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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40
작성일 : 19-11-05 11:29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2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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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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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폭우 속을 뚫고 류 형사가 돌아갔다. 돌아가는 류 형사의 뒷모습은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우산이 지니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쓰고 있을 뿐이었다. 한 손은 우산을 들었지만 비는 격렬하게 옷을 전부 적셨고 류 형사는 옷이 젖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다. 다른 한손은 청바지주머니를 꼭 잡고 갔다. 마동은 그런 류 형사의 모습이 코너를 돌아 없어지는 순간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류 형사가 돌아가고 모던타임즈에는 마동 혼자만 남았다. 이제 류 형사가 마지막으로 떠났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마동은 밤이 오면 조화와 균형을 바로잡으러 가야한다. 그것이 형태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분명 류 형사는 곧장 병원으로 가는 것이리라. 류 형사가 이 세계를 걸어가는 방식이 조화와 균형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마동은 시야에서 사라진 류 형사를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의식과 무의식이 동일선상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조화롭고 균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인류가 전부 사리지기 전까지 조화와 균형은 들어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균형은 노력여하에 따른 보상보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진화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나 유전자처럼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동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고개를 들어서 보았다.

  카페의 주인이 다가와서 “요 앞전에 멋진 여성분을 두 시간 이상 기다리시게 만든 분이시군요. 그렇게 자연스럽고 세련된 여자 분은 처음 봤습니다.” 상냥한 얼굴로 카페의 주인이 말했다. 아까는 몰랐지만 얼굴의 표정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가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얼굴과 목소리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는개를 말하는 것이구나.

  마동은 동의 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는개를 생각하니 내 안에 남아있는 그녀가 남겨 놓은 미약하고 엷은 마음이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떨렸다. 나는 그 떨림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진정하라고. 될 수 있으면 부드럽고 안정되게 눌렀다. 그녀가 나를 만져준 것처럼 내 가슴 속의 작은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떨림은 점점 미미해져 갔다. 는개는 나를 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그녀가 말을 했다면 그런 것이다. 는개는 바퀴벌레 이야기도 친절하게 해주었다. 바퀴벌레의 이야기는 상당히 의외였다. 인류는 편견과 자기중심적사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속에서 바퀴벌레는 살아남아야 했으니 그 모양새는 더욱 인간들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징그럽고 혐오스러움을 선택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바퀴벌레들뿐만 아니라 거머리도 마찬가지다. 는개 역시 자기중심적인 인간들 속에서 견뎌야만 했다. 우리들은 인류에게 반하는 것은 박멸하려는 습성이 강하다. 설령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다르게 보이면 없애려 든다.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다양한 존재양식은 거부했고 틀에 집어넣으려고만 했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방식이다. 바퀴벌레는 인간의 손이 닿으면 자신의 몸이나 다리를 평소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어째서? 라고 물었을 때, 바퀴벌레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그것을 알아냈다고 했다. 세상에는 바퀴벌레를 연구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고 다양성이다. 는개의 미소가 떠올랐다.

 

  마동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퀴벌레에 대한 기억을 떠 올려보았다. 바퀴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선뜻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흑갈색을 지닌, 그 모습을 편견을 가득안고 바라봐야만 했다. 바퀴벌레하면 징그러운 다리들이 먼저 떠올랐다. 마동이 아주 어린 시절 혹독히 추운겨울에 새벽잠에서 깨어나 소변이 마려워 문을 열고 방을 걸어 나왔다. 눈은 반쯤 감겨있고 어기정 어기정 방에서 걸어 나와 어떤 문을 열었다. 그 문이 어떤 문인지 어디서 마동 자신이 자다가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저 아주 어린 시절에 몹시도 추운 겨울의 날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그때 잠은 마동의 의식을 반이나 잡아먹고 있었지만 마동은 방문을 열고 나와서 어떤 문을 열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걸음처럼 불안했다. 소변을 보려고 나가다가 발바닥으로 어떤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밟았다. 그 느낌은 확실하게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하늘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어린 마동의 의식에서 잠이라는 것이 몽땅 달아나버리고 찬물이 뇌에 확 들어찼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매끈거리고 꿈틀거리는 기분 나쁜 감촉 때문에 발바닥에 힘을 주지 못했다. 마치 발밑에 그것은 그 감촉을 통해서 발바닥에 힘을 줬다가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라고 마동이 밟은 그것이 전했다. 그렇게 느껴졌다. 겁이 났다. 그렇다고 밟은 발을 쉽게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발을 들어 올리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공포는 더더욱 커졌다. 발바닥에 홈을 만들어 마동은 밟은 그것을 보호하려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밟혀 있는 그것은 마동이 밟은 발바닥에 힘을 주지 못하게 해서 그것의 몸뚱이가 터지지 않게 하려는 듯 마동을 꼼짝 못하고 그대로 서있게 했다. 추운 겨울 새벽의 날씨는 박해 적이고 매서운 바람을 만들어내서 어린 마동을 심하게 괴롭혔다. 마동은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밟혀있는 그것은 마동에게 소리를 질러서 누군가를 부른다면 역시 그에 해당하는 복수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어린 마동이었지만 밟힌 그것이 바퀴벌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밟힌 바퀴벌레지만 그것은 등을 통해서 마동에게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어린 마동은 바퀴벌레가 몸에 닿아서 이제 곧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수포가 생겨 터지면서 진액이 끝없이 흘러나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영원히 누워있게 되고 곰팡이가 몸 전체에 번져 결국에는 푸석해져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어린 마동은 무서움에 몸은 심하게 떨렸다. 마동이 떠 올린 바퀴벌레는 그런 존재였다.

