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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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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1 14:51     조회 : 464     추천 : 4     분량 : 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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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거실로 나가보니 그가 깨진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하자 “곧 올 거야.” 하지만 표정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좀 있음 우리 집도 아닌데 치워서 뭐해?” 했더니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흠칫 움츠렸다. 손에 든 빗자루를 어디다 둘 줄 몰라 하다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몇 장을 건네준다. “뭐 사 먹그라.” 안 그래도 버스표 살 돈을 달라 할 참이었는데 잘됐다. 그의 지갑에 땡전 한 푼 안 남은 게 거슬리지만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미련이 남아 다시 물었다. “엄마 어디 있는데?”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안 그러고 싶은데 가슴 한가운데가 싸르르 아파오면서 갑갑하고 불안하고 무서워졌다. ‘오겠지? 엄마?’ 하려다가 그라고 뭘 알까 싶어 참았다. 지가 사고를 쳤으면 무조건 엄마한테 빌고 빌어 엄마를 잡아놨어야지 지가 가진 건 다 뺏기고, 잃고, 간수 못 하는 꼴이 갑갑하고 맘에 안 들었다. 집에 안 들어오는 엄마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 왜 이런 인간하고 결혼을 했어, 엄마. 아, 나 때문이었구나. 미안.

 

 버스 회수권 열 개가 쪼르르 붙어있는 한 장을 사 교묘한 가위질을 거쳐 열한 개의 회수권을 만들었다. 죄송해요. 나쁜 짓인 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해요. 맘속으로나마 운전기사 아저씨의 양해를 구했다. 학교 앞 슈퍼에서 뭘 사야 할지 고민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자니 컵라면을 사고 싶었지만, 학교서 따뜻한 물을 구할 수 없으니 대충 비슷하게 생기고 가격은 더 싼 뿌셔뿌셔 과자를 샀다. 사과 주스라기보단 사과 향 설탕물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싸 빠진 주스도 한 팩 샀다. 엄마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그가 언제 다시 돈을 줄지 모르니 돈을 아껴 쓰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눈치를 보며 과자와 주스를 꺼내자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 왜 도시락을 안 싸왔느냐며 한소리씩 한다. “요새 밥맛이 없어서 내가 사 먹는다고 했어.” “우와. 우리 엄만 밥 안 먹고 그런 거 먹음 잔소리 장난 아닌데.” 울 엄마도 그래. 집에 안 들어와서 그렇지. 졸지에 울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쿨한 엄마로 만드는 아이들의 수다를 들으며 과잔지 라면인지 모를 그 꼬불거리는 것을 한주먹 입에 털어 넣었다. 짭짤하니 맛이 좋은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아이들 몰래 눈물을 훔치고 코를 훌찌럭 댄 다음 감기 기운이 있는 척 헛기침을 했다.

 

 집에 돌아가자 여전히 엄마는 없고 그가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엄마가 전화기 밑에 항상 두는 빨간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면서. 어느새 집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화번호부엔 엄마가 아는 모든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깜박깜박하는 엄마를 대신해 그나 나의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들과 통장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것도 그 전화번호부였다. 그가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비비며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누른다.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아마 이모들 중 한 명인가 보다. 그는 엄마의 행방을 알면 제발 말해달라고 사정사정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의 이모는 아마 그의 잘못을 타이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다. 엄마 입으로 미주알고주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다닐 성격이 못됐다. 저런 식으로는 엄마를 찾기 힘들 거란 건 나도 알고 있는데. 바보 같은 인간. 그가 나를 보고 “밥은 묵었나?”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는 한참이고 저녁을 먹긴 좀 이른 시간이었다. 뭐라 대답하기도 귀찮아 대충 머리를 주억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혼나기만 하던 그가 이모와의 통화를 마쳤다. 이번에는 자기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했다. 아마 돈을 꾸려고 전화를 건 모양인데 저런 식으로 하다간 삼 년간 통화를 해도 돈 만 원도 못 구할 것 같았다. 저러다 도리어 또 사기나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수학 교과서를 폈지만 가는귀가 먹은 그는 점점 목소리를 높여 나를 괴롭혔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방에서 나갔다가 부엌에 가보았다. 어제 내가 끓여놓은 보리차가 쉰내를 풍기고 있을 뿐, 먹을 게 없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배고프나? 짜장면 시켜 줄까?” 짜장면이야 언제나 환영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어도 되나마나 고민이 됐다. “돈 있어?” 하자 그가 또 사그르 웅숭그렸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압력밥솥의 추가 쐐쐐 도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냉장고에서 김치와 마른반찬들을 찾아내 상을 차리고 나를 불러냈다. 그는 배가 고팠는지 반찬도 집지 않고 허겁지겁 계속 밥을 떴다. 난 무말랭이를 오도독 씹으며 그가 고쳐 놓은 앉은뱅이 식탁을 관찰했다. 부서진 한쪽 다리를 청테이프로 용케 꽁꽁 싸매놓았다. 밥그릇을 들었다가 힘 있게 내려놓으면 다시 부러질 것 같았다. 식탁 위에 붙어있는 빨간 딱지가 청테이프와 보색대비 되며 더 도드라져 보였다. 밥알을 세고 있는 나를 보며 그가 “물이라도 말아서 한술 해라.” 했다. 난 “집에 물이 있어야 물을 말아먹지.” 하며 그를 타박했다. 설거지를 하는 그에게 “엄만 어디 간다 하고 나갔어?”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엄마 금방 올끼다. 걱정 말고 공부나 하고 있그라.”며 거짓말을 했다.

