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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모르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작성일 : 19-11-10 12:40     조회 : 185     추천 : 0     분량 : 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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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업에 왔다. 아침 첫 수업은 그를 쉽게 허물어뜨렸다. 늪에 빠진 듯이 몸은 바닥으로 침전했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 톡톡 ’

 그는 비가 자기 팔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라니. 번쩍 뜬 눈앞에는 하얀 손가락이 어른거렸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인데 정신 못 차리는 거 봐 ”

 언제 왔는지 하영은 무영 옆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잠을 들킨 채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대고는 그녀를 보았다. 협은 어느새 검은 눈으로 무영의 왼쪽 눈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시냇물같이 차가웠다. 꼭 맑은 물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너 이거 왜이래?”

 협의 손은 어느새 그의 상처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노골적인 걱정이 섞인 그녀의 시선과 손길에 감당할 수 없는 들뜸을 느꼈다. 무영은 고개를 돌리며 작게 기지개를 켰다.

 “ 언제 왔대 ”

 짐짓 그의 무거운 목소리에 하영은 다시금 밝게 답해주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은 세잔이야. 너 저번에 언니한테 받은 거 다 봤어? ”

 벌써 1학기의 절반이 끝났다. 무영이 잠시 졸았을 때, 교수님은 PPT로 세잔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갤러리에서 받은 화집을 떠 올렸다. 그 날 밤새 그림들을 집어넣었다. 무영은 마지막 장 그림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를 흔들었다.

 “ 장무영씨 맞으시죠? 드디어 깨셨군요 ”

 그때 날아온 교수님의 조용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그에게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작은 웃음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그 웃음엔 하영의 큭큭 소리도 얹혀 있었다.

 “ 폴 세잔의 그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장무영씨는 ”

 무영은 교수님의 질문을 받고 망설였다. 부끄러운 얼굴을 한 채 그는 자신이 봤던 그림을 몇 개 말했다.

 “ 무영씨는 언제나 저에게 예상외의 답을 하는 사람이네요. 맞습니다. 사과가 있는 정물, 생트 빅투아르 산 둘 다 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

 교수님은 따뜻한 미소를 품은 채 그의 답을 곱씹었다.

 “ 저희가 중간고사를 앞 두고 마지막 화가를 세잔으로 한 것은, 세잔은 근대회화의 시작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상주의에서는 세잔보다 유명한 사람들이 먼저 나왔죠. 하지만 그들의 그림은 갈수록 불분명 해 졌어요. 그래서 고전주의에 크게 부딪혔죠. 명확성과 불명확성. 세잔은 그 둘 모두를 잡았습니다. 자연과 사물의 지속적인 명확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신의 망막에 맺히는 불분명한 명확성을 표현했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전까지 서양의 회화는 투시 원근법이 과학적이고 정석적인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그렇게 완벽하게 소실점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렵나요?“

 투박하게 머리가 볶인 여교수는 발을 느리게 움직이며 화이트보드를 서성였다.

 “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저를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저 이본이라는 이미지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눈은 여러 번 맺힌 상을 이어 붙여서 큰 이미지를 만들죠. 프린터처럼 쭈욱 뽑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인간은 완벽한 원근법을 이용하지 않아요. 세잔은 그림을 하나의 시선으로 그리지 않고, 다양한 시점을 이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과가 올려 져 있는 테이블의 왼쪽과 오른쪽의 끝은 완벽한 직선 상에 있지 않죠 ”

 무영은 처음 포스터집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을 때를 기억했다. 그림은 움직이는 듯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 물론 세잔이 이런 구체적인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번뜩이는 영감 하나로 완벽한 혁명을 이뤄낸 것도 아닙니다. 급변하는 트렌드에서 옛것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한 보수주의자에 가까워요. ”

 교수는 웃으며 학생들을 보았다.

 “ 그는 사과가 썩을 때까지 100번 넘게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혁명의 태동에는 재능보다 근면이 영향을 더 크게 영향을 끼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우직함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거죠 ”

 

 수업이 끝나고 무영은 협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이제 벚꽃이 만연한 상태였지만 비바람은 거칠게 꽃을 떨어뜨렸다.

