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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42
작성일 : 19-11-07 12:32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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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음이 몰려왔다. 하필 이런 때에.

  이제 도트의 세력이 마동을 완전하게 제압하려 했다.

  막상 정리를 하고 보니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주머니 속에는 휴대전화기가 들어있을 뿐 동전도 하나 없었고 지폐도 한 장 없었다. 잃을게 없으니 정리를 하는 것에 용감해질 수 있었다. 마음의 정리든 현실적인 정리든, 정리는 빠르면 좋다. 빨리 정리해버리고 나면 이후에는 어떻게든 질서가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가 안 되는 하나가 있었다. 마동은 우산대를 어깨에 걸치고 바다와 하늘이 경계선을 바라보았다.

  “는개가 보고 싶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을 해버렸다. 마동은 그런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입 밖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고 나니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해무가 만들어낸 어두운 자줏빛은 더욱 세력이 확대되었고 내리는 비에서는 코를 막아야할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며 구름에서 떨어졌다.

  “저 여기 있잖아요”라는 말에 마동은 뒤를 돌아보았다. 는개가 방파제에 와있었다. 마동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는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빨간 우산을 쓰고 여름용 레인코트를 여민 채 초승달 모양의 입술을 하고 마동을 보고 있었다.

  “당신에게서 ‘보고 싶다’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은걸요. 거봐요, 당신도 표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죠? 이전 너무 늦었나요?” 는개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는개가 하는 말에는 설핏 슬픔이 보였다. 그녀는 마동이 서 있는 테트라포드로 올라섰다. 하이힐을 신고 올라서기에는 위험했다. 테트라포드는 그 사이사이에 구멍이 크레바스처럼 잔존하여 자칫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져 테트라포드사이로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 아찔하게 올라선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마동이 있는 곳까지 왔다.

  회사에서 바로 왔을 모양이었다. 검은색의 타이트한 치마에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블루레인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묶었던 포니테일의 머리를 풀었다. 머리를 묶어두었던 자리에는 표시가 났지만 그것대로 자연스럽게 보였다. 잔잔한 비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생각날 만큼 아련했다. 무슨 영화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명작영화의 장면이 오버랩 되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힐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오는 순간 그녀의 하이힐과 테트라포드는 집요하게 들어맞는 그림이 되었다.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고 그녀는 한발 한발 마동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와서 마주보고 섰다. 마동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

  “어떻게?” 마동은 놀라서 읊조리듯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 알았어요. 저 당신이 있는 곳은 이제 다 알 수가 있어요.” 는개가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대기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미소는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녀가 웃음으로 마동을 마주대하니 자줏빛 해무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속도가 더뎌졌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읽었다고 하면 믿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떻게 여기에 당신을 찾아 왔겠어요?” 그녀는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 그녀의 미소는 빛처럼 지금 상황에 대응하고 있었다. 다시는 는개의 웃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는 그녀의 웃음은 바람의 끝에서 불어오는 웃음이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따라할 수 없는 웃음이다. 봄날의 제비가 날아와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 듯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은 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있었다.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지 몰랐어. 언제부터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거지?“

  “몰랐군요. 당신은 알거라 생각했는데.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요.”

  “정말?”

  “설마요”라며 는개는 마동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작고 부드럽고 차가웠다. 마동은 는개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을 꼭 쥘 때마다 그녀는 무언의 표정으로 기쁨의 미소를 만들었다.

  “당신이 정리하고자 했던 일들은 잘 마무리 지어질 거예요. 소피에게도 당신이 전하고자하는 바대로 그녀가 부담을 가지지 않게 잘 전달이 될 거예요.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에 관한 것도 그리고 당신의 집과 나머지 정리도 모두 깔끔하게 끝이 날거예요.” 그녀도 마동이 바라보는 바다 쪽을 보며 나란히 섰다. 는개는 우산을 접어서 테트라포드에 놓아두었고 “당신은 이렇게 나란히 있는 걸 좋아하죠?” 라며 마동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녀만의 향이 이 몹쓸 날씨를 뚫고 번졌다.

