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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0.29

 
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09
작성일 : 19-11-08 17:53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9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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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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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꿈을 꿨다. 전처럼 기분이 나쁜 꿈이 아니라 한준이를 부탁한다는 할머니가 나오는 슬픈 꿈이었다. 할머니는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여주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뒤를 돌아 아득해질 때까지 꿈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실제로도 눈을 감고 자고 있던 시간은 꽤 오래인지 눈을 뜨자 눈앞이 뿌옇게 보였고 점차 시간이 흐르자 원상태로 돌아와 사물의 구분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익숙해 보이는 병실과 희욱이 보였고 곧 띵-, 하게 울리는 머리 덕에 의도치 않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어났어? 아픈 데는 없고?"

 "어깨만 조금."

 "그럴 만도 하지, 어깨에 맞았으니까."

 

 간이의자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희욱의 자세를 고정해주며 여주에게 대답해주는 그는 여주가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그가 맞았다.

 

 "...한준이는요?"

 "집에 있지."

 "…강아지는요?"

 "살아있어. 그니까 치료나 잘 받아 뺀질대지 말고."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를 보며 살풋 웃음 짓던 영한은 희욱을 흔들어 깨웠고 역시 피곤한 건지 꿈적하지 않던 희욱은 여주의 목소리에 뒤척이다 눈을 뜬다.

 

 "어!? 일어났어?"

 "그럼요, 어깨 다친 건데요 뭘-"

 

 귀따갑지만 그리웠던 아르벨의 잔소리를 들은 지 일주일이나 지난 시간. 조금 아프긴 하지만 제때 치료를 받아 많이 양호해진 어깨에 혼자 매점을 가서 과자를 먹거나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진료 순회 시간에 자리를 비워 유빈에게 크게 혼이 난 적도 있다. 간호사들의 철저한 감시 속에 병실에서 빼도 박도 못한 채로 앉아있기만 해 한참 답답할 때였다.

 

 "쌤, 왜 이제 와요.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

 "내가 뭐 맨날 쉬니?"

 "하긴, 요즘 바쁘시겠네요. 애들은 학교 잘 다녀요?"

 

 침대 옆에 놓인 달력을 보며 말하는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던 채하가 고개를 순종적으로 끄덕이다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입을 연다.

 

 "힘들어 죽겠어. 아미 걔는 왜 인문계에 넣는다고 고집은 부려서 나만 일 이중으로 하기 생겼잖아. 다른 선생님들은 다 쉬는데…하,"

 "그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잖아요. 이것도 잠깐인데요. 뭘."

 "그래, 너 말대로 원래 하는 일이니까. 근데 퇴원은 언제 해? 이제 곧 있으면 학교 졸업할 날 다가오는데…"

 

 딱히 퇴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지 침대에 앉아 허공에 발을 구르며 영한이 가져다준 휴대폰을 만지던 여주의 손이 멈췄다. 아마 퇴원일을 물어보려 영한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졸업이라는 말에 굳어버린 여주에 더 당황한 채하를 구해준 건 영한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당연한 듯 분식을 사든 영한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건 뭐야?"

 "얘가 병원 밥 맛없다고 행패를 부려서 사 왔어."

 "제가 언제 행패를 부렸,"

 

 대드리는 모양새로 소리치며 일어서자 그런 여주의 어깨를 눌러 다시 앉힌 뒤 채하에게 턱짓으로 병실 밖을 가리킨다. 분식점 가는 잠깐 사이가 걱정인지 채하에게 칼같이 달려오라는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린 영한 덕에 칼퇴근을 하고 달려온 채하가 이제 필요 없으니까 그만 가보라는 뜻이었다.

 

 "됐다, 됐어. 나가면 되잖아."

 

 채하의 투덜거림도 더는 들리지 않자 떠들썩하던 병실은 금세 조용해져서 소리라고는 영한이 들고 들어온 봉지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떡볶이를 야금야금 먹는 여주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계속 거시서 지낸 거야?"

 

 벌써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 어째서 다시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더는 대답을 피해야 할 이유는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저 고분이 대답할 뿐이다.

 

 "…네, 서울에서는 못해보는 일도 많이 해봤어요."

 "경험차 한두 번씩 가보는 건 나쁘게 생각 안 하는데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안돼."

 "걱정했어요?"

 "걱정 안 할 건 또 뭐야!!"

