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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꿈꾸지 않는 자
작가 : 양박사
작품등록일 : 2019.11.4

한번도 꿈꿔본 경험이 없는 주인공이 어느 날 처음으로 기묘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동시에 잠들고 동시에 깨는 특이한 증상을 가진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주인공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운데...

 
꿈꾸지 않는 자 (9~12)
작성일 : 19-11-05 08:24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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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나는 어느 바닷가에 서있다.

 바람도 파도도 없다.

 차분하고 또 고요하다.

 묘한 느낌이다.

 

 여긴 어디지?

 

 하늘을 본다.

 잿빛 하늘... 한낮의 커튼 친 방 안처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늘이다.

 태양은 없다. 그리고 구름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하나 없다.

 흠 없고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잿빛 하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왠지 그렇다.

 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느껴진다. 조개껍질이나 자그마한 조약돌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모래다.

 그것이 그렇게 펼쳐져 있다.

 

 바다는... 일몰 전 도심 빌딩 위로 유난히 크게 보이던 그 붉은 태양 색이다.

 잿빛 하늘색과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미동도 없다. 굳어버린 촛농 마냥.

 호수처럼 미동 없는 붉은 노을 색의 바다... 섬도, 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다...? 나는 왜 저 파도도 없는 붉은 색의 물을 당연히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신기하게도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이 비정상적인 풍경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원래의 하늘이, 원래의 바다가 그랬던 것 마냥.

 

 내가 여기 어떻게 왔더라?

 

 이곳으로 오는 과정의 기억이 내게는 없다.

 

 기억 상실인가?, 최면? 아니면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기댈 곳도 하나 없는 곳에 서 있는 채로 깨어났단 말인가?

 

 ......

 나의 의지로 오지 않은 곳에 나는 서있다.

 ......

 

 ??!!!!!!!!!!!!!!!!!!!!!!!!!!!!..............이게 바로 꿈이라는 건가보다!!!!!!!!!!!!!

 

 신기하다. 놀랍다. 내가 꿈을 꾸다니... 드디어 꿈을 꾸다니!

 쌈바라도 추고 싶다. 어떻게 추는지는 모르지만.

 얼른 아내에게 자랑해야겠다.

 .......

 하지만 아내는 이곳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꿈에서 어떻게 깨어나는지 알 수 없다.

 사실 별로 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 ‘신비한’ 경험을 나는 만끽하고 싶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풍경은 금세 싫증이 난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형의 섬 같다.

 지름이 얼마나 될까... 10km? 아니 30km?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저 엄청나게 크다는 느낌뿐이다.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섬에는 산도, 들도 없다. 풀도 없다. 그냥 끝없는 모래로 이루어진 심심한 섬이다. 그래서 더욱 커 보이는 것 같다.

 섬 중앙에 지름이 1km 정도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하얀 맹그로브 나무가 압도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헌데 겨울나무 마냥 나뭇잎은 없고 줄기와 가지만 있다.

 하얀 맹그로브 나무가 잿빛 하늘과 붉은 바다를 더욱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중간중간 회색 조약돌들이 보인다.

 섬의 동서남북에는 검정색으로 된 기둥 같은 바위가 있다.

 해도, 달도 없지만 그 바위 기둥이 있는 곳은 왠지 각각 동서남북이라는 확신이 든다. 왠지 말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의심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쪽 바위를 향해 달려가 본다.

 힘든 느낌이 있지만 다리가 뻣뻣해진다던가, 숨이 차지는 않는다.

 

 꿈이란 건 정말 신기하군...

 

 한참을 달려 바위에 이른다. 높이가 5미터 정도 될까? 언뜻 볼 때는 자연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거칠게 깎은 듯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길쭉한 사각기둥을 거꾸로 처박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오벨리스크가 떠오른다.

 바위에 올라 더 멀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이나 오르려 시도했지만 역경사인데다가 표면도 미끄러워 여의치 않다. 사다리라도 있어야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쉬바. 화끈하게 포기한다.

 

 다시 슬슬 지루한 느낌이 든다.

 

 저 흰 나무로 가봐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삐삐-삐삐-삐삐-”

 

 뭐지? 무슨 소리지?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삐삐-삐삐-삐삐-”

 

 나는 비로소 그것이 내 알람 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낯익은 천장이 보인다.

 내 침대 위다.

 얼떨떨하다.

 

 아! 드디어 나도 꿈을 꿨다!! 흥, 뭐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애써 덤덤한 척 해본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묘하게 들떴다. 아니 들떴다기보다는 약간 우쭐해졌다.

