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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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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2 13:55     조회 : 468     추천 : 3     분량 : 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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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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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교시 때부터 햇빛이 사라지더니 육 교시가 되자 갑자기 장대비가 오기 시작했다. 젠장. 하필 비라니. 엄마는 자주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갑자기 오후에 비가 오는 날이면 꼼짝없이 비를 쫄딱 맞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마다 엄마에게 팩팩댔던 나이기에 엄마는 항상 일기예보를 챙겨보며 강수확률이 50%만 넘어도 신발장 위에 우산을 올려두고 일을 나갔다. 그런 뒤로는 우산 없이 비를 맞는 날이 거의 없어졌다. 빨리 그쳐야 할 텐데. 집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서도 이삼십 분은 걸어야 했다. 가방째로 비에 흠뻑 젖을 게 분명했다. 종례가 끝나도 비는 그칠 생각을 안 했다. 예보에도 없던 비였는지 우산이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없었다. 뛸 생각도 없이 타달타달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발주머니나 책가방을 머리에 쓰고 버스에 몸을 싣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가장 부러운 무리는 엄마가 마중을 나온 아이들이었다. 교실에 남은 나는 창밖만 하릴없이 보고 있었다. 학교가 파한 지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교문을 지키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초라한 행색이 낯이 익어 보였다. 그였다.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교문으로 향하면서 그에게 뭐라고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엄마나 찾지 여기 뭣 하러 왔어?’ 하고 쏘아붙일까? 그냥 조용히 고맙다고 할까? 우산을 들고 있는 그의 처진 고개가 올라오고 그가 나를 알아봤다. 이제껏 잰걸음을 걷던 내 속도가 줄어든 대신에 그가 나에게로 뛰어왔다. 가까이서 보자 그는 우산을 하나만 들고 있었다. 그나마 우산살 하나가 부러진 낡은 우산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가 뭘 하나 제대로 할 리가 없지. 가까이 온 그가 나를 우산 아래로 끌어들였다. 머리에 맞던 비가 그침과 동시에 그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난 그를 슬쩍 밀쳐냈다. 쑥스럽다기보다는 그냥 그가 미웠다. 소용없었다. 나보다 힘이 센 그가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나를 껴안는 데 성공했다.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은 그가 한동안 말도 없이 나를 안고 서 있었다. 오 분이 지났는지 삼십 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교한 다음이지만 왠지 누가 보고 쑥덕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를 억지로 떼놓았다. 그의 얼굴이 젖어있었다. 가만히 보니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우산은 폼으로 들고 있었는지 양쪽 어깨와 등도 다 젖어 있었다.

 

  그의 두 손이 나의 두 손을 부여잡았다. 덕분에 우산이 땅에 떨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우산을 집어 들고 그를 노려봤다. 그가 내 눈을 한참이나 가만히 바라보자 그제야 내 직감이 말을 했다. 뭔가 일이 벌어졌구나. 괜스레 눈물부터 났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가, 엄마가.” 그가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플 지경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의 까만 입술만 눈에 들어왔다. 순간 ‘사람이 얼굴이 타면 입술도 타는가 보다.’하고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잘못된 선택을 했어.” 그는 준비한 멘트라도 되는 듯 어색한 서울 억양으로 얘기했다. 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엄마가 왜 잘못된 선택을 해. 잘못된 선택은 네가 했지. 연대보증이 뭔 줄이나 알고 싸인한거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다는 표정의 나를 보며 그가 다시 말했다. “느그 엄마가, 내가 잘못인데, 느그 엄마가 잘못 생각해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서 한 마디 쏘아붙이려고 입을 열다가 깨달았다. 신문과 뉴스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이 급등한다고 떠들어대던 때였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나를 두고 잘못된 선택을, 잘못된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엄마 죽었어?” 겨우 내뱉는데 그가 고개를 떨궜다. 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뭐라고 제대로 말 좀 해봐. “죽었냐고!” 난 주먹을 쥔 채 그를 때렸다. 그의 깡마른 몸이 내 주먹을 튕겨내 아팠지만 더 세게 그를 때렸다. 그는 자기 잘못이라며, 미안하다며, 자기가 죽일 놈이라며 조용히 울며 말했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더 분하고 주체할 수 없는 억울함에 내 가슴을 때리고 내 머리를 쥐어뜯자 그가 내 손을 잡고 말렸다. 난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우는 나를 업고 그의 트럭으로 걸어갈 때도 내 주먹은 계속 그를 때렸다.

