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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5장 풍림화산(風林火山)(2)
작성일 : 19-11-08 05:28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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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토 도시마사. 여관에 방을 잡아두고 벌써 며칠째, 아마쿠사미코토는 조용히 그 이름을 되뇌며 움직일 수 있는 장기 말들을 하나하나 종이 위에 펼쳐 보이고 있었다. 미노의 살모사라고 불리는 그는 말 그대로 살모사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었는데, 마치 저를 품고 낳아준 어미를 잡아먹는 새끼 살모사처럼 자신을 믿어주고 기용해준 주군들을 차례로 추방하거나 살해함으로써 미노국의 다이묘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그, 사이토 도시마사였다. 아직 그의 주군이었던 시절의 도키 요리노리는 당시 꽤 건재해 있었다고는 하나, 모략의 대가인 사이토 도시마사를 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카이히메가 뱀이고 호랑이라. 그거야말로 지나치게 그녀를 과대평가하는 말이다. 물론, 그녀 역시도 모략의 대가이지만 사이토 도시마사에 비한다면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문득, 아마쿠사미코토는 옆에서 먹물을 채워주는 유죠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물었다.

 

  “너, 아마쿠사까지 배를 타고 올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이냐?”

  “그냥 걷다보니 아마쿠사였습니다.”

  “그냥 걷다보니 아마쿠사였다고? 오와리국에서 아마쿠사까지 육로로 온다 해도 결국은 배를 타고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들이 바다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는 잘 알 터. 만약 바다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면 너는 히닌이라는 이유만으로,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원흉이 되어 그대로 수장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당신을 만났지 않았습니까. 고작 그것이 두려워 아마쿠사를 향해 북서쪽으로 걷지 않았다면 당신을 만날 수 없었겠지요.”

 

  두려움이라. 장기 말들을 하나하나 종이 위에 펼쳐놓던 아마쿠사미코토는 곧 붓을 내던지고 바닥에 길게 드러누웠다. 아마쿠사미코토 자신이 전쟁에 개입한다 하여도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전선을 이루고 있는 점 몇 개를 흩뜨려놓는 것일 뿐. 그로 인해 결과가 달라진다 하여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 아닌 인간들의 몫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이 전쟁으로 인해 이 아이의 천하 통일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아이의 몫이고,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너, 오와리국과 싸울 수 있겠느냐?”

 

  아마쿠사미코토는 종이 위에 놓인 장기 말들 중 ‘사이토 도시마사’라는 이름에 표시를 해두었다. 유죠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아마쿠사미코토를 바라보았다.

 

  “그래. 사이토 도시마사는 잘만 이용한다면 너의 천하 통일에 큰 도움이 될 인물이다. 그리고 지금 그자는 마땅한 동맹상대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지.”

  “아무래도 그와는 동맹을 맺으려는 이가 아무도 없겠지요. 아무리 하극상의 시대라고는 하나, 그처럼 자주 주군을 바꾸고 바꾸는 주군마다 모두 추방하거나 죽이는 자를 어찌 믿고 동맹을 맺겠습니까.”

  “더구나 에치젠국은 사이토 도시마사의 집정 이후로, 미노국과의 동맹을 끊은 상태이다. 에치젠국 같이 강한 구니라고 해도 모든 구니를 상대로 혼자 싸울 수는 없는 법. 또한 모든 구니를 상대로 늘 싸움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때로는 깊은 동맹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그것이 미노국이었지만 사이토 도시마사의 행태를 보고 모든 국교를 단절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유죠의 표정에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이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종이 위의 장기 말들 중 오와리국, 카이히메, 도키 요리노리, 에치젠국, 아사쿠라씨에 표시를 이어갔다. 그러고도 한참을 고민하던 아마쿠사미코토는 곧 종이 위에 다른 장기 말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시다 단조노추 사이조노스케 마사토부.’

  “너도 알다시피 2년 전, 도시마사에게 추방당한 요리노리는 너의 아버지 마사토부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에치젠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마사토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뭐, 나는 마사토부가 요리노리의 보호를 구실로 도박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만.”

