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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그 끝없는 끝에 네가 지치지 않도록 함께 걸어줄 거야.’

늘 나사하나 빠진 채 몽롱하니 걸음을 옮기는 것 같고, 퍼즐 조각 하나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헤매듯이 끝이 없는 지루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래준다면 그것만으로 세상은 아름다운 건 아닐까요?

비록 자신의 삶을 완벽함으로 채우진 못했어도 나 또한 누군가의 완전을 바라니까.

‘그런 네 옆에 내가 걸음 맞춰 걸을게. 이제 함께 걷는 거야. 가다가 힘들면 등 맞대고 쉬고, 또 손 맞잡고 걷고, 누가 이기나 뛰어도 보고, 느릿하게 얼마나 걸었는지 걸음수도 세는 거야. 네가 심심하면 노래도 불러 줄게. 우리가 걷는 길에서 마주치고, 지나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응원도 해주고, 힘들까 물도 건넬 거야. 그럼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걷는 거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 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 chapter 6
작성일 : 19-11-06 18:35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7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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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6

 

 

 

  아랑이 저물어가는 해를 꼭 보아야 할 곳으로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를 말하자 도현이 두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벌써 노을이 물을 우려내기 시작한 턱에 조금이라도 감상을 위해선 서둘러 뒷산을 올라야 했다. 그가 긴 다리로 가파른 언덕을 올라설 때 아랑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먼저가. 숨을 못 쉬겠어.”

 

  안 되겠다며 손을 젓는 아랑에 도현이 가만히 그녀의 뒤로 갔다.

 

 “먼저 가라니까?”

 “내가 볼 건 넌데 먼저 가서 뭐해?”

 

  그가 슬그머니 아랑의 등을 밀었다.

 

 “체력 좀 기르자.”

 

  아랑이 그의 손에 의지한 채 간신히 언덕을 올라 너도밤나무를 감격스레 보았다. 너도 여전하구나. 나무가 속삭였다. 드디어 둘이 왔네? 그럴 줄 알았어. 아랑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드디어... 도현이 그녀의 손을 잡아왔다.

 

 “명당이네.”

 

  두 사람이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 앉아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음에도 오늘따라 해가 두 사람을 축하하려는 마음에 달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길 너하고 같이 왔네.”

 

  도현이 그녀를 보다가 제 집을 가리켰다.

 

 “넌 항상 저기 있더라.”

 “여긴 네 구역이니까. 온전히 마음 놓을 수 있는 네 구역이라, 저기서 보면서 생각했지. 여기 있는 너는 잠시 복잡한 머리 비우고 편안한 걸까.”

 

  아랑이 자신을 보는 도현에 씨익 웃고는 노을로 시선을 던졌다. 고향의 가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경적 소리 하나 없이 바람의 노래에 집중한 채 내려다 본 마을이 천국인 걸까.

 

 “그런데 네 집 담에 기대 널 보면서 상상하는 것에 한계가 와서 어느 날엔가 너 몰래 여길 와봤어. 그리고 나선 걱정이 덜었지. 아, 여기선 네 마음이 편했겠구나. 안심했어.”

 

  그의 시선이 여전히 그녀에게 닿아있었다. 노을빛에 은은하게 물든 그 얼굴을 보며 천사 같다 생각했다. 너는 얼굴도, 마음도 어쩜 그리 천사 같을까.

 

 “그 뒤로 또 한 번을 왔었는데... 딱 두 번 왔던 기억은 천당과 지옥이었지.”

 

  이제는 상관없다는 듯이 그녀가 웃었다. 너도밤나무가 바람과 함께 속삭였다. 그래, 그땐 네가 그랬었지.

 

 “신아랑.”

 

  도현의 부름에 나무와 바람과의 수다를 멈추고 그녀가 그를 보았다. 고개가 돌아감과 동시에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감쌌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 거야?”

 

  아랑이 짓궂은 미소를 보였다.

 

 “분위기 좀 잡아 보려는 거야?”

 

  도현이 핏 웃고는 그녀의 뒷목을 감싸 끌어당겼다.

 

 “응. 그러려는 거야.”

 

  맞닿은 두 입술 사이로 노을이 짓궂은 미소와 함께 저물었다. 바람이 부끄러워 멎었고, 너도밤나무는 나는 모르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

 

 

  맞닿은 입술이 자꾸만 커지는 욕심을 뒤로 하고 떨어졌을 땐 어느 덧 사위가 푸르렀다. 서로의 눈을 보며 웃기도 잠시 서늘해진 밤공기에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산을 내려왔다. 차에 오르자 곧바로 히터로 온도를 맞춘 도현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렸다. 아랑이 참 완벽한 하루였다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눕히려다 생뚱맞은 곳으로 가는 도현의 차에 상체를 일으켰다.

 

 “서울 안가?”

