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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연신내에는 설산선녀가 있다.2
작성일 : 19-11-10 12:19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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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취해서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지 계속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경찰서 안은 술에 취해 연신 보내주세요.를 중얼거리는 사람과 욕지거리를 내뱉는 무리가 한 데 엉켜 있었다. 무영과 수훈은 하영 옆에 앉아 담당 경찰을 기다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다가왔다.

 “ 김하영 너 뭐 하는거야. 여기서 술은 왜 먹었어 ”

 어두운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팬 중년의 남자였다. 시들시들하게 낡아버린 회색 카라티를 입은 남자는 흡사 떨어져 나온 돌 같았다. 그 남자는 하영을 보고 그대로 그 녀 옆으로 왔다. 하지만 문에서 그들에게 도달하는 데 꽤 오래 걸렸는데, 원인은 묘하게 저는 오른쪽 다리같았다. 그와 동시에 하영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 너희 뭐하는 새끼들이야? 애를 이렇게나 술을 먹여?”

 자신을 하영의 애비라고 소개한 사람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둘은 억울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술기운보다 패배감이 더 쓰라렸기에 무영은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일이 터진 건 설산선녀의 집을 지나쳐 내려오는 길에서였다. 어두운 골목 사이에 담뱃불 몇 개가 모여 빛나고 있었다. 딱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5명 정도의 남자들은 그들에게 접근했다. 빠르게 자리를 떴어야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우루루 골목에서 나온 남자들은 뻔뻔하게 돈을 요구했고, 하영은 취해서 사리분별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들에게 거친 욕을 했다. 그 상황에서 그쪽이 먼저 손을 들었고 무영이 앞에 나와 그들과 주먹을 나눴다. 수훈 또한 몸으로 그들을 밀치며 한 데 섞여버리고 말았다. 밝은 달 아래, 사람들은 발길질하고 욕을 나눴다. 결국 그들은 무영의 현금 3만원과 네 개밖에 피지 않은 수훈의 담배갑을 손에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 얘 들도 맞았다고 아빠. 그리고 소리 지르지 좀 마!”

 무영은 왼쪽 눈이 살짝 찢어져 있었다. 수훈의 입술 끝엔 피가 말라 딱지가 져 있었다. 그 때서야 그걸 확인한 중년의 남자는, 잠시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시끄러워지자, 한 경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요.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

 하영은 짐짓 당황한 표정으로 경찰을 보았다. 40대의 남자는 민원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있었다.

 “ 친굽니다. 대학교 친구요. ”

 그 답은 무영이 대신했다. 하영의 아버지와 하영은 그런 그를 보고 있었다. 경찰은 사건의 경위와 무엇을 빼앗겼는지, 그들의 인상착의는 어땠는지를 물었다. 취해서 발음이 잘되지 않는 하영과 입이 아픈 수훈을 대신해 무영은 착실히 답을 했다.

 상황은 그리 길지 않게 끝났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확인하고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집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내주었다. 1시간 반 만에 그들은 시끄러운 경찰서에서 빠져나왔다. 용석은 그들을 째려봤다. 그는 억누르고 있던 화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너 미쳤다고 이 시간까지 술을 먹어? 김하영. 너 집에 가서 보자. 그리고 연신내는 도대체 왜 온거냐? 그 골목까진 왜 올라간 거야? ”

 “오랜만에 설화당 가고 싶었어. 6년만이야. 우리 거기 자주 갔었잖아. 아빠. ”

 하영은 악을 쓰며 바락바락 용석에게 말했다. 참고 있던 게 터져 나오는 듯했다. 서러움과 그리움은 마지막 아빠라는 단어에서 그 색이 더 짙어졌다. 그리고 그 말은 용석의 분노를 잠시 멈췄다. 셋은 조용히 경찰서에서 빠져나와 길거리로 향했다. 용석은 비틀거리는 하영을 꽉 잡고 걸어갔고, 무영과 수훈은 부녀를 뒤따랐다. 용석은 하영을 구겨 넣듯 차에 태웠다. 그리고 삐죽이 서 있는 둘을 향해 눈을 돌렸다.

