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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불완전한 모든 것
작가 : 예다올
작품등록일 : 2019.9.4

‘그 끝없는 끝에 네가 지치지 않도록 함께 걸어줄 거야.’

늘 나사하나 빠진 채 몽롱하니 걸음을 옮기는 것 같고, 퍼즐 조각 하나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헤매듯이 끝이 없는 지루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래준다면 그것만으로 세상은 아름다운 건 아닐까요?

비록 자신의 삶을 완벽함으로 채우진 못했어도 나 또한 누군가의 완전을 바라니까.

‘그런 네 옆에 내가 걸음 맞춰 걸을게. 이제 함께 걷는 거야. 가다가 힘들면 등 맞대고 쉬고, 또 손 맞잡고 걷고, 누가 이기나 뛰어도 보고, 느릿하게 얼마나 걸었는지 걸음수도 세는 거야. 네가 심심하면 노래도 불러 줄게. 우리가 걷는 길에서 마주치고, 지나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응원도 해주고, 힘들까 물도 건넬 거야. 그럼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걷는 거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 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 chapter 2
작성일 : 19-11-06 18:27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8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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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

 

 

 

  피곤함에 눈이 멀어 버린 건지. 도현이 그녀를 빤히 보았다. 잠시 후 멈칫 멈칫 걸음을 옮기는 그녀에 그제야 진짜 아랑이 맞다는 걸 알곤 그녀를 주시했다. 가만히 제 시선을 피한 채 바로 옆 편의점으로 들어간 아랑을 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랑은 그가 바로 자신을 붙잡지 않은 것이 의문이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러 온 걸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려 하자 입이 심심해 나온 길에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언젠가는 다시 보겠지. 하지만 그 때는 조금은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잘 지냈어?’ ‘잘 지냈어.’하고 인사 할 수 있는 날이라 생각했다. 아랑이 느릿하게 편의점에서 나와 그를 힐끔 보곤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신아랑.”

 

  혹여 그에게 붙잡힐까 곧바로 뛰어 들어가자 마음먹었던 걸음이 그 한 마디에 우뚝 멈춰 섰다. 가을이 무르익었음에도 여름 반바지 차림의 아랑이 춥게 보였다.

 

 “정말 꽁꽁 숨어 있네.”

 

  착잡한 마음에서 터져 나온 한숨에 아랑이 그를 마주 보았다. 피하지 못하고 대면해야만 한다면... 너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아무렇지 않게 잘 가라 인사를 할 거야.

 

 “어떻게 왔어?”

 

  첫 운은 잘 때졌다. 도현이 제게 말을 거는 아랑을 보았다. 아랑이 그의 뒤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자 근래 날짜와 함께 연연하지 않았던 시간을 급히 어림잡을 수 있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야?”

 “휴가 냈어.”

 

  그가 곧바로 답하자 아랑은 잠시 입을 닫았다.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제게 말을 거는 아랑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기로 한 건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일 하면서 한 번도 필요성을 못 느꼈었는데. 일이 손에 잡혀야지.”

 

  오늘 너를 보아 다행이다. 그의 입가에 옅게 외보조개가 띠워지려 할 때 아랑이 홱 몸을 틀었다. 여전히 나는 약하구나. 그녀가 건물로 숨어들기 전 그가 잡았다. 도현의 손에 잡힌 손목에 쥐고 있던 검은 봉지가 크게 흔들렸다.

 

 “얘기 좀 해.”

 “난 할 말 없어.”

 “그럼 듣기만 해. 난 있으니까.”

 

  왜. 무슨 말을 하려고. 아랑이 겁을 먹은 건지 어깨가 작게 말렸다.

 

 “부탁이야. 들어줘. 얘기 끝나면 갈게.”

 

  그의 간절한 목소리가 아랑의 마음을 흔들었다. 괜한 희망의 싹이 다시 마음대로 자리를 잡으려 했다.

 

  아랑은 비밀번호를 누르면서도 어쩌다 다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제 뒤에 있는 도현을 정말 들여도 될는지 의심이 갔지만 기계음과 함께 잠금이 풀렸다. 그녀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 보이자 도현이 먼저 들어섰다. 그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얘기든. 듣고 보내자. 제겐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열아홉 소년을 잊지 않았음에도 기회를 준 것은 그 답답함과 괴로움을 알기 때문이었다. 앉아라, 뭐 마실래? 예의조차 없이 그녀가 문을 닫고 제 집을 살피는 그를 지나쳐 형태를 잃고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냉장고로 넣고 그를 마주했다. 그녀가 딱딱하게 말했다.