  소름끼치고 혐오스럽고 무서운 바이러스를 옮길 것 같은 모습.

  하지만 그것은 마동의 편견이었다. 그때 마동은 바퀴벌레를 밟으며 바퀴벌레의 등이 발바닥에 닿는 순간 무엇인지 모를 숙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숙명이라는 것은 불우하고 희미하고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마동이 결국 발을 들자 바퀴벌레는 2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다다다닥 거리며 몇 개인지도 모를 다리를 움직여 재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기어들어갔다. 그 2초 동안 마동은 바퀴벌레에게 여러 가지 초현실적인 인상을 받았다. 바퀴벌레는 자신을 죽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다다닥 거리며 기어가다가 바퀴벌레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바퀴벌레는 잠시 멈춰서 몸을 돌린 후 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사실은 확실하지 않았다. 마동이 기억하는 바퀴벌레에 대한 부분은 그것뿐이었다. 그때 마동이 살려준 바퀴벌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천마리의 알을 낳아가며 진화해오고 있었다.

 

  카페의 주인이 마동에게 커피를 한 잔 더 건넸다. 따뜻한 커피였다. 커피의 좋은 향이 났다. 마동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왜?라는 눈빛을 보였다.

  “제가 한잔 드리는 겁니다. 비 덕분에 아침에 내린 커피를 당일 소모를 하지 못하면 버려야 할 판입니다.”

  마동은 그렇군요. 라고 하고, 잘 마시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꽤 능력이 좋으신 분 같아서요”라고 카페의 주인은 마동에게 말을 했다. 능력이라는 말을 갑작스레 들으니 마동은 능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가늠되지 않는 수치처럼 ‘능력’ 이라는 말이 마동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녔다.

  카페의 주인이 나의 능력을 어떤 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일까. 주인의 생각을 들여다볼까. 아니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제 타인의 의식 속을 엿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눈앞에 서 있는 카페의 주인은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일까. 아니면 변이를 눈치 챘다는 말인가. 만약 나의 변이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능력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마동은 카페의 주인이 던진 한 마디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오셨을 때 아주 아름다운 여성분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셨잖아요”라며 카페주인은 풍모답게 웃었다. 아, 역시 는개를 말하는 것이었다. 마동은 카페주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여성분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아닌척하며 카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손님의 여성분을 훔쳐본 건 아니니까요. 저 안에 서 있으면 손님들의 모습을 주시하면서 부족한 점이 없나를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카페의 주인은 마동을 보며 난처한 것을 애써 감추려는 듯 말했다.

  “그녀는 회사의 직원입니다. 제가 집이 이 근처라 전달할 것 때문에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마동은 말했다. 마동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조금은 놀랐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해 버리다니. 그런 자신의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새로운 커피에서는 더 이상 겨울에 잘못 나온 잡초의 맛은 없었다.

  “저의 경험상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성을 기다릴 때 한 시간이 지나면 편안한 모습에서 벗어납니다. 한 자리에서 긴 시간 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분은 다르더군요.”

  “회사에서 남은 일거리를 저에게 전달해주려고 했어요.” 마동은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는개가 나를 기다리면서 그런 마음이었구나, 나를 만나는 것을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속의 작은 마음이 또 한 번 움직였다. 마동은 카페주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손을 들어 가슴에 올렸다. 마동은 카페주인에게 마음에 없는 대답을 했고 카페 주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에 없는 말을 앞으로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의 행동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분께서 두 시간씩이나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모습의 여성을 저희 가게에서 목격 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라는 말에 마동은 할 수 없이 카페주인의 의식을 읽었다. 그는 정말 말하는 것과 의식이 일치했다.

  “네, 맞아요. 회사직원이지만 자연스럽게 세련되고 사랑스럽죠”라며 마동은 는개의 모습을 떠올렸다.

  역시…… 라는 카페 주인의 말이 들렸다.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자연스러움이 묻어났죠. 저의 아내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서”라고 하며 카페의 주인은 크게 웃었다. 카페주인의 웃음은 수면에 떨어진 물감이 번지듯 전염될 것 같았다.

  “네, 자연스러운데 세련되기까지 한 여자는 드물죠.”