 “ 하영이랑 연신내 갔다며. 근데 왜 너희 세 명 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안 하냐 ”

 하영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무영은 그 날의 긴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했다. 연신내와 아키라, 설화당과 아버지, 양아치들과 설산선녀.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웃기도 하고 뭔가를 곱씹는 듯이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설산선녀의 꾸짖음으로 마무리 지어지자 협은 웃던 얼굴을 멈췄다.

 “다행이다”

 “아, 내가 숙제도 내줬어. 상상해보라고 ”

 협은 그를 자랑스럽게 봤다. 그들은 저번 주에 보지 못한 회포를 풀 듯 이야기를 나누며 경제관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비가 내려도 모두들 갑자기 펴 버린 봄의 선물에 어쩔 줄 몰라 했다.

 “ 협아. 너 왜 나랑 같이 다녀? ”

 “ 왜 싫어 ?”

 “아니. 저수지의 개들은 밖에서는 모른 척한다면서. 아싸들이어서 ”

 “넌 뭔가 숨기는 게 없잖아. 그리고 난 잘생긴 사람이 좋은 걸 ”

 무영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는 조용히 길을 걸었다. 그는 그녀의 농담에 발 걸음이 가벼워지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는, 무서운 욕구가 고개를 쳐 올렸다.

 “ 나도 숨기는 거 있어 ”

 “ 뭔데 ?”

 무영은 다가오는 경제관이 한없이 멀어 보였다. 그는 숨을 짧게 들이셨다.

 “ 철수랑은 어떤 사이였어? ”

 “ 그게 그렇게 궁금해?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자신의 말을 평생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들은 대게 태연자약한 얼굴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끝에 최악의 경우가 있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이었다. 무영은 이대로 흘러가기가 싫었다. 그런 순간들은 좋은 분위기에서 만들어지고는 했다. 무영은 바다를 노하게 하더라도 끝까지 닻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 응. 알고 싶어. 미안하다. ”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 시선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순간에 방향을 잃었다. 협을 향해 어디까지 왔는지, 그녀에게 자신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았다. 진심 어린 눈빛 하나면 상대방도 감동 할 것이라는 환상은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게 사랑에 빠진 사람이거나, 젊음을 가지고서도 자신이 영리하다고 믿는 이들이 그런 환상을 품었다.

 “ 내가 중학교 때 미술부에서 사귄 첫 친구였어. 그리고 내가 존경하던 사람이었고. ”

 그녀는 건조하게 말을 뱉었다.

 “ 더 말해줘? 어디까지 말해줄까? 잠도 잤는지? 어떻게 내가 죽였는지? 그런데 왜 무사히 사회생활하는지? ”

 “야 ”

 서로는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선을 넘고 싶은 욕구는 둘 모두에게서 흘러나왔다. 무영과 협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몸을 부들거렸다. 싸우기 전에 주먹에 힘을 주는 것처럼 그들은 어금니를 강하게 닫았다. 자그마한 신호에도 그들은 말을 쏟아낼 것 같았다. 하지만 무영은 무서웠다.

 “ 미안하다. 나 먼저 가볼게 ”

 무영은 그녀를 뒤에 두고 앞으로 갔다. 한 걸음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반추했다.

 

 *

 

 저수지의 개들 동아리 방엔 무영과 하영이 앉아 있었다. 따뜻한 오후였다. 금요일은 아닌데도 둘은 그곳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 경쟁이 끝난 기분은 어때?”

 무영은 하영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그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인터뷰를 계획했다. 하영은 웹툰 공모전이 끝나 심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 몇 달 동안 공모전에 매달려 있었어. 너무 홀가분해 ”

 그녀는 당당히 네티즌 투표에서 8등 안에 들었고, 시상식에 초대되었다. 마지막 순위와 결과는 시상식에서 발표 될 예정이었다. ‘경주마’는 압도적인 투표수로 경쟁작들을 이기고 올라왔다. 그래서 모두들 하영이 대상을 거머쥘 것을 예상했다.

 그는 만화를 많이 읽은 적 없었다. 그렇기에 온갖 커뮤니티와 만화방 사장님들의 충고를 바탕으로 그 만의 북 리스트를 만들어 나갔다. 순수히 ‘재미’가 아닌 인터뷰를 위해 만화방을 전전하는 자신이 웃겼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웹툰’이라는 유행과 시스템에 대해 주목하고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만화의 세상은 너무나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많은 소재와 파격성을 가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역설적으로 그는 정말 오랜만에 순수한 ‘재미’로 인해 희열을 느꼈다.

