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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무공과 마법, 과학과 오컬트가 공존하는 시대.
극동반도의 항구도시, 대산시에서 퇴역군인 유지, 광검사 유미, 전투인형 유나는 서가삼랑이라는 낭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한 의뢰가 들어오는데...
검이 춤추고 화약이 노래하는 슈퍼액션활극, 지금 시작!

 
Prologue. 0 - 수행(修行)
작성일 : 16-10-11 09:06     조회 : 644     추천 : 0     분량 : 8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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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부가 말했다.

 

 “무림에서의 실력은 무공이 3할, 심계가 7할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계라는 것은 작전을 짜고 상대방을 속일 수 있는 두뇌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상대방의 행동에 현혹되지 않는 굳건한 의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면 소용이 없는 법.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네가 배울 ‘바른 마음가짐’은 이와 같은 가치관을 기초로 만들어진 무공이자 정신수양법이다.”

 

 소년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그게 제가 여기에 묶여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둘러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는 철로 만들어진 틀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돌리려 해도 돌릴 수가 없다. 팔을 흔들 때 마다 손목과 허리에 채워진 쇠고랑이 덜그렁 거렸다.

 

 소년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가 앉아있는 동굴 속의 벽면뿐이었다. 밖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동굴이 웅웅거리며 울었다. 엉덩이 끝에서는 돌바닥의 냉기가 올라오는데 천장에서는 햇빛이 정수리를 뜨끈뜨끈하게 데우고 있다.

 

 소년은 사지를 결박당한 채 동굴 한가운데에 앉아있었다.

 

 딱딱한 돌바닥 때문에 엉덩이가 욱신거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못 참겠는 것은 움직이지도 못하게 온몸을 꽁꽁 묶어둔 사슬 쪽이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팔만 겨우 앞뒤로 흔들 수 있을 뿐, 나머지 부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소년은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질렀다.

 

 “이게 뭐야? 풀어줘요!”

 

 사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목을 돌릴 수 없으니 확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로지 차분한 목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왔다.

 

 “그건 안 돼. 그렇게 묶여있는 게 수련이거든.”

 

 “수련? 묶여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무슨 수련이에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벽으로 시각을 차단하고 명상을 하는 수행이야. 면벽수련이라고도 하지. 옛날, 달마대사가 9년 면벽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깨달음을 얻고 싶은 게 아니라 강해지고 싶어서 따라 온 건데요.”

 

 그렇다. 소년은 강해지고 싶었다. 약했기에 부모님을 잃었고, 약했기에 고아원에서 온갖 모욕을 당했으며, 결과적으로 하나 뿐인 동생까지 잃었다.

 

 그런 경험따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에게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흰색 가운을 걸친 이상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의 문밖을 나가는 동생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겁에 질린 하얀 얼굴이 떠오른다.

 

 돈독이 오른 고아원장 놈이 제대로 된 가정에 동생을 보낼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쯤 동생이 겪고 있을 일을 상상 하니 내장이 꼬이는 것같이 배가 아파왔다.

 

 그런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부는 편안한 말투를 이어갔다.

 

 “방금 말했잖아. 무림에서의 실력은 무공이 3할, 심계가 7할이라고. 바른 마음가짐은 7할에 속하는 심계를 수련하는 기술이다. 3할 쪽인 일반 무공을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지.”

 

 하아- 소년은 포기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심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부의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방침을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얼마나 여기에 앉아있으면 되는 데요?”

 

 “네가 바른 마음가짐을 얻을 때까지.”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군. 소년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 러. 니. 까. 그게 얼마나 걸리냐고요. 삼 일? 사 일? 아니면 뭐, 몇 달?”

 

 “그건 네가 하기 나름이지. 참고로 나는 십 년 걸렸다.”

 

 “......십 일이요?”

 

 “십 년.”

 

 “아, 열 달을 잘못 말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래도 십 년 내내 이렇게 여기에 앉아만 있지는 않았겠죠.”

