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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저수지의 개들
작가 : Hotsan
작품등록일 : 2019.11.9

복학한 장무영이 이협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벌어지는 일들.

 
작은 틈은 알아채기 힘들다.
작성일 : 19-11-09 23:33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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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레포트 다들 잘 쓰셨어요. 돌발적으로 나온 건데 다들 잘하셨습니다. ”

 아침 하늘은 짙은 무채색이었다. 무영은 하품을 참으며 수업을 들었다. 너무 이른 아침에 한다는 이유로 이본 교수의 문예사는 사람이 적었다.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열정적인 교수라는 것.

 “그 중에서도... 장무영 학생. 장무영 학생 있나요? ”

 무영은 오늘 있을 공모전 회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교수의 입에서 나온 자기 이름을 듣고 무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어중간하게 손을 들고, 대답했다.

 “잠시 나오겠어요?”

 뜬금없는 호령에 그는 뻗친 머리를 누르며 나갔다. 레포트는 30명의 사람을 동시에 집중시킬 얼마 안 되는 키워드였기에 다들 무영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시선을 어쩌지 못해 반대쪽 벽을 보았다.

 “아 다들 날씨 좋은데 예술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많은 레포트 중에서 장무영 학생의 글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장무영 학생.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천천히?”

 무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교수를 돌아보았지만, 이본 교수는 더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무영은 몇 번의 기침 끝에 자신의 레포트를 읽기 시작했다. 3쪽 분량은 5분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박수를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수조차도 반응이 없었다. 무안한 그는 시선을 멀리 보냈다. 무영은 뒷문 옆에 앉은 이협을 발견했다. 유일하게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장무영 학생, 블라맹크는 인상파를 넘어 본격적으로 색채와 형태가 자유로워진 시기에 선두주자로 있던 화가였습니다. 그의 개성 넘치는 붓 터치와 어둡고 강한 색 선택은 탁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순간의 인상들이 지나가고 남는 강렬한 무언가가 보는 이들을 사로잡거든요. 그래서 ‘야수파’라는 가치절하의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걸 말하는 이유는 장무영 학생의 개인 의견이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2쪽 두 번째 문단 다시 한 번 읽어 볼까요? ”

 무영은 머뭇거리며 글을 읽었다.

 “그의 강하고 거친 인상은 사실 섬세한 감정 폭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는 평생을 신경질적으로 살아온, 깡 마른 소년의 본성을 가진 게 아닐까. “

 “이 대목이 자신의 솔직한 감상평 같아서 좋았습니다. 사실 블라맹크는 190에 100킬로가 넘는 거한이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도 참가했죠 ”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다. 무영은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면 웃는 이협이 가장 먼저 보일 것 같았다.

 “솔직한 자기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영은 부끄러워 교수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미술관에서 했던 협의 충고가 떠올랐다. 수업은 그를 향한 칭찬으로 마무리되었다. 수업이 끝난다는 말과 동시에 사람들은 일어섰다. 가방을 챙기고 매는 소리로 가득했다. 무영은 애매한 표정으로 걸어와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앞뒤 사람들이 정신없이 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 앉는 게 느껴졌다.

 “글을 솔직하게 잘 쓰시네요. 상상력도 풍부하고 ”

 이협은 킥킥 대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아까 제일 크게 웃었죠? ”

 무영은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당신 때문에 성적은 좋겠네요. 그때 레포트 귀띔해줘서 고마워요. 근데 그거 어떻게 아셨….”

 이협이 나가는 교수님에게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바람에 그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솔직한 줄 몰랐죠 ”

 이협은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런데 당신이라는 호칭 굉장히 별로네요. 장무영씨는 존댓말 해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당신이란 말이 금을 내 버렸네”

 이협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영은 당신이란 말을 곰곰이 입에 넣어서 씹었다.

 “그렇네요. 노부부 같기도 하고”

 “그냥 반말하시죠. 나이도 같은 같은데 ”

 “그래 그러자. 근데 잘 안 돼요. 갑자기 하는 게 젤 어려워 ”

 무영은 반말과 존대를 섞으며 어색하게 말했다.

