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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무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1.1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를 지나 첫번의 생을 살았고 두번째 생은 조선중기 그 격변하는 전쟁 중심의 시대를 돌파해 나가는데 무사의 길을 걸으며 살았다.
문과 시험을 치루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주인공 무극은 그 길을 접고 무사의 꿈을 꾸게된다. 그는 태어나면서 2018이라는 숫자에 매료된다. 그 숫자로인해 무사의 길이 열린다. 순막히는 순간에 2018의 숫자로부터 하늘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인간의 삶이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소설속 < 동희> <승려포청전 > <무사 > 에서결정되었다.

 
5화
작성일 : 19-11-01 21:19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16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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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봐라! 이번 연회는 북한 성을 극적으로 구해낸 쉰 명의 별동부대 장병들을 위해 음식과 술과 춤과 노래를 준비한 것이다. 내가 내리는 것이니 저들의 술잔에 부어라.!”

  어명이 떨어지자 두 신하가 일어나 임금이 내리는 줄 단지를 들고 대원들 잔에 차례로 술을 따라 주었다.

  “여봐라, 이번 작전에 공이 큰 별동부대 대장은 내 잔을 직접 받아라.”

  “전하께서 옆으로 다가오라 하십니다.”

  옆에 앉아 있는 훈련대장이 내 옆구리를 꾹 눌러 확인을 시켜주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만백성이 우러러 섬기는 하늘이 아니던가. 그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하늘이 내리는 술잔을 받으라고 한다. 순간 가슴이 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것처럼 뛰었다.

  “빨리 나와서 전하의 어주를 받으시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하여야 하는지를 몰라 걸어가고 있었다. 임금의 옆에 서있던 사람이 아래로 내려와 손을 잡아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임금이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임금 가까이까지 갔지만 임금 얼굴도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장군은 고개를 들라,”

  오랑캐 같은 왜군들에게 왕실이 어떠한 굴욕을 당할지 모르는 시국에 너의 전략과 전술이 이번 승리를 가져 온 원인이다. 앞으로 대궐에 남아 짐을 보필해 주기 바란다.

  짐의 술을 받아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런 말이 어찌 입에서 금방 나왔는지 놀라웠다. 그리고 잔을 받아 임금이 보는 앞에서 마셨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았는지 기분 좋게 웃던 임금이 들고 있던 술병을 나에게 아주 넘겨주었다.

  “저들도 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쳤으니 과인이 주는 술을 나누어 마시도록 하여라. 다 같이 술잔을 높이 들어 공을 치하합시다. 임금의 어명이 떨어지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풍악을 울려라!”

  장졸들은 임금이 내리는 술을 나눠 마시고 있으면서 앞에 차려진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몰라 침을 흘리고 있었다. 축하의 자리에 나온 대신들이 음식에 손을 대자 장졸들도 음식을 먹기 시작 하였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넋을 읽고 바라보았다. 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자리는 벼슬의 높음과 낮음의 경계가 무너진 행복한 자리였다. 이번의 기습작전에 걱정을 하였던 병조판서가 전우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술통을 들고 왔다. 차례로 한 잔씩 술을 채워주며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웃었다.

  “내 술 한 잔 받게나. 전하께서 자네를 선봉에 세우라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고 싶었다네. 실패 한다면 자네 목숨과 내 목숨은 없을 것이기에 가슴을 조였다네. 자네를 과소평가했던 거지. 이번 일로 자네를 두 번이나 다시 보게 되었네. 이제 대궐에 남을 것이니 얼굴을 자주 보세. ”

 안달흥의 말이 그들의 자리에 훈훈한 촉매 역할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임금님께서나 대궐의 대신들까지 환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앞날을 부탁하였다. 병조판서 안흥의 입장에서도 무술도 뛰어난데다가 이번 일로 임금의 총애를 받은 젊은 장군이 자기와 가까이 있다면 모든 면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십 육세 어린 딸에 대한 생각도 했던 것이다. 머리 좋고 무술이 뛰어난 무극을 사위 감으로 점찍어 놓아야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사실 아무리 공이 있다고는 해도 아직 경험이 일천한 초입장군 에게 술을 따를 대신들은 없기 때문이다.

