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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기대가 깨지는 소리는 크다. 1
작성일 : 19-11-10 01:00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9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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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은 영어 강사의 말을 필기하며 하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흑백 영화를 처음 보았다. 치직 거리는 화질과 거친 사운드. 술에 취해 불콰한 얼굴들. 상당히 재미없고 철학적인 내용들. 하지만 수훈이란 남자의 행복한 웃음. 수업이 끝나고 몰려오는 사람들의 술자리에 무영은 조용히 고개를 휘젓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젯밤, 모두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헤어졌다. 하영이라고 불린 여자는 10시가 되기 전에 떠났다. 무영과 협은 같은 방향이었기에 같은 노선의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종착점이 어딘지는 몰랐다. 그보다 멀리 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희 첫 편의 인터뷰 주인공은 누군데? ”

 협은 빙긋이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술에 전 남자 하나, 피곤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자 두 명이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 두 명이야. 김소연이랑 김하영. “

 무영은 같이 영화를 보던 키가 작은 여자를 떠올렸다.

 “ 하영이는 아까 같이 있던 사람이고, 김소연은 누구야. 그 수훈이라고 하는 사람은 안 해? “

 “ 응 아직. 자기도 작은 커리어라도 하나 만들고 하고 싶다네. 그래서 하영이랑, 김소연씨라고 수훈의 친구 이 둘로 하기로 했어. 소연씨는 연극영화과에서도 촉망 받는 인재거든. 단편 연출하기도 하고 학교 연극 배우로 등장하기도 해서, 학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 거야. 이번에 수훈이 감독한 영화배우로 나오기도 하고. 아. 그리고 예쁘다. 그 언니. 진짜 배우상이야. “

 “ 그럼 하영이란 친구는? “

 “너 이석대도 온라인 커뮤니티 있는 거 알아?”

 협은 웃을 때 더 눈이 옆으로 올라갔다. 입 꼬리와 눈 끝이 같이 올라가면 그걸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지게끔 하는 진화적 조건이 있는 듯했다.

 “ 그럼 알지. 요즘 애들은 에브리타임 많이 쓰던데. 나 신입생일 때는 다들 이석인 썼던 것 같은데. 이름 너무 촌스러워서 기억하고 있어. ”

 무영은 몇 년 전 학교를 들어와 이석인이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석인은 이석대학교 졸업생들이 만든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학교생활부터 맛집 추천 등 몇 안 되는 콘텐츠가 있었다.

 “ 그래? 술만 퍼먹은 건 아니구나. 그럼 질문을 바꿔야지. 곤암동 살인사건은 들어봤나?”

 협의 농담에 무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를 보았다.

 “ 거기 올라오던 만화잖아. 진짜 우리 사는 곤암동이 배경이라 우리 때 그거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하영이가 그린 거야. ”

 “ 뭐? ”

 무영은 놀라 그대로 반문했다. 협은 그런 그를 보며 쿡쿡 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석인은 생긴 지 10년 정도 된 커뮤니티였다. 자유게시판에는 보통 맛집 탐방이나, 좋은 강의. 교수님 평가 등이 있었다. 그런데 16년도에 만화가 하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간단한 컷을 나눈 만화들이 올라오고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낙서 수준이거나 일상적인 주제가 대부분이었기에, 화제가 되진 못했다. 그런데 곤암동 살인사건은 그 모양새가 달랐다.

 우리가 흔히 보는 웹툰 정도 퀄리티의 그림이었다. 드로잉은 이때까지의 작품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곤암동과 그 근처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였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살고 사랑을 나누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린 골목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 독특한 캐릭터들과 어두운 이야기의 흐름은 마니아 층까지 만들 지경이었다.

 “나는 웹툰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그 작품 챌린지 리그에서도 꽤 인기 있었다면서. ”

 “ 당연하지. 계속 연재했으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야. 정식 연재라든지 말이야. 근데 지금은 다른 작품 준비 중이야. 이미 공모전에도 냈고. ”

 가장 성공에 가까운 녀석이었구나. 무영은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말이 안 되는 걸 느꼈다. 그 정도에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왜 저수지의 개들에 있는가.

