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14
작성일 : 19-11-10 08:09     조회 : 188     추천 : 0     분량 : 1067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4

 

  우리가 태어나, 온갖 방식으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이 세계. 이곳에서 언제까지나, 우리들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우리들 중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아주 일부만 남아 다음 주기(週期)를 이어갈 것이다.

  허나 단지 한 줌의 몸뚱이만이 살아남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방주(Ark)를 아무리 만들어 본들, 보존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 문명의 발전은 멈출 것이고, 모두가 그저 우리 속의 가축과 같은 처지가 되리라.

  인류가 발견한 무수한 지식, 무한한 가능성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단 한 명의 인간이 살아남더라도 손상 없이 그것을 복원하려면 대체 그 지식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인류. 그 종 전체의 정수에 모든 지식을 새겨 넣는 것이다.

 

  진화. 생명의 이치를 뛰어넘는 기적이 그것을 가능케 하리라.

 

 *

 

  행복한 꿈을 꾸는 중이거나, 불행한 꿈으로부터 깬 것 같았다. 늘 보던 하늘과 비슷한, 옅게 붉은색으로 물든 흰 천장이 보였다. 사방이 대체로 하얀 덕에 그렇게 밝지 않음에도 눈이 부신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반쯤 푹신하고 따뜻한 것에 잠겨 있다. 온몸도 마찬가지로 포근하고 온화한, 그림책에서나 본 구름에 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폭력적dlf 정도의 부드러움과 안락함에 취해,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어났어요?”

 “!!!”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엘리노어가 익숙하지 않은 무력감과, 복부를 격하게 찌르는 통증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침대에 가라앉는다.

 

 “움직이지 마세요! 겨우 수술이 끝난 참이라고요! 피도 엄청 흘렸고.”

 

  꿈에서라도 한 번 더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정말로 꿈이라면, 용서 안 할 거다.

 

 “저, 살아있는, 건가요 ?”

 

  말을 하는 것조차 숨을 한 번 모을 때마다 통증이 다시 입을 벌리도록 했기에, 아주 짧은 호흡으로 조금씩 끊어 말해야만 했다.

 

 “네. 배에 총을 맞기는 했지만, 중요한 장기는 모두 피해서 깨끗이 빠져나갔어요. 기적이었다고요.”

 

  단지 기적일 뿐인 건 아니겠지. 무엇보다 그녀는 그런 기적처럼 보이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기대 따위는 한 줌도 없었건만,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녀를 죽여 ‘복수’를 이루는 걸 그만둔 것이다.

 

 “대신에-”

 

  기쁨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가, 비슷한 무게의 슬픔을 안고 다시 그녀의 이불 위로 내려앉았다.

 

 “전부 들었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

 “….”

 

  어떤 사과의 말도 변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겁게 입을 다물어, 굳이 입에 담지 않은 모든 질문을 긍정할 뿐.

 

 “거기에 대한 제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네.”

 

  받아들이기 힘든 행복과,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이 겹쳐 마음의 표면에서 찰랑거린다. 그렇다. 그도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겠지. 그 날의, 그 사이로는.

  너무도 교활해져 버린 자신에 엘리노어는 조금 환멸을 느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저 살아있다는 것.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더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던 그녀가, 이번에는 아이작이 다시는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울먹이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한 일을 생각하면 그런 행복 따위, 꿈조차 꾸어선 안 되는 것인데.

 

 “그래서 말이죠.”

 

  허나 이별의 말을 하려는 것 치곤, 그의 말에는 좀 더 다른 것이 가득 차 있다. 연민과 슬픔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희망.

 

 “제가 끝낼게요. 아 그러니까, 저만 있는 건 아니에요.”

 

  분명히, 그의 바로 그런 점이 주변의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이리라. 그녀 역시도, 평소에는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만큼은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아이작 굿맨이라는 인간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넘치는 희망을 역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채워줄 줄도 아는 사람이다.