 

 새벽에 한기가 들어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다. 낮에는 쨍쨍히 해가 비춰도 아침저녁으론 입김이 나오기 시작하는 가을의 길목이었다. 이럴 때 보일러를 적당히 켰다 끄기를 반복해 밤에 춥지 않을 온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난방비를 아끼는 건 엄마 몫이었다. 잠버릇이 험해 이불을 걷어차는 날 위해 새벽이면 방에 들어와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 것도 늘 엄마였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부엌에서 도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왔구나. “엄마!” 하며 나갔는데 부엌에 있는 건 엄마가 아닌 그였다. 그는 자신이 엄마가 아님에 크게 실망한 나를 보며 조용히 “와 벌써 일어났노? 아직 여섯 시밖에 안됐다. 더 자도 된다.” 하곤 썰던 햄을 마저 썰었다. 엄마는 햄이 비싸고 몸에도 안 좋다며 사주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미역국이 끓고 있었다. 엄마 생일날 종종 미역국을 끓였던 그가 자신 있게 만들 줄 아는 유일한 국이었다. 전에도 엄마가 아플 때나 그와 싸우고 앓아누울 때면 그가 장을 봐와 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엄마가 평소에 절대 사지 않는 것들 위주로만 장을 보는데, 아마 그가 요리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어서일 거다. 난 그가 사 오는 파인애플 통조림이며 복숭아 통조림을 따서 엄마 입에 쏙쏙 넣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너무 달다며 싫어하면서도 잘 받아먹었다.

 

 소고기가 듬뿍 담긴 미역국에 밥을 말아 햄을 한 점 올려 먹으니 몸속에 기름기인지 온기인지 모를 기운이 퍼졌다. 그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더니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뭐 하러 가는지, 엄마가 어디 있는지는 아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참았다. 그가 “도시락 싸놨으니까 가져 가그라. 돈 필요하나?” 한다. 난 ‘응. 일억오천만 줄래? 아빠가 진 빚 갚게.’ 하고 내뱉고 싶은 욕구를 햄 한 조각을 삼키며 꾹꾹 밀어 넣었다. 그가 어제 밤늦게까지 엄마의 전화번호부와 전화기를 들고 씨름을 하다 잠들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싸놓은 도시락 가방을 열어봤다. 넉넉한 햄과 깍두기 반찬에 참치 한 캔까지 들어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참치를 찬장에 넣었다. 돈도 없는데 아껴먹어야지. 잘 벌지도 못하는 그는 아낄 줄도 몰랐다. 덕분에 그와 엄마는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난 속으로 그를 욕했고 엄마 편을 들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참치캔을 보고 흐뭇해 할 것이다. 엄마는 찬장에 먹을 게 가득 있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참치 한 캔은 삼 일 치 김치찌개만큼, 혹은 이틀 치 도시락 반찬만큼 엄마를 기쁘게 할 것이다.

 

 시험 기간 직전의 학교생활은 단조로운 게 장점이었다. 귀찮은 실기평가도 없고 체육도 교실에서 프린트물에 밑줄을 그으며 필기시험을 대비하는 것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온몸의 신경을 듣고 받아 적는 데 집중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때가 껴 누레진 교복 블라우스 소매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며칠에 한 번 이 블라우스를 빨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누렇던 적은 없었으니 빨 때가 지나도 한참은 지난 모양이었다. 이건 어떻게 빠는 건가? 손으로 빠는 건가, 아니면 세탁기에 돌려도 되나? 애들이 입는 교복은 까만색으로 만들 것이지 왜 하얀 블라우스를 입히지? 아니, 이런 고민은 안 해도 돼. 엄마가 빨아줄 거야. 엄마가 돌아올 거야. 엄마가 돌아와야 해.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라도 난 듯 간지러웠다. 꾀병이겠거니 하며 다시 밑줄 긋기에 집중해봤다. 심장이 가려운듯하더니 저리다가 아팠다. 평소엔 있는 줄도 잘 못 느끼던 심장의 움직임이 너무 무겁고 아프게 느껴졌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팽글팽글 돌며 어지럽고 열도 나는 듯했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오후면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교실 창문은 항상 연노랑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창문으로 달려가 커튼을 젖히고 꽉 닫힌 창문을 열고 싶었다. 열린 창문으로 뛰어나가 운동장을 달리면 숨이 쉬어지고 좀 살 것 같아질까 싶어서.

 

 짝꿍이 생리통약으로 먹던 진통제를 두 알 빌려 입에 털어 넣었지만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통이라고만 부르기엔 온몸이 다 아팠다. 쉬는 시간에 양호실에 들르자 양호선생은 남의 속도 모르고 “시험 기간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네.” 했다. 아니요. 시험 같은 거보다 더 큰 문제가 있거든요. 시험은 그냥 나 혼자 보면 되는데요, 그런 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데요, 집에 안 들어오는 엄마는 나 혼자 해결 할 수 없잖아요. 아빠라는 사람이 찾고 있긴 한데 그 인간이 워낙 무능해서요. 나도 팔자 좋게 시험 걱정이나 하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두통약 말고 팔자 고치는 약은 없나요? 그럼 나도 먹고 울 엄마도 좀 먹였으면 좋겠는데. 한숨을 푹 쉬다가 가슴 한가운데를 콩콩 치며 “심장이 아픈 것 같아요.” 했다. 양호선생은 아예 대놓고 비웃으며 네 나이에 심장이 아플 일이 뭐가 있느냐고 했다. 아니, 남이야 무슨 일이 있든 상관 말고 고칠 약이 있음 좀 내놔 봐요. 많이 피곤하면 조금 자다 들어가라는 양호선생의 말에 대꾸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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