 “너희 무슨 아싸들의 보금자리라면서. ”

 “ 그렇게 말하지 마. 너가 말하니깐 이상하게 오글거리네. 왜 그런 애가 거기 있냐고? ”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버지 반대가 심해. 아 그 전에 치명적 단점도 있고. “

 “ 치명적 단점? “

 “ 오늘 집에 가서 블루문이라는 웹툰 사이트 들어가 봐. 지금 네티즌 투표 진행 중 일 거야. 경주마라는 작품이고. 이거 숙제니깐 쭉 봐 “

 지하철은 덜컹거리며 서울을 가로질렀다. 무영은 김하영이란 사람보다 김하영의 비밀을 먼저 알아버린 것이 영 떨떠름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반대쪽 창문을 보았다. 그렇게 둘은 조용히 앉아 서로에게 여유를 주었다.

 “ 집이 어디야? “

 “ 그거 실례야 “

 무영은 당황하며 미안을 외쳤지만, 그녀는 이미 그를 보며 짓궂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매일 매고 다니는 작은 검은 크로스 백은 가득 차 있었다.

 “ 너 노트북 안 쓰고 필기하더라. 인터뷰하면 펜 하나 있어야겠어. “

 무영이 뭐라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뭉툭한 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검은 펜에는 상아색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 뭐라고 적혀 있는데. JOSH ..? “

 하지만 완전히 보기도 전에 그녀는 그 펜을 훽하고 잡아챘다. 그의 당황한 손은 허공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협은 새로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아까와 비슷한 만년필이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까만 것이었다.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또 다른 곳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 다음다음 주에 수훈이가 출품한 단편 영화제 있어. 혜화니까 가깝지? 너도 와. 그 펜 사용 좀 하고.

 한성대입구역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서야 협은 그에게 말을 했다.

 “ 너는 뭘 만드는데 “

 무영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 비밀 “

 비밀이라는 말과 함께 새초롬히 닫은 입과는 반대로 지하철 문은 빠르게 열렸다. 무영은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야 너 요즘 술 잘 안 마신다? “

 무영은 정욱과 팀별 과제 카페로 먼저 와 마지막 내용 점검을 하고 있었다. 기성항공의 충성고객 방안은 프리미엄화로 방향이 정해졌고, 그것에 맞춰 밤을 새워가며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 무영의 기내상품 배송은 프리미엄화에 맞춰 사라졌다. 라면과 디퓨저 같은 기성항공 특유의 인기상품이 아닌, 면세점 할인과 기성 그룹 의류 브랜드의 할인권으로 변경되었다. 호텔 짐 배송 및 보관 서비스는 더 많은 인동의 피드백을 거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의 공모전도 막바지로 향했다.

 “ 아. 속이 안 좋아. 어쩔 수가 없네”

 “ 새끼. 전역하고 나서 술 너무 적게 먹어서 그래. 간 좀 키우자 임마. “

 정욱은 무영에게 농담을 건넸다.

 “ 아. 무영아 너 아직 그 이협이랑 잘 지내고 있지? “

 “ 어. 가끔 만나지. “

 “ 이후로 잘 못 봐서. “

 무영은 그의 질문에 잠시 협을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그에게 그녀가 뭘 하는 사람인지, 학교 이후에 어떤 삶을 사는지 말해줄 수 없었다. 저수지의 개들은 타의였어도 이미 발을 담갔다고 생각한 무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아리를, 그곳에서의 자신들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무영 또한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 나도 모르겠네. “

 워낙 순간적인 만남이었다. 사람들은 만남과 만남을 이어 선을 만들듯이, 개연성과 연관성으로 관계를 정의하곤 했다. 하지만 무영과 협은 그렇지 않았다. 우연과 필연, 만남과 마주침 사이에서 아슬아슬히 서로를 유지했다. 그 때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 먼저 와있었네 “

 인동과 혜인이였다. 혜인의 PPT도 마무리되어 갔다. 확실히 무영과 정욱만이 만들던 것보다 세련된 모습이었다. 무영은 처음 그녀가 들어왔을 때 느꼈던 반감을 떠올렸다.

