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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기대가 깨지는 소리는 크다.2
작성일 : 19-11-10 01:38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1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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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은 혜화의 거리로 나왔다.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영은 지하에서 느끼지 못한 신선한 밤공기를 충분히 폐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지하철역까지 조용히 발을 맞춰 걸었다.

 “ 야 정수훈. 너 고깃집은 언제 예약했어.“

 “ 아 맞다. 취소해야겠다. “

 수훈은 소영의 말을 듣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계속 만졌다.

 “ 무슨 돈이 있다고 예약을 했어. “

 “ 아르바이트 좀 뛰었지 “

 수훈은 사람 좋게 웃었다. 그의 미소가 다시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마른 어깨로 수훈의 옆을 가볍게 부딪쳤다.

 “ 야. 한 테이블 남겨놔. 오늘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 좋지. “

 소연은 더운 듯 자켓을 벗었다. 그녀도 키가 큰 편이었기에 앞에 걷고 있는 둘의 모습은 썩 잘 어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에 오던 무영과 하영을 보았다.

 “ 안녕하세요. 여성분은 수훈이 국문과 후배라고 그때 봤던 것 같고. 옆에도 후배님? “

 무영은 잠시 허우적거리다 급하게 웃기 시작했다.

 “ 아 저는 신문방송학과입니다. 하영이 친군데 하영이가 데리고 왔어요. 오늘 수훈이형은 처음 봤고요 “

 “ 하하. 그럼. 내가 또 국문과 생활 기가 막히게 했거든. 전과해도 후배들이 이렇게 날 따르네 “

 수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무영과 하영 또한 웃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이란 사람은 웃을 때 입이 굉장히 시원하게 커지는 사람이었다. 길쭉한 팔다리도 걸을 때마다 정확한 반원을 그렸다. 행동과 태도가 모두 고고했지만, 가끔 수훈에게 농담으로 던지는 욕은 그녀의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느 쪽으로도 과도히 치우치지 않게 긍정적인 여자였다.

 “ 아. 오랜만에 왔는데 마로니에 공원이나 좀 가볼까? “

 “ 거길 왜 “

 “ 그냥. 가자. 짧게 가서 보기만 하자. “

 공원은 한적했다. 산책하는 이들이 몇 명 지나갈 뿐이었다. 아마추어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던 야외무대도 오늘은 조용했다. 소연은 그들을 이끌고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야외무대 쪽으로 갔다. 발걸음 소리에 몇 마리 비둘기들이 소리를 내며 도망쳤다.

 “ 나 재수해서 연영과 겨우 들어왔거든. 학원에서 나한테 가지 말라고 했어. “

 소연은 야외무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그녀는 독백연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그냥 웅얼거리기만 했거든. 그런데 그것 때문에 대학 한 번 더 떨어지면 진짜 죽고 싶은 거야. 그래서 여기 와서 혼자 독백연기 하고 그랬지. “

 수훈은 믿기지 않는 듯한 눈치로 그녀에게 반문했다.

 “ 너가? 아니 너 입시 독백연기 교수님들도 칭찬했다면서

 “ 그거 사실 여기서 연습했던 거거든. 처음에는 진짜 귓속말 수준으로 작게 말했지. 사람들이 나 뭐 하는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였어. 나중에 가서야 봐 줄 만했지. 보여줄까? “

 무영은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 같아 몸에 힘을 주었다. 아직 저녁인데, 벌써 취한 것처럼 사람들이 볼 것 같았다.

 “ 하하하. 네 후배 긴장한 거 봐. “

 소연은 크게 웃느라 상체를 앞으로 젖혔다. 무영은 자신의 행동이 읽힌 것 같아 괜히 무안했다.

 “ 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뜬금없는 무영의 질문에 셋은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가 던진 질문이 수훈에게 향했는지 소연에게 향했는지 확실치 않아 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글쎄. 좋은 이야기?“

 수훈이 먼저 그에게 말했다.

 “ 감정의 전달. 사실 영화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예술이야. 감정을 꺼내서 진득하게 전달하면 어떻게든 유대감을 느끼거든. 그런 건 거의 없지 않을까. “

 소연과 수훈은 말을 끝내고 서로를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뭔가 웃긴 듯했다. 소연은 그의 큰 배를 치며 유난을 떨었고 분위기는 한 층 유쾌해지는 것 같았다. 둘은 모두 잊은 듯이 황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모두 미쳐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그들의 미소에 조금씩 묻어났다.

