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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38
작성일 : 19-11-03 11:39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1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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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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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마동과 보여 지는 마동의 다른 시간성이 한곳에서 마주하고 있었지만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보여 지는 마동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두려움의 공포에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또 다른 자신은 너무나 보잘것없고 작아 보였다. 그 순간, 누군가 아니 여러 명의 어떤 존재들이 마동의 팔다리를 붙잡고 꼼짝 못하게 했다. 마동은 고개를 돌려보니 해변의 목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팔과 다리를 붙들고 있었다. 마동은 목 없는 사람들에게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라는 곳이 공명에 지나지 않았다. 마동이 부르짖는 소리는 마동의 입 밖으로 나와서 소리라는 형태를 띠지 못하고 소멸했다. 마동은 그저 입만 벙긋벙긋 거렸고 목 없는 사람들이 마동의 사지를 강력하게 붙들고 있었다. 입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은 채 팔다리를 목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 주고 철길위에서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기괴한 모습의 철탑인간이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런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철탑인간은 쇠붙이 몸뚱이의 철탑 형태에서 악의에 가득한 징그러운 진액을 질질 흘리며 서 있었다. 괄태충이 은밀하게 꿈틀거리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철탑인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가 흡수되었다. 철탑인간의 얼굴은 마동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징그러움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마동은 철탑인간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래 눈을 떴구만, 자 이제.” 철탑인간은 마동의 눈앞에 칼날을 가져왔다. 철탑인간의 손에 들린 칼날은 마동의 눈앞에서 펜치와 메스로 스르르 변하였다. 철탑인간은 펜치가 제대로 된 형태를 띠고 있는지 이리저리 돌려보고 작동을 여러 번 해 본 후 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이봐, 워밍업이라는 게 있잖아. 자네의 동공을 도려내기 전에 고통이라는 게 어떤지 맛뵈기를 보여주겠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인간은 고통을 잘 참아내지 못하지. 여러 가지 고통 중에 치통은 참으로 아프지. 역시 단지 아프다는 말로 모자람이 있다네. 이제 자네의 치아를 뽑은 다음 치아신경을 건드려볼 거네. 이건 말이지 나치가 오래전에 감행했던 고문의 한 방법이네. 그들은 알았던 거지. 인간의 고통 중에서 치통이야 말로 엄격하게 제일 심한 고통이라는 걸 말이야.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나. 그때에도 내가 가르쳐주었지. 실험의 용도가 아니라네. 고문이었지 고문.” 철탑인간은 마동을 입을 벌렸다. 철탑인간이 벌린 게 아니라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마동의 입이 벌어졌다. 마동은 힘을 주어 입을 벌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마동의 입을 벌리는 힘은 굴삭기와 맞먹었다. 발버둥을 치고 몸을 비틀어 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입은 그대로 벌어졌다. 입이 벌어지고 나니 마동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심장이 불판위에서 팝콘처럼 크게 부풀어 올라 엄청나게 뛰었다.

  “아플 거야, 하지만 말이야, 고통이라는 걸 느끼는 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것이라네. 그 편이 낫다네.” 철탑인간이 쇳가루와 진액을 흘리며 말했다. 입은 물론이고 팔다리와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벌린 입으로는 침이 계속 새어 나왔다. 철탑인간은 펜치를 마동의 벌어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차가운 금속의 성질이 치아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마동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그때 ‘뻑’하는 느낌이 들더니 철탑인간은 치아하나를 뽑아내어 마동의 눈앞에 들이댔다. 긴장이 극도로 달아올라 있어서 그런지 아프다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마치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것처럼 이를 뽑아내는 느낌이 마동의 머리에 전달되지 않았다. 치아가 빠져나간 결손 된 자리의 공백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혀가 따뜻했다. 피는 침과 함께 새어나와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자, 이제 고통을 맛보여주겠네.”

  철탑인간은 메스로 변한 칼날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탑인간은 마치 치과의사처럼 한쪽 눈으로 마동의 입안을 재어 보더니 메스로 끊어져버린 신경, 치수를 건드렸다. 그 순간, 마동은 눈이 커지고 대형냉장고가 1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발동을 찧었을 때처럼 고통스러웠다. 마동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구강을 통해 밖으로 나오면서 소멸되어버렸다. 철탑인간은 마술사 같은 표정을 지은 다음 메스로 치조골을 찔러서 그 밑을 흐르고 있던 신경계인 치수의 골을 푹 건드렸다. 마동의 눈에서 눈물이 뚝 흘렀다. 마동은 너무 아팠다. 콧물도 눈치 없이 흘러나왔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머리를 누군가에게 망치로 힘껏 세 번 맞는 기분과 흡사했다. 철탑인간이 치아의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마동은 다리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가 했다.