 “ 이제 스토리텔링만 조금 더 하면 되겠다. “

 회의는 다시 시작되었다. 인동은 무영의 디테일을 꼬집고, 그걸 인정하는 무영의 고갯짓은 또 지겹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정욱은 중간중간 무영의 의견을 보충해주고, 동시에 인동의 피드백의 첨언을 했다. 후퇴와 전진은 산통처럼 오랜 시간 길어졌다. 달라진 점이라면 정욱과 혜인의 태도였다.

 여전히 인동의 날카로운 피드백을 오롯이 받는 것은 무영이었다. 정욱과 혜인은 이제는 타성에 젖은 듯이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인동의 말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바꾸려 농담을 하던 정욱은 이제 당연한 듯이 그의 지적을 넘겼다. 몇 시간이 넘는 산통 속에, 수술실 밖 보호자들은 태연하게 뭘 먹을지 이야기하고는 한다. 하지만 피를 흘리는 이에게 “고苦”은 언제나 새롭게 쓰라림을 안겼다.

 

 “ 이제 PPT만 조금 더 수정해서 3일 뒤에 낼 거야. 다들 조금만 더 집중해서 하자. “

 3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고, 사람들은 몸에 힘을 풀었다. 무영은 피로감에 지쳐 몸을 주욱 늘어뜨렸다.

 “ 오늘 우리 동기들끼리 술 마시는데 올래? “

 인동은 담배를 피우고 와서 말했다. 무영은 순간 정욱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 아. 전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

 “ 요즘 바쁘네 무영? 사람이라도 생겼나 봐. “

 인동은 그를 보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꼭 인동의 신경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따끔함을 느꼈다. 무영은 그저 허허.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폭로를 향한 욕구를 느꼈다. 실컷 말해버리고 같이 비웃어버리고 싶었다. 그들은 터무니 없는 몽상가들이에요. 라고 폄하하고 싶었지만 무영은 조용히 짐을 쌌다. 만약 정수훈이라는 큰 덩치의 사내가 상이라도 받는다면, 그들이 그렇게 뜬구름 잡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럼 먼저 가 볼게요. “

 그 말과 함께 그는 쫓기듯이 카페를 나왔다.

 

 *

 

 - 제5회 춘수 단편 영화제

 조그마한 팸플릿이 혜화 역 입구부터 붙어져 있었다. 무영은 단편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대개 30분이 넘지 않았고 짧은 건 15분짜리도 있었다. 만원이 훨씬 넘는 돈을 지불하고서 들어가는 극장에서 나오는 영화들은 대부분 한 시간 반을 넘겼다. 도대체 30분이라는 제한선에서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혹시 눈물의 똥꼬쇼가 펼쳐지는 건 아닐까 하는 온갖 상상을 했다.

 무영이 낡은 나무문이 붙어있는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벌써 시상식이 시작 된 것 같았다. 무영은 혜화에서 연극을 몇 번 봤었다. 하지만 그가 봤던 것들은 모두 큰 연극들이었고, 이렇게 작은 소극장은 처음이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전화하며 걸어 나왔다.

 “ 아 늦었네요 “

 하영은 전화하다가는 앞에 서 있는 무영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리는 식으로 눈짓을 주고서는 전화를 계속했다. 그녀는 작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있었다.

 “ 어. 그래. 우리 먼저 가고 있을게 “

 하영은 그를 보고서는 입구로 몸을 돌렸다.

 “ 그냥 반말하시죠. 나이도 같은데. “

 “ 그래. 아. 하영아 “

 문을 열던 하영은 그를 돌아보았다.

 “ 경주마 봤어. 진짜 재밌더라 “

 하영은 미묘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무영은 순간 자신이 칭찬을 너무 성의 없게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 협이 알려줬어? “

 “ 응. 너도 인터뷰 대상이니까 “

 “ 아 “

 하영은 그 말과 함께 입구로 들어갔다. 무영은 그녀를 뒤따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 계단은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한층 반을 내려가니 청동 테가 둘린 커다란 문이 서 있었다. 하영은 힘겹게 두꺼운 문을 열어젖혔다.

