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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의별
작가 : WCEA
작품등록일 : 2019.10.9

5년 전, 연예계에서 추락하게 된 배우 박시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인기배우 유진하.
서로를 따뜻한 봄날, 드라마 <별의별>로 다시 만나다.

 
마음을 안고서
작성일 : 19-11-06 03:20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1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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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숲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 지긋지긋했던 피톤치드 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와, 서울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시은이 넌 집으로 갈 거지?”

 “응. 집 가서 좀 쉬어야지. 피곤해.”

 

 “근데 시은이 너, 엊그제 왜 잠 안 잤어?”

 “별 보느라.”

 “아닌데. 누구랑 얘기했는데. 내가 봤는데.”

 “아- 그거 진하야. 걔도 잠이 안 온다던데. 그래서 같이 얘기하고, 감자 구워 먹고..”

 “뭐? 난 왜 안 깨웠어?”

 “깨워야 해?”

 “너희끼리만 먹냐? 진짜 완전 치사하다. 유진하랑 또 언제 친해지셨대. 둘이서만 홀랑 먹고.”

 “아, 그리고 진하가, 그... 7년 전 팬 사인회에서 만났던 고등학생 팬이었어. 걔가 그러던데, 내 데뷔 팬이라고.”

 “에? 진짜로?”

 “응. 그게 아니고서야 자기가 팬 사인회에 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날 일을 똑같이 말하겠어.”

 “진짜 대박이다.. 그러면…. 그,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던 사람도 모두 너란 소리야?”

 “…그렇다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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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왔다, 시은아 내려.”

 “스케줄 있으면 미리 전화든, 문자든 줘. 바로 확인하고 준비할 테니까.”

 “알았어. 푹 쉬고.”

 

 

 오빠에게 손을 두어 번 흔들어주고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며칠 비어있었다고 현관문 손잡이엔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다.

 

 “아- 피곤해..”

 

 며칠씩 혹사한 몸을 씻겨줄 여유는 없었다. 현관에 발을 딛자마자 침실을 향해 좀비 걸음으로 움직였으니.

 

 시은은 침대에 벌러덩 누운 채로 주머니에 있던 사과 맛 막대사탕을 꺼내 포장을 뜯고는 입에 문 채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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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시간쯤 잤을까. 집에 도착했을 땐 환하던 밖이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너무 오래 잔 터라, 그사이 연락 온 것이 있나 확인하려 휴대폰을 켜니, 민준 오빠가 아닌 다른 두 사람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누구지……. 모르는 사람이 괜히 욕 써놓은 건 아니겠지?”

 

 첫 번째 문자메시지를 열어보니, 진하였다. 다정한 애라서 저도 분명히 힘들고 피곤할 텐데, 내게 푹 쉬라는 안부 문자를 보내놓은 거였다.

 읽기만 할 수 없어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나머지 하나는... 저장 안 되어있는 번혼데.”

 

 남은 하나의 문자창이 뜨자마자, 난 문자창을 열어본 걸 후회했다.

 

 “..이제껏 연락 않던 인간이, 왜…….”

 

 끔찍했던 기억을 털어버리기 위해 깔끔히 삭제 버튼을 누르고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당연히 저를 사랑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억을, 굳이 되새기고 싶은 아무도 없을 거다.

 

 .

 .

 .

 

 Rrrrr- Rrrrr-

 

 요란한 소리에 휴대폰을 들어보니, 알람이 아니라 민준 오빠한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시은아 미안. 내가 오늘 ‘별의별’ 촬영 있는 걸 깜빡하고 너한테 어제 말을 못 해줬어. 열한 시쯤 데리러 갈 테니까 얼른 준비하고 있어!”

 오빠는 늘 스케줄을 깜빡하곤 한다.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에 한숨이 나왔다.

 

 “오빠, 미쳤어?”

 “미안.. 이번엔 내가 진짜 잘못했다는 거 알아. 그니까 화내지 말고 얼른 타. 더 늦으면 샵도 못 들러.”

 “오늘 들은 소식 중에 제일 다행이네. 정말.”

 “가면서 대본이라도 보고 있을래? 두 시까지 방송국으로 오면 된다고 하셨거든.”