 

 “짧게 끝내.”

 

  도현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작은 패브릭 소파의 팔걸이에 놓았다.

 

 “말하자면 좀 길어.”

 

  아랑이 속았다는 생각에 그를 쏘아보았다. 도현이 예전의 상냥하던 아랑의 눈보다 이젠 그 눈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 바빠.”

 “들어줄 마음 있어서 기회 준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짧게 하라고, 5분 줄게.”

  도현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그렇겐 못 끝내."

 “그럼 가.”

 

  그가 두 발로 고루 힘을 실은 채 반듯이 섰다. 정 내보내고 싶다면 끌어내시든가. 그의 마음이 그리 느껴졌다.

 

 “못 가.”

 

  아랑이 옷깃에 아슬하게 가려진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시 써야 돼.”

 

  그가 거실 한 켠에 마련된 그녀의 작업 책상을 보곤 말했다.

 

 “얘기 끝나고 하면 되잖아.”

 “이 시간에 가장 잘 써져. 놓치면 안돼.”

 “지금 우리가 할 얘기보다 중요해?”

 

  그녀가 눈에 힘을 주었다.

 

 “어. 더 중요해.”

 

  도현이 잠시 그녀를 빤히 보았다. 그 눈길에 아랑은 금방이라도 알았다고 할 것만 같아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나한텐 시가 더 중요해. 그 중요한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너한테 할애할 수 없어. 5분 안에 끝낼 자신 없으면 그만 가줘.”

 

  그녀는 제가 한 말에 뿌듯했다. 잘 했어. 단호했고, 명료하게. 제 뜻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럼 이쯤에서 알아들었겠지.

 

 “그래. 그럼 기다릴게.”

 “뭐?”

 

  아랑이 놀란 건지 되묻자 그는 소파로 가 앉았다.

 

 “너한테 중요한 시간을 내가 뭐라고 뺐겠어. 기다릴게. 시 다 쓰고 얘기 하자.”

 

  아랑이 소파 앞으로 가 그를 불렀다.

 

 “현도현.”

 “왜. 마음 바뀌었어? 중요한 시간, 오늘만 나한테 할애할래?”

 

  저 덩치 큰 남자를 끌어낼 수도 없고. 애초에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다. 아랑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았음에도 도현이 태연하게 외면했다. 똑같아. 제 멋대로. 누가 또 굽히고 들어갈 줄 알아? 아랑이 발끝에 힘을 주고 제 작업 책상으로 가 앉았다.

 

 “언제 끝날지 몰라.”

 “괜찮아. 나 시간 많아.”

 

  아랑이 입술을 작게 물었다. 그래. 휴가까지 내셨다니 오죽하겠어. 기다려. 질릴 때까지 기다려봐. 그녀가 시선을 돌려 노트북을 보았다. 하얀 백지에 커서가 반짝 거렸다. 아랑이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망설였다. 정적이 이어지자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 가나다라라도 적어보기 시작했다. 도현은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시를 쓰는 아랑을 빤히 보았다. 정적이 흐르는 그녀의 집에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는 타자 소리만 울렸다. 도현이 대뜸 물었다.

 

 “타자 소리가 굉장히 일정하네.”

 

  아랑의 손이 우뚝 멈췄다. 당연하지 벌써 다섯 번째 가나다라를 적고 있는데. 그녀가 그를 보았다.

 

 “나한테 중요한 시간이라고 했잖아. 방해 하지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짧다고 다 성의 없는 사과는 아니었다. 도현의 그 짧은 사과엔 아픔이 깃들어 있었다. 아랑이 애써 다시 노트북을 보았을 땐 손이 움직여지기가 않았다. 애써 적은 고운 우리말을 전부 지우자 또 다시 백지에 커서만 반짝거렸다. 정말 저 남자를 앞에 두고 나와 씨름을 할 셈이냐 묻고 있었다. 아랑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한데 방으로 가줄래?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나 때문에 집중이 안돼?”

 “지금 일분일초도 아까워. 말했지. 나한테 중요한...”

 

  그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룸 형식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그녀의 침실을 찾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여기야?”

 “아무것도 건들지마.”

 

  너무나 차가운 그녀의 온도에 도현이 방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여전히 웃음기 하나 없이 굳은 얼굴이었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며. 끝나면 불러.”