 

 극장 안은 어두웠고, 간이로 설치한 스크린에서는 출품작으로 보이는 단편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겨우 200석이 넘는 규모였다. 하지만 무영은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압도 감을 느꼈다. 어둠 사이에 빛 나는 시선들, 야심으로 가득 찬 그들의 영상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는 하영의 뒤를 따라 수훈이 앉은 바로 뒤로 갈 수 있었다.

 “ 왔어요? “

 수훈은 뒤를 돌아 무영에게 아주 작게 인사했다. 그는 연출진과 배우들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같은 열에 가득 앉아 있었다. 무영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 협은 ? “

 “ 늦는데. 아마도 못 올 것 같대. “

 무영은 귓속말로 하영과 대화를 나누고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나온 영화가 끝나고 다음 영화도 마무리될 때쯤, 하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이번 차례야. “

 짧은 그녀의 말에 무영은 본능적으로 수훈의 차례가 되었음을 느꼈다. 자신의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긴장이 그대로 전달 되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보면서 그들은 드문드문 말을 나누거나 농담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영화는 시작되었다. 전혀 다르게 자라온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무영은 여주인공이 등장하자마자 그녀가 이소연임을 알아챘다. 남자 주인공과 다른 배우들은 하나같이 어린 티가 너무 나거나 오버하는 연기로 엉망이었지만, 그녀 혼자만이 진짜 연기라는 걸 하는 것 같았다. 소연은 메니에르병을 진단받은 바이올린 연주가로 나왔다. 점점 청력을 잃어가고 어지럼증으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천천히 포기해 나갔다.

 무영은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숨소리만을 내며 멈춰 있었다. 집중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단출한 설정과 촬영지였다. 하지만 그러하였기에 더욱 소연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무영은 소연이 보여주는 감정에 완전히 노출되고 말았다. 바이올린을 켜다 쓰러지는 소연의 거친 숨 한 조각, 방황하는 눈동자, 갈 곳을 잃은 손가락은 꼭 그의 앞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짧은 단편은 점점 클라이막스로 갔다.

 지하철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남자주인공은 소연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 팽개치고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선배들이 그를 미친놈처럼 취급하며 소리와 욕을 지르지만,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안전모를 집어 던지며 그들에게 말했다.

 “ 안 되겠어요 도저히 못 참겠어요. “

 “ 푸흡 “

 어색하게 과잉된 대사가 끝난 빈 공간, 독립영화의 한계로 더 좋은 배경음악을 사용하지 못해, 음악조차 도 잔잔한 그 공간에 누군가의 웃음이 울려 펴졌다. 무영은 정말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몰입을 이어가던 영화적 상상력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훌륭한 영상에서 허접스러운 스크린이 걸려 있는 좁은 소극장으로 확장되는 걸 느꼈다. 계속해서 상영됐지만, 무영 앞에 앉은 연출진들과 배우는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았다.

 “ 시발 “

 앞에 앉은 남배우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조용히 욕을 내뱉었다. 무영은 자기 일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의 감정과 대사가 엉망인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지만 웃는 건 크나큰 실례였다. 영화는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갔고, 몇 편의 단편들이 끝난 후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연출진들의 지인이나 친구들은 꽃다발을 가져와 안겼고, 입상되는 팀이 하나하나 불릴 때마다 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초조히 수훈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총 10 팀 중 4팀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마지막까지 그들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조명이 커지고, 실내가 심심이 밝아졌다. 사람들은 울거나, 아쉬워했다. 상을 탄 사람들은 대부분 울었다. 무영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상하지 못 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수고로움을 기리며 눈물을 보이거나 서로를 쓰다듬었다. 무영과 하영은 그곳에서 덩그러니 떨어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하영은 자신이 들고 온 꽃다발을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못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말을 한 건 수훈이었다. 수훈은 겨우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 어. 얘들아 고생했다. 진짜 고생 많았다. 곤암 가서 뒤풀이해야지. 너희 거기 근처 사니까….”

 “ 형. 저희는 그냥 가 볼게요.