 “알았어. 근데 안 나갈 거야?”

 어느새 강의실은 단둘밖에 없었다. 무영과 협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문예사 수업이 있는 건물은 학교 제일 구석에 있었다.

 

 “마케팅의 이해 같이 듣는다면서 한 달 지나도록 왜 널 못 봤지 ”

 그는 다음 시간대에 있는 전공수업을 떠올렸지만, 그녀를 본 기억이 있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들어와서 제일 빨리 나가거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히 걷기만 했다. 좁은 계단을 내려와 건물 입구로 나왔다. 하늘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살짝 스산한 바람에 무영은 몸을 떨었다.

 “나 때문에 레포트도 잘 썼는데, 뭐라도 안 사?”

 협은 진지한 눈을 하고 그를 보았다. 블랙 진과 셔츠는 그녀를 오래된 고목같이 보이게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던 물건처럼 그녀는 똑바로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듯 말을 더듬었다.

 “어 좋지. 뭐 먹을래. 후문 나가면 카레 맛있는 곳 있는데. 거기 알아? ”

 “좋지 ”

 이협은 짧게 답했다. 무영과 협은 바람을 등에 지고 후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너 항상 끝나면 어딘가로 사라진다던데? ”

 무영이 생각난 듯 말했다.

 “누가 그랬어?”

 앞을 보고 걷는 무영은 이협의 한 마디에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앞만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에 발자국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주 깊이 숨어있는 적대심을 같은 것을 느꼈다. 무영은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장무영! ”

 옆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정욱이 걸어오고 있었다.

 “장무영! 어디가?”

 정욱이 히죽거리며 걸어왔다. 무영은 그런 그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살짝 상기된 모습이었다. 정욱은 옆에 있는 협을 보며 웃었다.

 “어.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정욱은 어색하게 이협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앞쪽으로 몸을 비비며 다가가 무영의 등을 꼬집었다. 무영은 그를 째려보고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내가 방해한 건가? 누구셔?“

 “경영 17학번.. ”

 “이협입니다. “

 무영이 그녀를 소개하려고 했지만 협이 만자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그녀는 웃고 있는 정욱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 네가 이협이구나 그런데 어디 가고 있었어?“

 무영은 그녀의 눈에 정욱이 완전한 타인으로 비치고 있음을 느꼈다. 정욱은 언제나 초면인 사람에게 골목대장인 양 작은 곤란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협은 조용한 호수와 같은 사람이었고, 그의 장난기는 그런 타입에 더 심해졌다. 협은 곧 간곡한 거절의 의사를 보일 것 같았다. 그를 선배, 같은 과, 친구의 친구 그 어느 범주에도 넣어주지 않은 채 엄숙히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거절을 위한 뻔한 도약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시죠 “

 그렇게 셋은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착지는 매운 카레와 돈가스를 파는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테이블은 가득 차 있었다. 셋은 운이 좋게 마지막 자리에 기다리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정욱은 자리에 앉자 말자 질문을 늘어놓았다.

 “여기 매운 카레가 맛있거든. 협아 넌 알지? ”

 “아니. 나 여기 처음 와보는데 ”

 정욱은 그녀의 답이 의아한 듯이 그녀를 보았다. 무영도 마찬가지였다.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가게는 자신이 군대에 가 있을 때 생겼고, 빠른 시간 안에 유명해진 곳이었다.

 “왜 카레 싫어해? ”

 “아니. 여기 와 볼 생각을 안 했어. ”

 정욱은 그녀의 답이 꼭 혼잣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도도한 태도를 유지했고 차가운 시선은 무질서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제멋대로인 그녀의 대답을 계속 듣고 싶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자. 이제 말해줘. 둘이 어떻게 친해진 거야? ”

 무영은 정욱의 노골적인 질문에 그를 째려보았다. 무영은 재미없는 답을 할 게 뻔했다. 하지만 협은 달라 보였다. 그녀의 눈은 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정욱은 이런 상황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관객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를 보는 건 묘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냥 외롭게 서 있었는데, 쟤가 다가왔어.”

