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
 1  2  3  >>
 
자유연재 > 일반/역사
무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1.1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를 지나 첫번의 생을 살았고 두번째 생은 조선중기 그 격변하는 전쟁 중심의 시대를 돌파해 나가는데 무사의 길을 걸으며 살았다.
문과 시험을 치루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주인공 무극은 그 길을 접고 무사의 꿈을 꾸게된다. 그는 태어나면서 2018이라는 숫자에 매료된다. 그 숫자로인해 무사의 길이 열린다. 순막히는 순간에 2018의 숫자로부터 하늘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인간의 삶이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소설속 < 동희> <승려포청전 > <무사 > 에서결정되었다.

 
9화
작성일 : 19-11-01 21:25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1281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미란이 차려온 밥상 앞에 앉아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다. 꿈에서 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왔다. 미란은 고개를 숙이고 벅찬 마음을 다스렸다. 정말 부부가 된 것 같았다.

  “있는 것으로 했어요. 밥을 지으면서 행복했어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하린이 아니라 미란이라는 현실이 꿈만 같았다.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미란이 밥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놓는다. 손가락질하는 눈총도 없다. 두 사람의 행복한 기운이 방안을 돌고 돌았다.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생각도 끼어들지 못했다. 방을 정리하고 이불을 깔았다. 그녀를 안아 이부자리위에 뉘였다. 미란은 어쩔 줄 몰라 차라리 눈을 감았다. 진작 이런 곳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주 공간에 두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사랑은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도 행복할 것이다.

  전생의 삶에서 무극은 평생 아버지인 최치원을 그리다가 가족을 버리고 중이 되어 해인사로 들어가 불법을 펴며 생을 마쳤다. 그 아버지가 보통 사람이었나. 그런 아버지를 두었던 무극의 삶에서 두 번째 생에서 서민 아버지를 두었다. 전생에 어머니는 고려 임금이었던 왕건의 마음도 움직였던 미녀 미향이었다. 내가 처음 무극의 인생을 찾아 주기로 하였을 때 호기심도 컸다.

  중종 24년에 태어난 무극의 전생에 대해 어떻게 풀어낼지 스트레스가 옥죄는 가운데에서도 꼭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난번처럼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가족이 술렁거리는 분위기에서 마음을 잡고 글을 쓰기 어려웠다. 그러한 시간이 길어 질 수 록 조바심과 짜증스러웠지만 참지 않으면 어쪄랴.

  그러니 내게 글 쓸 공간을 허락하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비워준 가족이 고마웠다. 밥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되었다. 체력이 고갈되는 날에는 오로지 체력을 보충하기위해서 먹었고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그 또한 온 몸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를 받아내며 견뎌야 했다. 눈은 멍하여 어떻게 전개 해 나갈지 길을 찾는 데 마음을 쏟아야 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가면을 이입 시키면서 스무 살이 되어야 하는 부담이 컸다. 현생에 무극을 다시 만났지만 나는 스무 살이고 싶었다. 무극은 스무 살에 나라를 구했다. 나는 스무 살에 가족을 구했나? 아무 할 말이 없다.

  나라의 영웅은 가정의 오묘함을 모른다. 가장 역할엔 용기보다 책임이 중요한 현실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 가정의 질서를 책임진 아녀자의 역할도 영웅 아닌 영웅이라고 말해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 스무 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마리아를 설정하였다. 예수를 낳은 어머니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 발상이 왜 머리에 떠올랐을까? 누구의 이름을 대신한다고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어머니 아버지들이 모두 나라를 구한 선구자이며 그런 아들딸을 낳은 여인 또한 세상의 모든 부모 들이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극이고 미란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사랑하면 천둥과 번개와 비와 눈을 동반한다. 나는 그 자연의 이치를 극대화 한다거나 극하로 떨어뜨리는 글은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니까. 액션이 치나 치면 대중이 무서워 불안하다. 그러나 사랑이 아름다우면 모두가 그런 삶을 꿈꾸어 보는 에너지가 생긴다. 세상은 그리 연기 되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해 보는 것이다. 가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회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봄철에 나물을 뜯어 목숨을 연명하는 일이 있어도 전쟁만 없다면 마음 편히 겨울을 날 수 있겠다는 소리가 왜군과 협정하여 날개 단 듯 퍼졌다.

