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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서툰 진심은 전혀 멋있지 않다.
작성일 : 19-11-09 23:36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8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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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은 테이블을 닦았다. 손님 중 한 명이 맥주잔을 쓰러뜨려 옆 테이블까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주말엔 손님들이 많았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걸 위로 삼아 그는 서빙을 하고, 떨어진 뼈를 주웠다. 가끔 무영은 성북천이 범람하는 상상을 했다. 물결이 성북천을 따라 빼곡히 있는 술집을 다 쓸어버리고, 넘실넘실 넘어 자기가 사는 성북을 쓸어버리고, 서울을 모두 덮어버리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모습으로 마무리했다.

 보통 그는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아직 8시였다. 입대하기 전엔 이 시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무영은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 테이블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토요일은 특히나 그랬다. 이곳은 배달하지 않았다. 오롯이 매장 손님들로 매출을 얻어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실내외 모두 테이블이 많았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지 않자 한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무영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영아 오늘은 그래도 덜 힘들제“

 사장인 장인수는 나이가 50이 넘는 중년이었다. 하지만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는 그가 잘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덥수룩한 수염과 꽤 많이 나 버린 흰머리뿐이었다.

 “그렇네요”

 무영은 그의 옆에 서 같이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럼에도 무영은 2년 사이에 인수가 꽤 늙어버렸다는 걸 자꾸 느꼈다.

 “너는 친구들 하나를 안 데리고 오냐. 이 새끼 이석 대학교 애들은 이런 데 안 오는 거야 어?“

 “에이 아니에요”

 무영은 그저 허허하고 웃었다. 그도 이 치킨집에 많은 애증이 쌓였다. 가장 오랫동안 일을 한 곳이기도 하고, 인수와의 관계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무영은 자신이 맡은 몫을 항상 열심히 했다. 손이 빠른 것도 아니고, 기억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지만, 그런 일관적인 모습이 인수를 만족하게 했다. 그래서 용돈을 받기도 했고, 가끔 치킨을 사 가기도 했다. 둘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담배를 껐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저 멀리 손님들이 오고 있었다.

 “아 사장님. “

 “왜? “

 “저 진짜 친구들 데리고 와도 돼요? “

 사장은 뜬금없이 진지한 무영의 얼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에게 제발 데리고 오라는 식으로 어깨를 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성대입구역에 먼저 도착한 정욱이 혜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급하게 온 듯 오늘 정욱의 머리에는 아무것도 발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덜 자란 머리카락이 뾰족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어 혜인아 왔구나.“

 혜인은 난생처음 오는 곳인 듯 주변을 둘러 보다 입구에 서 있는 정욱을 발견했다.

 “아 오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 “

 “무영이가 치킨 먹자는데? “

 혜인은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그를 보았다.

 “ 저한테는 팀별 과제라고 하던데요? “

 무영이 보낸 주소를 보며 혜인과 정욱은 성북천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중간쯤에 위치한 미성 치킨의 네온 간판을 발견했다. 오래된 듯 모음 ㅣ 부분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 아래에는 앞치마를 두른 무영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셋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곧 테이블에는 잘 튀겨진 두 마리의 치킨이 놓였다. 곧 둘의 엇갈린 증언은 모두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 맛있게 먹어라. 얘들아. 더 달라고 해 알았지? “

 무영이 내려놓고 간 치킨에서는 김이 났다. 혜인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 오빠. 이거 뭐에요? “

 무영은 테이블에 나무젓가락과 소스를 각자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뜯으며 혜인에게 웃어 보였다.

 “ 우리 팀별 과제 해야지. 내가 사는 거니깐 많이 먹어 “

 혜인은 그제야 그가 진심인 것을 알았다. 무영은 먼저 큼지막한 다리를 나눠주었다. 정욱과 혜인은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치킨을 들었다. 한눈에 봐도 치킨 조각들은 프랜차이즈점보다 크기가 컸다. 평범한 동네 치킨 느낌이었다. 혜인은 한입 베어 물고 산뜻한 기름 향에 놀라 그를 보았다.

