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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어느 날 막장 남주가 찾아왔다
작가 : 연새하
작품등록일 : 2019.11.6

그는 내게 그의 형제를 유혹하라 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그것만은 할 수 없다.
“카일을 유혹해.”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은밀히 속삭였다.
“제가 존재감이 없습니다.”

- 부제: 회귀 좀 그만해주실래요.( Feat. 빙의)
단역, 무존재 여주. 존재감이 없는데, 없어야 하는데, 존재감 어필을 너무 잘해버림 // 표지: 픽사베이 저작권 무료 이미지

 
15. 즐거운 책읽기
작성일 : 19-11-09 00:05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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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참, 민망하네그려.

 

 정원의 벤치에 책을 올려 두고, 폴짝 올라앉아 죄 많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린애였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철컹, 철컹이다.

 

 "왜 엉덩이를 만져서는. 요 못된 손."

 

 나는 손등을 짝 쳤다.

 

 "뭐 하는 짓이지?"

 

 무슨 닌자도 아니고 카일이 또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이놈은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법을 모른다. 놀란 나는 엉덩이를 들썩하다가 옆자리에 둔 책을 떨어트렸다. 카일이 떨어진 책을 주워서 흙을 털어냈다.

 

 "받아."

 

 나는 두 손을 내밀어 그가 주워준 책을 받았다. 손등에 난 발그스름한 손자국에 카일의 시선이 꽂혔다.

 

 "손은 왜 때렸지?"

 

 "버, 벌레가 이떠써요."

 

 나는 책을 무릎 위에 놓고 손을 뒤로 감췄다.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 꼬맹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있었다.

 

 "다시 묻겠다. 조금 전 넌 엉덩이를 만졌다고 했어. 엉덩이를 만진 나쁜 손이 네 그 손인가?"

 

 카일은 등 뒤로 감춘 손을 가리켰다.

 

 이놈은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모, 몰라요."

 

 "똑바로 말해."

 

 끈덕진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집 형제의 남다른 의지에 내가 물러섰다.

 

 "에드워드 삼촌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는데, 내 키가 요만해서 엉덩이를 떼찌떼찌했어요. 엉덩이 만진 나쁜 손이에요."

 

 "너 몇 살이지?"

 

 나이는 왜 묻고 그러냐. 불안하게.

 

 나는 쭈볏쭈볏 손가락 네 개를 폈다.

 

 "네 살... 원래 네 살이 이렇게 말을 잘하나."

 

 뜨끔했다. 카일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데,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엉덩이가 따끔따끔했다.

 

 "나를 닮았으면 뭐, 그럴 수도 있겠군."

 

 카일은 내 걱정을 무색하게 했다. 그는 너무 당연하게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다. 의심을 사지 않은 건 잘된 일이지만, 말투나 표정이 좀 재수 없었다.

 

 한데, 외모에서 찾지 못한 닮은 점을 다른 곳에서 찾아낼 줄이야.

 

 나를 친자식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났다. 자기 딸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편이 나로서는 더 편했다.

 

 카일 같은 사람이 내 사람을 챙기기 시작하면 무서운 법이고, 더 무서운 건 내가 그를 속인 걸 알았을 때다. 슬슬 이 연극의 끝이 걱정되었다. 심각해진 내 표정을 그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얼굴 펴. 네 손이 썩지 않았으면 됐다."

 

 잉? 이 쌍둥이는 형제애가 참 남다르다 싶다. 카일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고작 네 살짜리가 엉덩이 좀 만졌다고 혼자 돌려보내? 저택이 얼마나 넓은데."

 

 "그런 거 아닌데..."

 

 그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연구실로 갔다.

 

 나를 대동하고 나타난 카일을 본 에드워드는 당황하며 연구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에디, 네 연구실은 출입금지라고 했었지."

 

 "그랬지."

 

 "나도, 캔디스도 못 들어가게 해놓고 이 꼬맹이는 왜 데려간 거야."

 

 내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제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제가 여기 궁금하다고 떼썼어요!"

 

 "그, 그래. 귀여운 조카가 보고 싶다는데 거절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귀여운 조카라..."

 

 카일이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뭐, 뭐야. 왜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지금 '귀여운'에서 납득한 거야? 거기서 왜 납득해. 부끄럽게.

 

 카일이 나를 귀엽다고 생각한다니, 어쩐지 쑥쓰러워져 뺨이 발그레 물어갔다.

 

 "날 닮았으면 거절하기 힘든 매력이 있겠지. 어쩔 수 없었겠군."

 

 헐. 카일은 고맙게도 내 얼굴이 불타지 않게 찬물을 들이부었다. '귀엽다'가 아니라 '있겠지'였다. 제 유전자를 지녔다는 가정하에서. 현재는 귀여움도 매력도 찾지 못했단 뜻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착각의 구렁텅이에서 단번에 휙 건져 올렸다.

 

 네. 나 자신을 알겠습니다. 내가 단역인걸 제가 깜빡했군요. 단역주제에 귀여워봤자죠. 네네, 이쁘고 귀여운 건 주역님들께서 다 가져가야 합죠. 그렇죠. 쳇.

 

 새삼 내가 그저 그런 단역이고, 이 세계는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스레 짜증이 나 입이 댓 발 나와버렸다.

 

 그런데 어째선지 에드워드의 눈이 내 입술에 꽂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주머니께에서 손을 움찔거렸다.

 

 "에디."

 

 카일의 목소리에 에드워드는 주머니에서 손을 뗐다.

 

 "그 귀여운 조카가 엉덩이를 만졌으면 좋아해야지."