 “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언제야?”

 “처음은 티비에서 나오던 애니 따라 그린 것이었을걸. 그리고 조금씩 공책에 그려 나갔지. 다들 내 그림 좋아했거든. ”

 무영은 그녀의 유년시절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지난 시간들을 설명하고 스케치 해 나갔다.

 “ 너가 이걸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건 뭐라고 생각해? ”

 “ 가끔 힘들어질 때가 있어. 꼭 수도승처럼 보이지 않는 걸 계속 추구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들은 마음의 평화를 좇겠지만, 난 쾌락을 좇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내가 하는 게 재미없어 보일 때면 굉장히 괴로워. ”

 “ 사람들 응원같은 거는 너한테 큰 동기가 안 되는 거야?”

 “ 물론 큰 도움이지. 한 명이라도 내가 하는 일에 칭찬을 해 주면 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걸. 그렇지만 그걸 꿈이라고 밝히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묘하게 바뀌어버려. 아직 철부지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그들의 눈빛은 감당하기 쉽지 않거든 ”

 무영은 질문하지 못하고 펜만 잡고 있었다. 그녀는 주저하는 그를 보았다.

 “ 그러면 난 내가 그린 인물을 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똑같은 인물을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 파고들다 보면, 걔랑 묘한 친분이 생겨. 내가 여기서 그만둬 버리면 그와 한 약속들을 다 깨버리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의무지. 그래서 그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몇 컷씩 그리는 거지. 그러다 보면 다시 정 궤도에 들어서는 것 같아. ”

 그녀는 너무 변태 같은가. 라는 말과 함께 웃었다. 무영은 고개를 저으며 검은 만년필을 움직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숙제는? ”

 “ 나중에. 아. 나 3주 뒤에 시상식 열려. 규모는 작은데 밥 준다네. 와서 먹고 가 ”

 무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둘은 여운을 조용히 느끼는 듯했다. 하영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것 같았고. 무영은 조금이라도 자신만의 인상을 노트에 더 적어두기 위해 끄적였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나고 하영은 일어섰다. 벌써 6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 나 먼저 가볼게. 인터뷰 준비한다고 고생했다. ”

 “아 하나만 더. ”

 무영은 그녀를 잡았다.

 “ 하영아. 너가 생각하는 협은 뭐야?”

 

 *

 

 무영은 시험기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기성항공 공모전은 발표 자료를 제출 한 것으로 한 시름을 덜었고, 동아리는 시험이라는 명목하에 몇 번 취소되었다. 아주 단순한 삶의 순서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영은 교류가 멈춰버린 시간을 공부로 채워 넣었다. 그는 단순한 공부의 법칙에 감사했다. 눈이 먼 노력이라도 그 결과는 좋다. 라는 공식은 그에게 매우 행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 텁텁한 입을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뛰어나갔다.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이 엄습할 때가 있었다. 무영은 협을 한 번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딱 한 번 그녀를 보았는데, 시험을 일찍 끝내고 유유히 자리를 뜨는 뒷모습이었다. 그녀는 옛날처럼, 늦게 들어와서 일찍 나갔다. 무영은 시험을 5분만 늦게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 무영은 날씨가 좋은 밖 벤치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완전히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될 것 같은 바깥 온도가 그를 위로 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떠돌이 개들이 재회하는 날이었다.

 “ 야 왜 전화를 안 받아 ”

 하지만 그의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건물에서 나온 정욱은 두리번거리는 모습과 함께 그에게로 달려왔다. 그는 숨을 헐떡였다.

 “ 우리 붙었다고. 1차 붙었다고 이 새끼야 ”

 무영은 잠시 공모전을 잊고 있었다. 오늘이 1차 발표인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그는 보통 정욱의 호들갑을 잘 따라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둘은 일어서서 큰소리를 지르며 몸을 부딪쳤다. 그는 이제야 무언가를 하나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무영은 정욱과 함께 급히 인동, 혜인을 만났다. 인동은 꽤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그를 제외한 셋은 모두 흥분한 모습이었다. 특히 무영은 고생 끝에 보상이 찾아온 것이 너무 행복했다.

