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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12화
작성일 : 19-11-10 00:26     조회 : 229     추천 : 2     분량 : 9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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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단야 씨 돈 많아요?”

 “그건 왜”

 “제 편견인데 뱀파이어라든지 오래 산 존재들 있잖아요. 엄청 어린 신부 있는 그 롱코트 입는 도깨비도 그렇고. 그런 존재들은 다 부자인 것 같아서요.”

 윤오의 물음에 단야는 생각에 잠겼다. 돈? 그래, 돈 많지. 달러 투자했다가 망하기도 해보고 IMF 때 삐끗하기도 하며 얻은 교훈은 단 하나. 땅을 사야 한다. 단야는 개처럼 일해 피를 살 돈만 남기고는 다 모아 땅을 사왔다. 땅을 제외한 남은 재산은 은행을 못 믿어 지하실에 금으로 다 저장해놨다는 건 단야의 소중한 비밀 중 하나였다.

 재개발이다 뭐다 잭팟이 터졌다. 일도 계속 하니 일평생 곤궁함을 느낄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 부자는 맞았다.

 “나도 그 도깨비도 부자긴 한데 그것도 다 그렇지도 않아. 오래 사니까 오래 벌어서 오래 쌓아둔 거지. 건너건너 듣기론 이상한 사업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뱀파이어도 있다더라.”

 “이상한 사업?”

 “옥장판…. 같은…?”

 “아하…. 하하, 아무튼 단야 씨는 부자시구나. 그래서 집에 침실도 5개나 있으신 거였네요!”

 “그건 돈이 많아서가 아니야. 나는 잠을 안 자. 자지 않아도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어. 근데 웃기게도, 그러니까 잠이 그리워. 이제 기억도 안 나는 그 잠이란 게, 몸을 뉘이는 침대라는 게 그리워. 그래서 욕심이 나더라. 아무튼, 그래서 침실은 다섯 개.”

 단야의 쓸쓸한 목소리에 윤오는 아차 싶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삶. 하루의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삶. 그 긴 세월을 홀로 보내온 삶. 윤오는 단야가 느껴왔을 감정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나에겐 항상 시간이 흘렀고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며 매일이 달라지는 삶이 있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았군요. 단야의 쓸쓸함이 사무치게 전해졌다. 이 사람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 될 만큼, 나는 당신이…

 윤오는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감을 느끼게 만들자고.

 

 *

 “단야 씨! 오늘은 월요일이에요. 월요일은 바나나푸딩 먹는 날! 연남동에 진짜 유명한 곳이 있더라구요. 줄 서서 사왔어요.”

 단야는 한 손에 종이봉투를 껴안고 자신감에 가득 찬 채 현관에 서 있는 윤오를 흘깃 봤다.

 “인간이 먹는 거처럼 굳이 안 먹어도 된다니까?”

 “아뇨. 바나나푸딩은 먹어야 해요. 촉촉하고 입에 넣는 순간 말캉 녹아서 입 안에 단맛이 퍼진다니까요? 아, 한입만.”

 윤오는 단야에게 줘도 될 스푼을 굳이 제가 쥐고 바나나푸딩을 한 스푼 떠 단야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 맛 기억해요. 이건 월요일의 맛이에요. 오늘은 월요일. 우리의 시간은 매일 흐르고 있어요.”

 단야는 이게 또 뭔 개소리를 하는가 바나나푸딩을 녹여 넘기며 생각했지만 답을 내릴 순 없었다. 제 생각에 남윤오는 조금 특이한 면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다.

 

 “단야 씨! 오늘은 화요일이에요. 화요일은 스콘 먹는 날! 오늘은 안국역 근처 가게에서 사왔어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빵 좋아하나 봐요. 근데 단야 씨도 제가 이 봉투 열면 깜짝 놀랄 걸요? 향이, 향이 너무 좋아.”

 오늘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단야가 잠길 정도로. 윤오는 봉투를 열어 종이에 쌓인 플레인 스콘을 하나 꺼내 단야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자, 숨 들이마셔요! 온몸을 가득 채우는 버터 냄새. 이 살찌는 냄새!”

 윤오는 단야가 숨을 들이마시는지 확인한 뒤 스콘을 반으로 쪼개 단야에게 건넸다. 그리곤 제 몫을 다시 작게 쪼개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이 맛 기억해요. 이건 화요일의 맛이에요. 오늘은 화요일. 우리의 시간은 매일 흐르고 있답니다.”

