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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작가 :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다.

 
16화: 외곽으로 향하다(2)
작성일 : 19-11-10 11:14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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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가까이서 본 남자는 험상궂었다. 짙은 눈썹에 올라간 인상, 덩치까지 커서 위협적이었다. 눈동자는 보기 드문 갈빛이었으나 침침한 피부색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남자는 오른쪽 턱에서 시작해 오른쪽 눈 아래에서 아슬아슬하게 끝나는 상처를 갖고 있었다. 딱 봐도 거칠게 살아온 듯했다. 총을 들어올릴 때도, 이완에게 다가올 때도 시종일관 같은 얼굴이었다.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지하실의 실낱 같은 조명은 너울거리는 먼지를 밝히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무슨 표정인지 잘 모르겠는데.'

 

 원한에 가득한 얼굴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무표정이었다. 원래 인상이 시커먼 것 같았다.

 

 '너무 자세히 쳐다봤나.'

 

 남자가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총구를 이완의 이마에 오차 없이 붙였다. 이완은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쏘려고 하면, 고개를 숙여서 들이받고......'

 

 힘에는 자신 있었다.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칼이었다.

 

 '환장하겠네, 죽이기 전에 고문이라도 하려고?'

 

 이완의 뒤통수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크게 다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전부 나은 차였다. 들키면 큰일이었다.

 

 남자가 주머니칼을 이완에게 들이댔다. 그러더니 발목과 손목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가십쇼."

 

 남자가 총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이완이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자, 오래 묶여 근육이 굳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지 일으켜 세워 주기까지 했다.

 

 "어...? 왜...?"

 "모든 블루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얼른 가십쇼."

 "하지만 저 같은 사람들을 증오한다고...?"

 

 남자가 계단 가까이 다가가 인기척을 살폈다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이완에게 돌아왔다.

 

 이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코트에 붙은 먼지를 털어 의자에 걸쳐 두었다. 어쩐지 두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남자가 이완의 팔을 끌어당겨 계단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서울과 연락이 끊기면서 문제가 많이 생겼슴다. 지원이 끊기니까 다들 분노했거든요. 당연하죠, 그깟 쥐꼬리만한 지원. 일 주일 살기도 힘들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슴다. 블루들이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지원을 끊었다고 믿거든요. 교류를 못 하니 내부에서 부풀려진 소문이 사실이 되었슴다."

 "아, 저기.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이완......"

 

 남자가 이완의 등을 계단 쪽으로 떠밀었다.

 

 "총을 들이댄 건 어쩔 수 없었슴다. 세화 녀석이 안 가고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어볼 게 있습......"

 "이 집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세 번 꺾은 뒤 직선으로 쭉 가면 지하철 역이 나옴다. 오래 걸어야 할 거예요. 헤매지 말고 말해준 대로만 가십쇼."

 "저기, 물어볼 게......"

 "뭐 하는 사람인진 몰라도 당신, 여기까지 스며든 걸 보면 좀 덜 떨어진 사람이거나 괴짜나 그런 거겠죠. 망설이면 또 잡힘다. 그러면 살아서 못 나가요."

 

 이완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이완을 문 밖으로 내쳤다.

 

 쾅.

 

 낡고 녹슨 철문이 굳게 닫혔다.

 

 '세상 살면서 덜 떨어졌다는 소리는 또 처음 듣네.'

 

 어이가 없었지만 최근의 행보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어딜 가도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멍청이가 된 기분이야. 아니, 이미 멍청이일지도.'

 

 묻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남자의 말대로 머뭇거렸다간 다시 잡혀서 생체 실험 같은 걸 당할지도 몰랐다.

 

 '내가 안 죽는 걸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 정말 모르겠다는 게 제일 두렵네. 자기들 질릴 때까지 고문할 수 있는 놈 하나 생겼다고 기뻐할지도.'

 

 이완은 뛰었다.

 

 등 뒤에서 희미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남자인지 무엇인지 모를 형체가 이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켜봐 준 거라면,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다른 외곽인에 비해 분별력도 있어 보였지.'

 

 

 무사히 길을 빠져 나와 지하철 역에 도착한 이완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이완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막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외곽에 다시 가 볼 생각이었다. 운 좋으면 그 남자를 또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완은 최대한 낡고 헤진 옷으로 갈아입었다.

 

 '대부분 낡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가리면 알아보기 힘들 거야. 거기 모인 사람들이 외곽인의 전부는 아닐 테니.'

 

 후드를 깊게 눌러 쓰니 정말 외곽인 중 하나로 보였다. 이완은 버리려고 내 둔 운동화를 신으며 생각했다.

 

 '유성지 작가가 잘못 안내한 게 아냐. 거기엔 분명히 내가 할 일이 있을 거다.'

 

 확신이라기보다는 다짐에 가까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결국 괴물의 존재도 확인하지 못했지.'

 

 현관을 나서려던 이완은 고민하다 폴딩 나이프 하나를 신발장에서 꺼내 챙겼다.

 

 '혹시 모르니.'

 

 망치 세례를 다시 맞는 건 사양이었다. 끔찍하게 아팠던 것이다.

 

 *

 

 자정이 넘었다. 도착한 외곽은 한층 스산했다. 몇 시간 전에도 시원찮았던 가로등은 아예 고장난 건지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해 골목을 살피며 나아가던 이완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또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쩔 수 없다고. 무슨 미로도 아니고. 내가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었으면 고구마라고 욕 좀 먹었겠군.'

 

 지도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이완이 알던 서울이 아니란 걸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았다.

 

 서울의 탈을 쓰고 있는 건 이완의 회사와 집이 위치한 중심부 정도일 뿐, 서울의 다른 끄트머리도 외곽처럼 변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곳, 강동구는 이완의 기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예전이라면 평당 부르는 게 값일 땅일 텐데. 이제는 의미가 없으려나.'

