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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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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3 11:12     조회 : 516     추천 : 3     분량 : 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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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챙기는 건 그의 몫이었다. 쓸만한 독사진이라곤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랑 결혼 전 연애 시절 그가 자신의 사진관에서 찍어준 사진이 전부였다. 결혼식 사진을 집어 드는 그를 내가 말렸다. “그건 좀 그렇잖아.” 그가 말없이 사진을 바꿔 든다. 스물한 살의 사진 속 엄마는 젊고 예뻤다.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최초로 찍은 컬러사진이었다. 그때의 엄마는 이게 자기 영정사진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사진기 뒤에 있던 그를 좋아했겠지? ‘하나, 둘, 셋’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맞춰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예쁜 미소를 보여줬겠지? 그 덕에 자기 팔자가 이렇게 꼬일 줄도 모르고.

 

 텔레비전에서만 보다가 처음 본 장례식장은 전에 살던 지하 단칸방 집과 닮아있었다. 그 안에 들은 사람들은 다 슬펐다. 슬픈 사람들에게만 나는 불쌍한 냄새가 있었다. 엄마는 이 냄새를 싫어했는데, 그렇게 이 냄새서 벗어나고 싶어 했는데, 결국 여기서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는 게 불쌍했다. 엄마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엄만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죽었을까 안 하고 죽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죽었을까? 내가 아는 엄마는 똑똑했다. 안 해도 될 고민과 걱정도 만들어 하는 사람이란 게 피곤할 정도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죽을 리가 없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아닌가? 엄마는 다 알고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에게서도 나한테서도 나는 불쌍한 냄새에서 일찌감치 벗어나고 싶었던 거다. 엄마한테는 지금 무슨 냄새가 날까? 죽은 냄새? 피 냄새? 썩은 냄새?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자 헛구역질이 났다. 나를 걱정스레 보는 그를 쏘아봤다. 이게 다 네 잘못이야.

 

 외삼촌과 이모들은 엄마를 고향 선산에 묻어주자고 했다. 바보 같은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엄마 그런 거 싫어했어요. 죽은 사람이 쓸데없이 땅만 차지한다고.” 엄마는 명절 때마다 성묘 가는 사람들을 티브이에서 보면 그렇게 얘기했다. 처음엔 자신은 성묘를 갈 처지가 못돼서 그렇게 말하나 싶었는데, 엄만 언젠가 “내 죽으면 태워가꼬 바다에 뿌려라. 산 사람 살 데도 부족한데. 묘지도 필요 없고 납골당도 돈만 든다. 제사도 지내지 마라. 죽은 사람이 뭘 먹는다꼬 음식을 해쌌노.” 했던 적이 있다. 그땐 흘려들었었다. 엄마가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외삼촌은 자식이 죽으면 태우지 부모가 죽으면 묻는 게 맞는 거라며 그의 동의를 구했다. 그는 외삼촌과 이모들의 득달같은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나린이 뜻대로 하면 되죠.” 했다.

 

 밤이 되자 형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열세 살인 줄 알았는데.” 수첩을 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형사에게 그가 대신 “우리 나이로 열네 살이고 만으로 열세 살 맞슴니더.” 해줬다. 형사는 나를 딱하게 쳐다봤다. 삐쩍 마른 그와 나의 몰골을 수첩 너머로 바라보던 형사는 기침을 해대다가 가래가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본 게 언제야?” 빨간 딱지가 붙은 날 아침이요. 엄만 도시락 밥 밑에 달걀 프라이를 넣었다고 말해줬어요. 난 고맙다고 했던 것 같아요. 엄만 달걀이 있음 꼭 밥 밑에 달걀 프라이를 넣어 주고 미리 말해줬어요. 밥이랑 같이 떠먹으라고. 차라리 반찬 통에 넣어주지. 반찬 통에 김치밖에 없어서 애들 보기에 창피했었는데. 솔직히 엄마 학교 다니던 때나 달걀 프라이 그렇게 싸주지 요새 누가 그래요. 그래도 엄마한테는 이런 이야기 입도 뻥긋 안 했어요. 그 인간같이 가난한 사람 만나서 고생만 하는 불쌍한 우리 엄마한테 상처 주기 싫었거든요. 말은 안 해도 엄만 상처를 잘 받아요. 잘 울고요. 암튼 나 엄마 말 잘 듣고 되게 착하게 살았거든요. 근데 엄마가 없으면 이제 엄마 김치도 못 먹겠네요. 나 김치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엄마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김치만 먹음 질리는 건 누구나 그런 거 아네요? 울 엄마 죽은 거 아니죠? 울 엄마 찾을 거죠? 나 달걀 프라이 안 먹어도 되니까, 엄마가 다 먹어도 되니까, 울 엄마 좀 데려다줘요.

 

 입을 반쯤 연 채 멍하니 있다가 나에게 고정되어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형사의 실눈을 봤다. “이틀. 삼 일 전이요.” “뭐 특별한 건 없었고?” “특별한 거 뭐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나 말 같은 거.” 난 그의 눈치를 보며 웅얼댔다. “아니요. 그날 빨간딱지가 붙어서.” 형사는 이미 알아들은 기색인데 그가 굳이 덧붙였다. “거······. 차압.” 형사가 알았다고 고개를 까딱 해 보였다. “엄마 맞아요?” 형사와 그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마치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아기 강아지를 본 듯한 눈으로. 형사의 실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맞아.” 형사가 비닐 지퍼백에 담긴 종이 쪼가리를 건넸다. 한눈에 뭔지 알아봤다. 내가 연습장을 찢어 엄마한테 남긴 편지였다. 이걸 나한테 왜 주나. 형사를 빤히 바라보는데 형사가 종이를 뒤집었다. 낯익은 글씨체다.