  카페의 주인은 자신도 한 손에 커피 잔을 들고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연일 쏟아지는 건 근래에 들어서는 처음 봅니다. 커피는 제가 서비스로 드리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그런 멋진 여성분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시다니 능력이 좋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영광입니다”라며 카페의 주인은 웃었다. 마동도 따라서 어색하나마 미소를 살짝 만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카페의 주인은 풍채가 좋았다. 그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부드러웠다. 그리고 목소리가 짙으면서도 빡빡하지 않았다. 노래에 어울리는 목소리 같았다. 하얀색 멜빵바지를 입었고 바지 곳곳에 커피 자욱이 총 맞은 것처럼 번져 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배가 많이 나왔고 정겨운 모습의 배였다. 세상에는 그런 배가 존재한다. 아무리 나온 배라도 정겨운 배가 있는 법이다. 날씬하고 배에 군살이 없지만 정이가지 않는 배도 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만 정이 가는 배와 정이 가지 않는 배를 가진 사람으로 나뉜다면 정이 가는 배를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다. 볼록하게 나온 카페 주인의 배는 푸우의 배처럼 친밀감이 들었다.

  “능력은 제가 아니라 그녀가 지니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이니까요. 회사일 때문에 저를 기다린 것이라서 저에겐 여자를 기다리게 할 만한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마동은 조용히 말했다. 카페주인은 마동의 말을 흘려듣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까? 여성분께서는 손님에게 상당히 호의적이고 마음을 열어두던데 말이죠”라며 카페의 주인은 나쁘지 않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카페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손님들의 대화나 동작) 전부 예의주시하고 있구나. 앞으로 카페 안에서 조심해야겠군. 마동은 생각을 했지만.

  “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두 시간을 손님을 기다리면서 다른 곳에서 온 전화를 받는 목소리와 당신을 대하는 목소리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여성이라 여기서는 걱정과 근심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거든요.” 카페 주인은 커피를 소리 나게 한 모금 마셨다. 마동도 아직 뜨거운 커피를 들어서 향을 맡은 다음 한 모금 마셨다.

  “이 비는 언제까지 올까요?” 마동은 화제를 바로 돌렸다. 없는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다. 게다가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안개 같은 짙은 그리움이 밀려와서 마동을 괴롭혔다.

  “글쎄요. 이렇게 자주 세차게 내리는 비는 근래에, 그러니까 20년 동안에는 보지 못했으니까요.” 마동과 카페주인은 동시에 창밖의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은 어둑해져 있어서 낮인지 오후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도로에 넘쳐흐른 빗물은 높은 곳에서 대지가 낮은 곳으로 필사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비가 세차게 오는 광경을 본적이 있으시군요.” 무더운 여름에 검은 비가 차갑게 쏟아지는 날에 뜨거운 커피 잔을 들고 카페주인을 바라보았다.

  “예, 꽤 오래전이지만 한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빗속에서 죽을 뻔 했어요. 그때가 제가 군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이었는데 대단했죠.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구타가 밥 먹듯 이루어지는 군대생활도 대단한 것이었고 제가 경험한 비도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빗속에서 저는 죽음을 경험 할 뻔 했어요. 빗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살아나왔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주인은 웃었다. “그때 내리던 그 비는 정말 기이하고 무서웠어요. 비가 마치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비는 산속의 흙을 모두 뚫어버려 산의 모습을 뒤바꾸려는 듯 보였어요. 비가 정말 사람을 죽여 버릴 듯 내렸습니다. 마치 지금의 비가 그때의 비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 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동은 카페주인이 경험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금같은 비가 내렸다는 건 그때에도 무엇인가 이 세계에 나오려고 했다는 말인가.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러죠. 손님도 없고 더 이상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비가 거세게 떨어지고 이야기 할 분위기도 좋은데요”라며 카페주인은 풍채에 맞게 웃었다. 역시 정이 가는 웃음이었다.

  “전 92년도까지 대평군에서 헌병대대로 근무했습니다. 전 직업군인이었죠. 하사를 달고 당시에 중사진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부사관 이라는 명칭보다 아직 하사계급이 있었을 때였죠.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입는 군복과도 많이 달랐고 군기는 엄청났고 구타도 많았습니다. 하긴 요즘도 구타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뉴스를 보면 예전보다 구타의 악랄함은 더 하고 짙어졌어요. 더 안 좋아 진 것 같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당시를 회상했다.

