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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꿈꾸지 않는 자
작가 : 양박사
작품등록일 : 2019.11.4

한번도 꿈꿔본 경험이 없는 주인공이 어느 날 처음으로 기묘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동시에 잠들고 동시에 깨는 특이한 증상을 가진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주인공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운데...

 
꿈꾸지 않는 자 (13~16)
작성일 : 19-11-05 08:25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1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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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3.

 

 30여 분을 달린 구급차가 멈춘다.

 차에서 내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당연히 병원으로 갈 줄 알았는데 도착해보니 학교다.

 빨간 벽돌로 된 커다란 건물 몇 동이 있다.

 색이 우중충한걸 보니 중학교나 고등학교인 것 같다.

 여름방학 기간이고 격리하기 쉬운 곳이라 여기에 수용하는 것 같다.

 운동장에는 구급차 여러 대가 왔다갔다하고 있다.

 흰색,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군인들은 별도의 방호복 없이 방독면만을 착용하고 있다.

 6.25 사변 즈음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필터가 제 역할이나 하려나 모르겠다.

 

 “따라오시죠.”

 

 김과장과 나는 안내에 따라 강당으로 들어간다.

 강당 입구는 군인 두 명이 탄창도 없는 K2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입구에는 비닐로 된 2겹의 커튼이 쳐져 있다.

 세균이나 오염물질 전파를 최소화 하려는 의중은 느껴지나 허술하기 그지없다.

 급조된 거라 그러려니 한다.

 강당 안은 하얀 천막들이 6열 횡대로 1열당 10동씩 60동이 쳐져있다.

 나와 김과장은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천막으로 안내를 받는다.

 천막 안에는 하늘색 담요가 2단으로 4세트가 놓여있다. 한 천막 당 4인씩 수용 예정인 것 같다.

 잔뜩 화난 보풀들과 닳고 지워져 희미한 병원 이름, 그리고 강렬한 곰팡이 냄새에서 담요의 역사가 느껴진다.

 나는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지도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천막 입구 반대편의 바닥에 주저앉는다.

 김과장도 강당 안을 한번 쓱 둘러보고 내 옆에 앉는다.

 

 “과장님,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러게... 큰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

 

 꽤나 긴 침묵이 흐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내와 딸 걱정이 된다.

 휴대폰을 꺼내 아내한테 전화를 건다.

 한참을 신호가 간다. 받지 않는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문자메시지도 남긴다.

 그 동안 김과장은 아내분이랑 통화를 마쳤다.

 

 불안함에 또 침묵이 흐른다.

 

 군인들은 계속해서 빈 천막으로 사람들을 날라댄다.

 이 더위에 방독면에... 정말 개고생이다. 거의 무임금으로 좆뺑이 까고 있다.

 모든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그랬듯 말이다.

 불합리와 개고생의 내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쉬바.

 군대 생각만 하면 욕밖에 안나온다. 쉬바.

 벌써 십오년 정도 됐다. 쉬바.

 내가 자대에 배치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식목행사 준비에 투입되었다. 쉬바. 뭐만 하면 전투란다.

 어쨌든 우리 소대는 막사 근처에 있는 4미터 가량 되는 말짱한 사철나무의 분을 떴다. 아마 깊이는 2미터 가량 팠을거다. 오로지 삽으로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파낸 나무를 원래 그 자리에 다시 심었다.

 ‘00년 기념식수’라고 푯말만 바꿔서 말이다! 쉬바.

 어쨌든 심었다 이거지. 쉬바.

 대대장과 정훈장교가 나타나서 기념사진을 찍고 사라졌다.

 그들은 무엇을 기념했을까? 병사들 좆뺑이 까게 한 기념인가?

 이런 쉬바시키들.

 그게 군대다. 쉬바.

 

 얼마나 지났을까

 방호복을 입은 누군가가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머리에 비닐모자, 흰색 마스크, 흰색방호복을 입은 사람이다. 고글 때문에 잘은 안보이지만 작은 체구에 걸음걸이로 미루어봐서 여성이 틀림없다.

 

 “저기요.”

 “......”

 

 대꾸도 없다.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거 놓고 갈테니까 여기 인적사항이랑 좀 적으세요.”

 

 역시 여자다. 유난히 하이톤이다. 아마 간호사겠지? 아무런 설명도, 안내도 없이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입구 쪽 바닥에 종이랑 볼펜을 놓고 불결하다는 듯이 나간다.