 

 방실방실 웃으며 말하는 장난조가 아닌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에 영한의 얼굴은 곧 붉게 물들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성을 내는 영한의 모습에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여주는 영한을 더 놀리려는 듯 일부러 더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지 마, 너 우리 안 갔으면 어쩔뻔했냐? 하마터면 죽을뻔했잖아."

 "왔으면 된 거죠-"

 "너 진짜 죽으려고 했냐?"

 

 버럭거리는 영한을 보며 웃던 여주는 아직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그 기억에 곧 표정이 굳어버렸다. 순간 실수한 걸 깨달았지만 별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너 남경후한테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잖아."

 

 한층 더 굳어지는 여주의 얼굴을 본 건지 캔 음료를 건네며 괜히 창밖을 바라본다.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 모습에 퇴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 건지 괜스레 울적해지는 여주가 시무룩해졌다.

 

 "다음 주에 너희 학교 졸업한다더라."

 "저는 퇴원 안 해요?"

 "다 나아야 하는 거지, 이 상태로는 퇴원 못 해."

 

 단호하게 말하는 영한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여주. 물론, 장난이다. 혼자 옷도 갈아입고 매점에 내려가 무거운 생수병도 사 오는 그녀는 사실 엊그제 퇴원했어도 됐다. 하지만 영한과 희욱의 극성으로 오늘까지 퇴원도 못 하고 병실에 있는 것이다. 아마 채하가 안다면 머리끝까지 화가나 두 사람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며 소리칠 것이 뻔하다.

 

 "이제 혼자 옷도 갈아입을 수 있고 매점 가서 생수도 사 들고 와요. 그래도 아직 안 돼요?"

 

 애처롭게 이야기하는 여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던 영한은 희욱이에게는 비밀이라면서 그건 자신과 희욱이 때문에 퇴원하지 못했다는걸 전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기보다는 자신을 아껴주고 위해준다는 게 느껴져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언제 퇴원해요?"

 "퇴원이 그렇게 하고 싶어?"

 "당연하죠, 저도 졸업식 가고 싶어요."

 "옷 갈아입고 있어, 유빈이한테 다녀올게."

 

 

 *

 *

 

 

 "집으로 갈 거지?"

 "아니요, 가게로 가요 우리."

 "희욱이 형님 알면 혼나는데, 일단 알았어."

 

 그 어떤 대화도 이뤄지지 않은 차는 곧 익숙한 주차장에 정차되었고 여주는 빠르게 문을 열고 가게로 연결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혹여나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되긴 했지만 티를 내지 않는 영한은 차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도 빠르게 계단을 향해 뛰어간다. 딸랑-, 하는 소리가 들렸고 한준은 어느새 처음부터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였던 것 마냥 카운터 옆에 서서 문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준아."

 "누나!"

 

 이산가족 상봉하듯 서로를 얼싸안고 카운터 앞에서 방방 뛰어대는 꼴에 성진이는 왠지 모르게 뿌듯해 엄마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다. 하지만 곧 안쪽에서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희욱에 의해 그것도 끝이 났다.

 

 "여주도 그러고 있는 판에 뭐가 좋아서 소란이야!"

 

 버럭버럭-, 노처녀가 히스테리 부리듯 소리치던 희욱의 눈에 한준과 껴안고 있는 여주가 뒤늦게 보인 건지 잠깐, 하며 눈을 데구르, 데구르 굴리며 고민한다. 아무래도 병원에 있어야 할 여주가 사복을 입고 가게에 나와 한준과 껴안고 소란을 피운 게 이상하게 느껴진 것일 거다.

 

 "너, 왜 여기. 아니. 일단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네?"

 

 무슨 이야기인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자신이 나온 방으로 먼저 발걸음을 돌리는 희욱을 따라 들어가 버린다. 퇴원을 시킨 건 자신인데 말도 안 되지만 혹여나 여주에게 한 소리 할까 걱정이 되는 영한은 방문 앞에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서성거린다.

 

 "야, 김희욱을 몰라? 혼내면 너를 혼내지 여주는 안 혼내니까 일이나 하지? 어디서 여주 핑계를 대면서 일을 안 하려고.."

 "그게 아니라.. 아, 몰라!!"

 

 탈의실로 들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온 영한은 인상을 쓰고 있다. 그런 영한을 모르는 방안은 10분이 지난 아직까지도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은 썰렁한 적막감만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희욱이 무슨 말을 꺼낼지 모르는 여주는 괜스레 긴장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애써 침착하고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다.

 

 "이제, 일본으로 돌아갈 거야?"

