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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원초적 욕망
작가 : 박소영
작품등록일 : 2016.10.9

“당신을 위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외모로 살아가며 당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고, 당신의 이상형과 당신이 원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십시오. 유토피아는 당신이 창조하는 완벽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결국 유토피아를 가능케 했다. 만 30세를 넘긴 사람은 누구나 유토피아에 갈 수 있는 세상. 그러나 실제 유토피아를 조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그들’의 욕망이다. 이를 깨달은 몇몇 사람들은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다.

 
첫 만남(2)
작성일 : 16-10-13 13:22     조회 : 454     추천 : 1     분량 : 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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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래가 다섯 번쯤 반복됐을 때, 우리는 집 앞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남자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나는 힐끔힐끔 그를 관찰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귓바퀴에 문신을 했다.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쫙 펼쳐진 독수리 날개처럼 생긴 문양이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요?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친 탓에 관찰은 거기서 끝났다.

 

 -어…… 아까 말했던, 그쪽이 해야 할 일이란 게 뭐예요?

 

 -미안하지만 아직은 말해 줄 수 없어요.

 

 대화도 거기서 끝났다. 묻고 싶은 질문은 끊임이 없었지만 나는 그냥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 내려요?”

 

 그는 나를 보며 이제 그만 내리라는 듯이 말했다.

 

 “이걸 입에 넣기만 하면, 진짜 깨어날 수 있는 거 맞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유리병을 내밀며 물었다. 이것만큼은 꼭 확답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 못 믿겠으면, 병원에 도착해서 나한테 전화해요.”

 

 남자는 왼팔을 핸들에 올리고 손으로 턱을 받쳤다. 나른하면서도 고상한, 특유의 무표정. 자신의 말을 믿으라는 듯 두 눈이 흔들림 없이 나를 응시한다.

 

 “아, 번호가…….”

 

 나는 이상한 타이밍에 붉어지려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얼른 고개를 내리고 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찾았다.

 

 내가 정말 고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별로 창피하거나 당황하지 않아도 무작정 빨갛게 달아올라 버리는 얼굴이다.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 감정과 상관없이 얼굴이 또 빨개졌다.

 

 “번호는, 아까 내 전화 받았잖아요.”

 

 “아 맞다.”

 

 나는 핸드폰 통화기록을 눌렀다. 맨 위에 있는 번호. 터치. 새 연락처 추가. 터치. 이름 란에 있는 커서가 깜빡거린다.

 

 “뭐라고 저장해요?”

 

 그러고 보니 난 아직 이 남자의 이름도 모른다.

 

 “편할 대로.”

 

 남자는 여전히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 올렸다.

 

 에라이.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커서를 바라봤다.

 

 ‘미친놈’이라고 저장할까를 진지하게 고려하다, 내 바람을 담아 ‘요술램프 지니’라고 저장했다.

 

 옆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에 드네요.”

 

 유치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민망해진 나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

 

 

 찰칵.

 

 뒷짐을 진 자세로 현관문을 닫은 뒤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남자의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리고, 이후의 세상은 개미 발자국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이 집에 이사 온 뒤로 새벽은 더 고요해졌다. 이 집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새벽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랑 영지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 자리에서 식당을 했었다. 2층에 딸린 다락방에서 우리 네 가족이 알콩달콩 살았었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은 어느 조명가게의 차지였다. 그리고 올해 엄마는 그 허름한 건물이 있던 자리에 작은집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약 20년 만에 우리 가족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빠만 빼고.

 

 신발장 천장에 달린 불이 꺼지자 사방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내 눈은 집 안의 익숙한 실루엣들을 잡아낸다.

 

 나는 신발을 툭툭 털어내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고소한 미역국 냄새를 풍기는 냄비 뚜껑을 여는데 내 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울컥 치밀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바로 뚜껑을 닫았다.

 

 만약 오늘 사고를 당한 게 나였다면, 영지가 뭐라고 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우리 언니 나 보고 싶어서라도 곧 깨어날 걸?’ 그러면서 영지는 엄마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을 거다. 엄마가 힘없는 미소라도 지을 때까지.

 

 그 장면을 상상하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너무 대견하고 기특한 영지가 너무 안쓰럽고,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하지만 나는 곧 손바닥으로 두 눈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식혔다.

 

 내가 우는 건 위선이다. 두 사람에 대한 채무를 겨우 미안한 마음 따위로 갚으려 하면 안 된다.

 

 나는 미역국이 상할까봐 렌지에 불을 켜고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오른손에는 여전히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

 

 

 나는 동이 트자마자 집을 나섰다.