 

 “아니. 계속 이 안에만 있었어.”

 

 소년의 목소리가 점점 뾰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십 년 동안 계속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고요? 농담이죠?”

 

 혼란과 당황이 뒤섞인 소년의 말에 사부는 허허 하고 작게 웃었다. 그는 노인 특유의 진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능글능글한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너랑 농담할 나이로 보이니?”

 

 “아니,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그럼 밥은? 밥은 어떻게 먹어요?”

 

 사부는 소년의 앞에 작은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안에는 콩 모양을 한 짙은 회갈색의 알약이 그득히 들어있다.

 

 “배가 고플 때는 이 벽곡단을 한 알씩 먹는다.”

 

 “이걸로 배가 차요?”

 

 “포만감은 없지. 하지만 영양은 충분해.”

 

 “물은?”

 

 사부는 소년의 몸을 고정하고 있는 틀을 가리켰다. 특이한 군청색의 쇠로 만들어진 틀에는 잎사귀를 형상화한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고, 표면에는 가느다란 실이 사방으로 뻗어 동굴의 벽과 연결되어 있었다.

 

 “네가 물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동굴 벽면에 맺히는 이슬이 네 입가에 모일 거야.”

 소년은 당장 물이 마시고 싶다고 생각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을 하자마자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물이 턱 밑에 차올랐다.

 

 물에서는 묘한 쇠 맛이 났다. 소년은 물을 거칠게 뱉어버렸다. 계속해서 따지듯이 질문을 던진다.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해요? 그냥 바지에 지릴까요?”

 

 “네가 이슬과 벽곡단만 먹는다면 용변 보러 갈 일은 없을 게다. 아예 나오지 않을 테니까.”

 

 “잠은? 설마 잠도 자지 말고 수련인지 나발인지를 하는 겁니까?”

 

 사부는 소년의 손을 쥐더니 틀의 한쪽 기둥부분을 만지게 했다. 사부가 이끄는 대로 손을 비벼보니 반질반질한 기둥의 표면에 볼록 튀어 나와있는 부분이 있었다.

 

 “눌러봐.”

 

 그것을 누르니 덜컹하고 틀이 회전했다. 소년은 어느 순간 동굴의 천장을 보고 있었다. 다리를 뻗어보니 의외로 편하게 누워있을 수 있다.

 

 천장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었다. 파란 빛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동굴로 들어오는 것은 벽면에 튕겨져 들어오는 빛 뿐이다. 비나 눈이 와도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년은 이를 갈았다. 그가 지금 누워있는 장소가 누군가를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가둬놓기위해 만들어진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 농담이 아니잖아.

 

 사부는 정말 소년을 이 동굴 안에 가둬 둘 생각인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질린 소년은 드러누운 채로 꽥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제기랄! 진짜로 십 년 동안 여기에 가둘 생각이에요? 진심으로?”

 

 “꼭 십 년이라고 정해진 건 아니야. 나의 경우 십 년이 걸렸다는 것 뿐이다. 더 짧게 끝날 수도 있어.”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사부라는 인간은 아무래도 소년을 달랠 마음이 없는 듯 했다. 그저 담담하게. 아니, 약간이지만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긍정한다.

 

 “그렇지.”

 

 소년은 와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속사포처럼 다음 말을 쏟아낸다.

 

 “아니, 저는 무공을 배우러 사부를 따라 온 거라고요! 이깟 정신수양을 하기 위해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정도를 알아야지! 앞날이 창창한 어린애를 이런 구질구질한 동굴에 꽁꽁 묶어서 수십 년을 처박아 둔다고요? 미쳤어요?”

 

 열 살을 조금 넘은 아이가 노인에게 할만한 말들은 아니었지만 지금 소년에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오히려 사부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 이제야 내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나 보구나.

 

 이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수련이 아니야. 그리고 방식이 다를 뿐, 조금이라도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무공수련이라고 할 수 있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잘 생각해보려무나. 생각할 시간은 많을 테니까.”

