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10
작성일 : 19-11-07 04:27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772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0

 

  깜깜했던 방의 문이 열리며, 복도의 밝은 빛이 새어 들어와 안이 잠시나마 밝아진다. 허나 그 빛은 방의 주인이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 버리자 이내 사라져 처음과도 같은 어둠 속으로 돌아왔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는 웃고 있었다. 고맙다고도 했다. 분명 빈틈없이 신경을 써 준비한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해 버린 그녀인데도 말이다.

  커튼도 열지 않은 방은 지금 거리를 기어 다니고 있는 밤의 어둠보다도 훨씬 짙게 그늘져, 바로 코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불도 켜지 않고 걸어가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차피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그게 그것인 삭막한 방이고, 화장을 지운다든가 밖에서 돌아와 으레 해야 할 일도 전혀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이제 푸른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는 밤을 느긋하게 즐기는 각종 소음이 들려왔다. 그 중에는 그가 창문만 열면 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도 섞여 있을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그가 건네 준 종이가방 안에는 예쁘게 장식된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거기 들어있는 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허나 지금은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저것이 방 안 책상에 올라앉아 이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괴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쨌든 이것이 그녀가 바라던 결과가 이제 그의 얼굴을 볼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고, 그 외의 많은 것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일에 치여 자주 돌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때때로 누비고 다녔던 거리와 혼자 혹은 둘이서 들렀던 가게들, 그리고 힘들게 찾은 셀 수 없는 귀중한 풍경들. 이제 다시 그것들을 볼 기회 따윈 없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사라질 이 거리에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다름 아닌 그이니 역시 멋지게,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잠시 동안은 한 사람이 빠진 풍경에 어색해 하겠지만, 그런 건 아랑곳 않고 살아가도 될 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생각조차도 아픔을 덜기 위한 딴생각임을 그녀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해 쓸쓸하다는 기분도, 정든 이 도시를 걷고 밥을 먹는 일이 다시는 없을 거란 슬픔도, 결국은 그도 그녀를 잊고 멀쩡하게 살아가리란 생각도, 심지어는 그녀가 아마 내일 죽을 거란 예감도 전부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가슴을 꼬챙이로 후벼 파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그를 상처 입혔다는 것이었다.

 

  화장을 지우지도, 불을 켜지도 않은 채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깊은 잠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닌, 굳게 잠긴 창문 바깥으로 혹시 새어나갈지 모를 소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조금 전에도 했던 말을, 듣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한다.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아픈 상처를 주어 버린 그녀가, 완전한 어둠 속에 싸인 채로 혼자 피를 흘렸다. 숨이 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새하얀 베개를 붉은 색으로 흠뻑 적셨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이, 또 하나의 잠들지 못하는 슬픔으로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기다리건, 기다리지 않았건 다가오고야 만 다음 날.

 

 “결국 또 늦어 버렸나.”

 

  모든 것이 끝난 현장에 도착한 캘빈 하트먼은, 그와 같은 자들이 흔히 그렇듯 이 연극에서 남은 배역은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이 난장판을 수습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약제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긴 사건은 마지막 증인이라고 할 인물이 범인은 물론 경비대의 손으로부터도 피해 사라지고, 끝내는 이 장소에서 두 발의 총알과 한 구의 시체를 남기며 완전히 종결되었다.

  사실은 굳이 필요도 없을 현장 보존 스캔을 후다닥 마치고 나서, 시신까지 지퍼 달린 가방에 넣어 보내고 나니 수습 작업 또한 금방 끝났다. 굳이 캘빈 자신이 올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용의자는 저항도 변명도 없이 제 발로 걸어 나와 경비대 차에 올라탔다. 더 이상 그로 인해 사람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원들이 증거로 분류될 법한 물건을 모두 들고 나간 뒤, 이제 현장에는 본래 여기서 쓰던 것 같은 연구 장비들과 아직 채 말라붙지 않은 피 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이 쪽도 어지간히 몰렸던 걸까.”

 

  이 만큼의 설비를 갖춘 곳에, 이젠 겨우 한 명이 남은 건가. 결국 밝혀진 진실에 따르면,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 모두가 그 죽음으로 객관적인 분노와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이들이 결국 하고자 했던 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아마 이후의 처분에서도 그 요소가 반영이 되겠지. 국가라는 것은 이미 사라지고 법이라는 것도 폴리스마다 제각각으로 유연해진 시점에서 딱딱한 감시자를 자처할 이유는 없다. 이 도시가 그와 동생에게 과거를 묻지 않은 것처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과거를 가능한 한 씻어낼 수 있다.

