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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림자에 담은 빛
작가 : 웅크린불꽃
작품등록일 : 2019.11.3

우리시대이 삶이란 매일 새로운 시간을 맞이 하느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 속에 숨겨져 있던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지나쳐버리기도 하지요. 하루할 소중한 것들로만 채워가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자신을 잃지 않고,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해 떠난 연주와 되돌리기 위한 규영의 시간이 자꾸 어긋납니다. 어긋나게 그어진 인연의 길이 엇갈려 부딫힐 때마다 조금 더 성장하고 그 엇갈림 속에서 잠시 마주보게 되기도 합니다.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삶의 방향을 찾고 함께 할 사랑을 찾아 내일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입니다.

 
알레로벨로
작성일 : 19-11-03 22:49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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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로 벨로 - 손님이 뜸한 오후 마침 그가 앉았던 자리가 비어있다. 그가 이 곳에 다녀간 이후 나는 그가 앉았던 자리에 잠깐씩 앉아 창밖을 응시하는 시간이 잦아 졌다. 다음 주에 다시 온다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를 다시 만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2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분명히 그가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잠시 앉았던 자리에 내 마음이 주저앉아버렸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그가 앉았던 자리에 머물러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창밖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담은 얼굴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 모습 속에서 그의 얼굴을 찾고 있었을까? 그렇게 그가 앉았던 자리는 나의 쉼표로 남은 듯 했지만 마음은 쉼 없이 일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 줄리아, 무슨 생각해? 잠시 방해해도 될까?”

 “ 네, 괜찮아요. 그저 멍하니 바깥풍경을 보고 있던 참 이예요.”

 “ 자, 이거 먹어봐. 새로 만들어 본 디저트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 너무 예뻐요. 아까워서 못 먹을 것 같아요. 뭘로 만드신 거예요?”

 “ 열대과일과 생크림, 그리고 초콜렛,”

 “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푸딩 같기도 하네요.”

 “ 얼린 과일을 이용해서 차가울 거야.”

 “ 맛있어요. 과자나 케이크를 같이 먹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비스킷에 한 스푼 듬뿍 올려서 먹어보고 싶어요.”

 “ 쿠키를 구워 곁들여 볼까?”

 “ 네, 베이글도 어울릴 것 같네요.”

 “ 저녁에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드리고 평가를 받아봐야겠어.”

 “ 제 입맛은 사로 잡혔어요. 맛있어요. 역시 쉐프님 이시네요.”

 “ 비행기 태우지 마. 어지러워”

 “ 참 쉐프님? 따님과 통화 하셨어요?”

 “ 아, 아직......”

 “ 아빠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 나 같은 사람도 아빠라고 기다리겠어?”

 “ 아빠니까, 아빠잖아요. ”

 “ 내 욕심만 채우느라 예쁘게 크는 거 지켜봐주지도 못했어. ”

 “ 그만큼 더 그리울 거예요. 여기까지 찾아와 연락처를 남기고 간 걸 보면 모르시겠어요? 연락하세요. 만나서 안아주세요.”

 “ 나도 딸애가 너무 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아. 너무 미안해서 ........”

 “ 쉐프님, 전 늘 아빠가 그리워요. 만날 수 없으니 그리운 채로 견딜 수 있지만 만날 수 있는데 못 만나면 그리움에 괴로움까지 더하지 않을까요? 아플 거예요.”

 “ 용기가 나질 않아서......”

 “ 쉐프님, 알레로 벨로 쉬는 날 여기로 초대해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는 건 어떠세요? 허락하신 다면 제가 도울게요. ”

 “ 고마워, 줄리아. 줄리아가 함께해주면 어색한 분위기가 좀 덜 할 것도 같네. ”

 “ 쉐프님, 얼른요, 어서 전화하세요.”

 

  상기된 얼굴로 딸과 통화하는 파올로 쉐프님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 응원해 드렸다. 넉넉한 웃음으로 웃어주시더니 이내 수줍은 소년의 얼굴로 돌아가 딸에게 건내야 할 말들을 골라내느라 고심하는 표정이 이어졌다.