 

 네? 뭐라고요? 카일은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

 

 "다른 한쪽도 내어주지는 못할망정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엉덩이를 만졌다고 화를 내?"

 

 "화낸 적 없어."

 

 "화는 내지 않았어도 언짢아했겠지. 얼마나 무안을 주었으면 이 꼬맹이가 혼자 벤치에서 한숨을 쉬었겠어."

 

 에드워드가 나를 보았다. 정말 그랬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말은 하지 않고 무섭게 봤겠지. 그리고 넌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게 뒀어. 이 저택이 얼마나 넓은지 잊은 거야? 길이라도 잃으면 어쩔 뻔했어."

 

 "멜리는 또래보다 머리가 좋아서 길을 잘 알아."

 

 "날 닮아 아무리 명석해도 어린애다. 앞으론 유의해라. 멜리는 네 살이다."

 

 카일은 에드워드에게 경고를 날리고 돌아섰다.

 

 "가자, 멜리."

 

 나는 에드워드와 카일을 번갈아보다가 카일을 쫓아갔다. 카일은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되돌아와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던 나를 안아들었다.

 

 본채로 들어서자 캔디스가 히아신스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놀란 듯 말했다.

 

 "멜리, 아빠가 동화책 읽어준대?"

 

 그럴 리가 있나. 카일은 나를 든 김에 책도 들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카일이 책을 앞뒤로 돌려보곤 먼저 말했다.

 

 "그럴 거다."

 

 "정말? 잘 생각했어. 카일!"

 

 캔디스가 히아신스 꽃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어서 가. 멜리 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

 

 이런 젠장.

 

 캔디스가 환하게 웃을수록 내 속은 검게 타들어 갔다. 바늘방석에 몇 시간 더 앉게 생겼다. 이래서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하...... 내가 왜 그를 아빠라고 했을까.

 

 카일은 무릎 위에 나를 앉히고 책을 펼쳤다.

 

 "여긴 봤어요. 여기부터 읽어주세요."

 

 나는 재빨리 빙의 과정이 나오는 파트를 넘겼다. 낯선 용어와 지구에 관한 이야기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옛날 옛날 프레딘의 깊고 깊은 숲에는..."

 

 이왕 아빠 노릇을 하기로 했으면 그 표정을 좀만 펴면 좋겠건만,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처럼 책을 읽었다. 딱딱한 음성도 거북하고 자세도 거북하고 온통 거북한 것투성이였다.

 

 불편해, 불편해 속으로 연발하는데, 내 남다른 감각이 타인의 시선을 느꼈다.

 

 이 집에 유령이 또 있나? 나는 눈알을 좌에서 우로 스르르 굴렸다.

 

 저기군. 살짝 열린 문틈에 두 개의 눈알이 번들거렸다. 하도 시달려서 익숙한 눈이었다. 캔디스가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거북한 심정을 읽었는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카일, 멜리 표정 좀 봐."

 

 내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났나 보다.

 

 "뭘 잘못 먹었나?"

 

 카일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잖아. 동화책을 누가 그렇게 딱딱하게 읽어."

 

 캔디스는 책을 빼앗아 몸소 시범을 보였다. 그녀는 눈도 크게 입도 크게 뜨고 벌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다소 과장되게 책을 읽었다.

 

 "옛날, 옛날 프레딘의 깊고 깊은 숲에는 괴물이 사는 성이 있었대요. 어느 날 길을 잃은 남자가.......”

 

 대사에 따라 목소리도 바꾸고 손도 비벼가며 한 편의 연극 같았다. 캔디스가 생각보다 재능이 많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한참 집중해서 들었다.

 

 "자, 이렇게 하란 말이야. 한번 해봐."

 

 캔디스가 카일에게 책을 넘기고 말하는 토끼의 대사를 가리켰다. 카일은 이걸 내가 지금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렸다. 캔디스는 눈썹을 높이 올리며 어서 읽으라고 압박했다.

 

 "아.... 아...저씨 저 성은 위... 험해요."

 

 카일이 어색하게 말했다.

 

 "그게 아니지!"

 

 캔디스는 눈물을 머금고 부들부들 떠는 혼신의 연기를 곁들여 그 대사를 읽었다.

 

 카일은 캔디스의 눈치를 살피며 "저... 성은 위험해요." 했고, 캔디스는 다시, 다시를 연발했다.

 

 캔디스의 열정적인 코치에 카일은 진땀을 뺐다.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

 

 카일이 아는 캔디스는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한 떨기 꽃이었다.

 

 하지만 요즘 캔디스는 새로운 면모를 드러냈다. 그녀는 나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가식과 내숭을 던져버렸다.

 

 아무래도 비슷한 상황의 내가 그녀를 자극하고 봉인을 해제한 모양이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둘 사이를 훼방 놓는 내 임무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 집을 떠나는 날이 머지않겠다. 마음이 한시름 놓이면서 하품이 길게 나왔다.

 

 "아! 멜리 낮잠 시간이구나."

 

 캔디스는 책을 덮고, 카일에게 구연동화 미션에 이어 멜리를 재우기 미션을 주었다.

 

 나는 몰려오는 졸음에 침대까지 가지 못하고 카일의 품에 안긴 채 잠들었다.

 

 

 ***

 

 

 "멜리, 일어나. 멜리."

 

 "으아함... 누군데... 남의 꿀잠을..."

 

 부스스 일어나려는데, 눈을 채 다 뜨기도 전에 에드워드는 보쌈이라도 하듯 포대기에 나를 둘둘 감아 안고서 냅다 뛰었다.

 

 "뭐, 뭐예요?"

 

 "일이 좀 급하게 됐어."

 

 그는 바람처럼 달려 말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 세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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