 

 “에릭 씨가 도와줬어요. 처음부터 다. 내일은 캘빈 씨랑, 경비대의 사람들도 도와주기로 했어요. 거기다가-”

 

  때문에, 그는 절대 고독해지는 법이 없다. 주위에 인적이라곤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놓아도 반드시 누군가가 구하러 온다. 그 역시 그런 사람이 있는 걸 안다면 반드시 구하러 갈 테니까.

 

 “굉장한 사람이 와요. 저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사람이 마침 배를 끌고 여기에 와 있대요. 그러니까, 분명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더욱 아프다. 그의 곁에 있다 보면,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그가 있는 밝은 세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니까.

 

 “그러니까, 돌아오면 또 밥 먹으러 가요. 알았죠?”

 “….”

 

  엘리노어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전 아직 포기 안 했다고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가는 아이작. 그에게 끝내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그녀가 해야 할 대답이란 것은, 저 질문을 들은 즉시 해 줬어야 했다. 저번과 같은 대답을.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너무나 아픈 나머지 눈물도 흐르지 않도록 슬퍼서, 그리고

 

 너무나 행복해서.

 

 *

 

 “…대단하네요.”

 “좋은 의미로요, 아니며 그 반대로요?”

 “그야-”

 

  선원은 대답을 채 끝내지 못하고 소포를 바라보았다. 주소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다. 다름 아닌 그 선장이 보증한 거니, 적어도 소비자 불만이 접수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이제 확인해야 항목은 단 하나 뿐이다. 발신인인 칼 노우드라는 이름 아래에 쓰여 있는 수취인(受取人)의 이름.

 

 “결국 와버렸구나.”

 

  두 번째, 그리고 첫 번째로 듣는 낯선 목소리에 두 사람은 경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죽음, 그리고 또 하나도 채워진 이 공간에서 불쾌할 만큼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가 그들의 앞에 서 있다.

 

 “리제트, 노우드.”

 

  소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네 이름이 아니지?”

 

  침묵은 부정의 의미. 하기야 뒤를 보면 알 것이다. 아마도 구속하기 위해, 아마도 보호하기 위해 칭칭 둘러싸다시피 한 강하지만 부드러운 나무의 요람 안에서 아직도 희미하게 울부짖고 있는 것.

 

 “그럼 이 아이는 누구죠?”

 

  애초에 정말로 아이이긴 한 걸까?

 

 “모르겠어.”

 

  아이의 눈은 이미 그 둘을 보지 않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건 그 너머. 영원히 걷히는 일이 없을 요람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

 

 “부탁인데, 돌아가 주지 않을래?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린다는 그 말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다. 소녀의 말대로 주위에서 나무줄기들이 그들을 둘러싸는 기색은 없다. 아마도 위쪽의 사람들이 시 소녀…의 힘을 한계까지 소진시키는 데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녀가 바깥에서 요란하게 설치는 침입자들을 상대하는 사이, 린다와 선원은 모든 것이 시작된 심장부, 즉 이곳까지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소녀가 바깥의 방어마저도 포기하고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건, 이제 소녀에게 남은 카드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말 그대로 ‘부탁’, 아니 ‘애원’하기 위해서.

 

 “혹시, 신디 노우드?”

 

  그 쪽이라면 말이 된다. 칼의 아내, 그리고 리제트의 어머니인 그녀라면 그들의 뒤에 있는 ‘저것’을 지키려는 것도, 평생 이 벙커에서 살았을 소녀가 바깥의 집과 비슷하게 가짜 집을 꾸민 것도 이해가 된다.

 

 “그건 아닐 거예요.”

 “그렇지만-”

 “신디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남편인, 칼 노우드 본인에 의해서.”

 

  그 에릭이라는 탐정이 말해 준, 이들 가족에게 이루어진 실험의 진실. 사람의 희망을 진화로 구현한다는 유전자 시술. 약을 구하기 위해 바깥을 드나든 칼 노우드에게 제공된 약은 순전히 그 기능이었다. 정말로 발견된 유전자 코드가 유효한지 알아보기 위한 표본.

