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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림자에 담은 빛
작가 : 웅크린불꽃
작품등록일 : 2019.11.3

우리시대이 삶이란 매일 새로운 시간을 맞이 하느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 속에 숨겨져 있던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지나쳐버리기도 하지요. 하루할 소중한 것들로만 채워가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신을 잃지 않고,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 떠난 연주와 되돌리기 위한 규영의 시간이 자꾸 어긋납니다. 어긋나게 그어진 인연의 길이 엇갈려 부딫힐 때마다 조금 더 성장하고 그 엇갈림 속에서 잠시 마주보게 되기도 합니다.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삶의 방향을 찾고 함께 할 사랑을 찾아 내일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입니다.

 
시들어 짙어진 꽃잎
작성일 : 19-11-03 22:57     조회 : 162     추천 : 0     분량 : 8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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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물에 젖은 솜이불을 둘러 쓴 것처럼 묵직했다. 눈꺼풀도 무거워 눈을 뜨기가 힘들만큼 버거웠다. 나의 무거운 몸이 점점 땅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늪에 빠진 것처럼 발부터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보이는 데로 잡아 쥐었지만 잡히지 않았고 잡고 보면 빈손이었다. 그렇게 빈손 짓만 하다 깨었는데 깨어보니 내 손은 빈손이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 놓지 마, 절대로. 그렇게 계속 잡고 있어.”

 “ ............”

 “ 좀 어때? 괜찮아?”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슬며시 손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앉아보니 돌아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보다 목 놓아 우는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고 그 울림을 견딜 수가 없었다.

 

 “ 미안해요.”

 “ 어찌된 일인지 물어봐도 돼?”

 “ ........”

 “ 아니다. 괜찮으면 됐어. ”

 “ 우리.......나가요. 여기서.”

 

  구조센터를 나오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누워 있었나보다. 저녁을 걸렀으니 뭐라도 요기를 하려했으나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레로 벨로로 갔다. 쉐프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후 양해를 구했다.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조금 축내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가지와 토마토를 이용해 라자냐를 만들어 먹으라는 팁까지 주셨다. 다진 쇠고기도 있으니 양껏 넣어 맛있게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필요한 채소를 꺼내놓으니 그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채소를 씻어 손질하고 팬을 달궈 다진 양파와 마늘을 볶기 시작하더니 알아서 척척척 요리하기 시작했다.

 

 “ 많이 만들어 본사람 같아, 정말 할 줄 아는 거예요?”

 “ 왜? 너무 자연스러워? 신기하지? 멋있다고 반한 거 같은데?”

 “ 좀 의외라서........”

 “ 의외?”

 “ 그러니까, 라면도 아니고, 그래도 이탈리안 음식인데 ........”

 “ 그래서 딱 반했다는 거잖아.”

 “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모습 본적이 없어서요.”

 “ 거참, 반했다는 설명을 길게도 하네.”

 “ 어이없어.”

 “ 기다려, 내가 해줄게. 먹어보면 한 번 더 반한다. 진짜.”

 

  요리하는 그의 모습이 많이 낯설어 자꾸 자꾸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많이 웃었다. 정말 신이 나서 요리하는 것 같았다.

  늦은 저녁을 낯설게 대접받았다. 어색해 하는 나를 웃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고마웠다. 어쩌면 정말 그의 말대로 그는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보았던, 내가 알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번번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오늘 그를 처음 만났다면 나는 분명히 그에게 반해서 푹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만 그를 보는 것에 만족해야하기에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

 

 

 ##

  연주를 바래다주고 돌아왔다. 쉐프님은 생각보다 일찍 들어왔다며, 실망하셨다. 오늘 밤은 연주와 함께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고, 내심 그러길 바라서 아까 알레로 벨로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접으셨다고 했다.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라고 안타까워 하셨는데 내 마음은 오죽했을까.