 “오빠, 가기 전에 얼음 한 봉지만 사 가자.”

 “왜?”

 “나 오늘 따귀 맞는 날이야.”

 

 민준은 놀란 입을 급히 다물고는 얌전히 차를 몰았다.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얼음’ 두 글자를 되뇌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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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늘 그렇듯,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면 바쁘게 지나가며 눈인사 정도 해주는 곳이다. 방송국엔 바쁜 사람들이 많아서 복작복작한 분위기가 별로다.

 

 세트장에 들어서니 한참 촬영 중이었다.

 

 “컷! 다시 갈게요!”

 

 웬일로 감독님이 짜증스럽게 소리치셨다.

 슬레이트를 보니 벌써 열 번째 다시 찍는 중이었으니, 그럴 만도.

 멀찍이서 보니, 웬 여배우가 울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감독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죠?”

 “언제 왔대.”

 “마실래요? 방금 사 왔는데.”

 “잘 마실게. 근데 저분은 누구야?”

 “카메오로 몇 화 정도 출연한대요. 신인 같던데. 통 못 보던 얼굴이라.”

 “그래?”

 

 그 새 또 NG를 냈는지 감독님 얼굴이 아까보다 붉어지셨다.

 

 “우리 오늘 조심해야겠어요.”

 “감독님 저렇게 화나신 거 처음 봐. 근데 화는 안 내시네.”

 “매니저 형 말로는 대형 기획사 신인이라나 봐요. 회사가 큰 데라 그런가, 카메오 출연인데 개인 대기실 줬다는데요?”

 “대형이라고 해도 너희 회사만 하겠니. 네가 할 말은 아니다.”

 “그건 그렇지만요. 누난 오늘 뭐 찍어요?”

 “나 오늘 뺨 맞으러 왔어.”

 “어떡해요. 누구랑 찍는데요?”

 “아마도 저기 저분이랑 찍을 거 같은데 어쩌지.”

 “..수고하세요. 이따 다 찍으면 얼음찜질이라도 해야겠어요.”

 “그러게.”

 

 진하는 곧 촬영하는 장면이 있어 감독님에게 불려 나갔고, 나는 세트장 구석탱이에서 대본을 폈다.

 으슬으슬 추운 게 꼭, 감기가 올 것만 같았다.

 

 “아, 짜증나...!”

 

 아까 그 배우가 갑자기 내 오른편 의자에 앉았다.

 

 “아니, 김 감독은 왜 저렇게 짜증을 내? 원래 저러나?”

 

 안타깝게도 그게 참아주시는 건데. 하하. 속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 진하야! 아까 나 너 찾아다녔,”

 

 “누나 뭐해요?”

 “......”

 

 뭐하긴. 대본 읽잖아.

 이상하게 내가 선배인데도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됐다.

 

 ‘..불편해요?’

 

 하도 내가 이상했나 보다. 내게 입 모양으로 물었다.

 나는 찌질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진하는 쪼그려 앉던 무릎을 펴고, 별안간 어디 좀 갔다 오겠다며 걸어 나갔다. 그러자 이름 모를 여배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뒤를 졸졸 쫓는다. 누가 봐도 유진하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제 안 불편하죠? _진하’

 

 안타깝게도 유진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

 .

 .

 

 “나 왔어요. 아직도 누나 안 찍었어요?”

 “감독님이 대기하고 있으라 하셔서.”

 “아, 잘됐네. 이거 좀 두르고 있어요.”

 “웬 담요? 어디서 났어?”

 “우리 차에서요. 누나 지금 춥잖아요?”

 “눈치 되게 빠르네. 고마워. 난 으슬으슬 자꾸 춥다. 넌 안 그래?”

 “아마 숲에서 찬바람 많이 쐐서 그런 거 같은데... 몸 관리 잘해요.”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거든?”

 “아닌 거 같은데-”

 

 감독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렇게 유치한 얘기나 주고받았다.

 예전에 현장에서 쉴 때 항상 혼자였는데. 둘도 나름 괜찮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시은이에요. 올해 스물여덟이고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마윤미. 동갑이에요.”

 “아아, 마윤미구나. 이름 예뻐요.”

 “......”

 

 움찔했다. 방금 표정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표정이었어.