 “ 지하철역까지만 태워줄 테니 타 ”

 용석은 아직 탐탁치 못한 표정이었다. 특히나 무영을 노려보았다. 그는 노골적인 그의 목소리와 태도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완곡히 거절했다. 차라리 수훈과 걸어 가는 게 더 마음이 편하리라 생각했다.

 “ 없다. 없다고. 어떡해. 없어 ”

 하지만 그가 잡을 수 있는 선택지는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차 문 사이에서 나오는 절규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용석은 급히 차 문을 열었다. 하영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 아빠. 팔찌가 없어. 팔찌. 아빠.”

 

 *

 

 오르막길은 꽤 각도가 높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달에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친절한 길에 남자 셋이 일렬로 올라가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남자가 뒤를 돌아보곤 얼굴을 찡그렸다.

 “너희는 그만 돌아가라. ”

 “ 그렇지만 아버님…. 모르잖아요 어딘지 ”

 제일 뒤에 있던 수훈은 입술을 벌릴 때마다 고통스러운지 서 순과 쉼표를 엉망으로 써내며 말했다.

 “ 그거 엄청 낡아 보이던데. 아니 끼지도 않고 그냥 만지기만 하던데. 그냥 나중에 찾으면 안 돼요?”

 무영은 경찰서에 나온 후로 끝도 없이 몰려오는 피로감에 길가에 누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른쪽 다리를 옆으로 절며 걷는 용석 앞에 그의 물음은 헛되이 묻힐 뿐이었다. 용석은 하영의 절규를 듣고는 바로 차를 몰아 연신내 만화방을 지나, 오르막길 초입으로 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오르막길을 올랐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다시 오르는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오래된 가로등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좀 더 상기된 느낌이었다.

 “ 팔찌 그거 그냥 다시 사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

 용석은 순간 그 말을 듣고 자리에 멈췄다. 용석은 그리 큰 키가 아니었지만, 오르막길이었기에 무영은 그의 행동에 움찔하고 말았다. 무영은 자신이 그를 분노케 했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선 그의 눈에는 깊은 회한이 자리 잡고 있었다.

 “ 그 걸 아직도 챙기고 다니는 줄 몰랐다 ”

 그 말과 함께 용석은 다시 부지런히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영은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설화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갔다.

 “여기에요. 저기 구석에 애들 있었구요 ”

 그곳엔 조용한 어둠만이 남아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셋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난 곳이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용석은 달이 뜬 하늘을 보며 숨을 골랐다. 그의 어깨가 크게 들썩일 때 마다 무영은 용석의 나이가 자연스레 유추되는 것 같았다.

 “달이 밝네. 아직도 거기 쓰려나 ”

 용석은 갑자기 왼쪽 샛길로 들어갔다. 무영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못한 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훈이 쓰러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그의 둔탁한 발걸음은 그래도 자기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샛길은 정확히 사람하나 지나갈 만한 곳이었다. 용석의 새치가 꽤 많이 난 머리는 땀에 젖어 형편 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고지식한 결단력은 나이가 들지 않고 그를 움직이게 했다. 샛길은 형편없이 좌우로 꺾여 있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파이프가 가슴께까지 나오곤 했다. 깨진 유리병을 꽂아둔 벽에는 고양이들이 그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용석의 오른쪽 다리는 과하게 각도를 틀며 무영에게 깜빡이 역할을 해주었다.

 무영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용석의 등만 보고 걸었다. 한정적인 시야에 그는 더욱 피곤을 느꼈다. 그렇게 5분 정도 더 갔을 때, 넓은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무영이 해방감과 함께 본 것은 모래가 깔린 작은 놀이터였다.

 무영은 너무나도 허탈했다. 거칠게 자신을 끌고 간 그의 선택이 고작 놀이터라니. 이 쌀쌀한 날씨에 놀이터라니. 무영은 등에 흐르는 땀줄기에 셔츠를 벗었다. 그리고 용석을 향해 소리쳤다.

 “ 아니 아저씨. 요즘 애들이 아직도 놀이터에서 담배피고 술 마시는 줄 아세요? 그냥 돌아가시죠. 벌 써 두시간이 지나...”

 “쉿 ”

 용석은 조그만 소리로 그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의 눈은 놀이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옆 건물들에 막혀 가로등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아주 작은 담뱃불과 움직임이 존재했다. 무영이 그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집중했을 때 그는 느꼈다. ‘ 저것’ 들 또한 자기와 용석을 보고 있음을.

