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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꽃을 담은 소녀
작가 : 심연고래
작품등록일 : 2019.9.3

특별한 힘을 가진 소심한 소녀의 이야기

 
07. 불꽃
작성일 : 19-11-02 16:42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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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에 신이 있었다.

  신은 이 땅을 창조하고, 그 위에 살아갈 여러 종족들에게 생명과 마력을 나누어주었다. 그중 첫 번째로 태어난 종족에게 신은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마력과 긴 수명을 주었다. 선한 드래곤들은 세상의 현자답게 신의 뜻을 받들었고, 세계는 평화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드래곤의 힘을 질투하던 한 종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비밀리에 만들어낸 새로운 마법으로 드래곤에게 맞섰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강력한 마법에 드래곤조차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세상은 피로 물들었다.

  결국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신은 마지막으로 새로운 존재, 인류를 만들었다. 신은 오만한 종족에게 맞설 특별한 힘을 인류에게 내렸고, 그 힘을 통해 인류는 승리를 거듭해나갔다. 결국 끝까지 몰린 패잔병들은 창조계를 벗어나 마계로 도망쳤다. 승리자들은 그들을 도망친 세계의 이름을 따 마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조계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이 천지창조 신화가 실제로 역사적인 사실인지,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이 힘이 속해있는, 신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이 특이한 능력군은 신화와 잘 맞아떨어졌다.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었고, 후천적으로 배우는 마법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야만 헀다. 결정적으로 마족을 대상으로 할 때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거나 전혀 다른 효과를 보였다. 이 힘 덕분에 우리는 매번 마족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고, 그 탓에 인간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침략에 맞서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힘을 신이 인류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힘은 그중에서 치유 계열에 속해있는 치유의 빛이다. 이름 그대로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치유의 빛은 빛의 색깔과 형태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지는데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이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에메랄드빛 불꽃이다. 물론 내가 신문에서 본 우리나라 사람만 다섯 명이 넘는, 신의 축복 중에서는 아주 흔한 편이지만.... 결국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목숨만 붙어있다면 그 어떤 부상도 한 달 내에 완치시킬 수 있다는 신의 불꽃.

  마족들에게는 치명적인 화상을 입히는 징벌의 불꽃.

  위대한 힘은 그걸 가진 자들을 모두 전쟁터로 내몰았다. 마족의 침략이 없을 때도, 크고 작은 힘겨루기로 다친 이들을 위해 전쟁터를 고향이라 부르며 살았다. 피와 비명으로 물든 세상에서 평생을 살았다. 전쟁터는 그들이 너무 늙었거나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야 놓아주었다. 그들은 기꺼이 그 삶을 받아들였다.

  난 싫어.

  난 그렇게 살기 싫어

  책 속의 위인들은 아픈 이들을 위해, 힘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

  난 그렇게는 못 살아.

  나는 그냥 조용히 집에서, 어머니의 가게를 도우면서, 빵을 구우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그냥 그렇게 역사의 뒤편에서 이름도 없이 살다가 가고 싶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은데....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삼켰다. 울지 마. 울면 안 돼. 카뷔 언니도 내 편이 아닌데, 여기서 날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내가 정신 차려야 해.

  난 눈물이 나는 걸 숨기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티가 많이 난 게 아닌가 걱정됐지만, 오즈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닐드 양 덕분에 그 아이가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닐드 양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저도 잘 압니다.”

  잘 알아? 알긴 니가 뭘 알아? 드래곤이면서. 지상 최강의 생물이 알기는 뭘 알아? 눈가에 가득 찼던 눈물까지 마를 만큼 화가 치밀었다. 난 고개를 들고 오즈를 노려봤다.

  “제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데요?”

  “신의 축복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

  정확하게 맞추는 바람에 난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죠?”

  “네.”

  “얼마나 강한 힘인지도 그 아이를 통해서 알았겠죠.”

  “네.”

  내 불꽃이 드래곤의 몸을 휘감자 수많은 상처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사실 그때 난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도 몇 시간 만에 멀쩡해졌으니까. 멀쩡히 집까지 걸어갈 정도로.

  “마닐드. 네 힘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힘이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아니?”

  드디어 카뷔 언니가 말을 꺼냈다. 드디어.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아니. 난 모르겠는데?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마닐드!”

  “왜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나 말고도 있잖아!”