  바래다주면서 작별인사로 가볍게 입맞춤이라도 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설레었었다. 그러나 연주는 무심했다. 무심(無心), 말 그대로 마음이 없다. 그 마음이란 것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버린 사람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할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것도 나의 착각이었던 것인지 몰랐다. 할머님이 걱정하신다고 얼른 가봐야겠다며 서두를 때는 다시 불안해 보였다. 낮의 일도 있고 해서 걱정이 되어 바래다주기를 고집 부렸고, 내키지 않는 듯 했으나 완강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옆 좌석에 앉은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흡사 혼이 나가 버린 것 같았다. 이제껏 내가 보아온 그녀의 얼굴모습 중에 가장 낯설었다. 서늘하게 무서웠다.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다.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말을 무심히 던지고 들어가는 그녀가 한번쯤은 돌아봐 줄까 싶어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 돌아보았을 때 내가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 번 더 웃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허공에 흩어져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쳐 날아가 버렸나 보다. 섭섭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늦은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배가 고팠다. 긴 하루를 보냈어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뭐든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허기가 나를 괴롭혔다. 테이블에 보이는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허기를 가장해 목구멍으로 역류해 올라오는 서운한 덩어리들을 마른 빵으로 꾹꾹 눌러 넘겼다. 그렇게 속을 잠재우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전에 먹은 마른 빵 때문인지 목이 말라 일찍 잠이 깨었다. 몇 시간 못자고 깨었지만 더 자고 싶지는 않았다. 서둘러 연주에게로 갔다.

  어젯밤 그녀의 뒷모습만 길게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그녀가 걸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약속을 한 것이 아니기에 언제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괜찮다. 지금 그녀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일도 없었다. 그녀가 들어간 문을 응시하다보니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연주가 들어간 집은 주변의 다른 집들에 비해 외관이 화려하지 않았지만 훨씬 돋보였다. 주변의 나무들은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밑동이 굵고 키도 많이 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집들보다 지어진지 오래인 것 같았다. 낮은 울타리 안으로 갖가지 꽃들이 보였고, 잔디도 잘 정돈되어 있어서 벌렁 드러누워 한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니 피곤하고 하품이 나왔다.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는데 문이 열렸다. 할머님이셨다. 나를 알아보셨는지 빙긋이 웃으신다. 얼결에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목소리는 내지 않으시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얼른 다가가 한 번 더 인사를 드렸다. 아직 연주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깨우고 싶지 않으면 들어와서 편히 기다리라고 하셨다. 얼마나 반가운 말씀인지 예의상으로 라도 괜찮다며 사양하는 걸 잊었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옛날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곳곳에 오래된 물건들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물건들을 귀하게 받치고 있는 깔개들은 할머님이 손수 만드신 것 같았다. 그리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 테이블 위에 놓인 바구니 안에는 다양한 색의 실 뭉치들이 있었고 흔들의자에도 뜨다만 작품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보와 커튼도, 소파위에 있는 쿠션들도 손뜨개로 된 것이 많았다. 테이블 화병에 꽂혀있는 꽃도 실로 만들어져 있었다. 저런 것도 만드시다니 신기하고 놀라워서 두리번거리기가 멈춰지지 않았다. 화병 옆에 놓인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읽던 곳을 표시해 두는 책갈피까지 손뜨개였다.

  책머리위로 노란 꽃잎 두 개가 삐져나와 있었다. 해바라기인가? 연주가 읽던 책일까? 나의 시선이 노란 꽃잎에 오래 머물렀었나 보다. 할머님이 나의 시선에 대한 설명을 하셨다. 연주가 읽던 책이라고.......노란해바라기를 좋아한다기에 자투리 실로 만들어 주셨다고....... 해바라기 책갈피........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책갈피에 대해서도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분명 연주의 것 이었을 그 해바라기.......

  이른 시간부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을 알고 계셨던지 같이 아침을 들자 하시며 주방 쪽으로 안내하셨다.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났다.

 

 “ 와, 여기서 이런 좋은 냄새를 맡아 볼 줄 몰랐어요.”

 “ 냄새만? 맛도 볼 수 있지. 사양할 수 없을 거야.”

 “ 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 찬이 김치뿐이라 민망하지만 어서 들어요.”

 “ 누룽지와 김치 최고예요. 어젯밤에도 라자냐와 마른 빵을 먹었거든요.”

 “ 한국에서 먹던 김치보다 못하겠지만 김치는 실컷 먹도록 줄 수 있지.”

 “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왜 같이 안 드시고 저만 주세요?”

 “ 난 벌써 먹었어. 초면도 아니고 편히 말 놓았는데 괜찮지?”

 “ 그럼요. 손자같이 생각하세요.”

 “ 천천히 들어.”

 “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 선한 사람 같아 보여 마음이 좋네.”

 “ 저, 빈손으로 와서 이렇게 아침까지 먹여주시는데 더 뻔뻔한 부탁 하나 드리려구요.”

 “ 뻔뻔한 부탁?”

 “ 연주한테 주셨다는 책갈피요. 저도 하나 만들어 주세요.”

