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9화
작성일 : 19-11-10 00:23     조회 : 231     추천 : 2     분량 : 765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9화

 

  “윤오 씨 안녕. 자주 보네?”

  싱긋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얄미웠다. 언제나처럼 잘빠진 슈트를 입은 선이 거실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잠에서 막 깬 윤오는 여전히 졸린 척 어영부영 인사했다. 사실 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기 싫어 그랬다.

  “어디 가세요?”

  방에서 나갈 차림을 하고 나온 단야에 선이 일어났다. 황급히 물어봤으면서, 단야와 마주치자 윤오가 일부러 슥 눈을 피했다. 어제 결국 제 어깨를 짚은 단야의 손을 끌어 잡고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운 게 민망해서였다. 왜 우는 지 끝까지 말도 제대로 안하면서 엉엉 울기만 하는 윤오가 짜증날 법도 한데, 단야는 윤오가 그러다 결국 지쳐 잠들 때까지 손을 내줬다. 윤오는 깊은 잠을 잤다. 내어지는 손에 마음이 두근 거리는 게 울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꿈에서 한참 생각했던 것 같다.

  “시골 집.”

  “시골에 집이 있으셨어요?”

  “갔다 올게.”

  “윤오 씨 안녕! 아. 모를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윤오 씨 오른쪽 볼에 침자국 있다? 귀여우니까 둬도 될 거 같기도 하고.”

  단야가 먼저 나갔기 망정이지, 있었으면 윤오는 선을 더 미워할 뻔 했다. 윤오가 소매로 볼을 턱 가렸다.

  “에.”

  네라고 대답하기 싫어 어와 네의 중간 발음으로 뭉그러뜨렸다. 에.

 

  *

 

  “침자국 없는데 애를 왜 놀려?”

  먼저 차에 탄 단야가 운전석에 따라 타는 선에게 한 마디했다. 귀엽잖아. 웃음기 없는 선이 아무렇지 않게 답하며 안전벨트를 맸다. 가도 되지?

  “어.”

  단야가 앞만 보며 답했다. 그러지 않으면 떠나는 집을 한 번 더 볼 거 같아서였다. 영영 떠나는 것도, 윤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자꾸 눈이 갔다. 어젯밤에 내내 울던 윤오는 알 수 없는 말들만 했다.

  제가...헝.... 내가.. 갔어야...흐으... 했는데에..... 단, 야..씨.... 크응... 자꾸 울어서... 죄송...해...허어어엉......

  우는 모양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단야는 저 얼굴이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근데 왜 가는 거야. 저번 달에 가을 보수 했잖아.”

  “벼락을 맞았대. 지붕에 맞아서 몇 군데가 허물어지고, 돌도 날라갔나봐.”

  “그 참에 다 깨졌으면 좋았을걸.”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또.”

  선이 핸들을 부드럽게 돌렸다. 옆에 단야가 앉지 않았어도, 그 집에 가는 길은 이렇게 익숙했다. 눈감고도 갈 정도였다.

  “마음에 없는 소리 아니야. 정말이야.”

  단야가 눈을 감았다. 어차피 집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 이 집을 가는 길에 잠을 자면 꼭 그렇게 꿈에 민호가 나왔다.

 

  *

 

  “그럼 너 이제 시장에도 못 나가? 대모님이 그것까지 금지 하신 거야?”

  민호가 찐 고구마 껍질을 까며 웃었다.

  “재밌냐?”

  “아니이. 재미 없지....”

  “손 떼 봐.”

  단야가 입을 가린 민호의 손을 잡아 내렸다. 민호가 참지 말고 크게 웃었다. 아 정단야!! 어떡해!! 이 마을을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단야가 민호의 팔을 소리나게 퍽 때렸다. 아야.... 민호가 과장된 몸짓으로 옆으로 쓰러져 툇마루에 한 번 눕더니 다시 벌떡 일어나 단야 앞에 고구마를 내밀었다. 껍질 예쁘게 까진 고구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그러게 왜 사람들을 다 살리고 다녀.”

  “네 정인이 능력이 좋은 걸 어떡해.”

  “죽기 직전 사람까지 다 살려버리니 사람들이 당연히 너가 산에서 내려온 신이라 생각하지.”

  “아프다고 우는 애를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

  “그럼 그 영감님은.”

  “...올해 농사 거둘 때까지만 살려달라 하시는데...”

  “그럼 그 동네 백수 도련님은.”

  “그 정인이 서울에 가서 아직 안 왔다고 올 때까지만.... 야.. 박민호...”

  민호가 또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웃음은 언제봐도 유쾌해서 더 얄미웠다. 단야가 뚱한 표정으로 고구마를 먹었다. 민호가 그 입가에 빠르고 작게 입맞췄다.

  “착해. 정단야.”