 

 “리허설 두 번 하고 갈게요-”

 “네- 감독님!”

 

 아닌가. 싹싹하게 대답하는 거 보면.

 

 “리허설에서는 합만 맞춰보고 때리는 건 진짜로 찍을 때만 하자고-”

 

 “윤리나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왜 그래 유진아…….”

 “내가 서다훈, 아니 지다훈 좋아한다고 했잖아.”

 

 긴장했는지 대사를 실수해서 괜찮다고 계속하라고 해주었다.

 내가 신인이었을 때 다그침을 받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까.

 이분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그거랑 네가 화난 게 관련 있어?”

 “네가 내 앞에서는 지다훈한테 관심 없는 척, 하다가 내 뒤에서는 둘이서 깨 볶고 있던데? 설명 좀 해봐, 리나야.”

 “그런 적 없어. 오히려 너 때문에 그 선배가 말 거는데도 일부러 피한 적도 있는데.. 너야말로 왜 그래.”

 “그럼 다훈 오빠가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는데. 왜 내 고백이 그 사람한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쪼가리처럼 됐냐고.”

 “고백.. 했었어?”

 “그래, 오빠가 어떻게 거절했는지 알아?”

 “뭐라고….”

 “오빠가, 오빠가...”

 

 큰일이다. 감독님 바로 앞에서 대사를 까먹은 모양이었다. 입 모양으로 다음 대사를 알려주었다.

 

 ‘오빠가 날 하나도 안 좋아한대.’

 “오..빠가 날 하나도 안 좋아한대.”

 

 ‘그래서 내가 매달렸거든?’

 “그래서 내가, 매달렸거든?”

 

 ‘한 번만 받아주면 안 되냐고.’

 “한 번만 받아주면 안 되냐구. 근데 그러니까 한다는 말이, 널 좋아한다더라.”

 

 “그, 그건,”

 “오빠 혼자 널 좋아하는 거라는 소리 하지 마. 네가 매번 피하고 단둘이도 안 만나고, 접점이 없는데, 오빠 혼자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유진아.. 나 진짜 아니야. 우리, 친구잖아.”

 

 유진이 리나의 뺨을 때릴 차례였다.

 

 “아!”

 “어.. 맞다, 리허설은 원래 안 때리는 거였죠...”

 “...아, 괜찮아요.”

 

 “아이고, 시은 씨 괜찮아? 윤미 씨 기억 잘 했어야지!”

 “저 괜찮아요, 감독님. 그렇게 세게 맞진 않아서요. 그냥 이어서 해요.”

 

 “여기서부턴 진하 씨가 있어야 되는데.. 아, 저기 있네. 진하 씨, 빨리 와-”

 “이제 저 나올 차례에요?”

 “응. 여기서 유진이기 다른 쪽 뺨 때리려고 할 때 와서 딱, 잡아주는 거지. 이해돼?”

 “아- 네, 알겠어요.”

 “오케이. 이어서 다시 갈게요.”

 

 이번엔 윤미 씨가 실수하지 않고 때리는 시늉만 했다.

 

 “그만해.”

 “..다훈 오빠, 그게.. 사정이 있어서,”

 “얘 잘못한 거 없어. 싫다는 애를 내가 졸졸 쫓아다녔고, 나 혼자 좋아했어. 얜 나랑 말도 안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피해 다녔는데, 넌 그런 애 뺨을 왜 때려.”

 

 “좋아, 이러고 끝나는 거야. 윤미 씨도 알겠지? 잘 기억해놔. 보니까 윤미 씨는 대사를 자꾸 잊어버리던데, 지금 얼른 다시 봐, 5분 정도 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동안 휴식-”

 

 “누나, 괜찮아요?”

 “아아, 좀 부었나?”

 “..많이는 아닌데 빨개요...”

 “왜 네가 울상이야. 괜찮아, 얼음팩 좀 하고 있으면 되지.”

 

 내 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질 때쯤, 두 번째 리허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리허설이 끝나자 곧바로 우리 셋은 본격적인 촬영으로 들어갔다.