 

 “우리가 뭐 죄인이가? 사람을 무슨 벌레 보듯하노!!!”

 

 김과장이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한다.

 

 “뭐꼬 절마.”

 “과장님 그냥 얼른 쓰고 줘버리시죠.”

 

 내가 일어나 종이와 볼펜을 들고 와서 김과장에게 하나씩 건넨다.

 

 주소랑 가족관계 등을 쓴다.

 아내와 딸 이름을 쓰는데 아내와 딸 걱정에 가슴이 먹먹하다.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덜컥 불안하다.

 애가 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다.

 

 “휴우...”

 “허대리, 니도 가족 걱정 많이 되제? 나도 우리 마누라랑 딸이 걱정이다. 설마 내가 벌써 옮긴 건 아니겠지?”

 “저도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가뜩이나 우리 딸이랑 와이프 몸도 약한데......”

 “에휴... 너무 걱정 말자. 뭐 큰일이야 있겠어?”

 “......”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발소리가 꽤 큰걸 보니 장정 여럿이 오는 모양이다. 발소리는 우리 천막 앞에서 멈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아까 그 여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다 쓰셨죠? 이리 주세요. 볼펜은 가지시고 종이만 주세요.”

 

 종이를 건넨다.

 간호사는 종이에 똥이라도 묻은 듯이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집어 들고는 황급히 천막 밖으로 나간다. 다음에는 진짜 똥을 묻혀줘야겠다. 억울하지나 않게.

 간호사가 나가자마자 노란색 보호복을 입은 건장해 보이는 남자 3명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호복 안으로 전투복이 보인다.

 

 “지침에 따라서 휴대전화는 저희에게 제출해주십시오.”

 

 맨 앞에 있던 사람이 고압적인 말투로 내뱉는다.

 역시 군인이군.

 장교라서 방호복을 배급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병사들이 전투복에 방독면만 그것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들이 쓰고 버렸을 법한 것을 쓰고 있던 것과 비교된다. 장교놈들 지들만 살겠다 이거지.

 

 “뭐라노?”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김과장이 되묻는다.

 

 “휴대전화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내껄 왜 달라는거에요?”

 “저희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싫은데요? 이거 인권 침해 아녜요?”

 “제출해 주십시오.”

 “허, 참내, 못줘요.”

 “제출하십시오.”

 “아, 못준다고!!”

 

 김과장의 소리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야, 뺏어와.”

 

 명령을 받자 뒤에 서 있던 두 남자가 각각 김과장과 나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주머니를 뒤지면서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한다.

 

 “야이 씨발새끼들이! 미쳤나? 미쳤냐고?”

 

 김과장도 나도 발악을 해본다. 하지만 한창때인 젊은 군인들의 힘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금세 빼앗기고 만다.

 모두의 숨이 거칠다.

 

 “이 휴대폰은 나중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이 새끼들이... 그럼 우리 가족들이랑 연락은 어떻게 하라고?”

 

 김과장은 몸싸움에서 지고 기세가 다소 꺾였음에도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반말을 내뱉는다. 약간 힘겨워 보인다.

 

 “별도로 통화 하실 시간을 드릴 겁니다. 그러면 지정된 장소에 가셔서 가족분들과 연락 취하시면 됩니다.”

 “야, 잠깐만 줘봐.”

 “안됩니다.”

 “아 잠깐만 줘보라고, 다시 줄 테니까.”

 “안됩니다.”

 “아 씨발 내 마누라 전화번호 못 외운다고!! 적어놓고 다시 돌려준다고!”

 “야, 잠깐 돌려드려.”

 

 휴대전화를 빼앗은 병사가 김과장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준다.

 

 “저기... 저도 못외우는데...”

 

 나도 소심하게 말을 꺼내본다. 방호복 때문에 귀가 잘 안들리는지, 아니면 저항하지 않은 자의 목소리는 무가치하다 여긴 의도된 무시였는지, 내 말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 사이 김과장은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휴대폰을 병사에게 돌려준다.

 

 “저기요...!”

 

 조금 더 큰 소리를 냈지만 군인들은 나의 말을 무시한 채 천막을 떠난다.

 저항했던 자는 뭐라도 얻어냈다.

 그리고 침묵했던 나는 개털됐다. 쉬바.

 나는 홀로 아내의 전화번호를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3분정도의 격렬한 메가허리케인브레인스토밍 끝에 결국 생각해냈다.