 

 “다 되었습니다.”

 “이건 내가 들고 가지.”

 

  나머지 방에서의 회수를 전부 마친 대원 중 하나가 캘빈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이쪽도 훑어보던 자료를 막 정리해 상자에 담은 참이었다. 그가 아는 지식을 전부 동원해도 겨우 얼개 정도만 알 수 있는 자료였지만, 나머지는 그보다 이쪽 분야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해석해 주겠지. 그 다음에는 먹기 좋게 요리된 이 사건의 전말이 신문과 라디오, 아마 다른 것을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전해질 터이고, 사실상 그의 주 업무라고 할 수 있는 기나긴 보고를 다 마치고 나면 마침내 이 사건은 완결 딱지가 붙은 채 데이터뱅크에서 기나긴 휴식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그 남자는 복수에 성공한 건가요?”

 

  방금 전의 우중충한 사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오며, 대원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물어왔다.

 

 “글쎄.”

 

  칼 노우드. 진화의 추종자(FOTE) 가 진행한 실험의 희생자가 된 한 가족의 가장. 그리고 홀로 생존해,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그 원흉인 추종자들을 박멸하다시피 한 무법자. 과연 그것뿐일까? 이 이야기가 그저 우연히 불합리한 사건에 말려든 한 가족과 살아남은 한 남자의 복수극으로 끝내도 좋은 일일까? 예를 들어 10년 전, 가족과 함께 벙커로 숨어들기 전에 그 남자의 과거를 따라가 본다면 이야기는 어떤 모양새로 바뀔까? 애초에, 그가 하려던 게 복수가 맞긴 했을까?

 

 “나도 모르지.”

 

  본인을 심문해 봤자 완전히 알 순 없겠지. 결국 이야기의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기억과 보고서 몇 장이 전부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끝났어도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의 동생 에릭이 답을 찾아내기 위해 떠난 노우드 가족의 집. 아마 이번 연극의 종장은 그 장소에서 펼쳐질 게 분명하다. 할 일도 많은 만큼 저번처럼 사무실에서 기다려도 나쁘지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마중을 나가는 편이 좋을 수도 있겠다. 언제나처럼 가장자리에서만 맴도는 것은 사양이다. 게다가, 왠지 거기에서라면 반드시 그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그 모든 것은 내일에야 볼 수 있겠지. 우선은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대원들과 함께 차에 올라탄다. 생각해야 할 일도 많고, 보고해야 할 일도 많다. 주민 한 명이 비어 버렸지만 아랑곳 않고 언제나처럼 살아가는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옅은 먼지를 일으키며 차는 달려갔다.

 

 *

 

 “허, 이것 참.”

 

  오랜만이네요. 라고 선원은 평범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우우-”

 

  허나 천장에서 머리부터 떨어진 새로운 손님은 평범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기분은 아닌 것 같다.

  손님의 정체는 선원의 말대로 구면이 맞다. 아니 그보다, 그저께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참이니 초면이니 구면이니 따질 시점은 이미 한참 전에 표지판도 제대로 보지 않고 지나쳤다.

 

  역시나 그 속은 나무줄기로 되어 있을 천장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선장 일행이 늘 신세를 지고 있는 물류 회사의 직원인 린다 마르티네즈가 틈새로 뚝 떨어진 것이다.

  어쩐지 갈라진 위쪽에서 오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 것도 같고 또 어째서 그녀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은 여럿 있었지만, 일단 선원은 당장 눈앞에서 해결해야만 할 문제에 대해 질문하기로 했다.

 

 “혹시, 전기톱 있습니까?”

 

 *

 

  깊은 밤이 머금은 물기도 이미 거의 말라, 이제는 밤을 새기로 결정한 이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술집. 몽롱하고도 고요해 자칫 감상적인 기분에 빠지기 쉬운 이 시간에 그런 단어들과는 인연이 없는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백 년 전도 아니고 휴양지로 하와이 섬을 추천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거긴 지금 섬도 아니라고요! 라고 언제나처럼 투덜거리는 선원과,

 

 “요즘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기는 하지. 그럼 그린란드는 어떤가? 기온도 적당할 테고, 펭귄도 있지 않나.”

