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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사의 세계로 떨어졌다
작가 : 어항
작품등록일 : 2019.10.21

어느 날, 고삼 여학생 아리아는 이상한 세계에서 눈을 뜬다. 그런데 갑자기 뜨는 이상한 창 하나?
용사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네? 뭐라고요? 용사? 아니, 그보다 이거 게임이야?

 
팔라네아로 가는 길
작성일 : 19-11-09 21:26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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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하필 이렇게 딱 눈이 마주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애초에 이 상황을 상상하지 못 했지. 그렇지. 우리 사이에는 정적만이 오롯이 흘렀다.

 

 "아, 세상에."

 "……?"

 

  엘프는 갑자기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황당무계한 일에 입만 떡 벌렸다. 아까까지 무섭게 화살을 쏘신 분 맞나요.

 

 "역시 나를 죽이러 온 거였어."

 "아니, 저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니, 아까 마법보다 빠른 속도로 사람 죽이던 엘프 맞아? 분명 하던 행동 기억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내가 오니까 이래?

 

 "꺄아아아아악!!!"

 

  내가 그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엘프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갔다. 비명은 이 세계 제일이고 일류였다. 다리도 얼마나 빠른지 어느새 저 멀리 뛰어가고 있었다.

  결국 시체들 사이에 덩그러니 우리만 남았다.

 

 "이 뒷수습은 누구 보고 하라고 튄 거야?"

 

  칸타곤의 말에 잠깐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뒷처리를 맡기기 위한 그의 계획은 아니었을까.

 

 "큰일이네. 어떡하지?"

 "뭘 어떡해."

 

  칸타곤은 뭐라 뭐라 말하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시체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허억, 뭐 하는 거야?"

 "시체들 넣으려고. 겉으로나마 아닌 척 해야지."

 

  시체들은 열린 문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마법이란 참으로 신기하네. 그런데 스태프는 없어도 되나? 게임 보면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들고 있던데.

 

 "너는 스태프 필요없어?"

 "간단한 마법 정도는 필요없어."

 

  이게 간단한 마법인가? 나는 어느새 문이 닫히고 모래 바람을 일으키는 땅을 보다가 말했다.

 

 "몇 서클이야?"

 "7서클."

 

  높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박수를 쳤다. 빈센트도 놀랐는지 말을 더듬더듬 꺼냈다.

 

 "7, 7서클이라고? 대단하다."

 "뭐, 그렇지. 그래봤자 황궁에서는 대접도 못 받았지만."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에 마법 재능이 뛰어난 걸 알고 데려왔지만, 빈민가 출신인 걸 안 사람들이 취급도 안 해주던걸."

 

  안 좋은 일을 떠올리는지 시큰둥하던 얼굴이 갑자기 점점 피기 시작했다. 황녀님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황녀님께서 내 재능을 알아보시고 옆에 두지 않으셨다면 난 그대로 황궁을 나갔겠지."

 

  만약 황녀님을 만나지 못 했다면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작은 싹은 짓밟혔을 거다. 황녀님을 만난 후, 그는 나는 법을 배운 독수리처럼 화려하게 재능을 펼쳤겠지. 황녀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겠네."

 "당연한 말을…."

 

  수줍었는지 목을 벅벅 긁던 칸타곤은 마지막으로 벽에 묻은 피를 감추고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쫓아갈 거야?"

 "아니. 목적지 들었잖아."

 "…팔라네아?"

 

  몬스터가 있는 숲. 사람들은 잘 안 가는 그곳.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팔라네아로."

 

 *

 

  물론 이 말이 끝나자마자 칸타곤은 버럭 화를 냈다. 물론 그가 화를 내봤자 내 목적은 팔라네아였다.

 

 "이거 보여?"

 

  나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칸타곤은 미간을 콱 구기며 지도를 바라봤다.

 

 "팔라네아가 여기, 여기 있다고."

