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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1_8
작성일 : 16-10-11 14:21     조회 : 428     추천 : 4     분량 : 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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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비밀은 지워졌고 대신 그와 나만의 비밀이 만들어졌다. 내 비밀은 평생 나만 알고 있으려 했는데 비슷한 상황은 오 학년 때도 육 학년 때도 자꾸 반복되었다. 담임들은 스승의 날에도 작은 선물 하나 들고 오지 않는 나를 공공연히 무시했고 나보다 공부를 못해도 최소한 화장품 하나라도 들고 올 수 있는 형편의 아이들을 예뻐라 하며 칭찬해 주고 ‘착한 어린이 상’이며 ‘바른 어린이 상’ 같은 없는 상도 만들어 줬다. 엄마한테 뭐라 한마디 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산수 공부를 열심히 한 죄로 셈이 바른 나는 엄마가 쓰는 가계부를 읽을 줄 알았다. 엄마의 바람대로 전세금 대출을 갚고 적금을 부어 목돈을 마련해 다시 대출금을 얹어 방 두 개짜리 우리 집을 마련하려면 지금보다 덜 쓰면 덜 써야지 더 쓸 돈은 없었다. 선생 월급이 그와 엄마가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을 텐데, 그 집 살림에 보태주긴 내가 싫었고 너무 아까웠다.

 

 ‘바른 어린이 상’을 자주 받던 장진우는 나와 사, 오, 육 학년 다 같은 반이었는데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 아이는 전혀 바르지 못했다. 치마를 들썩이며 아이스께끼를 하는 건 뭐 남자애들이 다 하는 짓이라 쳐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우리 아빠가 트럭운전사라고 놀리고 소문을 내는 건 치사하고 비겁한 행동이지 바른 어린이가 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때도 없었다. 아이스께끼는 그 아이 바지라도 벗겨 복수할 수 있어도, 그 아이 아빠가 훌륭하신 치과 의사인 건 담임들이 수업시간에도 입이 마르게 칭찬했던지라 놀릴 만한 일이 못 됐다. 그냥 그 아이를 제치고 수학경시대회에서 일 등을 했을 때 속으로 ‘병신 새끼’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육 학년 때 졸업을 몇 주 안 남기고 더 좋은 학군으로 전학을 가던 그 아이가 나에게 “나 사실 너 되게 좋아했다.” 했을 때, 대번 “지랄하네.”라고 내뱉은 나도 바른 어린이는 못됐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일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내가 중학교 반 배치 고사에서 전교 일 등을 하자 어이없게도 내 초등학교 육 학년 담임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하필 그날은 엄마가 일을 안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담임은 원래 반 배치 고사에서 일 등을 하면 으레 어머님이 떡을 돌리는데 연락이 없으셔서 전화를 드린다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나 한번 보고 싶다고 너한테 계속 말했다는데 왜 엄마한테 말을 안 했어?” 하는 엄마한테 왜 그렇게 순진하냐고 소리 지르며 여태까지 선생들이 나한테 한 말들을 다 전달해주고 해석도 붙여주려다가 꾹 참았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마침 집주인이 전세를 올려 달라 해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던 엄마였지만 하늘 같은 선생님이 떡을 사와야 한다니 있던 전세금도 빼서 떡을 할 기세였다. 육 학년 선생님들만 먹을 양을 해야 하나 아니면 전교 선생님들이 다 먹을 떡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엄마에게 내가 나지막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하지 마. 엄마 돈 없잖아. 졸업한 지가 언젠데, 떡 해준다고 그년이 나한테 잘해줄 것도 아니고, 해주려면 지금 중학교에 하지 미쳤다고 거기다 돈을 왜 써, 아깝게. 하지 마. 안 해도 돼.” 엄마는 어디 선생님한테 그년이 뭐냐며 날 타일렀지만 “선생이 선생질을 해야 선생이라 부르지, 돈만 밝히는 그런 년은 선생이라고 안 불러도 돼. 떡 할 돈이 있음 내 교복이나 새 걸로 사줘. 떡 하기만 해봐. 내 교복을 다 찢어버릴 테니까.”하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엄마는 같이 부업을 하던 한 아줌마 딸이 삼 년 내내 입던 교복을 얻어왔다. 그 교복은 겉이 닳아 맨질맨질했고 나한텐 너무 커 치마를 세 번 접어야 종아리가 보였다. 여기저기 터지고 헤져서 엄마가 기워놓은 데도 많았다. 그런 교복을 입고 방에 들어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결국 떡을 안 했다.

 

 육 학년 담임은 부모가 돈을 갖다 바치는 애들만 예뻐하기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선생이었다. 하루는 자기 책상 서랍을 조금 열어놓고 교무실에 갔는데 그 서랍 사이로 ‘김찬영 母’라고 쓰인 봉투가 삐죽이 나와 있어 반 아이들이 다 보고 소문을 냈다. 그년은 그날부터 딱 일주일 동안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김찬영에게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는다는 둥 시답잖은 칭찬을 해줬고, 덕분에 안 그래도 별 볼 일 없는 아이였던 찬영이는 반에서 왕따가 됐다. 그동안 받은 촌지 덕분에 인지 그년은 우리 동네 고급 아파트에 살았는데 떡 독촉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하는 그년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년은 나를 보고 외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치기 어린 마음에 난 인사도 없이 그년을 째려보며 입 모양으로 ‘씨발년’ 했다. 그년이 뭐라 하면 어떻게 할까, 날 한 대 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심장이 터질 듯 긴장했는데 그년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도 지 하는 짓이 잘못된 거인 줄은 아는구나. 갑자기 그년이 불쌍해 보였다. 그년을 정면으로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씩 쪼개준 다음 그년 앞을 꼿꼿이 걸어갔다.

 

 그 시절의 난 그렇게 당당했다. 항상 배가 고픈 조용한 키 작은 아이였고, 가진 것도 친구도 없었지만, 내 할 일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그다음엔 엄마 말대로 탄탄대로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기도 없고, 적성이나 하고 싶은 건 사치였고, 엄마가 하라는 선생은 점점 하기 싫어졌지만, 그나마 공부라도 잘해서 그 대학이란 데 가면 다 해결될 테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싸주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만 들은 도시락은 나 혼자 먹으니 놀릴 사람이 없어서 좋았고, 엄마가 담임에게 내 이름 적힌 봉투 같은 건 안 줬으니 최소한 왕따는 안 당했다. 학교 끝나고 여느 아이들처럼 쭈쭈바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었지만, 군것질을 안 해 군살 없이 마른 몸매를 유지했으니 좋았다. 행복했다는 건 아니다. 그냥, 불행하기엔 너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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