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화는 끊어지고 다들 식사에 집중했다. 어느새 테이블을 가득 채운 요리들은 빈접시만 남겨져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룸에서 나오는 여섯사람이 레스토랑 앞에 서 있으면 차들이 나와 서 있다.먼저 건우부모님이 인사를 받으며 차를 타고 가면 그 뒤로 건우 차가 선다. 아무 인사도 없이 차를 타고 가는 건우와 채린의 차를 바라보며 서 있으면 연우의 차가 선다. 연우가 운전석에 앉아 도로를 달린다.
"데이트의 마지막이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어"
"그래도 같이 식사를 하니까 좋긴 하더라 진짜 가족같아서..."
"아까 건우부부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데 기분 나쁘지 않아?"
"건우가 노력하는 모습 안 보여 채린에게 최대한 잘해주려고 그런거야"
"그렇다고 비서가 없을때 네가 일을 도와줬는데 인사도 안해"
"그건 나중에 따로 인사 하겠다고 했어. 내가 거절했지만..."
연우가 못내 섭섭한 듯 투덜거리는 사이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버린다.
그 뒤로 쳇바퀴 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연우는 출근하고 집에 있는 슬비의 폰이 울렸다.
"오빠 왜 전화했어"
"지금 어디야? 집이야?"
"응 근데 왜?"
"소파에 서류가 든 봉투가 있는지 좀 찾아봐"
"아! 여기 있어"
"그것 좀 갖다줄래 사무실로..."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슬비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서류가 든 봉투를 가방에 넣어서 집을 나온다. 버스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해 연우에게 서류를 건네주고 다시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슬비의 발걸음은 평창동 집앞에 서 있다.
초인종을 누르자 뒤늦게 문이 열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배달음식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열자 회사에 있어야 할 시아버지가 서 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버님"
"그래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길 다 왔어"
"근처에 왔다가 들렀어요. 근데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일주일 동안 지인들과 해외여행을 갔다온다며 갔어"
"그럼 아버님 식사는... 그래서 배달음식 그릇이 대문 앞에 있었구나"
"나도 별 수 없지 뭐..."
그말에 부엌으로 가면 먹다 남은 컵라면과 햇반 용기들이 놓여있고 싱크대 안에는 설거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내가 가사도우미랑 눈 맞을까봐 아주머니도 일주일 휴가 줘서 안 와"
"제가 정리 좀 해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난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아버님"
인사를 받으며 나가는 건우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문을 나가고 그 사이 슬비는 이층 연우가 쓰던 방으로 가서 편한 옷차림을 하고 그동안 하지 못한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하다보니 시간은 저녁이 되었다.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건우아버지는 아직 슬비가 집에 가지 않고 그 집에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란 듯 서 있다가 말을 건넨다.
"아직도 안 갔어?"
"아버님 오시면 가려구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 그만 가... 연우가 기다리겠다"
"네. 그럼 편히 주무세요"
인사를 하고 나가는 슬비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서 있다가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가 뒤늦게 뭔가 생각이 난 듯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슬비를 집까지 바래다 주라고 명령하지만 이미 슬비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연우는 이미 퇴근을 하고 슬비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 오는 슬비를 보면서 걱정이 된 듯 다가가 반긴다.
"어디갔다 이제 오는 거야"
"미안 평창동 집에 들렀다가 오느라 좀 늦었어"
"또 거긴 왜 갔어"
"갔는데 어머니는 지인들과 여행을 가셔서 안 계시고 아버님 혼자서 배달 시켜서 먹거나 인스턴트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시고 계셨어"
"아주머니 안 계셔?"
"아버님과 눈 맞을까봐 아주머니도 휴가 주셨데"
둘은 그 말에 킥킥거리며 웃는다. 나이가 들어도 멋진 아버지가 불안한 듯 같이 휴가를 주고 여행을 가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웃겼다.
"내일은 새벽 일찍 가서 아버님 밥을 해드려야겠어"
"그런 난 어떡하고"
"어머니 올 때까지만 평창동 집으로 출, 퇴근해 오빠도..."
"뭐라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지만 슬비의 노력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