  나라 일과는 상관없이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런다고 직책에 부여된 의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어 더 열심히 나라 일을 보았다. 매일 만나지는 못했지만 안전하게 만남을 가졌다. 인간은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가도 없다. 무극은 처음의 마음과 달리 하린에 대한 미안함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 왔다. 차라리 털어놓고 싶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점점 늦어진 퇴궐이 그렇고 자주 밤을 지나 들어 갈 때도 있었다.

  약사발을 들고 행복해 하던 하린의 얼굴이 아니었다.

  “할 말이 있소.”

  하린이 아무런 대답도 없다. 이미 각오하고 꺼낸 말이다. 나라 일이나 가정의 일이 편하지 못하면 맡은 바 의무을 수행하는데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어 꺼낸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참의 침묵이 흐른다.

  “당신에게 죄진 것이 있소. 내, 다른 여인을 알았소.”

  하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무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하린의 입에서 원망의 말이 쏟아져 나와도 면목이 없을 것인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남편의 배신에 하린은 가슴이 아팠다. 무극의 뺨이라도 후려칠 수 있다면 그 배신감이 풀릴까. 그것도 아니다. 아이들 얼굴이 스쳤다. 무극이 처음 미란과 만난 날 하린은 무극의 속옷에서 못 보던 액체를 보았다. 하린은 무극과의 사랑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생각조차 않았다. 무극의 행동이 점점 낯설어 질 때 느꼈다. 늦은 퇴궐이 점점 잦아지는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지우려 노력하였다. 노력한다고 의심이 바뀌지 않아 그냥 마음가는대로 한번 의심 해 보던 중이었는데 남편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었다.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용솟음쳐 올라왔지만 참아야 했다. 여자의 가장 큰 덕목은 투기를 절제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칠거지악을 듣고 살아온 하린이 지켜야할 신조이기도 하였다. 천지신명께 약속했던 게 현실로 다가왔다. 남편의 목숨만 살려 보내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었다.

  하린을 만나기 전에 알았던 내의원 의녀라는 말과 만난 지는 한 달여 된다고 했다. 하린은 한마디 말이 없다. 무극은 아무 말 없는 하린을 마주보는 게 무거워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무어라고 한마디만 해도 좋으련만 아예 무극을 무시해 버리는 처사인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가 한번 만나 보아도 될는지요.”

 일어서려던 몸을 도로 자리에 앉히며 하린의 손을 잡았다.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만나면 안 되겠소?”

  남자의 단순한 생각은 여인을 더욱 화나게 만든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무극은 우선 미란의 생각이 앞서 한 말이지만 시앗을 향한 불꽃이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무극은 아직 미란의 마음이 그런 일을 감당하기 여리다고 생각해 한 말이다. 이에 커다란 방망이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데 남편이 미란을 생각하는 의도를 모를 리 없다. 여자의 민감한 부분에 소금을 뿌려 아프게 한 죄는 죽을 때까지 여자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런 미묘한 여인의 감정을 사내가 알 리 만무하다. 그저 미란을 생각해서 한 말이다. 하린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미란에게 아직은 상처가 될 수 있는 만남은 피하게 해 주고 싶었다.

  “제가 머리채라도 잡을까봐서요? 그 여인이 그리 소중하단 말이네요.”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을 좀 더 달라는 거요. 그날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당신 아버지가 여기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아마 그 여인과 혼인하여 살았을 것이요. ”

  입을 다물었다. 전쟁으로 인해 후실이든 정실이든 아들을 많이 낳아 나라에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여인네다. 그런 세도로 공공연하게 첩실을 두었다. 조선의 여인네들은 남성 권위주의 사회를 당연시 여기며 살아야 했다.

  여성이 혼인하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친정어머니로 부터 배우고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극이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 실망스럽고 허허로운 외로움을 무엇이 대신 할 수 있을까. 남편에게 눈물을 계속 보인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남편의 말을 반박할 자신도 없었다.

  무극은 어찌 되었든 마음은 후련하였다. 죄책감이 컸는데 일단 해결 되었다. 이제 미란과 살림을 차려 산다고 해도 양심의 가책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사랑으로 건너가 잠을 청했다.