  아내와 딸에게 제공된 것은 다른 목적의 약물이었다. 특수한 케이스인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시술이라면 의미가 없다. 맞든 맞지 않은 표현이든 전 인류의 ‘진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이미 백신과 치료제를 맞은 사람들에게도 쓸 수 있는 유전자 코드가 필요했고, 그것을 양산할 방법 역시 필요했다. 때문에 추종자들은 이미 발견된 코드를 그들의 목적에 맞게 새롭게 바꾸었다. 그것을 투여한 개체의 ‘진화’는 포기하는 대신, 다른 개체의 진화를 촉진하는 유전 물질을 계속해서 생성할 수 있도록.

 

  ‘요람’이 있는 방 전체에 열매, 또는 종기처럼 맺혀 있는 물주머니들. 이게 바로 그 모녀가 희생된 원인이었다. 끔찍하게 변해 가며 고통스러워하던 아내를, 칼은 그의 손으로 고통을 멈춰 주었다. 그러나 딸은, 온 몸이 검게 물들고 얼굴과 사지의 형체마저도 무너져 가면서도 아빠라고 부르던 리제트만은 차마 쏠 수 없었다. 정말로 그녀를 위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 고통을, 이 정신 나간 실험을 끝장냈어야 함에도, 아버지라고 하는 나약한 짐승은 산을 쌓을 만큼의 악당을 사냥하면서도 단 한 발의 총알만은 쏘지 못했다.

 

 “난 뭔가를 하러 온 게 아니야.”

 

  선원은 들고 있던 소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요람 속에서 잠자는 소녀와, 절망에 빠진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소녀 사이에.

 

 “훌륭한 배달부 수칙(선장 씀) 77조 3항에 따르면, 소포는 수취인이 직접 열어야만 하며, 배달 도중에 미리 뜯어보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허나.”

 

  그 수취인이 어떤 이유로 인해서 소포를 열 수 없을 경우, 본인이 참관하는 하에 담당 배달부가 소포를 여는 과정 일부 혹은 전체를 도울 수 있다.

 

 “그럼, 열어도 되겠지?”

 

  둘, 아니 세 사람의 침묵과 함께 선원은 마침내 소포를 싸고 있던 테이프를 뜯는다. 반드시 딸에게 전해주기를 원했던, 이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왔던 아버지가 보낸 유일한 선물. 이 안에라면, 분명 이 사태를 해결할 마법 같은 물건이 들어 있겠지.

 

 “그건-”

 “….”

 

  허나 상자 속에 있던 물건의 정체가 드러나자, 유심히 보고 있던 린다는 대번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소녀는 웅크리듯 고개를 숙였다.

 

 “이건 좀….”

 

  선원이 난처한 표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들어있던 것은, 그의 손때가 묻은 한 정의 권총.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물건이 의미하는 것은, 잔혹할 정도로 뚜렷한 하나의 부탁이었다.

 

 *

 

  그는 세상을 지키고 싶었다.

 

  그가 어렸을 때, 세상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며, 때가 되면 거의 모두가 허공의 먼지만도 못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용감하다며 칭찬했던 부모님은 그가 불쌍하다며 꼭 안아 주었다. 그 당시까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고, 자신의 꿈이 세상에 없이 우스운 것이 되어 버렸다는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꿈은 변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에겐 재능과 열정 그 모두가 있었다. 더구나 이런 세상에서는 더욱 찾기 힘들었던 인재였기에, 그는 어떤 방해도 없이 이 세상에서 원했던 역할을 충실하게 맡을 수 있었다.