  “....나도 그 사람들이 날 모시겠다고 사당까지 짓겠다 나설 줄은 몰랐지.”

  “아깝다. 지으면 나도 거기에 돈 몇 푼 보태는 건데.”

  단야가 그러기만 해보라는 얼굴로 고구마를 씹었다. 뱀파이어가 된 후 병증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몰래몰래 고쳐주던 게 어쩌다 들킨 게 화근이었다. 저 편 마을 사람들 병까지 손을 댄 단야를 사람들은 신령한 이로 여기다 못해 사당을 짓자며 돈을 모았다. 한국 전쟁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밥과 약, 그리고 신앙이 된 탓이었다. 그걸 알게된 대모가 단야 외출 금지령 치유 능력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단야는 꼼짝 없이 한동안 집에만 있게 생긴 거였다.

  “그러고보면 되게 신기해.”

  “뭐가.”

  “단야 남의 말 되게 안 듣잖아. 그런데 대모님 말은 꼬박꼬박 듣는게.”

  민호는 얄미운 말을 되게 사랑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어서 단야는 종종 지금처럼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랑도 잘 어울리는 게.”

  민호가 어느새 하나 더 깐 고구마를 건넸다. 단야가 그걸 받아들고 입으로 바로 넣으면, 그걸 또 그렇게 기특하고 예쁘다는 얼굴로 봤다. 그럼 단야는 그게 그렇게 부끄러워 아닌 척 고구마만 먹었다.

  언젠가는 민호에게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 건 다 네 덕이라고. 네 덕분이라고. 그러니 너와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럼 민호는 뭐야. 나랑 언젠가는 헤어지려 그랬어? 그 하얀 이를 드러내며 또 웃겠지만.

  “그래도 같이 앉아서 이렇게 있으니까 좋다. 그렇지.”

  민호가 햇볕이 드는 툇마루를 손으로 쓸었다. 마당에는 민호가 좋아하는 과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너른 마당 그 어느 곳도 그늘진 곳이 없었다. 고루고루 햇빛을 받고 있었다.

 

  민호를 만나기 전, 단야는 한동안 이 집에 박혀 있었다. 뱀파이어가 된 후 평생 남들과 섞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같은 인간의 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게 끔찍했다. 이 산골에 숨어 살며 평생 남을 뜯어 먹지 않으리라. 대모와 선이 얻어 오는 피를 묻지 않고 먹으면서, 제 손으로 피를 쥐어 짜는 게 무서워 죽 이 산골에 박혀 있었다. 그러던 중 민호를 만났다.

  민호는 한국군이었다. 처음 민호를 만났을 때 단야는 제 뱀파이어로서의 본능이 눈을 뜨는 걸 느꼈다. 어디에 총을 맞은 지도 모를 만큼 피투성이인 몸이었다. 산을 두르며 약초를 캐던 단야를 붙잡은 게 그 피의 냄새였다. 단야는 숨을 깊게 들이쉬다 정신을 차렸다.

  저 사람에게서 멀어져야 해.

  아니면 제가 두려워 하던 것처럼 목에 이빨을 박고 그의 온 몸에 피를 다 빨아 마실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얼른 바구니를 챙겨 달아나려던 단야를 잡은 건 살려... 주세요... 그 한 마디와 함께 저를 응시하는 눈이었다. 군인이라면, 저 정도 총상을 입은 거면 저 역시 몇 십 발의 총은 쏘았을 텐데, 어쩌면 눈이 그렇게 이 끔찍한 전쟁 따위 모른다는 듯 순진하고 깨끗할 수 있는지. 단야는 그 이후로도 그게 신기해 한참 민호의 눈을 그렇게 들여다 봤었다.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이윽고 뒤를 돌았다.

  몰라. 업고 가다 먹고 싶으면 그냥 먹을 거야.

  절대 그러지 않겠다 다짐할 거면서 단야는 민호가 듣지도 못할 엄포를 놓고 민호를 부축했다. 집으로 옮기고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았다. 그때 알았다. 피로 물든 군복에 적힌 이름을. 최 민 호. 팔과 다리에 총이 스친 흔적이 보였다. 단야는 처음으로 제 치유 능력을 썼다. 빨리 나아서 떠나버려라. 그런 마음으로 쓴다며 저를 변호했지만, 사실 민호가 빨리 낫길 바랐다. 어서 눈을 떠서 그 눈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 덕에 민호는 빠르게 회복했다. 민호가 제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간호는 마을로 내려가지 않는 단야의 몫이었다.

 

  “뭐해요?”

  단야가 한참 마당의 나무와 풀들을 다듬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민호가 방문을 열고 앉아 물었다. 급한대로 키가 꽤 큰 선의 옷을 입혔는데도 남지 않는 품에 조금 날랐다. 선만큼이나 키가 큰 민호였다.

  “가지 다듬는 거예요.”