  궁궐의 여인들은 모두 천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어여쁘고 몸에 날개를 달고 노니는 나비 같았다. 그들의 몸놀림에 정신이 혼미하여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경황이 없었지만 어쨌든 배가 터지도록 먹고 즐겼다. 밤이 깊은 줄도 모르게 마시고 즐겼다. 대신과 임금이 앉았던 자리는 비어있었다. 천사 같은 여인들도 가고 없었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귀를 즐겁게 하던 악기를 켜든 사람들도 없었다. 오십 명의 전사들은 다시는 없을 이 자리가 아쉬워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술도 떨어졌다. 음식도 바닥이 났다. 이제 자리를 떠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엉덩이가 떨어지지를 않는다. 누가 소리쳐 떠나라는 사람도 없다. 어차피 대궐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궁궐 깊숙한 연회 자리에 쓰러져 하룻밤이라도 자 보고 싶은 것이다. 젊은 혈기와 군기로 꽉 잡혀 있었던 몸은 어느 사이에 풀어져 해롱거렸다. 사람의 본성은 술을 먹어야 밖으로 표출되지만, 무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술에 취해 널브러져 정신을 잃을지언정 허세부리는 데는 거리가 멀었다. 이 귀한 자리를 억지로라도 버텨보고 싶은 것뿐이다. 밤은 깊어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자리가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눈이 매서운 매성기가 일어나 이들을 수습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원들! 이만 일어납시다. 밤이 깊었어요. ”

  술이 약하다기보다 들이붓듯 마신 술로 인해 심신의 맥이 풀어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안스럽기까지 했다. 그들의 아쉬워하는 마음을 알지만 여기는 녹녹한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사람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웠다.

  “처소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내일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우리는 경거망동을 하면 안됩니다.“

  매성기의 한마디는 그들의 귀를 세웠다. 그렇지! 우리의 공을 인정하여 대궐의 호위부대로 남게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들의 몸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새벽이슬이 촉촉한 대궐 안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었다. 모두 마음이 흡족하였다. 나라님이 내리는 술도 마셨고 대궐의 음식도 배터지게 먹었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도 원 없이 보았다. 초소로 돌아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골며 잤다.

  무극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일이라도 집에 다녀오고 싶었다. 이런 소식을 모르고 북한성이 왜놈 손아귀에 넘어갔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애를 태울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아들이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과거시험을 포기했을 때 부모님은 하늘이 내려앉는 듯 낙심하셨을 텐데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공도 세웠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모든 걱정이 한 번에 없어질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은 정해진 근무지도 없는 상태라 날이 환히 샜는데도 어느 누구 깨우는 사람도 없었다.

 

  분이는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듣지 못해 몇 달째 백방으로 미친년처럼 헤매고 다녔다. 북한성은 왜군이 장악을 했으니 알아볼 길이 없고 살아서 도망간 사람이라도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돌아다녔다. 아무도 대궐의 무과 시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애간장을 녹이며 살고 있는 데 어느 날 북한성을 조선군이 도로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왜군의 소굴에 인질로 잡혀있다면 아들이 살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성벽에 기대어 며칠을 기다려 보았지만 성안에서 성 밖으로 나오는 군인은 한명도 없었다. 부모들은 아예 잠을 거적 데기에 의지하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려서라도 아들의 소식을 알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성문은 굳게 닫혀 밖에서 아무리 두들겨도 기척이 없었다.

  성안에서는 왜병이 쓸고 간 잔재들을 정리하느라 바빴고 죽어간 군졸의 수를 정 검 하랴 왜구군의 시체를 땅에 묻으랴 밖의 인기척에는 아랑곳 할 새가 없었다. 비록 소문으로는 성문 밖에서 날밤을 새며 애타게 아들 소식을 물으려는 부모가 늘어난다고 했다. 성 안 군인들로서는 아직 무어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지쳐 쓰러져 집으로 돌아가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분이도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위해 공들인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일이라고는 미친 사람처럼 절을 찾아 기도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살림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처님을 찾아 무릎에 진물이 나도록 절을 하였다. 눈을 감으면 아들이 생시처럼 집에 있었다. 눈을 번쩍 뜨고 생각해 본다. 죽지 않았을 거야. 어미라는 게 호들갑스럽게 미친개처럼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아들을 기다려 보자 하는 마음에 제 정신이 들어 일상으로 돌아와 집안을 돌보고 있었다. 저녁이고 새벽이고 장독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성이 무너지자 왜놈의 세상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자식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애태우던 부모들은 차츰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허망함을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다 성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듣자 새로운 희망이 생겨, 살아 있다면 돌아오겠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죽음에서 살아올 아들을 기다리자고 가슴을 눌러 참았다.

  그 것이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아들을 낳아 좋아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가슴은 이미 아들 몇 정도는 전쟁에 바칠 각오로 살아왔다. 그 세월이 얼마였던 조선의 부모는 언제까지 전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도 아들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도 모르는 데 그렇게 마음을 달랜다.

