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가 떠난 병원은 조용했다….
“애인 샘 현주 샘 그만둬서 많이 아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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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이라는게 다 그런거지….”
내가 이 병원에서 일한지도 5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을까…어언 만 6년….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가 문제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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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병원은 문제가 많았다….
개원 이래로 고생한 직원들에게 그 적절한 대가를 주기보다는…
관계로 포장해 무마하기에 급급했고….
원장이나 과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직원들의 고충은 모른 채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꽤 적지 않은 직원들이 들어가고 나오기를 수십차례…
그 가운데 서로 끈끈하게 버티고 살아남은 직원이 현주, 유미, 결이 그리고 나였다…
그리고…
난 적어도 남아있는 내 진짜 동료들에게 돈과 같은 물질적 가치가 아닌
복지로써의 이 세상 어디에서도 제공받을 수 없는 비물질적 가치를 가르쳐줄 수 있는
평생 직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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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의견을 언제나 묵살되기 일쑤였고…
그렇게 수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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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주도 이제는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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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후로 또 한 명의 직원이 퇴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오늘 라온 샘 송별회 지하 1층 제주 도야지에서 한대요”
라온과 현주 모두 이 병원 개원 멤버였다…
‘현주가 그만둘 땐 신경도 안 쓰더니…’
원장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주의 퇴사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기에 급급하고 스스로가 마치 직원들에게 있어 매우 인간적인 오너인양…
퍼포먼스식의 그런 송별회…….이제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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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층 병원에서 오셨죠?”
“아 네 안녕하세요”
“다른 분들은 이미 다 오셨어요
“………”
“근데 그 키 작은 간호 선생님은 안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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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만뒀어요”
“아 네….”
“………………….”
“…………………..”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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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고기 집의 룸은 턱이 높아 내가 자리하기에는 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모.. 이 송별회가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지만 다 모인 자리에서
나의 불편함을 굳이 보여야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은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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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깡 샘 왔어요?”
다행히 유미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먼저 와 나를 챙겨준다
[드르르르르륵]
고맙게도 룸 안에서 내가 보이지 않도록 연결되어있는 중문을 닫아 주었다…
‘센스있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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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나는 원장과는 일부러 멀치 감치 않아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어차피 좁은 룸이지만 같이 잔 기울이며 대화 나눌 사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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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부터 굳이 이런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다
개원 초기 남자직원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직원들에게 풀 수 없는 자신의 화를 나한테 풀곤했다…
하지만 난 오너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꽤 긍정적인 사고로 나를 이해시켰고
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나보다는 병원이란 조직을 위해 살아왔던거같다
그 가운데 여러 동료들이 떠났고 이젠 내 곁에는 현주도 없었다..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 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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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 자리가 어느 정도나 흘렀을까…언제부터인가 원장의 와이프도 동석하게 되었다
“사모님 오셨습니까 여기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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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의 아내는 나이는 나랑 동갑이다
‘사모님은 무슨 사모님….과장은 원장 아내한테까지 저럴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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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라온 샘의 송별회는 형식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그냥 아무 일없이 즐겁게 지나가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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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근데 다들 그거 알아? 깡 샘은 이 병원 입사하고 나서 한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어 정말 대단하지않아?”
갑자기 원장이 그 입에 내 이름을 담기 시작했다…
‘모야 저 인간 술 취했나…왜 저래’
“근대 그 이유가 뭔지 알아?”
“…………………..”
“병원에서 자잖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원장을 쳐다봤다
별로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속된 말로 얼터구니가 없었고, 그러다 원장 아내와 눈이 마주쳤는데…나의 표정을 읽었는지…원장 와이프는 날보며 신경쓰지말고 무시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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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입사 후 1년정도가 지난 무렵 원장은 식을 올렸는데
“내가 이 사람하고 결혼한거는 단순히 얼굴때문이죠 인성같은거 봤으면 절대 결혼 안했어요 모…인성이 안 좋은거는 이 사람 어머니한테가서 따져야하는 문제니까”
당시 쇼윈도 부부네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주변인의 시선에서 원장 부부의 분위기는 좋아보이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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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면….사실 당신 인생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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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말없이 맥주를 들어 내 안에 화를 삭혔다
잠시 어색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화기애해한듯 보이기 시작했고
원장 옆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간호 샘들도 비위맞추기에 바빴다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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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온 샘의 송별회는 마무리가 되었고
나 또한 라온 샘과 가벼운 악수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했다
라온 샘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고생한 전우애와 같은거였다
“라온 샘 고생했어요”
“애인 샘도 고생했어요 난 먼저 그만두지만 좀만 더 남아서 고생 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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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라온 샘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의미로 다같이 짠하고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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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들 하나 둘 자신의 옷을 챙기며 자리를 일어난다
“난 깡 샘이랑 같이 가야지”
유미는 내가 항상 마지막에 가는 걸 잘 알기에 끝까지 남아 날 챙겨준다..
한편으로는 생각해본다…
어느 직장을 가도 똑같고 문제는 어디에서나 발생한다
물론 그 정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버티는거 아닐까? 부모님, 친구들 모두들 다 그렇게 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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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때…
[턱]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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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야 원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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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장의 한 마디…
“깡 적당히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