 “ 얘들아 고생했고. 2주 뒤에 발표니까 다시 긴장 좀 하자 ”

 2차는 자신들의 PPT를 직접 발표하는 것이었다. 딱 10팀을 뽑아 그중 5팀만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무영은 자신 있었다. 2분의 1이라는 낮은 확률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마음이 놓인 건 자신이 더는 할 게 많이 없다는 것이었다. 발표는 인동과 혜인의 역할이었고, 무영과 정욱은 돌발질문에 답할 수 있게 그들의 컨텐츠를 잘 숙지하는 것뿐이었다.

 “ 그래도 스토리텔링이랑, 발표하는 거 점검은 해야 하니까 내일부터 직접 해보자. 무영이랑 정욱은 우리가 하는 거 보면서 피드백 주고 ”

 그들은 짧은 축하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다들 검은 정장 있나?”

 “ 전 있어요. ”

 “ 저도 누나 결혼식 때문에 하나 맞춰놓은 것 있어요. ”

 혜인과 정욱은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정장이 있음을 말했다. 하지만 무영은 답 하지 못했다.

 “ 무영 너는? ”

 인동은 그를 향해 물었다. 그는 의심 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 아 찾아볼게요. ”

 무영은 차마 없다고 말하지 못 했다. 자신에게 있는 슬랙스와 세미 자켓을 떠올렸지만, 그 건 정장은 아니었다. 그는 몇 년간 자신에게 정장이 필요할 일이 찾아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 뭐 없으면 그냥 다들 톤 맞춰서 깔끔하게 입어도 되긴 하는데…. 한 번 찾아봐 ”

 인동의 말을 끝으로 넷은 헤어졌다. 무영과 정욱 인동은 내려와 담배를 피웠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연기를 뿜었다. 시간이 되어서, 몸이 시켜서 피는 것이 아니라, 일부로 좋은 여행지를 찾듯 담배를 꺼낸 건 시험 기간이 시작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정욱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꺼냈고, 인동과 정욱은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 아. 무영아. 이협 걔 흡연실장 앞에서 이철수 부모님이랑 싸운 거 들었어? ”

 “ 김철수 ”

 “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걔 부모들이 와서 과사무실을 그냥 뒤집어엎었대. 이협 폰 번호 좀 알려 달라고. 그런데 그럴 수 있나. 개인 정보 함부로 못 주잖아. 그래서 난리가..”

 “ 누구한테 들었어. 그 얘기?”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무영은 그 때를 다시 생각했다. 정욱은 당황한 듯한 얼굴로 그와 인동을 번갈아 보았다. 무영은 기분 나쁜 감촉이라도 느낀 듯이 몸을 살짝 떨었다.

 “형 그때 이런 말 안 했잖아요 ”

 “ 그랬나? ”

 무영의 얼굴은 빠르게 차가워졌다. 인동은 담뱃불을 끄며 짧게 반문했다.

 “ 그때 설마 일부로 철수 부모님 내려보낸 거에요? ”

 “ 내가 왜?”

 무영과 인동은 서로를 보았다. 둘 사이의 긴장은 빠르게 팽팽해졌고, 누군가 떨어트린 담뱃재 하나만으로도 끊어질 것 같았다. 이런 침묵이 오래 갈수록 결과가 처참해지는 건 아주 뻔했다. 하지만 인동도, 무영도 시선을 거둘 생각은 없는 듯했다.

 “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그 긴장을 먼저 뚫고 들어온 것은 무영이었다.

 “ 그랬으면 어쩔 건데?”

 “ 만약 진짜 그러셨다면, 너무 슬픈 일이죠 ”

 정욱이 그를 잡고 말렸지만 입을 막을 순 없는 일이었다. 이미 그 들의 담배는 끝까지 타서 희미한 불꽃만을 남기고 있었다.

 “ 왜냐면 제가 했던 실수를 형도 한 거라서. ”

 “ 뭐? ”

 무영은 인동의 굵은 눈썹을 보았다. 저 거창한 눈빛과 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개를 조아렸을까. 무영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닮고 싶었고, 친해지고 싶었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가 하는 행동에는 뒷 끝이 없었고, 넉넉한 씀씀이는 쉽게 모방할 수 없어서 더 멋을 뿜어냈다. 하지만 지금 인동의 얼굴에는 싸구려 질투가 드리워져 있었다. 동시에 무영은 자신과 똑 닮은 초상을 그에게서 보았다. 협이라는 물결을 어떻게든 요동치게 하려고 던진 유치한 물수제비였다.