  “그런데 그 말은 나와 함께 있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마동은 옆에 있는 는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이 남으려고 하지 않아서 저도 결정을 해야 했어요. 물론 고민이 심했어요. 그건 사실이죠. 전 이곳 생활도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축에 속하는 인간이니까요. 이거 당신 말투죠?(웃음) 하지만 당신을 택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인간은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고 선택을 당하면서 마무리하는 거니까요. 전 당신과 함께, 당신 옆에 있을 거라구요. 이제 당신 뒤에서 당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짓은 하지 않겠어요. 회사에서도 이미 사표를 냈어요. 사장님은 골머리를 앓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는개의 말에 방파제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저 먼 하늘처럼 찐득하고 거무스름했다. 진흙처럼 물기 없는 침묵은 두 사람의 주위를 에워쌌다.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침묵을 깨트려 보려고 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동은 잠시 회사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자신을 포함한다면 회사내부는 가장 믿을만한 세 사람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빈자리가 메꿔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골치가 아픈 일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튀어 나올 것이다. 마동이 맡아서 하던 일과 는개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 받아서 실무과정에 들어가는 시간만 해도 몇 개월이나 걸린다. 교육을 받고 실전업무에 바로 투입이 되었다고 해도 일을 척척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건 오로지 경험과 시간을 들여서 재능을 끌어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클라이언트에게 꿈의 리모델링을 전달해야만 한다. 꿈의 리모델링은 꿈을 맡긴 사람과 그 꿈을 맡을 사람과의 신뢰가 형성이 되어야만 비로소 꿈의 채취가 가능했고 리모델링의 작업이 순조로운 것이다.

  신뢰라는 건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신뢰를 통해서 작업자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결여된 부분들의 이음새를 맞춰갈 수 있는 것이다. 오선지와 음표는 신뢰를 통해 이루어져 있다. 오선지의 음표가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다가도 우연히 하나가 이탈해버리고 나면 촉이 엉클어지고 음은 엉망이 되어 버리는 음계처럼 회사는 단조로운 반복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시스템 하나가 틀어지고 나면 꼬이게 되고 만다. 그렇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더니 거세게 내렸다. 굵어진 빗방울은 바다에 떨어져 수천 개의 음표를 만들어냈다. 굵어진 빗방울은 누린내를 동반했다. 코를 막아야 할 만큼 누린내는 심하게 방파제에 퍼졌다. 는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동은 움직임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는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은 완연히 다른 세계가 도래해 있었다.

  “이것 봐, 는개는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아.” 잠시 틈을 두었다. 그 틈을 이용해 그녀는 마동의 손을 꼭 잡았다.

  “난 이제 곧 어떤 문을 통과할거야. 문을 통과할 거라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문이 존재해있어. 나는 매일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지. 저 문을 통과하면 오늘은 어떤 변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작은 설렘과 조바심이 내 마음의 옅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어.”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가며 말했다. 그녀는 마동의 마음을 아는지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는개의 부드러움이 전해졌다.

  “거실과 복도사이에 있는 둔탁한, 유리가 없는 아파트 복도 문을 지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로 되어있는 아파트현관문을 거쳐 썩 내키지 않는 색의 자동차문을 열고 닫으며 건물의 두꺼운(1센티미터가 넘는) 2중 유리문을 두 개나 지나 통과하여 일하는 사무실의 철제플라스틱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서 일을 하기까지 매일매일 온도와 환경이 다른 두 공간을 지나친다는 알 수 없는 작은 기대가 내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했어.” 마동은 말을 하면서도 졸음에 힘겨워 했다.

  좋음이 이렇게나 쏟아지다니.

  “문은 정말 특수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을 해. 내가 뇌생리학을 전공한건 아니지만 뇌생리학적으로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하면 분명 인간은 불안함에 몸이 떨리겠지. 심장이 뛰고 잘 걷지도 못할 거야. 문은 그런 특수성을 지니는 거야. 우리는 보통 문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물체에 대해서 조금은 성의 있게 다가 갈 필요가 있어.” 마동의 말이 끊어지자 그녀가 마동의 팔에 팔짱을 끼고 팔에 힘을 주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좀 더 가까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는개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둠의 도트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지 몰라도 꿈틀거림이 많아 느껴졌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떨쳐 내가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인간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문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상주하기를 늘 원하고 있어. 만약 자동차의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마동의 말이 공감이 간다는 듯 는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없는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대며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안전벨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은행에서 밖으로 나올 때 이 문으로 나갈까 저 문으로 나갈까 하며 고민하는 부분은 한가한 일요일에 마트에서 녹차가루를 고르는데 이 물품을 고를까, 저 물품을 고를까 하는 식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거라구. 어떤 문으로 통과할까, 하는 고민은 마트에서의 고민처럼 혼란스럽지가 않다는 거야,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구.”