 

 서현주의 모친이 그토록 이완을 경계했던 이유도 뻔했다. 지하철 역에서 가까운 집들은 그나마 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멀어질 수록 무법지대가 된 것 같았다. 외곽인의 손에 그런 건지 다른 이유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아까 지났던 판자집들이 외곽인의 거처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나 잡아 잡수시오 하고 적진을 걸어 들어간 꼴이었군.'

 

 남자가 이완더러 덜 떨어졌다고 한 것도 이해되었다.

 

 '여긴 진짜로 모르는 길인데. 아까 그 사람들, 일 한다고 나가더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어두워서 방위 분간조차 되지 않으니 생각마저 암흑에 좀먹는 기분이었다.

 

 차가운 기운이 이완을 덮쳤다. 그렇잖아도 추운 날, 낡은 옷을 입어 한기가 스민 몸에 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추위도 추위였지만, 발 밑의 땅이 꺼진 것처럼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놀이 기구를 탈 때처럼 뱃속이 무중력 상태가 된 듯했다. 아찔했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지하실에서 막 정신을 차렸을 때 같았다. 매캐했다.

 

 '잠깐만, 매캐한 게 지하실이라 그런 게 아니었...?'

 

 누군가가 이완을 잡아당겼다. 작았으나 억센 손이었다.

 

 버티려면 버틸 수 있었지만, 이완은 순순히 끌려갔다.

 

 "쉿!"

 

 여자 아이였다. 열 일곱쯤 먹은 학생으로 보였다. 까만 세라복을 입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몰랐다. 붉은 스카프와 까만 스타킹, 기다란 머리와 까만 눈. 앞머리는 히메컷으로 잘려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피부가 창백했다. 어둠 속에서 여자 아이의 얼굴만 빛났다. 이완은 소녀가 귀신인 줄 알고 딸꾹질할 뻔했다. 소녀는 이완을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끌어당겼다.

 

 "누구."

 

 이완이 물었다. 소녀가 소리쳤다.

 

 "당신 제정신이야? 얼른 라이트 꺼!"

 

 이완은 잠자코 소녀의 말을 따랐다.

 

 "무두들이 빛을 좋아하는 거 알 거 아냐. 기껏 가로등까지 끊어 뒀는데.'

 

 심장이 뛰었다. 이완이 찾아 헤매던 괴물의 이름이 소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깜빡했다. 미안."

 "그러고 있으면 죽는다고.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몇 분 지나자 눈이 어둠에 적응했다. 그제야 소녀의 형체가 분간되었다. 소녀는 손에 무언가 들고 있었다. 총이었다.

 

 '외곽인은 총 한 자루 쯤 들고 다니는 게 당연한 건가.'

 "당신, 블랙이 된 지 얼마 안 됐지? 초보적인 실수를 하는 것도 그렇고, 못 보던 얼굴이야. 우리 오빠라면 당신을 알려나?"

 

 소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벽에 몸을 납작하게 붙이고 총구를 모퉁이 사이에 붙인 채였다.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완은 대충 말을 꾸며냈다.

 

 "얼마 안 되긴 했지."

 "초반에는 당신 같은 사람들 많았어. 무두가 빛을 좋아하니까, 오히려 빛으로 유행하면 어떨까 하고. 그 사람들 다 죽었지 뭐."

 "구해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근데 당신 핸드폰 최신 기종 아냐? 못 보던 건데! 어디서 교환했어? 아이 참. 이렇게 좋은 물건을 갖고 있는 녀석이 있었단 말야? 나도 최신 기종으로 핸드폰 가지고 싶었는데, 오빠가 그런 거 가져서 뭐 하냐면서......"

 

 이완의 스마트폰은 최신 기종이 아니었다. 나온 지 이 년은 더 된 거였다. 어쩌다 보니 약정 끝물까지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식이 끊겼다는 게 정말이구나. 적어도 이 년...'

 

 그 때였다. 매캐한 냄새가 코 끝을 강하게 스쳤다. 여태까지 맡았던 냄새 중 제일 심했다. 소녀가 번개같이 뛰쳐나갔다.

 

 탕-!

 

 이완이 소녀를 따라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멀리서 사람 형상을 한 무언가가 쓰러지고 있었다.

 

 무두였다.

 

 이완은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머리가 없네.'

 

 사람과 비슷했지만 도저히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한기가 훅 끼쳤다. 목 아래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위로는 머리가 없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까만 연기만 자리했다. 연기가 공중에 휘날리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는 저기서 온 거구나.'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옷 바깥으로 나온 손과 발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후 경직이 끝난 시체처럼.

 

 "예쓰! 오늘 할당량 완료!"

 

 총을 쏘느라 뒤로 나자빠졌던 소녀가 목에서 무언가를 꺼내 확인하더니 말했다. 총을 집어넣은 소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완에게 다가왔다.

 

 "블랙이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나랑 가자. 잘 곳도 없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빨리! 언제 다른 녀석이 나타날지 몰라. 이 구역은 나만 움직이니까 위험해. 적어도 초보적인 실수 같은 건 안 하게 가르쳐줄 수 있어. 무두 사냥법이랑."

 

 이완은 하하 소리내서 웃었다.

 

 "너는 내가 무섭지도 않아?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소녀가 코웃음쳤다.

 

 "무두를 상대하다 보면 사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신 총도 없지? 나쁜 짓 하기만 해봐. 내가 확."

 

 소녀가 총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유쾌해졌다. 이완이 웃는 얼굴로 소녀를 따라 발을 옮기던 차였다.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매캐한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지옥의 냄새가 있다면 이런 냄새일까.

 

 새까만 그림자가 이완과 소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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