  하린의 눈에는 밤새도록 파란 불꽃이 튀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애들을 생각하니 불쌍하여 눈물이 났다.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늘처럼 섬겼던 남편의 얼굴이 하루아침에 낯설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찌 살 것인가. 이미 마음이 떠난 남편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남아 있는 탕약을 모두 쏟아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참아야 하는가. 눈에 새파랗게 독이 선다. 보통 아낙이라면 당장 달려가 머리채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억울함을 안으로 삭혀서 참으려니 얼굴에 불을 지피는 것처럼 달아올랐다 내렸다 하며 밤을 그렇게 샜다. 처음 의심이 들 때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리저리 이해를 하며 지났지만 댓바람에 털어놓는 무극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여자의 일생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조반을 챙겨 무극 앞에 차려 놓았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고 부리는 아랫사람들에게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하며 하루를 맞이했다. 나는 막혔던 혈이 뚫린 듯 편안해진 얼굴로 아침상을 받았다.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밥 먹는 모습도 예전처럼 예뻤다.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다. 어릴 때 제대로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사랑스러운 것은 아이들이다. 이제는 제법 커서 독선생을 집에 들여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 책임은 아내가 도맡아 챙기고 있었다. 밖에서만 살아온 자신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공부는 잘하고 있는 거지? 아비가 미안하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빛난다. 하린은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솥에서 숭늉을 떠다 무극의 밥상머리에 조용히 놓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극이 숭늉을 좋아하므로 아이들은 뒷전에 잘 눌린 숭늉을 늘 간식처럼 챙겨왔다. 길 드려진 대로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행복했던 지난날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술 더 떠 길들여진 대로 무극의 관복을 챙겨주었다.

 

  미란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두려움도 없었다. 혈혈단신인 자기를 생각해주는 무극이 옆에 있다는 자신감에 내의원에서도 이제 외롭지 않았다. 부드럽고 사내다운 인상을 풍기는 무극이었다. 미란을 위해 신속히 집을 마련하여 자존을 세워준 일이며 불편하지 않게 살림살이 차려놓은 일이며 모든 게 미란을 편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무극에게 밥을 차려줄 수 있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임의원을 따라 의녀로서 대궐을 드나들며 왕가를 돌보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것이 무어 자랑할 일이겠는가.

  사랑이 주는 힘이란 보는 것에서 걸음걸이까지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첩실이지만 자기가 먼저였다는 자부심은 때론 오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한풀 꺾 겨 어떻게 살아야 무극을 힘들게 하지 않을까를 고민하였다. 의녀의 직업을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시간에 메여 사랑하는 사람을 제 때 볼 수 없다면 그것 또한 괴로울 것이다. 차분하게 생각할 일이다. 다른 직업은 어떨까? ‘궁궐을 나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러한 생각을 하며 미란은 번잡한 한양 거리를 걸었다. 장터를 돌아보았다. 장터를 이리저리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궁궐 의녀님 아니십니까. 장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깜짝 놀라 한참을 생각했다. 금방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지루하고 미안하다.

  “대궐에 약제를 드리던 사람입니다.”

  *******“아~ 생각났어요.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말린 약초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검사하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는 구레나룻가 적당히 다듬어진 멋있는 산사람이었던 그 사내는 고운 의녀와 마주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의 이목도 잊곤 했다. 미란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 사람은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을 것이다. 의녀의 본분은 환자에게 있다. 지금껏 배워왔고 행해왔던 의술을 궁궐이 아닌 백성들과 함께 나누는 길이 생각났다. 병에 따라 약초를 환으로 만들거나 다려 먹도록 처방을 내는 약제 상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길에서 만난 산사나이를 보면서 가야할 길이 정해졌다. 병이 나도 의원에 못가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장터에서 그들을 도우며 산다면 그것도 좋은 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녀님을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어디 들어가 이야기 좀 나누시지요.”

  이 사나이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어느 주막집에 들어갔다. 산사나이는 싱글벙글 미란이 자기 말을 따라줄 줄은 몰랐다. 이 사나이를 잡아야 한다. 약제 상을 하려면 품질 좋고 그늘에 잘 말린 약초를 취급해야 한다. 장에서 약제 상을 하면서 대궐과도 연을 대 본격적으로 상업을 하여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도 대궐에 약초를 대어 주십니까?”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우니 약초꾼들이 많아졌어요. 너도나도 궐에 약초를 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바람에 대궐에 줄이 없는 저로서는 어렵지요. 어쩌다 내의원에 약초를 몇 번 들였지만 그것도 이제는 만만치 않아요. 말린 약초는 해마다 늘어나 창고에 저장 하기도 어렵습니다. 의녀님을 만났으니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산 사나이는 대궐에 줄을 튼튼히 하려는 발 빠른 계산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말린 약초가 많이 있다구요! 그것을 제가 사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오늘 하늘이 도왔나 봅니다.”