 

  그가 그녀의 방으로 가 문을 닫자 아랑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내쉬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벽을 응시했다. 기다릴 거니? 그냥 가주면 안 될까?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방 안의 도현은 그녀의 말대로 어느 것에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바닥에 앉았다.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자 사일의 피로가 몰려왔다. 어쩌면 그녀의 향기에 취한 걸지도 몰랐다. 사실 도현은 그녀의 집에 들어옴과 동시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몰랐던 아랑의 향이 코를 간질이며 초조했던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토닥였다. 그는 별안간 작게 말했다.

 

 “이제야...”

 

  왜 이제야. 내내 세워둔 날에 그녀가 얼마나 베어서 상처를 입었는지 이젠 칼날이 뭉뚝해졌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일까. 착잡함에 그의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아랑은 뭐라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적었다. 처음엔 현도현 나쁜놈으로 시작해 그를 욕하다가 속마음들이 슬쩍 슬쩍 숟가락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선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이 은유적으로 시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역시나 아픈 사랑이었다. 아랑은 여전히 아픈 사랑을 뒤로 하고 다른 것을 쓰고 싶었다. 그를 아주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 창작을 도구로 삼을 줄은 몰랐다. 문득 확인한 시간이 밤 11시였다. 아랑의 손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노트북의 시간이 바뀌었다. 12시. 아랑의 손이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오래 기다리게 할 샘이었다. 그를 아주 오래. 그녀가 시선을 들어 벽을 보았다. 타자 소리가 멈춘 집안이 적막했다. 방 안에서도 인기척이 없었다. 아랑이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방문 앞으로 갔다. 망설이던 끝에 살짝 문을 열었을 땐 바닥에 앉아 침대에 등을 댄 채 잠든 그가 보였다. 곤히 잠든 그에 아랑이 문을 더 열곤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바보.”

 

  그 말에도 그가 반응이 없었다.

 

 “멍청이.”

 

  언젠가 소연이 도현에게 욕 한바가지를 해주고 인연을 끊으라 강력하게 조언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왜인지 오늘이라면 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녀는 지금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쁜놈.”

 

  방안에 잔잔하게 흘렀던 그녀의 청아한 음성에 정적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포시 무릎을 끌어안으며 자세를 낮췄다. 곤히 잠든 도현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잠이 오니? 그와 가까워져서인지 아랑이 말을 삼키곤 가만히 그를 보았다. 열아홉 봄의 어느 날, 완벽한 꽃들의 축제가 시작되어 산뜻함 바람이 불어오던 그 어느 날. 햇살에 인상을 쓰며 점심시간 잠을 이룬 도현을 본 적이 있었다. 그와 햇살의 신경전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랑은 슬그머니 창가로 다가가 햇살을 막아주었었다. 그러자 스르륵 그의 미간이 풀어졌다. 늘 무심하던 얼굴이 꽤 자상해 보일 정도였다. 아랑은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냈었다.

 

 “끝났어?”

 

  분명 귀에 들린 잠긴 그의 목소리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에 아랑이 답을 못하자 이내 그가 느릿하게 눈을 떠선 그녀를 보았다. 마주친 시선에 두 사람이 아주 잠시 서로를 보았다. 조명조차 키지 않은 어둑한 방안에서도 서로의 눈을 찾을 수 있었다.

 

 “응.”

 

  아랑이 부드럽게 답했다.

 

 “깨우지.”

 “막 그러려던 참이었어.”

 

  새침하게 말하는 그녀에 그가 살풋 웃었다. 아랑은 그 어둠에서도 보인 그의 외보조개가 괜스레 얄미워 일어나려 했다.

 

 “나와.”

 

  그때 도현이 그녀를 잡았다.

 

 “가지마.”

 

  그 한 마디에 왜 울컥하는 걸까. 아랑이 천천히 다시 자세를 낮췄다.

 

 “말 잘 듣네, 신아랑.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네 말이라면 늘 잘 들었다. 걸음을 맞춰보려 다가가면 오지 말라던 눈빛에 슬쩍 뒤로 물러나 줬고, 인사 한 번 건네 보려 다가가면 싫다 외면하는 너에 말없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랑은 늘 그랬다. 여전히 그에게 잡혀있는 손목이 뜨거웠다. 놓치지 않을 것처럼 한 손에 쥐고 단단히, 허나 아프지 않게. 그 손길에 아랑은 싫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많이 미워?”