  “전 제대를 하기 전까지 후임들을 구타 해 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전무후무한 군 출신일겁니다. 누군가를 때린다는 게 싫었어요. 애당초 몸에 배어있지 않았습니다. 헌데 막상 후임들이나 병사들은, 자신들이 잘못해도 기강이 흐트러져도 내가 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말을 듣지 않더군요. 군 생활에서는 아시겠지만 상황이 구타를 부르는 것입니다. 나는 구타를 외면했지만 주위 상황은 구타를 부추겼어요. 구타를 하면 기강이 바로잡히고 내무생활에 균형이 잡혀갑니다. 그땐 그럴 분위기였어요.” 카페주인이 말을 멈추었을 때 마동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카페의 주인이 하는 말에도 균형이 나왔다. 균형을 위해서는 불이익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도 전 구타를 하지 않았고 병사들의 훈련과 내무생활의 기강과 조화를 구타 없이 이루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그땐 맞아서 머리가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구타는 나의 군 생활에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구타를 하지 않으니 내가 당직일 때 병사들은 마구잡이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당직사관을 보는 날이면 점호가 끝나고 내무반에서 술을 마시며 몰래 라면을 끓여 먹고 졸다구들의 성기는 만지거나 괴롭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일반 병들에게 구타가 필요했지만 구타 없이 어떻게든 이겨보려 했어요. 하지만 구타라는 것은 병균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구타를 하기시작하면 종양처럼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종양이라는 게 깊게 파고들어서 결국 정신부터 몸을 전부 파괴시켜 버리거든요. 전 용케도 구타를 외면했습니다. 덕분에 기강은 점점 형편없어져 갔죠. 내가 당직사관을 할 때에만 사고가 터졌습니다. 병들이 초소에서도 술을 몰래 들여와 마신다든가 초소에서 소변을 보거나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려 인원점검에 빵구를 내버려 본부의 검열에 걸린다든가하는 사고가 내가 근무를 할 때에만 일어났습니다. 전 결국 대대장 실에 불려가서 문초를 받았고 구타는 필요악이니 시도한다고 해서 군대의 기강이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구타는 필요하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러 번 불려가서 들은 말입니다. 전 그때 마지막으로 불려갔을 때 결심을 했죠. 직업적으로 군인은 나에게 맞지 않는구나. 중사진급을 포기하고 이번에 전역하는 달이 오면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통일된 녹색의 알록달록한 군복이나 군화도 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죠. 남자들은 제복을 좋아하고 군복을 멋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전 아니었어요. 다시에는 지금처럼 덩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헌병대가 그렇듯 지금처럼 뚱뚱하면 그곳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헌병대라고 하지만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죠. 제가 속한 부대는 헌병대대중에서 ‘특수임무대’라고 하는 부대인데 대테러진압을 하는 역할도 도맡아하는 부대였습니다. 훈련이 너무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훈련이 고되고 힘들기 때문에 구타까지 해버리면 기강은 바로잡힐지 모르나 탈영의 위험도 있고 자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 생각이 들었죠.” 카페의 주인은 커피 잔을 흔들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주인은 커피도 맛있게 만들었지만 맛있게 마시기도 했다.

  마동은 군 생활 시절에 자살한, 친하게 지냈던 전우를 떠올렸다. 달을 보며 지내왔던 군 생활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전우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총기사고로 전사한 전우는 선임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마동은 그것을 부대에 말했지만 구타만 강했다. 전우는 입대해서 부대에 배치 받을 때부터 관심사병으로 따돌림을 당했다. 시간이 전진할수록 덩어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자살을 했지만 군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일요일 야간근무가 없으면 달을 보고 있는 마동의 곁으로 와서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던 전우였다. 말이 조금 어눌했다. 그것이 다르다는 이유였고 그 이유로 늘 괴롭힘을 당했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받아주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닌가. 전우는 무척 적응하려고 애를 썼지만 부대의 다른 병사들의 눈에는 그저 가시 같은 존재였다. 단체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임들은 점호가 끝나면 그 친구를 침상에 불러서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성희롱을 즐겼다. 후임이라는 이유로 그는 그것을 참아내야 했다. 마동은 마음에 분노가 이는 것을 느꼈다. 카페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몸이 다시 뜨거워지려했다.

  “유격은 물론이고 혹한기보다 더 심한 훈련을 받아야하고 공수훈련도 겸해야했어요. 굉장히 힘든 나날들이었어요. 헬기 레펠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헌병 특수임무대 경연대회라는 것이 있어요. 저희부대는 그 대회에 빠짐없이 출전을 했어요. 대회가 열리면 32개 예하사단에 대한 사전 경연대회로 우수 사단을 선발합니다. 대회는 육군 교도소에서 열리는데(때에 따라서 달라진다) 평가의 우수한 성적을 얻으려고 특수임무대는 엄청난 훈련을 해야 해요. 20여명의 전문 군관계자 평가단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전문평가단의 여건에 만족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대테러초동조치나 강력사고의 발생 조치, 재난구조 활동 등의 훈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대는 그곳에서 언제나 우승의 영예를 거머쥐었기 때문에 우승을 놓치는 날에는 그야말로 어떤 불상사가 떨어질지 몰랐어요. 저도 그 당시엔 날렵했는데 말이죠.” 카페주인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정말 내가 그렇게 날씬하고 날렵했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표정을 지었다.

  “헌병대에서는 군인들이 살인,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들을 수사하는데 필요한 훈련 이외의 훈련이 너무 많아서 제대하는 그날까지 고생이 심합니다. 그것은 저 뿐만이 아니라 특수임무대에 들어온 군인들이라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해요. 그 속에서 숨을 트일 수 있게 하는 건 가끔 찾아오는 휴가나 외박, 외출이었죠.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도 외출해서 선임들과 함께 이야기를 쏟아내며 비교적 즐겁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날을 위해서 힘든 훈련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이어져도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지낼 수 있었어요.”