 “응. 자고 갈 건데?”

 

  당황한 아랑을 보며 도현이 짓궂게 웃었다.

 

 “남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지.”

 

  아랑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익어갔다. 어린 시절 등, 하교를 위해 걸었던 길고도, 길었던 거리가 이리도 순식간이었나. 도현이 집 앞에 도착해 시동을 끄자 아랑은 여전히 벨트를 움켜쥔 채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불이 켜지지 않은 집에 갸웃한 도현이 그녀를 보곤 핏 웃었다.

 

 “걱정인가보다?”

 “어? 뭐가?”

 “내가 어떻게 할까봐 걱정인가 봐.”

 

  식었던 아랑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고 있었다.

 

 “아... 닌데?”

 “아니긴, 내려.”

 

  도현이 먼저 차에서 내리자 아랑이 입을 꾹 다물곤 뒤따라 내렸다. 왠지 적막한 분위기에 도현이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잠긴 현관문에 차키와 함께 걸린 집 열쇠를 찾아 문을 따고 인기척 없는 집 안에 곧바로 백 여사에게 전화를 했다. 아랑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은 도현의 집을 이리저리 살폈다. 꽤 길게 이어졌던 신호음이 달칵하며 끊겼다.

 

 - 아들?

 “나 지금 집인데, 어디세요?”

 

  백 여사가 크게 놀라며 한탄했다.

 

 - 내려올 때 전화하라고 했잖아! 엄마 지금 친구들하고 전주에 왔는데.

 “전주?”

 

  오랜만에 만난 여 동창들과 전주로 여행을 가셨단다. 1박 2일. 전화를 하라던 엄마의 말을 듣지 않은 건 자신이었으니 달리 방법도 없었다. 백 여사는 어째서 아들들은 이리 말을 듣지 않느냐 잔소리를 해댔다.

 

 “어쩔 수 없지. 나도 내일 올라가야 하니까. 주말에 다시 올게. 네. 재밌게 노시고요.”

 

  도현이 전화를 끊자 두리번거리던 아랑이 다가왔다.

 

 “아주머니 안 오신대?”

 “어. 전주래. 친구 분들이랑 나들이 겸 갔다나 봐.”

 

  아랑이 작게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이 겉옷을 벗으며 다시 짓궂게 웃었다.

 

 “어떡하냐?”

 “뭐가?”

 “너랑 나. 둘 뿐인데.”

 

  아랑의 얼굴이 눈에 띠게 굳었다. 도현이 그 모습에 핏 웃고는 제 짐 가방을 풀었다.

 

 “우리가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놀라?”

 

  그가 여분으로 가져온 트레이닝 복 한 벌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씻어.”

 “어?”

 “내가 먼저 씻을까?”

 

  아랑이 황급히 그의 옷을 받아들었다.

 

 “아니, 내가 먼저 씻을래.”

 

  오늘따라 그의 외보조개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랑이 서둘러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도현이 그런 아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오랜만에 온 집에도 자연스레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제 엄마가 문단속은 잘 하고 사는지 살폈다. 여전히 쓰던 가구 그대로 둔 제 방에서 나왔을 땐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도현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아...”

 

  낮은 탄성과 함께 그가 곤란한 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때면 제 집에서는 냉장고를 뒤져 맥주 한 캔으로 마음을 달래 보았을 것이다. 중년의 여성이 혼자 사는 시골의 집에서는, 더군다나 건강이라면 끔찍이 챙기는 약 바구니와 선반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유별난 여성이 사는 집이라면 술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도현이 어쩔 수 없이 제 방으로 숨었다. 화장실에서 가장 먼 곳이 제 방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던 참이었다.

 

  벌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뿌연 수증기가 밖으로 나왔다. 아랑이 막 밖으로 오른발을 내딛었을 때 도현이 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잠시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소매를 서너 번 접어올린 옷깃이 어벙하게 그녀의 몸을 가려 작은 체구를 돋보이게 했다. 두 사람이 어색하게 거실에서 만났다.

 

 “씻고 나올 테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도현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아랑이 그의 어깨 너머로 열린 방문을 보았다.

 

 “네 방이지?”

 

  도현이 힐끔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랑이 이끌리 듯 그곳으로 향했다. 그래, 그 방에 있어. 도현이 그리 생각하곤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숨이 턱 막히는 것은 그녀가 사용한 화장실의 흔적 때문이 아니라... 수증기 때문이다. 그가 난감한 듯 뒷목을 매만졌다.