  “어떤가, 이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워밍업에 불과하다네. 자네의 동공을 도려낼 거야. 이 고통보다 더 심할지도 몰라. 잘 견뎌보게. 흔히 인간들은 마음의 고통을 치통에 비유하기도 하지. 굉장하거든. 하지만 이제부터 할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네. 난 자네의 뇌가 탐나거든. 그 속에 그것이 말이지.”

  철탑인간은 쇳가루를 입에서 떨어트렸다. 철탑인간의 세 개의 손(그것을 손이라 부른다면)에는 메스가 어느새 본래 칼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철탑인간은 쇳가루를 만들어내며 몸을 움직여 마동의 눈앞으로 칼날을 들이댔다. 그 칼은 확실히 는개가 사들고 온 칼이었다. 마동을 위해서 회를 뜨기 위해서 대형마트에서 같이 구입한 칼이었다.

  어디로 뻗어 가는지 알 수 없는 철길과 이상하게 변이한 철탑인간과 뒤로 보이는 완전무결한 숲에서 바라보는 두 눈동자와 검은 구름에서 쏟아지는 수천, 수만 마리의 괄태충들은 모두 완벽하게 죽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공간에 가득할 뿐이었다. 마동은 이곳에서 오로지 혼자였다. 마동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인간도 아니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철탑인간과 사념이 가득한 목이 없는 인간들과 그들이 내는 잡음과 괄태충에게 둘러싸여 두려움에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철탑인간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칼날을 들고 마동의 주위에서 자신이 할 일을 끈적끈적하게 하고 있었다. 철탑인간은 이제 그만 됐어!라는 말을 하고 칼날을 마동의 눈동자에 갖다 댔다. 마동은 눈을 감을 수도 떨 수도 없는 상태로 몸을 떨고 앉아있었다. 목이 없는 사람들이 마동의 몸과 팔다리와 눈꺼풀을 잡고 있었고 철탑인간이 칼날 끝을 눈꺼풀에 한 번 댄 다음 동공 쪽으로 내렸다. 칼날이 동공을 찌르기 전에 마동은 오줌을 지렸다. 지린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 내렸다. 지린 오줌의 냄새를 맡고 괄태충들이 구토물을 다 먹은 후 오줌을 빨아 먹으며 마동의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허벅지를 타고 괄태충들이 올라오는 꾸물꾸물한 느낌이 들 때 철탑인간이 든 칼날이 공동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두려웠다. 피비린내와 누린내가 두려웠다. 칼날이 두려웠고 버려진 내 과거가 두려웠다. 목 없는 사념의 인간들이 두려웠고 커다란 괄태충들이 두려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길이 두려웠고 붉은 두 눈동자가 두려웠다. 는개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철탑인간이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미소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마동은 오줌을 계속 지렸다. 심장이 쿵쾅쿵쾅하며 대공포 소리를 냈다.

  쿵쿵쿵. 쿵쿵.

  “당신, 당신 어디 있는 거예요? 당신 거기 있죠?”

  이 목소리는 는개의 목소리였다. 이건 분명히 는개의 목소리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이다.

  “당신 여기에 있어요?”

  는개다.

  이곳까지 그녀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6일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동은 떠지지 않는 눈을 무리하게 뜨고 시계를 봤다. 시계는 기억이 억지로 만들어 놓은 컴포넌트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시간을 옮기고 있었다. 시계의 시간은 이미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고 밖에는 비가 떨어져 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어두웠고 마동이 누워있는 거실도 어두웠다. 한낮의 어둠은 여름이라는 날과는 대조적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선과 악 중에 해를 선이라 하고 어둠을 악이라 한다면 지금의 어둠은 악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설적 어둠은 빛이 있는 낮을 잠식해버렸다.

  쿵쿵쿵.

  문을 힘 있게 여러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남자 어른이 두드린다면 거칠고 공격적이라서 이렇게 두드리는 소리와는 달랐을 것이다. 굳이 초인종을 놔두고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집안에 마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허둥지둥 온 모양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세계는 마치 정지한 듯했다. 시간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듯 발전하고 있었고 세계는 그대로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쿵쿵쿵 쿵쿵.

  “당신 여기 있는 거예요?” 이것은 는개의 목소리였다.

  무엇이 어찌된 일일까.

  마동은 코 안에서 누린내가 아직도 풍겨 오는 것을 알았다. 누린내의 여흥 뒤엔 옅은 피비린내도 났다. 머리를 들어보니 값나가는 금덩어리 여러 개가 머릿속에 들어와 숨을 죽이고 묵직한 무게로 가라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무거워서 겨우 바닥에서 머리를 들었다. 마동은 손으로 눈두덩을 만져보았다. 눈꺼풀이 만져졌고 눈이 불편하지만 깜빡여졌다.