  모두가 가슴 한편에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아침이 온 것을 반가워하기도 전에, 내일은 해가 뜰지 걱정스러워 하는 삶이었다. 허나 그런 걱정과, 상상도 되지 않는 거대한 존재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은 언제나 더 가깝고, 익숙한 다른 것들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는 자신이든 타인이든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자체를 증오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산다는 것은 언제나 죽는 것보다 나았다. 어릴 때 사고를 당했거나 죽음에 닿는 끔찍한 체험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어째서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어쩌면 주기(週期)의 끝에 다다른 이 시점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직업은 종종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여야 했다. 한 번 망설일 때마다 한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이 죽는다고 언제나 되새기며, 그대로 실천했다. 일이 언제나 잘 되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자들과 함께 싸우던 동료들, 죄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보다 먼저 쓰러져,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때마다 되돌릴 수 없는 망설임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이름은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알려지는 일이 없었지만, 그와 동료들의 또 다른 이름은 마치 그가 어릴 적 보던 만화 속 영웅들의 이름처럼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가면 대신 무거운 헬멧을, 화려한 의상 대신 검은 방탄조끼를 상징으로 영웅은 결코 쓰러지는 일 없이 그의 세상을 지켜냈다.

 

 “굿 애프터눈. 점심은 먹었나?”

 

  의식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둡고 그 주인과 마찬가지로 죽어 있는 공간. 누군가가 바로 뒤까지 접근했음에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당혹감에 잠시 신경이 곤두섰지만, 곧이어 읊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대사에는 제 아무리 노련한 살인 기계라도 경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인가?”

 “그렇게 보이나?”

 

  그럴 리가. 시애틀 경비대에 이 정도로 기묘한 인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모셔 갈 차라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네. 볼 일 끝나면 천천히 가라고.”

 “일은 끝났어.”

 

  마지막으로 총알을 두 발 박아 넣은 시체를 끝으로, 그의 임무는 끝이 났다. 마음만 먹으면 도망치는 것도 가능하다. 싸우더라도, 승산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판을 피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 일만 끝나면, 그의 삶에서 더 이루어야 할 일도 없다. 그가 어떤 과거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든, 남은 인생은 그가 고민도 없이 흘린 피를 속죄하며 보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끌고 갈 게 아니라면, 여기엔 뭐 하러 들어온 거지?”

 “그야, 나는 배달부거든.”

 

  들어본 적은 있는 직업이다. 사람들이 폴리스라고 하는 격리 도시 안에 살면서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이들을 그렇게 부른다. 그 자신도, 이 도시에 조용히 들어오기 위해 그 신분을 빌린 바가 이미 있다.

 

 “날라야 할 화물 같은 건 없어.”

 “했어야 할 일 같은 건 없나?”

 

  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루도 잊은 적 없다. 마땅히 그가 수행했어야 하지만, 한없는 망설임과 함께 미뤄 왔던 마지막 임무. 그가 망설이는 동안 대체 얼마나의 고통이 가해졌을 것인가. 그 생각은 마침내 복수라고 할 만한 걸 이루었음에도 요만큼의 기쁨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애초에 이 짓거리가 복수라는 개념에 해당을 하긴 했던 걸까? 분노도, 기쁨도 없이 그저 일을 하듯 무감각하게, 곡식을 거두듯이 쓸어 담은 목숨들은 정말 그녀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결국 모든 것이 먼지가 되어 가족이 한 데 만났을 때, 정말로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한 겁쟁이 아버지를 가족들은 과연 반겨 줄 것인가?

 

 “할 수 있겠나?”

 “그걸 나한테 묻는 겐가?”

 

  정말로 오랜만에 입가가 올라가도록 만드는 자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언제나 사용하고 있던 물건을 꺼내, 그 자에게 던져 주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

 “좋아. 제대로 전해 주지.”

 

  주소도 묻지 않고, 배달부라는 자는 물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돈은 안 받나?”

 “여기서 적당히 챙기지 뭐. 어차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근처의 서랍을 열더니 검은 동전 몇 개를 챙겨 같은 주머니에 넣는 배달부. 그 동안의 견문이 심각하게 틀린 것이 아니라면, 저 자는 배달부의 기준에서도 심각하게 벗어나는 기묘한 자다. 애초에 어디 출신인지도 알 수 없다. 적어도 그와 같은 출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만 분명했다. 원하는 만큼 확장시킬 수 있는 감각도 전혀 쓸모없는 정보만 잡아낼 뿐이다.

 

 “그래도 말이야, 나오면 집에는 한 번쯤 들르라고. 암만 글러먹은 아버지라도 애들은 보고 싶어 하니까.”