 “ 왜 연기가 하고 싶으셨나요?“

 무영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어색한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질문은 둘의 장난을 그만두게 하였다.

 “ 연극 봤는데 진짜 멋있더라고. 그 날 하루 종일 가슴이 뛰었지 뭐. 너무 진부하나. “

 무영은 너무 자연스럽게 답하는 소연을 계속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경험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의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은 소연을 다시 미소 짓게 했다.

 “ 일단 곤암동으로 가자. 아 나 오늘 술 당겨. 이런 날 안 마시면 죄야. 진짜. “

 소연은 이번에 수훈의 등을 두드리며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그 새끼들 뭐야? 진짜 같잖아서. “

 하영은 술잔을 비우며 배우들을 욕했다.

 “ 야 너 후배가 굉장히 든든하구나 “

 소연은 작은 하영에게서 나오는 큰 성량이 신기하듯이 계속 그녀를 보았다.

 “ 아니 진짜 정수훈. 너 여복이 많아. 미래 대 스타 이 김소연님이 너 영화 만든다니까 덜컥 주연해준다고 나서지 않나, 대차게 국문학과 버렸는데 이렇게 귀여운 후배님도 있고 “

 수훈은 허허하고 숨을 내뱉었다. 수훈은 술이 들어갈수록 침울해 보였다. 고기도 몇 점 먹지 않고서 술만 내리 마셨다. 하영은 자신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해서 미안한 표정으로 수훈을 보았다. 그는 연신 쓴웃음이었다.

 “ 국문과는 뭐에요. 수훈이 형? “

 무영은 자신이 짐짓 연기하는 듯한 말투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놀랐지만, 진짜 아는 것이 없었기에 뻔뻔하게 행동했다. 하영은 그런 그를 어색하게 보았다. 수훈은 자신의 잔을 털어버리고는 무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글 쓰는 게 좋아서 국문과로 입학했죠. 2학년까지 다녔고. 근데 영화 한 편을 봤어요. 이창동 감독에 오아시스. 이게 결정적이었을 거에요. 와. 이야기 하나로 이렇게 차이를 만드는구나. 어떤 장르에 있어서 끝을 달하면 저런 느낌이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양식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거든. 미술도 그렇고 내가 쓰는 글의 방식도 그랬고. 세련되고 멋지게. 특히나 종합예술인 영화는 더욱 그 양식의 세련됨이 중요하다고 믿었거든요. 근데 오아시스란 영화는 이야기 자체가 깊은 거에요. 그 날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미친 듯이 들었지 뭐 ”

 수훈은 육회를 한 점 조심스레 입에 넣고 술로 목을 적셨다.

 “그래서 고민도 안 하고 전과했죠.”

 “ 굳이요? 복수전공도 있잖아요. 아 예대는 복수전공이 안 되나? ”

 수훈의 이야기를 듣던 무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느새 무영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동기들도 똑같이 말했죠. 복수전공 있지 않느냐. 왜 그러냐.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발만 담그는 것 같았거든요. 멍청했죠. 허허. ”

 소연은 무영이 수훈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걸 흐뭇이 보았다. 그러다 수훈의 허허 웃음소리에 같이 풋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무영은 그의 삶이 아주 작게나마 그려졌다.

 “ 힘들었을 것 같은데 ”

 “힘들었죠. 이미 1학년 때부터 만든 사람들의 벽을 뚫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우리 대학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극영화과 자체가 프라이드가 엄청 쌔거든. 제가 쓴 이야기, 시나리오가 재밌다고 어디 가서 말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그냥 졸업해버리면 너무 억울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영과에 있는 모든 동아리에 다 얼굴을 들이밀었죠. 제가 삼수를 해서 나이도 많거든요. 지금 27. 그때 25이었죠 “.