 “ 야 말을 뭐 그렇게 하냐 ”

 인동의 욕보다 먼저 튀어나온 건, 정욱이었다. 그는 아주 빠르게 그를 막아섰다. 한 번만 더 가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직감한 듯 정욱은 오버해서 무영의 어깨를 꽉 쥐었다. 담배를 피우러 들어온 사람들은 그들을 흘끔거렸다.

 “ 무영아. 이협 너무 좋아하지 마. 너 시발 지금 존나 구려 ”

 흡연장은 길게 이야기하기도, 아등바등 서로의 눈을 째려보기도 알맞지 않은 곳이었다. 존재 이유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너무 오래 있었다고 생각한 무영은 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

 

 무영은 2주만에 만나는 저수지의 개들 멤버들을 먼저 기다렸다. 시작은 7시부터였지만, 아직 5시었다. 무영은 얼추 정리된 인터뷰 내용을 손에 들고 시간을 죽였다. 그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사실 무영은 저수지의 개들보다 그녀를 기다렸다. 오늘의 발표 차례는 이협이었다. 그가 4월에 이곳에 온 이후로 한 번도 협의 발표나 자신의 창작물 소개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차례는 공교롭게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다들 다 같이 어디를 가거나, 그녀가 바빠 셋이서만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물론 처음 본 영화들과 애니, 미숙한 음향이 두드러지는 단편들은 그에게 충분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럴수록 협의 차례가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주 전, 그는 수훈과 하영에게 협의 차례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 게 좋을거다 라는 답으로 말을 줄였다. 집요한 질문 끝에 수훈에게 들은 것은 그녀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한 점씩 들고 온다는 것이었다.

 “ 여기는 이젤이나 물감 같은 것들 없는데? ”

 “ 협은 여기서 작업 안해. 간단한 스케치 정도는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다른 곳에서 하는 것 같던데 ”

 그는 인하가 묘사했던 어린 협의 초상화를 상상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들은 유일한 작품이었다. 어둡지만 따뜻한 눈빛. 나이가 느껴지는 피부지만 힘이 있는 중년의 여인. 무영은 상상을 오랫동안 하지는 못했다. 진동에 꺼낸 휴대폰에는 하영의 전화가 와 있었다.

 “ 무영아. 나랑 수훈이 지금 소연언니 만나버려서 좀 늦을 것 같아. 한 시간 정도? 너도 여기 올래? ”

 그때 문이 열렸다. 협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 아니. 천천히 와 나 여기 있을게 ”

 그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작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연신 훔쳤다. 협은 2주간의 공백을 뛰어서 지나온 듯했다.

 “ 너 왜 이렇게 빨리 왔어.”

 “그냥. 아. 다들 조금 늦는다네 ”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방을 서성였다. 급하게 달려온 듯한 모습이었다. 무영은 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긋이 보았다.

 “ 가방이라도 좀 내려놔 ”

 협은 크로스 백을 어깨에서 빼 간이 의자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한 쪽이 무거운지 바닥으로 쓰러졌고, 무영은 황급히 그 가방을 잡아챘다.

 “야 조심 좀....”

 동아리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둘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듯했다. 바닥에는 전단지 뭉치들이 넓게 흩뿌려져 있었다.

 

 JOSH BAR

 좋은 술로 오늘의 슬픔을 가리세요.

 

 무영은 조심히 조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종이와 가방을 주워들었다. 무영은 어떤 말도 없이 기계적으로 바닥을 쓸며 전단지를 모았다. 협도 동참했다. 그녀는 무영이 모은 종이를 그의 손에서 가져와 갈무리했다. 그리고 아직 무영에게 들려 있는 가방을 멀뚱히 보았다.

 “ 가방 안 줄거야? ”

 무영은 가방을 주고서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협 또한 아무 말 없는 그를 확인하고는 간이침대를 펴기 시작했다. 그녀는 꽤 피곤해 보였다. 그는 인쇄해온 인터뷰를 계속 보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모든 신경은 그녀에게로 쏟긴 지 오래였다.

