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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안락한 게 아니고
작가 : 수요일
작품등록일 : 2019.11.9

"저 물어주세요."
안락사 시술소를 찾은 남자와 뱀파이어 여자의 차갑지만 뜨거운 동거.

 
5화
작성일 : 19-11-10 00:17     조회 : 242     추천 : 2     분량 : 7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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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이 집에서 가장 넓고 화려하게 꾸며진 방은 2층 복도 맨 안쪽 방이다. 작업실과 반대 방향에 있는. 그 화려한 방은 단야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가는 곳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방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건, 그것도 약 30초에 한 번씩 침대 위를 이리 뒤척였다 저리 뒤척였다 한다는 건 아주 심란하다는 뜻이었다.

  제가 단야씨를 어떻게 이해하냐고요!!!!

  그냥 골 때리는 애라 생각했는데 걔 때문에 이렇게까지나 골 아플 줄은 몰랐다. 단야는 치렁치렁 늘어져 있던 가지가 말끔하게 정리돼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나무가 그렇게 늠름하게 푸른 줄 몰랐네. 모로 누운 얼굴에 자조적인 웃음이 떴다. 안다. 윤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라는 걸. 때마다 가지를 치는 게, 영양을 먹이고 더 푸르고 바르게 자라게 하는 것이 그 나무를 도와주는 거란 것도, 그 아래 핀 꽃들이 햇빛을 받아 더 잘 자랄 거란 것도, 그리고 정원이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거란 것도 알았다. 그런데 단야는 그게 잘 안됐다. 다 한 사람 때문이었다.

  민호야.

  단야가 팔을 들어 제 눈을 가렸다. 그 얼굴이 떠오를 때면 나오는 습관 같은 거였다.

  민호야.

 

 *

 

  토스트를 구울 거면 토스트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윤오는 아까부터 계란물 묻힌 토스트를 평소보다 조금씩 더 태우고 있었다.

  아침에 단야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우유도 한 잔 따르고, 토스트 구워서 위에 케첩으로 라고 쓰려고 했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단야는 이미 쇼파에 앉아서 아침 신문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 안 주무시지... 분명 저 신문도 바닥에 떨어진 게 아니라 기다렸다 제 손으로 직접 받았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안녕히 주무셨어요... 조용히 말하는 윤오 말에 별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 아직까지 화난 것 같았다. 자. 침착하게 계획대로 토스트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윤오는 조용히 계란을 풀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윤오는 새벽이 깊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밤새 뒤척이며 속 탄 탓이었다. 사실 얹혀 사는 주제에(그것도 죽으러 왔으면서 피도 안 줬다. 신뢰 부족.) 바라는 것도 많고(얼마 전에는 추워서 냉장고 안이 차라리 더 따뜻하려나... 혼잣말 하던 걸 들켜서 단야의 카드까지 받았다. 가서 그걸로 겨울 용품 사와. 니 방에 둬. 넵 감사합니당....) 일도 제대로 못 돕고(나 때문에 화나서 어제 손님도 안 받으셨지...) 게다가 정원까지 마음대로 헤집어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게 더 예쁘지 않나... 자기 변명을 하다가도 다시 고개를 저으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주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는 정원일 텐데 너무 주제 넘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건데. 죄송하다고 사과는 제대로 못할 망정 몽니를 부렸으니 단야가 내일 아침에 당장, 아니 지금 당장 방에 쳐들와서 야 너 나가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깜쮝한 토스트 사과 작전까지 세우게 됐다. 쫓겨나서 당장 갈 곳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정말 사과하고 싶었다. 매사 무덤덤하고 높낮이 없던 단야가 그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단야에게 소중한 것인가 싶었다. 그런 생각까지 미친 윤오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내일 꼭 말해야지. 죄송해요. 제 마음대로 해서.

  “저어... 단야 씨. 아침...”

  “안 먹어. 지금 출근해야 돼.”

  말 시키자마자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는 모습에 울컥했다. 원래 안 먹는 건 아는데... 그래도 집안 분위기가 지금 이런 상황인데 내가 용기 내서 말 건건데, 어떻게 그렇게 무시를 하세요... 서러움 차오르는 마음 털어놓을 틈도 없이 단야가 집 밖을 나갔다. 눈 깜짝할 새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윤오는 단야가 나간 현관을 한참 보다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아일랜드에 예쁜 접시에 담긴 토스트만 덩그러니 있었다.