 “아. 외로움. 외로운 거 좋지. 그래서? ”

 “야 이협 “

 무영은 예상치도 못한 답에 놀라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무영의 놀란 얼굴을 보고서야 살짝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그래서 좋은 것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

 정욱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무영은 말도 안 되는 대화에 할 말이 없었다. 정욱은 모든 걸 알아버린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정욱이 묻고 협이 답하는 일련의 순서는 계속해서 지켜졌다. 그는 계속해서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질문을 던졌고, 일상적인 질문도 평범한 답을 받으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영은 그의 그런 태도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에둘러 말려 보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협의 대답은 끊임없이 도발적이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냉소는 그를 계속 부추기는 듯했다. 둘은 애증의 관계에 갇혀버린 원수들 같았다. 그렇게 식사는 흘러갔다.

 협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뜬 후에야 침묵이 찾아왔다. 무영은 정욱을 쏘아 보았고, 정욱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야 김정욱. 너 뭐해? “

 “너 그거 알아 ? “

 “뭘 “

 “인동이 형이 쟤랑 사귀었었다네? “

 무영은 뜬금없는 그의 말에 다그침을 멈췄다.

 “그러니까, 우리 군대에 가 있을 때 만났다는 거 아니냐. 양꼬치 집에서 형 표정 이상하던 거 그래서 그런거고 “

 무영은 조용히 입에 묻은 카레를 닦아냈다. 그리고 물을 마셨다. 말없이 계속 넣어서 그런지 매운 카레는 전혀 맵지 않았다. 정욱은 신이 난 듯이 말을 해댔지만 무영은 조용히 자신의 접시만을 보았다.

 협이 돌아왔을 때 정욱은 급하게 의자를 빼며 일어섰다. 언제 꺼냈는지 그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아. 인동이 형한테 뭐 받을 거 있는데 깜빡했네. 저 먼저 일어설게요. “

 그는 지갑에서 돈을 빼내며 말했다.

 “아. 인동이형 아시려나. 둘도 같이 갈래? “

 정욱은 넌지시 물었다.

 “아니요. 저희는 좀 있다 갈게요 “

 무영이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 협은 빠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정욱은 흡족한 식사를 한 듯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가 사라지자 자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둘은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비어 버린 앞자리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저기. 나 싫어해 ? “

 협은 그 말을 듣고 식사가 시작한 이후로 처음 크게 웃었다. 정욱을 보며 가끔 보이던 냉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무영은 애매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니. 미안해. 그렇지만 네 친구 놀려주고 싶었거든. “

 둘은 몇 마디를 더 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무영은 항상 10분 먼저 가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정욱의 합석으로 점심은 길어졌고, 둘은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이미 강의실은 가득 찬 상태였다. 경영학과 전공은 타과 학생들도 많이 듣는 수업이었기에, 항상 빈자리가 없었다. 둘은 겨우 뒤에 앉을 수 있었다.

 

 따뜻한 히터 속에서 많은 사람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강의는 물 흐르듯이 흘렀다. 마지막 10분을 남긴 채 교수는 PPT를 끄고 학생들 앞에 잠시 멈췄다.

 “개강한 지 한 달 정도 지나고 저희는 마케팅에 대한 정의를 어느 정도 내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가치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전해줄 것인가. 제가 정의한 마케팅은 이렇습니다. 이 수업에서 과제는 팀별 과제가 제일 먼저 나갈 겁니다. 정확히 오늘 기준으로 2주 뒤에 발표하면 될 것 같네요.“

 교수의 말에 학생들 사이엔 조그만 소란이 벌어졌다. 강의계획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무영은 팀별 과제라는 말이 나오자 말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정욱을 보았다.

