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너에게 닿기를
작가 : 리아스트
작품등록일 : 2019.9.20

청화국 30대 국왕의 외동딸로 태어난 공주, 한서월. 가장 행복해야 할, 성년을 맞이하는 탄신일 저녁.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죽음과 함께 복수를 위한 삶을 살게 되는데······.

 
04. 백화요란(百花燎亂)
작성일 : 19-11-06 22:17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329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서월."

 

 "......."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도,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탁-

 

 "야."

 

 몇 번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자리를 벗어나려는 내 손목을, 서의겸이 잡아챘다.

 

 "......놔."

 

 "나 봐."

 

 점점 더 강하게 손목을 조여오는 힘이 싫었다.

 

 "놓으라고, 너 보기 싫으니까. 제발!"

 

 내 말에, 억지로 붙잡아 두고 내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리려던 그의 손이, 한순간 멈추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만큼 오랜 기간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거의 무조건적으로 그와 혼인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기뻤을 만큼.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서의겸을 볼 때면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의 앞에 서면 사라지지 않는 내 마음이, 너무나도 싫어서. 그냥 벗으로만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더 비참해지지는 않았을까.

 

 "적당히 해, 서의겸."

 

 아무리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입장이라도, 이런 상황은 견뎌낼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으려, 눈가에 잔뜩 맺히기 시작하는 물방울을 달고 입술을 한껏 깨물며 서의겸에게 쏘아붙이고는, 붙잡힌 손목을 뿌리쳤다. 그대로 지나쳐 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목숨을 버리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세게 물어뜯었던지 쓰라린 고통과 함께 비릿한 피의 맛이 입안으로 밀려들어왔지만, 아량곳하지 않고 더 힘을 실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내가 정신을 차릴까 싶어서.

 

 그 일이 있은 이후로는 즉위식 이전까지 궁에 틀어박혔다. 서의겸과 혼인을 하게 되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 테니. 아버님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라, 대신들과의 어전 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일절 침소를 벗어나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보여질 일도 없었다.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사흘 후, 현재보다 더 끔찍한 삶이 시작될 즉위식 날이 밝았다.

 

 서의겸이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나와 그가 혼인하는 날.

 

 "......."

 

 즉위식이 거행되는, 궁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정궁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는 그와 나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두 분께서 드십니다!"

 

 시종의 큰 목소리에 문이 열리고, 수많은 궁인들과 신하들을 거쳐 월대에 올라 어좌에 앉기까지, 줄곧 그와 손을 잡고 있어야 하니.

 

 서의겸과는, 정원에서 마주쳤던 날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사흘동안 거부감을 진정시키려 했음에도, 쉽게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잔뜩 굳은 얼굴을 최소한 무표정으로라도 바꾸어 보려 애를 쓰며,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의겸이가 옆에 있으니까, 그나마 안심이 되네."

 

 희미하게 안도의 미소를 짓는 순영이에게, 차마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서의겸은,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오랜 벗인 순영이의 말에, 그리 떳떳할 수 없는 탓이었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형식적으로 진행된 즉위식의 끝은,

 

 "침소에 드실 시간입니다."

 

 혼인 첫날 밤이면 흔히 이루어지는, 정사의 시간이었다.

 

 

 

 ***

 

 

 

 평소보다 더 짙은 향이 묻어나오는 꽃잎이 가득 들어찬 탕에, 몸이 담구어졌다.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목욕을 마치고 나와, 평소보다 가벼운 침의를 걸쳤다. 옷고름 하나만 당겨도, 한번에 흘러내려지도록.

 

 절차에 맞는 모든 준비를 마친 시녀들이 나를 이끈 곳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버님께서 주무셨던 침소였다. 일찍이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버님 혼자 잠을 청하셨던 것 뿐, 본래는 국왕 부부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곳이었다.

 

 서의겸은 아직 들지 않았는지, 침소는 비어 있었다. 미리 지정된 자리에 느릿하게 앉으니, 시녀들이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맨 살에 닿아 스치는 부드러운 비단의 감촉이, 이토록 이질적이었던가.

 

 "이쪽입니다, 폐하."

 

 약지에 끼워진 반지마저도 이질적이었다. 손바닥의 반까지 덮인 소맷자락의 끝을 쥐어 보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와 동일한 침의를 입은 서의겸이 발을 들였다.