 “ 맛있네요. 여기 “

 정욱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둘 다 저녁을 먹은 상황이었지만 치킨의 맛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 내가 오래전부터 아르바이트 했던 곳이야. 여기로 마케팅의 이해 팀별 과제 하자. 내가 상황 다 알아. 매출도 알고, 테이블 수, 주요 수익 경로, 재료비 대충 얼마나 나가는지 다 알고 있어. “

 정욱은 나쁘지 않은데 라는 말과 함께 치킨에 집중했다. 어느새 테이블엔 맥주도 추가되었다. 셋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혜인은 무영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나서지 않지만, 자연스레 중심이 되는 사람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 그런데 선배. 이 시간에 손님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

 혜인은 맥주를 마시다 문뜩 든 생각에 무영을 보았다. 실내에 두 팀이 있고 야외엔 아무도 없었다. 날씨가 따뜻해져 충분히 야외에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무영은 그녀를 씁쓸하게 보았다.

 “ 그게 문제야.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이 주변에 치킨집 얼마 없는데도 말이야. “

 “ 왜 그런 것 같아요?”

 혜인과 정욱은 무영을 쳐다보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무영은 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 야. 장무영 너 뭐야? “

 

 *

 

 4월의 날씨는 변덕이 심했다. 추운 낮은 따뜻한 밤이 되기도 했고, 꽃이 핀다는 기대를 품다 대신 온 추위에 외투를 챙기기도 했다. 성북천은 따뜻해지는 날씨 덕에 물 냄새가 더 짙어졌다. 저녁 10시의 상가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휑하던 미성 치킨 야외 테이블엔 손님이 한 명 더 왔지만, 시끄러워지진 않았다. 오히려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무영은 협에게 접시와 젓가락을 주며 말했다.

 “ 맥주 마실래? “

 협은 피곤함에 짜증을 더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는 앉았지만, 아직 크로스 백을 내려놓지 않고 꽉 잡고 있었다.

 “ 이거 무슨 자리냐고 “

 무영의 독단에 혜인과 정욱도 그를 이해할 수 없듯이 보고 있었다. 무영은 잘 못된 걸 느꼈다. 협은 상상 이상으로 이 자리에 반발감을 느꼈다. 그는 실수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았다. 자신에게 건넨 호의에 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무협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영화 같은 만남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했다.

 “ 우리랑 팀플하자. 시간도 얼마 안 걸려. 우리끼리 만나는 건 오늘 이거랑 다음에 한 번밖에 없을 거야. 속여서 미안해. 그렇지만 이렇게 안 하면 오지 않을 것 같았어. 미안해. “

 무영은 소주보다 맥주에 더 잘 취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 했지만, 그는 조금 뻔뻔해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사과가 취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무영이란 사람의 말은 자신의 감정을 조금 속이고 뻔뻔해졌을 때 더 신뢰감이 들었다.

 “ 얘들아 너희한테도 말 안 해서 미안해. 내 친구라고 생각해주라. 나 너희랑 팀별 과제 하고 싶어 “

 협은 그런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무영의 고백에 넷은 조용해졌다.

 “ 언니. 그렇게 말하고 간 다음에 무영 선배가 우리한테 언니랑 같이하면 안되냐고 몇 번 물었어. 알아? 그냥 순수하게 언니 돕고 싶어 한 것뿐이라고. “

 혜인은 빨간 입술로 조곤조곤 할 말을 했다. 다시 테이블은 침묵이 쌓였다. 그때 협이 무영의 잔을 뺐어 들고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 말해봐. 계획이 뭔지 “

 무영은 본격적으로 미성 치킨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가게의 역사, 수입구조와 재료 비용, 주요 손님층, 테이블의 순환속도, 성북천 상가의 특징까지. 상당히 잘 정리된 분석이었다. 사실 이 정도만 발표해도 충분한 정도였다. 혜인과 정욱은 그가 이렇게나 세밀하게 가게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 야. 난 아르바이트 하면 집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 새끼 너 산업스파이냐? “

 가만히 듣던 정욱의 한 마디에 무영과 혜인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협은 조용히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렇게 그들은 무영의 브리핑에 한마디씩 던지며 살을 붙여 나갔다. 천천히 빈칸들은 채워졌다. 무영은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간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음을 밝히며 말을 끝냈다.

 “ 고칠 점은 간단한 거 아니야? 미성 치킨 인테리어 너무 오래됐어. 물론 레트로 감성인지 뭔지 먹히는 거 아는데, 그래도 너무해. “

 협은 맥주를 주욱 마시다 그제야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다들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무영이 알기로는 벌써 이 자리에서 20년이 넘게 장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초록색 고딕체로 만들어진 네온 간판은 햇빛에 바래 옅은 연두색에 가까웠고, 안쪽도 기름때로 노래져 있었다.