 

  한 편 도현의 방을 보던 아랑은 비어버린 옛 책상을 보며 의자를 빼 앉았다. 도현은 늘 그곳에 앉아 공부를 했었다. 옆 선반에는 그의 물건들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띠는 것은 홀로 남은 고삼 때 국어 교과서였다. 아랑이 그것을 빼들었다. 물건을 깔끔하게 쓰는 그라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빳빳한 교과서의 종이가 신기했다. 맨질한 교과서만의 종이 재질을 아랑이 쓰윽 쓰다듬었다가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이는 글을 보며 그때의 수업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녀가 이내 휘리릭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의 교과서가 유독 깔끔한 이유는 메모하나 없기 때문일까?

 

 “새 것이라 해도 믿겠네.”

 

  다시 한 번 휘리릭 페이지를 넘기던 순간 별안간 그 흐름이 툭 끊겼다.

 

 “뭐해?”

 

  순간 전등이 하나 나갔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전등을 보았다.

 

 “네가 갈아드리고 가라. 아주머니 키 안 닿으실 것 같은데.”

 “그래야겠네.”

 

  도현이 무심하게 말하곤 그녀의 손에 들린 국어 교과서를 보았다. 그제야 아랑이 책을 들어보였다.

 

 “어, 왜 국어책만 남겨놨어?”

 

  도현이 침대에 앉으며 아랑과 책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왜 남겨뒀는지 모른 채 남겨놨는데 이제 알았다.”

 

  그가 아랑을 가리켰다.

 

 “너 때문이었어.”

 “나?”

 “국어라는 단어만 봐도 네가 떠올랐거든. 그래서 그랬나봐. 기억하려고.”

 

  아랑이 그의 교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건 네가 참 바보라는 거야.”

 

  그녀의 말에 그가 웃었다. 아랑이 교과서를 제자리에 놓고 그를 보았다. 한참을 정적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다 도현이 말했다.

 

 “내가 무슨 생각 하는 줄 알아?”

 

  아랑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무슨 생각?”

 

  그가 천장으로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저 남은 전등도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가 천천히 뒤를 짚었던 손을 때고 다리를 꼬았다. 높이 올라온 무릎에 팔을 올려 턱을 괸 채 그녀를 보았다.

 

 “그럼 어두워진 김에...”

 

  아랑이 또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도현이 외보조개를 띠웠다.

 

 “잠이나 자자, 할 건데.”

 “어?”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해석은 자유. 나와. 뭐라도 먹자.”

 

  아랑이 그를 힐끗 보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거실로 나가려는데 방금 전까지 도현이 있던 침대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둘이 자기엔 조금 작은 감이 없지 않은데...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아랑의 얼굴이 곧 폭발이라도 할 듯 뜨거워졌다. 그녀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백 여사가 만들어 놓은 갖갖이 반찬들을 꺼내 놓으니 비로소 한 상이 차려졌다. 음식을 보고서야 비로소 허기가 지는지 아랑이 서둘러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이다. 집 밥.”

 “많이 먹어라.”

 

  그가 그녀의 앞으로 밥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아랑은 한 숟가락을 먹을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었다. 오랜만의 집 밥. 그래, 오랜만. 너무도 오랜만이라 반가운, 그리운 맛. 왜 우린 이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맛있어?”

 “응.”

 “많이 먹어.”

 “아주머니 손맛을 보니, 우리 엄마 손맛도 그리워지네.”

 

  아랑이 핏 웃자, 도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내일 올라가는 길에 뵙고 가자.”

 “우리 엄마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만나는 거 말씀도 드리고. 그래야 마음 좀 놓이시지.”

 

  아랑과는 달리 그가 젓가락으로 작게 밥을 떠먹었다.

 

 “날 되게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랑이 픽 웃었다.

 

 “맞아. 우리 엄마 너 되게 좋아해. 아들, 아들, 아들. 노래를 불렀지.”

 

  쳇- 입술을 삐죽이는 아랑에 도현이 말했다.

 

 “우리 엄마도 너 좋아해. 아랑이, 아랑이, 예쁜 아랑이, 똑똑한 아랑이, 싹싹한 아랑이. 노래를 불렀지.”

 

  그 말에 아랑이 기분이 좋은지 한층 밝아졌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너 만큼이나 나도 바보 같았던 것 같아.”

 

  아랑이 물로 입을 행구고 말했다.

 

 “내 멋대로 넘겨짚고 단정을 지었지. 너는 절대 내가 아니겠지. 안 되겠지. 그러니까 용기를 가질 생각도 못한 거야. 나도 바보 같았어.”

 

  아랑이 숟가락을 든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물론, 빌미는 네가 제공했지.”

 

  도현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한 번 용기를 내볼까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웬걸, 너의 첫 키스를 볼 줄이야.”

 

  도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대로 학교 뒷산으로 도망쳤었는데. 그때가 두 번째였어. 너도밤나무에 간 게. 그때가 지옥이었지.”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아랑과는 달리 도현이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아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 안나? 반에서 되게 얌전했던 여자애 하나 있었잖아. 이름이 소원인가? 학교 끝나고 교실에서 너희 둘이 뽀뽀하는 거 봤거든. 너희 그때 물로켓 대회 준비하느라 학교 끝나고 과학실에서 말이야.”