 

  팔라네아는 우리가 원래 가려고 했던 남서쪽의 작은 마을과 가까운 지점에 있었다. 그 마을보다 조금 더 서쪽 방향에 있었지만, 거기가 거기 아닌가.

 

 "팔라네아부터 쭉 돌면 되는 일 아냐. 어?"

 "참나, 팔라네아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어쩌긴. 어떻게든 그때의 상황에 맞게 행동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여기도 가야할 것 같은데 이리 가자."

 "이쪽 부근 추우니까 단단히 옷 입고 가자."

 "벌써부터 입을 필요는 없잖아. 더워."

 

  나는 빈센트가 챙겨주려는 옷을 다시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둘의 동의도 얻었으니 이제 모든 게 순조롭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팔라네아라고? 자네, 미쳤나?"

 "거기가 어떤 곳인데. 거기는 몬스터가 출연하는 곳 아닌가?"

 "요즘 몬스터가 날뛴다는 소문이 있네."

 "미안하지만 안 되겠네."

 

  마차 가게에서 대체 몇 번을 거절 당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승질을 참지 않고 벤치를 발로 찼다.

 

 "아, 진짜 겁쟁이들 아냐!!"

 "야, 참아라. 그래봤자 못 가니까."

 "우선 근처라도 내려달라고 할까?"

 "근처 어디. 근처에 내려달라고 해봤자 한참 가야할걸."

 

  과연. 칸타곤 말대로 팔라네아는 상당히 크고 마을과도 동 떨어져있어서 마을에서 내린다고 해도 한참 가야만 한다. 나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위대하신 칸타곤님, 혹시 워프를 써주실 수는 없나요."

 "미안한데 그거 쓰면 걸려. 허락 맡고 써야돼."

 "허락 맡으면 되잖아?"

 "허락 맡으려면 앞으로 삼일은 걸리겠지?"

 

  으! 으으!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갈 수 없는 걸까?

 

 "이래서 아까 엘프가 그런 삯마차 가게로 간 거였네."

 

  엘프는 분명 보석을 쥐어주겠다고 했겠지. 그러나 거절 당하고 또 거절 당해서 결국에는 그 지경까지 몰린 게 틀림없었다. 아니, 잠깐. 마차 가게?

 

 "혹시 직접 운전하면 안 되나?"

 "뭐라고?"

 "마차."

 "여기서 마차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도 그렇네. 쩝. 이대로 끝나고 마는 건가. 걸어간다면 더욱 오래 걸릴 텐데. 갑자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보게, 자네들."

 "으아아아아아악!!"

 "뭐, 뭡니까?!"

 

  그때 우리에게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우리는 놀래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다가온 남자는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자였다. 중년 남성은 우리를 쓱 보더니 말했다.

 

 "혹시 마부가 필요한가?"

 "네?"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겠는데, 어떤가."

 "당신을 뭘 믿고요?"

 

  칸타곤은 까칠하게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건 그래. 갑자기 다가와서 저런 말하는 사람이라니, 수상하긴 했다.

 

 "자네들이야 손해볼 것도 없지 않나? 나는 돈이 필요하네. 그곳까지 가게 해주는 대신, 삯을 세 배로 줬으면 좋겠네."

 "그곳이 팔라네아인데도 가준다고요?"

 "나야 돈이면 된다니까."

 

  남의 말을 엿듣고 갑자기 끼어든 중년 남성은 불쾌했지만 나쁠 건 없었다. 팔라네아로 빠르게 갈 수 있다면 손해볼 건 없겠지.

 

 "야,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맡겨보자."

 "진심이야?"

 "아니, 우리 중에 마차를 운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저 중년 남성은 위험해도 돈만 주면 간다잖아. 혹시라도 이상하면."