 

 보온병에 담은 미역국과 간단한 세면도구 그리고 갈아입을 옷과 속옷들을 챙겼다. 챙겨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쓰는 베개도 캐리어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쇠구슬이 든 유리병을 손수건으로 싸서 내 가방 안쪽에 넣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몇 시간 새 안색이 더 안 좋아져 있다. 왜 한 숨도 안 자고 왔냐고 잠시 핀잔을 줬지만, 그래도 내가 일찍 온 걸 반기는 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영주 옆에 앉아 여기저기 긁힌 하얀 손을 잡는다.

 

 나는 남자가 말한 대로 할 작정이다.

 

 이 쇠구슬이 우리 영주를 살린다는 게 허무맹랑한 소리라면, 이 쇠구슬 때문에 우리 영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우스운 상상 아니겠는가.

 

 -통화 가능해요?

 

 나는 ‘요술램프 지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날이 밝고서 다시 보니 진짜 유치찬란한 작명 센스다. 차라리 ‘이름없음’이 나았겠다.

 

 -먼저 차영주 씨 어머니는 병실 밖으로 내보내요. 최소 10분 정도는 병실 안에 차영주 씨와 동생만 있을 수 있도록.

 

 바로 답장이 왔다.

 

 -그럴게요.

 

 나 역시 엄마가 보는 앞에서 일을 치를 생각은 없었다. 엄마는 나를 때리고 쫓아내서라도 내가 영지에게 요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런데 엄마가 영지 곁을 비우는 건 화장실을 갈 때뿐이고 화장실은 병실 안에 있다.

 

 난 약간의 고민 끝에 엄마를 병실 밖으로 유도할 거리를 생각해 냈다.

 

 “엄마 오래 앉아 있으면 무릎 아프잖아. 나가서 잠깐 걷고 와.”

 

 “괜찮아. 이렇게 누워 있는 애도 있는데 내가 뭐가 아프니.”

 

 그러나 엄마는 영지를 보며 고개를 저을 뿐,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모한테는 연락했어?”

 

 나는 용케 또 다른 건수를 찾아낸다. 나랑 영지를 참 많이 사랑해주는 우리 이모.

 

 “아니, 아직.”

 

 “해야 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할 거 같아서…….”

 

 “그래두. 그리고 이모도 오면 영지가 더 힘내서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그럴까?”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모한테 전화하고 올게.”

 

 “응, 이모랑 통화하면서 좀 걷다 와. 알았지?”

 

 엄마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손수건으로 싸둔 유리병을 꺼내며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 중인 화면. 수신자는 요술램프 지니.

 

 제발. 제발. 제발.

 

 방금 전까지는 유치하다고 해놓고 나는 또 간절해진다.

 

 -잘했어요. 그럼 시작하죠.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동생 입을 벌리고 그 물건을 넣기만 하면 돼요. 차영주 씨가 할 일은 정말 그게 전부에요.

 

 나는 손수건을 풀고 유리병을 집었다.

 

 -안에 있는 물건을 직접 만지는 건 안돼요. 수술에서 위생이 중요하다는 건 어디서나 기본 상식이죠?

 

 나는 남자의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영주의 입을 조심스럽게 벌리고 유리병을 열었다.

 

 이미 결심한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영주의 입술 사이에서 유리병을 기울이니 구슬이 또르르 굴러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영주의 목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어? 뭐야?”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식이 없는 영주는 침조차 삼키지 못한다. 구슬이 스스로 움직여 영주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뇌를 고치려면 뇌로 가야죠.

 

 그는 태연하다. 언제나.

 

 “그니까 이게 뭔데 뇌로 가요?!”

 

 -음, 쉽게 말하면 수술하는 기계죠.

 

 “이 구슬이 혼자 뇌수술을 한다구요? 애가 마취도 안했는데 그냥 이렇게요?”

 

 -마취는 따로 할 필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수술 시간은 지금부터 4분 19초가 소요된다고 하네요.

 

 “네?”

 

 지금 이 남자는 뇌수술을 얘기하는 거야, 컵라면 끓이는 걸 얘기하는 거야?!

 

 -그냥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 봐요. 이제 4분 5초 남았으니까.

 

 -하. 그쪽은 좋겠어요, 놀랄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나는 놀라고 불안한 마음을 괜히 상대에 대한 비아냥으로 풀어냈다.

 

 아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4분 뒤에는 답이 나온다. 이 남자가 미친놈인지 요술램프인지.

 

 난 숨을 죽이며 영지를 지켜봤다.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영지.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 잡지 않았다.

 

 40분 같은 4분이 지나가고.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커다란 두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영지야…….”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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