 “하하, 나올 수나 있으려나. 못 해도 수백 명은 죽인 것 같은데.”

 “무슨 소린가?”

 

  배달부는 영문을 모르겠단 듯이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걸린 혐의는 128건의 재물 손괴, 83건의 공공기물 파손일세. 대체 얼마나 정신줄 놓고 놀면 그렇게 되나? 이번 일로 뿔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단단히 혼날 준비를 하게!”

 

 *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도 다 되어, 군불처럼 빨간 하늘이 그 아래 역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이젠 완전히 하늘이 보이게 된 폐허에서 지쳐 널브러진 이들 중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저녁을 차릴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슬슬 일은 끝났을까요?”

 

  이젠 헬멧마저도 벗어 베개로 삼아 자빠져 있는 이는 캘빈. 그의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의 상태다.

 

 “그러지 않았을까? 둘 다 보통내기는 아니라고.”

 

  부서진 벽에 기대어 밋밋한 가짜 하늘을 빨려 들어갈 듯이 올려다보는 것은 에릭.

 

 “그나저나 무사할까요?”

 “당연하지. 그러려고 우리가 온 건데.”

 

  아직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불안한 눈치인 아이작에게 에릭이 대꾸한다. 확실히 이런 일이 될 것을 예상하고 엘리노어가 만들어 둔 억제제를 탐정이 찾지 못했다면, 그 두 사람의 안부는 평범하게 걱정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왔다!”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선장이 외치는 것과 함께, 미세하게 당이 흔들리며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구멍이 입을 벌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난 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들 무사했네요!”

 “….”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는 대원들 뒤에, 역시나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두 사람과 함께 나온 소녀 쪽이었다.

 

 “설마, 리제트인가?”

 “맞아요.”

 

  그걸로 설명이 될 것 같나.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에릭에게 선원이 보충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두 명 정도 더요.”

 “우선은 신디.”

 

  좀 더 알아듣기 좋은 설명은 린다의 입에서 나왔다. 그 당시 남편인 칼에게 사살되었다고 알려진 신디 노우드는 사실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고 신체 기능의 대부분을 상실한 건 사실이었기에, 그녀 혼자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 명 째가, 이 친구죠.”

 

  선원이 들어 올린 것은 이젠 말라비틀어진 잔해만 남은 작은 화분. 애초 가족 세 명 뿐인 줄 알았던 실험체는 한 명이 더 있었다. 이미 변이가 시작된 그녀들이 만든 유전 물질이 방 안에서 위로 삼아 키우던 화분의 식물에게 받아들여졌다. 식물은 칼이 떠나면서 무심코 중얼거린 부탁과 신디의 소망이 더해져 그녀와 융합했고, 오늘까지 이 집과 리제트를 지켜 왔다.

 

 “그럼, ‘그건’ 이제 괜찮은 건가?”

 “네. 딱히 사람 죽이는 독약도 아니고, 투여된 약의 효과만 억제할 뿐이니까요.”

 “그 전에-아래에 남겨져 있던 아가씨도 함께 데려왔죠.”

 

  결국 그렇게 세 명의 존재가 합쳐져 탄생한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라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3분의 1, 아니 2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깥의 풍경이었기에, 약간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흥미로운 듯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약의 효과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이제 유전 물질은 더 이상 만들지 않아요. 저런 나무들도 마찬가지고요.”

 “조금 특이한 점은 남아 있겠지만, 그 외에는 비교적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예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선원에게, 선장은 우선 그가 해야만 했던 일을 다시 상기시켰다.

 

 “배달은 무사히 마쳤겠지?”

 “물론이죠. 여기 서명도요.”

 

  방금 소포에서 나왔던, 투박하지만 믿음직해 보이는 권총은 지금은 아이가 든 작은 가방에서 얌전히 자고 있다.

 

 “총이라고요? 그럼 혹시….”

 “그게 말이죠, 이것도 같이 들어있었어요.”