 

 ‘아빠, 내 꿈속으로 만나러 와주세요. 나도 아빠가 너무 그리워요.’

 

 알레로 벨로를 나와 그와 걸었던 길모퉁이를 돌아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혹시나 그가 와서 알레로 벨로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올꺼야’라는 그의 말에 묶여 꼼짝없이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알레로 벨로 - 연주가 보인다.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은 커플에게 주문을 받는 듯하다. 활짝 웃으며 수염이 덥수룩한 손님이 요구하는 것들을 주문서에 받아 적었고 미소 짓고 있던 숙녀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잠시 이대로 있다가 공항으로 되돌아가도 괜찮은지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문제없다는 답을 들었고 나는 택시 안에서 그녀를 조금 더 바라보다가 그녀가 안쪽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출발해도 좋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정민선배가 시카고행 티켓을 준비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의 전원을 켜니 정민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남겨져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나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야하니 공항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통보였다. 시카고행 출발 시간계산을 해보니 빠듯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만나야 했기에 택시를 타고 알레로 벨로를 향해 출발했다. 택시 안에서 공항에 도착한 정민선배와 통화를 했다. 해외영업팀원 하나가 회사공금을 횡령하고 영업기밀을 빼돌려 도주했는데 그 수습을 위해 시카고에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연주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지만 마음만 무거워졌다. 다가오지 말라는 그녀가 마음을 열도록 하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통이 밀려온다. 골치 아픈 회사문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수습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얼어버린 마음은 감당하기가 버겁다. 그녀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혼란스러워 진다. 내 욕심 채우자고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그녀의 말대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멈춰야만 하는 것인지 .......

  그녀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은데 그녀는 말없이 숨어버리기만 한다. 사이드미러에서 점점 작아져가는 알레로 벨로의 간판이 보이지 않게 될 즈음 에드워드의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런 일 때문에 컨디션이 나쁜데 쉬지도 못하고 비행기를 탄 아내가 걱정되어 내게 살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에드워드는 정민선배가 말하기 전에는 아는 척 말고 혹시 얘기를 하거든 깜짝 놀라는 제스처를 취해달라는 소소한 것 까지 당부를 했다. 그렇게 꺼내놓은 소식은 정민선배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오래도록 가슴속에 콕 박혀있던 옛사랑이 아기를 가졌으니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그녀의 남편에게 듣는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에드워드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연주를 떠올렸다. 그녀와 나에게도 이러한 미래가 준비되어 있을까? 연주의 무표정한 얼굴이 다가왔다가 저만치 흩어져 버렸다.

  공항에 도착해 정민선배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보니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서성이는 정민선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다가가 눈인사를 하고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통화가 길어지는 것 같은데 계속 서성이는 선배를 벤치로 이끌어 앉도록 해주었다. 표정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서울 본사에 상황보고를 하는 것 같은데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거슬린다.

  도주한 직원은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 입은 상대 거래처들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배상액을 협상하여 회사의 손실액을 최대한 줄이고, 손상된 기업이미지 회복에 노력을 기하라는 지시였다. 시애틀 지사에 남은 직원들과 협의해서 우리가 움직일 동선을 고려하여 거래처를 방문할 시간약속을 잡아야 했다. 만만치 않은 일정이 될 것이 훤히 내다보이고 정민선배의 컨디션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안 좋아보였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은근히 숨겨왔던 고집 세고 까칠한 성격이 굵은 가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맡은 책임이 무거워 그럴 것이다. 나야 뭐 아직 신참이라 지시사항만 제대로 수행하면 되는 정도여서 그런지 사태의 심각성이 선배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시카고로 이동하는 5시간가량을 꼬박 자료 챙기고 점검하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 선배에게 잠시 눈 좀 붙이라고 해 보았다. 나의 잔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오히려 정리해 둔 자료들을 읽어보라며 내게 쥐어준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아내가 이럴 줄 알고 내게 부탁을 했나보다. 승무원에게 따뜻한 우유를 부탁해 선배에게 권했다. 모난 기분이 좀 부드러워지길 바라면서........