 나는 잊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수첩에 아내의 전화번호를 적는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인간의 퇴보를 잠시 한탄해본다.

 아니, 나의 얕은 기억력을 한탄하고, 소심해서 병신 같은 나 자신을 한탄한다.

 나의 존재를 한탄한다. 쉬바.

 

 

 

 14.

 

 비는 오다말다를 반복하더니 밤이 돼서야 그쳤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간다.

 분주했던 분위기도 저녁 8시 이후부터는 잠잠해졌다.

 습하다.

 겨드랑이, 오금, 목... 살이 접히는 부분이 다 끈적인다.

 나와 김과장은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그동안 다른 간호사 두 명이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나와 김과장을 상대로 채혈 및 혈압, 심박동 등의 검사와 뭐 특별히 먹은 건 없는지, 지금 상태는 괜찮은지 등 간단한 질문을 하더니 또 사라졌다.

 그들은 우리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숨쉬는 육체 덩어리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내와 아이 걱정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전화를 약속했던 놈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개놈쉐리들.

 이제 입구에 있던 군인들도 방호복을 입었다.

 그리고 여전히 탄창없는 k2소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다.

 빈총을 보고 탈출을 감행해볼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역시 한창때인 20대 군인 한 무더기를 물리치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무전 주고받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웬 소란이지?

 

 자세히 귀를 기울여본다.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들린다.

 잠든 사람들이 깨어난 모양이다.

 천막 문을 걷고 밖을 내다본다.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산을 떨며 오가고 있다.

 잠에서 덜 깬 사람들 소리, 하품하는 소리,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의학 전문용어로 말하는 소리들, 저 멀리 윽박지르는 군인 소리 등등이 섞여서 들린다.

 간호사들은 깨어난 사람들에게 아까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인적사항, 갖고 있는 질병은 있는지, 복용하는 약은 있는지 등에 대해 한바탕 질문 세례를 한다.

 채혈과 혈압도 체크한다.

 그리고 나서 군인인지 경찰인지가 들어와서 어제 뭐했는지 최근에 어디 다녀온 곳은 없는지 최근에 평소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접촉한 적은 없는지 등등에 대해 고압적으로 묻고 사라졌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잠시 적막이 흐른다.

 잠에서 깬 그들은 과하게 차분한 느낌이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질문들이 오가는 황당한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옆 천막의 누군가가 입을 연다.

 거친 경상도 억양에 타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자신감에 찬 큰 목소리. 낯익은 목소리다. 우리 옆옆부서인 영업2팀의 팀장님인 것 같다.

 

 “야, 내 희한한 꿈 꿨다 아이가!”

 “무슨 꿈인데요?”

 “내가 모래밭에 딱 서가 있는데 내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하얀 벽이 있대. 그래가 내가 그걸 한참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마음이 엄청 차분해지고 편안한기라. 그래서 아, 이제 내가 죽어서 천국에 왔는갑따 하고 있었지.”

 “어!? 팀장님. 혹시 그 모래밭이 끝도 없이 펼처진 데 아니에요? 하늘은 회색이고?”

 “어! 맞다 우에 알았노?”

 “저도 똑같은 꿈 꿨어요!!”

 

 누군지 잘 모르는 목소리가 답한다. 아마 영업2팀 팀원이겠지.

 

 “맞나? 존나 신기하네?”

 “와 대박! 진짜 신기하네요. 근데 그 하얀 벽이라고 하신 거요. 벽 맞아요? 제가 봤을 때는 하얀 기둥 같던데요? 엄청나게 큰 기둥이요.”

 “몰라 내가 그 기둥이랑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가? 내는 벽처럼 보이던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그 기둥 뒷편으로 모래밭 끝나는 곳에 불그스름한 호수 있지 않았어요?”

 “몰라. 내는 벽만 보였다니까. 그라고 딴데 볼라캐도 안 움직여지던데? 고개도 안돌아 가고?”

 “와... 나 진짜 소름. 나도 박대리 너랑 팀장님이랑 똑같은 꿈 꾼 것 같은데? 어후, 나 소름 돋았어! 야, 근데 그거 기둥도 아니야. 엄청 큰 나무야. 좀 특이하게 생기긴 했는데... 어쨌든 나도 편안해서 그거 계속 넋 놓고 보고 있었잖아.”

