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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작가 :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다.

 
10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2)
작성일 : 19-11-04 10:45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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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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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은 말을 이었다. 이쯤 되면 유성지를 왜 불러 세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가 소속된 회사는 기업 광고보다는 공익 광고를 많이 다루는 회사예요. 기업 쪽으로는 아직 발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최근에 선전하는 시계가 작가님 디자인인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팬으로써 부끄럽습니다."

 

 유성지는 성의 없는 태도로 이완의 말을 흘려 들었다.

 

 '자화상 얘기를 한다더니, 결국 일 얘기잖아. 계약을 따내려는 심산인가, 신선하네. 요즘 회사는 사원을 이런 식으로 굴리나.'

 

 이완의 칭찬은 사탕발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유성지는 시계 디자인을 맡은 걸 후회했다. D업체의 팀장은 뻔질나게 유성지를 불러댔다. 새 계약을 원한다고 했다.

 

 '지긋지긋해.'

 

 어떤 날은 저런 이유로, 다음 날은 이런 이유로 유성지에게 회사를 방문해 줄 것을 요구했고 할당량은 팀장의 부름을 그대로 띄웠다. 유성지가 거절을 내비쳐도 할당량 카드는 유성지의 의사를 가볍게 무시했다.

 

 오늘도 팀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집에서 D업체 본사까지 가는 길을 외울 지경이었다.

 

 "작가님 디자인인 건 못 알아봤지만, 그래도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남녀노소 잘 어울리고, 마케팅보다는 디자인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에도 산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완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대화에 흥미가 드는가 싶으면 갑자기 따분해졌다. 당연했다. 이완 자신도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었다.

 

 의례적인 피드백을 쏟아 놓으면서, 이완은 원래 세계였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유성지가 디자인한 시계는 할당량 시계가 아니라 일반 시계일지도 몰랐다. 차고 넘치는 게 시계고 쏟아지는 게 새 디자인이니 원래라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 유성지가 디자인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색으로 라인업을 내놔도 잘 팔릴 것 같던데요."

 "...그런가요."

 

 이완은 나가는 문에 시선을 고정한 유성지의 눈치를 살폈다. 길 한 가운데서 유성지를 멈춰 세우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 때는 유성지가, 서현주가 좋아하는 작가인 줄도 모르고 돌려 세우지 않았던가. 얼굴이 낯익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일을 여러 차례 겪고 나니 뻔뻔해진 건가, 이완은 생각했다.

 

 "실물을 보니까 더 예쁘더라고요. 저도 하나 살까 하는데."

 "......네."

 

 유성지는 마지 못해 대답했다. 잠이 간절했다. 하품이 나올 것 같았다. 잠시나마 가졌던 의문은 지루함으로 변했다.

 

 이완은 말주변이 좋고 눈치가 빨랐다. 유성지가 그만 자리를 뜨고 싶어한다는 걸 잘 알았다. 이완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그랬을 것이다. 이완은 주절거리며 아무 말이나 했다. 유성지에 대해 궁금했던 마음은 할당량이라는 발언 아래 스러졌다.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제가 독특하게 봤던 작품은 사 년 전에 행위 예술로 진행하셨던......"

 "저기, 자화상 관련해서 할 말 없으면 이제 그만 일어나도 될까요."

 

 대화가 부산스러웠다. 몇 년간 이완은 회사 집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느라 바빴다. 유성지를 작가로써 존경했다. 그렇지만 제 앞길조차 보이지 않는 시기에 취미 생활에 바칠 시간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이완은 최근의 유성지를 몰랐고, 그렇다는 건 곧 유성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활발하고 거만했던 예전과 달리, 말하는 법도 잊은 것 같은 지금의 유성지가 생면부지의 사람처럼 낯설다는 게 증거였다.

 

 "제가 작가님을 너무 붙잡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네."

 

 유성지는 괜찮다는 말도 없이 일어섰다.

 

 서현주 역시 하루하루 대학원에 찌들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비단 유성지 작가 뿐 아니라, 서현주와 취미 생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되었다는 걸 이완은 깨달았다. 그 동안 이완은 유성지라는 사람 자체를 잊고 있었다.

 

 서현주의 본가에 걸려 있던 유성지 자화상은 서현주가 응모해 받은 거였을까. 이완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유성지를 좋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유성지 작가님,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네?"

 

 유성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녹아 있다 못해 폭발할 것 같았다. 그게 뭔진 모르지만 절대 궁금하지 않으니 빨리 말하고 꺼지라는 투였다.

 

 '네, 한 마디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담아둘 수 있다니. 역시 예술가인가.'

 

 이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그 때까지도 유성지 욕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가, 유성지가 일어났을 때에야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다물더니 자리를 떴다.

 

 원대한 가치관이나 꿈을 가지고 있을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사실은 일에 쫓겨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유성지 같은 사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이완의 환상이었다.

 

 "작가님, 사실 저는 할당량을 채우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유성지를 잡아둬야 할 것 같았다.

 

 "뭐라고요?"

 "할당량 얘길 하시니까요. 저도 제 얘길 하고 싶어서요."

 

 이완은 뻔뻔하게 대꾸했다. 이 얘기 말고는 할 얘기도 없었다.