 “ 그때만 해도 얘 머리 뒤로 묶고 다녔거든. 25살이 아니라 35살 같았지. 나는 진짜 만학도인가. 아니면 천재 예술가 뭐 그런 건가 생각했었는데”

 소연은 그때를 떠올리며 흡족한 얼굴을 했다. 수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안한 연극부에서 제 글이 맘에 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보통 연극부에선 기존 작품을 많이 올리거든요. 그런데 3학년에서 제작 연극을 올릴 계획이었고, 제 글이 재밌었나 봐요. 선배가 딱 한마디 하더군요.

 ‘야 너 글 재밌더라’ “

 수훈은 옛날 일을 말하며 눈이 빛났다. 무영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이해되지 않았다. 시립미술관에서의 협이 그러했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소연이 보여주던 눈이었다. 하영은 몇 번 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그리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무영을 제외한 셋은 수훈이 짜릿해 하는 포인트에선 같이 공감했다. 서로 꼭 연결된 것 같았다.

 “ 그냥 제가 쓴 극을 하고 싶었던 거죠. 근데 보여준 것도 없고, 연고도 없는 놈 걸 하려니 좀 그랬나 봐요. 그래서 그냥 선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줬지 뭐. “

 무영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큰 덩치를 씰룩거리며 웃고 있었다. 자신의 길을 비웃는 것인지, 놀란 자기를 비웃는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무영은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그래도 자기가 쓴 글인데, 욕심도 없었어요? “

 “ 있었죠. 있었어요. 선생님을 꿈꾸다 살인에 휘말린 한 남자의 이야기였어요. 제가 제일 처음 썼던 시나리오인데, 그 연극을 위해 극으로 각색도 새로 했죠. 그 글에 제 DNA가 제일 많이 들어갔어요. 제가 경험한 것, 슬프고 신기한 사건들 모든 걸 갈아 넣었죠. 그런데 저는 거기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메인 연출자 등 모든 자리를 선배들한테 줬어요. 저는 수많은 스태프 중의 한 명으로 끝났죠. 극을 함부로 고치는 것도, 캐릭터를 바꾸는 것도 다 맘대로 하게 했어요. “

 수훈은 망설임 없이 모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한 듯, 그는 어떤 지점에서 힘을 줘야 하는지, 어떤 포인트가 웃음을 끌어내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영은 마지막 말에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자신의 이야기를 멀리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던 수훈이었지만, 그 마지막 문장에서 화자와 주인공이 일치되는 것 같았다.

 ‘ 제 극을 함부로 고치는 것도, 캐릭터를 바꾸는 것도 다 맘대로 하게 했어요 ‘

 

 긴 이야기가 그렇게 황급히 마무리되고 찾아온 정적에 4명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

 “ 나도 그때 까지만 해도 몰랐어. 나 그 연극에서 여주인공 했는데도 말이야. 나는 글 읽자 말자 너무 재밌었거든. 그래서 누가 쓴 거냐. 어디서 가지고 온 거냐 선배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답을 시원하게 안 해 주는 거야. 3달 지나고 알았지 뭐 “

 소연에 얼굴에는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 어 소연이 아니야. 수훈이도 있네 “

 하지만 그들의 조용한 대화는 오래가지 못 했다. 문이 열리고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에서 술을 마시고 온 것처럼 보였는데, 시끄러운 농담을 이리저리 던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수훈과 소연을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불청객 들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고깃집에는 다시금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침울한 넷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 그러니까 소연아. 너도 막 하는 거 좋은데. 무슨 1학년들이랑 같이 작품을 해. 게네 한국말도 잘 못 한다고. “

 무리 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아니요. 선배. 그냥 작품 좋아서 했죠. “

 “ 그냥 너가 사람이 너무 좋은 거야. “

 그들은 몇 인분의 비싼 갈비살을 시키곤 술을 마셨다. 무영은 테이블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두 무리에 끼여버린 모습이었다. 사람은 더 많아졌지만, 넷은 그대로 말 수가 적었다.

 “ 수훈아. 이번에 우리 방송국에서 대본 공모 하는데. 생각 없나? “

 침묵을 깨고 다시 무영의 테이블로 말을 건 사람은 똑같은 선배였다. 수훈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서도 묵묵히 술만 들이켰다. 어느새 네 사람은 자신들이 꽤 취해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몇 개월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에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의 말은 다시 한 번 그들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 죄송해요. 제가 뭘 몰라서요. “

 “ 수훈아. 우리 이번에 방송국에서 이야기 공모하는데. 네 거 한 번 내봐. 내가 잘 봐줄게. 응? 혹시 아냐. 야 너가 만든 캐릭터가 티비에 나올 수도 있어 임마. 내용만 좋으면 내가 팍팍 밀어줄게. 동문 좋은 게 뭐냐. “

 그 선배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얼굴에 비릿한 웃음을 걸고서는 그는 사람들과 시시덕거렸다.

