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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안아주세요
작가 : 후이라
작품등록일 : 2019.11.4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랑없음을 치유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치유자 이유검. 나라에 알 수 없는 질병이 발생하여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할 때, 단 하나의 희망인 그가 스스로 세상 속에 걸어갔다. 그리고 그 곁에, 한 사람이 있다.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죽고 싶어하는 혹은 죽이고 싶어하는 호위무녀 김지원. 그녀의 임무는 단지 왕자의 목숨을 지키는 것 뿐이었다.

 
9화
작성일 : 19-11-09 15:32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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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궁을 떠나는 지원과 유검의 짐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출했다. 지원이야 그렇다 쳐도, 일국의 왕자라는 사람은 오히려 지원보다 더 짐이 없었다.

 

 

 

 새벽이 되자, 그들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궁 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떠나려는 유검이었다. 그런 왕자를 배웅하는 이는 재헌과 그간 새벽잠행을 도와주었던 내관과 궁녀, 그리고 지원의 바로 전 호위대장이었던 우람한 덩치의 사내, 이렇게 넷뿐이었다.

 

 

 단출한 짐만큼, 여섯 명의 사람들이 침묵 속에 발을 모아두고 있는 광경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침묵을 깨고, 궁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주름진 눈가에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다가 유검의 손을 불쑥 잡았다.

 

 

 

 

 “왕자님...무사하셔야합니다.”

 

 

 

 궁녀는 마치 손주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내관 역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며 슬픔을 대신 표현했다.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검은 그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대답할 수 없는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유검은 한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있는 재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재헌 역시 유검과 같이 대답할 수 없는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들을 두고 도저히 안녕할 자신이 없었다.

 

 

 서로의 질문에 대답이 없는 두 사람은 그저 뚫어질 듯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재헌은 마지못해 시선을 돌려 지원에게로 다가갔다.

 

 

 

 

 “왕자를 잘 부탁하네. 목숨같이 지켜주시게. 그리고 자네도 꼭 함께 살아 있어야하네.”

 

 

 

 

 

 그의 목소리는 처량하게 들렸다. 푹 젖어버린 낮은 목소리는 어쩐지 물기가 느껴졌다. 아마 슬픔을 눈물 대신 목소리에 흘려보낸 듯 했다.

 

 그렇게 재헌은 마지막으로 지원에게 부탁했다. 그가 지금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호위무사 뿐이었다. 왕자의 목숨을 지킬 가능성이 높은 이는 그들 중 지원 뿐이었으니까.

 

 

 지원도 역시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재헌의 말에 반응했다. 지원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왕자는 궁을 떠났다. 호위무녀와 함께.

 작은 봇짐 하나가 그들의 짐 전부였다.

 

 

 그들은 천천히 말을 타고갔다. 어두운 새벽 하늘에 구름까지 가득하자 앞의 길도, 뒤의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 어스름에 갇혀 궁의 모습도, 그들을 배웅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

 

 

 

 

 

 

 “저 처음 가봅니다, 제주도.”

 

 “그렇습니까.”

 

 

 지원은 창석과 같이 생활하며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내리누르는 법을 익혔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저리도 해맑게 웃고 있는 유검을 당장이라도 묶어서 얌전하게 말을 타고 육지를 떠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 지원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검은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처음 타 보는 것 같아요.”

 

 “…예, 왕자님.”

 

 

 

 

 그렇다. 지금 그들은 궁에서 벗어나자마자 몇 없는 새벽 장을 찾아가서 말을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배를 탄 채 제주도로 떠나는 중이었다.

 

 

 

 

 지원은 그 험하고 먼 곳까지 왜 굳이 찾아가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세 사람이 타자 꽉 차버린 조각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도에 자꾸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작은 배에 몸을 담고 있자니, 저절로 멀미가 나는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검은 여전히 말을 늘어놓았다.

 

 

 

 “궁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가장 먼 곳으로 가는 일.

 

 그곳에서는 치료하는 방법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와중에 그는 책임감까지 있었다. 그러나 일리가 있는 말이어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원은 배를 탄 이후 줄곧 저 멀리 망망대해를 보며 유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 그녀의 미묘하게 달라진 태도를 눈치 챘는지, 유검은 지원의 태도에 웃음이 났다.

 

 

 

 “지원님, 토라지셨습니까?”

 

 “…예?”

 

 “지원님 이런 표정 처음 봅니다.”

 

 

 

 

 말을 마치고 유검은 이번엔 소리를 내어 천진하게 웃어버렸다. 그런 유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지원은 기가 막힌 웃음이 날 뿐이었다.

 

 

 

 그래도 아주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현실적인 일들에는 지리가 어두운 유검 대신 혼자 지원이 새벽 장터에 나갔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잠깐이나마 창석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창석은 또 어떻게 소문을 듣고, 새벽같이 지원과 유검의 뒤를 쫓아와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궁 내부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차디찬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치료를 막아라. 왕자가 죽어도 좋으니. 그를 꼭 중신들과 백성들이 보든 앞에서 그가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한다. 꼭 살려서 다시 돌아와라.’

 

 

 

 

 

 창석의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지원은 왕자와 떠나 사서 고생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아예 궁에서 나와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왕자를 제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석은 덧붙여 설명했다.