  쿵쿵쿵.

  마동은 잘 일어나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겨우 몸을 지탱해서 거실을 지나 힘든 걸음걸이로 현관문 앞에 섰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들이 던지는 모래가 부딪혀내는 소리 같았다. 자신의 팔처럼 느껴지지 않는 팔을 들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한줄기의 빛처럼 문 앞에는 는개가 서 있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우산 없이 왔는지 머리와 옷은 비에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마동은 그녀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나의 몰골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그저 고마울 뿐이야. 눈물이 날만큼 그녀가 반가웠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까지 기쁠 수가 있을까.

 

  는개가 마동을 구해 준 것이다. 철탑인간에게서, 세 자루 칼의 눈도림에서, 마동이 버리고 온 자신의 수많은 과오에 대해서, 수천마리의 괄태충의 역겨움 속에서, 목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그녀가 마동을 구해 준 것이다. 마동은 자신의 꼴을 생각지도 않고 는개를 그대로 안았다. 는개는 영문도 모른 채 마동의 품에 안겨서 가쁜 숨을 기쁘게 내 쉬었다. 는개가 숨을 내 쉴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마동의 품에서 강아지처럼 움직였다. 마동의 앞에 있는 그녀는 분명한 는개였고 틀림없는 그녀였다. 작정하고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는개의 얼굴이 앞에 있었다.

  는개는 다른 모습이 아닌 어김없는 그녀의 모습이었고 마동은 그녀의 부재가 가져왔던 무상과 공허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달빛보다 차가웠고 어마어마한 허전함과 쓸쓸함이었다고 마동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니힐리즘에 차츰 먹혀 들어가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자신이 되어간다고 마동은 말해주고 싶었다. 마동의 가치체계가 완연히 붕괴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 내 눈을 도려내려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두려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동은 말 할 수가 없었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보았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격렬하게 원했던 얼굴이었다. 마동은 손을 들어 는개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일었다.

  “당신, 연락이 되지 않아 점심시간에 이렇게 와봤어요. 당신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줄 알았어요.”

  는개의 품에 안겨 있다가 마동의 품에서 떨어져 두 팔로 마동의 팔을 잠시 잡고 마동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는개의 눈 속에 비친 세계는 마동의 마음에 투영되어 한정된 세계를 넘어섰다. 그 이상의 세계가 그녀의 눈 속에 있었다. 그 너머의 세계에는 는개의 작고도 애절한, 깊은 마음이 투영 되어서 존재해 있었다. 는개의 작은 마음은 마동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세계를 알아차리자 마동의 마음은 일렁거렸다. 해일의 건조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서서히 변하듯 마동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는개의 눈을 통해 작은 마음이 와 닿았다. 두 손을 모으고 뜰채처럼 뜨면 두 손에 작게 떠오를 만큼 아주 가볍고 미약한 마음이었다. 그 작은 마음은 마동에게 닿을 수 있게 마동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제 마동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서 는개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 왜 전화도 안 받았어요?”

  는개는 정의할 수 없는 몇 개의 미소를 지었고 현관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는개가 거실로 올라와서 어젯밤의 상황을 눈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굴러다니는 와인 병을 치웠다.

  마치 아내처럼.

  “잠들어서 듣지 못한 것 같아”라고 마동이 말했다.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거북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형사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아마 조금 있으면 당신에게 올 것 같아요. 이전에 만나서 형사가 뭐라고 그래요?”

  는개는 비에 젖은 옷을 벗었다. 비를 털어냈다. 마동은 그녀에게 형사와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밖은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는개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바쁘게 오느라 비를 많이 맞았다. 머리가 젖었고 블라우스와 치마가 비에 젖어 있었다. 아파트 근처 어딘가에 내려서 집까지 뛰어왔다. 마동의 시선을 는개는 몸으로 받았다.

  “밖에 비가 많이 와요. 회사에서 나올 때는 괜찮았는데, 하늘에 검은 구름이 가득해요. 어제 저녁에 B블록 사거리 인슈빌딩의 상층부가 무너진 사건이 발생했어요. 알죠?”

  “그래.” 마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딩밀집 지역이라 인근의 피해도 심각하다고 해요. 비가 많이 오니 복구도 느려지고.” 그녀가 머리를 털며 말했다. 는개가 머리를 털 때마다 기분 좋은 향이 번졌다.

  “5년 전에 실종된 여자 두 명의 시체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발견됐데요. 그대로의 모습이로 말이에요. 어쩐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의 향을 누린내가 가득한 어두운 마동의 거실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경비원도 추락사를 했다는 거 알아요? 일 년 전에 보험회사에 찾아온 여자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밤이 되도록 발견이 안 되었다가 경비원이 발견을 하고 경찰서에 연락을 했는데 죽었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가 있을까.” 마동은 조용하게 말했다.