 

  별로 반응이 다를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선장은 더욱 열기를 띈 선원의 재반박 따위는 무시하고 바텐더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허, 이것 참, 오랜만이네요.”

 

  유리잔 몇 개를 바에 늘어놓고 닦던 바텐더는 뜻하지 않은 반가운 얼굴들의 방문에 인상이 활짝 펴진다. 거기엔 순수하게 그들을 반기는 것도 있고, 정말로 이제는 다섯 번 정도 죽은 건지 테이블에서 얼굴을 들지 않는 린다가 약간 걱정되던 참인 것도 있었다.

 

 “일단 토스트를 부탁하네. 바삭하고, 빵보다 잼을 두껍게. 베이컨과 달걀도 곁들여 주면 고맙겠네. 음료는 블루베리 라씨(발효유와 물, 향신료를 섞은 인도 음료)로 하지.”

 “선장님…여기 간판 안 봤죠?”

 

  아마 시계도 안 봤을 거다.

 

 “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한가하니까요.”

 

  또 뭐라고 토를 달고 싶은 선원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타이밍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다음으로 선장이 다섯 시간 정도 빠른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곳은 빈 술병들로 꽉꽉 들어차 접시는커녕 포크 하나 놓을 자리도 없어 보이는 저쪽의 테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실례하겠네.”

 

  더욱 난감한 점은 그 테이블을 이미 차지한 손님이 한 명 있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히도 이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주 테이블 표면에 얼굴을 파묻고 이 영토에 관한 자신의 권리를 확고하게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살아 있는 거겠지?

  그러건 말건 능청스럽게 맞은 편 의자에 앉은 선장은 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 몇 가를 집어 선원에게 건네준다. 나더러 뭘 어쩌라고요, 라는 선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대답이 없자, 선원은 한숨을 쉬며 그것들을 발에 채이지 않을 정도 아래에 세워 놓는다.

 

 “다른 자리는 안 될까요?”

 

  저기 엎어져 있는 손님이 보이는 대로 진짜 시체가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슬슬 일어나 자기 영토를 침입한 무례한 행위에 대해 따지기 시작할 거다.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다섯 번 정도 죽어 있는 여자를 눈앞에 두고 다섯 시간 이른 아침식사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갈 리 없다.

  선장은 이미 포크와 나이프, 턱밑에는 냅킨까지 두르고 식사 준비 완료다.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바텐더가 정확히 선장이 말한 것과 같은 메뉴를 이쪽에 날라다 주고 갔다. 이쯤 되면 간판은 선원 쪽이 잘못 읽은 것 같다. 이쪽의 메뉴도 음료가 레몬 라씨인 것만 빼면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선장은 코트 안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그 정체는 대체로 조금 찢어지고 색이 바랬거나, 그 정도가 많이 심한 종이 쪼가리다. 아마 팸플릿이라고 부르는 거였지.

 

 “그럼, 지금부터 올 여름에 바캉스 떠나기에 좋은 관광지를 소개해 보겠네.”

 

  여름이라고 부르기에 석 달은 늦은 것 같지만, 그에게 굳이 따져서 무엇을 하리. 게다가 저 말은 선원이 아니라 자기 머리맡에서 두 사람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어도 아무 미동도 하지 않는 저 여자에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도 워싱턴에서 무엇보다 먼저 봐야 할 곳은, 미국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고 하겠지. 워싱턴 기념탑부터….”

 

  한 백 년 전이라고 해야 믿을 이야기를 마치 어제 보고 온 양 열심히 떠벌이는 선장. 지금 그가 말하고 있는 장소는, 이제는 없는 어떤 나라를 향한 ‘상징적’ 공격이 지나치게 가해진 탓인지 폐허조차 변변히 남아있지 않은 빈 땅이 되어 있다. 근처에 폴리스는 물론이고, 약탈자들의 캠프도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이상 기후 지역이기도 하다. 관광지라면, 글쎄다. 안전에 대한 아주 까다로운 준비만 해 간다면 취향에 따라서는 꽤 맞을지도.

 

 “복잡한 도시 풍경이 지겹다면,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 중부도 괜찮지. 오마하에 가기 전에….”