 “ 해바라기? ”

 “ 네, 어떻게 보답할지 지금부터 열심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

 “ 뻔뻔하기로 작정했으면 뻔뻔해지면 되지 보답은 무슨.........”

 “ 아니에요. 꼭 보답할게요.”

 “ 만들어 줄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야. 금방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 감사합니다.”

 

 

  맛있는 아침식사에 넉넉한 웃음, 선물까지 약속 받아 정말 굿모닝이 되었다. 게다가 연주가 함께하는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깬 연주가 잠옷 바람으로 내려와 기지개를 켜다말고 할머니 등에 업히듯 엉겼다. 옹알거리는 아이처럼 중얼대며 할머니 등에 코를 박고 매달려 어리광을 부렸다. 싱크대에서 하던 일을 멈추신 할머님이 돌아서 아기를 어르듯 연주를 바로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시더니 귓속말을 하셨다. 나의 존재를 알리셨겠지.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아쉬운 생각이 듦과 동시에 놀랄 연주의 표정이 기대되었다.

 

 

 #

  그와 보낸 시간이 계속 되새김질 되듯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흔들릴 만큼 흔들렸고 결국은 무너져 버렸다. 이제 그를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께가 되어 내려앉으면, 그때쯤이면 평온할 수 있을까? 동이 트는 빛이 커튼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눈부시게 했다. 그 눈부심에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잠결에 할머님이 방에 다녀가시는 것을 설핏 느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렇게 늦잠을 잤다.

 

 “ 할머니, 배고파요.”

 “ 좀 잤어? 더 자라고 안 깨웠는데........”

 “ 아뇨, 아직 졸려요.”

 

 

 반쯤 떠진 눈으로 비실비실 걸어 내려와 할머니 등에 얼굴을 부볐다. 마음이 푸근해 지는 할머니 냄새를 맡으며 잠을 깨는 중이었다. 할머니의 귓속말은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확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려다 말고 할머님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모습을 확인했다. 환히 웃으시는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 분명히 그가 앉아 있었다. 난처해하는 나의 표정이 재미있으신지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졌고,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할머니 뒤로 돌아가 몸을 숨겼다. 할머니를 방패삼아 조금씩 조금씩 게걸음을 걸어 주방을 벗어나려 했다. 물론 할머님도 나에게 붙들려 같이 게걸음을 걸으셔야했다.

 

 “ 잘 먹었습니다. 할머님.”

 “ 어, 커피 내려놓았으니 마시면서 기다려. 난 울 애기 세수 시켜서 데려올게. 커다란 눈곱이 발등을 찧겠어.”

 

  놀리시는 할머님이 야속했다. 가까스로 주방을 벗어나서는 할머님께 투정을 부렸다. 어쩌시려고 저 사람을 들이셨는지 언제부터 여기 와있는 것인지, 뻔뻔하게 들어와 아침까지 먹었냐고 주방에 들리도록 투덜거렸다. 나의 투덜거림도 웃음으로 받으시고는 얼른 올라가 이쁘게 씻고 내려오라고 나를 계단위로 밀어 올리셨다.

 

 

 

 ##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올라간 연주는 발등을 찧을 만큼 커다란 눈곱을 금세 처리할 수 있었는지 말끔한 차림으로 돌아와 내 앞에서 아침을 먹었다. 커피 향 보다 좋은 연주의 숨결이 느껴졌다. 민망해 하는 연주에게 내가 장난을 더하면 정말 화를 내고 방으로 돌아가 버릴까봐 잠자코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식사를 하던 연주가 먼저 말을 했다.

 

 “ 언제 온 거예요?”

 “ 일찍 눈이 떠졌어. 그냥 씻고 바로 나왔지.”

 “ 몇 시간 못 잤겠네요.”

 “ 괜찮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제.......”

 “ 이제 괜찮아요.”

 “ 그래도..........”

 “ 언제 시애틀로 돌아가요?”

 “ 휴가기간이 꽤 남았어. 계속 여기 있을까 해.”

 “...........”

 “ 우리.......여행가자.”

 “...........”

 “ 나이아가라 폭포 보러 갈래?”

 “ 그래요. 그 자동차로 계속 운전해서 가요. 얼마나 걸릴까? ”

 “ 못됐어. 차버리고 날아 갈 거야.”

 “ 왜?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 찍었으니 뉴욕 찍고 나이아가라 찍어야죠.”

