 너무 가까이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 멀리 사는구나 ”

 “ 아니. 너 말대로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잠시 스치는 거지. ”

 “ 고모님 섭섭하시겠다 ”

 둘은 또 아무 말 없이 멈춰섰다. 방은 아주 작고 서로 다른 땀 냄새가 섞여 흘렀다. 모두에게 오늘은 너무 길었다.

 “ 협아 ”

 “ 왜 ”

 “ 내가 손을 좀 더 빨리 잡아챘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

 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잠시 눈 좀 붙여 ”

 “ 너 또 일 있다고 사라지면 어떡하냐 ”

 이층집에서는 작은 소리가 많이 났다. 바람에 삐걱거리는 소리, 작고 빠른 다리가 구석을 질주하는 소리. 나무 덧문이 닫긴 창문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 어디 안 가 ”

 그녀는 머리를 풀었다. 오랫동안 묶여 있던 곳은 자국이 생겨 항아리같이 머리가 뭉쳐 있었다. 협은 무릎을 펴고 편히 앉았다. 그리고 작고 다부진 어깨를 무영에게 살짝 기댔다. 그는 숨 쉬기가 힘들었다.

 “ 우리 엄마는 옛날에 조각을 했대. 나는 엄마를 닮았고, 그림을 그렸지. 그림 때문에 예쁘지만 싸가지 없던 어린 이협도 친구를 사귈 수 있었어. 친구와 협은 열심히 살았지만 둘 다 썩 결과가 좋진 않았단다. ”

 협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어렴풋이 어린 협과 그녀의 친구를 떠올릴 수 있었다.

 “ 우리 모두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죄를 지어. 뭐 카르마, 책임, 인연 이런 것들 있잖아. 이런 것들은 착하고 나쁜 게 없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불쌍한 장무영도 열심히 살아서 나 만날지 몰랐겠지.”

 반은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미닫이 문에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 유리에는 그들이 한 덩어리처럼 뭉개져 보였다. 2층에는 그들을 제외한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둘은 조심스럽게 대화했다. 천장이 낮은 곳에 잘 못 날아 들어온 날짐승들같이 숨 한 번, 손짓 한 번을 은밀히 했다.

 “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안 잡혔는데 말이야. 너 때문에 너무 많은 곳을 다녔어. ”

 “ 그래서? ”

 “ 질보다 양인가. 약간 짜 치지만 나한테는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둘은 곧 침묵에 빠졌다. 이번 침묵은 참기 힘들었다. 무영은 입술을 그녀에게 포갰다. 둘은 더 가까이 붙었다. 하지만 곧 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뺐다.

 “ 왜 이렇게 허우적거려. 처음이야? ”

 “ 난 보통 오른손으로 허리를 감싸거든. ”

 “ 그런데?”

 “ 붕대 때문인지 손에 힘이 안 들어가 ”

 협은 킥킥대며 웃었고, 무영도 한숨을 쉬며 웃기 시작했다. 두 개의 몸뚱어리가 편히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없었다. 그들은 눕지 않고 일으킨 상반신만을 서로에게 기댔다. 무영도 결국 그녀에게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맡겼다. 무영은 설명할 수 없는 포근함에 항복했다. 그는 불편한 자세에서의 키스를 그만두고 눈을 잠시 감았다.

 

 *

 

 그는 자신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협은 그를 부드럽게 손으로 지탱하면서 흔들고 있었다. 무영은 정신 차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둘은 밑으로 내려갔다. 고모는 이미 무협의 셔츠 오른 쪽 팔 부분을 전부 비슷한 옷감으로 바꿔서 재봉 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자세히 쳐다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미세하게 느낌이 달랐다.

 “ 감사합니다. 얼마면 될까요 ”

 “ 좀 가만히 있어. ”

 협은 옷을 들고 그에게 맞춰 보았다. 그는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과장된 웃음을 지었다.

 “ 안 되겠다. 이건 나중에 입고. ”

 협은 봉에 걸린 옷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는 그녀의 하반신만 볼 수 있었다. 몇 분이 흐르고 그녀는 한 벌의 양복을 들고 왔다.

 “ 이거 빌려줄 테니까 공모전 날 입어 ”

 무영은 자켓 안감에 있는 브랜드 마크를 보고, 언젠가 잡지에서 본 걸 떠올렸다. 옷에 무심한 그도 알고 있는 고가의 브랜드였다. 무영은 협의 표정만으로는 충분치 않은지 뒤에 있는 고모를 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보지도 않은 채 옷을 수선 중이었다. 불빛 아래 작은 발과 다리는 바삐 움직였다.

 “ 그거는 좀 비싼데 ”

 “ 어차피 찾아가는 사람도 없는 옷이잖아 ”

 “ 돈은 내야지 ”

 “ 말 안 해도 하려고 했어. 그리고 빌리는 거야”

 고모는 차갑게 말을 던졌다. 둘은 서로를 보지 않고 대화했다. 무영이 차가운 말투에 깜짝 놀라 협을 보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협은 그의 등을 밀며 밖으로 나갔다.

 “ 야. 너무 비싼 거 아니야?”

 “ 괜찮아. 깔끔하게 입고 다시 가지고 와. 어차피 몇 년째 안 들고 가는 옷들 중 하나야. 저 사람 기억력 안 좋아서 잘 기억도 못 하고 ”

 “그래도 ”

 협은 화난 듯이 아랫입술을 물고 그를 문 밖으로 밀쳤다. 무영은 덩그러니 길가에 선 채로 그녀를 보았다. 둘은 갑자기 웃긴 듯 미소를 지었다.

 “ 잘하고 와. ”

 “ 그래 ”

 그렇게 조감 수선집의 문은 닫혔다. 길은 온통 울퉁불퉁해서 각각의 그림자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무영은 왼손에 긴 양복을 걸치고 조심스레 길을 내려갔다. 그의 그림자와 길의 어둠은 겹치다가 다시 분리되는 걸 반복했다. 모든 것이 명멸해 버리는 자동차의 할로겐 등과 길거리의 led 간판이 아닌, 오래된 가로등과 아주 오래된 달이 그를 수유의 풍경에 박아 넣었다.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원인들이 쌓여야 한다. 작위와 우연을 넘나들며 차곡차곡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결과가 나오는 순간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마지막 방점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 오기도 하며,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무영은 미싱기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협과 기대며 접점을 이루었던 등을 방점으로 단단히 봉합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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