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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데이드림
작가 : 마침표
작품등록일 : 2019.10.20

13번 도시의 보안대 소속 3팀장 로건
불미스러운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데

 
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성일 : 19-11-06 17:51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8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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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로건은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있었다.

 

 집 안에는 나긋한 온기와 부드러운 안온함이 가득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걸 알 수 있었다. 이곳에만 있으면 자신을 해칠 것은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여유롭고 나른한 기분에 취해 로건은 잠든 듯, 깨어있는 듯 앉아 있었다. 가볍게 흔들거리는 안락의자에 파묻힌 채 평온함을 만끽했다.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로건은 문득 밖을 내다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틀에 팔을 기댄채 가만히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 밖으로 깨끗한 하늘과 넓게 펼쳐진 숲이 내다보였다. 숲은 집 바로 근처까지 수목을 드리우고 있었고 하늘은 어디까지나 푸르렀다.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었다. 스모그 하나 없이 청명한 날씨였다.

 

 스모그?

 

 로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스모그가 뭐였더라. 머릿속을 더듬어 보았지만 명확하게 기억나는게 없었다. 점점 잊혀져가는 꿈처럼,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떠오를듯 말듯 아른거릴 뿐이었다.

 

 아무렴 어떠랴. 중요한 것이 아니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겠지.

 

 지금 로건에게 있어 중요한 건 없었다. 아무것도.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그저 이 집에만 있으면 된다. 평온함과 안온함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때, 창문 근처로 기운 나뭇가지 위로 조그만 새 몇 마리가 내려앉았다. 그 새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재재거렸다. 마치 사람 목소리처럼 들렸다.

 

 [… 팀장님은 무사…]

 [… 소피아 씨 때와 같은… 깨어날지는 미지수…]

 

 그 때 새 한 마리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새는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이더니 그를 향해 작은 부리를 짤깍대며 재잘댔다.

 

 [… 팀장님… 정신… 팀장님…]

 

 로건은 마치 벌에 쏘이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하면서 창틀에서 팔을 뗐다.

 

 그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쿡 찔러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팀장이라니. 그를 말하는 건가?

 

 로건은 창문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새들은 다시 포르르 날아가더니 이내 숲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로건은 창문을 닫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로건은 혼란에 빠졌다. 새들이 재잘대던 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 놓은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저 아주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안쪽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빠져있던 로건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마치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문고리 바로 위까지 간 손이 멈칫했다.

 

 이 문을 열어야 할까? 로건은 갈등에 빠졌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직감이 그를 떠밀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런 행동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똑똑똑. 다시 한 번 노크소리가 들렸다. 더욱 분명하고 선명해진 소리가.

 

 '굳이 문을 열 필요 없어.'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냥 무시해버려.'

 

 그 말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천천히 문에서 물러서는데 다시 한 번 더 노크소리가 울렸다. 로건은 멈칫했다. 그것은 이제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신경 쓰지 마. 그냥 돌아가서 쉬라고.'

 

 하지만 계속 갈등하면서도 어쩐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자가 대체 누구인지. 왜 그를 계속 찾는 것인지.

 

 로건은 결국 손을 뻗어서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나무로 만든 문은 미끄러지듯 바깥으로 열렸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새까만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았던 청명한 하늘과 숲, 맑은 날씨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이나 하늘이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끝없는 암흑뿐이었다.

 

 한 걸음 내디디면 그대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문 모양으로 그려진 빛.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그의 그림자. 로건은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떠올렸다.

 

 "제 13도시 보안대 3팀 팀장, 로건."

 

 그는 중얼거렸다. 기억들이 마구 폭발하면서 연쇄 작용을 일으키듯 되살아났다.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릴 정도였다. 그는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왜 가는 거지?'

 

 로건이 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딛자, 누군가가 물었다. 문을 열지 말라고 충고했던 그 목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물론이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왜 나가려는 거지? 봐봐,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

 

 목소리는 계속 말했다.