 “ 포장지가 없어서, 브랜드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다른 프랜차이즈점은 브랜드 이미지나 폰트가 떠오르잖아요. “

 혜인도 협의 말을 거들었다. 다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일단 이 주변은 좋은 상권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고깃집이었기에 치킨은 차별성이 있었다. 충분히 지리적 이점이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맛이 훌륭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더 완벽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주요한 문제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쉽게 생각나지 않는 듯 넷은 맥주만 홀짝였다.

 “ 그…. 우리 사장님 이야기 한 번 들을래? “

 무영은 말을 끌며 어렵게 사장님 이야기를 했다.

 “ 우리 불쾌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셔? 그리고 우리끼리 분석하고 기획하는 게 팀별 과제 내용이잖아. 그리고 문제점 아시면 고치셨겠지. 그래서 우리가 제삼자의 눈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

 정욱은 사장을 보는 게 썩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혜인도 그런 표정이었다. 무영도 그들의 생각을 이해했다.

 “ 그냥 참고 정도만 하지 뭐. 우리 발표 사장님이 보는 것도 아니고. “

 이협이 조용히 말했다. 의견이 갈렸다. 무영은 휙 하고 칼을 빼듯이 자리에 일어섰다.

 “ 잠시만 기다려봐 “

 무영은 그 말과 함께 실내로 들어갔다.

 

 *

 

 “ 너희가 백종원이야? 이석대 애들 건방져 아주 “

 화를 낼 줄 알고 긴장하고 있던 혜인은 웃으며 나오는 남자와 무영을 보고서는 마음을 놓았다.

 인수의 손에는 작은 접시가 들려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그것을 놓고 기분 좋게 웃으며 한 사람씩 쳐다보았다. 접시에는 갓 튀긴 치즈스틱이 담겨 있었다.

 “ 얘들아 이것도 먹고 무럭무럭 커라 “

 인수는 익숙하게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넷을 보고서는 옆 골목으로 걸어갔다.

 “ 사장님. 미성은 누구예요? “

 그를 멈춰 세운 것은 협이었다. 사장은 천천히 뒤 돌았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그들은 애매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보았다.

 “ 딸. “

 “ 치킨 진짜 맛있는데요. 손맛이 진짜 좋으신 것 같아요. 다른 안주들도 순식간에 다 먹었어요. “

 협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그녀의 표정에 무영도 적응되지 않았다. 줄곧 그녀의 냉소에 익숙해져 있던 그는 따뜻한 입꼬리가 어색하면서 좋았다.

 “ 저 진짜 따님이 부러워요. 자주 이런 치킨이랑 음식 먹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

 인수는 몸이 굳어버린 듯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앞치마는 반죽과 기름으로 얼룩진 흔적이 꽃 펴져 있었다. 그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담배도, 치킨도, 손님도, 자신이 사는 성북도 아닌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수는 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넣고 무영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리고 옆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앉았다.

 “ 내 음식이 맛있어? “

 “ 네 “

 그 질문에는 정욱이 대신 답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온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장은 그런 그를 흐뭇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영의 옷을 가리켰다.

 “ 무영이 이 새끼 봐. 너 담배 빵 구멍 뚫렸다? “

 그는 그제야 구멍을 보고 아까 말리던 취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구멍을 가렸다. 인수는 크게 웃었다.

 “ 여기가 이래. 술 먹고 욕지거리하는 손님 새끼들이 우리 고객 70프로야. 20년 내내 그랬어. 20년 동안 똑같은 놈들 보고 똑같은 싸움 보고 있으면, 애증이 생길 것 같지? 아니야. 환멸 나더라고. 그래서 무영이 너 퇴근한 뒤에 내가 그런 놈들한테 지랄지랄 했거든. 벌써 몇 개월 됐네. 그것도. “

 인수는 코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 담배 피우셔도 돼요. “

 혜인은 그런 그를 보고 말했다.