 

 * * *

 나린이 보거라.

 

 사랑은 그 남자의 남자 본능을 믿는 거라 생각했다. 그 인간의 남자 본능을 믿은 내 잘못이 크다. 넌 그 인간하고 하는 짓이나 성격이 많이 닮아 걱정이 된다. 그 인간 같이 되지 말고 그 인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 어미를 용서해라. 절대로 어미 같은 삶은 살지 마라.

 * * *

 

 분명히 엄마가 쓴 거다. 멋을 부리듯 휙휙 날려 쓰는 엄마의 필체는 읽으려면 고도의 관찰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안 됐다. 안 쉬어지는 숨을 힘겹게 내 쉬고 다시 한 번 정독해봤다.

 

 ‘나린이 보거라.’ 엄마가 나에게 쓰는 편지는 늘 이렇게 시작했었다. 하다못해 집 근처 슈퍼에서 세일을 하니 시금치 한 단을 사 놓으라고 메모를 남길 때도, 집에 그 메모를 볼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엄마는 꼭 ‘나린이 보거라’를 앞에 붙였다. 학교 들어가기 직전으로 기억하는데, 난생처음 크리스마스 선물과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린이 보거라. 나린이가 올 한해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간다. 내년에도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면 내년엔 꼭 더 좋은 선물을 줄게. - 산타할아버지가」 하는 편지 옆에는 노트 한 권과 연필 한 다스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글씨체를 보자마자 엄마인 걸 알았다. “이거 엄마가 쓴 거지?” 했더니 엄마는 거짓말할 생각도 못 하고 “어떻게 알았어?” 했다. “글씨가 엄마 글씨니까. 그리고 나 어렸을 때도 착했는데 산타할아버지 우리 집에 안 왔었잖아. 그래서 산타할아버지는 없는 거인 줄 알았어.” “우리 나린이 똑똑하네.” 하던 엄마의 미소가 조금 슬퍼 보였던 것 같다.

 

 그다음 해에 내심 기다리던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난 편지와 선물을 준 게 엄마인 걸 알았다고 말한 것을 크게 후회 했다. 순진한 척 내년에 산타할아버지가 줄 선물이 뭔지 기대가 된다고 했으면 또 선물을 사줬을 텐데, 영악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지금도 내가 등신같이 학교 잘 간다고 편지만 안 남겼다면 엄마는 안 죽었을까? 갑자기 후회가 됐다. 괜히 밥 잘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고 했나? 배가 고프다고, 난 엄마 없음 학교도 못 가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제발 집에 있어달라고 부탁할 걸 그랬나? 내가 혼자 밥을 잘 먹었다고 하니까 엄마는 내가 엄마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나? 아닌데. 난 아직도 엄마 젖도 만지고 싶고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는데. 엄마한테 이 편지만 안 남겼다면 엄마는 편지 뒷면에 유서도 안 남겼을지 모른다.

 

 그렇다. 그 인간을 탓할 게 아니었다. 나라도 영악하고 똑똑하게 엄마를 잡았어야 했다. 내가 등신이고 병신인 게 분명한 게, 첫 문장부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됐다. ‘사랑은 그 남자의 남자 본능을 믿는 거라 생각했다.’라니 도대체 뭔 소리인가. 남자 본능은 여자 본능과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 게다가 갑자기 웬 사랑 타령? 엄마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나오는 건 흔치 않았다. 아니 못 들어봤던 것 같다. 그가 가끔 술이라도 먹고 기분이 좋아 “사랑한다. 말년아.” 해도 엄만 “체!” 하며 그를 째려보기만 했다. ‘그 인간의 남자 본능을 믿은 내 잘못이 크다.’도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못은 그 인간이 했지 엄마가 무슨 잘못이 크다고. 죽으려면 그 인간이 죽어야지 왜 엄마가 죽어.

 

 ‘넌 그 인간하고 하는 짓이나 성격이 많이 닮아 걱정이 된다.’는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번잡스런 그의 성격보다는 차분한 엄마 성격을 훨씬 많이 닮은 나였지만, 아주 가끔씩이라도 내가 그 인간 같은 생각을 할 때면 엄마는 나를 꾸짖었었다. 심지어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을 때도 엄만 “느그 아빠 봐라. 돈 많이 벌겠다고 사진관 차려선 쫄딱 망하고.” 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라고 했다. 그가 이삿짐센터나 운수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운을 뗐을 때 엄마가 그와 일주일간 싸웠다는 걸 알기에,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인간 같이 되지 말고 그 인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말도 엄마에게 종종 듣던 말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난 그 인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 인간 같은 사람을 만날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다만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말엔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행복하라니.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여태까지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도 없는 마당에 행복하게 잘 사는 건 가당찮은 일 아닌가.

 

 ‘어미를 용서해라.’도 맘에 들지 않았다. 엄마와 싸우고 웃고 미워하고 좋아하며 살고 싶지, 엄마를 용서하고 사는 건 싫었다. 어떻게 용서하는지도 감이 안 잡혔다. 나한테는 죄송하단 말도 못 하게 하고 “죄송할 일을 하지 말아야지.” 하던 엄마였다. 그가 뭘 잘못하고 “미안해.”할 때도 “미안하다는 게 지금 몇 번짼데.” 하며 잡아먹을 듯하던 엄마였다. 그래 놓고서 나보고 엄마를 용서하라고? 용서할 일을 하지 말아야지. ‘절대로 어미 같은 삶은 살지 마라.’는 기가 찼다. 그 인간 같이도 살지 말고, 엄마 같은 삶도 살지 말고, 그러면 난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데? 엄마가 이따위 말만 남겼을 리가 없어. 누가 엄마에게 쓰라고 시키고 옥상에서 밀어내기라도 했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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