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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용사, 오백 년 만에 눈을 뜨다.

 
그 이름, 또다시 여행 - prologue end
작성일 : 19-11-03 20:25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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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흐른다. 용사는 3000권이나 되는 책을 2년이란 시간동안 옮겼다. 그리고 그건 들인 시간만큼 똑똑히 제 값을 해주었다. 힐류브리트어 교본은 청년이 글을 더 빨리 배우게 해주면서도 일에 치여 살던 그레이스에게 여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가장 먼저 가져 온 500권 중에 교본이 섞여 있는 걸 보고 정말로 감동했었던 그레이스다.

 

  당연히 남은 시간의 투자로 흐릉달은 빠르게 발전했다. 지질학 서적을 이용해 지도를 대폭 개선했고, 퇴적층을 보고 물길을 찾아냈다. 드라흐릉 협곡은 과거 강이 흐르던 자리이니만큼 지하수가 풍부했고 물길을 따라 땅을 파내니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물이 치솟았다. 풀이 우거졌던 해자에 물이 차고, 망가진 수로를 역류해 흐릉달이 잠시 물바다가 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열흘쯤 지나니 기세가 죽어서 금방 적절할 정도로 물이 흘렀다.

 

  물이 풍족해지니까 이듬해 수확량이 부쩍 늘었고, 그에 따라 강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생겼다. 먹이를 찾아 온 동물이 주를 이뤘고 거기에는 적지만 유랑민들이 섞여 있었다. 청년의 말처럼 스무 명 가량의 집단이 물을 찾아 도시 근처로 온 것이다. 원래라면 언데드가 많은 도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은 청년이 속해 있던 집단보다 상황이 열악했다. 이맘때쯤이면 마실 물이 부족해서 하는 수 없이 자리를 잡았다. 겨울에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겨울이면 다시 흐릉달 인근에 자리를 잡는 그들. 청년은 조심스레 접촉을 시도했고, 오래된 부랑 생활에 지쳐 있던 그들은 풍부한 식량과 안전에 이끌려 흐릉달의 첫 시민이 되었다.

 

  3년 간 쌓인 식량은 스무 명을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두려워하던 그들도 차츰차츰 언데드들과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청년의 주도 아래 밭일과 가축 기르는 일은 그들에게 넘어 갔고, 아이를 제외한 열여섯의 인력 확충은 다양한 그것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레이스는 역사서를 보고 500년 공백을 조금씩이나마 채워 넣었고, 옛 법학서를 통해 열 가지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주로 일거리 배분에 관한 것들로 어차피 다 가족 같은 이들이라 다툼이랄 것이 없었기에 사소한 규칙 같은 거였다. 아이리스에게는 드디어 또래 친구들이 생겼다. 다 착한 아이들이라 다섯 살이 된 그녀에게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를 알려줄 수 있었다.

 

  초막 같던 집은 허물어서 없애버렸고, 그 자리에 나무와 벽돌로 지은 집을 하나 둘 올렸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자 채 몇 개월 안 되어서 가정이 생겼다. 1~2년 사이에 갓난아이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여섯 명의 아녀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며 공동육아를 하게 되었다. 용사는 작은 신전을 세우고 아이리스를 포함 그 또래에게 신학과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다. 5년이란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집단을 받아들인 흐릉달은 그렇게 총 인구 육십 명의 소규모 도시가 되었다.

 

  체계가 잡히고 별 다른 일 없이, 2년이란 세월이 더 흘렀다.

 

  ↓

 

  “칠 년이 지났습니다.”

 

  용사와 그레이스는 성곽 위에 서서 농사짓는 이들을 내려다 봤다. 저들 하나하나가 둘에게 있어선 뜻 깊은 결실이었다. 용사에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첫 걸음이란 의미로, 그레이스에겐 아이리스에게 남겨줄 행복한 터전을 완성했단 의미로 말이다. 그레이스의 침묵이 이어지자 용사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난 이때까지 그레이스, 당신을 존중하는 뜻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죠. 하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이제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레이스는 이 도시의 성주로서 항상 당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이룽호른(흐릉달의 드높은 자)이 아닌, 그저 닳고 닳은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등은 오늘따라 유난히 굽어 보였다. 용사는 안쓰러웠지만,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레이스는 그보다 훨씬 더 괴로울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도 뜻 없는 위로를 건네선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건의 발달은 육 년 육 개월 전. 그러니까 용사가 500권의 책을 가지고 흐릉달을 찾은 그 날에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푼 세 언데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레이스는 그동안 있었던 일과 자신의 의구함을 설명하면서 아이리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용사는 놀라서 외쳤다. 그녀는 괴물이라고. 인간의 정확한 구성과 본질을 알고 있는 용사에겐 보였다. 아이리스는 호흡하는 방법부터 해서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까지 인간과 흡사했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인간보다도 괴물의 방식에 가까웠다. 마그뉴웍시의 소행이라는 걸 용사는 바로 알아차렸다. 즉, 아이리스는 그때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 쓴 괴물과 다를 게 없었다.

 

  말도 안 된다며 아이리스를 품에 안는 그레이스의 모습에 용사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마그뉴웍시, 지옥에 다시 처넣은 그 괴물은 산속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레이스와 이야기 한 것도 들었겠지. 괴물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른 용사는 스스로를 힐난했다. 괴물들의 교활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레이스에게 수작을 부렸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니알라의 말이 오버랩 되었다. 자신이 불행할 거라는 말.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말. 그 무엇도 구원하지 못할 거라는 그 말. 이걸 두고 했던 말이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용사는 때늦은 분노를 일깨운다.

