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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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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1 14:26     조회 : 480     추천 : 3     분량 : 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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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초등학생 땐 아무도 몰랐던 IMF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쯤 우리나라에서 UN보다도 유명한 국제기구가 되었다. 외환이 뭔지, 달러가 뭔지 잘 몰랐던 난 우리나라가 왜 남의 나라 돈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는지, 남의 나라 돈을 안 가지고 있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됐지만,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뭐 큰일이 났긴 났구나 싶었다. 우리 집은 사실 타격이 작았다. 오히려 집이 망해서 이사 하는 사람이 늘어 수입이 조금 늘었다. 대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들은 이사비용이 없어 일을 시키고 배 째라 할 수 있으니 돈을 선불로 받아야 한다고 그가 말해주었다. 그때 갑자기 전학을 가는 애들 열에 아홉은 아빠가 실직을 하거나 사업이 망해서였다. 못된 난 어쩌면 그런 아이들을 보며 조금은 고소하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너희 아빠도 이제 정장 안 입고 다니지?’ ‘너희도 이제 나만큼 가난하지?’ 하며. 아마 그래서 벌을 받았는가 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가 엄마를 만나기도 전에, 그는 ‘아는 형님’이 사업을 시작하는 데 연대보증이란 걸 서줬다. 아는 형님은 자신의 사업이 잘되고 그의 사진관이 망했을 땐 그를 모른 척했지만, 자신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해외로 슬쩍 도주했고, 채권자들은 연대 보증을 선 그라도 닦달을 해야 했다. 원래 가난했던 우리 집에선 그때 유행처럼 번졌던 빨간 딱지의 공포 같은 건 구경 못 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학교에 갔다 돌아오니 그가 현관에서 나를 막고 집에 못 들어가게 했다. 집에 일이 좀 생겼는데 너무 놀라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그를 밀치고 들어가 보니 구질구질한 세간에 빨간 딱지가 다닥다닥 발려있었다. 우리 집 가구랑 전자기기는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그가 건져온 건데 거기 빨간 딱지가 붙어 있으니 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거 팔아봤자 얼마나 한다고. 문제는 그 꼴난 집 전세금도,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 엄마가 들어둔 적금도, 다 홀라당 날아가게 생겼다는 거였다. 그의 트럭이 법적으론 운수회사 이름으로 되어있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방바닥엔 여러 사람의 구둣발 자국이 엉겨있었다. 개새끼들, 신발은 벗고 들어올 것이지. 지들 사는 집 아니라고.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보면 기절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엄만 어딨어?” 빨간 딱지를 붙이고 있는 내 철제 책상에 가방을 던지며 그에게 물었다. 이럴 때 엄마 우는 소리라도 들어야, 엄마랑 같이 그 인간 욕이라도 좀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는 엄마가 화가 나서 잠시 나갔으니 곧 돌아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숙제를 하라고 했다. 다행히 내 책들에는 빨간 딱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빨간 딱지 아저씨들도 양심은 있겠지. 의자에는 빨간 딱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뒤집어 보니 밑에 붙어있었다. 이사 올 때 엄마가 푹신하게 넣어둔 솜 쿠션이 가라앉고 커버가 터져 뭉개진 솜이 삐질삐질 나오는 의자였지만, 그 병신 같은 인간이 십수 년 전에 한 싸인 하나 때문에 누군가 가져가 버린다니 아깝고 분했다.

 

 책을 폈지만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엄마는 어디로 갔나? 우린 이제 어디서 살까? 엄마와 그는 이혼을 할까? 그럼 난 엄마랑 살아야지. 다시 거실로 나갔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그가 “배고프나? 나가서 밥 묵을까?” 했다. “지금 엄마도 없는데 어떻게 나가서 밥을 먹어!” 했더니 그가 피썩 움츠러들더니 “엄마 돌아오겠지.” 했다. 그 행색이 너무 초라하고 가여워 짜증이 났다. “엄마 어딨는진 알아?” 그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럼 씨발 찾아야 될 거 아냐.” 난생처음 소리 내본 ‘씨발’이란 단어였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가 ‘씨발’에서 흠칫하더니 이내 또 움츠러들었다. 저러다 그 인간이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질 것 같아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더니 밖으로 나갔다.

 

 자정이 되어도, 새벽 두 시가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빨간딱지 아저씨들이 집에 들어와 우리 살림살이를 다 가져갈까 봐 걱정돼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깨어 있다 한들 뭐 달라질 게 있겠느냐마는 자고 있다가 당할 순 없었다. 걸레에 물을 묻혀 바닥의 구두 자국을 다 지워 없앴다. 엄마가 돌아와서 구두 자국을 보고 다시 돌아가 버릴까 봐. 내 요와 이불을 거실로 가지고 나와 누워 집을 지켰다. 누가 들어오면 다 죽여 버릴 테다. 누가 뭐래도 여긴 우리 집이고 누구도 내 의자와 책상을 가져가게 할 순 없어. 내 돈 주고 산 건 아니래도 내 꺼란 말이야.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젖을 만지면 가슴의 먹먹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해가 뜨자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열쇠가 한 벌밖에 없는 우리 집은 집을 비울 때 열쇠를 우유 구멍 아래 두곤 했는데, 열쇠를 두고 가자니 너무 불안했고, 열쇠를 들고 가자니 엄마가 못 들어오는 게 문제였다. 학교에 가지 말까 생각을 해봤지만,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열쇠가 한 벌뿐이라 집을 비우기 불안하다는 게 정당한 결석사유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이런 구질구질한 사정을 설명할 용기도 없었다. 결국 열쇠를 우유 구멍 아래에 두고 집을 나서다가 연습장을 찢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나린이 밥 잘 챙겨 먹고 학교 가요.