  S O R Y T_T

  R을 빼먹었네.... 그래... 안 보시는 게 나을 뻔 했다... 삐뚤빼뚤한 알파벳을 포크로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래도 나갈 때 인사는 하고 가시지. 내가 여기 탄 부분 가위로 하나하나 다 잘랐는데... 윤오가 토스트를 포크로 찍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맛만 좋았다. 따라 놓은 우유 한 모금도 안하고 빵을 입안으로 구겨 넣었다. 속이 막혔다. 하루종일 이렇게 꽉 막힌 기분일 것 같았다. 일어날 때는 아직 아침 해도 안 뜬 어둠이 전부였는데, 어느새 창 밖 정원은 햇빛을 한가득 받고 있었다.

 

 *

 

  구워 놓은 토스트를 꾸역꾸역 다 먹고 한참 소화제를 찾았지만, 뱀파이어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손을 꾹꾹 누르며 김치찌개도 끓이고 밥도 했다. 그러다 쇼파에 잠이 든 것 같았다. 어젯밤에 멋진 사과 계획을 세우느라 잠을 잘 못 자서였다. 단야가 들어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깬 윤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잠들기 전, 퇴근하고 오시면 꼭꼭 죄송하다고 해야지. 토스트도 케찹도 없어서 좀 허전하겠지만, 꼭 죄송하다고 해야지. 멋진 계획(ver.2)를 세웠었다. 윤오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단야를 붙잡았다.

  “저녁 안드세요?”

  “아까 안먹는다고 했잖아. 예전에도 나 사람 밥 안 먹는다고 했고.”

  “그래도... 그 어제.. 손님 돌려 보내셔서... 피도 안 드셨잖아요.”

  “상관할 바 아니야.”

  상관할 바 아니라는데, 돌아서서 가던 길 가는 발걸음을 붙잡을 용기는 또 생기지 않았다. 탁. 문 닫히는 소리가 아침부터 왜 그렇게 서운한 지 모를 일이었다. 안 먹는 거 누가 몰라서 제가 이러고 있는 줄 알아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찌개도 2인분, 밥도 2인분 했는데. 단야가 쏙 들어간 방문에 대고 윤오는 속으로만 제 마음을 말했다. 내가 다 먹고, 이 집 살림 다 거덜내야지. 괜한 심술은 서운한 마음을 숨기려 부리는 거였다.

 

  문을 닫아도 밖에 윤오가 있는 게 다 느껴졌다. 아침에도, 지금도 먹지 않는다는 밥을 권하는 이유가 빤했다. 저도 아차 싶은 거겠지. 그걸 다 알면서도 단야는 윤오의 사과를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식의 사과를 받아본 적이 드물 뿐 아니라, 한 번도 민호와 관련된 일의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윤오의 사과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혹은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게 서툰 고집같다는 거, 스스로도 알았다.

  언제나처럼 퇴근 후 거실 쇼파에서 책을 읽으려 방을 나서던 단야가 멈칫했다. 1층에는 윤오가 있겠지. 제 마음 하나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윤오의 미안함 가득한 눈을 마주치는 일은 어려웠다. 솔직히 불편했다. 그냥 방에서 읽을까 하다 문고리를 돌렸다. 그래도 내 집인데. 제 유치함은 애써 외면했다.

  단야가 즐겨 앉는 쇼파는 바깥 정원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거기 앉아 정원을 보면 낮고 높은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참 예뻤다. 바람이 불면 부는 자리가 보였다. 나무를 타고 흐르는 바람이 단야의 정원에 가득할 때, 단야는 가끔 그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늘도 정원은 역시나 잘 보였다. 그러나 그 모양은 평소와 달랐다. 우거지고 어지러운 모양이 아니라, 정갈하고 깔끔했다. 나무 사이로 숨어 있던 가지들이 드디어 저 여기 있어요 얘기하는 것 같았다.

  집처럼 나무도 쓸어줘야 하는 걸까. 그래야 더 제 빛을 제대로 받는 걸까.

  단야는 또 습관처럼 민호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정원부터가 민호를 잊으려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증거였으니까.

  오랜만에 간 시골집은 먼지가 제법 소복히 쌓여 있었다. 때마다 와서 닦고, 성치 않은 데를 만지는 데도 그랬다. 없는 그새 삐걱거리는 처마를 선이 고치는 동안 단야는 마루를 닦았다. 한때 닳도록 앉아 있던 마루였다. 민호와 죽을 때까지 여기 앉아 바람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고 싶었다. 민호는 풀은 제멋대로 자라게 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단야가 엉킨 풀이라도 다듬을라치면 와서 그런 단야를 안고 손을 잡았다.