 

  죽여버리면 되지. 차마 이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지. 만약 중년 남성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를 게임으로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내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아까 시체를 봤을 때도 놀래고 무섭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저걸 보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든 뇌리에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장면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빈센트는 내 어깨를 잡고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아니야. 우리 셋 다 강하잖아. 저 중년 남성 하나 정도는 제압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내 말에 못 이긴 두 사람은 남자가 마차를 운영하도록 수락했다. 마차를 가지러 아까 그 가게로 가는 동안, 나는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역시 이상하지. 별로 그리 충격적이진 않아. 현실감이 없는 기분. 역시 속으로 깊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도 이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다.

 

 "아, 그리고 가는 동안 자네들이 내 식량을 챙겨줄 거라 믿네."

 "…저, 저. 어휴."

 

  칸타곤은 화내다가도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 말없이 마차로 들어갔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부탁 드립니다. 팔라네아까지 안전 운전 부탁드려요."

 "…걱정 말게."

 

  그래, 나쁠 게 뭐 있겠나. 만약 그가 위험한 곳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죽일 자신이 있었다.

 

 '1년만에 이렇게나 늘다니. 너 천재냐?'

 '스승님이 봐도 나 천재죠? 빈센트만큼은 아니지만 잘 하잖아요!'

 '어휴, 칭찬 한 번 해줬다고 이게.'

 

  갑자기 스승님이 보고 싶어졌다. 막상 자랑한다고 톡하고 가볍게 코를 때렸지만 얼굴은 이미 자랑스럽다는 얼굴이었는데. 그때가 그립다.

 

 *

 

  중년 남성은 의외로 성실하게 팔라네아까지 왔다. 가끔 멈춰서 밥을 먹거나 짧게 잘 때 빼고는 목적까지 빠르게 달려왔다. 긴 여정은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잊고 있었는데 마차를 못 탄다. 멀미때문에 죽을 뻔했다. 결국 나때문에 중간에 멈춰서 멀미약을 사오는 일도 있었다.

 

 "으으으, 드디어 끝."

 "야, 땅바닥에 앉지 마."

 

  내가 마차에 내려 녹아내리자 칸타곤이 땅바닥 더럽다며 잔소리를 했다. 너야말로 나한테 잔소리 하지 마. 빈센트는 남성에게 돈 꾸러미를 쥐어주었다.

 

 "이정도면 괜찮죠?"

 "…그래, 충분하네."

 

  돈은 얼마나 넣어주었을까. 내가 알기로는 저거 황녀님 돈인데.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니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마차에 기대는데 남성이 천천히 다가왔다.

 

 "자네, 괜찮나?"

 "네, 뭐. 바깥 공기 맡으니까 좋네요."

 "자네는 여기 왜 왔나?"

 "……?"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지. 나는 남성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도 별 말은 아니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니까요."

 "그래, 필요라."

 

  필요한 일이 꼭 성공하기를 바라겠네.

  나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 아니, 중년 남성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분명 중년 목소리가 아니라 가늘지만 선명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는데.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애들아, 방금 들었어?"

 "뭘?"

 "그 분은 벌써 갔어? 모습이 안 보이네."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역시 이 게임 장르는 용사물이 아니라 호러물인 게 틀림없었다. 악! 뭐냐고! 무서워!

 

 "야, 저기가 팔라네아 입구야."

 "뭐? 어디가?"

 

  나는 고개를 확 돌리다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에 놀라고 말았다. 숲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뿌옇기만 하다.

 

 "…입구라며?"

 "응. 안 보이지만 여기가 입구 맞아."

 

  앞으로 여기서 엘프를 기다려야 하는데 들어가기 싫게 생겼다.

 

 "우리 그냥 마차에 있으면 안돼?"

 "아직 들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 엘프만 데리고 오면 되는 일이니까."

 "근데 만약 우리가 늦은 거면 어떡해?"

 

  그 말에 칸타곤은 나를 멀뚱 쳐다봤다. 뭘 어떻게 하냐는 얼굴이었다.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야지. 뭘 어째."

 "……."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호러물이 틀림없었다. 저 뿌연 안개는 어딘가 음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저길 가야한다니. 나는 우리가 늦은 게 아니라 그가 늦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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