  마동은 잠시 어두운 자줏빛이 강한 해무를 노려보았다. 마동이 노려보아도 해무는 정중하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빗방울은 계속 거세게 내렸고 누린내는 바다 위를 점령했다. 곧 목 없는 사람들이 해변에 속속 나타날 것이다. 마동은 자신이 들어서려고 하는 문으로 목 없는 사람들에게 인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 문이라는 것이 통과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 문과 기이하지만 그렇지 못한 문이 있어. 그래서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밋밋한 그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존재해있어.” 졸음이 누린내만큼 거세게 몰려왔다.

  “그건 당신만의 생각이죠?” 그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 분명 나만의 생각일거야. 분명해. 어떨 땐 말이지 열었다가 닫히는 문을, 그러니까 반드시 닫아야하는 문을 열어놓고 그냥 지나친 것에 작은 희열과 묘한 뿌듯함마저 들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어. 아주 미묘한 차이야. 지금도 문을 만드는 여러 공장에서는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하고 눈을 사로잡아 끌만한 문형으로 만들어진 문을 만들어내느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거야. 모르는 이들이지만 새삼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마동의 말에 는개는 흐응 하는 소리를 냈다. 단지 그렇게 들렸다. 마동은 그녀가 호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문은 앞으로는 좀 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그런데 말이야.” 마동은 잠시 침묵을 만들었다. 는개는 마동의 옆으로 더욱 다가와서 붙었다. 그녀의 가슴이 마동의 팔에 닿았다. 생명의 온기를 그녀의 뛰는 가슴을 통해 마동은 느끼고 있었다. 는개가 전달하는 생명의 온기는 마동의 의식의 경계선을 넘어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뻗어있었다.

  마동의 심연을 두드리는, 미미하고 멀리 있는 는개의 작은 마음은 눈을 뜨고 마동의 무의식의 세계에 접합하려고 했다. 마동은 그것을 막아야 했다. 마동의 마음속에는 어둠의 도트와 그녀의 작은 마음, 두 개의 대립이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형국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잡혀 먹히게 된다.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졸음이 지금 내리는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말이지. 지금 내가 통과하려는 문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문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이야. 안과 밖의 개념적인 문이 아니란 말이야.”

  졸음이 몸을 잠식하려 했다.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이야. 저 문을 통과하고서 아, 여기가 아니군. 하며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그런 문이 아니야. 은행의 문도 아니고 마트의 문도 아니지.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의식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체재를 이룬 문이야. 마치 살아있는 고래의 입처럼 꿈틀거리는 문이라구. 저 문으로 들어가고 나면 문은 자의식이 강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또 다른 통로의 문을 만들어 버릴 거야. 실제로 문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그런 곳을 지금 난 통과하려고 해. 그런 곳에 는개를 데려 갈수는 없어.” 마동은 조금 완고하게 말했다.

  졸. 음. 이. 쏟. 아. 졌. 다.

  엄청난 파도 같은 졸음이 마동을 습격했다. 이대로라면 아무 곳에서 엎어져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못 잤던 잠이 한꺼번에 폭력적으로 마구 다가왔다.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구부러진 바다의 블랙홀에 순식간에 빠져 들어가듯 졸음이 마동의 뇌를 습격했다.