  “아마도 그 경비원이 바로 연락을 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채우고 연락을 했나 봐요. 그러는 사이 아마도.”

  흠.

  마동은 거실의 커튼을 걷고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암울한 어둠만이 가득한 세계였다. 어두운 풍경의 어두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깔려있었다. 그 사이에서 마른번개가 이질적인 밝음으로 한 번씩 번쩍거렸다. 기존의 모습보다 더 커지고 무서운 모습이었다. 지그재그로 하늘에서 바다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아마도 그 밑에 서 있다가는 형태도 남지 않고 그대로 재로 변할 것만 같았다. 장군이가 말한 알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 가까이 온 것이다. 무서운 존재는 사람들을 덮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곧 공황상태에 사로잡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것이다. 오늘밤이면 그 무서운 자줏빛 해무가 인간의 세계로 완벽하게 밀고 들어올 것이다.

  는개는 어느새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주방에 들어서니 어둑하고 죽어가던 거실이 환하게 살아났다. 아무래도 주방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요술쟁이의 이사벨처럼 코를 찡긋찡긋 하는 모양이었다. 는개가 만드는 음식의 냄새는 거실에 가득 들어차있던 누린내를 밀어내고 내려앉았던 그녀의 향 위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저도 점심을 먹지 못했어요. 어쩐지 입맛이 없어요. 입안이 텁텁하기도 하고…….”

  는개는 냄비에 물의 양을 조절하고 냉장고에서 어떤 식재료를 꺼내서 도마 위에서 썰었다.

  “죽을 만들게요. 같이 먹어요. 전 이거 먹고 가시 회사로 나가봐야 해요. 그리고 저녁에 다시 올게요”라고 는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마동은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누군가와 약속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쌍방 간의 합의 하에 의해서 서로 약속을 정하고 만나고……. 약속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명령을 받거나 지시를 내려 본 적은 있었지만 약속을 정하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약속장소에 나갔던 기억도 별로 없었다. 약속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지금 상황에서는 판단이 더뎌지기만 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마땅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소피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소피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소피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는개가 저녁에 다시 만나러 온다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뛰었다.

  날 만나러 다시 온다는 말에 왜 가슴이 이렇게 뛰는 걸까.

  는개는 자신의 옷을 벗어서 선풍기 바람에 말리고 다시 마동의 옷장에서 면 티셔츠와 녹색의 체크무늬 반바지를 꺼내서 입었다. 비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난 후 포니테일로 묶은 채 주방에서 죽을 끓였다. 아무것도 없는 주방에서 는개는 코를 찡긋하여 요술을 부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신, 음악 좀 틀어요, 노래가 듣고 싶어요.”

  마동은 는개의 말에 아이팟의 시작버튼을 눌렀다. 엠피쓰리는 반응을 하며 노래를 B&O 스피커를 통해서 토해냈다.

 

  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이 끝나버렸어.

  우리는 결국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세상의 끝을 맞이하네, 맞이하네.

 

  마동은 얼른 다른 노래로 바꾸었다. 듣다가 중간에서 꺼져 버렸는지 딱 저부분에서 노래는 다시 재생되었다. 정당한 의미를 지니고 노래는 흘러나오고 있었겠지만 마동은 ‘거울잠’ 이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당신, 우울한 노래를 좋아하는군요. 듣기 좋은데 왜 바꿔요? 그 노래가 듣고 싶어요.” 탁탁탁하며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 사이에서 는개의 목소리도 들렸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냥 엠피쓰리의 버튼을 눌렀을 뿐이야. 다른 노래로 바꾸고 싶은데.”

  는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동은 그대로 ‘세상의 끝’이라는 노래를 다시 틀었다. 노래가 수액처럼 진하게 흘렀다. 죽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새가 집안에 번졌다. 어두운 공간에 한 줄기의 빛이 떨어지듯 죽 끓이는 향이 거실로 퍼져 나왔다. 는개가 만들어내는 죽 끓이는 향은 고독하지 않았다. 익숙한 곳에서 낯설고 좋은 향이 번졌다.

  “노래가 우울해요. 마치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아요.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저 무척 좋아해요.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우리 정서와는 다른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아주 잘 맞아요. 아주 넓은 세계를 향해서 교신을 하는 거 같아요(웃음). 톰 요크의 목소리는 정말 꿈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요.” 는개는 마동의 대답을 듣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언젠가부터 노래를 통해서, 어딘가에 있는 존재에게 여기로 오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거 같지 않아요?” 그리고 는개는 큰 소리로 웃었다.