 “응.”

 

  그녀가 곧바로 답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싫어?”

 

  아랑이 느릿하게 그의 손을 털어냈다.

 

 “친구로서 미운 마음까지만 유지하고 싶었는데 이제 싫어지려해.”

 

  도현이 바닥을 짚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가 아까보다는 곧은 자세로 침대에 기대었다.

 

 “내가 네 마음 몰랐던 건...”

 “몰랐겠지.”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아랑이 말을 끊었다.

 

 “너는 날 싫어했으니까.”

 “그땐 오해였다고 했잖아.”

 “그래, 오해였다고 했지. 그런데 그 오해가 풀렸어도 네가 날 변함없이 그렇게 대한 건 내가 안중에도 없었다는 거야. 그런 너를 알기에 내 마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고. 그런데 그걸 당사자한테 들켰으니... 내 마음이 어떨 거라고 생각하니?”

 

  분명 처음 눈을 마주할 때는 어둑해 빛나는 눈만 보였는데 이제는 서로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아랑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차라리 열아홉 그때 들켰다면 이렇게 쪽팔리진 않았을 건데.”

 “내가...”

 

  헛웃음을 짓던 아랑이 그의 목소리에 귀가 움찔했다.

 

 “내가 널 찾아왔어.”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왜 찾았냐면... 네가 계속 생각이 나. 네 미소가 눈앞에 아른 거리고, 시를 읊어주던 네 목소리가 계속 귀가에 맴돌아. 도저히 일에 손이 안 잡혀. 너를 울린 내가 싫고, 네 마음을 몰랐던 내가... 뒤늦게 알아버린 내가 미치도록 후회돼.”

 

  아랑의 눈이 어둠에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아홉 그때의 네 모습이 너무 생생해.”

 

  미세하게 풀어지는 그녀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닥에 콩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너를 피하고 싶었던 건 내가 너무 불완전했기 때문이야. 가족도, 내 마음도, 미래도 모든 것이 앞이 보이지 않는데 바람만 커져가니까. 그런데... 여름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누워 있으면 너희 가족의 웃음소리가 그대로 들렸어. 우리 가족은 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는데 말이야. 그런 웃음이 끊이질 않는 가정에서 부모에게 사랑받는 네가, 너무 부러웠지. 또 인상이 사나워서 그런 건지 사람들은 내게 잘 못 다가와. 그런데 네 주위엔 언제나 애들이 끓어 넘쳤어. 널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너. 너는 날 싫어했잖아. 아랑이 마주친 시선으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으며, 이미 모든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인 네가. 나와는 달리 완벽한 네가 부러웠어. 그런 네가 날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너는 알까? 도현이 천천히 팔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내가 잘못했어. 아랑아.”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아보았지만 터진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도현이 그런 아랑의 손을 잡고 제 품으로 이끌었다. 작은 몸이 그의 다리 위로 끌려가 품에 얼굴을 묻었다. 한참을 그의 품에서 울던 아랑의 울음이 그쳐가자 도현이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울음에 젖은 아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몰랐어. 네가 어떤 마음인지. 남들이 보기에 내가 어떤지. 나라고 뭐, 완벽한 줄 알아? 나도 힘들었어. 또래 친구들이 하는 고민 똑같이 했고 힘들었다고. 얼마나 막막했는데... 다 막막해도 하나만 바랬다고.”

 “내가 뭐라고.”

 “그러니까, 네가 뭔데.”

 

  아랑이 고개를 들고 그를 새침하게 노려보았다. 도현이 다시 아랑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살풋 미소를 보였다. 열아홉의 어느 봄 날, 밤새 방 아래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잠 못 이룬 채 지새운 바람에 점심시간을 틈 타 눈을 붙였었다. 그 꿈이 너무 달콤해서 언제 깰까 두려워 슬쩍 떴던 시야에 네가 있었다. 바로 앞에서 시를 지으며 이따금 창밖도 내다보고, 미소도 짓던 네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더럽게 예쁘네.”

 “장난할 기분 아니야.”

 “진심이야.”

 

  언젠가 상상했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보고 찌푸리지 않을 때는 어떨지 제 눈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맞춰줄 때는 어떨지, 감히 그의 얼굴을 가지고 그려볼 수조차 없어서 아랑은 이 순간이 혼란스러웠다.

 

 “왜 나를 그렇게 봐?”

 “어떻게.”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랑은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사위가 어두워 어느새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렇게 보이니까.”