 

 수요일은 인절미를 먹자며 찾아왔고, 목요일은 단야의 팔을 이끌고 나가 30분을 기다린 끝에 손에 넣은 밀크티를 건네왔다. 금요일은 달아죽을 것 같은 마카롱을, 토요일은 옛날 사람인 단야를 고려했다며 수정과를, 일요일은 팬에 콘을 가득 넣고 귀를 막고 구석에 잔뜩 쫄아 기다린 끝에 만들어낸 팝콘을 볼 가득 채워와 먹였다.

 윤오는 매일을 지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단야가 기억했음 하는 맛들을, 추억했음 하는 시간들을 구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을 즈음엔, 같이 하는 일들도 만들어나갔다. 월요일은 산책하는 날. 화요일은 카페에서 책을 읽는 날. 일요일은 같이 영화보는 날.

 

 “단야 씨! 오늘은 일요일,”

 “알아. 일요일은 팝콘 먹는 날. 그리고 영화 같이 보는 날. 귀찮은데 오늘은 나가지 말고 넷플릭스 보자. 어때?”

 단야에게 요일이 생겼다. 윤오는 그게 퍽 기뻤다. 홀로 어느 순간에 갇힌 게 아닌, 둘이 함께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단야는 그런 윤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얼른 TV에 넷플릭스를 연결하고 뭘 봐야 재미있을지 이리저리 스크롤을 하느라 바빴다. 처음엔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던 단야도 이제는 윤오와 함께하는 루틴이 제법 즐거워진 모양이었다. 윤오는 소파에 앉아 TV 앞에 쪼그리고 앉은 단야의 등을 봤다.

 “단야 씨. 우리의 시간은 매일 흘러요.”

 “그러게. 시간이 흐른다. 자꾸. 오늘이 벌써 일요일이잖아.”

 단야의 짧지만 따뜻한 음성에 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선 어느새 미드가 재생되고 있었다. 단야는 미리 준비해둔 팝콘을 하나 입에 넣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윤오의 눈에 들어오는 단야의 반쪽 얼굴은 때론 웃고 때론 찡그리며 온 얼굴로 마트를 터는 세 여자의 이야기에 반응했다. 윤오는 10분은 단야의 얼굴을, 5분은 화면을, 다시 10분은 단야의 얼굴을 보길 반복했다. 사람이 참. 아니, 뱀파이어가 참. 자꾸. 자꾸….

 “단야 씨. 손잡아도 돼요?”

 “안돼. 오래 닿으면 나 타 죽어.”

 “얼마나 닿는 게 오래예요?”

 “글쎄. 안해봐서 모르겠,”

 윤오는 일단 단야의 손에 깍지를 껴 잡았다. 기분 좋게 차가운 단야의 피부가 느껴졌다. 그리고 손목에 찬 시계를 유심히 봤다. 째깍째깍. 초침이 바쁘게 한바퀴를 돌아갈 때쯤 윤오가 물었다.

 “이번에도 1분인데. 어때요?”

 “괜…찮네…. 1분은 다 괜찮은가 보네….”

 단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괜히 윤오와 잡은 손을 한 번 봤다가 눈동자를 정반대쪽으로 돌려 애먼 아일랜드 위에 놓인 꽃 한 송이를 뚫어져라 봤다. 단야의 고개가 돌아가 있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어진 윤오가 단야의 손등을 콕콕 찔렀다. 단야가 퍼뜩 고개를 돌려 윤오의 얼굴을 봤다. 단야의 볼이 발그스레했다. 윤오는 그에 맘이 놓여 활짝 웃었다. 단야의 눈을 보며 한글자 한글자 깊은 마음을 담아 뱉었다.

 “단야 씨에게 1분만큼은 닿을 수 있어서. 저는 좋아요.”

 “뭐래. 됐어. 이제 놔. 그만 볼래. 피곤해.”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감은 눈은 기분 좋게 휘어져 있었다. 표정에서 다 티나는 사람이었네, 윤오는 생각하며 단야의 손을 살짝 놔 주었다.

 “잠 안자도 안 피곤하담서 뭐가 피곤해요! 거짓말쟁이! 거짓말해서 코 늘어난 사람은 못 봤나 봐?”

 “봤어. 그건 120년 전정도였는데,”

 “아, 그만! 듣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

 단야의 손을 얌전히 놓아준 윤오는 방으로 도망쳤다. 정말로 단야의 고증이 무서워서인지, 화롯불 가까이에 있기라도 한 듯 잔뜩 달아오른 귀가 부끄러워서인지는 윤오만이 알겠지만. 단야는 소파에 앉아 윤오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 자신의 손을 한번 쓸어봤다. 따뜻하고, 부드러웠지.