  그렇게 왜적이 육지의 땅을 갖기 위해 벌인 전쟁은 도를 넘어 조선을 통째 먹어치우려 하지 않았나. 그 욕심을 하늘이 그냥 두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이 하늘을 찔러 세계의 주인이 되고자 조선 땅을 밟고 아시아를 향하던 그들의 광기는 더욱 강해져 2차 3차의 전쟁을 꿈꾸었지만 결국은 핵폭격에 두 손을 번쩍 들고야 말았다. 그랬던 일본은 여전히 강대국이고 여전히 오만하다.

 

  북한성 전투의 승리로 기뻐했던 밤은 갔다. 그 밤은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좋은 기회였다. 모두를 편안하게 잠들게 하였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날이 밝았다. 무극은 날이 밝아도 눈을 뜨지 못하고 등을 땅에 바싹 붙이고 조용하다. 몸이 땅바닥에 붙어버렸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꼼짝 할 수 없다. 옆에 대원들이 일어나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몸이 있는지 없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고 뼈 마디마디가 다 제각기 분리되어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누워있었다.

  “장군님! 왜 이러세요! 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훈련대장이 옆에서 흔들어 준다.

  “장군님! 눈을 떠 보세요. 어제까지도 씩씩하시던 분이 몸이 편치 않은 것 같은데,어찌된 일인지 장군님이 위험한 것 같습니다.”

  훈련대장 목소리에 모두들 모여들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급박함을 느꼈다. 대궐의 일을 알지 못하니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어찌해야 할지 모두 당황하여 걱정만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사람이 죽었소?”

  둘러선 사람들 틈을 헤치고 고개를 들이미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장군이 왜 이러시오, 이보시요! 정신 차리시오. 어디가 아프오. 언제부터 이러는 거요?

  의원을 부르시오! 아니 내 등에 업히시오. 내의원으로 가야겠소.”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자는 죽은 듯 조용하다. 대원들은 뼈마디가 술렁술렁 땅바닥을 기어가는 것처럼 늘어져 있는 무극을 안아 그 사람 등에 올려놓았다. 그 뒤를 훈련대장이 따랐다. 무극의 손과 발이 마음대로 흔들린다. 대궐이 얼마나 넓은지 가는 도중에 대장이 죽을 것은 불안감에 훈련대장은 눈물이 났다. 얼마나 애를 썼으면 저 지경으로 병이 났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때렸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대장을 살려달라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내의원이 있는 곳까지 어찌 왔는지 모른다. 밖에서부터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죽어가오. 의원을 부르시오.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오.”

  이른 아침이라 의원들이 아직 등청할 시간이 아니었다. 밤새 당번을 하였던 의녀가 환자의 맥을 짚어보고 얼른 환자의 가슴을 풀고 수건에 물을 적tu 문질렀다. 얼굴과 손과 다리도 물수건으로 문질렀다. 열을 내리려는 의도였다. 의녀는 시간을 다투는 환자라고 의원에게 기별을 넣었다. 궁궐에 의원이 임언국 한사람만이 아니지만 의녀는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임언국 의원이었다. 의녀가 대궐 내의원에 들어온 지도 꽤 되었지만 언국의 의술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그의 의술에 대한 소문은 궁궐 나인들까지도 알고 있었다. 사람이 다 사람이 아니듯 의원도 다 의원이 아니다. 의녀가 제일 마음이 가는 의원인지라 부담 없이 그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임언국 의원은 기별을 받고 부랴부랴 입궐하였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는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던 새내기 장수라는 걸 알았다. 의녀가 우선 급한 대로 물수건으로 열을 내리는 응급처치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환자의 맥을 짚었다. 몸의 별다른 외상은 없는 것 같은데 몸에 있던 기가 아래로 다 빠져 나간 것 같은 고갈상태로 매우 위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꺼번에 기가 소모되면 기는 목숨까지도 위험할 수 있기에 위급한 순간을 맞지 않을까 염려 되었다. 환자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동안 몸을 지탱하고 있던 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우선 기를 보충하는 처방을 내려야 하지만 기가 생산되도록 혈을 열어 주는 것도 의원의 할 일이다. 의녀는 환자 옆에서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밤새 당번을 섰기에 아침이면 퇴청하여야 하는데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일각을 다투는 환자를 다른 사람에게 맞기고 싶지 않았다. 우선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퇴청하리라 마음먹었다.

  무극은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지만 몸은 어딘가로 떠다니고 있었다. 2018의 숫자를 따라 새가 된 것처럼 몸이 허공에 떠 있었다. 산이 지나가고 물이 흐르고 주위가 변하고 사람의 모습도 변하고 있었다.

  “고생 많았지. 교대 시간이야. 집에 가 쉬어.”