  “도박이요?”

  “그래. 주군을 기만하고 배신한 신하를 죽이고, 본래의 주군에게 자리를 되찾아줌으로써 자신을 명분을 아는 의리 있는 군주로 세상에 선전함과 동시에 미노국에 어느 정도의 이권을 요구하는 것.”

  “…….”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마사토부가 죽었으니 요리노리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을 것이다. 그동안은 그의 보호 아래에서 웅크려 있을 수 있었지만 새로 집정하기 시작한 카이히메는 자신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릴지 모르는 상태이니까. 그러니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애가 탔겠느냐.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토 도시마사는 생각보다, 그리고 요리노리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었다. 토지조사 이후로 뱀이라고, 호랑이라고 불리는 천하의 카이히메를 대놓고 모욕하는 선물을 보내다니. 그 일은 결국 카이히메가 모욕감에 몸서리치며 도시마사에게 설욕할 기회만을 엿보게 만들었고, 요리노리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이 계속 이시다가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자리도 되찾을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카이히메에게 접근했다.

 

  “아마 지금쯤 카이히메의 사절이 에치젠국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요리노리의 밀사가 에치젠국에 머물고 있는 그의 조카 요리즈미를 찾아갔겠지.”

 

  도키 요리즈미는 도키 요리노리의 형인 도키 마사요리의 아들이었다. 마사요리는 요리노리와 함께 도키가의 가독을 두고 다투다 요리노리를 지지한 도시마사의 계략에 말려들어 자리를 잃고 쫓겨나 처가가 있는 에치젠국으로 추방당했고, 그때 그의 아들이었던 요리즈미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함께 추방당했다.

 

  “그러고 보면 참 재미있구나. 에치젠국은 자신의 사위를 쫓아낸 요리노리와도 동맹관계를 유지했으니 그것이야말로 의리라고는 모르는 행위요, 형과 형수, 조카를 쫓아내놓고 이제 와서 숙부랍시고 조카에게 동맹을 요구하는 요리노리의 행동은 더더욱 의리를 모르는 행동이 아니냐.”

  “…….”

  “그런 것들이 무슨 의리며 명분을 논한다고.”

 

  여기까지 말하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죠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도시마사는 에치젠국과 오와리국, 두 개의 강한 세력과 충돌하는 것이 된다. 그리 된다면 지금의 그로서는 큰 부담일 터. 하지만 무턱대고 화친을 요구하는 것은 그가 패배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으니 썩 내키지는 않는 일일 것이다.”

  “…….”

  “유죠.”

  “예.”

  “어찌할 테냐?”

  “…….”

  “천하에 비하면 오와리국은 아주 작다. 그러니 네가 진정으로 천하를 얻고 싶다면 지금 오와리국을 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행여 자신이 한때 오와리국을 저버린 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져 그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까, 유죠는 그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천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라면 잠시만, 아주 잠시만 오와리국을 저버려도 되지 않을까. 유죠의 눈을 들여다보던 아마쿠사미코토가 그의 얼굴에 새겨진 낙인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삼국지연의에 보면 말이다, 이런 장면이 있다.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조조가 진궁의 도움으로 무사히 여백사의 집까지 갔을 때, 여백사는 친구의 아들인 조조를 무척 반기며 술과 음식을 사러 나갔고, 그 집 아들들과 하인들은 돼지를 잡으려 했다.”

  “…….”

  “하지만 돼지를 잡으면서 “묶어서 죽이는 게 좋겠다”느니, “반항이 심할 것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너무 크게 내는 바람에 조조는 그것이 자신들을 죽여서 관아에 바치려는 것인 줄 알고 칼을 빼어 그들을 모두 죽였다.“

  “…….”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돼지를 잡으려던 것이었고, 그에 깜짝 놀라 서둘러 도망치려던 두 사람의 앞에 여백사가 나타났다. 여백사에게 도망자의 몸이라 오래 머물 수 없다 말하고 걸음을 재촉하던 두 사람 중 조조는 별안간, 칼을 빼들고 여백사의 뒤로 가 그를 베어 죽였다.”