  “아저씨, 약 제상 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는 중이예요. 마침 아저씨를 만나 저도 반갑습니다. 장에서 약제 상을 할 수 있는 자리 한 군데 물색해 주세요. 아저씨는 약초를 대 주시고 저는 그걸 팔면서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려구요.”

  내친김에 산 사나이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사나이는 미란의 말에 의아했다. 내의원에 있는 의녀가 장에서 약초 파는 장사꾼이 된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창고에 쌓인 약초를 처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러겠다고 약속하였다. 미란의 입장에서도 시장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을 산사나이를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면서 앞길이 트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의녀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상태다. 임의원의 배려로 국가가 인증한 의녀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진맥도 집고 침도 놓을 수 있는 자격증이다. 궐을 나와 얼마든지 자신의 의술을 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결단이다. 무극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마음이 급하다. 그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찾아주지 않으면 만날 기회가 없다. 병판자리가 보통 자리인가 그의 집무실에 찾아갈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일을 무극과 빨리 의논하여 설계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그와 헤어졌다.

  임의원님께는 무어라 말씀드려야 하나. 부모님처럼 아껴주셨는데 내의원을 떠난다고 하면 놓아 주실까. 그 분과 함께 한 시간동안 보잘 것 없던 어린 나인에서 의녀가 되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자식 가르치듯 모든 의술을 가르쳐 주셨다. 내의원을 떠난다면 자신의 꿈을 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걸음이 빨랐다.

  사랑하게 된 것도 행운이지만 의녀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행운이다. 그녀는 앞날이 보였다. 기쁨에 찬 걸음걸이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물고 발걸음을 잡는다.

  안달흥이 무섭다. 이런 정황을 안다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을 거라는 불안함다. 주위의 시선이야 의녀의 본분으로 감수하려 노력하면 된다지만 아직 풀어야 할 매듭이 남아 있는 앞날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모른다. 기쁨 뒤에 올 것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 할 수는 걸코 없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미 알고 시작한 일 불안을 훌훌 털어내고 아침 일찍 출근하였다.

  머리를 올려 꽂고 의녀 모자를 썼다. 조선 사회에서 의녀란 궐 안에서도 궐 밖에서도 신여성의 대표적 선망의 대상이다. 의녀라는 대단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첫 번째로 환자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변치 말고 지녀야 한다. 않아야 한다. 그런 온정을 가지고 있어 외롭지만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다. 이곳을 떠난다 해도 큰 미련은 없을 것 같다. 헐벗고 굶주림에 허덕이다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대궐에서 정을 거두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목숨 같은 사람과 혼인한다고 말 할 때가 되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누가 뭐래도 좋았다. 손가락질 하고 침을 뱉는다 해도 모두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무극도 마음도 그런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집을 마련하여 미란을 위로하려고 하였다. 등청하면서 매성기를 불렀다. 이제 하린에게 말을 하였으니 누구에게도 떳떳한 마음이다.

  “오늘 퇴궐하면 잔치를 할 것이니 자네가 지난번처럼 준비하여 주겠는가?”

  “오우! 형수님을 정식으로 소개 시키려는가 봅니다. 완벽하게 준비를 하겠습니다. 형수님 머리는 벌써 올렸으니 거대하게 잔치를 열어 형수님을” ‘내 여자다!!’ 소문을 내려는 거지요“

 매성기가 신이 났다. 지루한 일상을 탈피해 보려는 것이다.

  덩달아 좋아하는 매성기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지난 밤에 하린이 울던 모습이 그려진다. 미란이 없었다면 평생 하린과 행복하게 살았을까. 무극은 기방에 출입해 본 없었다. 미란이 술기운으로 맺어진 기방의 기생도 아닌데 허술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식으로 머리를 올려 줄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라도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마땅했다.

  부인의 가슴을 아프게 안 할 도리가 없다. 부모도 없는 미란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아끼고 싶은 게 사내의 책임이다. 이런 무극의 마음을 하린이 안다면 억울하여 죽고싶을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한 치 앞도 모르고 사는 게 사람이라고 한다. 모르기에 사는 것이 위안이 되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양심은 속일 수 없다고 하지만 눈에 명태 껍질이 씌여 졌는데 무엇이 보이겠나. 이런저런 복잡한 이유는 접어두자 하는 마음에 무극을 보자 활짝 웃었다. 벌건 대낮이지만 그들은 끌어안고 싶었다.