 

 트럭 보조석에 나를 앉힌 그가 헌 수건을 찾아 건넸다. 냄새나는 수건을 받아 뒷좌석에 도로 던지자 그가 다시 주워 내 얼굴과 머리카락을 훑어 닦았다. 그의 손을 떨칠 기운도 없어 그냥 가만히 있다가 다시 목소리를 밀어냈다. “엄마가 확실해?” 그가 바보같이 ‘흐응?’과 ‘허어?’ 사이의 소리를 냈다. 난 울먹임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엄마가 확실하냐고. 봤어?” 했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며 연신 내 머리를 닦고 내 책가방을 닦았다. “어떻게?” 그가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그를 몰아붙였다. 엄마도 자주 쓰던 싸움 방식이었다. “어떻게 죽었는데? 어디서? 확인했어? 엄만 거? 봤냐고?” 한참 뒤에서야 그가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였다. “말을 좀 해보라고. 썅!” ‘썅’에서 목이 갈라져 ‘쌍’인지 ‘샹’인지 모를 쇳소리만 났지만 욕을 하니까 속에서 나는 열이 조금이나마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그와 싸울 때마다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늘어놓는 엄마가 조금 이해됐다.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그를 뿌리쳤다. “아, 씨발! 미안한 게 문제냐고 지금. 왜 병신같이 말을 제대로 못 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도 병신같이 한참이나 있다가 정말 궁금한 걸 물었다. “왜? 왜 그랬대?”

 

 내가 울음을 멈추고 딸꾹질을 멈출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던 그는 아주 느리게, 하지만 자세하진 않게 엄마가 어디서 어떻게 발견됐는지 말해줬다. 엄마가 유서를 남겼지만 경찰들이 가지고 가서 그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그는 그렇게 힘들게 육하원칙에 맞는 대답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각쯤 이미 석간신문과 저녁 뉴스에서 엄마의 죽음을 상세하고 조리 있게 보도하고 있었으니까.

 

 * * *

 생활고, 가정불화 비관 30대 주부 아파트 투신 자살.

 

 29일 오전 9시 30분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 3동 우리 아파트 105동 화단에서 李말년씨(37.주부.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 3동 우리 빌리지 2동 B02호)가 머리등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이 아파트 경비원 崔천수씨(62)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남편 金대물씨(45.트럭기사)는 "최근 들어 내 잘못으로 빚을 크게 지게 되었고, 부인과의 다툼이 심했다. 마지막으로 부인을 본 것은 이틀 전 큰 다툼 후 부인이 집을 나갔을 때고, 이후 부인의 연락을 듣지 못하다가 오늘 오전 경찰로부터 부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李씨의 목과 다리 등이 심하게 골절된 것과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 "어미를 용서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점으로 미뤄 자신의 처지를 비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자살경위를 조사중이다.

 * * *

 

 

 사망자의 주소나 이름도 여과 없이 신문에 싣던 때였다. 부지런한 검색엔진들은 지난 신문기사들도 모두 스캔하고 타자를 쳤는지 지금도 엄마 이름을 검색하면 이 기사가 나온다. 이걸 볼 때마다 난 엄마 이름은 못 지우더라도 엄마 주소에 B02호는 좀 지울 수 없나 생각이 든다. 나보고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던 엄마였는데, 엄마는 고작 세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자살사건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남기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죽도록 싫어한 지하실살이를 만천하에 자랑하며.

