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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4장 풍림화산(風林火山)(1)
작성일 : 19-11-08 05:26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8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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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죠가 갈아입을 옷과 속옷, 당분간 먹을 식량과 마실 물을 챙기고 나자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의 탈것을 불렀다. 곧, 하얀 털에 검은 장미 같은 무늬가 점점이 박힌 늘씬한 네 발 짐승이 불려나와 몸을 낮췄고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한 손을 짐승의 코 밑에 가져다 냄새를 맡게 해주었다.

 

  “우와!”

 

  가까이서 짐승을 본 유죠가 탄성을 질렀다. 유죠의 눈앞에는 신상에서 본 것과 똑같은 하얀 눈표범이 무심한 눈을 하고 땅바닥에 꼬리를 탁탁 쳐대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유죠와 눈표범을 번갈아 바라보다 누군가의 이름을 툭 던졌다.

 

  “시라히메.”

  “예?”

  “이 녀석의 이름이다. 내 탈것이지.”

  “가미사마의 탈것이라고요?”

  “그래. 천상계에 오른 신들에게는 수많은 신수(神 獸)들 중 하나를 탈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 방식은 상호지명이라서 주인이 신수를 선택해야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수 또한 주인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이 녀석을 선택했고, 이 녀석도 나를 선택했다. 그때 내가 지어준 이름이 시라히메다.”

 

  이 눈표범이 신수였다니. 유죠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눈으로 시라히메의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신수여서 그런지 유리구슬처럼 맑고 푸른 눈동자로 유죠의 시선을 맞받는 시라히메의 눈동자 뒤편에서는 커다란 불꽃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쿠사.”

  “예?”

  “내 이름은 아마쿠사미코토니까 앞으로는 아마쿠사라고 불러라. 충을 받는 자가 충을 바치는 자에게 가미사마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더냐.”

 

  유죠와 함께 신사를 나서기 전, 아마쿠사미코토는 환술을 걸어 인간들의 눈에는 시라히메가 평범한 말처럼 보이게 했다. 시라히메의 등에 짐을 실은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상의 발치에 놓아둔 신발보퉁이를 가져와 다른 짐들 속에 끼워 넣고, 새전함에 있던 금화와 은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낫겠다며 품 속에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행장을 점검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신사에서 보냈던 나날들은 그나마 안온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닌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매를 맞고 얼굴이며 온몸에 멍자국과 상처가 늘어갔지만 밥을 굶지도 않았고, 도적떼를 만나거나 전장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너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

  “그러나 이제 이 신사를 떠나 세상으로 나가면 너는 신사에서 보냈던 안온한 나날들을 두 번 다시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밥을 굶어야 할 수도 있고, 도적떼를 만나거나 전장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에 나가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너의 쓸모를 증명해야하겠지.”

  “…….”

  “네가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이시다가의 이름을, 오와리국의 이름을 보고 오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그래, 너에게는 지금 오직 유죠라는 한 인간 자체를 보고 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너는 끊임없이 너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

  “자, 유죠. 너와 함께 세상에 나가기 전에 너에게 묻겠다. 너는 너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

 

  유죠는 대답 대신 허리에 찬 쌍도를 풀어 아마쿠사미코토에게 건넸다. 사무라이가 자신의 칼을 건넨다는 것은 곧 목숨으로 대의를 증명하겠다는 뜻.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에게 쌍도를 돌려주며 유죠의 뺨에 새겨진 히닌의 낙인을 쓰다듬었다.

 

  “이 낙인은 지우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너를 보고 오는 사람들이라면 이 낙인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유죠와 함께 신사의 토리이를 나서 불이 꺼져가는 마을을 향해 걸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눈으로 다시 한 번 신사가 있는 숲을 돌아보았다. 이제 이곳으로 돌아오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었다.

 

  “안녕히.”

 

  그동안 휴식을 취하고 유죠와 함께 있었던 신사에 작별을 고한 아마쿠사미코토는 온통 잿더미가 된 마을을 앞서 걸었다. 유죠가 시라히메와 함께 따라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도 배워두어라. 강한 군주가 되려면 때로는 어떠한 잔인한 짓이라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당대의 평가가 어떠하든, 후대의 평가가 어떠하든 말이다.”