  창밖의 비는 너무 거세게 쏟아져서 카페 안에 흐르는 음악소리를 먹어 버렸다. 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는다면 피부가 따끔 거릴 것이다. 그만큼 굵고 검은 비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다가오는 겨울이면 제대를 하느냐 다시 직업군인으로 복무를 하느냐하는 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어요. 그해 여름이었죠. 다른 소대에 비해서 군기가 헤이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저희 중대 내무반에서 총기사고가 있었어요. 저는 심한 공황상태에 놓였습니다. 결국 기강을 흩뜨려 놓아서 이런 사고가 발생된 것이 전부 저의 책임인 것 같았어요. 정말 나 혼자 어떻게든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페주인은 이야기 속으로 명확하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병장 하나가 직속 일직사관을 쏘고 탈영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었죠. 솔직하게 부대원들에게는 그런 사건이 터지는 것이 훨씬 나았습니다. 훈련이 없기 때문이죠. 밤새 탈영병을 수색하는 것이 훈련하는 것보다 덜 고되니까요. 육군최고의 특수임무대라는 사명을 띠고 탈영병을 찾아 나섰습니다. 저만 정신을 바로잡지 못하고 수색작업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수색조는 6개조로 나뉘어 탈영병의 동선을 살핀 후 범위를 점점 좁혀가는 것이죠. 탈영한 병장도 수색작업을 해왔던 군인입니다. 자신이 곧 잡힐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죠. 탈영병은 제대를 갓 4개월을 남긴 병장이었습니다. 저와 외출을 나가 소주도 한잔씩 기울였고 속내를 이야기했던 군인이었죠.”

  쿠쿵 하는 천둥소리에 카페의 주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함에 휩싸이게 됩니다. 두려움이 거대한 쇠로 만들어진 감옥이 되어 몸으로 점점 죄어 들어옵니다. 숨을 쉴 수가 없게 만들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죠. 군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입장에서 전투모를 쓰고(철모가 아닌) 총기를 휴대하고 혼자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산속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극도의 불안함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죠. 만약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게 되면 탈영병 자신도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을 못합니다.”

  “부대의 윗선에서 탈영병을 조용히 찾아야한다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이유를 묻지 못 합니다. 우리는 명령을 따라야 하는 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개의 조만 투입이 되었습니다. 수색조들이 혹시나 다른 부대의 훈련을 하는 병사들을 만난다거나 일반인을 만난다면 지금은 훈련 중이라고 하면 됩니다. 근처에 살고 있는 마을의 주민들이나 가장 가까운 인근의 부대에서도 저희 부대는 일 년 내내 훈련을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탈영병에 대해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전 군대에 비상발령을 알리기 전에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탈영병에 대한 사항은 퍼지지 않게 수색합니다. 탈영병에 대해 부대를 떠돌던 소문이 있었는데 그 병장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오빠의 면회를 한 달에 한번이나 두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왔어요. 여동생은 무척 예뻤고 상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부대의 소위가 반해서 탈영병의 여동생에게 접근을 했지만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어요. 어느 주말에 여동생이 면회를 왔을 때 소위는 만취되어 있다가 그녀를 성추행하게 됩니다. 부대에서 말이죠. 오빠는 눈이 뒤집혀 성추행한 소위를 찾아가서 목과 머리에 자동으로 총알을 난사했습니다. 얼굴이 벌집이 되었죠. 소위가 앉아있던 의자 뒤로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피와 뇌수가 벽을 더럽혔습니다. 재빠르게 수습을 한 부대는 이 모든 일이 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때 그 소위의 성추행을 도와준 이가 있었고 소위는 군단장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얽힌 사건 때문에 부대의 윗선에서는 조용히 탈영병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 사실은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대기업의 공장에서 과로사가 많아도 뉴스에서는 보도되지 않는 경우와 흡사해요. 우리는 명령대로 움직여야 했기에 탈영병의 수색에만 몰두했습니다. 수색을 제외하고 사건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겨울이 오면 제대를 하는 것을 확고하게 못을 박았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마동은 비를 바라보는 카페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얼굴표정이었다.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예전에. 지금 쏟아지는 비와 관계가 있었을까.

  “대평리는 여름이면 해가 몹시 뜨거워 작물의 재배가 아주 원활합니다. 굉장히 무덥죠. 하지만 다른 지역처럼 습한 무더위로 인해 불쾌지수가 상당히 올라가는 무더위는 대평리에는 없어요. 그냥 무덥습니다. 해가 모든 세상을 건조시키고 바짝 마르게 하는 무더위 말이죠. 쨍쨍한 태양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지만 그늘이 있는 곳에 앉아있으면 불어오는 바람이 선풍기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는 더위의 날 말이죠. 그런 무더위 아시겠습니까?”