 “ 아저씨. 경찰에 신고하죠. 쟤네 쪽수 많다고요. 지금 술이라도 마시고 있으면 진짜 ”

 “ 거기! 나와봐라! ”

 용석은 그의 말을 자르고 소리를 질렀다. 옆 건물에 작은 창문으로 나오는 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놀이터에 그의 외침이 퍼져나갔다. 무영은 욕을 하며 급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하지만 119를 누르기도 전에 미끄럼틀 사이에서 검은 윤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꼭 밤에만 움직이는 야생동물들 마냥 주루룩 달 빛 아래 몸을 드러냈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인원이 조금 더 늘은 것 같았다.

 “ 아저씨 나 여기 어딘지 설명도 못 한 다구요. 어떻게 하자는 거에요 진짜로 ”

 그는 휴대폰에 112에 적었지만, 주소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짜증부터 솟구쳤다. 수훈은 그저 두려운 표정으로 상황을 보았다. 이제 불과 몇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묘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사실 대치가 아니었다. 포위에 가까웠지만, 이상하리만큼 당당한 용석의 태도 덕분에 이상한 균형이 맞춰졌다.

 “ 너네가 얘 때리고 돈 들고 갔나? ”

 “ 4만원 정도는 용돈이지 시발 ”

 반삭에 가까운 머리를 한 남자가 무리를 가르고 걸어 나왔다. 위에는 후드티를 입고 있었지만, 바지는 교복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앳된 얼굴이었다. 무영은 조금 전에 그에게 맞은 볼이 다시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 그래 그거 용돈해라. 그런데 너네 팔찌도 가져갔나?”

 “ 무슨 소리야. 아. ”

 그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는 조그만 팔찌 하나를 꺼냈다.

 “ 이거? 땅에 떨어져 있던데 ”

 “ 돈 더 줄 테니 그거는 좀 줘라 ”

 남자는 얼굴 살이 별로 없었다. 머리카락도 없었기에 그의 표정에는 선명하게 명암이 드러났다. 그래서 조금만 얼굴을 찌푸려도 전체를 구긴 듯했다. 그는 용석의 말을 듣고는 한 껏 강렬한 냉소를 터뜨렸다.

 “ 그래? 그럼 백만 원만 주면 주지 ”

 무영은 그의 뻔뻔한 태도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사람의 간절함을 쉽게 간파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에게 굉장히 소중한 물건이라는 걸 빠르게 알아채고 배짱을 놓는 것이었다. 백만 원. 큰돈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지만,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면, 충분히 지불 할 수 있었다. 꼭 그 남자가 용석에게 되묻는 것 같았다. ‘ 딸이 진짜 너에게 그만큼 가치가 있어?’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반삭의 남자가 액수를 말하는 순간 뒤에 서 있던 무리에서도 웅성거리는 파문이 일었다. 용색은 얼굴을 굳힌 채 그들을 쏘아보았다. 미동도 없이 달 아래 서 있는 석상 같았다. 무영은 안 좋은 예감이 일었다.

 “수훈이형 숨 고르고 있어요.”

 무영은 수훈을 잠시 보고 나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용석에게 아주 작은 귓속말을 속삭였다. 우두머리는 다시 한 번 거드름을 피웠다.

 “이거? 우리 좆도 필요 없는 데 아저씨는 필요한가 보네. 그러니까 백만 원만 넣어줘. 그리고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응 ? ”

 용석의 눈빛은 팔찌를 보고 나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영은 옆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아버지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

 아버지라는 단어를 듣고 그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이 맞고 아버지도 맞으러 왔네.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무영은 용석의 앞에 섰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하. 바로 쏴 줄 테니까 일단 팔찌부터 줘 봐요. 어차피 우리 도망도 못 쳐. 우리 아버지 무릎 안 좋아서 ”

 “지랄 하지 말고 돈 먼저. ”

 무영과 반삭의 남자는 바로 앞에 마주 서서 서로를 보았다. 두 발자국만 걸으면 닿을 거리였다. 우위에 서 있음을 느긋이 즐기며 남자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였다. 그 걸 본 무영은 바로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 이 새끼가 미쳤나. ”

 남자는 신고하는 줄 알고 그에게 바싹 다가왔다. 이제 팔도 닿을 거리였다.