 

 자화상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말고는 죽어 있던 유성지의 까만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완은 유성지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이 젊은 (이완보다 나이가 있긴 했지만) 작가는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추지한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 대리에게도, 장수인에게도, 하물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삼촌에게는 더더욱.

 

 "저는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요. 죽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유성지는 당황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잖아도 희멀건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의문문이 낯에 두둥실 떠올랐다. 자리에 다시 앉기는 했다.

 

 "그런데 죽어지지 않더라고요. 이 세계는 죽는 게 참 쉬운데,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가요."

 

 유성지는 되물었다.

 

 "저는 할당량을 채우지 않아도 죽지 않거든요. 재미있죠."

 

 속이 시원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던 이발사의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게 대꾸조차 하지 않던 유성지가 흔들리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안 채우면 그냥. 자정이 지나면 다음 날짜로 넘어가요. 넘어가고 넘어가다 삼일 쯤 지나면 다른 걸로 바뀌고, 그렇더라고요."

 

 유성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머플러를 쥐고 있던 손이 떨렸다.

 

 "지쳤어요. 정말. 너무 믿기 힘든 일이 자꾸만 일어나니까. 할당량 같은 거, 죽지도 않으면 안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이잖아요. 돈은 벌어야 해서 회사는 출근했지만... 우습죠."

 "......네?"

 "아, 물론 믿기 힘드시겠죠. 이 세계 사람들에게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죽는 건 당연하니......"

 "아니요, 그거 말고요. 안 채우고 있다고요, 할당량을?"

 "...? 네? 그렇죠. 굳이 하지 않아도 죽지 않으니까, 어쩌면 작가님 역시 그렇게 할당량을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할당량 때문에 작품 활동을 하시는 거라면......"

 "당신 제정신이에요?"

 "네?"

 

 이완은, 유성지가 손톱만큼이라도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완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때문에 누가 죽었으면 어쩌려고요?"

 "네? 제가 할당량을 채우지 않는 것과... 누군가가 죽는 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완은 귀를 의심했다. 유성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습관처럼 아메리카노를 시켰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커피 냄새만 맡으면 사원이 터져 나가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 역겨웠다.

 

 이완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에야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이완에게 할당량이라는 단어도 그런 존재였다.

 

 할당량을 채우지 않았을 때, 이완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니 무슨 소리인지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이 할당량 안 채우면 다른 사람들한테 넘어가는 거 몰라요? 추가 업무 안 해 봤어?"

 "뭐라고요?"

 

 그랬다. 생각해 보면 죽은 사원의 업무도 이완과 주 대리, 김서윤이 나누어 하고 있었다.

 

 "할당량 그게 넘어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요? 당신 할당량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대신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만, 작가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당신이 당신 할당량 그날그날 안 채우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간다고요. 시간 제한, 타임어택으로. 안 채운 양 그대로.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없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유성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분노가 서려 있었다. 유성지의 말대로 간혹 추가 업무가 등장하는 날이 있었다. 대부분 금방 끝낼 수 있는 양이었기에 추가 업무가 어디서 오는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사원이 죽은 건 업무가 종료된 뒤였다. 덕분에 그의 할당량은 다음 날, 처음 할당량부터 배정되어 나눠져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

 

 "잠깐만요, 그러면... ...누군가가 제 업무를 감당하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요."

 "네."

 

 살인자, 유성지는 암묵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유성지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누나 유수지는 단 한 번도 할당량을 어긴 적 없었다. 그랬던 유수지는, 윗선의 누군가가 떠넘긴 할당량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누나도 그렇게 죽었어.'

 

 언제나처럼 자신의 할당량을 오전에 끝낸 그녀가, 추가 업무가 배정된 지 모르고 할당량 카드를 확인하지 않았다가 불시에 터져 나간 거였다.

 

 윗선에선 그런 소문이 돌았다. 일정한 권력을 쥐면 누구에게 할당량을 넘길 건지 택할 수 있다는, 그렇게 자신의 업무로 타인을 괴롭힐 수 있다는.

 

 '어떻게 이 남자는 이렇게나 무지할 수가 있지. 생각이 없는 건가.'

 

 물론 몇 가지 규칙이 있다고 했다. 할당량을 넘겨받는 사람이 넘기는 사람의 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업무를 처리할 능력이 되어야 했다. 그런 방식으로 능력 있고 욕심 많은 인재들이 터져 나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유수지 역시 그랬을 거였다. 유수지는 매니지먼트 계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다. 판단력이 좋아 재능 있는 작품을 금방 알아보았다. 누군가가 유수지를 일부러 죽였다. 유성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않아도 안 죽는다니. 오류나 뭐 그런 거겠죠. 가끔 그런 날이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자랑이라고, 그걸 지금."

 

 태평하게 할당량을 채우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완이 원망스러웠다. 힘들다니,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기나 한가. 이완은 충격 받은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적절한 권력을 가지면 죽일 사람을 택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 정신 나간 세상에서 불가능할 건 없었다. 유성지는 공연히 이완에게 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꼴이었다.

 

 "제가... ...저 때문에."

 

 유성지의 분노와는 별개로 이완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느새 이완의 손은 유성지의 입술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은 게 이 주였다. 그 많은 업무를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떠받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한 명이 아닐지도 몰랐다.

 

 유성지는 굳이 라떼 값을 계산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소리도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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