 자신이 한 실수로 우연한 만남도 성사되지 않은 채 지나온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오늘을 놓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는 더는 협을 무시할 수 없었다.

 “ 시험은 잘 쳤어? ”

 “ 나쁘지 않았지. ”

 둘은 먼 거리를 통화하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보통 무영이 묻고, 그녀가 답했다. 하지만 그는 많은 걸, 더 깊은 걸 묻지 않았다. 그저 보지 못한 일주일 동안의 빈칸을 채웠다.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했는지 따위의 사소한 것들만 띄엄띄엄 그녀가 볼 수 있도록 옆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 아. 기성기업 공모전 1차 통과했어. ”

 “ 고생했네 ”

 “ 인터뷰도 정리 거의 끝났어. ”

 “ 고생했어. ”

 “ 하영이가 블루문 시상식에 나 초대했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조심히 일으켰다. 검은 자켓이 조금 주름 잡혀 있었다. 협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둘은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는 사람들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누군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손길을 따랐다.

 “ 너 내가 손 잡고 처음 여기 데려왔던 것 기억나? ”

 “ 응 ”

 “ 사실 너한테 우리가 필요해 보였거든. 그런데 진짜로, 우리한테 너가 필요했던 것 같아. ”

 둘은 눈을 보았다. 눈은 중요하다. 감정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감정이 증폭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정보를 받고, 내 놓는 부위이다. 가장 취약한 약점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껍데기와 허영도 필요 없는 장소였다. 무영은 자신의 약점을 그녀에게 훤히 드러냈다.

 협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영도 그녀를 따라 담배를 꺼냈다. 무영은 그녀의 손에 베인 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다. 둘은 오랜만에 같은 연기를 뿜었다.

 “ 너 공모전이랑 시상식 갈 옷은 있어?”

 “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옷에 집착할까 ”

 “ 설마 장례식장에서 입고 왔던 구린 슬랙스 바지 입고 갈 건 아니잖아 ”

 “설마가 맞는데요 ”

 둘은 웃었다. 사람들의 옷은 얇아져 있었다. 다들 시험 기간 있었던 피곤의 잔재를 얼굴에 남겨두었지만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연주를 하러 오는 듯, 등에 큰 기타 집을 매고 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 오늘은 궁금한 거 없나 봐 ”

 무영은 답 대신 연기를 뿜었다. 그리고 앞만 바라보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을 보았다. 저 멀리 수훈과 하영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영은 드디어 시험이 끝난 것 같았다.

 

 *

 

 좁은 동아리 방에 넷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들 꼴이 괜찮네?”

 협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를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모두 모인 것 같았다.

 “ 협 보기가 진짜 힘드네. ”

 하영은 그녀를 보며 칭얼거리듯 말했다. 협은 웃으며 자신이 준비해온 화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그림을 띄우기 시작했다. 무영은 표지에 적힌 이름을 띄엄띄엄 읽었다.

 “ 프리다 칼로 ”

 “멕시코 화가야. 20세기 사람이고”

 협은 사진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소개했다.

 “그림에 자화상이 많은데. 사슴도 있네. 그런데 어딘가 다들 상처 입거나, 못, 화살이 박혀 있어. ”

 하영은 그림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대부분 기괴하다 싶을 만큼 쓸쓸하거나 거친 상처들이 많았다.

 “프리다칼로는 보통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아니야.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초현실주의보다, 극 현실주의라고 하는 게 맞겠네. “

 “이게 왜? 사슴에 사람 얼굴 붙어있고, 온갖 철대가 몸에 꽂혀있는 이런 그림들이?”

 하영은 잘 이해되지 않는 듯이 그녀를 보았다.