 “ 계좌 불러 ”

 무영의 얼굴은 굉장히 비굴한 표정이었다. 그는 신고 대신 폰뱅킹을 켜 놓고 있었다. 어쩔 수 없듯이 준다는 표정이 그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반삭의 남자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 우리 110....”

 무영은 조용히 키패드를 눌렀다. 이체 전 확인 창에 도달 했을 때, 확인해 보라는 식으로 그에게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 계좌번호 확인해봐 ”

 놀이터는 어두웠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서로를 보고 있었고 모두가 어둠에 익숙해져 있을 때였다. 무영의 폰은 유난히 밝기가 셌고 반삭의 소년은 불쑥 내민 그의 폰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붙였다.

 “ 아악. 이 씨발 ”

 퍽. 공중에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은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무영은 그의 손에서 팔찌를 뺏고 아직 뒤에 멈춰 서 있는 용석과 수훈을 잡아채 샛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영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강한 빛에 초점을 잃은 소년의 얼굴이 보기 좋게 다가왔을 때, 폰을 잡지 않고 있는 손으로 그를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소년의 입 주변과 손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로 보이는 남자들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 뭐해 시발. 잡아! ”

 무영은 놈들이 조금이라도 반삭의 소년을 걱정하며 쫓아갈지 망설이기를 빌었다. 하지만 셋이 놀이터가 있는 공터를 빠져나와 좁은 샛길로 진입하기도 전에 그들은 달려오기 시작했다. 용석의 달리기는 무영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느렸다.

 “아저씨 빨리 업혀요. 그리고 거기서 보는 거에요 알았죠? ”

 용석은 망설였다.

 “ 형 빨리 ”

 무영은 그를 밀치듯이 수훈의 등으로 떠밀어 버렸다. 그리고 한 덩어리가 된 둘을 무영은 샛길의 입구로 밀어버렸다.

 “쭉 가요. 쭉 ”

 무영은 아까 맞은 것에 복수라도 하듯이 뒤에 자기를 따라오는 녀석들을 걷어차고, 뿌리치며 전진했다. 한 명밖에 통과하지 못하는 골목이었기에 셋은 겨우겨우 나아 갈 수 있었다.

 

 *

 

 수훈은 거친 숨을 내셨다. 땀에 온몸이 젖어 둥근 배의 윤곽이 그대로 옷에 나왔다. 용석은 자신의 영토를 뺏긴 개처럼 꼬리를 말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전화했지만 그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여기는 차가 올라오지 못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직접 걸어와야 했다. 수훈은 도망을 치며 마지막으로 본 무영을 떠올렸다. 무영은 거의 몸을 뒤 돌린 채로 따라오는 남자들을 때리고 밀어내고 있었다. 그는 용석을 내려놓고 온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 시발. 아직 경찰 안 왔어? ”

 무영은 뒤 꽁무니에 긴 그림자를 달고 다니듯 몇 명을 붙인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수훈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쥔 채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누구 없소 ”

 하지만 용석은 엉뚱히 어떤 대문을 두드렸다. 그는 누군가 안에서 열어주기를 바라며. 간절히 문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문이 슬쩍 밀려났다. 애초에 열려 있었다. 그는 그걸 보고 수훈과 달려오는 무영에게 소리쳤다.

 “ 빨리 들어와 ”

 무영은 대문에 적힌 글자를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뒤 따라 오는 거친 숨소리에 잡혀먹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아저씨 여기 들어와도 돼요? ”

 “일단 막아 ”

 셋은 문에 몸을 기대고 필사적으로 힘을 줬다.

 “시발 열어. 안 열어? 이 새끼야! 너네 이거 안 열면 진짜 죽여버릴 거야 ”

 문은 덜컹거리며 조금씩 무영쪽으로 열렸다. 수훈은 이를 깨물면서 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 야 넘어!”

 용석은 그 순간 돌담을 넘으려 팔과 다리를 넘기는 소년들을 보았다. 그는 늦는 경찰들에게 속으로 욕을 하며 몸에 힘을 더 줬다.