 “아, 진짜요? 그거 나무에요? 명차장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아까 네가 말한 그 호수 속에 있었거든 거기서 보니까 커다란 흰색 나무더라고. 잎도 하나도 없고 가지만 있는. 그리고 그 호수라는 거, 호수가 아니라 바다야.”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내가 그 물속에 있었거든. 물이 엄청 짜더라고. 야, 근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좀 섬뜩하네. 물이 거의 턱까지 찼는데 왜 넋 놓고 그 나무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허허 명차장 니 싱거우니까 간되라고 꿈에서 바닷물에 담궈놨나보네. 허허허 농담이다. 알제?”

 “에이, 팀장님도. 명차장한테 그런 농담을... 차장님도 빨리 나오셨어야죠. 몸도 안 좋으신 분이. 근데 차장님, 꿈에서도 짠맛이 느껴집니까?”

 “음...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허허”

 

 저 명차장이란 사람은 1년전 즈음에 위암 때문에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사무실에서 갑자기 배를 잡고 쓰러져서 구급차가 오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 한동안 보이지 않아 물어봤더니 위암이라 했다.

 그래도 말기까지는 아니어서 절제 수술 후 무사히 복귀했다.

 원인은 거래처 접대를 위한 잦은 음주라고 누군가 말해줬다.

 복귀 후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타 부서로 옮기길 원했지만 회사는 허락해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한달 간의 병가로 회사에 손실을 입힌 마당에 타 팀으로 옮기면 거래처의 네트워크 유실로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

 회사는 사람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쉬바.

 오직 숫자뿐이다. 쉬바.

 그리고 명차장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두고 다른 걸 할 자신이 없어서였는지 여전히 영업2팀에 남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햐,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어떻게 같은 꿈을 꾸냐. 희한하네. 설마 뭐 집단 최면이나 무슨 큰 병 걸린 건 아니겠죠?”

 “재수 없는 소리고? 이래 말짱한데 무슨.”

 “그죠?”

 

 나도 놀랍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꿨던 꿈이 저 사람들이랑 같다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과장님께 같은 꿈을 꾸었는지 물어본다.

 

 “아니, 나는 그런 꿈 안꿨는데.”

 “아... 그렇군요.”

 

 그래, 김과장은 아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식을 잃지 않았다.

 뭐, 나도 그랬지만...

 이 이상한 현상이 찜찜하지만 사람들이 깨어났다는 것이 큰 안도감을 줬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고단하다.

 15.

 

 나는 또 다시 그 모래섬 위에 서 있다.

 지난번과는 다른 위치다.

 섬의 중앙부로 와서 그런지 맹그로브 나무는 정말 큰 벽처럼 느껴진다.

 지난번과 같은 잿빛 하늘이다. 붉은 바다 역시 저 멀리 보인다.

 거대하고 흰 나무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던 회색빛 조약돌은 가까이서 보니 매우 정교한 사람 모양의 석상이었다.

 크기도 딱 사람의 크기다.

 불쾌한 골짜기... 너무 사람 같아서 섬뜩하다.

 

 어째 지난번보다 석상 수가 늘어난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 석상들은 모두 섬 중앙의 나무를 향해있다.

 시선은 나무에 고정되어 45도 위를 쳐다보고 있다.

 모아이 석상이 떠오른다.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모래는 여전히 곱고 부드럽다.

 그러고 보니 난 맨발이다.

 근처에 있는 석상으로 다가가 본다.

 50대 중 후반의 여자.

 150대 중반 즈음의 키에 이마와 눈가 그리고 목에 주름이 져 있다.

 왠지 순탄치 않은 세월을 겪은 것처럼 보이지만 표정이나 옷차림은 단정하다.

 역시 어딘가 모르게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속눈썹, 머리칼, 오른쪽 눈썹 위에 작은 사마귀까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석상들을 만들었을까?

 ......!!

 아니다. 이건 실제 사람이다! 사람들이다!

 아까 옆 팀 사람들이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움직일 수도 없고, 고개도 안 돌아간다고 했었지...

 

 소름이 팔에서 시작해 등을 스쳐 양 볼을 타고 올라가 머리끝을 한번 찌릿 하고 울린다.

 섬뜩함에 나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고 만다.

 

 지난주 바닷가에서 까맣게 탄 내 팔이 눈에 들어온다. 팔보다 약간 더 짙은 내 손등, 약간 핑크빛 도는 손톱과 손톱 위쪽의 하얀 손톱초승달과 왼손에 껴진 은빛 결혼반지까지......