 “아. 멤버 정하기는 조금 있다가 하시죠 “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마케팅은 많은 분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품에 가격을 매기고, 유통과 기획을 하고, 홍보하는 많은 과정이 있죠. 여러분들은 이번 팀별 과제로 기획과 홍보를 한번 해 볼 거에요. 도대체 무얼 기획하고 홍보 하냐고요? 주위에 있는 가게들로 해 봅시다. 음식점도 좋고요, 옷 집도 좋고요, 심지어 편의점도 좋습니다. 매출이 불티나는 가게가 있다면,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어떤 점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지를 조사해서 발표해도 됩니다. 장사가 잘 안되는 곳이 있다면, 문제점이 뭔지, 그리고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서 발표해도 됩니다. “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발 과제도 아니고 돌발 팀별 과제라니. 무영은 갑자기 피곤해지는 감정을 느끼며 협을 보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보고 있었다. 바짝 뒤로 묶인 앞이마에 잔머리가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갑자기 낸 거니깐, 맛집 추천 정도로 해도 돼요. 크게 뭐라 안 할게요. 팀원은 알아서 이름 적어서 다음 수업까지 내세요. 남는 사람들은 랜덤으로 집어 넣을게요. 알겠죠? 갑자기 내는 거니깐, 가볍게 해주세요. 그럼 수업은 이걸로 끝. ”

 사람들은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신호에 맞춰 달려나가는 사람들은 우루루 문 앞에 모였다. 그 말과 함께 협도 벌떡 일어났다. 무영은 그녀가 나가려는 걸 잡았다.

 “회의 어떻게 할 거야? “

 가볍게 그녀에게 의중을 물으려 했지만 협은 빤히 그를 볼 뿐이었다. 그때 였다.

 “무영. 같이 하자. 협아 너도 같이할래? 우리 딱 네 명인데 “

 어느새 앞에는 정욱과 혜인이 서 있었다.

 “좋지. 협. 넌 어때? “

 무영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회의를 안 해서요. 저 빼고 하세요. “

 그 말과 함께 협은 문 앞에 있는 사람들 사이로 휙 몸을 던져 사라졌다. 건조하게 그들을 보던 그녀의 표정만이 무영에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정욱과 혜인을 살폈다.

 “저 언니 좀 이상하다니까요. 오빠. 저희 셋이서 하죠? “

 무영은 혜인의 불만 소리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정욱도 그저 머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무영은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보기만 했다.

 

 *

 

 카페 내부에 있는 큰 유리문들 사이로 사람들은 가득 차 있었다.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들은 입을 뻥끗하며 열심히 말을 뱉어냈다. 무영은 기성항공 공모전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스터디 카페에 있는 팀플룸을 이용했다. 그 모든 비용은 인동에게서 나왔고, 넷은 더 좋은 환경에서 머리를 쥐어짜 냈다.

 “야 기성항공 시작한 지 10년 됐어. 꽤 많은 시간 흘렀단 말이야. 이거 초기에 걔 네가 나온 방향이랑 똑같잖아. 느낌 너무 없다.”

 무영은 인동에게 다시 준비해온 슬로건과 컨셉 방향을 지적받았다.

 “형이 그때 전문적인 느낌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해서 좀 바꿔본 건데 이상해요?”

 무영이 물었다.

 “그래도 융통성 있게 해야지. 너무 가 버렸잖아. ”

 서툰 포토샵으로 무영의 의견을 표현한 정욱은 조용히 그들을 보았다. 인동은 열심히 피드백하고 있었다. 그의 의견은 무영과 정욱이 놓친 걸 끊임없이 잡아냈다. 정욱은 웃으며 무영의 어깨를 잡았다.

 “나랑 좀 더 의논해보자 무영아.

 무영은 아쉬웠다. 벌써 이번이 세 번째였다. 무영과 정욱은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 왔지만, 인동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기성항공 사업 공모전은 총 두 번의 심사로 이루어졌다. 주제에 맞춰 제출된 자료와 파워포인트가 제출되면 그중 20개 팀만을 뽑아 기성항공에서 직접 발표를 하게 된다. 각 팀은 주제 중 총 두 개를 골라 콘텐츠를 짜야 했다. 무영의 팀이 고른 것은 모바일 활용 마케팅 활성화 방안과 충성고객 창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래도 선배 감각이 좋네요. 컨셉 문제는 둘째 치고 방안들이 뻔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게 좋은데요? ”

 혜인은 조용히 노트북을 보다가 한마디 꺼냈다. 그녀가 팀원으로 정해지고 첫 회의였다.