  “이 노래는 라디오헤드보다 더 오래됐어. 아마 30년은 되었을 거야. 그때 이런 분위기의 노래를 왜 만들었을까. 나라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가수의 내면이 그러했을까. 하며 그런 생각이 들곤 했어. 어찌되었던 사람들에게 외면 받은 곡이야.”

  마동은 는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는개도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좋아하는군. 도대체 그 녀석들 노래는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거지.”

  “그건요, 노래의 느낌이 들을 때마다 달라서 그래요. 그리고 다른 노래를 들어도 느낌이 비슷해서 좋은 거예요.”

  탁탁탁 하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도마와 칼의 마찰이 내는 소리다. 칼은 철탑인간이 쥐고 있었던 그 칼이었다. 그녀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칼이라는 명제에 부합되는 기분이 들었다. 죽에 넣을 재료를 썰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죽에 들어갈 만한 그 무엇도 없을 텐데, 하고 마동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요술쟁이니까. 코를 찡긋거리는.

  “뭐지? 느낌이 달라서 좋고? 느낌이 비슷해서 좋다는 건?”

  “글쎄요, 무엇일까요. 흘러가는 것이 머물러 있는 것을 아우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흐음“라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마동이 소리를 냈다.

  “각각의 노래는 여러 부분을 지니고 있어요. 그 부분은 서로 향하는 곳이 달라서 내는 소리가 모두 다른 거예요.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공간에 따라서 말이에요. 일정한 시간의 격차는 생략하고 노래는 소리를 내는 거예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사와 리듬은 같지만 그래서 느낌이 몽땅 달라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은 비슷해요. 그것이 라디오헤드의 특징이다, 그것으로 인해 결점을 보완해버린 밴드라고 생각이 들어요.”

  “흠, 난해해.” 마동이 말했다.

  “마치 당신 같아서 좋다는 거예요.”

  “난처하군.”

  “회사에서 당신이 고요하게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당신이 무슨 노래를 듣는지 궁금했어요. 휴대전화 속의 노래 파일에는 무슨 노래들이 들어 있을까, 어떤 음악을 저토록 심취해서 듣고 있나 정말 궁금했어요. 내가 스토커 같나요?”

  “귀여운 스토커.”

  “귀여워도 스토커는 스토커죠. 대부분 스토커들의 시작은 귀엽게 시작하죠. 미저리처럼”라며 고개를 돌려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마동은 그 모습을 보고 아이구 무서워,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미저리의 케시 베이트가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지 마동은 잠깐 생각했다.

  “그때 당신이 라디오 헤드의 ‘렛 다운’을 듣고 있었어요.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그 노래의 어느 부분을 따라 불렀어요. 알아요?”

  “내가? 설마……” 마동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붉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는개는 그때가 생각나는 듯 슬며시 웃었다.

  “렛 다운은 저도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그래서 종종 들었어요. 당신이 그 노래에 심취해서 듣고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마치 아이돌을 향한 여고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당신도 좋아하는구나. 하며 말이죠. 렛 다운을 듣고 있으면 당신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이 어린 당신의 연약한 냄새를 놓치지 않고 있었거든요. 당신의 감각을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들었어요. 꽤 듣다보니 톰 요크의 그루미한 목소리 속으로 한껏 들어갈 수 있었어요.”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대중가요 같아”라고 마동이 말했다.

  “흥, 또 재미없는 소리.” 는개는 개방적인 얼굴로 개방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열정이라든가 욕망, 그에 따른 철학적 성찰 등이 명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헤드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들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래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또 ‘거울잠’이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 역시 무엇을 의미할까?” 마동은 혼잣말을 했다.

  “글쎄요, 뭘까요?” 그녀 역시 혼잣말을 했다.

  흠.

  “라디오헤드는 언제쯤이면 단독공연을 하러 올까요?” 는개가 물었다.

  “글쎄, 자본이 떨어지면 회수하러 오지 않을까?”라고 마동이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설마,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깨를 들었다가 내리면서 마동은 농담이라는 포즈를 취했다.

  는개는 손에 주걱을 든 채로 양팔을 천장으로 올려 곧게 쭉 뻗으며 기지개를 한 번 폈다. 이제 갓 바다 쇼를 위해 큰 바다에 뛰어든 푸른 돌고래처럼 매끈한 등의 한 부분이 수줍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마동에게 그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였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사진에 담아서 몰래 혼자서만 꺼내서 보고 싶었다. 상상의 흥분이 몸 안으로 전달되었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가 그냥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제 다시는 저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더는 작은 는개의 몸을 안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오늘밤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 약속은 더 이상 약속으로 남아있지 않고 공중에서 폭격을 맞아 가루로 부서질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지 않아서 약속이다. 마동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는개는 마동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밥상에 두 그릇의 죽을 만들어 거실로 들고 왔다. 비가 바람에 날려 더욱 세차게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에 듣는 거센 빗소리는 거실의 공간을 점 더 쉬르리얼리즘으로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베란다 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비가 오면 회사에 다시 가기가 힘들겠어”라고 마동이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이 바래다주면 되죠”라며 는개는 웃었다. 그녀는 작은 상을 내려놓고 마동의 앞에 죽그릇을 밀어 주었다. 마동은 음식물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분명 몸에서 거부할 것이다. 그 반응의 표출을 그녀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마동은 아직 씻지 않았다며 욕실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는개의 작고 부드러운 손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여 마동을 끌어당겼다. 죽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한 이불처럼 포개졌다.