 너무 슬퍼하지 마요.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나린이가.

 

 밥 잘 챙겨 먹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엄마가 돌아와 밥을 챙겨주고 도시락을 싸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비로소 배가 고프고 밥에 김치라도 싸올 걸 하고 후회가 됐다. 돈도 없었지만 매점이 없는 학교였는지라 뭘 사 먹을 수도 없었다. 교실 뒤에 놓인 우유 상자엔 까먹거나 먹기 싫어서 애들이 사놓고도 안 먹은 우유가 항상 한두 개 남아 하굣길에 주번이 가져다 버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느라 바쁠 때 교실에서 나오며 재빠르게 우유 하나를 집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어 터질 것 같았지만 건물 뒤 아무도 없는 으슥한 곳에 다다를 때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헛구역질이 나오는 걸 애써 참으며 우유를 들이켰다. 바로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배가 아픈 건지, 고픈 건지 모를 고통이 계속 이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와 벨을 눌렀다. 누군가 있기를 바랐다. 엄마가 아니면 그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벨을 수십 번 눌러도 대답이 없자 우유 구멍에 손을 넣었다. 열쇠가 잡혔다. 문을 따고 들어가다가 멈칫했다. 집에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다 박살이 나 있었다. 빨간 딱지를 붙인 꾸질꾸질한 식탁이며 진열장도 부서져 있었다. 빨간딱지 아저씨들은 가져가 팔면 팔지 부시진 않을 텐데. 엄마와 그가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엄마와 그가 욕을 하며 그릇을 집어 던지는 모습이 안 봐도 훤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엄마를 찾긴 찾았나 보군. 어차피 구둣발 아저씨들이 다 가져갈 거, 잘 부셨어, 엄마. 발을 다칠세라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갔다.

 

 냉장고에 붙여놨던 내 편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 떨어졌나 찾아도 없는 걸 보니 그나 엄마가 버리거나 가져갔나 보다. 냉동실 구석에서 찬밥 한 덩이를 찾고 냉장고에서 달걀과 김치를 꺼냈다. 엄마가 담근 김치는 맛있어서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김치 한 주먹에 김칫국물 세 스푼이면 간이 딱 맞는 맛좋은 김치볶음밥을 만들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프라이팬 한쪽에 만든 달걀 프라이를 입에 후루룩 밀어 넣으며 맛있게 먹었을 텐데 입맛이 돌지 않았다. 프라이팬째로 냉장고에 밀어 넣었다. 엄마는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자기가 만든 김치볶음밥보다 더 좋아하니 엄마가 오면 같이 먹고 싶었다.

 

 방문이 닫혀 있던 내방은 다행히 깨끗했다.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의자 밑에 붙은 빨간 딱지를 뗐다. 접착력이 강한 스티커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손톱을 세워 벅벅 긁으니 손톱이 갈라지고 부러져나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책상에 있는 딱지도 긁어 뜯어냈다. 손끝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서야 그만뒀다. 의자에 앉아 깨진 손톱을 깎았다. 발톱도 바짝 깎았다. 엄마가 보면 신문지를 깔고 하라고 한소리 했을 테지만, 엄마도 거실 한가득 깨진 그릇을 널브러뜨려 뒀는데, 손톱 발톱이 뭐 대순가 싶었다.

 

 방바닥에 흩뿌려진 손발톱을 내버려 두고 거실로 나와 집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는 휴대폰이 없었지만 그는 일 때문에 휴대폰을 항시 가지고 다녔다. 그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전화를 하려 하니 끝 번호가 2454였는지 2494였는지 헷갈렸다. 새삼 그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호 다 전화를 해 볼 수밖에 없었다. 2454는 없는 번호라 했다. 2494로 전화를 걸자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음만 나왔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부부싸움 후 그가 며칠 집에 안 들어온 적은 많았지만 엄마는 외박을 하거나 집을 오래 비운 적이 없었다. 그와 치고받고 부수고 싸우다가도 내 끼니는 항상 챙겨주고 김치 반찬뿐이더라도 도시락은 항상 싸주었던 엄마다. 엄만 끼니를 챙기는 걸 소중히 여겼으니까. 엄마는 나를 혼내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밥을 차려줬다. 토라진 내가 밥맛이 없다고 먹기를 거부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며 강제로라도 입에 밥을 쑤셔 넣을 듯하던 엄마였다. 엄마는 어디서 뭘 하나. 엄마는 밥을 먹었을까? 다시 허기가 졌다. 아까 만들어둔 김치볶음밥을 꺼냈다. 그새 밥이 식어 꾸들꾸들해졌다. 다시 데우긴 귀찮았다. 안 들어가는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먹다 보니 목이 막혀 냉장고를 뒤졌지만 물이 없었다. 서둘러 보리차를 끓이고 냉장고서 곯은 사과 하나를 찾아 우적우적 씹었다. 사과에 수분이 많지 않아 목이 더 막혀왔다. 홧김에 밥을 더 쑤셔 넣었다. 밥을 다 비우고 보리차를 마셨다. 배가 터질 것 같고 슬슬 잠이 왔다. 잠이 들며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시험 기간인데. 엄마가 있었으면 시험공부를 시작하라고 부산을 떨었을 텐데.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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