 “ 그럼 실례 좀 할게. 얘들아? “

 인수는 빠르게 불을 붙이고 연기를 하늘로 뱉어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연기였다. 무영은 그런 일을 하나도 몰랐다. 진상 손님이 점점 줄었다는 것에만 기분 좋아했다는 사실이 그를 바보같이 만들었다. 넷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맥주도 치킨도 치즈 스틱도 조금씩 식어갔다. 온갖 혐오가 인이 박여 버린듯한 인수의 손톱 기름때는 그들의 분석과 공감으로는 도저히 씻기지 않는 것이었다. 인수의 담배 연기는 그들과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 따님이 여기서 치킨 드셔 본 적 없으신가 봐요. “

 “ 들어가 봐야겠다. 무영아 너도 이거 치우고 퇴근해 알았지? “

 인수는 협을 잠시 보았다. 하지만 새로운 손님들이 오는 걸 보고 인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묻히고 말았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는 실내로 뛰어들어갔다. 인수가 앉았던 플라스틱 의자에서는 희미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았다.

 “ 저도 막차 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무영 선배. 저랑 정욱 선배가 PPT 만들 테니까 내용 대충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혜인은 침묵을 뚫고 일어섰다. 그것에 맞춰 정욱도 짐을 챙기며 일어섰다.

 “ 나 혜인이 데려주고 들어가 볼게. 아 그리고 협아. 술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조심해 “

 정욱은 느끼하게 웃고는 혜인과 함께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무영이 급하게 뭉쳐 만든 모임은, 아이들이 대충 만든 찰흙 조각처럼 흉하게 말라 갈라졌다. 흙 부스러기같이 여기저기 떨어진 닭 뼈와 맥주로만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조각을 대충 유추 할 수 있었다. 무영과 협은 서로를 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영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는 꼭 자신이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았다.

 “ 미안해. 협아 너도 집 가야….”

 그는 그녀를 집에 보내기 위한 말을 꺼냈지만 다 전달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입게 꾸역꾸역 넣고 있었다. 식어버린 치즈 스틱이었다.

 “ 너무 건방졌다. “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영을 쳐다보았다. 협의 취기가 훅 그에게 전해졌다. 매끈한 눈은 빨갛게 변해 있었다. 협은 무심히 그의 어깨를 쳤다.

 “ 빨리 치워. 집에 안 갈 거야? “

 

 무영은 그녀와 함께 성북천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벌써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4호선은 완전히 끊긴 시각이었다.

 “ 집 어디야? 택시 잡자. 내가 낼게 “

 무영은 협이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그녀의 피곤은 맥주와, 늦은 시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그녀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듯했다. 협은 연신 관자놀이를 엄지로 눌러댔다.

 “ 당연히 그래야지. “

 무영은 서둘러 그녀에게 따뜻한 택시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택시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12시의 한성대 입구는, 쉽게 그들에게 집으로 가는 방법을 내어주지 않았다. 빈 차라고 쓰인 택시들은 그의 손을 정지의 표시가 아닌 헤어짐의 인사처럼 보는 듯,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무영은 여의치 않자 택시 앱을 켰다. 이렇게 많은 차가 다니지만, 그들을 태울 차는 많지 않았다.

 “ 10분만 기다려줘. 택시 불렀어. “

 무영과 협은 그렇게 사람들이 드물어진 거리에서 나란히 서 있었다.

 “ 미안해 “

 “ 뭐가 자꾸 미안하대 “

 협은 짜증 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 남들은 다 쉽게 쉽게 하더라고. 친구든, 사랑이든, 일이든 뭐든 말이야.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요즘 그게 내 이야기처럼 들리는 거야. 실수했어. 다음부턴 이렇게 불러내는 거 안 할게 “

 협은 맥주 냄새를 훅하고 풍기며 그를 향해 숨을 쉬었다. 무영은 그녀의 눈빛을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 너 왜 사장님 부른 거야? “

 무영은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 협은 아직도 인수에게 희미한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 그냥. 밖에서 휙 하니 치킨만 먹고 가고서는 몇십 명 앞에서 발표하는 거 웃기잖아. 꼭 건방지게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평가해 버리는 것 같아. 어떤 각오로 장사하셨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

 둘은 가만히 자리에 서서 다른 곳을 보았다. 그때 택시가 왔다. 협은 택시에 올라탔다. 무영은 문을 연 채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 만원이면 돼 미친놈아. “

 “ 어딘데 “

 “ 가까워 “

 “너 돈이 아주 썩어나는구나? “

 “ 누가 이렇게 한 번 사면 달라 보인다고 하길래. “

 “ 병신. 들어가. “

 협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 아. 그리고 너 잘못 아니야. “

 택시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의 손에는 2만 원이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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