 “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무영은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 크하하. 야 쟤는 누구냐. 수훈아 너 친구 하나 잘 뒀다. “

 무영은 무심코 본 수훈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있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오늘 본 단편 영화는 훌륭하지 않았다. 어딘가 애쓴듯한 티가 났지만, 결국엔 아마추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학년들의 어색한 연기와 부자연스러운 카메라 무빙에도 이상하게 영화는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무영은 그가 표정관리를 못 한 채 앉아 있는 것이 우스웠다. 무영의 테이블에는 그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웃음기를 머금지 않았다.

 “ 혹시 연영과 신입인가? “

 “아닙니다. 그냥 수훈이형 친구에요.. “

 남자는 안경을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하잖아. 아니 자기 작품 방송국에서 만들어서 방영까지 하는 거 어떤 사람들은 평생 못 해볼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

 “ 합리적인 것 같네요 “

 “ 합리적? 그래 그 말이 참 좋아 난. 앞뒤 재보고 딱 사이즈 나왔다는 거잖아. “

 “ 선배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

 수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연도 하영도 급하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넷은 빠르게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밤 공기는 시원 했다.

 “ 소연아 너도 이제 커리어 생각해야 돼. 독립 많이 찍는 거 좋은데 어느 정도 깜냥이 되는 걸 해야지 깜냥이 “

 낡은 문은 닫히는 데 오래 걸렸다. 남자의 외침은 그 사이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하영은 굳게 닫은 입을 부들거렸다. 넷은 잠시 멈춰서 어두운 곤암 거리를 보았다. 그 침묵을 깨고 나온 건 수훈이었다.

 “ 다들 오늘 멀리까지 온 거 고생했다. 소연아 너도 고생했고. 조심히 들어가. 나 먼저 가 볼게 “

 수훈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소연은 그가 걸어가는 걸 보기만 했다. 셋 중 그 누구도 그를 잡는 말은 하지 못했다.

 “ 저도 가볼게요. 오늘 와 줘서 고마웠어요. “

 소연의 흰 셔츠엔 빨간 양념장이 튀어 있었다. 그녀는 웨이브가 다 풀려 버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수훈과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고깃집 앞엔 무영과 하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영은 그녀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음을 느꼈다. 길에는 다니는 사람들조차 별로 없었다. 휑한 거리였다.

 “ 야 병신아. 아무리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됐다 해도. 끝까지 편을 들어 줘야 할 사람은 정수훈 아니야? “

 하영은 참담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가슴 깊이서 나오는 슬픔과 분노를 그에게 쏟아냈다.

 “ 내 말이 틀린 거야? “

 무영은 이해가 안 되는 듯한 얼굴로 반문했다.

 “ 틀렸어. 그것도 존나게 틀렸어 “

 “ 뭐가 틀렸는데? 내가 너희 낭만이라도 건드렸나? 아니면 뭣도 안 되는 아름다운 추억 팔이 하는 거 끊기라도 했나? “

 하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그녀는 별안간 풋 하고 웃었다.

 “ 너 초조하구나. “

 “뭐?”

 “수훈이가 진짜 성공할까 봐.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성공할까 봐 “

 “ 무슨 소리야 그게 “

 “ 그거 존나 피해 의식인 거 알지? 낭만? 제일 현실에 차갑게 내던져지는 건 우리야. 알아? 정수훈 저 병신 같은 사람. 그래도 졸업 전에 단편 하나 찍어봐야 한다고, 연출진이랑 배우 구하러 다닌다고 개고생했다고. 아무도 같이 해주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모은 사람들 다 신입생이었어. 어디 지원받을 곳도 없어서 돈 부족할 때마다 자기가 아르바이트 해서 들이붓고. 들이붓고. 국어책 읽는 것 같은 애새끼들 끝까지 어르고 달래고. 맨날 장비 빌리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그래도 자기 작품 하는 거니깐 기분 좋다고 하더라.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하영은 악에 받친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런 놈한테 자기 작품 홀랑 내다 버리는 거 한 번 더 하라고? 자기 자존심 갖다 버리는 짓 딱 한 번만 더하라고? 합리적이니깐? 뭐가 도대체 합리적인데? 뭐가 사이즈가 딱 맞는데? 오늘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르면 제발 그 입 좀 닥쳐. 그딴 식으로 인터뷰할 거면 당장 꺼지고. “