 “아...”

 

  도현이 기억이 난 듯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랑이 지나간 일임에도 괘씸함에 짧게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남자가 첫 키스도 기억 못해?”

 “그게 무슨 첫 키스야. 입술만 잠깐 맞닿은 거지.”

 “허이구, 잘 나셨어.”

 “그건 나도 당한 입장이니까 이해해줘야지.”

 “누가 이해 못한대?”

 

  아랑이 틱틱 대자 도현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후로 말도 없이 밥만 먹던 아랑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다 먹었어. 너희 집이니까 치우는 것도 네가 하는 거지?”

 “와... 신아랑. 나도 억울하다니까?”

 

  그녀가 콧방귀를 끼며 화장실로 향했다. 잘 준비를 끝내고 나왔을 땐 다시 변명을 해보려는 도현을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아랑이 도현에게 다가왔다. 양치를 끝낸 그가 입가의 물을 닦으며 그녀를 보았다.

 

 “왜. 나의 억울함을 풀 기회를 주는 거야?”

 “웃기고 있어, 목격자한테. 늦었어. 어디서 잘 거야?”

 

  그가 제 방을 가리켰다. 아랑이 그곳으로 향했다. 도현이 제 침대에 눕는 아랑을 보며 문가에 비스듬히 기댔다.

 

 “화는 났는데 침대에는 눕는다?”

 “그럼 따로 잘까?”

 “무슨 그런 말을.”

 

  그가 탁 불을 끄곤 그녀의 옆으로 누웠다. 아랑이 당연하단 듯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들었고, 온 세상이 고요했다. 시골의 밤은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 서로의 귀를 간질였다. 도현이 그녀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머저리처럼 굴어서 미안해.”

 

  감겼던 아랑의 눈이 슬그머니 떠졌다.

 

 “너한테 사과할 게 많은데 제일 먼저 그 일부터 사과하고 싶었어.”

 “괜찮아.”

 “너무 쉽게 용서해주네. 더 미워해도 돼.”

 

  그의 품에서 아랑이 속삭였다.

 

 “우리 그때, 열 잔에 10년 묵은 모든 문제들 다 담아서 비웠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도현의 손길이 여전히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10년 마음고생 시킨 것도, 미안해.”

 “괜찮아.”

 “내가 바보라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 미안해.”

 “괜찮아.”

 

  아랑은 그의 품에서 다시 눈을 감았다. 편안했다. 어릴 적 아빠의 품에서 잠들던 만큼이나 편안했다. 물론, 현도현이라는 이가 주는 설렘은 달랐지만 아랑은 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제 머리 아래 있는 그의 팔과 가까이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 제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까지 무뚝뚝하기만 한 그에게서 나올 거라 예상 못한 다정함이었다.

 

 “내 과실이 아니라 억울하긴 하지만, 그때 내 입술을 지키지 못했던 것도 사과할게.”

 

  담담하게 말하길래 꽤나 진지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줄 알았는데 그의 말에 아랑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지한 사과야.”

 “얄미워 죽겠어.”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예상외의 반응이군.”

 “그럼 뭐, 괜찮다고 할 줄 알았어?”

 “그보다 조금 더 괜찮은 답을 기대했지.”

 “이를 테면 어떤 거?”

 “이를 테면...”

 

  그가 고민하는 척 시간을 보내곤 말했다.

 

 “키스란 이런 것이다. 하면서 몸소 알려주길 바랐지.”

 

  아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밝히긴.”

 “밝히다니. 사랑을 갈구하는 중이야.”

 “뻔뻔해.”

 “굉장히 시적으로 표현한 건데. 애인이 시인이라 먹힐 줄 알았어.”

 

  아랑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나도 시적이지 않아. 낭만도 없이 목적만 뚜렷한 욕망이었어.”

 “부정할 수가 없네.”

 

  그가 눈을 감으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얼른 자. 목적만 뚜렷한 나의 욕망도 눈을 감았으니 잠잠할 거야.”

 

  아랑이 여전히 그의 품에서 키득거렸다. 도현도 슬며시 어둠 속에서 외보조개를 띠웠다. 키득거리던 아랑이 말했다.

 

 “도현아.”

 “응.”

 “하늘이 주신 기회도 못 알아보고 놓치는 건 아니지?”

 

  순간 그가 숨을 멈췄다. 아랑이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채 여전히 그의 품 안에 있었다. 도현이 눈을 떴다. 어둠에 익은 눈이 눈앞의 가로막힌 벽을 보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다시 장난기 어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애 아니잖아.”

 

  아랑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여전히 갈등 중인 건지, 벙 찐 건지.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싸 입을 맞췄다.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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