 

 집에 도착해 보니 경찰들이 빨간 딱지 아저씨들처럼 엄마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뒤져놓았다. 신발을 신고 다닌 건지 벗고 다닌 건지 거실은 빗물과 구정물들로 만들어진 발자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난 그래도 그들이 혹시나 다른 실마리를 찾을까 봐, 엄마가 아니라고, 자살이 아니라고 할까 봐 그들을 응원했다. 그는 들고 있던 더러운 걸레로 바닥을 닦아댔다. 닦아내는 것보다 바닥에 묻히는 게 더 많았다. 엄마가 봤으면 크게 한소리 했을 짓이지만, 난 그만두라고 말하는 대신 신발을 신고 거실로 들어가 바닥을 더 더럽혀 놓았다. 서랍장과 옷장 문이 죄다 열려있어 몇 걸음 걸을 공간이 없었다. 경찰들은 뭘 찾고 있었나? 그들이 놓친 게 있을까?

 

 엄마가 현금과 적금통장, 몇 개 되지 않는 금붙이들을 숨겨 놓는 이불장 앞에 섰다. 엄마가 종종 그랬듯이 무거운 솜이불들 아래로 손을 비집고 넣었다. 그는 내가 뭘 하려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역시 빨간 딱지 아저씨들이 가져간 모양이었다. 홧김에 어깨까지 깊이 내 몸을 구겨 넣어보니 손끝에 뭔가 닿았다. 엄마 팔이 내 팔보다 훨씬 길다는 걸 간과하고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다. 이불 아래로 기어들어 가다시피 해서 기어이 비닐봉지에 둘둘 싸인 장지갑을 꺼냈다. 그 안엔 그가 사 준 금목걸이, 반지, 팔지 한 쌍과 내 돌 반지, 이제는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적금 통장들, 그리고 현금 69만 원이 있었다. 며칠만 더 있었더라면 적금통장으로, 공과금으로 다 나갔을 돈이었다. 엄마는 돈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어디 갔던, 어디 있었던, 엄마 지갑엔 몇천 원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만 처음부터 죽으러 나갔던 걸까? 왜? 날 두고 왜?

 

 경찰도 빨간 딱지 아저씨들도 못 찾아낸 엄마의 초라한 귀중품들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받아 들었다가 다시 나에게 줬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 뺏길 수도 있다.” 그는 누가 보고 있기라도 한 듯 속삭이며 말했다. 하긴 빚쟁이들이 언제 뭔 짓을 할지 모르지. 근래 들어 그가 한 말 중 가장 똑똑한 말인 것 같았다. 그에게 날 믿으란 눈짓을 주고 책가방 깊숙이 비닐봉지를 밀어 넣었다.

 

 우왕좌왕 이유도 없이 허둥대던 그는 나보고 자기가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올 테니 집에서 편하게 자라고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뭘 챙기러 집에 온 건지 모르겠다던 그는 내가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거 아냐?” 하자 그러자고 하더니, 그도 나도 입을만한 검은색 옷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상복은 어차피 빌리거나 사면된다면서 말을 바꿨다. 울다 말다를 반복하던 난 오 분이 멀다하고 넋이 나가 “진짜야?” 하고 되물었고, 그때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상냥하게 “어.” 했다. 그래도 그보다 정신이 더 있는 건 나였다. 난 엄마가 아끼던 한복을 꺼냈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온 비단 한복이었다. 철이 지나 구닥다리인 한복이지만 내가 싫다는데도 굳이 “이게 되게 좋은 비단인데. 니 시집갈 때 줄게.” 하며 행여 옷감이 상할까 잘 입지도 않았었다. “이거 엄마 입혀주자.” 하자 그가 “어, 그런가?” 하며 봉투에 담았다. 뭐 다른 필요한 게 있을까 싶어 경찰이 헤져놓은 옷장을 뒤졌다. 엄마가 삼 년을 벼르고 벼르다 산 두툼한 오리털 잠바도 봉투에 담았다. 아직 가을이지만 엄마는 추위를 많이 탔다. 다시 그에게 물었다. “진짜야?” 얕은 한숨과 함께 “어.” 한 음절이 돌아왔다. 그럼 진짜지 뻥이겠냐, 병신아? 머릿속의 내가 나를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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