  천둥소리와 함께 몇 번의 신음이 되풀이되었다. 마른입술과 촉촉한 입술은 여러 번 교차되었고 교차될수록 두 사람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강하게 원했고 끌어안았다. 아름다운 신음소리는 몇 번이나 허공에 퍼졌고 끓여놓은 죽은 서서히 식어갔다.

 

  어제는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이미 세상은 끝나 버렸어.

  우리는 결국 모두 무너지고 마네. 무너지고 마네.

 

  “왜 이 노래만 계속 나오는 거지……”라고 마동이 혼잣말을 했다.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려요. 좋으면 계속 들으면 돼요”라고 는개가 말했다.

  “그래, 계속 들어.”

  “그래요, 계속 들어요.” 는개가 웃었다. 바람의 저 끝에서 불어오는 웃음이었다. 흉내 낼 수도 없고 다시 볼 수도 없을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자아낼 수 있는 웃음이었다. 는개의 웃음은 쌓여있던 어둠의 찌꺼기를 쓸어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그녀가 웃음을 만들어내면 시간이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는개의 웃음을 계속 보고 있으면 세계는 전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는개의 미소는 사고의 재생력을 점점 뒤로 후퇴시켰다. 는개의 웃음 속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견고한 관능도 함께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는개의 또 다른 모습일까. 그녀가 떠나고 나면 난 그녀의 웃음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는개만의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동은 만족하리라 다짐했다. 는개의 부재가 몰고 올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허함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마동의 옆에는 그녀가 있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이것은 실체였고 실재다.

  그래, 그러면 다행인 거야.

  마동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작은 손을 잡았다. 작았다. 너무 작아서 꽉 쥐면 부스러질 것 같았다. 는개의 마음과 비슷했다. 강인하게만 보였던 는개의 손은 너무 연약하고 부드러웠다. 는개도 마동의 손을 쥐었다. 부드러운 손바닥은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손바닥의 마찰은 두 사람의 근원적 순수를 나눠가졌다. 는개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다. 마동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 는개의 손을 이렇게 꼭 쥐고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늘어진 안개처럼 굉장히 미미하고 작은 그녀의 손을 놓칠세라 쥐고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던 기억이 있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저 끝으로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다. 빛이라고 하는 것이 원해 그렇게 작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 멀리 있어서 빛이 작게 보이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런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옳기고 있었다. 조금 느린 걸음걸이로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앞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작았고 부드러웠다. 분명 희미하지만 기억이 났다. 걸어가는 동안 포르말린 냄새가 곳곳에 있었다. 냄새도 기억이 났다. 허용의 한계를 넘어선 냄새. 오롯이 그 하나의 냄새가 났다.

  벌어진 살갗 사이로 피와 진물이 흐르는 냄새가 나던 곳.

  알코올에 적시 솜이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냄새가 나던 곳.

  고통에 허덕이다 결국 절망적인 침묵의 냄새가 나던 곳.

  포르말린 냄새가 기억이 났다. 오래된 복도의 바닥과 오래된 병원용 침대가 보였고 오래된 형광등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볼 틈도 없이 느린 걸음으로 통로의 저 끝으로 손을 잡고 걸어갔다. 작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것만 같았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향해서 걸어갔다. 통로의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어딘가에 살포시 서로 누웠다. 조용한 하루였다. 침묵이 겹겹이 내려앉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을 내리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의 향이 우리를 간질이고 치누크가 불어와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저녁노을의 그림자처럼 은은한 빛을 받으며 나는 영혼이 그 빛에 사로잡혀 간다는 것을 알았다. 짧지만 강인한 한순간의 풍경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녀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아픈 마음을 지닌 그녀의 미소를. 그녀만의 슬픈 미소를.

 

  마동은 는개의 손을 쥔 채 눈을 떴다. 는개의 손은 이전보다 강렬하고 맹렬한 그 무엇을 마동의 손을 통해 마동에게 전달해주었다. 마동은 자신이 그동안 희미하게 꿈에서 봐왔던 전경의 모습 속에 나타나는 희미한 모습의 그녀가 는개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는개는 마동보다 나이도 어렸다. 어린 그녀는 마동과 사는 것도 달랐고 시간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마동은 그동안 는개를 만났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하기 전까지는.