  “왜요?”

  “잘 자라라고요.”

  “그냥 둬도 잘 자라는데.”

  단야가 간섭 말라는 얼굴로 민호를 봤다. 순진하다 생각했던 눈에 생기가 가득했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이에요. 그냥 둬요. 그대로 둬도 잘 자라요 걔네. 나 믿어 봐요.”

  그런데 그 웃는 얼굴이 진지했다. 단야는 그제야 양손 가득 쥐고 있던 풀들을 놓았다. 딱히 민호를 믿어서 그런 건 아니라며 저만 들을 변명을 했다.

 

 

  “다 나은 거 같은데요.”

  치유 능력도 여러 번 썼고, 안 썼대도 다 나았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 이제 이 산골에서 나가 마을로 가봐도 될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민호는 아니라며 자꾸만 꾀병을 부렸다. 내일은 내려 가시라 하면 발병이 난 것 같다 했고, 발병이 다 나은 후에는 눈병을 핑계로 댔다. 단야는 그 핑계들을 다 알면서도 굳이 뭐라 하진 않았다. 민호가 내려 가면 사실 가장 아쉬울 건 단야였다. 민호와 여러 날을 보내면서, 단야는 민호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단야는 그게 좋아졌다.

  “저 꼭 가야 해요?”

  “그럼요?”

  묻는 말에는 답을 않더니 항상 빤하던 얼굴 같지 않게 빨개졌다. 깜깜한 여름 밤인데, 호롱불 하나 밝힌 방문 하나 열었을 뿐인데, 달빛이 어찌나 밝던지 그 얼굴이 보였다. 단야도 알았다. 민호와 제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거. 하지만 그래선 안됐다. 민호는 제가 그저 전쟁통에 이 산에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단야는 영원히 늙지도, 민호 몰래 피를 먹어야 하는 괴물이었다. 어쩌다 손이 스칠 때마다, 대화 끝에 눈이 마주치고 말이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마다 단야는 민호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민호는 원체 다정한 사람이었다. 장난끼 어린 눈으로 농담을 치다가도 꼭 그 끝에는 다정한 말이 하나씩 붙었다. 그러니 단야가 제가 피를 먹어야 살수 있다 고백해도, 분명 조금 놀라겠지만, 어쩌면 그 끝에 또 괜찮다는 말이 붙지 않을까. 그 다정함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털었다. 민호가 마을 사람들에게 여기 괴물이 산다고 말하진 않을 거였다. 하지만 민호가 저를 지금과 다른 눈으로 보는 건, 괴물이라 여기며 피하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그래서 단야는 조금씩 민호를 밀어냈다. 산에서 내려 가라는 것도. 더이상 깊은 마음으로 민호를 대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여기서 단야랑 계속 살면 안되나.”

  혼잣말 같은 말은 실은 고백이었다. 단야는 제가 사랑에 빠진 그 눈만 봐도 알았다.

  “계속 살면 뭐하게요.”

  “그냥 계속 이렇게. 같이 감자도 먹고, 꽃도 보고, 대모님이랑 선이랑 빨래도 하고, 우리 둘이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게 어쩜 그렇게 다 단야가 함께 하고 싶은 거라서, 단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면 볼썽 사납게 민호를 붙잡을 것 같았다.

  “재미 없게.”

  “난 재밌는데.”

  민호가 웃었다.

  “안돼요.”

  “왜요.”

  “왜냐하면... 내가...”

  늘어지는 단야의 말끝을 따라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단야는 망설였다. 말을 할까. 말까.

  저는 사실 사람의 피를 먹어요. 민호랑 같이 밥 먹는 거. 그거 다 눈속임이에요. 대모님이랑 선이 밥 먹는 거 봤어요? 못 봤죠. 그 사람들도 피를 마시거든요. 나처럼. 나는 민호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밥은 먹지만, 뒤에서는 피를 마셔야 해요.

  민호가 차분히 단야의 말을 기다렸다.

  “가요.”

  단야는 또 말하지 않기를 택했다. 민호의 눈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모르는 게 나을 것이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안 가겠다면요.”

  결의가 선 목소리였다.

  “왜 안 가고 싶은지 안 물어봐요?”

  “네.”

  곧바로 대답하는 말에 민호가 원망 어린 눈을 했다.

  “왜 안 물어봐요. 안 궁금해요?”

  “아니요. 궁금해요.”

  “그런데...”

  “그런데 안 물어볼 거예요.”

  물어보면, 나는 결국 당신을 사랑하고 말 거니까.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고, 당신을 놓고 싶지 않아할 거니까. 그리고 당신은 거짓된 나를 사랑하고, 나는 진실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을 사랑하려면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질테니까. 그럼 당신은... 당신은....

  “물어봐 주세요.”