 

 “몰라! 모르겠다고요! 이딴 거 이제 필요 없어! 빨리 풀어줘요!”

 

 소년은 묶여있는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며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틀어도 반응이 없다. 소년은 난동을 멈췄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

 

 대답은 없었다. 멀찍이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소년은 다급해졌다.

 

 “사, 사부님!? 어디가요? 진짜 절 이렇게 두고 갈 거에요?”

 

 “사부님! 사부님! 어디가냐고!”

 

 “야, 이 시부럴 영감태기야! 이리 안와!?”

 

 안와아놔아나아나아나……

 

 대답은 없었다. 거친 욕설에 돌아온 것은 허무한 메아리 뿐이었다.

 

 “......”

 

 소년은 말을 잃었다. 사부는 정말로 이 차가운 동굴에 그를 홀로 두고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다렸다. 제법 고생을 했어도 소년은 말 그대로 ‘소년’이었다. 아직은 세상의 잔혹함과 무정함에 익숙지 않다. 그는 사부가 장난을 치거나 혹은 그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겁을 준거라고 생각했다.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하루가 갔는지 안 갔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렸다. 사부는 소년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말이 쉬워 하루 이틀이지, 아무런 자극도,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는 동굴에서의 시간은 일 분 일 초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소년의 인내심과 희망은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다. 바람이 흐르고 벽면에서는 이슬이 흘러내렸다. 소년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라고는 반질반질한 동굴의 벽과, 머리 한 가운데를 쬐는 빛과,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이슬의 울음밖에 없었다.

 

 소년은 묵묵히 흐르기만 하는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다. 춥고 배고프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눈물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는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슬픔 다음에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소년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욕을 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사부를 욕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모든 원인을 부정하며 사방으로 울화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줄 상대가 없다. 쏟아내고 부어내고 마음속 밑바닥에 있는 감정까지 긁어모아 토해내지만 감정이 없는 동굴은 묵묵부답.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소년의 마음 속에서는 분노라는 감정마저 사라져버렸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흐른다. 흘러내린다.

 

 동굴에는 한때 소년이었던 존재의 껍데기만이 남아있다. 인간의 형체를 한 껍데기는 시체처럼 누워있다. 뜨나 감으나 매한가지인 눈에는 아무런 감정의 빛도 비치지 않는다. 팔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머리는 마구잡이로 길어 헝클어져 있고 메마른 입가는 멍하니 벌어져 있다.

 

 시체보다도 생동감이 없는 껍데기지만 그래도 가끔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돌아올 때가 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다. 그 때가 되면 껍데기는 소년으로 돌아온다. 바닥을 기어 벽곡단을 집고 혀를 내밀어 물을 마셨다. 죽을 수 없다는 공포와 열망, 그리고 생물로서의 본능만이 겨우 소년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때가 꼬질꼬질한 손이 입을 향해 벽곡단을 가져간다. 의욕을 상실한 정신과 육체는 팔을 잠깐 올리는 동작마저도 힘겨워하며 느림보처럼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진다.

 

 마지막까지 삶을 지탱해온 기력이 바닥 난 것이다.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콩 모양의 알약이 천천히 바닥을 굴렀다.

 

 소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죽자.

 

 그것으로 소년의 육체는 완전히 정지해버렸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을 쉬는 주기도 점점 길어진다. 심장이 둔해지고 몸의 열기가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햇빛에 말라 비틀어지는 잡초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의 정신과 몸이 완전히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 바로 직전의 순간. 그의 귀에 한마디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냐?”

 

 “......”

 

 소년은 처음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귓속을 울린 말소리가 여운이 되어 사라져갈 즈음 오랫동안 반수면상태에 놓여 있던 뇌가 행동을 재개했다.

 

 소년의 몸이 튕겨 올랐다. 방금 전만해도 죽어가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이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환청은 아니었다. 너는 누구냐고 말하는 목소리가 약한 메아리로 변해 동굴을 맴돌고 있었다.