 

  충을 바치는 자로서의 첫 진언이라는 말을 덧붙인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를 돌아보며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자객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함양 궁으로 가기 전에 불렀던 역수가라는 노래였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가 한 번 떠나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

 

  가을이 될 때까지 유죠와 아마쿠사미코토는 발길 닿는 대로 곳곳을 돌아다녔다. 유죠가 이제 어디로 가느냐 물으면 아마쿠사미코토는 발길 닿는 대로라고 대답했고, 그럴 때마다 유죠는 우리가 무슨 유랑예인이라도 되느냐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둘은 많이 친해져 있었다.

 

  “유랑예인이라. 뭐 틀린 말은 아니구나. 전쟁이나 살인이란 때로 하나의 예술이기도 하니, 수많은 인간과 신들을 베고 인간들의 전장을 떠도는 나나 죽을 때까지 전장에서 싸우고 또 싸우며 끊임없이 누군가의 피를 묻혀야 하는 운명을 받은 너나 유랑예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가 너에게 충을 바친다 하여 나와 맞먹을 생각은 하지 마라. 이래봬도 나는 타카마기하라의 전쟁신이다.”

 

  이왕 충을 바치기로 한 것, 제대로 된 충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아마쿠사미코토는 여건이 허락될 때마다 어디선가 책을 구해와 유죠를 가르치기도 했고, 아직은 부족한 검술을 보완해주기도 했다. 아마쿠사미코토가 가져온 책은 대개가 중원의 유학(儒 學)에 관련된 책이었는데 아마쿠사미코토는 유학은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라며 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그런가하면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따금 이사나 상앙, 한비자 같은 법가(法 家) 사상가들의 저서를 구해와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시키려면 먼저 강력한 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군주가 있다. 천하를 통일하려는 그를 암살하려는 세 명의 자객이 있어 그는 그들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금과 땅을 하사하고, 자신의 십 보 이내로 불러 술을 하사하겠다 하였다.”

  “…….”

  “그리고 그 포고를 들은 어느 자객이 세 명의 목을 취해 군주에게 가져갔고, 그는 군주의 앞에서 술을 마시며 그가 꿈꾸는 천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그리고 그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그의 야욕 때문이 아니라 오랜 전란에 지친 백성들을 평화라는 길로 인도하려는 것임을 알고 암살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

  “그리고 군주는 그가 자신의 뜻을 이해하였다는 사실에 감복하여 그를 살려주고 싶어 했으나 신하들은 그에게 사형을 내리라고 호소하였다. 왜인지 아느냐?”

  “…….

  “법과 명령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이 법과 명령을 만드는 군주라 할지라도 어길 수 없는 것이 법과 명령이기 때문이다. 만약 군주가 법과 명령을 어긴다면 천하의 그 누가 법과 명령을 지키려 할까. 그리 되면 그 어찌 천하를 통일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

  “그런 것이다, 법과 명령이란. 그것이 설사 군주라 하여도 어길 수 없고, 어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절대적인 권위에 서야 하는 것이 법과 명령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결코 강한 군주가 될 수 없고,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할 수도 없다.”

 

  마치 스승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존재가 스승이 아님을 유죠는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자신에게 충을 바친 신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연심을 품은 존재였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였다.

 

  “아마쿠사.”

 

  어느 날 밤, 유죠는 여러 들꽃들을 꺾어다 풀줄기로 엮은 꽃다발을 수줍은 미소와 함께 아마쿠사미코토에게 건넸다. 꽃다발을 받아드는 아마쿠사미코토의 표정이 어리벙벙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유죠는 말했다.

 

  “저와 혼인해주시렵니까.”

  “뭐?”

  “왜 그리 놀라십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말입니다. 나중에 저와 혼인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 나중에라. 그러니까 나중에 언제 말이냐?”

  “그야…….”

 

  유죠가 제법 진중한 표정으로 아마쿠사미코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허리 아래에서 묶은 아마쿠사미코토의 머리에 매어져 있는 검정색 머리끈을 풀고 긴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은 유죠의 입술이 아마쿠사미코토의 입술 앞까지 다가왔다.