 

 *

 “작업 받으시는 분만 들어오실 수 있는데요.”

 “저희 어머니는 보호자가 꼭 필요한 상태라서요.”

 남자의 완강한 태도에 윤오가 제딴에는 가장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막아섰지만 소용은 없었다. 남자는 할머니를 끌어 집 안으로 들었다. 단야는 곤란한 얼굴인 윤오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남자와 할머니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저희 어머니가 신청자입니다. 치매세요.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데 병수발이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간병인을 쓸 형편도 아니고요. 아내도 더는 못 모시겠다고, 더 모셔야 하면 이혼하겠다 난리라 어쩔 수 없었어요. 어머니 맨정신일 때 다 합의된 사안이니 왈가왈부할 필요 없이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확실합니까?”

 “아, 이미 얘기가 다 됐다니까요.”

 “저는 한 가지 기준으로 작업합니다. 기사를 검색해서 같은 이유로 죽은 이가 나오면 작업은 진행됩니다.”

 단야의 옆에 서 있던 윤오가 단야를 살짝 찔렀다. 단야가 고개를 돌려 윤오를 바라봤다. 윤오의 눈은 남자를 향해 있었다. 아주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단야 씨, 그런데요. 치매 비관 자살을 다룬 기사가 꽤 있는 건 사실이지만 치매에 걸린 부모를 살해한 인면수심 치들을 다룬 기사도 많아요.”

 단야는 윤오의 말에 머리 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쉬이 작업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곤 남자를 향해 말했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니 며칠 어머니 여기서 지내게 하시고 돌아가시죠. 작업 결정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불평불만을 털어 놓으며 돌아가지 않고 버텼다. 당장 작업을 진행해 달라고. 단야는 인상을 찌푸렸다. 심기가 자꾸만 뒤틀렸다. 윤오는 단야가 일을 치르기 전에 몸을 움직였다. 남자를 끌어내다시피 해 집 밖으로 내보냈다. 다시 연락을 주겠다 일렀다.

 

 “남윤오. 너는 온기가 있는 사람이니까 나보다 나을 거야. 할머니 며칠만 돌봐 드려. 부탁할게.”

 남자를 내쫓고 돌아온 윤오에게 단야가 말했고 윤오는 그 말을 잘 들었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윤오는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는데, 하나는 할머니가 어린 아이와 같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얌전하셔서 간호하기 수월한 것을 그 아들래미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싶다는 것이었다. 윤오는 마음을 조금 놨다. 이대로 안정을 취하시다 보면 어느 순간 온전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윤오의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조용해진 틈을 타 할머니가 집을 나가 사라졌다. 윤오는 병원에서 나이트 근무 중인 단야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를 찾으러 나가겠다 전하고는 당장에 밖으로 내달렸다. 한참을 헤맨 끝에 길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찾아냈다.

 “할머니! 한참 찾았잖아요!”

 “선규니?”

 “아니요, 저는 윤오예요. 남윤오.”

 오른손을 가슴팍에 올려 스스로를 가리키며 자신은 남윤오라는 것을 또박또박 말하는 윤오를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느리게 눈을 두어 번 꿈뻑거린 할머니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또렷해졌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새로 어, 어,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할머니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좌우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어, 어, 그래. 다시 보니 우리 아들이 아니네요. 제가, 제가 또 밖에 나왔나 보죠…?”

 

 *

 윤오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락을 받자마자 병원에서 출발했는지 단야 역시 도착해 있었다.

 “일은 어쩌고요?”

 “거의 끝났을 때 전화가 온 거라.”

 “할머니 지금 맑은 정신이세요.”

 단야는 윤오에게 일단 할머니를 거실로 모셔가라 말한 후 놀란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차 두 잔을 준비했다. 할머니는 며칠을 단야의 집에서 생활했으면서도 처음 온 곳이라는 듯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윤오는 곁에서 아드님이 이곳에 잠시 맡기고 가셨고 작업 결정 여부가 정해지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설명했다.

 단야가 나란히 앉은 윤오와 할머니의 앞에 차를 놓아주고 자신은 둘의 맞은편에 몸을 앉혔다.

 “할머니.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린 작업은 안락사를 말하는 거예요. 아시나요?”

 “예. 압니다.”

 윤오가 물었고 할머니가 조용히 답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할머니. 이거 다 아드님이 시키신 거죠? 진짜로 죽을 생각으로 여기 오신 거 아니죠?”

 “아뇨. 제 결정으로 온 거 맞습니다.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우리 아들이 편히 가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맞나요?”

 “예. 고통 없이 가십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니 실제로 작업 받으시는 분 의사 확인 차 기다렸습니다.”