 “그래 내가 왜 모르겠어. 근데 우리 조금만 수정하면서 가보자 ”

 인동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영은 그의 마지막 말이 똑같이 반복되었다는 걸 기억했다. 다시 회의는 시작되었다. 무영과 정욱이 만들어온 방안들에 계속해서 살을 붙이거나 빼는 과정은 계속되었다. 피곤함은 계속 쌓여 갔다.

 “야 회의 할 땐 좀 무음 해두자 ”

 인동이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의는 무영의 휴대폰 진동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아 형 미안해요. ”

 무영이 화면을 보자 어머니에게 온 것이었다. 무영은 휴대폰을 잠시 뒤집었다. 하지만 또 연락이 왔다. 이번은 누나였다. 무영은 결국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갔다.

 “야 너 왜 전화가 안 돼 ”

 “나 지금 회의 중이야 왜 ? ”

 무영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엄마 지금 서울 올라오셨대. 빨리 동서울 터미널 가봐. 나도 퇴근하고 바로 가 볼게 ”

 무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전화가 끊어지고 바로 무영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지금 어디예요. ”

 “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역이다. 여기 갈아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더라 ”

 “왜 말도 안 하고 오셨어요. 오늘 금요일이라 사람도 많은데 길 잃으면 어떡하시려구요” 무영은 화가 난 듯이 툭툭 끊어지며 말을 했다. 그는 엄마의 답답한 태도에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욱 힘이 빠졌다.

 “나가는 법 다 알아. 그리고 왜 이렇게 애 취급이냐.”

 “기다려요. 나 그쪽으로 바로 갈게요. 안에 벤치에 앉아 계세요”

 무영은 급하게 카페 안으로 돌아갔다.

 “아 미안. 어머니가 갑자기 오셨다 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저 파일 보내고 갈게요. 진짜 미안해요 ”

 무영은 모두에게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늘 진전을 볼 생각에 많은 걸 준비했지만 잘 풀리지도 않은 채 도중에 가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 다녀와”

 정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영은 급하게 옷을 챙기고 가방을 메고 나갔다. 인동은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곤암동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진 30~40분이 걸렸다. 무거운 반찬 통을 들고 오셨을 생각을 하니 그는 급해졌다. 카페를 나오자 말자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우산”

 무영은 급하게 다시 카페로 향했다.

 

 “아. 내가 말 심하게 했다고 저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

 그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혜인과 정욱을 둘러봤다.

 “피드백 힘들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잖아”

 혜인은 불안하게 조금씩 흘러나오는 분노를 보았다. 향수로는 지울 수 없었다.

 “에이 선배 진짜 오셨겠죠. 어머니. 엄청 서두르던데요. ”

 혜인이 말했다.

 “그럴 거예요. “

 정욱은 갑자기 이협이 떠올랐다. 그녀는 차갑지만, 매력적인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문으로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일단 내가 가져온 걸로 조금 더 하고 우리도 마무리하자.”

 인동은 자료를 주섬주섬 꺼냈다.

 “혜인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한숨과 쉬며 혜인을 봤다.

 “너 안 들어왔으면 어떡할 뻔했어. 진짜 일이 안된다 일이 안 돼. ”

 인동은 불평과는 반대로 술술 슬로건과 전략을 설명했다. 말할수록 그는 기분이 좋아지는 듯 했다. 그는 타고난 달변가였다. 인동의 눈은 날카로운 끝으로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을 빠르게 헤쳐나갔다. 정욱은 조용히 그의 PPT를 보았다. 무영이 일주일 전에 가져왔던 내용과 거의 유사했다. 하지만 혜인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 쏟아내는 내용에서 무영과 정욱의 노고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정욱은 섭섭했다. 하지만 그 섭섭함이 배신감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고생했던 시간이 이 대화에서 언급되지 않는다는 소외감, 관심의 부재에서 오는 아픔이었다. 그는 혜인에게 하는 인동의 멋들어지는 설명을 잠자코 보았다.