 “말도 안돼.”

 “왜, 말이 안돼.”

 

  도현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가 그녀의 머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엄지로 볼을 쓸었다. 제 진심이 누구의 말처럼 시간에 쫓겨 내린 답이라고 생각할까. 그 생각이 두려워졌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다 멈추었다. 서로가 너무나 가까워 내뱉어지는 숨결까지 전해지는 거리, 그가 말했다.

 

 “확인해보자.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아랑의 목을 감싼 그의 손이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왔다. 맞닿은 입술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에 느껴지는 촉감까지 생생할 정도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니라. 애석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는 진심이었다. 그때 힘없이 그에게 내주었던 입술이 그에 의해 천천히 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가 그녀의 입술을 가르고 깊게 파고들었다. 아... 꿈이 아니야.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감겼다. 온 몸이 떨려와 그녀가 급히 그의 어깨를 잡았다. 도현이 간신히 입술을 때며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열기를 품은 그의 숨결이 그녀의 입술에 다시 한 번 그 입맞춤을 갈구하고 있었다.

 

 “난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넌.”

 

  다시 그가 입을 맞춰주기를 바란다면 같은 마음이리라. 아랑이 서둘러 답했다.

 

 “나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왜 말이 되는 것 같지...?”

 

  뒤에 붙은 물음표에 도현이 귀여워 핏 웃었다. 아랑은 여전히 심각했다. 맞닿았던 이마가 떨어지고 그가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 아랑이 그 시선에 부끄러운지 눈을 내렸다.

 

 “신아랑.”

 “응?”

 “나봐.”

 

  그의 말에 아랑이 느릿하게 시간과 싸우며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다시금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볼을 감쌌다.

 

 “사랑해.”

 

  그의 입에서 기대도 하지 못한, 꿈조차 꾸지 못한 말이 나오자 아랑은 다시 울컥했다.

 

 “나쁜놈.”

 “때려. 맞을 짓 많이 했으니까.”

 

  도현이 그녀의 볼을 감쌌던 손으로 제 어깨를 쥐고 있던 그녀의 여린 팔을 들었다. 그녀가 새침하게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네가 우니까 미치겠더라. 다시 네가 웃는 걸 보고 싶었어.”

 

  마주했던 그 아픈 눈길을 늘 내가 너에게 주었다는 걸 알아서 애원할 자격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미치게 그리울 때는 눈을 감고 그녀를 그려보아야 했다.

 

 “어떻게 한 번을 안 웃어줘?”

 “미우니까!”

 

  그녀의 작은 주먹이 그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그런데도 도현은 가만히 아랑을 바라보았다. 이 예쁜 사람을 왜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가 손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도톰한 입술이 톡 스쳤을 때 그가 말했다.

 

 “아까 되는 것 같다고 했지?”

 “응?”

 “이번엔 네가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네.”

 

  뭐냐 묻고 싶었던 그녀의 입술은 언제 다가와선 간질이는 그의 숨결에 멎었다. 숨결이 느껴지는 사이에서 마주친 두 시선이 서로를 애타게 보고 있었다. 다물려 있던 아랑이 작게 입을 벌리고 숨을 내뱉었을 때 순간 그의 눈이 흔들렸다.

 

 “준비됐어.”

 

  그녀가 말했다. 네 마음을 놓치지 않고 확인 할 준비. 난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맞물렸다. 틈 없이 맞물린 입술이 더욱 깊이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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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chapter 5 2019 / 10 / 10 300 0 2722   
26 - chapter 5 2019 / 10 / 9 303 0 4550   
25 - chapter 4 2019 / 10 / 7 290 0 3756   
24 - chapter 4 2019 / 10 / 4 296 0 5796   
23 - chapter 3 2019 / 10 / 3 291 0 6516   
22 - chapter 3 2019 / 10 / 2 272 0 5890   
21 - chapter 2 2019 / 9 / 30 289 0 4454   
20 - chapter 2 2019 / 9 / 28 297 0 5982   
19 2. 과거의 우리 - chapter 1 2019 / 9 / 27 286 0 7827   
18 - chapter 10 2019 / 9 / 26 274 0 5189   
17 - chapter 9 2019 / 9 / 25 313 0 4752   
16 - chapter 9 2019 / 9 / 24 296 0 5182   
15 -chapter 8 2019 / 9 / 24 290 0 2821   
14 - chapter 8 2019 / 9 / 23 286 0 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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