 “ 놀리는 거 재미있어? 그거 좋네. 자동차로 가면 최소 한 달은 같이 보낼 수 있을 거 아냐?”

 “ 그럼 한 달 뒤에 폭포 앞에서 만나요.”

 “ 뭐? 한 달 뒤에? 나 혼자 자동차로 가란 소리야?”

 “ 가면서 이쁜 금발 미녀들이랑 밥 먹으면 되겠네.”

 “ 금발 미녀들이 밥만 먹고 나를 놔 주겠냐?”

 “ 붙잡혀 있고 싶으면 그러시든지........”

 “ 니가 날 붙잡아 주면 안 되겠니?”

 “...........”

 ‘ 제발, 연주야. 나 밀어내지마. 난 지금 낭떠러지 끝에 서 있어.’

 

  농담처럼 가볍게 뱉어낸 말이지만 난 절박했다. 붙잡아 달라는 나의 고백에 연주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말없이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연주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로 붙잡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다. 그런 의지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낭떠러지 끝인지 아닌지 보이지 않는 모양 이었다. 연주의 눈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다. 상처투성이 자신이 보여서 자꾸 외면하려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녀 앞에 서면 안 되는 것이다. 차라리 밀려서 떨어져 버려야 하는 것이다.

 

 “ 규영씨, 이제 놓으려고........ 여태 붙잡고 있었거든.”

 “ 그러지마.”

 “ 이젠 놓을 거예요. 도와줘요.”

 “ 싫어. 나를 놓겠다는데 내가 뭘 도와?”

 “ 들어봐요.”

 “ 아니, 오늘은 안 들어. 너 잠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더 자라. 나 이만 갈게. 나중에 얘기 해.”

 “ 나중은 없어요. 이제 당신 안 봐요.”

 “ 뭐야, 그런 얼굴로 어떻게....... 끝이라고? 안보겠다고 말해?”

 “ 내 목소리 들리잖아요. 못 알아듣는 척 말아요.”

 “ 넌 나 못 지워, 절대로. 여전히 날 사랑한다니까, 아니라고 말해도 난 안 믿어.”

 

 

 

 #

  무섭게 화를 내던 그였다. 나의 모든 말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날아갔고 과녁이 된 그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결국 힘없이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봐야 했다. 자동차에 올라탄 그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불안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결국 헤어지기 좋은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매일 할머님과 함께 식사하는 식탁 그 자리에 그가 오늘처럼 앉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내린 벌이었다.

 

 “ 할머니,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해요.”

 “ 죄송은 무슨........”

 “ 저 이렇게 못났어요.”

 “ 다 지나가. 그럼 또 괜찮아. 아픔도 그리울 때가 있고, 사랑도 지칠 때가 있지.”

 “ 그리움은 .......”

 “ 많이 아파서 어쩌나....... ”

 

  할머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그가 걱정이 되어 마음 졸여야 하는 것도 감당해야하는 벌이 되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 아픔의 무게를 놓고 저울질해보아도 그의 곁에 있는 것이나 그를 보내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이런 나를 그는 견딜 수 없을 것이기에 놓아야 했다.

 

  눈을 떠보니 거실 소파였다.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계신 할머님이 보였다. 옆에 놓인 게으른 탁상시계는 늦은 오후를 밀어내느라 굼뜬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머니 품에서 울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할머니께서 덮어주신 모티브 담요가 따뜻했다. 담요를 끌어다 어깨까지 올려 덮었다. 아직 여름인데 나는 한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 춥니? 얼굴이 ........”

 “ 이불이 따뜻해서요.”

 “ 이런, 열이 나는구나.”

 

  할머니께서 약을 가져다 주셨고 나는 그 약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몸살이었다. 이렇게 또 한바탕 앓아야....... 그래야 시간이 좀 더 빨리 흐를 것이다.

  며칠 뒤 그가 집 앞에 노란 해바라기 꽃바구니를 놓고 갔다. 이른 새벽에 다녀갔는지 꽃에 이슬이 머금어 있었다. 아무런 메시지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밤새 자동차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더라는 이웃 할머님의 궁금증이 그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 것으로 끝이었다. 그 여름이 다 가도록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언제 시애틀로 돌아갔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쉐프님도 알려주지 않으셨다.

  시린 여름이 물러나고 있었다. 그가 놓고 간 해바라기가 시들어 짙어진 꽃잎을 하나 둘씩 내려놓을 때마다 나의 마음도 한 이파리씩 내려앉았다. 그렇게 시간이 떠나며 가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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