 “내가 선배들이랑 또 친하잖아. 재작년에 기성 기업 광고 우수상 받은 형 섭외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뒤에 타면 되는 거야 “

 인동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 없이 크게 웃었다. 정욱은 그가 인맥과 자신의 능력을 화려한 액세서리처럼 사용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의 눈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 저거 무영 선배 우산 아니에요? 두고 가셨나 보네 “

 혜인은 테이블 구석에 놓여있던 검은색 우산을 보고 말했다.

 “정욱아 저거 챙겨라. 네 동기 왜 이리 칠칠치 못하냐. 그리고 요즘도 노트에 필기하는 애가 있네 “

 정욱은 노트를 주섬주섬 챙기며 한편에 놓인 우산을 보았다.

 

 *

 

 명희는 작은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걸 보았다. 옆자리에는 새로 한 김치와 반찬이 소복이 담겨 있는 용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했다. 명희는 남편과 함께 청주시 외곽에서 만물 점을 했다. 바쁜 곳은 아니었지만, 아들을 보기 위해 서울을 자주 올 수는 없었다.

 그녀는 서울에 오면 수많은 인파에 압도되고는 했다. 자신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일상용품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똑같은 표정으로 지하철에서 빠져나오고 들어갔다. 하지만 명희는 사람들 속에서 무영을 빠르게 찾아냈다.

 “무영아 여기다 여기 “

 명희는 손을 흔들며 크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를 훑었다.

 “야 너는 우산도 안 챙겨 다니냐 “

 그의 어깨는 비에 젖어 축축해져 있었다. 그녀는 인사 대신에 그를 나무라며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보는 무영의 모습이 좋아 연신 웃음이 떠나진 않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말을 쏘아 댔다.

 “엄마, 만약에 나도 없고 누나도 못 오는 상황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나. 그리고 무겁게 반찬 그만 들고 오라니깐 진짜. “

 무영은 짜증을 내며 짐을 들었다. 명희는 아들이 앞서 가는 모습을 보며 걸어갔다. 그녀의 반찬 통을 꽉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둘은 힘겹게 집으로 향했다. 금요일 저녁 인파로 인해 무영과 명희는 사람들을 뚫고 지나갔다. 반찬 통을 들지 않은 손에는 그녀의 손이 잡혀 있었다. 집에 와 짐을 풀고 나서야 명희는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밥은 먹고 다니나? ”

 명희는 원래 잘 먹지 않는 무영을 알고 있기에 그를 볼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항상 무겁게 반찬들을 들고 오는 이유도 조금이라도 밥을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둘 사이에는 김이 나는 둥굴레차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게 뭐야? ”

 “너 영어학원 계속 다니라고. 돈 좀 보태. 아르바이트 하는 거로는 좀 빠듯하잖아. 그리고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 한 번씩 사. 너 그거 하나로 사람이 달라 보이는 거야”

 무영은 조용히 봉투를 보았다. 아주 얇았다. 흰 종이는 한 장의 5만 원 권을 품고 있었다.

 “엄마. 이거 5만 원인데. “

 “임마. 계좌에 40만 원 넣어놨다. 5만 원은 지갑에 넣고 다니고. 그래도 지갑에 현금이 몇 푼 있어야 하는 거야 “

 

 피곤한 명희는 잠시 눈을 붙였다. 그 사이에 무영은 밖을 나왔다. 밖에는 조용한 빗물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꺼냈다. 원룸 건물은 언덕에 있었기에, 부지런히 퇴근하는 사람들이 훤히 보였다. 그중에 검은색 자켓을 깊게 여민 여자가 올라오고 있었다. 누나인 수영이었다.

 “엄마는?”

 수영은 지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잠시 주무셔 ”

 수영은 그대로 건물로 들어가려다 잠시 멈췄다.

 “야. 엄마 피곤해 보였어?”

 “모르겠네. 버스 막혀서 오래 타고 계셨나. ”

 수영은 동생을 조용히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무영은 구름 사이에 떠 있는 달을 봤다. 그와 누나가 있는 원룸 건물은 꽤 높은 지형에 있었다. 그래서 달이 더 잘 보이는 듯했다. 그는 담배를 끄고 냄새를 없애려 숨을 크게 쉬었다. 무영도 곧 건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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