 창밖은 이미 밝다.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옆을 돌아본다.

 아내가 없다.

 

 화장실에 갔나?

 

 그때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물 끓는 소리 같다.

 방문을 슬쩍 열어 부엌을 내다본다.

 아내가 요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말이다.

 

 이것도 꿈인가...

 

 연애시절 입버릇처럼 결혼하면 아침은 든든히 먹이시겠다던 마나님께서는 신혼여행 후 일주일간의 조찬을 끝으로 ‘조금 더 주무시기 위해서’라며 당당하고 과감하게 스스로의 공약을 철회하셨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셔도 손색이 없으신 훌륭한 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이진 않다. 내겐 다섯 가지 비타민과 철분, 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젖은 박스 맛의 다이어트 시리얼은 물론 물과 우유맛의 중간지점에 있어 물과 우유를 한 번에 섭취하는 것 같은(매우 효율적인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저지방우유가 있으니.

 물론 남편표 아침밥도 종종 그 자리를 채운다.

 뉴스에 나오는 혼밥족이 멀리 있지 않다.

 어쨌든 오늘은 아내가 4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히 꿈이리라.

 

 연속으로 두 번의 꿈을 꾸다니... 없던 꿈 복이 터졌군.

 

 “여보!”

 “응, 일어났어?”

 “이거 꿈이지?”

 

 대뜸 물어본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아뿔사, 저 살기...

 오랜만에 마음먹고 일어난 아내에게 나는 몹쓸 말을 뱉어 버린 게다.

 

 “뭐라고 했어?”

 

 아내 손에 들려있는 국자에서는 뜨거운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국자는 대포동 미사일처럼 나의 이마로 날아올 준비가 된 것 같다.

 

 “아니,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을 꿨거든.”

 “그래서?”

 “그래서 이것도 꿈의 연장선인가 해서. 허허허......맛있는 냄새나네? 콩나물 국이야?”

 “어, 얼른 씻고 준비해.”

 

 쉬바.......죽을 뻔했다.

 

 콩나물 국을 먹는다.

 간이 짜다.

 문득 꿈의 노을빛 바다가 떠오른다.

 그리고 꿈을 복기해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타인의 꿈들이 참 허무맹랑하다 생각했는데... 꿈은 원래 그런 건가?

 논리나 의지가 뒤엉켜 있는 공간... 아니, 시간인가?

 프로이드는 ‘꿈은 소원성취다’라고 했다.

 나는 어떤 것을 바랬기에 이런 꿈을 꾼 걸까.

 

 

 

 10.

 

 화요일이다. 이제 겨우 화요일이다.

 이제 막 출근했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다. 지겹다.

 그리고 여전히 덥고 습하다.

 

 “지잉~”

 

 국민안전처에서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폭염특보 경고일거다.

 벌써 5일 연속이다.

 뉴스도 연일 열사병에 쓰러지는 사람들 얘기다.

 사무실로 들어간다

 

 “대리님, 진짜덥죠? 어제 경북은 39.9도까지 올라갔대요.”

 

 사무실 입구에서 아이스커피를 든 채 옆팀 변주임이 살갑게 아침인사를 한다.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은 머그잔에 이슬들이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어, 왔냐? 진짜 졸라 덥다...근데 사무실이 왜케 어둡고 덥냐?”

 “아, 못 들으셨어요? 전기가 딸려서 오늘부터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전력 제한 한 대요. 아까 재난문자도 왔던데요?”

 “오잉? 그럼 지금이 우리차례야?”

 

 아까 재난문자가 폭염특보가 아니었나보다.

 

 “네~”

 “그럼 컴퓨터도 안되겠네? 퇴근해야하나?”

 

 잠시 신난다.

 

 “이따 오전10시부터 전기 들어온대요.”

 “애매하네...”

 “그니까요.”

 

 자리에 앉는다.

 어제 검토하던 서류를 들춰본다.

 어흑...잠시 앉아있었는데 등에 땀줄기가 흐른다.

 젠장 러닝도 안 입었는데...

 땀에 젖은 와이셔츠가 살에 붙어 꼴불견이 될게 뻔하다.

 짜증이 살짝 복받친다.

 

 “지잉~”

 

 또 문자가 왔다.

 

 또 누가 아침부터 문자야...

 

 서노돈이다

 

 [야.]

 

 [왜?]

 

 [곧 국가재난사태 선포한대]

 

 [더위먹었냐?]

 

 [진짜야 지금 무슨 전염병 도는데

 전파속도가 장난이 아닌가봐]

 

 [진짜?]