  궁궐 안에 사는 사내들 가슴속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임금의 여인들을 곁눈질하였다가 받을 뒷감당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 번의 기회를 기다려 평생을 임금 바라기로 살아갈 나인들은 날마다 애태우며 임금 용안 희망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생을 보상해 줄 사람도 없다.

  의녀가 대궐에 드나들 때는 마음의 흐트러짐을 보여서는 안 된다. 누가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절도 있게 행동하는 몸짓에는 의연함이 있어야 하고, 빈틈을 보여서도 안 되도록 교육받아온 몸짓이다. 그런 일상이 배어있는 세월을 보냈는데 무극을 만나면서 조였던 근육이 한 순간 무너져 입가엔 언제나 미소가 번진다. 생각하면 지나간 날에 어찌 견디며 살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단 한 번의 바람에도 꽃잎은 낙화를 염려한다.

  마음의 무장은 아무런 경계가 없을 때 유지가 기능하다. 두 사람은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었다. 위선으로 숨어 있었던 마음속의 불꽃이 순간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폭발 하듯 일어난 것이다.

  “지난밤 부인에게 말을 하였다오.”

  “네! 어째요. 저는?”

  “겁먹지 말아요, 잘 될 터이니.”

  미란은 가슴이 떨렸다. 그가 손을 잡아 주어 웃었다. 안스러 가슴이 아프다. 어차피 넘어야 할 고개라면 정면을 피하지 않으리라. 다른 생각은 머리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그녀를 미워 할 수가 없었다. 남의 가정에 불을 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각오가 그녀를 편안하게 하였다.

  “저녁에 성문 밖에서 기다려요.”

  매성기는 무극의 부탁을 받고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집으로 사람을 보내 서찰을 전하게 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서찰을 받고 이웃에 친한 사람들과 음식을 장만하러 새로 사놓은 집으로 갔다. 평소에도 상관에 대한 일은 매성기로부터 들어 알고 있기에 남편의 윗사람이라니 이해를 따지지 않았다. 매성기는 직접 별동부대원들에게 두 사람이 혼인한다는 것을 알렸다.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높은 자리에 있는 대감이라 마음대로 말을 터 만날 수도 없는 처지였는데 이번 기회로 옛날처럼 뭉쳐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군 생활이란 매일 훈련의 연속이라 저녁에 회식이 있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기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바람이 훵하니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말은 집을 향해 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 행복해 하였다.

  혼례란 모든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축하를 받으며 치뤄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리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대문이 열려 있고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미란은 남의 집에 잘못 왔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기 집인데 사람들이 보이고 여인들이 왔다갔다 무엇인가 분주하였다.

  “집을 잘못 왔나 봐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무슨 사람들이 남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가. 들어가 봅시다.”

  그녀 어깨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하던 사람들이 우루르 나와 인사를 한다.

  “대감나리~ ”

  손을 잡는 사람은 매성기의 부인이었다.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축하드립니다. 의녀님을 환영합니다. ”

  둘러섰던 여인들과 남정네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해 주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그가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매성기 부인은 그런 미란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촉박하여 준비를 하지 못했다. 자신은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아껴 두었던 한복을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몸에 맞을지는 입어보아야 했다. 곱게 싼 보자기를 풀었다. 노랑 저고리와 붉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날을 위해 미리 맞추어 놓은 한복입니다. 신부되실 분이 입으시면 꼭 맞을 것 같아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친정 형님처럼 다정하게 쳐다보는 매성기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미처 상황파악을 못했지만 분위기가 훈훈하여 마음이 놓였다. 조금 지나서야 이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알게 되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 겉옷을 벗고 입어보았다. 색감이 너무나 화려하다. 처음 입어보는 한복이라 어색했다.

  “어머나! 이렇게 예쁠 수가. 선녀가 따로 없네요. 신부에 대한 대감님이 마음을 알겠어요.”

  자기가 아꼈던 한복을 남이 입은 모습을 보니 아깝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색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갑자기 신부가 되고 보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어디서 딸자식 혼인하는 것도 모르고 살고 계신지 미란은 얼굴은 웃었지만 속마음은 슬펐다. 더욱이 무극의 부인이라도 들이 닥친다면 어찌 할 것인가 두렵기까지 하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동 부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을 차렸다. 격식도 없이 차려놓은 음식은 과일이며 부침이며 고기를 듬뿍듬뿍 그릇에 담아 먹음직스럽다. 물 한 그릇 떠놓고라도 혼례를 올리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는데 생각도 못해본 이런 자리를 만들 준 무극의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눈물이 났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특수부대 남정네들의 힘의 원천인 가식 없는 소리가 집이 떠나갈듯 시끄럽다. 그들 중에 방을 기웃거리며 미란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안달이다. 모든 준비가 되었으니,

  “신부는 밖으로 나오시오!”