  그냥 두자. 그러고 싶을 수도 있잖아.

  단야는 그 점을 사랑했다. 민호를 사랑해서 그것까지 사랑한 것인지, 그런 민호를 사랑한 것인지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 세월인데 단야의 평생에 비하면 너무 찰나 같은 순간이라는 게 괜히 서러웠다.

  “저기요....”

  옛 생각에 가라앉던 단야를 불러 올린 건 윤오였다. 단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윤오를 봤다. 민호의 생각을 질리도록 오래해본 적은 없었다. 꼭 그 끝은 울음이 되고 말았으니까.

  “왜.”

  “...죄송해요.”

  뻗대던 얼굴은 간데없고 눈썹을 아래로 축 내리깐 얼굴만 있었다.

  “단야 씨한테 그 정원의 모습이 소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그냥, 마음 상하시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저렇게 하면 나무가 더 잘 자라겠다. 햇빛도 더 골고루 받아 좋겠다. 그랬던 거예요. 그래도 죄송해요. 단야 씨 정원인데. 제가 뭐라 할 건 정말 아니었는데...”

  “아냐.”

  단야가 우물쭈물 이어지던 말을 끊었다. 담백하고 단호한 말투였다.

  “네 말이 맞아. 정원을 키우려면 저렇게 때마다 가지를 쳐줘야지. 오래되고 늙은 가지들은 가고 파릇파릇 새 가지들이 잘 자라게끔 해야지. 나무가 너무 많은 무게를 지고 있지 않게끔.”

  정원을 보며 말하는 모양이 너무 쓸쓸해보여서, 윤오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항상 건조하다 못해 까끌하다 싶던 모습에서 이런 얼굴이 나오는 건 조금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었어?”

  “어... 아니요. 아무래도 혼자 먹기가 좀...”

  “혼자 먹어도 돼.”

  “...별로 안 좋아해요.”

  “뭐?”

  “혼자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

  단야가 한숨을 작게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이 많이 갔다.

  “가자. 같이 먹어.”

  윤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순간, 단야는 윤오가 웃을 때면 햇살이 그 얼굴에 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사랑하는 정원처럼.

 

 *

 

  “신문기사도 타이틀 이렇게 뽑으면 아무도 안 읽어요.”

  역시 안 하기로 한 건 안 하는 게 맞아. 같이 밥 먹어줬더니 그새 힘이 난 꼴을 보며 단야는 조금 후회했다. 괜히 또 그랬다. 첫 만남부터 그러더니. 이상하게 단야가 세운 규칙은 윤오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졌다. 처음에야 내가 세운 규칙인데 누가 뭐라 하겠어, 했다지만 이렇게 하나 둘씩 허물어지는 걸 경계할 필요는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이건 어때요?”

  윤오가 어디서 가져온 종이에다 뭔가 쓱쓱 쓰더니 단야에게 내밀었다. 뭐 대단한 건진 모르겠지만, 눈을 반짝이며 내미는 게 웃겼다. 경계라니. 사실 뭘 경계해야할 지도 몰랐다.

 <긴 잠으로 당신의 꿈을 이뤄 드립니다.>

  종이를 보는 단야를 윤오가 긴장한 눈으로 기다렸다.

  “어때요...?”

  “뭔데 이게?”

  “시술소요. 생각해봤는데, 홍보나 이런 게 더 잘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준비한 것처럼 꺼내는 말에 단야는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쇼파로 등을 뒤로 기댔다.

  “사람들 많이 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아프지 않게, 아 조금은 아프겠지만... 아무튼 아프지 않게 이룰 수 있고... 그러니까 주, 죽을 수 있고... 단야 씨는 피 먹어서 좋으니까...”

  단야가 계속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물론 속으로는 말도 안되는 계획이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홍보라니. 여기 뱀파이어 살아요!! 하고 광고할 일 있나. 그리고 어차피 지금 손님 수가 단야에게는 딱 적당했다. 한 번에 많은 피를 빨기 때문에 인간 식사처럼 매일 식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수술실에서 피를 보고 달려든다거나 하는 불상사도 없었다. 하긴, 윤오 말마따나 얼마 전 돌려보낸 손님 때문에 약간 피가 모자란 기분이 들긴 했다. 다음 손님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다시 앞에서 신나게 얘기하는 윤오에 단야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헉. 왜 그러세요...”