  “…….”

  “그리고 진궁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자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하인들의 시체를 본다면 우리를 신고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금방 잡히고 말 것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힘 없는 노인마저 죽이느냐는 진궁의 말에 조조는 이렇게 답했다.”

  “…….”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

  “더구나 너는 이미 한 번 오와리국에서 저버림 받았지 않으냐.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오와리국을 저버려도 괜찮다.”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에 유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한 번만, 아니,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오와리국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은 사이토 도산을 얻고, 천하 통일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작금의 전국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 말은 네가 그만큼 강한 군주가 된다면 그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못한다는 뜻. 그러니 백성들이 너에게 등을 돌릴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유죠의 눈에는 이제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

 

  그러나 아무런 세력도 없이 사이토 도시마사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 한다면 도시마사가 유죠를 받아줄 리도 없을 뿐더러, 설령 받아준다 하더라도 유죠가 도시마사에게 그대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며칠 동안 이전보다 더 혹독하게 유죠에게 검술훈련을 시켰다. 이번에는 정말 유죠를 죽이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것처럼 뒤에서 갑자기 공격하기도 했고, 싸움 중에 검을 내던지고 맨몸으로 달려들어 목을 조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유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아마쿠사미코토를 칼로 찔러 간신히 벗어났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금세 회복되는 상처를 보며 유죠의 실력이 성장하는 정도를 측정했다.

 

  “아주 저를 죽이려 하십니다.”

 

  유죠가 아마쿠사미코토의 가슴팍에 길게 베인 상처를 낸 날, 아마쿠사미코토는 칼을 떨어뜨리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유죠를 감싸 안았다. 유죠는 그런 아마쿠사미코토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벼대며 말했다.

 

  “두고 보십시오. 언젠가는 제가 반드시 당신을 이길 겁니다.”

  “그전에 이 검이나 마저 피하거라!”

 

  아마쿠사미코토의 칼날이 장난스럽게 유죠의 머리 위로 그어졌다. 유죠는 공격을 한 번 피하며 다시 아마쿠사미코토의 복부를 노렸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검을 옆으로 흘려내며 말했다.

 

  “이제 가자.”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가 세력권으로 포섭하려 하는 이들은 사츠마의 낭인들이었다. 변방 중의 변방, 험하고 거칠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숱한 전쟁을 치르며 저절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본능밖에 남지 않은 사츠마의 사무라이들은 매우 용맹스러운 전사였으나 그만큼 자긍심이 높아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그 존재가 설령 아마테라스오미카미라 하더라도 충성을 맹세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유죠의 세력권으로 포섭한다면 제아무리 교활하기로 유명한 미노의 살모사라 하더라도 함부로 유죠를 흡수할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흐음.”

 

  아직 나이가 어린 유죠가 그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한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음 계획을 진행시켰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낭인들이 자주 모이는 폐가나 싸구려술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호색취미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들은 대체로 어리고 아름다운 미소년을 찾았고, 그 때문에 다른 사무라이의 미소년을 탐내 서로 싸움질을 벌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환술로 유죠의 얼굴에 새겨진 히닌의 낙인을 가려주었다.

 

  “언제는 저를 보고 와줄 사람들은 히닌의 낙인 따위에 상관하지 않을 거라면서요.”

 

  투정 같은 유죠의 말에도 아마쿠사미코토는 웃지 않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말했다.

 

  “잘 들어라. 매혹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좋은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명심하여라. 너는 지금부터 한 송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되어 사츠마의 낭인들이라는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한다.”

  “…….”