 

 애써 웃으며 말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왠지 원래 제자리가 아니고 중간에 끼어든 객식구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게 여간 섭섭했다. 같이 지낸 지는 꽤 됐다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거리는 좁혀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다 아르벨 때문이 아닌 자신의 탓인 거 같아 속이 상할 따름이다.

 

 "역시 그곳이 더 안전하겠지? 안 잡을게."

 "왜요?"

 

 자신도 답답한지 마른세수를 하던 희욱은 방 안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방을 빠져나갈 거라는 예상을 한 여주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아니 형님. 듣자 하니 조금 섭섭하려고 하네요. 저도 아르 벨이에요. 물론, 형님들 가지고 협박하니까 겁나서 도망간 거긴 했지만 저는 아르벨이라고요."

 

 조금은 섭섭한 티를 내보이는 여주의 표정에 미안한 것도 잠시 곧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린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말 나가겠다고 할까 봐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희욱이였다.

 

 "저는 계속 아르벨이고 싶어요. 언제까지나 멍청하게 보호만 받고 살 수 없다는 것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저한테도 다시 가르쳐주세요."

 "안돼, 위험해."

 "가만히 아무 능력 없이 있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나아요, 형님."

 "채하, 그래. 채하한테도 물어보고 그 녀석이 허락하면 그때는…"

 

 처음 아르벨에 들어올 때부터 걱정했던 채하의 생각은 자신과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희욱의 예상을 빗나갔다. 채하는 희욱과 반대되는 생각이었다. 이왕 아르벨에 발을 들였고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혼자일 때보다야 낫겠지만 조직에 몸을 담군 이상 중국에서처럼 스스로도 몸을 지킬 줄 알아야 된다는 게 채하의 결론이었다. 예상외의 선택에 당황한 건 희욱이였지만 채하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게 일을 도우려고 쟁반을 든 상태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를 한 시간.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가게는 마감 시간과 가까워지자 손님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오랜만의 일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지쳐버린 여주는 카운터에 등을 기대고 스르륵-, 주저앉아 계속해서 힘들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누나, 이거 성진형님…"

 

 자신이 생각해도 형님이라는 말이 어색한 건지 결국 말을 끝까지 다 잇지 못하고 성진이 챙겨줬을 초콜릿 파르페를 건넨다. 여주가 컵을 넘겨받자 공허해진 그 손이 민망한지 괜히 머리를 벅벅-, 긁으며 딴청만 피우는 한준에게 여주는 말을 건넨다.

 

 "학교, 다녀야지."

 "그렇지, 학생이니까."

 

 한준의 머리를 쓰다듬는 여주에 한준은 살짝-, 웃었고 그런 모습에도 안도하는 그녀였다.

 

 "할머니 뵈러 다녀올까?"

 "진짜?"

 

 마지막 날 이후로는 한 번도 보자 못했을걸 알기에 또, 아무리 아르벨 식구들이 한준을 친가족처럼 대해도 아직은 모두 낯설기만 할 한준이 선뜻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에 먼저 신경을 써 꺼낸 말이었다. 정말 신이 난 건지 아까와는 또 다르게 행복한 웃음을 짓는 녀석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퇴근 시간 정각이 되자마자 영한은 평소와 다름없이 여주를 아가라 부르며 찾았고 그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인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괜스레 입술만을 삐죽였다.

 

 "빨리 나와라,"

 "아, 형님. 아가라고 안 하면 안 되는 거에요?"

 "싫으냐?"

 

 그게 질문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번엔 절대로 그냥 안 넘어가겠다는 비장한 얼굴이었지만 능청스레 말을 돌리는 영한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오늘은 들를 때 없어?"

 "아, 오늘 있어요. 한준이랑 할머님 뵈러 다녀오고 싶어요."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주의 옆에 자리를 잡아 섰고 영한은 또 뭐가 불만인 건지 인상을 쓰며 손에 든 차 키를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어? 안 가요?"

 "…한준도 가?"

 "당연하죠, 한준이랑 찾아봬야죠."

 

 누가 봐도 한준이는 데려가기 싫다는 저 표정에 난감하고 이해할 수 없는 여주에게서 영한을 데리고 가버리는 희욱은 몇 시간 전에는 여주와 들어갔던 방으로 사라진다.

 

 "야, 김영한."

 "왜."

 "…왜? 말이 부쩍 짧다? 요즘 안 맞았지?"