  “...뭐가.”

  찔리면 일단 발뺌하는 게 상책이었다. 단야는 뻔뻔한 얼굴을 하려 애썼다.

  “방금 저 보고 입맛 다시셨잖아요. 침 이렇게 꿀꺽 하면서. 눈빛도! 눈빛도 딱 그랬어! 단야 씨 배고픈 거 맞죠. 인간 음식 먹어도 배고픔 안 가신다고 했으니까... 그 피 안 먹어서 배고픈 거죠. 그래서 저를.. 저를....”

  “안 그랬어.”

  “그랬어요.”

  “안 그랬다니까.”

  “분명해요.”

  단호한 윤오의 말투와 달리 단야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찔린 사람이 더 펄펄 뛰는 법이었다.

  “단야 씨 솔직히 저 먹고 싶죠....”

  아니 얘가 지금 무슨 말을. 시무룩하게 묻는 말 치고는 좀, 그랬다.

  “무슨 소리야.”

  “지금 분명 배고프실 거 같고. 그리고 이건 제가 물을까말까 했는데요. 저번에 제가 여쭤봤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호스 꽂아서 쪽쪽 빨아 드신다고 해놓고.. 저는, 저한테는 왜 그러셨어요? 그때 단야 씨 제 위에 올라오셔서 어깨 딱! 등 딱! 잡고 목 콱! 물려고 하셨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네.... 단야가 답지 않게 당황했다.

  “저 약간 맛있게 생겼나요....”

  “너 뭘 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피를 먹는 거지. 식인을 하는 게 아니거든.”

  “뭐든요. 그럼 피가 맛있게 생겼어요?”

  구미가 당긴 건 사실이다.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답지 않게 윤오를 올라타 목에 이를 박으려 했던 장면을 생각했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야생적이지만 생생하게, 윤오의 피를 입안에 가득 채우고 싶었던 게 맞다고, 단야는 인정했었다. 그걸 윤오 앞에서 말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단야는 거짓말에 익숙지 않았다.

  “하던 얘기나 계속해봐.”

  “대답은요.”

  “맛있게 생겼다고 하면, 죽을 마음은 있고?”

  헉. 윤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아니요아니요아니요아직이요아직이요저아직마음에준비가그리고제가요즘에야채도안먹고식사도제대로안해서처음보다별맛도없을걸요아무튼제피는제가아니제죽음은제가결정할게요.....

  “약속이에요. 저 마음에 준비 되기 전까지 안 죽인다고.”

  “그러면 살려두고 계속 피만 먹는 건?”

  “...그런 농담 마세요.”

  “하던 거나 계속 해.”

  윤오가 슬쩍 엉덩이를 단야에게서부터 뒤로 밀고는 하던 말을 계속 했다.

  “그러니까 이거요. 뭔가 멋있지 않아요?”

  다시 제 눈치를 보는 윤오에 단야가 피식 웃고 말았다. 당신의 꿈을 긴 잠으로.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진 <안락사 시술소>라는 이름보다 훨씬 괜찮고 멋진 이름이었다. 그저 거래일 뿐인데. 나는 그를 먹고, 그는 덕분에 원하던 평안을 얻는. 근데 그걸 윤오는 무슨 선물을 주겠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선물도 아닌데. 윤오가 쓴 문장을 한참 읽었다. 당신의 꿈을 긴 잠으로 만들어드립니다. 사실 유치한 문장이었다. 죽음은 긴 잠이 아니었다. 잠 잔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거니까. 이건 아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였다. 꿈을 꾸지도, 긴 잠 후에 깨어나 내일을 살지도 못하는. 긴 잠 같은 건 허울 좋은 단어일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잠을 줄 수 있을까.

  단야가 제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더 유치하네.

  “저 그래도 같이 일 할 만 하죠?”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이 쉬지 않고 반짝거렸다. 유치한 생각에 괜히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는데도, 그 위로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래.”

  “그럼... 저 안 드시는 거죠...?”

  “어. 안 먹는다니까.”

  “그리고... 마음 좀 괜찮아지신 거죠?”

  단야가 고개를 들었다. 마주치는 눈이, 마냥 반짝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저를 보고 있었다. 이제 마음 조금 괜찮아지신거죠. 마음이라니. 윤오의 눈은 진지했다. 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는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진지하고 진심 어린 답으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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