 

  아, 그 쪽은 잘 살고 있다. 단, 광활한 평야라는 소리는 이젠 거짓말이 되었다. 이젠 다른 의미로 볼 만한 곳이 되었지. 자연적이지 않은 지진으로 땅덩이가 깊숙이 갈라지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만든 도시는 그 자체로 좋은 볼거리긴 하다.

 

 “그리고 보자, 여기라면.”

 

  말하는 보람이 없는 것도 모르는지 닳아서 찢어지기 직전인 팸플릿들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이 대륙의 (옛)관광지들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는 선장. 다음에는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 워싱턴과는 다른 의미로 손을 꼽는 위험한 지역이다.

 

 “알고 있어요….”

 

  이건 선장이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걸 호러라고 표현해야 하나, 영화 후반부까지 엎어져 있던 린다가 섬뜩한 효과음이 어울릴 법한 모습으로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 대신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 죽은 여자가 일어나서 하는 휴양지 소개라니. 장르를 어떻게 붙여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고등학교가 여기에 있었고, 보통은 거기서 일을 했지만, 가끔 친구들이랑 햄버거를 먹기도 했었어요.”

 

  밑바닥으로부터 간신히 끌어올리는 목소리로, 어떤 지역의 지리와, 그곳에 얽힌 추억을 차례차례 읊어대기 시작한다. 관광이나 휴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고, 그 당시 거기에 있지 않았던 두 사람으로선 말해 보았자 그리기 쉽지 않은 풍경이다. 허나 그런 게 상관있을 리 없다.

 

 “잠깐만요….”

 

  한참 옛날이야기에 취해 있던 린다가 무언가에 복받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감정 같은 것은 아니고,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면 테이블 위의 빈 병들과 관련이 있겠지.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휴양지를 찾은 것 같군. 안 그런가?”

 

  아무렴 어떠냐고 말하며 선원은 컵 바닥에 남은 음료를 홀짝거린다. 방금 그 대화, 그리고 독백처럼 들리던 옛 추억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새빨간 타인인 선원은 알 리가 없다. 애초에 이곳의 간판을 제대로 읽고 들어왔다면, 여기서 하기에 부적합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확한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에게 여기서 술에 절어 머리를 처박을 만큼 나쁜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야 하겠지만, 그건 또 여기서 하기에 좋은 질문이 아니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미 물어봤거나, 알고 있겠지.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울거나 웃거나 하면서 군데군데가 지워진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선장과 선원이 라씨 두 잔을 더 비우고 술집에 그들 외의 손님도 모두 사라졌을 때쯤 이야기는 현재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질 만큼 진행되었고, 어느 순간 그녀는 다시 그들이 들어왔을 때처럼 테이블에 엎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잠든 것 같았다.

 

 “어떡할까요?”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서로 집 주소를 알려줄 만한 사이는 아니다. 선장은 여느 때처럼 대답하지 않고 턱짓으로 술집으로 들어오는 문 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정말 드물게도, 이런 시간에 새로 술집에 들어온 다른 손님이 있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깔끔한 옷차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이 시간에, 초저녁에도 눈길을 끌 법한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작가의 말
 

 삶은 언제나, 그것이 생각보다 재미 없을지 모른다는 고통과 싸워야만 한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Tape 1-14 2019 / 11 / 10 189 0 10678   
13 Tape 1-13 2019 / 11 / 10 202 0 5683   
12 Tape 1-12 2019 / 11 / 9 223 0 5900   
11 Tape 1-11 2019 / 11 / 8 212 0 6737   
10 Tape 1-10 2019 / 11 / 7 187 0 7720   
9 Tape 1-9 2019 / 11 / 5 198 0 15887   
8 Tape 1-8 2019 / 11 / 1 190 0 5651   
7 Tape 1-7 2019 / 10 / 31 182 0 10083   
6 Tape 1-6 2019 / 10 / 24 204 0 5985   
5 Tape 1-5 2019 / 10 / 17 192 0 5482   
4 Tape 1-4 2019 / 10 / 13 196 0 3341   
3 Tape 1-3 2019 / 10 / 3 200 0 7755   
2 Tape 1-2 2019 / 9 / 13 208 0 5237   
1 Tape 1-1 2019 / 9 / 6 343 0 787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