 

  “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일본의 주인이 되면요.”

  “하?”

  “그때는 저와 혼인해주십시오, 아마쿠사미코토.”

 

  유죠의 입술이 아마쿠사미코토의 입술에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이 상황에 그저 어이없다는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지금은 혼수선물로 이 들꽃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천하의 그 누구도 받지 못하는 혼수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혼인해주십시오, 아마쿠사미코토.”

  “그래, 무엇을 줄 것이냐?”

 

  아마쿠사미코토는 어디 들어나 보자는 표정으로 물었다. 유죠는 마치 대답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지체 없이 대답했다.

 

  “저는 천하를 통일하고 새로운 도시를 세울 것입니다.”

  “새로운 도시?”

  “예. 그 도시에는 성이 하나 세워질 것입니다. 지금의 성과는 달리, 방어기능보다는 정치적인 목적과 미관을 우선시한 성이지요.”

  “그런 걸 세워서 뭘 하려고?”

  “그리고 그 도시에는 성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한 거대한 소비시장이 들어설 겁니다. 그렇게 그 도시에는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이 모여들어 진정한 천하의 중심이 되겠지요.”

  “너 설마…….”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유죠는 지금 바다 건너 멀리 유럽이라는 대륙의 피렌체 같은 상업도시를 꿈꾸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유죠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유죠의 구상대로 피렌체 같은 상업도시가 들어서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면 그때야말로 지금의 일본을 지탱해온 가치관이 뿌리째부터 흔들릴 것이 아닌가.

 

  “또 그 도시에는 당신만을 위한 거대한 신궁이 세워질 겁니다. 이세신궁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화려하고 웅장한 신궁을 세워드리지요.”

  “하?”

  “지금 일본의 최고신은 태양신이며 황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입니다. 그러나 저의 최고신은 아마쿠사미코토 당신입니다. 그러니 제가 천하의 주인이 되면 마땅히 당신이 아마테라스오미카미보다 더 숭배 받으셔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유죠의 손가락이 아마쿠사미코토의 하얗고 보드라운 뺨을 쓰다듬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런 유죠에게서 꽃다발을 건네받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유죠가 아마쿠사미코토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제 제 평생의 반려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리 하셔야 합니다.”

  “뭐?”

  “무엇입니까, 그 표정은? 설마 저 이외에 다른 상대와 바람이라도 피울 생각이셨습니까?”

 

  아마쿠사미코토는 자꾸만 따라붙으며 바람을 피울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라고 쫑알거리는 유죠의 말을 한 손을 내저어 막으며 걷고 또 걸었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산 속을 넘어가는 두 존재의 목소리가 유쾌하게 울려 퍼졌다.

 

  ※

 

  두 존재가 오와리국의 소식을 들은 것은 제법 큰 시장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산속을 넘어왔지만 시장을 찾는 데는 한참이 걸렸고, 그렇다 보니 두 존재는 낮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침장사를 모두 끝낸 상인들이 철시하는 가운데 오후장사를 시작하는 또다른 상인들이 보이는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츠마 사투리를 들어보니 우리가 사츠마국에 온 것이 맞기는 맞나보군.”

 

  아마쿠사의 사투리와는 다른 사츠마의 사투리를 들으며 두 존재는 걸음을 옮겼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유죠의 얼굴에 새겨진 낙인을 가리고 있는 진홍색 도우부쿠를 더욱 더 꼭 여며주었다. 주먹밥을 파는 가게의 점원이 도우부쿠로 얼굴을 가린 유죠를 흘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도 유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눈에 띠는 아름다움을 가진 아마쿠사미코토를 유심히 쳐다보며 대놓고 관심을 드러낼 뿐이었다.

 

  “이거.”

 

  그 중 어떤 남자들은 가게에서 급히 산 머리장식이며 빗을 건네며 아마쿠사미코토의 환심을 사려 했다. 또 어떤 남자들은 각자의 가게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 아마쿠사미코토에게 건네려 했고, 어떤 남자들은 너 정말 예쁘다며 칭찬을 던지기도 했다.