 

 '어둠뿐이잖아. 그곳은 공허만 가득할 뿐이야. 갈 이유가 하등 없잖아. 뒤를 돌아봐. 빛은 여기 있어. 뭐 때문에 따뜻하고 안전한 곳을 버리고 그 쪽으로 가려는 거야?'

 

 마음이 혹 했다. 목소리의 말이 맞았다. 굳이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로건은 문을 닫지는 않았다.

 

 "여긴 현실이 아니야."

 

 로건은 자신의 입이 저절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이런 집에서 산 적이 없어. 저런 숲이랑 하늘도 본 적이 없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목소리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현실이 아니면 뭐 어떤데? 현실에는 고통만 가득한 게 사실이잖아. 여기엔 그런 게 없다고. 그냥 복잡한 생각은 관두고 머물면 될 것을. 현실은 그냥 현실답게 돌아가게 놔두면 되는 거야.'

 

 로건은 목소리가 중얼거리는 말들을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너무나 매혹적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그 말을 듣고 있다가는 정말로 이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로건은 대꾸하지 않은 채, 한 걸음 내딛었다.

 

 '정말 웃기는군.'

 

 목소리가 비웃었다.

 

 '그래, 어디 한 번 가 봐. 네가 굳이 어둠 속에서 고꾸라지고 찌그러진다는데 누가 말리겠나. 하지만 두고 봐. 넌 돌아오게 될 거야.'

 

 목소리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로건은 눈 앞에 펼쳐진 어둠을 쳐다보고 다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목소리의 말이 맞았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로건은 고개를 가로젓고 심호흡을 했다. 어둠 속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은 것처럼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온 몸을 파고들었다. 바로 뒤돌아 집 안으로 뛰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로건은 오기로 계속 어둠 속을 걸어 나갔다. 이제 문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걸었다. 잠시 멈춰 설 때도 있었지만 걸었다. 이유도 무엇도 알지 못한 채로, 빛 한 점 없는 어둠을 끝없이 걸었다.

 

 *

 

 로건은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목과 입 안, 코, 얼굴 전체가 활활 타는 석탄이라도 집어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몸은 달아오른 인두로 지진 것처럼 따갑고 쓰리고 아팠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신음이라도 흘리고 싶었지만 목 주변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느릿느릿 자신의 몸뚱이를 감각했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치 남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모든 감각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저 고통만이 선명할 뿐이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작은 동작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의 시도 끝에 로건은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시야는 스모그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눈을 계속 깜빡여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고독과 인고의 시간이었다. 시간 감각이 사라져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고작 몇 분이 흐른 것 같기도 했고, 몇 시간, 혹은 며칠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몇 년이 흘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야가 돌아왔다. 그는 불빛이 옅게 깔린 한 병실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주변에 다른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에는 수액 주사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색깔의 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선 끝에 놓인 복잡한 기계가 단조롭게 삑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입과 코에는 호흡기가 씌워져 있었다.

 

 정신이 깨어날수록 그는 자신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병실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웬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오다가 로건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가 후다닥 침상 옆으로 다가왔다.

 

 "로건 씨, 깨어나셨군요! 제 말이 들리십니까?"

 

 아돌프 법의관이 물었다. 로건은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법의관 겸 의사답게 그의 상태를 재빠르게 알아챈 아돌프가 이어 말했다.

 

 "들린다면 눈 한 번만 깜빡여 주십시오."

 

 로건은 힘겹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몸 상태는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더 나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뒤로, 그가 말을 다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며칠이나 더 걸렸다.

 

 로건은 여전히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는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곤 했고, 간혹가다 발작까지 일어났다. 게다가 이상한 환각 같은 게 현실에 겹쳐서 어른거리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마치 냉동고 안에 벌거벗고 들어간 것처럼 맹렬한 추위를 느끼며 덜덜 떨곤 했다.

 

 "데이드림의 심각한 부작용 때문입니다."

 

 로건이 더듬더듬 자신의 상태를 얘기하자 아돌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는 로건의 바이탈을 체크하기 위해 매일 병실을 방문했다.