 

 “오빠 혼자 널 좋아하는 거라는 소리하지 마. 네가 매번 피하고, 단둘이도 안 만나고, 접점이 없는데, 오빠 혼자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유진아.. 나 진짜 아니야. 우리, 친구잖아.”

 

 손에 맞춰서 고개를 천천히 돌렸는데도 무척이나 아팠다. 마치 고의로 온몸의 힘을 실어서 때린 것처럼. 너무 아파서 말 한마디 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했다.

 절대 다시 맞고 싶지 않은 강도여서.

 “그만해.”

 “..다훈 오빠, 아.. 죄송합니다.”

 

 “아휴, 그걸 왜 끊어, 그 정도 대사는 그냥 넘기고 가도 되는데.”

 “죄, 죄송해요. 실수였어요.”

 

 윤미 씨는 아쉬워하는 감독님 앞에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

 “진짜 실수일까요. 난 아닌 거 같은데.”

 “..민준오빠. 나, 얼음팩 좀.”

 

 “어, 어... 여기. 괜찮아? 쟨 뭘 저렇게 세게 치냐.”

 “..그러게.”

 

 윤미 씨의 실수는 첫 번째에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감독님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찍자고 말씀하셨다.

 

 “저기, 윤미 씨. 얘기 좀 해요.”

 “아, 네.”

 

 나는 실수를 빙자한 연속적인 NG에 대해 그녀의 입장을 듣고자,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왜 저한텐 사과 안 해요?”

 “네?”

 “맞아서 볼이 부은 건 난데, 왜 감독님한테만 꾸벅거리냐고요.”

 “아, 실수였잖아요.”

 

 실수. 끝까지 미안하다는 소리는 내뱉지 않았다. 사과 한마디만 했으면 적어도 그냥 넘어갔을 텐데.

 

 “실수, 아니었잖아요. 연기로 때리는데 누가 온 힘을 다해서 때려요.”

 “..맞아, 실수 아니에요.”

 

 내가 거짓말을 꼬집자, 뻔뻔한 낯빛을 보였다. 마치 못할 일을 하기라도 했냐는 것처럼.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내가 윤미 씨한테 뭘 잘못했어요? 아니, 그 이전에 우리 오늘 처음 만나지 않았어요?”

 “5년 전에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네가 다시 이 바닥에 나오는 게 싫어서.”

 “네?”

 “너 때문에 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아!”

 “저기요 마윤미 씨,”

 “내 진짜 이름, 김유민.”

 “뭐…….”

 

 심장이 바닥으로 주저앉는 것 같았다. 5년 전 그때까지는 내게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유민.

 그때와는 달라진 얼굴임에도, 마주 보니 악몽 같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기억나나 보네. 한때 친구랍시고.”

 “네가..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

 “넌 어떻게, 5년 전이나 변한 게 없니. 멍청하게.”

 “네가,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여긴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야?”

 “너한테, 경고하러 온 거야.”

 “......”

 “연기, 다시 하려던 거면 그만둬. 더 다치고 싶지 않으면.”

 “왜... 내가 다 떠벌리고 다닐까 봐? 그래서 그때 일을 내게 덮어씌운 사람이 너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될까 봐 그러니?”

 “그 입 닥쳐….”

 “그래서 예명도, 얼굴도 고친 거구나. 그때 일을 들킬까 봐 신인인 척하는 거고. 좋겠다, 넌. 내 이름 하나 팔고서 좋은 소속사도 들어가고, 떵떵거리며 잘 살아서. 전혀 그 일하고 관련 없는 사람처럼.”

 “닥치라고 했지!”

 “아...!”

 

 마윤미 아니, 김유민이 손을 뻗어 내 뺨을 올려붙였다.

 

 “..너 진짜 뻔뻔하다. 아무 죄 없는 나한테, 죽은 지희 언니 일을 뒤집어씌우고도 모자라서, 겨우 다시 연기하러 나왔는데 협박이나…,”

 “넌 항상 내 역할을 빼앗았잖아! 그런데 내가 뭔 일을 못 해?”

 “내가 네 역할을 빼앗았다고? 내 탓하지 마. 탓하고 싶은 쪽은 오히려 나니까! 네가 했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오 년을 썩혔어.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 오 년 동안 스스로 갇혀 지냈어.”