 

  “물건들은 잘 받으마. 대신, 주는 김에 하나만 더 줘보지 그러느나? 여기 혹시 오와리국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아마쿠사미코토의 말에 서너 명의 남자가 앞 다투어 사츠마 사투리로 무언가 말을 건넸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들이 하는 말을 카미카타(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지역)말로 유죠에게 옮겨주었다.

 

  “드디어 미노국에서 일을 낸 모양이다. 사이토 도시마사가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나.”

 

  카이히메가 남창을 측실로 들였다는 사실은 일본 전역에 전해졌다. 지금껏 여자가 가독을 잇거나 다이묘가 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다른 남성 다이묘들처럼 측실을 두는 일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더구나 그 측실이 남창 출신이라는 사실은 천하 사람들이 두고두고 술안주거리로 삼기에 좋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토지조사 때 보여준 카이히메의 과단성과 잔인함에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쉬쉬하기 바빴고, 일부는 다이묘가 어떻게 반려를 하나만 두고 사느냐며 카이히메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노국의 다이묘 사이토 도시마사만은 달랐는데, 2년 전, 본래 주군이었던 도키 요리노리를 추방하고 다이묘의 자리에 오른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로, 상대를 파악하는데 매우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카이히메가 다이묘의 자리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파견한 사절단은 카이히메의 앞에서 무언가를 꺼내놓았다.

 

  “미노국의 다이묘이신 사이토 도시마사님의 대리인이 오와리국의 다이묘이신 전하를 뵙습니다. 다이묘의 자리에 오르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이만 얼굴을 드시오.”

 

  쌍수례를 마친 사이토 도시마사의 대리인이 손을 다다미바닥에 짚고 카이히메를 바라보았다. 다디미석을 높여 만든 자리에 스이즈키와 나란히 앉은 카이히메의 손이 고급스러운 나무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지독한 생선비린내를 풍기는 종이가 들어 있었다.

 

  “종이를 풀어보시옵소서.”

 

  카이히메는 시녀를 시켜 종이를 풀게 했다. 종이에는 최고급 침향이 싸여져 있었다. 최고급 침향을 싼 생선비린내 나는 종이라. 한동안 사이토 도시마사가 보내온 선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카이히메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상자를 홱 집어던졌다. 상자는 정확히 대리인의 앞에 떨어졌고, 파편이 그의 얼굴에 튀어 상처를 입혔다.

 

  “도시마사가 드디어 실성을 한 게로구나. 제 주군들을 그리 많이 죽이더니 망령이라도 보았다더냐.”

  “전하!”

  “생선비린내를 풍기는 종이에 싸인 최고급 침향이라. 생선비린내를 풍기는 종이는 스이즈키요, 최고급 침향은 바로 이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가 아니더냐. 그러니 도시마사는 지금 내가 어울리지 않는 자에게 둘러싸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

  “이는 분명, 도시마사가 나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일 터. 또한 그것은 우리 오와리국과 전쟁을 하고 싶다는 뜻일 터. 너는 돌아가 네 주인에게 전하라. 너의 그칠 줄 모르는 야욕 따위, 이 카이가 막아주겠다고.”

 

  그러나 다이묘로서 집정하기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카이히메가 지금 당장 전쟁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새로 뽑혀 배치된 하타모토들과 괸리들이 업무에 적응하고 구니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터였고, 무엇보다 토지조사의 결과에 따라 다시 정해진 세금을 안정적으로 걷고 그로 인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할 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카이히메는 지금 모욕감을 참으며 도시마사에게 설욕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을 것이었다.

 

  “곧 전쟁이 시작될 거다.”

 

  남자들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말했다. 그녀는 전쟁신이었기에 전쟁이 언제 어디서 시작될 지 내다볼 수 있었고, 그 결과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상급신이 된 이상 그녀가 개입한다면 전쟁의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늘에서 눈길을 거두며 유죠를 바라보았다.

 

  “곧 오와리국과 미노국 사이에 전쟁이 시작될 거다. 카이히메가 피하려 해도 이것은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그전에 우리는 갈 곳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너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한다.”

 

  말을 마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남자들 사이를 뚫고 앞장서 걸었다. 낮의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 유죠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이것은 하나의 기회였고,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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