 

 "로건 씨는 강제적으로 고농도의 데이드림을 주입 당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스모그의 독성에 중독되기까지 했죠. 중추 신경이 철저하게 망가진 상태입니다."

 

 아돌프는 로건이 정신을 잃고 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주었다. 그가 비구역의 한 폐건물에서 발견되었고 급히 병원으로 실려 와서 일주일 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로건은 힘겹게 오늘의 날짜를 물었고 아돌프는 12월 9일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정말 살아난 게 기적입니다. 잘못했다가는 소피아 씨처럼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딱히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건은 조금씩 회복해갔다. 여전히 호흡기는 뗄 수도 없었고 몸에 갖가지 케이블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있었지만 이제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해졌다.

 

 그 때 즈음,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제일 먼저 그를 찾아온 사람은 월터와 로웬이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로웬이 침상 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로건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준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네."

 

 그의 목소리는 뱀이 쉭쉭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아직도 말을 하는데 힘이 부쳤다.

 

 "전… 전… 뭔가 잘못되는 줄 알고……."

 

 로웬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던 월터가 대신 그녀의 말을 끝내주었다.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고맙네."

 

 로건이 말했다.

 

 "그것보다 보안대 근황이나 좀 얘기해주겠나?"

 

 월터는 천천히 보고하듯 얘기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여전히 비구역을 수색 중이고 크게 발견한 것은 없으며 월터가 로건 대신 임시로 3팀 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 감사관이 오지 않았다는 것도.

 

 "그것보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로건은 자신이 감시, 미행을 하다가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는 내용을 짤막하게 전달했다. 최대한 간추려서 얘기했건만, 말을 마치자 숨이 찼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듯한 월터가 나무라는 어조로 말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발견한 건가?"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

 "예, 한 폐건물에 누가 갇혀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때 야간 팀이 출동해서 팀장님을 찾았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했죠."

 "그 신고는……."

 

 그 때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는 중환자였고 하루에 허용 가능한 면회객의 수와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월터는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오늘 들은 일은 위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쉬고 계세요."

 

 로웬이 걱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 뒤로도 면회객들이 찾아왔다. 3팀 팀원들, 그리고 1팀 팀장인 테오도르와 2팀 팀장인 레이첼도 있었다. 레이첼은 로건을 폐건물에서 꺼낸 장본인으로서 면회 시간 대부분을 잔소리를 퍼붓는데 사용했다.

 

 보안대원들은 업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그리 많이 내진 못했다. 쾌차를 비는 선물들이 병실 한쪽 구석에 그득하게 쌓여갔다.

 

 로건이 식사 시간마다 호흡기를 떼고 죽을 먹을 수 있게 될 즈음, 예상치 못한 면회객이 찾아왔다. 라울 대장과 루시아 부관이 나란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몸은 좀 괜찮나?"

 

 라울이 면회객 용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진작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하군."

 

 "괜찮습니다. 많이 나아지고 있고요.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면 무사히 회복하는데 온 신경을 쏟도록 하게. 어디, 의사양반은 완치가 가능하다고 하던가?"

 

 로건은 말없이 웃었다. 표정은 웃는다기 보다는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서 일그러진 것에 가까웠지만.

 

 그는 한 번도 아돌프에게 묻진 않았지만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매일 바이탈 수치를 체크 받고, 온갖 약을 복용해야 했다. 나아지는 것도 어느 정도가 되자 한계에 부딪혔는지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절하듯 잠들었고 언제나 약 기운에 취해 있었다. 발작도 잦게 일어났다.

 

 이 상태라면 보안대 복귀는커녕,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조차 힘들 테지.

 

 "그렇군."

 

 로건의 표정을 알아 본 라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무심결에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대장님, 여긴 중환자실이에요."

 

 루시아 부관이 조용히 지적했다. 라울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듯, 퍼뜩하는 눈치더니 다시 담배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이거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로건은 그리 대답하면서 대장과 부관의 차림새를 살폈다.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방탄복에 헬멧, 그리고 콤팩트하지만 성능이 뛰어난 군용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허리에는 수 개의 탄창이 매달려 있었다. 완전무장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은 로건이 물었다.