  “제가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신에게 있었어요.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당신 때문에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어요. 당신은 저와 어떠한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어요. 연결된 무엇인가는 서서히 타오르는 작은 촛불 같다고 해야 할까요. 촛불이란 그렇잖아요. 집에 정전이 되면 작은 촛불이지만 방 한가득 빛을 뿜어내니 말이에요. 거실의 전등 불빛 밑에서는 보잘것없던 불빛이 말이에요. 그런 촛불 같은 빛이 우리에겐 연결되어있다고 믿고 있어요. 당신은 행운이에요. 저를 만났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동안 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군요. 그래도 전 당신을 기다리기로 했죠. 당신도 알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저의 마음을 말이에요.” 그녀는 심야의 디제이처럼 조용하게 말했다. 빗소리와 어둠의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는개의 조용한 음성은 그 사이를 뚫고 마동의 귀에 제대로 전달되었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 그 일을 당한 후 당신을 찾기 위해 나를 버리면서 살아왔어요. 학교에서는 촉망받는 엘리트 축에 속했어요. 장래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전 이 회사를 선택했어요. 당신을 발견했으니까요. 전 당신을 선택했고 후회는 하지 않아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을 때 대학교의 친구들이 저에게 물었어요. 왜 하필, 이라는 분위기로 말이죠. 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일을 하고 싶을 뿐이야’라고 말이에요. 당신이 있는 이 회사를 선택했으니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거예요. 일단 생각한건 생각한대로 하는 거예요. 여자는 때론 무모할 정도로 과감할 땐 과감하다구요.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이 일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법관이 됐거나 금융업이나 초유의 기업에 다니고 있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적어도 전 이 회사에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어요. 게다가 당신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며 간헐적으로 대화도 나눌 수 있었어요.” 는개는 틈을 두었다. 그 틈은 빗소리와 파도가 고요하게 부딪히는 소리사이에 자리를 잡고 대형을 유지했다.

  “나도 알아. 이제 알 것 같아”라고 마동은 그 틈에 자신의 조용한 목소리를 끼워 넣었다.

  “당신의 말대로 전 어떤 문을 통과해서 당신 곁으로 이렇게 다가온 거라구요. 그 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각의 문이 아니었어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특수한 문을 지나서 당신에게 이렇게 온 거라구요. 그 문이 이제 없어졌다고 해도 전 상관하지 않아요. 이제 당신과 함께 당신이 통과하려는 저 문을 지나갈 거예요. 저 문을 지나서 문이 닫혀버린 후의 문제 따윈 생각하기 싫어요. 이미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혹독한 추위에 위협을 당한 목소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널 위한거야. 라는 말 따위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여자들은 왜 자신을 생각해주는 남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마동은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너무 조용했다. 그녀가 옆에 있는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는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와 소리를 내며 뺨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눈물은 짧은 시간에 계속 흘렀다. 그녀의 작은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는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여러 가지 소리를 담고 있었다. 아득해진 시간의 소리, 그 속에 남겨진 희생의 소리, 뚜렷한 냉철함의 소리, 현실을 무너뜨리는 소리 그리고 고뇌와 기쁨의 소리까지 눈물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는개는 좀 더 괜찮은 세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나 따위를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린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철길위에서 친구들이 분쇄되었을 때 저마다 바뀌어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이 힘들어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차들이 거꾸로 달린다거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수영복만 입고 출근을 한다거나, 하늘위로 물고기가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해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한 자신을 책망했다.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마동은 는개가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빼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대신 마동이 그녀의 눈물을 입술로 닦아 주었다. 눈물에서는 눈물 맛이 났다. 는개의 눈물 맛이다. 곧 그녀는 그녀만의 사려 깊은 미소를 얼굴에 지어보였다. 바람의 저 끝에서 불어오는 미소.

  그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눈물과 미소가 이렇게 잘 어울린다는 것에 마동은 놀랐다. 본디 오래전부터 미소는 는개의 얼굴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미소 짓고 있었던 걸요, 라고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마동은 는개의 미소를 보고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게 해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흠.

  비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버브의 드러머가 쉴 새 없이 드럼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았다. 는개는 마동이 들고 있는 우산 속으로 들어왔고 마동은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는개가 마동의 품으로 파고들어 올수록 그녀의 향이 깊어졌다. 졸음이 뇌의 깊은 곳을 점령했고 그. 리. 움. 이 폐에 들어찼다. 그리움은 마동을 저 먼 기억 속의 그곳으로 데리고 가려했다. 불안정한 대기는 그 불안정함이 불안한 듯 크게 짖어대고 있었다. 마동은 는개와 나란히 서서 불안정한 자줏빛 해무가 가득한 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은 비가 하늘에서 떨어져 우산에서 요란한 소리를 만들었다.

  “저건 은하계 43.5도에 위치한 잠불 행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에요.” 요란한 소리 사이로 고요하게 는개가 말했다. 마동은 쏟아지는 졸음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얼굴을 돌리고 정말이야? 라고 물어보았다.

  “순전히 거짓말이에요. 저 불우한 자줏빛이 감도는 해무가 무엇인지 전 알지 못해요. 설령 은하계의 6행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냥 환경오염에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해도,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바람이든, 무슨 바람인지 전 알지도 못하고 어떤 바람이라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으니 헤쳐 나가지 않겠어요?” 그녀도 졸음에 겨운 듯한 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런 때에 졸음이라니.