 

 "모두 물러가라."

 

 "허나 폐하, 두 분께 혼례주를 따라 드리는 것이 원칙-"

 

 "물러가라 명했을 텐데."

 

 "......예, 폐하."

 

 원칙적으로 나와 서의겸이 혼례주를 다 마시고 난 뒤, 상을 물리고 나서야 궁인들은 침소 주변에서 자리를 피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궁인들을 미리 내보낸 서의겸은,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앉았다.

 

 "......."

 

 미동도 없이 바닥만을 응시하는 나를 의겸이는, 그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 자신조차 머릿속이 드문드문 하얗게 물들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를 내는 나에 반해 아무런 기색도 내지 않더니, 술이 담긴 주전자를 집어 들고 잔에 따라 말없이 내게 내밀었다.

 

 어차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술이었다. 방 안에 들어온 이후로 줄곧 무릎 위에만 위치해 있던 손을 뻗어 받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자, 또다시 가득 채운 잔을 이번에는 제 입에 털어넣는 의겸이었다.

 

 "......!"

 

 그리고 순식간에 내게 다가온 그는, 내가 채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나를 밀어 넘어뜨렸고- 시선을 주위로 돌리고 나서야 곱게 깔린 이불 위에 누워 있는 내 위로, 서의겸이 올라가 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숨이 바로 닿는 거리였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그를 밀어내자, 의겸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먼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겠다 한 건 너야. 네 입에서, 네 목숨 값 대신으로 나온 말이잖아. 안 그래?"

 

 "......."

 

 더 이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내가 뱉었던 말이고, 내가 살아남는 조건이었기에.

 

 반항의 여지를 버리고 그를 밀어내던 손에 힘을 풀자, 틀어져 있던 내 얼굴을 돌려놓고는 턱 끝을 잡아 올려, 입을 맞춰왔다.

 

 묘한 흥분감이 밀려왔다. 공식적인 합방일의 혼례주인 만큼, 평범한 술이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미약이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작은 한 잔을 들이켰던 것이 전부였더라도, 몸이 더욱 반응하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어, 마냥 냉정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아.....!"

 

 서의겸은 철저히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은, 어느새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허리가 멋대로 휘어지고 아픔이 더 배가 되어 가는 와중에도, 아픔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머릿속을 채워 나갔다. 그 느낌이 멀어져 갈 즈음, 의겸이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끝난 건가.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차례의 폭풍에 불과했던지 다시 움직이기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결국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찾아올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백화요란(百花燎亂) 이란 '온갖 꽃이 불이 타오르듯이 피어 매우 화려(華麗)함' 이라는 뜻입니다. 부제에 사용한 것은,, '우리의 새벽은 낯보다 뜨겁다' 의 19금적 의미를 돌려서 표현하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4 14. 난 너를 불러 2019 / 11 / 10 249 0 3044   
13 13. 당황스러운 거리 2019 / 11 / 10 240 0 2990   
12 12. 별은 우릴 닮아 슬픈 만큼 빛나 2019 / 11 / 10 230 0 2911   
11 11.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일까. 2019 / 11 / 10 257 0 3049   
10 10. 슬픔의 나날, 그리고 예정된 슬픈 운명 2019 / 11 / 10 223 0 2951   
9 09. 모르겠어, 네가 무슨 생각인 건지. 2019 / 11 / 6 232 0 3703   
8 08. 다행이야, 고마워. 2019 / 11 / 6 217 0 2952   
7 07. 쏟아지는 하늘의 울음소리는 2019 / 11 / 6 238 0 2926   
6 06. 어긋나버린 우리 미래에 2019 / 11 / 6 243 0 3347   
5 05. 너를 꼭 닮았을 날씨였을 것을. 2019 / 11 / 6 243 0 3082   
4 04. 백화요란(百花燎亂) 2019 / 11 / 6 244 0 3294   
3 03. 내가 아는 네가 맞는 것인지. 2019 / 10 / 3 247 0 2985   
2 02. 이 모든 게, 다 꿈일 거라고. 2019 / 9 / 22 228 0 2904   
1 01. 서막 2019 / 9 / 20 429 0 422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