 

 [존나 극비다

 내 동창 중에 의사 있잖아. 거기서 나온 소스야]

 

 [치사율은? 높대?]

 

 [그건 아닌데 그 병이 좀 특이한가봐]

 

 [왜?]

 

 [특별히 아픈 증상이 없대]

 

 [쉬바 장난치냐?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데

 그게 무슨 병이냐?

 나도 지금 안 아파 임마]

 

 

 [아, 몰라. 어쨌든 심각한가봐.

 빨리 생필품 관련이랑,

 마스크 관련 주식 사라ㅋㅋㅋ]

 

 [ㅋㅋㅋ오키.

 근데, 좀비 이런 거 발생한 거 아니야?

 지난번에 유튜브에서 좀비마약 먹은 사람

 동영상 봤는데 존나 무섭던데;;]

 

 [야, 내가 음모론자지만

 그래도 좀비는 안 믿는다 멍청아]

 

 [똥싸고 있네. 랩틸리언인가하는 파충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 새끼가]

 

 [ㅋㅋㅋ암튼 또 소식 있으면 알려줄게]

 

  [ㅇㅋ]

 

 

 전염병이라... 또 한 번 난리가 나겠구나.

 집에 가면서 생필품이랑 라면이랑 쌀 좀 사다 놔야겠다. 당분간 외출도 자제해야겠다.

 

 어디보자 주식을 좀 사볼까?

 

 쉬바, 이미 관련주는 상한가다. 파는 놈이 없어 매매가 안된다.

 빌어먹을 돈에 환장한 놈들. 사람이 병에 걸리든 말든 돈이나 벌면 된다는 건가?

 그런 쉐리들 때문에... 내가 돈을 못번다. 쉬바.

 

 

 

 11.

 

 회사 근처로 외근 나온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간만에 청국장 무리들을 벗어나 냄새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날씨가 잔뜩 흐려져 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사무실에 들어간다.

 어둡다.

 아직 1시가 안되어서 그런지 불이 꺼져있다.

 사람들은 다들 일찍 들어왔는지 엎드려서 자고 있다.

 

 쯧쯧... 측은한 월급쟁이(나 포함)들...

 

 1시가 되자 다른 여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막 들어온 세경씨가 불을 켠다.

 다들 일어나서 업무를 시작한다.

 나도 자리에 앉아 ‘상무님 보고자료 Rev.12’를 작성한다.

 이 열두번째 수정본인 Rev.12는 사실 첫 번째 수정본인 Rev.1과 똑같다.

 선임들인 과장, 차장, 팀장한테 각각 돌려 까여가며 수정에 수정한 것을 상무님께 보고했다가 뒤지게 혼나고 다시 Rev.1을 들고 갔더니 ‘그래, 내말이 이거야! 여기 문구 조금만 손보면 되겠네.’라고 듣고 와서는 팀장은 차장한테, 차장은 과장한테, 과장은 나한테 서로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이 지랄들을 하고 있다.

 쉬바. 도대체 맨날 왜 이러는 거야.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다.

 

 어? 이거 지난번에 이과장이 작성했던 품의서 첨부해야 되겠는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옆자리에 있는 이과장에게 말을 건다.

 

 “이과장님! 저 상무님 보고자료 관련해서 지난번에 팀장님께 승인받으신 품의서 갖고 계세요?”

 

 답이 없다.

 

 응? 또 담배피러 갔나?

 

 의자를 뒤로 빼서 옆자리를 본다.

 이과장이 엎드려 있다.

 

 “과장님?”

 

 나지막이 불러본다. 여전히 답이 없다. 괜히 깨우다가 성부장 눈에라도 띌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며시 주위를 살펴본다.

 

 “.........!!”

 

 성부장부터 모두들 책상 앞에 엎드려 자고 있다. 분명 조금 전 불 켤 때 다들 일어났었는데.

 

 뭐야? 어제 세경씨 사건 때문에 성부장 비위 맞추느라 다들 과음했나보구만.

 

 “이과장님, 1시 넘었어요 일어나셔야죠. 허허.”

 

 이과장을 흔들어 본다.

 안 일어난다.

 괜히 시끄러워질까봐 그냥 놔둔다.

 사실은 얄미운 놈 한번 걸려봐라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아 몰라. 자는 놈들 내버려두고 내 일이나 하련다. 오늘은 빨리 퇴근해야지.

 

 

 

 12.

 

 오후 2시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화장실 가는 겸해서 옆 팀을 살펴본다.

 

 !!!!!

 

 옆팀 사람들도 다들 자고 있다. 아니, 우리 층의 모든 사람이 자고 있다.