 무영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 그래도 행복했다면서. 왜 너희는 꼭 자신들을 어디 삼류 만화 주인공처럼 설명하냐? 너네가 힘든 거 뻔히 알면서 가는 길이잖아. ‘고통받지만 나아간다 ‘이런 컨셉이잖아“

 무영은 빠르고 높게 말을 했다. 그의 눈은 뚫어지게 하영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 그래 솔직히 부러워. 피해의식이야.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돈 넣어가면서 쓸데없는 짓만 하는 것 같아. 너희가 매번 하는 그 개연성 없는 설명 들으면 부러워. 뭘 봤더니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심장이 뛰더라.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고깃집에선 연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무영은 감정이 끝까지 치달은 것 같았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 너희 보면 꼭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아. 협은 왜 날 여기로 끌고 들어왔을까. 너희 이야기 들을 때마다 난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야. 너희 저수지에 가면 숨이 막힌다고. 너희끼리 통하는 ‘영감’이란 코드는 나에게는 극독이야. 평생을 이렇게 살았어. 개연. 합리. 이성. 이치. 정리. 이런 거 없는 너희들의 예술은 나한테 너무 어려워. 그런데 오늘 영화 보니까 그리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던데. 너한테는 어떤 재능이 있는데? 그거 한계 깨달으면 스펙 주섬주섬 쌓아서 회사 찾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너희 워낙 아싸라서 동아리도 떳떳하게 못 하지. 공무원 준비하는 게 더 맞겠다. “

 하영은 빨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모두 똑같아. “

 하영은 꽃다발을 옆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비어 있는 통에서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냥 자기가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고. 피카소나 회사원이나 똑같다고. 진짜 화나는 건 너 같은 새끼나 수훈이나 다른 게 없다고. 아. 하나 있네. 수훈은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해. “

 하영은 말을 끝내고 그를 한심하게 보았다. 그리고 빠르고 좁은 보폭으로 사라졌다.

 

 *

 

 사람들은 벌써 절반 이상이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 아 진도도 다 나갔는데. 뭘 할 수도 없고 어떡하나. “

 문예사 교수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시간은 3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무영은 수업이 끝났다는 생각에 몸에 힘을 풀고 살짝 의자에 기댔다.

 “ 이협 학생 있나요? 나와 보세요 “

 무영은 옆에 앉은 협을 보았다. 협은 인쇄한 PPT 슬라이드를 내려놓고 교수를 쳐다보았다.

 “ 너 뭐 잘 못 한 거 있어? “

 “ 있겠냐? “

 협은 그를 툭 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단상으로 나갔다.

 “ 강의 시간은 적고, ‘교양’ 수업이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화가와 작가들을 다뤘습니다. 뭐 이것도 아주 적은 수긴 하지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희는 대충 절반까지 온 것 같아요. “

 교수는 협을 앞에 두고 그녀와 상관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 협 학생은 어떤 화가가 좋았나요? “

 둘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협의 여유로운 모습은 꼭, 그 둘을 굉장히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 섰다는 것에 어떠한 압박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 렘브란트요. “

 교수는 그녀를 묵묵히 보다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저는 협 학생이라면 다른 사람을 택할 것 같았는데요 “

 “ 타고난 금수저인데 결국 그림 그리다가 쫄딱 망하잖아요. 저 같은 소시민은 너무 통쾌 하더라구요 “

 교수는 그 말을 듣자 마이크를 입에서 떨어트리고 웃기 시작했다. 누워있던 몇몇도 일어나 앞을 보았다.