 이번엔 단야가 답을 했다.

 “그럼 작업해주세요.”

 할머니가 말했다. 목소리는 결연했으나 눈가가 떨리는 채로. 그 모습을 본 단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겪어본 적 없는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서 으레 보이는 약간의 두려움일까. 등 떠밀린 데서 온 망설임일까.

 “그럼 묻겠습니다. 제가 작업을 결정하는 방식은 하나입니다. 기사를 검색해 같은 이유로 죽은 사례가 나오면 작업이 진행돼요. 어떤 이유로 죽고 싶으신 가요?”

 “정신이 오락가락 해 아들내외가 병수발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간병인을 쓸 형편도 아니고요. 며느리도 힘들어 보이고, 더 모셔야 하면 우리 아들이랑 이혼하겠다 난리라 어쩔 수 없었,”

 “아니요. 아드님 입에서 들은 이유 말고요. 당신의 이유요. 당신만의 이유.”

 할머니는 쉬이 답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들이, 아들이 고생하니까요. 나 같은 건 사라져주는 게 맞죠. 며느리랑도 알콩달콩 살아야 하고. 걔가 제 가족 하나는 끔찍이 아끼거든요. 우리 선규가.”

 “어머님은 가족이 아니신가 봐요? 아낀다면 이렇게 보내는 게 맞는가 싶은데.”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윤오가 할머니의 두 손을 모아 잡았다. 괜찮다는 듯 토닥였다.

 “단야 씨, 말씀이 조금.”

 “아드님께 1시간 전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사라지셨다고. 하지만 여즉도 이곳을 찾지 않네요. 가족은 끔찍이 아낀다는 사람이.”

 “일이 바쁘겠죠. 아니면 차가, 차가 많이 막힐 수도 있구요.”

 할머니의 꾹 다문 입술이 울렁였다.

 “어머님, 정말 죽고 싶으세요?”

 “그렇다고 살아서 돌아갈 곳도 없는 걸요, 어차피. 여기서 죽여주지 않는다면 다른 곳을 찾을 거예요. 그치만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요. 아들한테 두 번, 세 번 버려지고 싶지는 않아요.”

 “버려지기 싫으면 버리세요, 먼저. 그리고 사십시오. 저는 작업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의 잇새로 울음이 샜다. 제발, 제발이 자음으로, 모음으로 흩어져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울음에 섞여 들었다. 단야는 윤오에게 할머니를 방으로 모셔가도록 했다. 윤오는 그 말을 따랐다. 감정적으로는 몰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단야의 판단이 옳았다. 할머니는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 게 아니었으니.

 

 할머니를 방으로 모셔 진정시키고 나온 윤오가 홀로 소파에 반쯤 누워 있는 단야의 곁으로 향했다.

 “단야 씨…. 할머니요.”

 “더 말하지 마.”

 “아뇨. 할머니 앞으로 어떻게 되시는 건가 하구요….”

 윤오의 중얼거림에 단야가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 난 작은 다용도실로 쏙 들어갔다. 윤오가 뒤를 쫓았다. 하지만 단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윤오는 다용도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들짝 놀랐다. 뭐야. 여기 왜 아래로 뚫린 계단이? 윤오가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 단야가 계단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 타는 표정의 윤오를 향해 지하실이야, 하고 계단을 올랐다. 와, 이 집엔 지하실도 있네요. 비밀 계단도 있구요. 제가 잠깐 잊었죠. 뱀파이어 집이란 걸.

 계단을 다 오른 단야는 다시금 소파로 가 반쯤 누우며 윤오에게 뭔가를 건넸다. 골드 바 세 덩이였다.

 “윤오야, 이거 가지고 가서 할머니 혼자 몸 편히 하실 수 있는 요양원 찾은 다음 입원시켜 드려. 비용 지불은 이쪽에서 하겠다고 전하고.”

 윤오는 생전 처음 보는 순금의 크기와 무게에 놀라 잠시 멈춰 있다 단야의 말이 끝나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야는 피곤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고 혼자 남은 윤오는 단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살짝, 아주 사알짝 순금을 물어봤다. 이 자국이 여실히 남는구나. 그래. 이거 가지고 할머니 좋은 보금자리 찾아드리자. 윤오는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

 윤오와 할머니가 나가는 도어락 소리가 난 후, 단야는 방에서 나와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응, 선아. 제일 끔찍하게 찢긴 무연고자 시신으로 하나 부탁해.”

 “안녕하세요. 양선규 씨. 어머니 찾아서 작업 마쳤습니다. 시신 처리는 저희가 하나 그래도 어머님인데 마지막 모습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다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오시면 좋겠는데.”