  단야의 결심에는 수많은 문장이 필요한데, 어쩜 민호는 이렇게 짧은 문장 하나로 이 모든 결심을 깰 수 있는지 궁금했다.

  “...왜 안 가고 싶은데요.”

  “좋아해서요. 단야 좋아해서요. 그래서 게속 같이 있고 싶어서요.”

  이것 봐. 단야는 민호의 목을 끌어 안고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대신 그 팔을 잡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지금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면 어떨까. 단야는 민호를 내려 보내야했다. 어차피 끊어질 연이면, 남아 있는 자신은 평생 그 끊음을 그리워하며 살게될까 무서웠다. 그건 민호의 경멸 어릴 시선을 생각하는 것만큼 두려웠다. 지금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면, 그럼 민호는 질겁하며 떠나지 않을까. 그럼 나는 잠시 아프겠지만, 외롭겠지만. 나중에 오래 아픈 것보다 그게 나았다. 단야는 마른 입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나 사람 아니에요.”

  차마 민호의 표정을 마주하지 못해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 둘 셋. 이 눈을 떠도 앞에 민호가 전처럼 자신을 보고 웃어줄까 확신이 없었다.

  “알아요.”

  단야가 눈을 떴다. 저보다 큰 키의 민호가 허리를 숙여 저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나 다 아는데.

  “뭘 알아요?”

  “단야 사람 아닌 거. 눈치 채고 있었어요.”

  단야의 인상이 급격히 험악해졌다.

  “알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왜 안 말했어요?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알고 있는데도...!”

  “네. 알고 있었어요.. 안 말한 건 단야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말한 적 없어요. 단야가 나 치료해줄 때 느꼈어요. 그리고, 그리고 알고 있는데도 좋아해요. 알아서 좋아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를 따라 민호가 점점 더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서든 마주치려는 눈이 처음처럼 예뻤다.

  “단야는요. 나 아직 대답 못 들었는데.”

  웃는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여력했다. 단야는 뱀파이어가 된 후 처음으로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다. 민호의 목을 끌어 안았다. 물기 위해서도, 피를 빨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좋아해서. 너무 좋아해서. 그와 있는 이 여름 밤에 풀벌레 소리까지 다 기억하고 싶어서. 끌어 안은 이 따뜻함과 그보다 따뜻한 이 다정함까지 영원히, 영원히 기억하려고.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

 

  “잘 잤어?”

  눈을 뜨자 착잡한 얼굴의 선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시동을 끈 지 오래인 것 같았다. 밖은 깜깜했다. 단야가 몸을 일으키고 차문을 열고 나섰다. 풀이 잔뜩 자란 마당이 보였다.

 

  이 꿈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단야를 잡아가려는 사람들. 저 계집이 요괴래 요괴. 소리를 지르는 단야와 그 앞을 막는 민호. 사람들은 총을 들고 왔다. 민호를 스쳤던 총이 단야를 향했다. 비켜! 저 계집은 괴물이야!! 민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아무도 민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총부리가 단야를 향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단야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언젠가 운좋게 민호를 스치고, 단야를 만나게 했던 총알은 두 번의 행운을 허락하진 않았다. 울부짖는 단야의 앞에 민호가 쓰러졌다.

 

  이대로 그 영원한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그러나 언제나 꿈은 깨기 마련이었다. 찬 가을 밤에 단야가 팔을 쓸었다. 마당. 언제까지나 따뜻할 것만 같았던, 좋아해요, 영원히 그 고백 속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마당이었다.

 
작가의 말
 

 수요일에 만나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22화(완) (2) 2019 / 11 / 10 274 2 4438   
21 21화 2019 / 11 / 10 232 2 6798   
20 20화 2019 / 11 / 10 223 2 6780   
19 19화 2019 / 11 / 10 225 2 9096   
18 18화 2019 / 11 / 10 233 2 8124   
17 17화 2019 / 11 / 10 232 2 5827   
16 16화 2019 / 11 / 10 221 2 5811   
15 15화 2019 / 11 / 10 218 2 9157   
14 14화 2019 / 11 / 10 236 2 9594   
13 13화 2019 / 11 / 10 229 2 6011   
12 12화 2019 / 11 / 10 230 2 9362   
11 11화 2019 / 11 / 10 220 2 6430   
10 10화 2019 / 11 / 10 249 2 7686   
9 9화 2019 / 11 / 10 232 2 7655   
8 8화 2019 / 11 / 10 222 2 6053   
7 7화 2019 / 11 / 10 242 2 6146   
6 6화 2019 / 11 / 10 232 2 8113   
5 5화 2019 / 11 / 10 243 2 7641   
4 4화 2019 / 11 / 10 240 2 7060   
3 3화 2019 / 11 / 10 230 3 10231   
2 2화 2019 / 11 / 9 261 3 6228   
1 1화 2019 / 11 / 9 428 2 767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