  마동은 카페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인한 무더위를 마동도 알고 있었다. 카페주인의 배처럼 정이 가는 여름의 무더위다. 불쾌하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는 무더위 말이다. 하늘에는 제비가 쉴 새 없이 비행을 하며 날아다니고 더위에 흘린 땀은 그늘 밑에서 말리면 끈적끈적함이 없어 바짝 말라버리는 그런 무더위는 시간과 함께 저 너머의 세계로 사라져버렸다. 오래된 바닷가의 극장 상영관속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봤을 때 그리고 택시에서 너구를 만났을 때의 습한 무더위만 이제 세계의 여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점심을 전투식량으로 간단하게 먹고 우리 조는 수색을 다시 했습니다. 우리 조에게 할당된 지역과 함께 좀 더 넓은 지역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필사적으로 탈영병을 찾아서 수색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탈영병을 잡는다면 병사들은 휴가의 기쁨을 맛 볼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열심히 수색에 임했고 저는 자책감 때문에 수색에 몰두했어요. 우리가 수색하는 지역에 왜인지 모르겠으나 탈영병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냄새가 났어요. 탈영병의 무너진 냄새가 말이죠.” 카페주인도 틈을 두었다. 틈을 이용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탈영병은 나름대로 아픔과 고독과 마음의 병을 안고 탈영을 했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군인이니까요. 훈련받고 명령대로 움직이는 게 군인이니까 말이죠. 전투식량을 빨리 먹고 제대로 앉아서 쉬지 않고 움직인 탓인지, 아니면 긴장을 한 탓인지 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내장기관에서 신호가 왔어요. 군인으로서는 저는 이래저래 맞지 않는 이유가 하나씩 더해졌습니다. 같은 조 대원들에게 대변을 금방 보고 갈 테니 천천히 수색을 하라고 명령 한 다음, 근처의 풀밭에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총은 몸에서 떨어트리면 안 되기에 한손은 총을 파지하고 한손에는 휴지를 들고 바지를 내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마치 며칠 전의 안 좋은 일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듯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해가 쨍쨍하던, 바짝 마른하늘이었는데 소나기가 떨어지는 겁니다. 마른하늘이었다가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소나기는 으레 그런 것이니까요. 대평리에는 특히 그런 소나기가 여름에 자주 내렸습니다. 소나기를 맞으며 볼일을 보고 있으니 시원했습니다. 여름이 아니면 도저히 느껴보지 못할 시원함이죠. 몇 번인가 소나기를 맞으며 야외에서 배설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수색하는 동안 몇 날 며칠이 되었던 군복을 벗지 못합니다. 여름이니 하복복장을 해야 했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는데 살갗으로 떨어지는 소나기가 점점 따가워지는 겁니다. 우박은 아닌데 비가 굉장히 거세지는 겁니다. 비 때문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빨리 바지를 올리고 조 대원들을 찾았습니다. 찾으려고 뛰어 가는데 눈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소나기라 비가 그치겠지, 했던 생각은 큰 오산이었죠. 그 비는 지금처럼 끊어질 틈을 보이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정말 지금 비와 비슷합니다. 지금 저 밖에 나간다면 아마도 비를 맞아서 살갗이 따가울 겁니다. 몹시도.”

  카페주인은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오므리고 밖의 비를 쳐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저는 조 대원들을 찾지 못하고 근처의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일단 비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엄청난 속도감으로 떨어지는 비는, 땅의 지형을 바꾼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내리던 소나기는 땅을 파버렸고 저는 그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은 팔뚝의 살갗은 발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비가 떨어지는 속도가 대단했죠. 조 대원들도 분명 저를 찾고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대원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거세게 비가 쏟아지면 지대가 약한 산속의 지형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변형이 옵니다. 그런 현상이 눈으로 보이는 겁니다. 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얇은 나뭇잎이나 썩은 나뭇가지는 속도감 있게 떨어지는 비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비는 거칠 줄 모르고 저는 나무 밑에서 그대로 있어야 했죠. 하늘은 거뭇거뭇하더니 어둠이 금세 찾아왔고 몸은 저체온 증으로 떨리기 시작했는데 두려움으로 인해 몸은 심하게 더 벌벌 떨렸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었던 저는 그때 무섭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떨어지는 비는 아주 높은 곳, 하늘의 거대한 구멍에서 물을 마구 퍼붓는 듯 했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기 두려울 정도로 말이죠. 비가 눈에 떨어진다면 눈이 실명될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비를 맞아서 눈이 실명이 되는 생각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울함도 몰려왔어요. 그것을 우울함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한 없이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락의 기운이 내 몸을 덮었어요. 저는 들고 있던 총을 꽉 잡고 나무 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산속은 여름이었지만 어둠이 일찍 찾아옵니다. 일단 어둠이 몰아치고 나면 산속은 그야말로 깜깜한 암흑의 세계가 됩니다.” 주인이 컴컴한 어둠에 대해서 말했을 때 마동은 그 어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어둠에 대해서.

  탁하지 않고 본질적인 어둠자체가 발하는 농밀한 어둠을 마동은 익히 만나봤다. 깊고 농익은 어둠을 마동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짙고 본질적인 어둠이 세계를 뒤덮는 모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둠은 몹시 끈적끈적했고 유난히 검은 색이어서 그 실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전 그때 산속의 어둠속에서 내 앞의 지대가 낮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환상이라든가 착각이 아니었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어요. 얕은 땅이 갈라져서 밑으로 꺼지고 폭우에 흙이 쓸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둠이 짙고 비가 거세게 쏟아져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어야 했는데, 분명 내 눈에 땅이 변형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겁니다.”

  카페주인은 조금 크게 숨을 들어 마셨다. 궁극적인 공포가 카페 주인의 가슴속에 들어찼던 것이다.