 

  선원이 보여준 것은 마찬가지로 상자에 들어있던 대량의 총알과, 어린아이의 몸에 맞춰 제작된 권총집. 선장은 먼 산을 보며 휘파람만 불고 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리제트가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어 한다면.”

 “이 물건을 자신을 지키는 도구로써 주길 바란다. 는 거겠죠?”

 “조금 거칠긴 하지만, 그 사람이라면 딱 어울리네요.”

 

  오랜만에 서로 환하게 미소를 띠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는 어쩐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어라, 혹시 뭔가 불편하니?”

 “그게-”

 

  대답은 입에서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나왔다. 대답이라도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의 배에서도 일제히 같은 소리가 울렸다.

 

 “돌아갑시다. 마침 딱 좋을 때고.”

 “오늘은 만찬 파티를 여세!”

 

  캘빈의 선도와 선장의 맞장구로 마침내 먹을 것도 없는 폐허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초라하지만 그리운 그들의 보금자리로 발걸음을 돌린다. 소녀도 주변이 낯설고 두려운 눈치 이지만, 그녀를 데리러 와 준 사람들을 믿고 함께 죽어버린 마을을 떠난다. 이제는 정말 그 어떤 생명도 남지 않은 마을은, 이제야 따스한 모래를 덮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아빠는 만날 수 있나요?”

 “그럼. 약속할게.”

 

  그건 이루어주지 않는 편이 더 힘든 약속일 것이다. 궁금한 것은 과연 이 새로운 만남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 남자에게 어떤 의미가 되느냐 하는 거겠지. 기적과도 같은 선물로 다가올 것인가, 아니면 지난날의 죄와 후회의 상징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걸 지켜보는 것 또한, 인생의 묘미가 아니겠나.”

 “선장님, 거기 누가 또 있나요?”

 “아니, 가서 속도나 높이게. 이러다 배 안에서 다들 굶어 죽겠어!”

 

  선장은 뱃머리에 서서 다시 선수상 흉내나 내고 있다. 잔뜩 속도를 올려 얼굴에 모래바람이나 먹여 주자며, 선원은 재빨리 조타실로 달려갔다.

 

 “우와-이 배를 실제로 타 보다니!”

 “어라, 넌 처음이야? 난 요전에도 한 번 얻어 탔었는데.”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되지 않을까? 요구르트니까.”

 “그나저나 사람도 이만큼인데, 뭘 먹어야 할까?”

 

  캘빈의 독백에 대원들 중 하나가 답한다. 확실히 그 해답이 정답인 것 같다. 보기 드문 기회이기도 하고, 갑판 위에서 먹는 것도 선상 파티 기분이라며 선장 역시 좋아할 거다.

  폴리스의 높은 벽이 막 보이는 시점에서 아이작은 배달 주문 전화를 걸고, 나머지는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세계의 도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특히 장벽의 바깥과 안쪽에 페인트로 그려 놓은 이 도시의 격언은, 마치 오늘의 이 결말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죽음이란 없다. 모든 것은 그저 변할 뿐.(There is no death, only change of worlds.)”

 

 
작가의 말
 

 빼빼로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Tape 1-14 2019 / 11 / 10 189 0 10678   
13 Tape 1-13 2019 / 11 / 10 201 0 5683   
12 Tape 1-12 2019 / 11 / 9 222 0 5900   
11 Tape 1-11 2019 / 11 / 8 211 0 6737   
10 Tape 1-10 2019 / 11 / 7 186 0 7720   
9 Tape 1-9 2019 / 11 / 5 198 0 15887   
8 Tape 1-8 2019 / 11 / 1 190 0 5651   
7 Tape 1-7 2019 / 10 / 31 181 0 10083   
6 Tape 1-6 2019 / 10 / 24 203 0 5985   
5 Tape 1-5 2019 / 10 / 17 192 0 5482   
4 Tape 1-4 2019 / 10 / 13 196 0 3341   
3 Tape 1-3 2019 / 10 / 3 200 0 7755   
2 Tape 1-2 2019 / 9 / 13 208 0 5237   
1 Tape 1-1 2019 / 9 / 6 343 0 787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