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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월계수의 기억
작가 : 나호
작품등록일 : 2019.9.23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
정통 판타지.

 
18화 바람에 놓치다(3)
작성일 : 19-11-03 22:44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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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둘은 많은 인파를 헤치고 그들을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그들이 한 가게의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놓칠세라 에녹스와 엘은 빠르게 움직였다.

 

 골목은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에녹스는 골목에 기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미, 미안하게 됐소. 그런 분들이신 줄도 모르고..."

 

 남자의 목소리였다. 앞의 대화를 듣지 못해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아까처럼 거칠게 굴 자들이 아니란 것을 안 것이겠지. 그렇다면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카엘의 목소리가 났다.

 

 "아니에요. 저희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머리를 숙이세요. 잠깐 알아야 될 게 있어서 밝힌 것 뿐이예요."

 "흠흠,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뭐요?"

 

 이리엘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까 말하던 거요. 영주가 최근에 무슨 일을 했는지."

 "그거 말이요? 근데 뭐, 나도 그렇게 많이 아는 건 없소."

 "상관없어요. 마을 안에서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 알고 있는 거 전부 말해주세요."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의 세금은 60미노 정도였소. 그런데 그게 점점 부풀려지더니... 지금의 사태가 되어버렸지. 또 다른 건... 아, 이건 영주하고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지만, 최근 들어 이곳을 들리는 상인들이 부쩍 늘었소."

 "그건 좋은 일 아닌가요? 그게 왜요?"

 "그 상인들이 장사를 안한단 말이오. 큰 상단마차를 이끄는 상인들은 많이 보이는데, 그런 상인들이 장사를 하는 건 보기 힘들지. 지금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우리 도시 사람들이오."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요. 물건 파는 데에 열심히 할 사람들이 이런 큰 도시에서 물건을 안판다니... 혹시 상인들의 마차안에 있는 내용물은 못보셨습니까?"

 "내용물은 못봤소."

 "그렇습니까..."

 

 에녹스는 줄곧 대화를 듣다가 그 말에 흠칫했다. 장사를 하지 않는 상인? 검을 쓰지 않는 검사, 활을 쏘지 않는 궁수나 다를 바 없었다. 에녹스는 그들이 물건을 팔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함부로 내보여선 안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 순간, 머릿 속 한 구석에서 숨기고 싶어 하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티스.

 

 그들이 가진 상품이... 인간이라면?

 

 "더 이상 알고 있는 건 없소. 음... 그럼 이만..."

 "아, 잠깐만요!"

 

 카엘이 그를 불러세웠다. 남자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여기, 이거 받아가세요."

 

 소년이 남자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이, 이건?"

 "아, 답변해준 답례예요. 저희가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은 아니랍니다?"

 

 남자가 그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 고맙소!"

 

 그 말을 하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에녹스는 그의 주먹에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아마 금화이리라.

 에녹스도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었기에 엘의 어깨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 때, 우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나오지 그래."

 

 순간 에녹스는 멈칫했다. 목소리는 중년 남자의 것이었다. 아까는 그저 낮고 조용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에녹스는 저들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렇게 작은 기척도 알아챌 정도라면 실전 경험이 무수한, 진짜였다. 볼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아래쪽에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는 엘을 바라봤다.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 두고, 에녹스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골목을 돌아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오. 이야기를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었소."

 

 붉은 머리의 소년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하얀 단발의 여자는 옆구리에 양 손을 붙이고 있었다. 가소롭다는 듯이, 거만하게.

 

 에녹스는 그 뒤에 있는 중년의 사내를 주시했다. 저 둘도 상당한 실력자였지만 저 자는 그보다도 더한 노련함이 느껴졌다. 흰 머리의 여자, 아리엘이 에녹스를 훑어보다 말했다.

 

 "흐음... 그런 것 치고 모습이 너무 수상한데? 골목 뒤에 한 명 더 있는 것 같고,"

 

 에녹스는 아랫입술은 한 번 빨고 옆에 숨은 엘의 손을 잡아 옆에 서게 했다. 그리고, 후드를 벗었다.

 

 모습을 보였을 때, 소년의 눈이 살짝 커진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여자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엇, 잘생겼네."

 "얌마, 이 와중에..."

 "그 옆은?"

 

 중년 사내의 말에 에녹스가 답했다.

 

 "그냥 하인일 뿐이오. 이 자는 관련이 없소."

 "그런 건 상관없어요. 어쨌든 우리 얘기를 들은 사람이니까."

 

 붉은 소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악의는 없었지만 호의가 있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옆에서 엘이 괜찮다고 속삭였다.

 

 그녀도 후드를 벗었다.

 

 "엥. 여자? 뭐, 도련님과 하녀 아가씨의 사랑의 도피같은 건가?"

 "아하하...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 미안해요, 미안해.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서."

 

 흰 머리의 여자의 말을 소년이 다그쳤다.

 

 "그래서, 어디까지 들은 거죠?"

 "...처음부터 다."

 "더더욱 수상한데."

 

 소년이 에녹스에게 다가왔다.

 

 "보아하니 귀족이신 것 같은데, 몰락 귀족이신가? 아무튼,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저흴 따라온 거죠?"

 

 에녹스는 뭐라 답할지 선뜻 고르지 못했다. 같이 있던 하인이 누군가들에게 팔려갔고, 그를 되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면, 이들이 믿어줄까. 정보를 모으고 싶었다고? 당신들이 수상해보여 따라왔다고?

 

 단지, 그들을 따라오면 뭔가 풀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가지만 물어도 되겠소."

 "응? 뭐,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들은 누구요."

 

 소년은 찬찬히 에녹스를 보았다. 먼지에 엉겨붙은 금발, 그에 어울리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그가 미소지었다.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가 몇 걸음 뒷걸음치다가 멈췄다.

 

 "우리는."

 

 등에 있던 검은색의 대검을 꺼내어 보였다. 검이 아름답게 빛났다. 검날의 한쪽 면에 언젠가 책에서 몇 번 보았던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소피뉴아 기사단입니다."

 

 

 -계속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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