 창밖을 본다.

 먹구름 때문에 어둡긴 하지만 분명 낮이다.

 사람도 차도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다.

 여기만 한밤중이다.

 손목에 찬 시계와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다.

 낮 2시가 분명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굵은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제 이곳에 홀로 깨어 있는 나는 조금씩 무서운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 다들 숨은 쉬고 있다.

 

 싸한 느낌이 든다.

 

 설마, 이게 아까 노돈이가 얘기한 전염병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스치니 행여나 전염될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 상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진다.

 

 밖에 나가야하나? 도움을 청해야하나? 119를 부를까? 그나저나 나는 왜 괜찮지? 나도 곧 쓰러지는 거 아냐? 나만 말짱한걸 보니 내가 숙주인가? 그러면 해부당하고 그런 거 아냐? 아니 이게 애초에 전염병은 맞는 걸까? 그냥 사람들이 단체로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나만 빼고 먹었던 무언가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덜컹”

 

 쉬바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 소리난 곳을 돌아본다.

 

 “어흐, 비 더럽게 많이 오노.”

 

 우리 팀의 김과장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들어온다.

 어깨가 반은 젖어 상체가 비췬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어제, 오늘 지방으로 출장 갔다가 지금 돌아온 모양이다.

 

 “허대리, 와 혼자 서 있노?”

 “과장님!!”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돈다. 사람이 이렇게 반가워본 적이 있었을까?

 

 “어, 왜?”

 “여기 좀 와서 보세요. 지금 사람들이 이상해요.”

 

 김과장이 다가와서 사람들을 살펴본다.

 전염병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만둔다.

 김과장의 안위보다 내 안위가 앞섰기 때문이리라.

 

 “열도 없고....... 그냥 자는 것 같은데? 일마들 뭐 단체로 잘못 뭇나?”

 

 나도 비로소 다른 직원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생긴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일마들 단체로 처자고 있노? 일과시간에!”

 “근데 우리팀만 그런 게 아니라 저기 옆팀이랑 다 그런데요?”

 “어? 진짜네? 와이라노? 야, 허대리 니 뭐 테러한거 아이가? 왜 니만 말짱하노?”

 “아니 과장님. 제가 무슨 테러를 해요.”

 “농담이다 임마.”

 “119에 신고해야 되는 건 아닐까요?”

 “일단 이과장이랑 윤차장님 먼저 함 깨워보자.”

 “네....”

 

 나는 이과장을 김과장은 윤차장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이과장님, 일어나보세요!”

 

 큰 소리로 아무리 흔들어도 요지부동이다.

 문득 어제 이과장 때문에 밤늦게까지 야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쉬바. 얄미운 마음에 소심하게 뺨을 ‘톡’ 쳐본다.

 반응이 없다.

 이것은 결코 어제의 복수가 아니다. 다만 깨우기 위한 행위일 뿐.

 고개를 들어 김과장 쪽을 본다. 윤차장을 열심히 흔들어 깨우고 있다.

 기회는 찬스다.

 나는 이과장의 뺨을 때린다. 여전히 소심하다. 소녀의 볼터치 마냥.

 한 번 더 김과장 쪽을 본다.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때리지만 미동도 없다.

 두 세 번의 소심한 범죄가 들키지 않자 대번에 큰 용기가 생긴다.

 

 “짝!! 짝!! 짝!!”

 

 고요한 사무실에 이과장의 뺨 맞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내가 해놓고 내가 놀란다. 얼른 김과장 쪽을 본다.

 김과장도 놀랐는지 내 쪽을 보고 있다.

 

 “과장님!! 일어나보세요!!”

 

 나는 재빨리 둘러댄다. 김과장도 이제 포기를 했는지 이쪽으로 다가온다.

 

 “허대리!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119 부르자.”

 “알겠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119에 전화를 걸어 이곳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해준다.

 장소는 어딘지, 쓰러져 있는 인원은 몇 명인지 특이한 증상은 없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기다린다.

 

 아, 노돈이한테 물어봐야겠다.

 

 핸드폰을 꺼낸다.

 

 [노돈아]

 

 [ㅇㅇ]

 

 [니가 아까 얘기했던 전염병 있잖아.

 좀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수 있어?]

 

 [오키. 기다려봐]

 

 2분 정도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다. 아마 아까 그 의사친구랑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다.

 

 “지잉”

 

 답문이 왔다.

 

 [걔도 잘은 모르는데 그냥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잠이 든대.

 근데 왜 묻냐?]

 

 [야, 아무래도 그거 우리 회사에 퍼진 것 같다.]

 

 [진짜?]