  “그리고 그들이 매혹의 순간에서 깨어나 감히 히닌이 자신들을 유혹하려 하였음을 알고 화를 낼 때,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너는 그때부터 그들을 너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일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이제 가라.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가마쿠라시대 이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무사들 사이의 동성애 풍조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특히, 사츠마의 무사들은 여자들과의 사랑보다 남자들과의 사랑이 더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해 나이가 어리고 아름답고 재능도 뛰어난 미소년들을 연인으로 두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것은 이리저리 떠도는 낭인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미소년들에게 구애를 할 길이 막막한 그들은 지나가는 미소년들을 납치하거나 겁탈해 강제로 연인으로 두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좋은 향 하나를 가져다 피우고 입김을 불었다. 곧 향이 구름 모양으로 변해 유죠를 감싸기 시작했고, 유죠의 온몸에서는 좋은 향이 진동했다.

 

  “향은 신들을 위해 바쳐지는 것이니 신의 물품이라. 그러니 신의 향을 받은 그대여,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이 되어 벌과 나비들을 매혹하소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없다 말을 하면서도 일을 성공시키라는 기원을 담은 언령을 외친 아마쿠사미코토는 미리 지어둔 화려한 청색 고소데를 꺼내 유죠에게 입혔다. 유죠의 키에 꼭 맞는 고소데에는 황금빛 불새가 옷 전체에 걸쳐 금박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것도 가져가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묶은 머리 뒤에 금장식을 꽂아주었다. 얇은 금판들이 부딪치며 내는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죠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유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기척조차 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영원히 깃들 곳이 못 되기에

  마치 풀잎에 내린 백로와도 같고, 물에 비친 달보다 덧없다네

  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앞서서 무상한 바람에 이끌려가고,

  남쪽 누각의 달을 즐기던 사람들도 그 달보다 앞서서 세상의 구름 속에 숨었다네

  인간의 오십 년은 하천의 세월에 비한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다르지 아니하니

  한 번 삶을 받아서, 멸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유죠는 낭인들이 모인 싸구려술집에 들어가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목소리는 애수를 띠고 높이높이 올라갔고, 끝이 둥근 나기소데는 칸자시가 짤랑거리는 소리에 맞춰 나풀나풀 흔들렸다. 조심조심 발을 놀리는 나긋한 몸짓마다 향기가 배어나와 술집 안에 모인 낭인들은 앞 다투어 그를 자신의 옆에 앉히려 했고, 유죠는 아마쿠사미코토에게 배운 대로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며 반달처럼 휘어보였다.

 

  “저는 그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기예를 보일 뿐. 손님을 모시지 않습니다.”

  “뭐라고……?”

  “그러나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하나 해주신다면 기꺼이 하룻밤 정도는 놀아드리지요.”

 

  말을 마치며 유죠는 낭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보았다. 마치 연꽃봉오리가 연잎 사이로 피듯 낭인들 사이에서 일어선 유죠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나기소데를 흔들고 금장식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유죠가 낭인들을 이끌고 술집을 나선 것은 달이 막 차오르기 시작한 때였다. 유죠는 부러 먼 곳에 있는 산 속까지 낭인들을 끌고 갔고, 그들 일행이 그곳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 다 되어서였다.

 

  “제 이름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유죠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들이 요괴에 홀렸을지도 모른다며 당황해하는 낭인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유죠는 아마쿠사미코토가 알려준 환술을 푸는 주문을 외웠다.

 

  “해(解)!”

 

  유죠의 얼굴에 히닌의 낙인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낭인들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죠는 무심한 눈길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분한가?”

 

  유죠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어딘지 모르게 강인하고도 스산한 목소리가 낭인들의 화를 부채질한 것인지 어느덧 낭인들이 허리에 찬 검집에 손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감히 사람도 아닌 히닌 주제에……!”

  “그렇다. 나는 히닌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죠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그대들을 내 사람으로 거둬야겠다.”

 

  유죠는 쇼비타 성의 도련님이었을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말투로 말을 끝맺었다. 곧 낭인들이 공격태세를 갖추고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채 유죠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체토스!”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낭인들의 칼날을 피하며 유죠는 미리 근처에 숨겨둔 칼을 찾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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