  어째서 는개의 손을 잡는 순간 마동의 희미한 꿈속의 전경이 탁 트였던 것일까. 시간이 왜곡되고 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두 사람은 만났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 마동은 어린자신이 왜 병원으로 갔는지, 는개는 왜 병원으로 와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흐름을 생략하고 손을 잡고 만났었고 현재 같이 있었다. 지금 는개를 안고 있는 현재가 소중했다. 는개의 작은 손을 이렇게 꼭 쥐고 있는 지금이 마동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동은 의식과 무의식을 총 동원해 지금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엄마가 안고 있는 아기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몇 번의 천둥소리가 또 들렸고 몇 번의 마른번개가 떨어졌고 그 사이 는개의 신음소리가 몇 번 들렸다. 두 사람은 또 한 번의 전위를 나눴다. 는개는 마동의 입에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미소. 는개는 발가벗은 채 죽 그릇이 올려 진 상을 두 사람의 앞으로 당겼고 마동은 12월에 버려진 연탄재처럼 널브러져있던 옷을 주워들고 입으려고 했다.

  “입지 말아요. 발가벗은 채 죽을 먹어봐야 더 맛이 좋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벗은 몸을 한동안보고 싶어요”라며 는개는 죽 그릇을 마동에게 권했다. 는개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 포함되어있다.

  흠.

  “정말 발가벗고 먹으면 죽 맛이 좋은 거야?”라고 마동이 눈을 크게 뜨고 처음 레고의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처럼 말했다.

  “설마요.” 는개는 웃었다.

  “알 수 없는 여자야.”

  두 사람은 모두 발가벗은 채로 죽 그릇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죽을 먹으려했다. 마동은 음식물이 탐탁지 않았다. 속에서 거부할 것이 뻔했다. 는개가 맛있게 죽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동은 숟가락으로 죽을 젓기만 했다. 죽은 이미 식어서 김(steam)이 모두 빠져나가 버렸다.

  “괜찮아요. 먹어봐요. 꽤 맛이 날거예요.”

  “난 안 먹어도 괜찮은데. 속이 좋지 않아.”

  “그래서 죽을 만들었어요. 먹어봐요. 제가 맛있다고 하면 꽤 괜찮은 맛이 날거예요. 말했지만 회를 맛있게 썰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구요 저는.” 는개는 정말 코를 찡긋거리며 떠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손짓을 보면 손짓이 시키는 대로 하게 돼 있었다. 거부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힘이었다. 마동은 자신 앞에 있는 작은 그릇에 담겨있는 야채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는개의 말처럼 거북하지 않았다. 이 여자는 정말 요술쟁이란 말인가? 마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어 는개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는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가녀린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도자기처럼 도도한 쇄골이 눈에 들어왔고 적당한 자리에 자리 잡은 가슴과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마동은 또 한 숟가락 조심스럽게 떠먹었다. 역시 괜찮았다. 그리곤 죽 그릇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마동은 는개를 보며 어째서? 하는 눈빛을 띠었다.

  “저기 있는 주스를 좀 넣었어요. 당신이 잘 마시는 것 같아서요. 소스대신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 맛에 빠져들 것 같아요”라며 는개가 숟가락으로 주스 병을 가리켰다. 마동은 이제 더 이상 그녀에 대한 호기심은 그대로 묻어두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어제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처럼 무의미했다.

  마동은 죽을 남김없이 전부 먹었다. 그로서는 6일 만에 씹을 수 있는 음식물을 회 다음으로 먹은 것이다.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이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배고픔, 인간이 지니는 가장 밑바닥의 욕망,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마동에게도 배고픔의 시절이 있었다. 배고픔이 배를 벗어나서 인체의 모든 부분을 잠식하고 목 위로 머리로 올라와서 괴롭히던 시절.

  마동은 는개가 끓여준 죽을 먹고 배고픔을 다시 느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의 모습 같았다. 는개는 발가벗은 채로 마동의 그릇에 죽을 한 그릇 다시 담아왔다. 그녀의 음모가 걸을 때마다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는개도 한 그릇 더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그녀의 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날씬했다. 는개는 먹은 음식은 체내의 지방에는 축척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죽을 두 그릇이나 먹었지만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죽인데요 뭐, 그릇도 작고.” 는개는 죽 그릇을 들고 마동에게 말했다.

  맙소사.