 

 얼마 안가, 선이 도착했고 그 다음으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야는 쭈뼛거리는 남자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남자의 손을 끌어 작업실로 들여보냈다. 남자는 자신에게 닿은 소름끼칠 만큼 찬 단야의 손에 퍼득 놀란 눈치였다.

 작업실엔 혈흔이 낭자했다. 가운데는 이리저리 찢겨 원래 사람이었던 게 맞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당신이 어머님께 한 짓입니다.”

 단야의 말에 남자는 까무러쳤다. 벌벌 떨었다. 그러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이딴 짓을 할 수가 있느냐고. 당신이 인간이 맞냐고. 단야는 매서운 눈을 했다..

 “인간 아니지. 인간은 아니죠. 어머니 버리고 도망친 새끼가 인간 타령을 하다니 오늘 들은 이야기 중에 제일 재미있네.”

 “경찰 부를 거야. 너 이년, 가만 안 둘 거라고!”

 “경찰? 좋아요. 불러요. 나도 당신이 살인 의뢰한 계약서 보여주면 되니까. 같이 빵에 가죠 뭐. 근데 그거 아십니까? 당신은 못 나올 테지만 나는 나올 거란 거. 유전무죄 무전유죄잖아요. 나 돈 많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힘도 있고요.”

 단야는 송곳니를 드러내 보였다. 남자는 겁에 질려 냅다 도망쳤다. 두 발로 뛰다 다리가 굳어 네 발로 기는 꼴을 보이면서까지 이 집에서 벗어나려 바둥거렸다. 남자가 도망치자 선이 무서운 속도로 남자를 쫓았다. 노력이 무색하게 남자는 쉽게 선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내주었다.

 “그리고 쟤한테는 나도 있어요. 아저씨.”

 선 역시 송곳니를 드러냈고 남자는 오줌을 지리며 피가 식는 듯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남자는 오늘 있었던 일을 비밀에 부치며 발설 시 죽겠다는 서약에 서명을 한 후 문이 열리자 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끝까지 제 어미 시신은 챙기지도 않네.”

 단야가 남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말했다. 선이 단야의 곁에 서 어깨를 감싸 안아 다독였다.

 “단야야, 이래서 인간 믿을 거 못된다는 얘기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 말고 나 믿는 게 천 배쯤 이득이고.”

 “다시 가져가. 무연고자 시신. 장례 신경 써서 잘 치러주고. 비용은 내가 다 낼게.”

 “됐어.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뭔데.”

 단야가 소리내어 풉 웃으며 물었고 선은 답을 고심하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댔다가 하며 장난스레 굴었다.

 “우리 사이는 아아아주 좋은 사이지!”

 선이 말했고 단야는 맥 없는 놈이라며 웃어 넘겼다. 선은 단야를 따라 웃었다. 속이 썼다.

 

 *

 “다음 작업 신청자가 글쎄 비건이래.”

 “비건이면 뭐가 달라요?”

 그간의 소동을 뒤로한 채 나른한 주말 오후를 만끽하던 단야가 무심히 말했고 윤오가 물었다.

 “피가 깨끗해. 콜레스테롤이란 게 없으니까. 엄청 맑고 목넘김도 좋고. 나는 그래서 비건이 좋더라고.”

 무려 열 셋의 단어 중 윤오의 뇌가 처리한 단어는 가장 끝의 한 단어뿐이었다. 좋더라고. 좋더라고. 좋더라고. 윤오는 알았다. 단야가 어떤 의미에서 좋다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그냥 선호의 문제인 것, 취향의 표현인 것. 하지만 알 수 없는 질투심이 속에서 끓었다. 비건을 좋아하는 군요. 사랑하는 군요, 단야 씨. 윤오는 그날로 채식을 하겠다 설치기 시작했다. 몸에 무리가 없도록 락토오보부터 찬찬히 시작해야 적응할 텐데 무조건 비건이어야 한다며 채소만 먹어댔다. 단야 씨, 저 비건이에요. 이런 저도 좋으세요? 속으로 생각하며 흐흐 웃었다. 그리고 삼일 째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단야를 찾아 한 마디 남겼고 단야는 이마를 칠 수밖에 없었다.

 “단야 씨. 하늘이, 하늘이 조금. 핑 돌아요….”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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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2019 / 11 / 10 240 2 7060   
3 3화 2019 / 11 / 10 230 3 10231   
2 2화 2019 / 11 / 9 261 3 6228   
1 1화 2019 / 11 / 9 428 2 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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