 

 

 

 ‘민심은 영악하다.

 왕자가 어떤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 비보에 또 민심은 움직이겠지. 왕자를 불쌍히 여기면서.

 

 그러니 지금처럼 왕자가 스스로 죄인이 되어,

 백성들의 손에 죽도록 하는 것이

 지금 이 왕권을 서서히, 또 자연스럽게 무너뜨리는 길이다.

 

 억지로 무너진다면 반드시 또 억지로 무너질 것이니.

 

 그리고 내 손에 굳이 피를 묻히고 싶지 않고.

 얼마든지 저절로 질 수 있는 유약한 꽃인 것을.’

 

 

 

 

 

 창석은 육지에 돌아오는 날에 곧바로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명령할 필요도 없었다. 지원이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차피 그는 자신을 찾아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창석과 유검, 둘 중에 하나가 사라져야지만 끝날 것이라고 지원은 잠잠히 생각했다. 그래야만 자신을 향한 집요함도, 왕자를 향한 집요함도 함께 끝날 것이다.

 

 

 

 지원이 한참 생각에 잠긴 틈에, 유검의 목소리가 예상치 못하게 들어와 꽂혔다. 그의 밝은 목소리에 지원의 귓가에 울리던 어둡고 음울하던 창석의 말이 갑자기 밀려났다.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군요.”

 

 

 

 

 창석에 대한 생각에 잠겼던 지원은 그렇게 들뜬 유검의 목소리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다.

 

 

 자신이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를 노리는 이가 백 년은 묵었을 구렁이 같은 자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검은 그저 들뜬 얼굴이었다.

 

 

 

 

 “왕자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러게요.”

 

 

 

 

 왕자의 입에 걸린 웃음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지원은 차라리 자신의 임무가 왕자의 치료를 막는 것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다치는 것을 보호하는 것이니, 저런 맑은 얼굴이 눈앞에서 피로 물들어가는 일을 볼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물론 그의 목숨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치료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지원은 조금은 안심했다.

 

 

 평소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왠지 토끼를 사냥하는 건 내키지 않는 지원이었다. 지원에게 유검은 토끼 같은 존재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고, 맑고, 밝은 그런 존재. 풀 뜯어먹거나, 멀리 뛸 줄이나 알지 여우가 어디에 있는지는 코를 킁킁대야지만 겨우 아는 그런 류.

 

 

 

 

 

 

 “지원님.”

 

 “예, 왕자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사람들을 치료하려면 그분들을 안아 주어야합니다.”

 

 

 

 

 그 말에 유검을 처음 만났을 때,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안아주던 유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몸부림을 치다가 저를…죽이려고 할 수도 있어요.”

 

 “….”

 

 “그때처럼 도끼를 던질 수도 있고, 며칠 전처럼 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고요.”

 

 “..그렇군요.”

 

 “아버지께서 제 부탁을 잘 들어주셨다면, 이제는 곧 무유병에 걸리지 않은 분도 저를 죽이려고 할 테지만, 하하.”

 

 “….”

 

 

 

 

 다른 사람의 죽음은 잠시라도 두고 보지 못하는 이가 되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가볍게 말하는 유검이었다.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마치 비가 올 테니 몸을 피하라는 것처럼. 필연적인 사건을 말하는 듯도 했다.

 

 

 

 “제 부탁은, 제가 죽을 것 같아도 저를 내버려두세요.”

 

 “…예?”

 

 “한 사람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 까지 가만 두시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지원은 대답을 곧바로 하지 못했다.

 

 그의 부탁은 지원과 창석이 한 약속과 완전히 반대였다.

 

 

 창석은 치료를 막으라고 했고, 유검은 치료를 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지금 이 상황에서는 유검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옳은 일은 창석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유검의 목숨을 살리려면 되려 창석의 말처럼 치료를 막기 위해 그를 지켜야했다.

 

 

 이 이질감에 지원은 대답을 보류하고 유검에게 물었다. 꼭 무유병을 걸린 자를 안아주어야만 하냐고. 그래야만 치료가 되냐고 말이다.

 

 

 유검은 잠깐 입을 다물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무유병에 걸린 분이나 그 분의 가족을 만나면 이렇게.”

 

 

 

 

 갑자기 유검은 지원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연이어 그는 지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어미가 제 아이를 안듯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렇게 안아주고 싶더라고요.”

 

 “….”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건, 그 마음 안에 사모함이 없어서일 거 에요.”

 

 “….”

 

 “나를 아껴주던지, 남을 아껴주던지 어떠한 것이든

 

 그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걸 안아주면 느낄 수 있잖아요.

 

 아, 이 사람이 나를 아끼는 구나. 사모하는 구나.”

 

 

 

 

 

 지원은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뿌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 속에 처음 느껴보는 이물감이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 이물감은 명치끝부터 간지럽게 올라와 지원이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때요. 기분 좋아졌죠?”

 

 

 

 

 지원을 품에서 놓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바다에는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고, 물에 반사된 노을이 유검의 얼굴을 비췄다. 정갈한 이마가, 콧날이 빛이 났고, 바람은 그의 검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 바람은 지원에게도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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