 

 눈을 부라리며 하는 말이 제법 위협적이었는지 순간 멈칫한 영한은 아닌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이번에는 용서한다.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땐…"

 

 희욱의 말에 영한은 무표정으로 방을 나와 카운터에 올려둔 차 키를 들고 먼저 나가버린다. 희욱에게 감사하다며 인사하는 여주와 한준이 얄미웠지만, 희욱의 말대로 빠르게 데려다준 후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을 먹은 영한은 그저 급할 뿐이다. 차에 오른 지 5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는 두 녀석 덕에 슬슬 짜증이 난 영한은 창문만 내린 채로 입에 담배를 물었다. 딱히, 담배를 자주 피는 골초도 아니었고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었지만 무슨 일인지 손이 무의식적으로 손이 안주머니에 자리한 담뱃갑으로 갔기 때문에 손을 거두지 않고 한 개비를 꺼내 들어 입에 문 것이다.

 

 "형님…,"

 "왜 이렇게 늦게 나와?"

 

 기다려도 나오지 않던 둘이 어째서 담배를 입에 물자마자 등장했는지는 궁금했지만, 곧 입에 걸려있던 담배를 빠르게 채가는 여주의 손길에 인상을 쓴다. 그런 영한은 안보이는지 여주는 채간 담배를 부러뜨리고 바닥에 던지고는 운전석에 앉아서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를 노려본다.

 

 "뭐하냐."

 "담배는 안 돼요, 저얼때에로."

 "됬고, 타기나 해."

 "왜요, 바쁜 일 있어요?"

 

 궁금한 듯 물어오는 여주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영한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고 한준은 옆에 시큰둥하게 서서 둘을 바라볼 뿐이다. 표정으로 봐서는 답답하게 끝나지 않고 돌고 돌 대화가 지루한 모양이다.

 

 "할머니 보러 안 가요?"

 "그래, 너희 할머님 보러 간다며 빨리 타라. 잔소리 말고."

 

 전과 다르게 심하게 인상을 쓰는 영한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여주는 한준을 세워두고 평소와 같이 조수석에 앉지 않고 뒷문을 열고 냉큼 올라탄다. 당연히 자신의 옆에 앉을 거라고 생각한 영한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무어라 입을 떼지도 못한 채로 허-,하는 기가 차는 듯 웃음을 내뱉었다.

 

 "뭐야?"

 "한준이랑 앉아요."

 "내가 앉을 곳을 내가 정할래."

 

 퉁명스레 이야기한 한준은 먼저 올라앉아 있는 여주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아까 여주가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자리에 자신의 궁둥이를 붙였다. 얼떨결에 끌려 나온 여주는 한참이나 멍하게 서 있었지만 곧 문까지 닫아버리는 한준이 때문에 마지못해 조수석에 올랐다. 약간 뾰로통해 보이는 게 영한에게 심통이 난 듯 잔뜩 부어 보였지만 여주 옆에 앉아있는 게 마냥 기분이 좋은지 안 어울리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영한이다. 차가 출발한 지 30분째, 뒷좌석에 앉았던 한준은 어느새 잠이 들어서는 넓은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역시 긴 다리 덕에 살짝 삐져나와 불편한 모양인지 잠결에도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자리를 잡는 모습에 영한은 아까의 악감정은 어디로 간 건지 셀셀-, 웃음이 나왔다. 잠시 뒤 규칙적으로 쿵쿵-, 하고 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돌아봤더니 여주가 묶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간신히 자는 얼굴을 가리고는 차에 움직임에 따라 머리를 부딪히고 있었다. 부딪히는 머리가 아프지도 않은 건지 아니면 그만큼 깊게 잠에 빠진 건지 좀처럼 일어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자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부딪히는 머리를 자신 쪽으로 옮겨뒀다. 그것도 얼마 안 가 다시 쿵쿵-, 소리를 내는 여주의 머리에 손을 뻗어 의자 밑 어딘가에 있을 레버를 찾았다. 몇 번의 더듬거림에 곧 레버를 찾을 수가 있었고 뻗었던 손을 운전대로 옮기는 도중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자신을 보고 있는 한준을 보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흠칫하는 영한이다.

 

 "…형님."

 "ㅇ, 왜?"

 "여주누나 좋아해요?"

 

 어투는 분명 질문이지만 한준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눈빛이었다. 그에 기분이 상한 영한은 아니라며 시치미를 땠고 한준은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아니,"

 "누나가 들었으면 서운했겠다."