 “ 맞습니다. 렘브란트는 잘나가는 가족 사업을 잇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렸죠. 그렇게 부유하던 그는 죽기 전에 유품으로 붓 몇 개밖에 남기지 못했다고 하죠. “

 교수는 큼큼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 협 학생이 수업을 굉장히 열심히 들어 주어서 한 번 불러 봤습니다. 저도 이 과목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끔 제가 잘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학생들의 소해를 듣는 거로 저를 다스리고는 합니다. 오늘은 빨리 마치는 거로 하죠. 공부 적당히 열심히 하시구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

 사람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빠져나갔다. 무영은 잠시 앉아 협을 보았다. 그녀는 교수와 함께 짧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기분 좋게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움직였다. 무영 또한 가방을 챙겨 앞자리로 나갔다.

 “ 아. 질문이 있나요? “

 무영은 손사래를 쳤다.

 “ 여자친구인가요 그럼? “

 무영은 당황한 듯이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했고, 협과 교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둘은 그렇게 강의실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날씨는 완전히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의 옷은 한층 더 가벼워 져 있었다. 둘은 좋은 날씨였기에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 그 날 못 가서 미안하다. “

 “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협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둘은 보폭을 맞추기만 했다. 무영은 너무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성항공 공모전의 PPT는 어제 제출을 했고, 중간고사는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씩 정리가 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협이란 사람이었다.

 “ 정말 내가 필요해? “

 무영은 그녀를 지긋이 보며 물었다. 협은 꼭 셔츠를 고집했다. 그녀의 블랙진과 함께 폭이 좁은 갈색 벨트가 그녀의 몸에 묶여 있었다. 군살 없는 허리에 있는 벨트는 그냥 그녀의 몸의 일부 같았다.

 “ 하영이가 너한테 말을 심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달래”

 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완전 개 판 내버렸는데 뭐. “

 “ 알고 있구나. 들으니까 그때 너 진짜 못났더라 “

 협은 무영의 머리를 만졌다. 갑자기 들어온 그녀의 손길에 놀라 무영은 상체를 잠시 뺐다.

 “ 너 이제 전역한 티 좀 덜 나네. 머리 많이 길었다. “

 무영은 이제 머리에 왁스를 발라 뒤로 넘길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가르마나 쉼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강한 기름으로 그의 머리를 완전히 올 백으로 넘겼었다. 무영은 문득 그때를 생각했다.

 “ 나도 심했어. 멍청하게. 아. 김하영이 나한테 하나 더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

 무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걸 보던 협이 말했다..

 “ 수훈이가 소연씨 좋아해 “

 그는 듣자마자 발을 멈췄다.

 “ 야. 그거 왜 이제 말해 준거야? “

 무영은 너무 놀라 큰소리를 질렀다. 조금만 유심히 보았어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던 일이었다. 피해의식에 묻혀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저질러버린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협은 크게 웃었다. 무영은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들이 그를 얼마나 초라하게 했을지 생각했다. 상상할 수 없었다.

 “ 걔 짝사랑만 2년째라고 했나. “

 협이 하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무영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 김소연씨 번호 좀 알려줘. 제대로 인터뷰할 테니깐. “

 “ 책임감이라면 하지 않아도 돼 “

 “ 아니. 그냥 확인하고 싶어. 나도 그 사람이랑 똑같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

 하영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강하게 쳤다.

 “ 그래. 아, 오늘 밤에 나랑 어디 갈 데 있다. “

 “ 너 맨날 바쁘잖아. “

 협은 그를 흘깃 보았다.

 “ 그래 미친 듯이 바쁜 이협이 오늘 시간이 났다. 그러니깐 오늘 헛짓거리 하지 말고 나와 “

 “ 너 진짜 말이 심해 “

 ‘말이 심해’ 협은 그의 말을 따라 하며 걸었다. 어린아이처럼 그를 놀리고 웃었다. 무영은 가끔 당하는 그녀의 장난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뭐든지 일을 쉽고 명확히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무영은 며칠 전 그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먼저 떠나는 하영과 수훈의 뒷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모두 각자의 각오를 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술에 취해 생각하지 못했다. 둘은 다음에 있을 마케팅의 이해 수업을 듣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 공모전 준비는 잘 돼가? “

 “ 응 이미 제출했어. 그거 통과되면 기성항공에서 직접 발표.. “

 협은 연신 오를 외치며 그를 치켜세우는 척을 했다.