 

 소년의 머리에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누구냐고?’

 

 평소라면 별로 생각할 것도 없는 단순한 질문. 그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을 일상적인 질문.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머리에서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낸 것과 같은 청량감이 든다. 오랜만에 찾아온 자극에 소년의 뇌는 짜릿한 감동을 맛보고 있었다.

 

 소년은 생각을 부풀렸다. 장난감을 얻은 아이가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환청처럼 귓가에 남아있는 질문을 단순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을 거라 멋대로 판단하고 그럴 듯한 답을 이끌어내려 한다.

 

 소년은 생각을 이어간다. 남는 것은 시간 뿐이요, 할 수 있는 거라곤 사고 뿐이다.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끌어올려 가공한다. 가공한 기억은 정보가 되고 습득한 정보는 논리에 맞추어 조합을 이룬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조합이 나올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한다. 납득할 수 있는 정답을 끌어낼 때까지 끝없이 되새김질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부가 소년의 앞에 나타났다.

 

 사부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노인은 여전히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뻔뻔한 얼굴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어떠냐, 네가 누군지 알겠냐?”

 

 “모르겠는데요.”

 

 정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의 형태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해답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사부는 웃었다.

 

 “글은 읽을 줄 알겠지?”

 

 예전 같았으면 ‘장난하세요?’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라도 눈앞에서 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소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부는 품을 뒤졌다. 책 몇 권을 꺼내어 소년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사부가 두고 간 것은 기초적인 철학서와 종교서적, 과학책, 그리고 사전이었다.

 

 소년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 먹을 수 없는 구절이 산더미지만 심심하니까 읽는다. 그런 책이라도 읽는 것이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뭔지도 모를 답을 찾으려 생각만 하는 것보다 수백 배는 재미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지만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끊임없이 의미를 해석하니 머릿속에 안 들어오래도 안 들어올 수가 없다.

 

 책은 소년에게 지식을 불어넣었다. 그가 떠올리지 못했던 타인의 새로운 발상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소년은 점점 생각하는 행위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소년이 책을 볼 필요조차 없을 때가 되자, 사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른 책들을 던져주었다. 구성은 이전과 비슷했지만 양이 많아졌다. 그리고 무공과 전술, 전략에 관련된 책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또, 사부는 한 가지 호흡법을 소년에게 가르쳐주었다. 잡념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호흡법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소년은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트릴 때마다 호흡법을 수련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효과는 좋았다.

 

 소년은 동굴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밤낮으로 지식을 습득하며 벽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다.

 

 사부가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일이 늘었다. 사부는 올 때마다 한 마디씩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선문답을 던질 때도 있었고 아침에 무엇을 먹었네, 맛이 없었네 하는 등의 쓸데없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소년의 질문에 대답해주며 소년이 가진 논리의 빈틈을 지적해주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은 가속한다. 격렬한 강물이 되어 세월을 가로지른다.

 

 책을 보고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갔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동굴의 기온은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쌓여가는 먼지는 바람이 들어와 쓸고 나간다. 정수리를 비추는 빛은 머리를 맑게 하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은 몸을 가볍게 만든다. 최소한의 영양과 이슬의 섭취로 몸에서는 더 이상 탁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극도로 절제된 외부 자극 속에서 감각은 예리한 보검같이 날이 서있다. 소리로 바람의 방향을 알아차린다. 달이 뜨지 않은 밤에는 별빛의 세기로 시간을 측정한다.

 

 날이 갈수록 머릿속의 지식은 쌓여간다. 의식은 더없이 또렷하다. 생각의 폭은 확장되고 사고는 깊어지며 감정에 흔들림은 없었다.

 

 오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소년은 더 이상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가치관과 행동 기준이 있고, 그 것을 뒷받침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는 학자요, 철학가이며 또한 전략가였다.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다. 소년의 정신은 순백의 금강석처럼 단련되어 아름다운 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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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Chapter. 6 - 한(恨) (2) 2016 / 9 / 28 414 0 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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