  “그 사람들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사람들이 죽는 거지!”

  “그럼 내가 있다고 뭐가 달라져?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지냐고!”

  “마족의 마법은 네 불꽃밖에 답이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지금 마족이 쳐들어왔어? 마족이랑 전쟁이라도 하고 있냐고!”

  점점 목에 힘이 들어갔다. 억울해. 내가 왜?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사람들이 의사처럼 병원에 있는 거 아니잖아! 죄다 전쟁터로 끌려가서 군인들만 치료하게 하잖아!”

  “그건 네 불꽃이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럼 애초에 싸우질 말아야지! 전쟁을 하지 말아야지!”

  “그 사람들은 가고 싶어서 갔니?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왜! 왜 전쟁을 하냔 말이야! 내가 싸우라고 했어? 내가 왜 그 전쟁터에서 굴러야 하는 건데!”

  “마닐드.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어.”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도 날 생각해주지 않아. 싫다는데 날 여기까지 보낸 어머니도, 날 설득하려는 언니도 다 똑같아. 다들 내가 해야 하는 일만 강요할 뿐.

  내가 어떨지는 아무도 관심 없어.

  더 이상 여기 있기 싫었다. 언니고 뭐고 꼴도 보기 싫었다. 난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카뷔 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무작정 거리를 달렸다.

 

 ***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멈춰 섰을 때 난 낯선 곳에 서 있었다. 잠깐 선채로 숨을 고르는 사이 후회가 몰려왔다.

  난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위험한 곳에 온 걸까? 애초에 내가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만한 짓이었다. 상대는 드래곤이야.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왜 힘을 썼을까.

  잠시 밀어놓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번 흘러내린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벳지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젬마가 팔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난 조용히 보기만 했다.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병원에 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은 다 내팽개쳐놓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래곤한테는 왜 힘을 쓴 걸까? 대단한 존재한테 잘 보이고 싶었나? 아니면 은근히 내 힘을 자랑하고 싶었을까?

  정말 죽을 것 같았단 말이야. 그대로 두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다고....

  그날, 비가 오던 날 그 여자처럼 내 눈앞에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온몸이 부서진 채 날 원망하면서 죽어갈 것 같았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두 번 다시 그런 건 보기 싫었다. 만약 내가 내 힘을 쓰면서 살아가면 그런 꼴을 매일 보게 되겠지? 내가 살리지 못한 사람들의 원망을 매일 듣겠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왜! 도대체 왜! 하필이면 나야!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 같은 애한테 이런 짐을 던져놓은 걸까? 어떤 시련과 역경도 이겨내는 그런 대단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힘이 없어도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왜 이 모양일까.

  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도 안다고. 내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필요한 건지 나도 안다고. 내가 그런 것도 모를 만큼 멍청한 줄 알아?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죄책감은 예고도 없이 불쑥 불쑥 찾아왔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연이어 두려움이 몰려왔고, 그렇게 두려움과 죄책감이 뒤섞였다. 이러다 미쳐버릴 것 같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멈출 수 있으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난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이 어떻게든, 무슨 방법으로든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어어? 마닐드?”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물 때문에 희미한 시야로 가장 먼저 연둣빛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코시는 내가 고개를 들자 후다닥 달려왔다.

  “마닐드! 뭐야! 무슨 일이야?”

  그녀는 엄청 놀란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어제 온 애가 혼자서 길 한복판에, 그것도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얼마나 이상해 보일지 뻔했다.

  “카뷔는 어디 있어?”

  “어... 언니는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지끈거렸다.

  “그럼 혼자 나온 거야? 길 잃어버렸어?”

  “아뇨... 그건 아니에요....”

  난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도 실컷 울고 나니 기분이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미쳐버릴 것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어... 그, 그럼 방으로 돌아갈래?”

  방. 거길 가면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뻔하잖아.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 그럼.... 그럼 어디 가서 앉아서 조금 쉴래? 카페나....”

  하.... 일단은 그게 낫겠지? 어차피 방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전에 미리 어떻게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최대한 늦게 만나고 싶었다. 카뷔 언니도, 그 드래곤도.

  “네....”

  “그래! 가자 카페. 저기 바로 앞에 있으니까. 가서 좀 앉아있자.”

  나는 코시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뭐 대단한 노동을 한 것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똑바로 걷기가 힘들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너무 무거웠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늪지를 걷는 것처럼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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