  “늪도 아니고 강도 아닌데 산 중턱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땅이 늪지대처럼 쓸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땅이라는 형태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변하는 형태의 땅의 모습이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총을 파지하지 않은 손으로 연거푸 얼굴로 떨어지는 비를 닦아내면서 나무에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땅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필시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에는 내 몸으로 전해지는 현상이 확실했거든요.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심하게 떨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죠. 그 생각은 곧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이미 내 마음은 힘을 잃어 감정을 조절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산속의 세계가 어둠에 덮여 버렸고 땅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방향성을 잃고 움직였습니다. 흐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째서 이리로 또는 저리로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일까. 빗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인데 말이죠.” 카페주인은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본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여름치고 덥지 않은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주인의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제가 착시를 일으킨 걸까요? 아니요. 그건 착시라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후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분명히 땅이 살아있는 듯 지그재그로, 마구잡이로 알 수 없게 일렁이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말이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더러운 냄새가 가득 들어찼습니다. 암내 같기도 했고 달짝지근하기도 했지만 유쾌한 냄새는 아니었어요. 산속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을 불에 태우는 냄새 같기도 했고, 장작의 꺼진 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그을음이 살아있는 그 무엇을 거슬리는 냄새라고 할까요. 냄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요. 불쾌하고 더러운 냄새였어요. 자세하게 설명이 안 됩니다. 누린내 같은 거요. 달짝지근한 냄새는 코를 막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아까 뉴스에서 기자가 말한 그런 냄새 말이죠.”

  카페주인은 지금도 그 냄새가 나는 듯 얼굴을 몹시 찡그렸다. 그 냄새도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냄새는 무정하게 다가와서 무성하게 번지는 독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괄태충이 뿜어내는 누린내였다. 확실하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인간의 우울함을 조장하는 냄새.

  모든 사고를 멎게 만드는 냄새.

  사념이 가득한 냄새.

 

  “불쾌한 냄새가 서서히 들어차서 짙어졌다고 할까요. 폭우 속에 그런 냄새를 맡고 있으니 그것은 지옥의 입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무서움을 떨쳐 내버릴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발도 움직일 수 가 없었지만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저 움직이는 땅을 지나쳐야했는데 저에겐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 특수훈련을 굉장히 많이 받아온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제가 그날 경험한 두려움은 훈련으로 극복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땅은 내가 서있는 나무쪽으로 서서히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군화밑바닥이 땅 밑으로 움푹 들어갔어요. 땅이 꺼지는 것이었죠. 산속의 밤은 방금 말했지만 굉장히 어둠이 덮어 버립니다. 하지만 이제 점심을 먹은 지 고작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컴컴해지는 것은 이상했습니다. 아주 어두워졌어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저의 공포는 배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 어둠속에서 폭우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움직이는 땅이 내 발을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어요. 전 완전히 넋이 나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내 오른발이 땅 밑으로 조금씩 꺼져 들어가는 것이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군화의 밑창은 아주 두껍지만 군화밑바닥으로 땅바닥을 제외하고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밟힌다는 것을 알았어요.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를 맞았지만 등과 얼굴에는 빗물과는 다른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주인은 조금 긴 틈을 두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말이 빨라졌으며 소리가 커졌다. 주인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심호흡은 두려운 기억을 조금 완화시켜 주는 듯 보였다. 머릿속에 가득한 공포를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움직이는 것은 땅 위의 것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들에 의해서 땅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전 거기서 빠져나와야 했어요.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그곳을 나오려는데 바다위에 떠있는 스티로폼을 위태롭게 밟고 있는 아이처럼 제 몸이 휘청거리다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졌어요. 넘어져서 움직이는 땅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그 불쾌한 냄새가 백만 개쯤 확 올라오는 겁니다. 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땅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산속에 온통 지렁이로 덮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상 유례없던 폭우에 산속의 지렁이가 땅 밑에서 전부 올라왔어요. 모르겠습니다. 말을 하려니 그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부대에서 지렁이는 요긴하게 쓰입니다. 지렁이는 못 먹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부대원들은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는 지렁이를 통해서 모두 없애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렁이를 혐오스러워하지 않죠. 하지만 그때 본 지렁이들은 부대에서 키우는 그런 지렁이가 아니었어요. 그것을 뭐랄까요, 빈민에 허덕이다 허무의 불길로 떨어져 버린, 사변으로 똘똘 뭉친 인간의 모습들 같았어요. 표현을 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수만, 수십만 마리의 지렁이는 죽음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어요. 휘청거리다 넘어져서 바닥에 손을 짚었을 때 손바닥으로 지렁이들이 꿈틀대는 그 감촉이 전해졌습니다. 지렁이 수십만 마리가 땅밖으로 기어 나와서 나뭇잎과 흙을 대동해서 움직이니 땅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그 미끌미끌한 감촉을 타고 지렁이가 지니는 습하고 음지의 기운이 내 몸을 전부 문드러지게 만들었어요. 아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지렁이들은 내 군복바지와 소매를 타고 몸 안으로 꿀렁꿀렁 기어 들어왔어요. 전투복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살갗이 지렁이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그때 그 기분 나쁜 느낌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문득문득 저를 괴롭힙니다. 무엇보다 냄새가 훅 올라왔어요. 구토가 나왔죠. 난 인상을 쓰고 입을 막았습니다. 구토를 하면 왜인이 지렁이가 입으로 들어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렇지만 구토는 끝없이 펌프질을 했어요. 발밑에 느껴지는 것은 지렁이 말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빗소리가 고요하게 들렸다. 비도 천둥도 번개의 시끄러운 모든 소리가 카페주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차기도 전에 발밑에 느껴지는 것 때문에 너무 무서운 생각뿐이었습니다. 딱딱했어요. 발밑에 닿은 감촉은 딱딱한 돌 같은 무엇이었는데 직감적으로 돌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그 감촉이 군화밑바닥을 통해서 전해졌어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 심장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몰랐죠. 바로 귀 옆에서 북을 두드리듯 쿵쿵 거렸어요. 대공포와 같은 거대한 소리로 말이죠. 심장은 터질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뛰었고 역겨운 냄새는 콧속으로 가득 들어찼어요. 이것은 분명히 지옥의 모습이었어요. 전 지옥의 입구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군화밑바닥으로 전해지는 딱딱한 것 역시 일렁거리며 서서히 움직였는데 아마 지렁이들이 그것을 옮기는 중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당시에 너무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지렁이들을 향해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습니다. 그 사실도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제가 발사를 했는지 기억이 없거든요. 그때, 밟혔던 그 딱딱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었어요. 지렁이 수천마리 사이로 올라온 딱딱한 그것은 사람의 머리였습니다. 눈이 없었어요.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싶었어요. 그런데 눈을 감으면 영원히 뜨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아직 해골이라고 하기에는 뭣했습니다. 머리카락도 붙어있었고 얼굴의 살갗도 벗겨지고 찢어지고 썩은 부분은 있었지만 완전히 해골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눈이 있던 자리가 퀭했습니다. 퀭한 구멍으로 지렁이들이 꾸물대며 옮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렁이들은 그것을 뜯어 먹고 있었어요. 너무 끔찍했습니다. 입술도 지렁이들이 다 뜯어 먹었습니다. 잇몸과 치아만 보였어요. 머리카락은 대부분 붙어있었는데 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전 그만 혼절하고 말았죠.” 카페 주인은 안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다시 받아왔다.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은 그제야 제대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든 소리가 주인의 이야기에 죽어 있었다.