 새삼 나만이 색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안도감이 스친다.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감에 덜컥 겁이 난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몸을 꼬집고 때리고 해보지만 꿈에서 깨지는 않는다.

 한참동안 마음을 추스른다.

 다른 석상들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석상들은 흰 나무를 넋 나간 듯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그냥 여기저기 넓게 흩어져 있다.

 걸음을 옮겨본다. 7번째 석상을 지나칠 때 즈음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퉁퉁한 5등신 몸에 반쯤 벗겨진 머리,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친 반팔 와이셔츠와 그 속에 비치는 런닝 셔츠, 배꼽까지 올려 입은 바지, 굵은 검정 뿔테 안경 그리고 그 속으로 보이는 다소 지저분한 피부.

 내가 갓 입사했을 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서차장이다.

 지금은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다른 팀이 되었지만 그 사람 밑에서 인내했던 2년의 시간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윗사람에게는 파리처럼 비벼대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쌍욕하면서 괴롭히기, 쌍욕하면서 개쪽주기, 쌍욕하면서 책임 떠넘기기, 그냥 쌍욕하기 등등 정말 세상에 어떤 욕을 다 끌어모아서 해줘도 부족할 개호로자식이다. 쉬바바.

 팀원들이 위로해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미 면전에 사직서를 던졌을 것이다.

 뭐, 솔직히 말하면 작은 마음인 내가 사직서를 던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저 사람들의 작은 위로에 큰 위안을 얻으며, 또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겠지.

 하지만 정말 꿈속에서라도 마주친다면 내가 반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그 사람이 지금 내 앞에 넋 나간 채로 있다.

 

 귀싸대기를 때려볼까? 아니면 인중에 주먹을 날려볼까? 아, 둘 다 하면 되겠구나.

 

 석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막상 섬뜩한 석상에 손을 대려니 거부감이 들어 선뜻 움직여지지 않는다.

 발로 먼저 슬쩍 건드려 볼까 하는 생각에 발을 보니 어느샌가 신발을 신고 있다.

 

 역시 꿈이란 건 신기하군.

 

 발로 서차장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려본다.

 헉! 내가 건드린 정강이 부분이 마치 흰 종이위에 떨어뜨린 잉크마냥 회색에서 실제 색으로 번져간다. 30~40cm정도 까지 퍼져나가더니 다시 회색으로 돌아왔다.

 두어 번 더 건드려본다. 더 세게 건드릴수록 퍼져가는 면적이 넓어지다가 다시 돌아온다.

 복수심은 이미 온데 간데 없다. 이 섬뜩한 곳과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서차장님!”

 

 나는 서차장의 어깨를 힘껏 흔든다. 내 손이 닿은 두 어깨에서부터 본래의 색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 회색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힘차게 흔든다. 어깨에서 목으로, 머리로, 허리로, 다리로, 발끝까지... 드디어 온전히 사람의 색이 된다.

 완전히 제 색깔을 되찾은 서차장은 더 이상 회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색을 되찾은 서차장은 여전히 흰 나무를 보고 있다.

 

 “차장님, 차장님!”

 

 서차장 발밑의 모래가 갑자기 위아래로 크게 요동친다.

 나는 깜짝 놀라 오백팔십삼 걸음 뒷걸음질 친다.

 모래는 마치 커다란 뱀이 꿈틀대는 것 마냥 움직인다.

 모래의 꿈틀댐이 잠잠해 질 때 즈음 서차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발끝부터 사라진다던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진다던가 그런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다.

 그냥 없어졌다.

 

 

 

 16.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소리에 잠이 깬다.

 

 “안돼! 안돼! 제발!.... 제발... 흑흑”

 

 서차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천막과 멀지 않은 곳 같다.

 

 “제발... 제발...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 아니! 절대 안돌아가! ... 아니야... 무서워... 다시 돌아갈래...흑흑”

 

 서차장은 뜻 모를 혼잣말을 외쳐대다 흐느끼다를 반복하고 있다.

 천막 밖 다른 쪽에서 무전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띠리릭”

 “소대장님! 소대장님! 여기 상황 발생했습니다.”

 “왜, 뭔데?”

 “여기 2구역인데 말입니다, 환자 한명이 깨어난 것 같습니다”

 “아 씨발 진짜야? 몇 번 천막인데?”

 “213번 천막인 것 같습니다.”

 “아 존나 재수없네. 하필 내 근무 때. 씨발. 야, 근데 아까 몇 번이랬냐?”