 연출진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남자의 뒤에는 배우들로 나온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들은 수훈을 날카롭게 지켜보았다.

 “ 그래도 고기 한 점 먹고 가지그래. “

 수훈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사람들의 축하와 술자리를 약속하고 있는 소리로 극장은 웅성거렸다. 그들만이 거기서 서로를 보며 대치했다. 가장 먼저 몸을 움직인 건, 주인공으로 나온 남자였다. 남자는 수훈을 한 번 짧게 보고서는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과 몇 명의 배우들도 그를 뒤 따랐다.

 “ 훈섭아. 진짜 고생했다.“

 하지만 남자는 수훈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뒤따라오던 사람들을 제치고 수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고생이요? 고생은 형이 했죠. “

 “ 야. 최훈섭. 너 왜 그래 “

 남자의 너무나 적대적인 냉소에 먼저 반응을 한 건, 수훈 뒤에 서 있던 소연이었다. 회색 모직의 자켓과 면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말을 할 때마다 긴 생머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 아니 그냥 고생했다고요. 선배도 알잖아요. 이 형 우리도 몰래 어디서 작업 존나 하는 거 “

 “ 너 말 예쁘게 한다? “

 비꼬는 말투에 먼저 격분한 건 이번에도 소연이었다. 수훈은 슬픈 표정으로 큰 몸을 숨기지도 못한 채로 있었다. 그저 소연의 팔을 가볍게 잡아 말리는 것이 다였다.

 “ 저는 선배가 왜 그렇게 이 형 싸고도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

 그들이 힘들었던 걸 꼭 서로에게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비난과 비판은 상대방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점점 더 선을 지나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극장의 사람들도 점차 그들을 주목했다. 시작은 사소한 말다툼이었지만, 점점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그렇게 수훈과 소영, 남자 주인공과 친구들은 좁은 통로에 서 있었다.

 “ 너 왜 이렇게 어린 티 내냐? 여기서 열심히 안 한 사람들이 있어? 너도 처음에 수훈이 쓴 대본 맘에 들어서 한다고 한 거고. “

 “솔직하게 말해봐요?“

 소연의 말에 남자는 더는 냉소를 짓지 않았다. 얼굴은 이제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 형 연출이 그냥 구린 거였어요. 그렇게 깐깐하게 디테일 챙기면서 큰 흐름은 왜 못 보냐 구요.”

 “ 말이 너무 심하네. 당신들 연기는 생각 안 하나 봐? ”

 무영은 화가 난 목소리에 깜짝 놀라 옆을 보았다. 하영이 성난 얼굴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수훈은 깨진 창문을 막으려 온 몸으로 가리는 듯 소연을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다른 곳에서 새기 시작했다.

 “ 시발 뭘 알아요? 그 추운 겨울날 몇 시간씩 서서 저 형 오케이 떨어질 때까지 연기 해보세요. 제 정상인 게 나오나. ”

 남자는 갑자기 끼어든 하영을 잠시보다 일갈을 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영은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빠르게 뒤로 숨겼다.

 “ 수훈이형 하여튼 여자 복은 존나게 많네. ”

 좁은 소극장의 무대에서 나오는 불빛은 뒷좌석까지 완전히 전해져 오지 않았다. 남자의 혼잣말은 그 불투명한 어둠 속에 천천히 울려 퍼졌다.

 “ 야 최훈섭 너 뭐라고 했어? ”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조용히 훈섭 쪽으로 다가갔다. 무영은 한 번도 그가 정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영은 황급히 수훈을 말렸다.

 “ 오빠. 나 괜찮아. ”

 남자는 수훈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잠시 움찔거렸다. 하영의 만류로 시간이 생기자 그들은 서둘러 문을 열고 자리를 떴다.

 “ 형 고생했어요. “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채 어중간히 서 있던 동료들도 수훈에게 인사를 하고 극장을 빠져나갔다. 구겨진 꽃다발을 들고 있는 하영과 그의 옆에 발을 맞춘 무영. 그리고 수훈과 소영만이 좌석 옆 통로에 서 있었다. 조그만 극장은 이제 어느 누구의 축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지켜보던 대치는 허무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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