 

 

 

 #

  파올로 쉐프님의 딸은 아빠를 꼭 빼어 닮았다. 특히 선한 눈매가 웃을 때 더 빛이 난다. 이름이 멜라니아라 했다. 탐스런 갈색머리를 굵게 땋아 한쪽 어깨로 늘어뜨렸는데 작은 얼굴이 더 작아보였다. 양 볼에 주근깨가 있어 귀여워 보이는 소녀였다. 나보다 한참 어렸는데 친구하자며 붙임성 있게 다가와 주었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내가 돕겠다 했던 말이 무색할 만큼 밝은 아가씨였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해야 할 말들을 고르는 것처럼 신중하게 보였지만 천성이 솔직하고 적극적인 것 같아 보였다. 딸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파올로 쉐프님은 다른 날 보다 긴장하신 것 같았고 유독 땀을 더 흘리시는 것 같았다. 그런 아빠에게 다가가 이마의 땀을 살짝 닦아주며 만들고 계신 요리에 관해 이것저것 묻는다. 해물파스타를 만들고 계셨는데 갑자기 쉐프님이 당황해 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으니 멜라니아가 나섰다. 자신이 새우 알러지가 있어서 새우를 파스타에 넣으시려하는 것을 말렸다고, 새우 말고는 다 잘 먹는다고 했다. 쉐프님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절망스런 표정이 되더니 참을 수 없는지 눈물이 흘러내렸고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멜라니아에게 아빠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고 있으니 자격이 없다면서 두툼한 손으로 눈을 부비며 울었다. 이런 아빠를 용서해 주겠냐며 진심으로 사과했고, 멜라니아는 그런 아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빠의 등을 쓸어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계속 말을 했다. 멜라니아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였으나 덩치 큰 아빠를 위로하느라 참는 것이 보였다. 원망 할 만도 한데 속이 깊은 딸이다.

  알레로 벨로의 휴일을 이용해 쉐프님과 딸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내가 아빠를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즐거웠다. 알레로 벨로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미소 짓기도 했다. 쓸쓸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이제는 미소도 지어질 만큼 그저 슬프기만 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 슬픔이 바래져 마음가에 일렁이다 부서지는 파도가 되어버린 것 같다. 언제 또다시 커다란 파도로 다가 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잔잔히 일렁이며 발목을 적시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멜라니아와 파올로 쉐프님은 서먹하던 분위기를 걷고 오래 함께 했던 부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셋이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던 중에 밖에서 문을 흔들며 쉐프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쉐프님, 밖을 보세요. 아는 분이신가봐요?”

 “ 어, 잠깐만...”

 

  쉐프님이 문을 열어 주니 젊은 여자가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나와 멜라니아에게 케이티의 친구라 소개해주셔서 인사를 하고 보니 밖에 서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 들어오고 뭐하냐는 여자의 말에 머뭇거리던 남자가 들어왔다. 직장 동료와 함께 왔다며 소개하는 그녀는 어색해 하는 남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다시 오겠다던 그가 어떤 여자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주방 쪽으로 들어와 버렸다. 커피머신 앞에 멍청하게 서있는데 쉐프님이 들어오셨다. 커피를 내려달라고 하시더니 뭔가를 만들고 계셨고, 멜라니아가 따라 들어와 아빠 옆에 섰다. 홀을 내다보니 두 사람은 창가에 마주앉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궁금해 하지 말아야 하는데 궁금하다. 그를 보며 환하게 웃는 저 여자는 누구일까? 커피를 가져다 주고 돌아서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 잠깐만, 소개할게. 선배, 이쪽은 ‘이 연주’ 학교 후배야.”

 “ 그래? 그럼 내 후배도 되는 거네? 난 규영이 과 선배 우 정민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

 “ 네, 안녕하세요?”

 “ 오늘 휴무라면서요. 이쪽으로 앉아요. 같이 차 마셔요.”

 “ 아니예요. 전 하던 일이 있어서...... 두 분이 편히 말씀 나누세요. 그럼 저 이만......”

 “ 어.......그래요. 커피 고마워요.”

 “ 선배가 좋은 식당을 안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여기일 줄은 몰랐네”

 “ 넌 여길 어떻게 알아? 저 후배는?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언제 왔었던 거야?”