 

  마그뉴웍시는 체내에 특이한 인자를 심는 게 가능하다. 그것은 잠복기를 거치며 천천히 생물의 형질을 마그뉴웍시 본인과 유사하게 바꾸어 놓는다. 잠복기가 지나기 전이라면 인자가 심어진 부분을 도려내 변화를 막을 수 있지만,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면 손 쓸 도리가 없다. 즉, 시간이 지나면 아이리스는 스스로 피부를 찢고 마그뉴웍시와 흡사한, 인간형의 괴물이 되어서 사람을 덮칠 것이다.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팔 년. 칠 년 육 개월 남은 시간동안 방법을 찾고자 두 사람은 동분서주했다. 괴물들이 왜 그레이스를 죽이지 않았는지, 그 석연치 않은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별로 시간이 없었다. 거의 모든 일을 청년에게 맡기고, 두 사람은 그저 한결같이 방법을 찾는데 몰두했다.

 

  용사는 책을 운반하며 아이리스의 괴물 조직을 활용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고, 그레이스는 가져오는 책을 모조리 읽으면서 접목 가능한 부분에서 아이리스의 괴물화를 늦출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흐릉달이 첫 유랑민을 받아들였을 무렵, 그레이스는 단 한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사가 아이리스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 다시 말하자면 용사가 아이리스에게서 일정거리를 떨어지는 방법이었다.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한 건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방법을 찾았다는 것에 용사는 기뻐했고, 그레이스는 침울해했다.

 

  그렇게 현재. 3000권의 책을 모조리 읽고 지금도 그 방법을 찾고 있지만 그것 외에는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용사는 그리고 그레이스는 괴물이 어째서 그를 죽이지 않고 인자를 심은 아이를 가져다놓았던 건지 이해했다. 용사의 숙원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 비록 잔인하고 역겨운 방법이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용사에게 확실한 절망감을 안겨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레이스를 직접 죽이는 것보다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용사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괴물들에게 있어서 자명한 일이다. 괴물들이 용사를 죽이지 않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 그렇기에 용사는 책임지고 아이리스가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녀의 곁을 떠나려 했다. 그런 용사의 행동을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그레이스였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용사의 원대한 뜻과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사이에 두고 그는 고민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며 아슬아슬한 이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오늘이 되었고, 그는 결국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이리스를 죽이면 일은 간단해진다. 희생자는 아이리스와 그녀의 부모 이렇게 세 사람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당연하게도 용사는 그런 잔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용사라는 사람이다. 그레이스는 그 상냥함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용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인자함에 기대어 아이리스를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용사가 이제야 자리 잡기 시작한 흐릉달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차라리 깊은 산속에서 아이리스와 단 둘이 사는 것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제야 사람들과 정을 붙이고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것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사가 그런 불행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저울질해서는 안 되는 가치를 두고 저울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레이스는 괴로워했다.

 

  용사는 그 괴로움을 더 이상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자신이 떠나는 것이 맞는 거라고. 그레이스가 아직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용사는 조용히 성곽을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다. 그 모습을 직시하면서도 그레이스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아이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용사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죄송합니다.”

 

  용사는 말했다.

 

  “흐릉달을 잘 부탁합니다. 이곳은 여전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발판으로 쓰일 거예요. 당신이 일하는 동안 저는 잠시 여행이나 하면서 시간 좀 죽이겠습니다. 무얼, 여행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요. 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잖습니까.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아요, 그레이스. 당신은 여전히 저의 친구입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거고, 저는 그저 긴 여행을 떠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대신 아이리스를 무조건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곳의 시민들이 불행한 삶을 살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지 못한다면 저는 당신을 조금은 원망하게 될지도 몰라요.”

 

  “새겨들었습니다. 반드시 용사님의 뜻을 이행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그때 그레이스를 찾아 아이리스가 계단을 올라왔다. 높은 성곽을 오른 게 힘에 겨운지 헥헥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그레이스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도도 달려왔다.

 

  “옹? 아빠! 왜 우더? 울디 마! 삼초니가 괴롭힌 고야? 아이리스가 때찌! 해주까?”

 

  용사는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것 봐라,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를 괴물이 되게 놔둘 수 있겠는가. 그 누구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레이스를 토닥이던 아이리스와 눈을 맞췄다.

 

  “아이리스. 삼촌은 지금부터 멀리멀리 여행을 갈 거야. 아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텐데 아이리스가 아빠 외롭지 않게 옆에 꼭 붙어 줄 수 있지?”

 

  “아하! 삼초니가 아빠는 안 갖고 혼자 여행 데려가서 아빠 삐졌구나? 삼초니는 아이리스만 미드면 되는 거에요! 아이리스가 아빠 옆에 꼭 붙어 있을 게요.”

 

  “그래, 다 컸네 우리 아기. 이리 와. 삼촌이 한 번 안아보자.”

 

  아이리스가 헤헤 웃으며 용사에게 안겼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슬픔이 사무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괴로운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는 몸이 야속해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용사를 품에 꼭 안았던 아이리스가 다시 오도도 달려가 울지 말라며 그레이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용사는 그런 부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짐을 꾸리고 흐릉달을 벗어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이런 이들을 위해, 이런 사랑을 보기 위해서 그는 노력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준 인연에 감사하며 용사는 백여 년에 이르는 여행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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