 “213번입니다.”

 “야, 숫자 그따위로 부르게 돼 있나?”

 “아 죄송합니다. 둘 하나 삼번 천막입니다.”

 

 꼰대 놈. 그 와중에 갈구고 있다.

 

 “알았어. 애들 데리고 곧 갈 테니까, 다른 사람도 깨나 잘 보고 있어, 그리고 그 새끼 어디 못 가게 잘 감시하고....... 아, 그리고 함부로 손대지 마라 그냥 지켜보기만 해.”

 “알겠습니다”

 

 채 삼 분이 못되어 여러 사람의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천막 밖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잠시 일었지만 일단 가만히 누워 귀만 기울이고 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 무전기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아니다.

 차분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다.

 아마 의사인 것 같다.

 

 “아 그게 말입니다.....제가 여기 천막들 순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누가 소리를 지르길래 달려와서 천막 열어보니까 저 사람이 혼자 깨서 저러고 있었지 말입니다.”

 “그밖에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었어요?”

 “아,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전간호사, 캠코더 가져왔지? 전간호사는 지금부터 환자 상태 하나도 빼놓지 말고 찍고, 박간호사는 나랑 같이 환자 상태 확인합시다. 중위님은 환자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르니까 병사들이랑 옆에서 대기해주세요.”

 “안돼....제발....흑흑...”

 “저기요, 환자분. 저기요......”

 “돌아갈래....돌아가고 싶어....흑흑...”

 “저기요 환자분...... 박간호사, 이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아... 글쎄요...잘 모르겠는데요...”

 “박간호사, 여기 담당 박간호사 아니야? 어? 환자 신상 파악 어제 다 했다매! 아직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고 있으면 어쩌라는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어제 우리를 벌레 보듯 하던 간호사 목소리다... 쌤통이다.

 

 “어휴... 말을 말아야지.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환자분?”

 “...괴로워요... 괴로워요.....잘못했습니다......”

 “안되겠다, 박간호사, 이분 좀 잡아봐요..”

 “네......”

 “싫어!! 이 씹새끼들아 저리가!! 놔둬!! 내버려둬...!! 놓으라고!!”

 

 와장창 뭔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서차장의 소리가 들린다.

 

 “중위님!!! 이분 좀 잡아주세요!”

 “놔, 놔 이새끼들아!!! 놔!!!!!!!!!”

 

 5분정도 흘렀을까? 소란은 곧 잦아들었다.

 안정제라도 놨나보다.

 

 “여기서는 안 되겠네요. 이분 병동으로 옮깁시다. 감염자 중에 중간에 깨어난 건 처음이니, 잘 보살피고, 나는 바로 윗선에 상황 보고할테니까, 박간호사랑 전간호사는 지금 바로 연락해서 방 하나 비우라고 하고, 이분 이송시키세요. 다른 사람이랑 접촉 못하도록 통로랑 엘리베이터도 잘 비우라고 하고요. 가자마자... 에이, 아니다. 나도 같이 갑시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내 탓이다. 내가 서차장을 깨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본다. 오전 10시다.

 땀 범벅이 된 나를 발견한다.

 다시 적막감이 흐른다.

 다른 천막에서는 코고는 소리를 빼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더위에 다들 잘도 잔다.

 어제 같이 깨어 있던 김과장도 잠들어 있다.

 피곤한걸까? 아니다, 전염된 것 같다.

 오직 나만 깨어 있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거나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깨어 있는 걸 들키면 아까 서차장처럼 실험체로 끌려갈 것이 뻔하다.

 순간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가 우선한다.

 

 “펑.......”

 

 멀리서 폭발음이 들린다.

 여러 번 메아리치는 걸 봐서는 꽤 큰 폭발인 것 같다.

 누군가가 잠들었거나 해서 발생한 일이리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나 심각한 것 같다.

 같은 꿈을 꾼다는 것 외에는 증상도, 감염경로도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다.

 아까 보니 의사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두어 번 비슷한 폭발 소리가 들린다.

 불안하다. 그리고 두렵다.

 어린 딸과, 아내가 걱정돼 미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여기서 움직였다가는 무조건 잡힌다.

 잡혀서 실험체로 쓰이다가 재수 없으면 죽어서 영영히 딸과 아내 얼굴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신히 참아본다.

 미친 듯이 덥다.

 그리고 매미들이 힘차게 울어댄다.

 더위와 소음을 참는다.

 두려움도... 참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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