  매성기 부인이 신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둘러섰던 사람들은 신부 모습에 넋을 일었다. 화려한 옷에 검은 머리를 올려 장식을 꽂은 신부는 대궐의 여인들처럼 기품 있고 아름다웠다. 신부 신랑을 나란히 세워놓고 매성기가 혼인 서약서를 들고 모인 사람들을 한 차례 둘러보며 읽기 시작하였다.

 “혼인 서약서!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총각시절에 첫 연정을 품었던 신부와 신랑입니다. 어쩌다 혼인은 늦었지만 두 신랑 신부의 앞날에 행복만 있기를 바랍니다. 신부는 신랑을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습니까? ”

  매성기의 옹골찬 물음은 모여 서있던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신부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자. 사람들이 동네가 떠나가라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입에서 겨우

  “예.”

  매성기는 물었다. 무극이 작은 소리로 대답하자. 옆에서 야유의 소리가 쏟아졌다.

  “대장! 큰 소리로 말해요!! 예쁜 신부를 옆에 두고 그 무슨 나약함입니까! 내가 데려갑니다. 이 찌질이 신랑은 선녀 같은 신부를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 자리는 웃음의 도가니가 되었다.

  “와 와 와. 내가! 내가!”

  난리가 났다.

 “양보해! 양보 해!”

  별동부대의 기운이 살아났다.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이 없대요! 오늘의 혼인은 무효입니다.”

  “와!와!와! 여기서 대결을 합시다. 결투에 이기는 사람이 신랑 자격을 갖는 대결을 합시다.” 사람들은 신바람에 신부를 먼저 업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예!!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고 죽을 때 까지 지켜주겠습니다.!!”

  등을 대고 신부를 업으려던 한 용기 있는 별동부대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위가 평정되었다. 둘러섰던 사람들은 두 사람을 맞절 시키고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신부신랑은 그들의 장난기 어린 행동에도 개의치 않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 성의를 다 하였다. 두려워 할 일도 법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기에 마당에 피워놓은 호롱불이 다 하도록 스스럼없이 그들과 즐거워 할 것이다.

 두 사람은 그들과의 시간을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 권위의 무거운 분위기를 걷어냈다. 자신들의 눈에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의 잔치는 평양성을 되찾은 산을 떠와 짊어지라면 짊어질 호탕한 군인정신이 살아 있음을 상기하는 화합의 장이 되었다.

  신이 난 행동대장이 신랑을 신부 옆에서 떼어내 뒤로 잡아 넘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한쪽 다리를 들어 밧줄에 묶었다. 미리 준비해 놓았는지 장작개비로 신랑의 발바닥을 산이라도 떠 올 기세로 사정 두지 않고 때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신랑은 순식간에 멍석 바닥에 나자빠졌다.

  “아이쿠! 사람 살려!!”

  둘러섰던 사람들은 신이나 손뼉을 치며 동조하였다.

  순간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술인지 음식인지 한쪽으로 밀어내는 손길이 바쁘다. 별안간 나자빠진 새신랑 병조판서 무극을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신바람이 난 별동부대 대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장작을 든 사람을 응원하였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3 13화 2019 / 11 / 1 260 0 13618   
12 12화 2019 / 11 / 1 271 0 13467   
11 11화 2019 / 11 / 1 252 0 13023   
10 10화 2019 / 11 / 1 256 0 12781   
9 9화 2019 / 11 / 1 280 0 12819   
8 8화 2019 / 11 / 1 257 0 13224   
7 7화 2019 / 11 / 1 263 0 13996   
6 6화 2019 / 11 / 1 263 0 16749   
5 5화 2019 / 11 / 1 255 0 16827   
4 4화 2019 / 11 / 1 255 0 17653   
3 3화 2019 / 11 / 1 260 0 17409   
2 2화 2019 / 11 / 1 257 0 17446   
1 1화 2019 / 11 / 1 443 0 1782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승려 포청천
설매1
동 희
설매1
동희
설매1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