 

 그제야 자신의 한 말에 놀라 조수석에서 자는 여주를 곁눈질로 한 번 보고 아직 잠들어있는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괜한 소리를 하냐며 타박을 주려는 영한의 눈빛이 어느새 신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한준에게로 꽂힌다. 고개까지 까딱까딱하며 흥이 날 때로 났던 한준은 곧 차가 익숙한 곳으로 진입하자 숙연해진다.

 

 "내려, 할머님 봐야지."

 "누나…, 일어나면요."

 

 그토록 다시 가보고 싶던 곳인데도 아직 믿고 싶지 않은 건지 들어가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건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복잡해 보이는 한준의 얼굴에 영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깊게 잠이 든 여주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다 곧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여주야, 일어나봐."

 "아, 싫어-"

 

 잠에 취한 듯 현재 자신을 흔들며 깨우는 사람이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듯 말꼬리를 늘이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녀석이 제법 귀여워 보이는지 어느새 입가에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애써 표정을 감추며 그녀를 깨우는 영한이다.

 

 "여주야, 좀 일어나봐. 할머님 뵙고 오랜만에 집에 가봐야지. 응?"

 "으음, 하지마아."

 

 자꾸만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영한의 손을 떼며 아예 몸을 틀어 반대편을 보고 돌아눕는 여주를 보며 영한은 한숨을 내쉰다. 그 어떤 때에도 오늘만큼이나 안 일어나겠다고 꼬장을 부린 적이 없어 딱히 어째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에서 먼저 하차한 한준은 둘을 기다리는데 둘이 통 나오지 않자 문을 다시 열어 잠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주를 앞에 두고 쩔쩔매는 영한을 보며 혼자 다녀온다고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일어날 거야."

 "누나 원래 이래요?"

 "아니야."

 

 차 문에 기대 여주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한준을 슬쩍 보고 여주를 어깨를 마저 흔들자 그제야 인상을 조금 구기며 눈을 뜨던 여주가 자신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란다. 그제야 제법 가까웠던 걸 깨달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급하게 떨어지며 천장에 머리를 쿵-, 박았다.

 

 "아악-!!!"

 "형님!!"

 

 쿵-, 하고 생각보다 큰소리를 내며 박은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로 한참을 낑낑대고 있는데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와 영한의 머리를 살피는 여주 덕에 또다시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박는 영한이다. 또 다시 한번 낑낑 앓던 영한은 몸을 쑤욱-, 빼 차 밖으로 먼저 나가버린다.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을 깜깜한 저녁인 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영한이 차 밖으로 먼저 나가고 나서야 도착한걸 깨달은 건지 그제야 뭉그적거리며 나와 곁에 선다. 여주의 얼굴을 볼 때마다 다시 떠오르는 가까웠던 여주의 얼굴에 다시금 얼굴이 화끈 대는 거 같아 선뜻 밝은 실내로 들어가지 못한 채 입구에 서서 방황하고 있다. 먼저 앞장서 들어갔던 여주와 한준이 다시 얼굴을 빼꼼 내밀어 쳐다보자 영한을 먼저 들어가라며 손짓한 후 불빛이 없는 화단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애써 붉어진 얼굴을 진정시킨 영한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익숙하게 걸음을 옮겨 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애써 웃고 있는 한준과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녀석이었다. 마치 본인이 그렇게 되리라는 걸 미리 알고 계시기라도 한 듯 한준이를 맡겼던 할머니에 마음이 아팠다. 꾸벅꾸벅 연달아 인사하던 여주는 곧 큰 목소리로 다음에 뵙겠다는 말을 남긴 채로 두 눈을 손으로 꾹-, 누른 채로 영한이 서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

 

 평소 거리를 나란히 활보할 때에도 머리하나 차이가 나는 여주의 머리가 무방비상태의 영한의 가슴팍에 톡-, 기대어진다. 흠칫-, 놀란 영한은 여주 뒤에서 따라 걷던 한준을 바라봤고 한준은 계속 있으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 건물을 빠져나간다. 한준이 그 둘을 지나치자마자 여주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고 영한의 정장 재킷은 눈물에 닿자 색이 진해져 있었다.

 

 "왜, 왜 울어."

 "형님, 이번에도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 다. 다 저 때문이에요."

 "아니야,"

 

 나긋나긋이 울리는 영한의 목소리에 괜찮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는 영한의 손길에 다시 한번 어깨가 떨리던 여주는 아예 손을 뻗어 영한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크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죄책감이 꼭 몇 년 전 영훈이 다리를 잃고 나서의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자신도 코끝이 찡해져 괜히 눈을 연속으로 깜빡거리는 영한이다.

 

 "괜찮아,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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