  “후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눈에 퀭한 시체의 군번줄에는 탈영병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전 혼절한 상태로 부대원들에게 발견되어서 의무대에 실려 왔는데 그곳에서 57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깨어나서 부대원들에게 내가 본 광경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발견한 당시에는 시체와 같이 발견되었고 시체는 자살로 인한 총상으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눈이 퀭하다거나 입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탈영하고 고심 끝에 자살을 했는지, 시체가 되고 시간이 좀 지나서 약간의 부패는 있었지만 아직 시체는 사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수만 마리의 지렁이라든가 폭우는 애당초 없었다고 말이죠. 제가 앉아서 배설을 할 때 소나기가 온 것은 맞지만 소나기는 말 그대로 조금 힘 있게 내리다가 그쳤다고 하더군요. 제가 시간이 지나도 부대원들에게 오지 않았고 그들이 저를 찾았지만 몇 시간 동안 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몇 시간동안 내 활동반경이 전부 노출이 되어서 저를 찾는 수색이 불가능 할 리가 없었거든요. 몸의 회복을 되찾은 후 저는 법무대에 불려가서 총알을 발사하게 된 경위를 말해야 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했지만 군에서는 저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제대하기 전까지 외부의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면서 총을 쏘게 된 경위를 말했지만 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똑같았어요. 부대원들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총알을 발사 한 것은 맞지만 그 소리를 부대원들이 듣지 못할 리가 없거든요. 과연 저는 그때 무엇을 본 것일까요. 그리고 그 현상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어찌되었던 그 사건은 부대 안에서 은밀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군단장의 입김이 거셌거든요. 그 이후로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카페 주인의 얼굴은 이야기를 하기전의 얼굴로 돌아와서 평화로워졌다. 너무 오래되었지만 주인도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공포소설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허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저 창밖에 쏟아지는 비가 그대의 비와 흡사하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때 나던 불쾌한 냄새, 그 냄새가 지금 나는 듯해요. 나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말이죠.” 카페의 주인은 마동에게 너무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며 커피를 한 잔 더 내어 주었다.

  마동은 주인에게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말했다. 마동의 말은 사실이었고 진심이었다. 카페의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주인은 자신의 아내마저 지렁이 이야기를 하면 피식 웃고 만다고,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허구가 가득하다고 믿지 못한다고 했다. 군대 이야기는 죄다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면서 카페의 주인도 아내의 이야기를 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마동은 카페의 주인에게 내가 집중해서 듣는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눈빛입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카페의 주인은 마동의 눈을 쳐다보았을 때 흔들림이 없이 고요하고 집중하느라 눈 속의 한 점이 명확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흠.

  마동은 마동자신의 눈을 도려내려고 했었던 철탑인간을 떠올렸다.

  동공을 도려내고나면 세계가 조화로워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시력을 잃어버리고 흉가에서 봤던 끈적끈적한 어둠속으로 흡착되어 버리는 걸까.

  내가 어둠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일까.

  마동은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꾸 나타났다. 담배를 기호라 부르짖는 나약함이 기호를 자꾸 찾듯 생각은 연쇄적으로 끊이지 않는 밤의 여행자처럼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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