 

 "있지. 오늘 저녁 대규모 작전이 있을 걸세."

 

 라울은 여느 때처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나 들은 로건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들은 얘기 때문인지 속이 매스꺼웠다.

 

 "무슨 작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진압 작전이지."

 

 라울이 말했다.

 

 "며칠 전, 자네가 갇혀 있던 폐건물 근처에서 실탄이 보관되어 있던 창고가 발견되었다네. 가장 최근까지도 이용한 흔적이 있었어. 바로 옆에는 데이드림을 보관하던 창고도 발견했고. 놈들은 치밀하게도 옛날 벙커를 개조해서 지하에 그 시설을 만들었네. 그래서 그 동안 수색을 했는데도 눈에 띄지 않았던 거지."

 

 "아무튼 우리는 그 일대를 수색했고 거기서 몇 놈을 잡아낼 수 있었지. 놈들을 심문한 결과 운 좋게 어떤 조직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이끌어냈네. 오늘 저녁 그 조직의 아지트를 기습해서 소탕 및 진압 작전을 벌일 거고. 어쨌든 자네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로건은 그 말을 다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 몇 달 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것에 비해 갑자기 일이 일사천리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정…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을 아주 낮게 친다네."

 

 라울이 말했다.

 

 "보안대가 큰 타격을 입으면 그 때야말로 군이 개입할 걸세. 군은 보안대보다 훨씬 무자비하게 적들을 소탕할 수 있는 조직이고. 내가 적이라면 고양이를 죽이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 같네만."

 

 보안대장은 시계를 힐끔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작전 시간도 다 되어가니 우린 이만 가보겠네. 몸 조리 잘 하게."

 "잠시만요."

 

 로건이 그를 불러 세웠다.

 

 "제 얘기는 혹시 월터를 통해 들으셨습니까?"

 "자네가 루시드 드림 대표의 비서를 미행한 것 말인가? 들었지."

 "루시드 드림이 이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결과만 말하자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네. 오늘 작전이 성공하면 대충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겠지."

 

 라울은 로건의 표정을 한 번 살피더니 덧붙였다.

 

 "확실한 건, 그 단체도 수사망 범위 안에 있다는 거지. 이 일이 끝나면 어떻게든 그 쪽에 힘을 싣겠다고 약속하겠네."

 

 두 사람이 나간 뒤, 로건은 생각에 잠긴 채 누워있었다. 시간이 되서 또 수 십 가지의 약을 복용하고 산소 호흡기를 갈아 끼우고 새 수액을 맞고, 간호사가 취침을 위해 병실의 불을 끄고 나갈 때까지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로건은 약 기운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병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스모그에 의해 흐릿한 도시의 불빛 저 너머. 비구역 어딘가에서 그의 동료들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을 터였다. 평소 같았으면 걱정되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그가 보았던, 꿈인지 환각인지 모를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조그만 집 안에서 평화를 만끽하고 있던 그 장면을. 그것은 흐릿해지기는커녕, 머릿속에서 선명해져만 갔다. 마치 그곳이 진짜 현실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집 안에서 느꼈던 온기와 평온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에 비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춥고 고통스러웠다. 약에 취해있지 않은 적이 없었고 호흡기를 떼면 숨도 쉬기 힘들었다. 신경이 뒤죽박죽 망가져 감각은 무뎌졌고 몸을 움직이는 게 고된 노동이 되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비웃는 듯 했다.

 

 '이게 네가 원한 현실인가?'

 

 로건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두웠다. 주변은 조용했다. 바이탈 수치를 체크하는 기계가 삑삑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 무기질적으로 들렸다.

 

 병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웬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로건과 그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병실의 불을 켜지 않았다. 로건의 몸에 연결된 케이블들을 힐끔 바라보더니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휴버트."

 "…… 팀장님."

 

 휴버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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