 “ 뭐하는 짓들이야. ”

 무영은 누군가의 일갈을 들었다.

 

 간신히 유지되던 힘의 균형은 갑자기 처참히 깨지고 말았다. 용석과 수훈은 잔디밭으로 나동그라졌고, 문은 활짝 열렸다. 수훈은 어떻게든 아픈 몸을 추스르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무영은 선 채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 야 뭐하냐고….”

 그는 말을 멈췄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용석도 아무 말 없이 무영과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갑자기 열린 문으로 학생들 또한 집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피가 굳어 딱지가 생긴 반삭의 남자는 넘어지는 바람에 다시 피가 흘렀다.

 “시발 문 빨리 열라고 했지! ”

 그는 자신을 향해 등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더 많은 욕지거리를 했다. 그리고 거칠게 무영의 어깨를 잡으려 잔디밭으로 발을 내디뎠다.

 “ 그 더러운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여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무사히 못 나갈 것이야. ”

 무영은 살면서 무속인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온통 파란색이었지만 소매와 고름 부분만 빨간 한복을 입은 사람이 마당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폭이 넓은 치마로 그 사람이 여자라는 걸 알아챘다. 설산선녀였다. 그녀는 한 발자국씩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풍채가 큰 사람이었다. 진한 눈 밑 화장을 한 사람은 그들을 한 명씩 내려 보았다.

 “ 뭐야. 무당이야? 나 이 사람들만 데리고 갈게 ”

 남자의 흰 운동화는 빨간 물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무영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 한 번도 후회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나?”

 그 말에 반삭의 남자도, 그들의 친구들도 아무 말 없이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같았다. 무영은 짓누르는 듯한 압도감에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두 무리와 여자는, 조그만 가로등과 희미한 달빛 아래 서 있었다.

 “ 시발 ”

 그들이 그렇게 문을 박차고 나간 건 거친 구두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무영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마당에 주저앉았다.

 “ 죄송합니다. ”

 “ 밖이 험하네. 행동을 조심하게 ”

 무당은 용석의 말에 한 번 그를 일별하고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잔디밭에 몸을 뉘었다. 푹신한 땅의 촉감에 셋은 조용히 안도를 느꼈다. 엄마의 품 같은 푹신함이었다. 문이 열리고 땀을 흘리는 젊은 경찰이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 온 것은 하영이었다. 용석은 지친 몸을 추슬러 경찰에게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 몇 분들은 쫓아갔고, 순찰하는 팀에도 연락해 놓았으니, 곧 잡을 겁니다.”

 무영과 수훈은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하영을 보았다. 그녀의 입은 지저분했다. 옷과 바지에도 드문드문 토사물로 보이는 것들이 붙어 있었다.

 “ 내가 데리고 왔어. ”

 하영은 차에서 나와 길을 올라가다, 헤매고 있는 경찰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들을 빨리 데리고 오기 위해 뛰었던 것이었다. 토하고 뛰는 걸 반복한 그녀는 눈에 다크써클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사실 꼴은 수훈과 무영이 더 엉망이었다. 무영의 슬랙스는 어디에 걸린건지 찢어져 있었고, 팔과 얼굴은 사납게 부어있었다. 수훈은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꼴 좀 봐 ”

 하영은 웃고 있었다. 수훈은 살았다.라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웃었다. 셋은 곧 조용한 웃음을 사이좋게 나누었다. 무영은 문득 협 생각이 났다. 그녀가 있었다면 오늘 조금 더 수월할 것 같았다.

 용석은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하영에게 팔찌를 건넸다. 무영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둘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용석은 헝클어진 그녀의 정수리를 보았고, 하영은 그의 발을 쳐다보았다.

 “ 놀이터에서 내가 그거 뺏었어. 그리고 도망쳤지. 마지막으로 설산선녀가 너희 아버지한테 몸조심하라고 했어. ”

 “뭐?”

 “너는 날 잘 몰라. 아직 터무니없이 모른다고. 난 너에게 미완의 인물일걸. 그러니까 어디 한 번 상상해봐.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로 오늘 개고생 퉁 치자 ”

 하영은 얼빠진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무영은 완전히 머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달무리를 보아하니 내일 비가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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