 

 [지금 나랑 과장님 한분 빼고 다 자고 있어]

 

 [이 대낮에?]

 

 [응. 존나 무섭다.]

 

 [넌 괜찮어?]

 

 [응, 다행히. 아 ㅅㅂ 나도 걸린 거 아냐?]

 

 [뭐 단체로 먹거나 한 거 없어?

 아니면 단체로 어디 갔다던가]

 

 [전혀 없는데.......]

 

 창밖에서 여러 대의 차 소리가 난다.

 창밖을 내다본다.

 구급차 세 대가 우선 도착했고 저 멀리 몇 대가 더 오고 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서 여러 대가 동원된 것 같다.

 이상하게도 모두 사이렌을 끈 채다.

 

 [야, 구급차 왔다. 이따 또 연락할게]

 

 [ㅇㅋ]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구급차에서 군인들이 내린다.

 

 이상한데?

 

 방독면을 쓴 군인들은 비 따위는 전혀 아랑곳 않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바퀴달린 들것을 끌고 건물 로비로 마구 들어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쉬바. 진짜 나도 걸린 거 아냐? 설마 우리 딸하고 아내한테 내가 옮긴 건 아니겠지? 아냐, 내가 걸렸으면 나도 저 사람들 같이 자고 있겠지...

 

 우리가 있는 4층에 엘리베이터가 서고 군인들이 들어온다.

 나는 사무실 입구 유리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들어와서 사람들을 하나씩 실어 나른다.

 무슨 일인지,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인지 묻고 싶지만 물어볼 틈을 주지 않는다.

 나는 몇 번 말을 건네려다 이내 포기하고 김과장 곁으로 간다.

 

 “과장님, 뭔가 좀 무시무시한데요.”

 “아 씨, 그러게. 하아... 이거 심상찮은데?”

 

 그 때 무전기를 든 군인이 다가온다. 계급장을 보니 중위다.

 참 개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중위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신고하셨죠? 저희랑 같이 좀 가시죠.”

 “어...저기 이거 무슨 일이에요?”

 “야, 여기 두 사람도 같이 데리고 가!”

 

 쉬바. 무시당했다. 뭐 늘상있는 일이지만 또 늘상 주눅든다.

 보다 못한 김과장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든다.

 

 “뭐하노 허대리? 어이! 저기요!! 이 사람들이 왜 이래 됐어요? 이거 무슨 일이에요?”

 “같이 가시죠.”

 “아니, 이 아저씨가 대답은 안해주고 딴소리고? 왜 이러냐고 물어보잖아요.”

 “저도 잘 모릅니다. 일단 가시죠. 뭐하냐? 이 분들도 데리고 가라니까!!”

 

 중위가 병사들에게 소리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돼요?”

 “아저씨, 아저씨들도 감염 의심자들이에요. 여기저기 세균이나 퍼뜨리고 다닐 겁니까?”

 “뭐? 아저씨? 임마, 이거 나이도 어린 게 어데 막말이고?”

 

 김과장은 우리를 죄인처럼 취급하는 말투가 계속 거슬렸나보다.

 

 “저기요, 우리 아직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소심하게 나도 한마디 해본다.

 쉬바. 항상 마음속은 상남잔데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소녀마냥 가녀리다.

 

 “됐고요, 빨리 내려가서 구급차에 타십시오.”

 “일마 이거 싸가지 존나 없네. 딱 보니 스물 몇 살 밖에 안돼 보이는구만. 어린놈의 자슥이! 야, 니 몇 살이고?”

 

 김과장과 중위의 언성이 높아진다.

 나는 소심하게 김과장 오른쪽 뒤편에 반발짝 정도 물러나 있다.

 공기도 습기도 잘 통하지 않는 방독면 때문에 저 중위도 짜증이 가득한 것 같다.

 

 “하아....... 죄송합니다. 구급차에 탑승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이래 정중하게 얘기해야지.......어린놈의 새끼가 말이야.”

 “저기 중위님, 근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좀 알고나 갑시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정신없이 계속 출동명령 들어와서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아...”

 “허대리 가자.”

 “어디요?”

 “빨리 구급차 타고 가야지.”

 “아니, 과장님 근데 갑자기 이렇게 순순히 따라가시는거에요?”

 “절마가 사과했잖아. 카고 혹시 모르니까 우리도 정밀검사 받아봐야지. 딴사람한테 옮길 수도 있고.”

 

 사과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

 

 우리는 로비로 내려와 안내를 따라 구급차를 탄다.

 병사 2명이 우리를 따라 올라타자 구급차가 바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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