  마동은 졸음이 몰려오는 자기 자신이 허무했지만 어둠의 도트를 멈추게 하려면 어떨 수 없는 선택이었다. 졸음은 마키아벨리의 군주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자 이제 당신은 하나, 둘, 셋에 잠이 듭니다. 하고 망치로 머리를 때려서 잠이 들게 할 만큼 강제적인 졸음이었다. 이렇게 격한 졸음을 경험해 본적이 없어서 마동은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 알겠어. 우리는 같이 있도록 하는 거야.” 마동이 겨우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는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얼굴의 반이 가렸다. 선글라스를 꺼낼 때 핸드백 속에 계면활성화의 일회용 칫솔도구가 있었다. 마동의 입술모양이 살짝 움직였다.

  “저 선글라스가 꽤 잘 어울리는 여자에요.”

  “그런 것 같아.”

  마동은 는개의 어깨를 마지막으로 꼭 끌어안았다. 그녀를 마동 자신의 몸에 흡착시키려는 듯 당겼다. 그녀만의 관능과 그리움의 마음이 복합적으로 전해졌다. 마동의 변하지 않는 마음처럼 견고한 듯 했지만 연약해서 미약한 바람에도 부서질 것 같은 는개가 애달프고 안타까웠다.

  서서히 깨어난 목 없는 사람들의 정념이 느껴졌고 그들의 사념을 향한 소리가 들렸다. 암흑에서 불어오는 검은 바람이 치열하게 몰아쳤고 누린내가 바다의 한곳에서 밀려왔다. 이제 더 이상 마른번개는 떨어지지 않았고 어두운 밤에 보이는 구름은 고장 난 티브이의 컬러처럼 무섭게 자줏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자줏빛 구름은 암흑의 모든 것을 대동하고 정장차림으로 정중하고 또 정중하게 서두름 없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세상을 덮은 폭풍 속에서 미미한 노아의 방주처럼 마동과 는개가 우산을 쓰고 위태롭게 테트라포드에 서 있었다.

  “나 잠이 너무 와. 서 있을 수도 없을 거야.” 마동이 말하자 그녀가 마동의 머리를 자신의 머리에 대어 주었다.

  “제게 기대서 잠을 청해요. 저도 아마 잠이 올 거 같아요.” 는개는 마동의 허리를 의식처럼 감았다. 멸망이라는 이름위에 구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덧입혀 놓을 수 있을까. 마동은 미칠 듯한 졸음 속에서 생각했다.

  “아마도.” 는개의 말에 마동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머리위에는 자줏빛 구름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어느새 몰려와있었고 방파제 주위는 누린내가 가득한 해무가 점거해 버렸다. 세계가 끝이 나려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어서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문을 통과하면 소우주가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롭게 적응하면 된다.

  “당신 집에서 아침에 당신이 잠들어 있을 때 당신의 귀에 대고 살며시 말해줬어요. 전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다구요. 당신의 마음은 언제나 닫혀있었어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모든 이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 당신의 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사랑하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어요. 제가 그 말을 하니 잠들어있던 당신의 얼굴에 미소가 일더군요. 당신의 얼굴에서 그런 미소가 나오다니.” 는개가 마동의 메마른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그래, 나도 는개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고마워.”

  “고마워요.”

  “사랑해.”

  사랑해요.”

  “정말 나와 같이 있는 것이 괜찮겠어? 무모한 짓인걸.”

  “와이 낫?”라며 는개가 웃었다. 마동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이제 그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말해줄게 있어요. 저도 감기가 걸린 것 같아요. 그것도 너무 지독한 감기. 나, 이틀 전에 비해서 그림자가 옅어졌어요. 앞으로 죽 당신 곁에 있을래요. 그거 알아요? 세상에는 직접 해보기전에는 모르는 일투성이에요. 무모함이 때로는 앞일을 바꾸기고 해요. 안 될 이유도 없잖아요. 전 늘 실수만 하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이번에도 실수를 한 번 더 하는 것뿐이에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검붉은 구름과 자줏빛 해무는 대기에 무서운 스파크를 뿜어대며 대지를 덮쳐왔고 마동은 그대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이 끝나버렸어.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네. 맞이하네.

  세상의 끝에 다가가면 우리는 모두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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