  마동은 는개가 떠 준 죽을 말없이 긁어 먹었다. 비어있던 위장과 마음이 죽으로 가득 채워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죽은 그녀와 닮았다. 는개와 닮은 죽이 마동의 바닥에서부터 쌓였다. 당연하지만 위에서부터라든가 중간에서부터 쌓일 리는 없다. 검은 비가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마동은 베란다를 통해 하늘을 보았다. 는개가 갑자기 마동의 뺨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었다. 미미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일까, 는개의 손바닥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웠다. 는개의 손바닥은 냉정했고 누구와도 타협을 거부할 것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이 그랬다. 하지만 는개에게서 느껴지는 날이 선 냉정함은 마동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고 앞으로도 따뜻할 것이다. 작지만 끝나지 않는 세계가 있는 손이었다. 는개만의 아프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손이었다.

  이제 앞으로 는개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밀려들었다. 그녀가 왜 지금 마동 자신의 뺨에 손바닥을 갖다 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마음이 는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은 두려워서 는개의 뺨을 두 손으로 어루 만져주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는개가 자신의 손으로 마동의 손을 잡고 그녀의 뺨을 만지게 해 주었다. 는개는 마동의 오른손등과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입맞춤을 해 주었다. 눈을 감은 그녀의 눈에서 마른땅위에 위태로운 새싹이 솟아나듯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눈물의 의미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마동도 는개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손바닥에서 그녀의 향이 났다. 부드러운 향이었다.

  두 사람을 시샘하듯 검은 비가 바람에 날려 베란다의 창에 심술궂게 떨어졌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요.”

  “그래.”

  마동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는개는 마동의 입에 입맞춤을 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었다. 마동은 작은 상자를 그녀에게 건넸다. 통장이 들어갈 만한 직사각형의 네모난 사각형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재미없어 보이는 상자였다. 는개는 작은 상자를 받아들고 2초 정도 상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알았다는 듯 마동을 쳐다봤다. 마동은 는개에게 회사에서 열어 보라고 했다. 는개는 아무런 질문도 없이 받아 든 상자를 그녀의 가방에 넣었다.

  상자에는 통장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마동은 와인을 마시면서 는개에게 편지를 썼다. 마동은 이미 오래전에 편지를 한 번 써본 기억이 있었지만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인사를 어떤 식으로 먼저 꺼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편지지를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펜을 들고 편지지를 노려봤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편지라는 건 어떻든 첫 시작의 문을 열게 되니 문 안으로 난 길을 걸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는개에게 하고 싶은 말은 편지지에 써지기를 바랐다. 마동은 비교적 꼼꼼하고 정확하고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과 부탁과 는개에 대한 마동 자신의 생각을 침착하게 적었다. 잘못 적었거나 오타가 났거나 하면 마동은 옆에 다시 똑같이 한 번 더 적었다. 하지만 편지지가 한 장을 넘어서니 오타에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적어나갔다. 손가락을 통해 활자는 춤을 추듯 편지지에 그림을 그렸다.

  소피에 대해서 어떡하면 는개가 오해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사실대로 적으면 된다는 결론에 따라서 소피에 대해서도 적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진실 되게 적는데 공을 들였다. 소피의 가슴수술을 위해서 돈이 전달되어 졌으면 좋겠다. 단 소피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지 않게끔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는개는 잘 알아서 할 것이다. 나보다 현명하고 나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니까 소피에게도 잘 전달하고 나머지 일도 내가 술렁술렁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전 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다 알아요”라고 는개가 핸드백을 보며 말했다. 마동은 그녀의 말에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는개는 이렇게 세차게 내리는 검은 비와 일간에 터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마동은 지금 쏟아지는 검은 비와 어두운 자줏빛 구름과 사건에 관계가 깊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는개에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시작된 일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알지는 못했고 끝맺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마동은 알고 있었다. 역시 는개는 알지 못한다. 는개와 마동 사이에는 잘 보이지 않는 몇 겹의 막이 한정적으로 쳐있었지만 마동은 그것을 거둬낼 생각은 없었다. 모르는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지는 의사가 한 말처럼.

  “당신은 어디론가 없어지려 하는 거죠? 엊그제 밤에도 말했지만 당신은 완전히 어딘가로 떠나려 하는군요.” 는개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난 매일 달리면서 나 지신을 이기려고 했어. 나 지신을 이기는 길은 매일 조금씩 달리는 길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 안에는 뚜렷한 명제하든가 공식을 뛰어 넘는 무엇이 있는 건 아니었어. 그동안 난 나를 죽 버리면서 살아왔어. 하지만 사소한 것들이 버려지지 않았어. 아주 작은 것들인데 버려지지가 않아. 나는 버리는 것을 훈련하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 난 어떤 의미에서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인간일지도 몰라.” 마동의 목소리는 10월의 그리움처럼 변함없는 톤을 유지했다. 는개는 다시 마동의 뺨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더 냉정해진 손바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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