 

  그들의 대화소리가 멀어지도록 성큼성큼 걸어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척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우정민....... 기억나는 이름이다. 그의 지갑에 들어있던 오래된 사진 속 모습과는 많이 다른 듯 보이지만 웃는 모습은 여전히 빛이 났다. 쉐프님이 차와 곁들일 케익을 준비해 나가시는 걸 보고 주방정리를 시작했다. 자꾸 신경이 쓰여 정리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더 늘어놓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멜라니아와 눈이 맞추쳤다. 멜라니아가 묻는 것 같았다. 무슨일이냐고....... 견딜 수 있겠느냐고.......

  쉐프님이 돌아와 나의 안색이 나쁘다며 먼저 들어가 쉬라고 하셨다. 휴일인데도 못 쉬게 한 미안함과 딸과의 만남을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하셨다. 나는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들어가 보겠다고 인사를 했고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뒤쪽 문으로 나가려고 복도를 돌아섰을 때 화장실에서 나오는 멜라니아가 보였고 멜라니아를 비켜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 여자를 보았다. 나를 못 보았기에 얼른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멜라니아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 문을 밀려는 찰나에 낮은 신음 소리를 들었다. 화장실 쪽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무시하고 나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화장실 문 앞으로 다가가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해야 했다. 멜라니아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화장실 앞으로 걸어왔다. 화장실 문 앞에 마주선 우리는 약속을 한 듯 숨소리를 죽였다. 또 다시 들려오는 앓는 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여자가 세면대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땀이 범벅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 규영이....... 좀 불러줘요. ”

 “ 네, 잠시만요.”

 

  같이 부축해서 일으켜 데리고 나가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다급히 뛰어나와 쉐프님께 응급구조요청을 부탁하고 그를 불러 되돌아갔을 때, 그녀는 하혈을 해 스커트 아래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고 거의 의식을 놓아버릴 지경이었다. 담요를 가져다가 그녀를 감싸 안고 나와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을 놓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환자와 함께 그도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출발했다. 구급차가 떠난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쉐프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와 정신을 가다듬으려 할 때 그들이 앉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과 외투, 그가 놀라 일어서며 넘어뜨린 의자, 그들이 마시던 커피 잔.......

 

 “ 줄리아, 이 가방이랑 옷 좀 병원으로 가져다 줄 수 있겠어? 난 여기 정리를 하고 뒤 따라 갈게.”

 “ 네, 그럴게요.”

 “ 자, 여기 내 차를 써요.”

 “ 그럼 쉐프님은요? ”

 “ 그건 걱정 말고, 어서 가요, 도움이 필요할 거야. 부탁해요.”

 “ 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멜라니아? 또 봐요.”

 

  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두 사람의 외투와 핸드백을 챙겨 응급센터로 향했다. ‘우정민’이라고 했었다. 그 이름으로 물으면 알려줄까? 막상 와보니 내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환자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환자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고, 그에게 전화를 하려해도 연락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핸드백을 열어 신분증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태아 사진과 함께 ‘민 스미스’ 라는 이름이 적힌 진료기록이 있었고, 그 진료 기록지를 응급실 입구를 통제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며 환자가 있는 곳을 물어 찾았다. 그가 보였다. 흙빛으로 변한 얼굴로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는 나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느려졌다. 의사선생님 한분이 나를 지나쳐 그들에게 갔다. 의식을 차린 환자에게 아기의 유산 소식을 알렸다. 절망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흐느껴 우는 그녀 앞에 무력하게 서있던 그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준다. 무겁고 느려지던 나의 발은 멈추어 섰고 그렇게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했다. 나는 가만히 침대 발치에 외투와 핸드백을 올려 두고 조용히 돌아서 나왔다. 가슴이 아려서 더 이상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병원 입구에서 쉼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어지러움이 일어 잠시 휘청거렸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를 잃고 절망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태어나지도 못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던 나의 옛 모습이었다. 그 때, 그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저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켰을까? 그래 주었을까? 아기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나를 다시 지워야 할 시간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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