 “ 아. 정욱인가 너 친구한테 메신저로 연락 왔었는데….“

 “ 정욱이가? 뭐라고 했는데? “

 “ 번호 몰라서 이걸로 했다. 무영이가 후배님이랑 노느라 정신없는 것 같다. 언제 너랑 해서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

 협은 ‘후배님이랑 노느라’ 부분을 양껏 팔자주름을 깊게 만들며 이야기했다. 무영은 그녀의 모사를 듣고 웃었다. 고작 한 번 보고서는 정욱의 너스레를 따라 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 아 나 좀 이따 만나기로 했는데. 정욱이 “

 “ 정욱이만? “

 “ 아니 정욱이랑 인동 형이랑 “

 “ 그래? “

 둘은 이야기를 더 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경영학과 건물 옆 흡연실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정면에 서 있는 중년의 남녀는 무영과 협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무영은 지긋이 눈을 찌푸리고 난 뒤에 겨우 그들을 떠올렸다. 넷은 조용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협 “

 “ 안녕하세요. 여기는 무슨 일로“

 “ 얘기 좀 하자 “

 무영은 노원강북병원 장례식장을 떠올렸다. 김철수의 부모님들이었다. 두 명은 똑바로 협을 보았다. 둘은 묘하게 몸에 힘이 풀린 듯 서 있었다. 그는 원래 이곳에 있던 뻣뻣한 허수아비를 마주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 존재의 기시감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간신히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를 물고 있었다. 겨우 힘을 주고 있듯이 작게 부들거리는 턱은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철수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 무영아. 먼저 올라가 있어. “

 무영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빨리 가. 금방 간다고 “

 셋은 그렇게 건물 뒤쪽으로 사라졌다. 철수의 부모는 협을 호위하듯 양쪽에 서서 그림자로 사라졌다. 무영은 계속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쫓아가고 싶었지만 한순간 협의 눈빛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 무영 “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건물 복도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인동이었다.

 “ 여기서 뭐해. “

 “ 아. 아니에요. “

 “ 너 이협이랑 같이 있던 거 아니야?“

 “ 그런데요?“

 “ 어떤 사람들이 이협 찾길래 흡연장 쪽으로 내려가 보라고 했는데. 만났나 보구나. “

 인동은 담배에 불을 무심히 붙이며 이야기했다. 그의 입은 연기를 빨아드리느라 주름이 접혔다. 오랜만에 피는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더 오래가지 못 했다. 건물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무영은 이상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경영학과 건물 뒤편에는 큰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몇 개의 벤치와 함께 언제나 그늘이 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본 것은, 바람에 날리는 수많은 버드나무 잎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너가 부추겼잖아. 도대체 무슨 말 한 거야? “

 그는 사람들을 뚫고 들어갔다. 버드나무 아래에서는 온갖 괴성이 들려왔다. 협은 작은 몸으로 중년 남자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무영은 달려 들어 그의 손을 잡고 뿌리쳤다. 등 뒤에서 작게 켁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수 아버지의 손은 아직 협 멱살을 잡던 힘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부들거렸다.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빨간 눈으로 무영을 쳐다보았다.

 “ 너도 한 패구나. 너도 했구나?“

 “ 무슨 소리세요. 그만 하세요 “

 무영은 말도 안 되는 힘을 뿜어내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 듬성듬성한 흰 머리가 그의 나이를 보여 주었다. 무영을 붙잡은 손아귀가 풀린 것은 경비가 사람들을 뚫고 왔을 때였다.

 “ 너가 죽인거야. 너가 죽인거라고 “

 둘은 그렇게 경비들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들의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눈물, 복수, 욕정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끼려 아무렇게나 티비를 켜 듯 협과 무영을 관망하던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버드나무는 아주 천천히 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 돌지마. 그대로 있어 “

 그녀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무영은 고개를 돌고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의 약해진 눈빛을 받아주고 싶었다.

 “ 여기 그대로 있어. 아무 것도 못 본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니야. 유난 떨지마 “

 옷을 정리하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감히 등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곳엔 협의 가장 아픈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 괜찮아? “

 “ 그럼. 나 먼저 간다. “

 협은 그렇게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갔다. 그녀의 머리는 한껏 헝클어져 있었다. 멀쩡하게 걷는 모습이 너무나도 슬프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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