 

 헐떡이는 숨을 겨우 고르며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옷 소매로 닦았다.

 

 “…이거, 놔…….”

 

 김유민은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비틀어 조이기 시작했다.

 

 “항상, 네가 문제였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밑바닥까지 간 거야. 다… 너 때문이라고.”

 “놓으… 놓으라고,”

 “너만 없었어도….”

 

 “당장 그 손 안 놔?”

 “유, 유진하… 진하야,”

 “사람 죽이게요? 미쳤어요?! 하도 이상해서 따라와 봤더니…….”

 “오... 오해야!”

 

 “누나 괜찮아요? 누나 목, 목이….”

 “......”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충 고개를 저었다.

 

 “다 봤어요. 시은 누나 목 조르는 것도, 협박하는 것도. 형사 고소할 겁니다, 김유민 씨.”

 “너는, 박시은이 뭐가 잘났다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항상 박시은 편만 들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김유민 앞을 진하가 막아서고 자기 뒤로 나를 숨겼다.

 

 “당신이 일방적으로 폭행한 이 상황에 왜 그 말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데. 뭐, 맞아. 난 박시은 편이야.”

 “......”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무슨 주제로 박시은을 함부로 대해? 나도 함부로 못 하는 사람인데.”

 “네가 무슨 상관,”

 “뭘 모르는 게 있는데,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내가 뭐하러 3사도 아닌데, 그것도 한참 모자라는 출연료를 받으면서까지, 이 드라마에 나와야만 했는지. 전혀 모르시네.”

 “......”

 “모르면, 알려줄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박시은 맞고, 제작 발표회 때 밝혔던, 이 드라마에 출연해야만 했던 유일한 이유도 박시은이야. 나한테는 나보다도 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이 사람한테 그딴 말, 행동, 하지 마.”

 

 결국 김유민은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

 .

 

 “왜... 끼어들어?”

 

 전부 다… 봤다…….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상처를 모두 내보였다.

 

 “응?”

 “..네가 끼어들 일도, 상관할 바도 아니야. 내 개인적인 과거사야. 끼어들지 마.”

 “싫은데.”

 “뭐?”

 “말했잖아요. 나 누나 팬이예요. 세상에 어떤 팬이 자기 스타가 상처받는데, 가만히 구경만 해요.”

 “상처받는 것도 나고, 오년 전 그 사건을 겪은 것도 나야. 그러니까, 참견… 하지 말란 소리야.”

 “…그래도, 고맙다 소리 정도는 들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

 

 상처받은 건지, 진하는 차가운 표정으로 멀어졌다.

 바보같이 밀어냈다. 곪은 상처를 숨기려다, 다른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았다.

 

 .

 .

 .

 

 김유민과 있었던 일 때문에 촬영 스케줄은 취소되었다. 민준 오빠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 휴대폰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나야, 시은아.’

 

 아. 이래서 누군지 확인하고 받았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너 드라마 찍는다고 해서- 바빠서 못 만날까 봐 방송국으로 왔어. 1층 로비에 있으니까… 잠시만 만나줄래.’

 “..저 지하주차장으로 갈 거니까 그리로 오세요.”

 

 “누구야 시은아?”

 “그냥 있어. 오빠 미안한데, 얘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까 그냥 먼저 가.”

 “야, 어떻게 먼저 가. 기다릴 테니까 같이 가. 너 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힘들 텐데.”

 “아냐. 오랜만에 버스 타고 집 갈게. 마스크도 있으니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래 알았어. 조심해서 집 들어가고, 도착하면 꼭 연락해야 해.”

 “...걱정 마.”

 

 오빠는 신신당부하고는 주차장을 나갔다.

 

 .

 .

 .

 

 민준 오빠가 가고 몇 분 있었을까,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

 “왜 왔어요.”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엄마는, 아니 그 여자는 내게 다가오려고 했다.

 

 “다가오지 마요. 그 정도에서 얘기해요.”

 “시은아,”

 “왜요, 그때 받은 돈 다 썼어요?”

 “그게 아니라..”

 “당신이 그거 말고 나 찾아오는 이유가 또 있었어?”

 “...”