 “ 나, 이 사람 알아. 평생 하반신 장애로 살았다고 들었는데. 교통사고 나서 수술도 많이 했고, 몸도 자유롭게 못 썼다고.. ”

 수훈을 프리다 칼로에 대해 들어 본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던데. 그림은 처음이야. ”

 수훈은 말을 더는 잇지 않고 멈췄다. 협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 누구보다 열심히 산 사람이야”

 그녀는 다시 슬라이드를 넘기거나, 화집을 펼쳐 사람들에게 그림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셋은 그렇게 하영의 발표를 묵묵히 들으며 작품들을 보았다. 무영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모를 연민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한 발표는 그렇게 끝이 났다. 무영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싶었지만 이 것이 끝인 것 같았다. 넷은 다시 한 번 작품들을 살폈다. 오늘은 술이 없었다. 아니 가져오지 않았다. 술이 없어도 충분히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가끔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훈의 생생한 연신내 이야기는 그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아. 나 소연이랑 놀러 가기로 했어 ”

 하영은 연신 어디어디를 외치며 수훈의 등을 쳤고, 무영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넷은 오랜만에 본 소꿉친구들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냈다. 부끄러운 듯이 더듬거리며 말 하는 수훈의 모습은 영 우스웠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건 그라는 걸.

 “ 춘천가서 닭갈비 먹고 올게 ”

 “ 진짜 수훈이가 승리자다 승리자야. 야 그래도 내 시상식 올거지? 내가 대상 500받으면 그 날 바로 소고기 산다. 소연 언니도 부르던가”

 진한 눈썹의 프리다칼로 초상들은 피를 흘리며 그들을 지켜보았지만, 넷은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 무영은 이 사람들의 자세를 좋아했다. 어떤 작은 행복도 사소하게 넘기지 않았다. 무영은 협을 조용히 보았다. 그는 협의 웃음을 아주 조금씩 떼어먹었다. 왜 자신이 몰래 지켜보고 있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무영은 이 시간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9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헤어졌다. 무영과 협은 같은 방향의 지하철에 몸을 올랐다.

 “ 너는 그림 안 그려?”

 “ 내가 그림 그리는 건 어떻게 알았어?”

 무영은 괜히 딴 척을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 훔쳐보는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뒷조사도 잘하는 구나 ”

 무영은 그런 그녀의 날카로운 농담에 크게 웃었다. 지하철은 덜컹거리며 사람들을 싣고 갔다. 9시 즈음에 이 좁고 긴 공간은 음식 냄새와, 닳아버린 노력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비슷한 냄새가 풍겼다.

 무영은 신입생 때를 생각했다. 그는 서울의 말도 안 되는 비연속 성에 자주 어지럼을 느꼈다. 평생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를 매일 본다는 것. 그리고 인파 속 누구도 자신과 관련조차 없다는 사실은 끔찍했다. 항상 그가 밟고 있는 지하철의 바닥은 크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체온을 느낄 정도로 가까운 공간을 두고 있지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다른 시간대가 흘렀다. 결국, 무영에게 지하철이란 공간은, 외로움으로 귀결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 이협. 서울에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 든 적 있어?”

 “지금 살고 있잖아 ”

 “아니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정착하는 거 말이야. ”

 협은 아랫입술을 살짝 내민 채 고개를 저었다. 둘은 자리가 나 같이 앉게 되었다. 자리에는 모르는 이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 사람들은 너무 쉽게 다른 이들의 인생을 알고 싶어 해 ”

 협은 침묵을 깨고 들어왔다.

 “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녀의 작품보다, 그녀의 삶을 떠올리지. 불우한 삶. 장애. 배신. 절망. 사회주의자. 뭐 이런 키워드 말이야. 그리고는 그걸 작품 위에다가 투영하는 거야. 아. 저 상처는 저 때 나 버린 것이군. 아. 저 절망하는 자화상은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군. 나는 그게 싫어 ”

 그녀는 울분을 토하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조용해졌다. 그녀는 무영을 보고 있었다.

 “ 아까 오늘은 물어볼 것 없느냐고 했지? ”

 무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물었다. 협이 시선이 따끔거리게 전해졌다. 그녀는 정말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선 비누로 짓누른 듯한 땀 냄새가 묘하게 났다.

 “ 좋아하는 색은 뭐야 ”

 무영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 병신 ”

 “ 병신이란 색은 없는데 ”

 둘은 반대편 검은 유리창에 비친 자신들을 보고 낄낄댔다. 자신의 몸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둘을 힐끔거렸지만, 무영과 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새 무영은 집에 가까워져 있었다. 한성대입구역에 다다랐을 때 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은 그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 다음 주 화요일이야. 시상식에 늦더라도 와. 우리 기다리고 있을게 ”

 무영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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