 “데뷔 때부터 그랬잖아.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래. 연예인 된 딸이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도 눈 한번 흘낏 해주지도 않았던 사람이, 꼭 돈 떨어지면 엄마 노릇 하려고 하더라. 오늘도 같은 이유야?”

 “시은아, 아니야. 그냥 엄마는 네가 드라마 찍게 된 거 축하도 하고…….”

 “축하도 하고, 그 기념으로 돈도 두둑이 받아가게?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어? 그저 명목상 엄마라는 이유로?”

 “...”

 “억울한 거 있으면 말해 봐요. 내 말이 틀렸어?”

 “...”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왜, 이젠 양심에 찔려서 더는 못하겠어? 그럴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으면 차라리 5년 전에 하지 그랬어요.

 누가 알아요, 그랬으면 지금 내가 돈이라도 통 크게 줬을지.”

 “맞아, 요즘 집에 돈이 궁해. 그래서 왔어. 엄마도 너한테 면목없는 거 알아. 근데 우린 가족이잖아. 너 성인 되기 전까지 키워줬잖아. 그거에 대한 보답도 바라면 안 되는 거니?”

 

 “..키워줬다고? 보답을 바란다고? 그래서 당신은, 가족이라서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연락 한 번을 안 해줬어? 나 그때 고작 스물셋이었어.

 세상 모두가 날 버려도, 그래도 가족은 내 편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내 전화, 문자 모두 안 받았잖아. 그렇게 나 좀 봐달라고, 힘들다고 애원했는데도 남의 일처럼 모른 척했잖아. 근데 내가 그런 가족한테 돈까지 줘야 해?”

 “그때 일은 미안해, 시은아. 하지만..”

 “연락 한 번 하기가 귀찮았으면, 내 집에 한 번 와서 들여다봐 주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내가 걸었던 전화라도 받아줬으면 됐잖아.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지 마.”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니! 그것도 네 엄마한테.”

 

 “당신이야말로 당신 딸한테 왜 그랬어. 내가 매정하다니. 당신이 나한테 했던 행동들이야.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낳아준 정, 키워준 정, 그거 다 합해서 예전에 다 줬잖아. 나도 남은 돈으로 얼마나 버틸지 가늠도 못 할 때였는데, 얼마나 그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면 없는 돈까지 털어서 줬겠냐고.

 그때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해? 다신 만나지 말자고, 엄마가 나한테 늘 무관심했던 것처럼 우리 쭉, 서로에게 무관심하자고. 다신 나 찾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어, 내가. 그리고 그때 엄마, 내가 준 돈 받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갔잖아.”

 “......”

 “나, 줄 돈 없어. 적어도 당신한텐. 그러니까 미련 갖지 말고 가. 오늘처럼 구질구질하게 찾아오지 말고. 난 가족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같잖은 엄마 역할도 하지 말고.”

 “......”

 “다른 식구들한테도 전해. 난 당신들 같은 가족 둔 적 없다고.”

 

 더 말하면 정말 끝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 등을 돌려 걸었다.

 밖으로 나오니 언제부터였는지, 비가 세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잘됐네. 울어도 티 안 나겠다.”

 

 마스크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시린 비의 기운인 건지, 울컥해서 추운 건지. 차가운 빗물이 옷에 스며들었다. 물 때문에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 마치 오늘 내 기분 같아서 눈물이 났다.

 비 내리는 거리에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눈물일지 빗물일지 모를 물들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차라리 몸이 아주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도록.

 

 .

 .

 .

 

 진하는 심란한 마음에 드라이브라도 할까, 하며 차에 키를 꽂았다.

 

 이른 여름 장마인 건지, 세차게도 내리는 비에 와이퍼를 수시로 작동시켜야 했다. 장대비 때문에 모두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데, 혼자만 검은색 후드를 쓰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뭐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가까이 차를 몰아보니, 다름 아닌 시은이었다.

 그녀임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조수석에 뒀던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시은은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젖어서 축 처진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힘이 없어 보였다.

 

 진하는 쓰고 있던 우산을 기울여 시은에게 쏟아지는 비를 가려주었다.

 

 “......”

 “여기서 뭐 해요.”

 

 시은은 언젠가부터 비를 맞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진하였다.

 우산은 나에게로 기울인 채, 저의 머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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