  아침에 등천한 의녀가 그녀를 보며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어제 없었던 환자가 들어왔네. 얼굴이 되게 잘생겼다. 군인인가 봐?”

  “응, 성을 되찾은 장군이래.”

  “전쟁에서 많이 다친 거야?”

  “밤사이 혼절하여 있었대.”

  의녀 미란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가 걱정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임언국 의원이 환자의 상태를 설명할 때까지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삼일을 두고 봐야 할 것 같은데, 몸을 편안하게 하고 침으로 혈맥을 틔어주고 지켜봅시다.”

  의원은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그렇게 말하였다. 환자는 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여 그대로 두고 볼 일이다. 의원의 말을 들으니 그리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우선 침으로 막힌 혈맥을 풀어주는 것으로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기가 쇠하였으니 기를 승하게 하는 탕약을 달려 먹여야 한다고 처방을 내렸다. 내의원의 환자들은 거의가 중 환자 들이다. 날이 완전히 밝자 내의원을 찾는 병자들이 늘어나며 의원들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허의원은 무극의 용태를 간간이 살피는데 마음을 쏟았다. 혹사라도 잘못될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임의원이 대궐의 일을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나라의 중요한 사람이 내의원에 온 것이다. 그만큼 신중히 돌봐야 하는 환자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진맥을 매시간 짚어보아도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용히 잠을 자는 것처럼 고르게 숨을 쉬는 것을 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임의원! 별동부대 대장이 내의원에 정신을 잃고 있다니 어이된 일이요?”

  어떻게 들었는지 입궐하자 달려온 병조 판서이 걱정스런 말로 임의원을 바라보았다.

  “새벽에 업혀 왔습니다.”

  “죽을병이 라도 걸린 거요! 어제 그들의 축하연회에서도 씩씩하였던 장군이 밤사이 무슨 일로 여기에 누워있단 말이요. 음식을 먹고 체했는가.”

  “대감, 너무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요? 혼절하였다면서요.”

  “혼절한 것이 아니라 기가 다 쇠하다 보니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삼일 침으로 기를 열어주고 영양을 보충한다면 괜찮을 것 갔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다행이네, 그 동안 무과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그럼에도 최고 점수로 급제를 하였으니 보통 힘들지 않았을 것인데, 왜놈들에게 빼앗긴 성을 되찾아 오라고 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셨으니 얼마나 고심이 많았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네. 깨어나면 보약으로 건강을 몸으로 회복할 수 있게 신경을 써주게.”

  안달흥 대감은 무극의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임금이 눈여겨 보아온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 것은 순전히 자기가 책임져야 할 큰 일이 라고 생각하고 단걸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돌아보니 여간 애처로운 게 아니었다. 그 젊은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음을 놓는 순간 기절을 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을까.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번 기회에 몸도 추스르고 푹 쉬도록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내의원을 떠났다. 금방이라도 전하께서 부르기라도 한다면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우선 대궐의 법도를 익히기 위해서는 얼마간 교육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임금이 금방 찾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극을 장래 사위 감으로 점찍어 놓았는데 혹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내의원을 오면서 걱정도 했다. 다행히 그런 것이 아니라서 더욱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날개 옷 같은 가벼운 옷을 입고 붕붕 날아간다.

  어머니분이를 따라 절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들어갔던 절 안의 모든 것에 친근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왜 이런 옷을 입고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어딘가 또 장면이 바뀌고 어느 작은 마을이 보였다. 그 곳이 눈에 익어서 잠시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의 모습과 달리 권세를 가진 사람의 옷으로 바꾸어 입혀 있었다. 그리고 또 힉힉 산과 구름이 지나간다. 어느 곳에 정착하였다. 2018 숫자들이 빼곡하다. 그 숫자만큼 시끄럽다.

  “얘,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누군가 등을 치는 바람에 제 정신을 차렸다.

  “뭐야 .”

  무극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리아의 옆에 서 있었다.

  “나 죽은 거야.”

  “뭔 소리야. 방학했잖아, 영화도 보았고. ”

  “영화?”

  “너, 왜 그래? 신과 함께 라는 영화 봤잖아, 스크린 속에 휘말려 빙빙 돌았잖아.” “눈이라도 펑펑 왔으면 좋겠다.”

  밖으로 나갈까? 집이 너무 건조해. 태양만 방 안을 채우잖아, 숲으로 갈까. 겨울 파도를 볼까. 호수를 돌아볼까? 리아가 몇 단어의 대화로 물었는데 무극은 반응이 없다.

  무반응이다. 영혼마저 흐릿하다.

  “앞으로 어찌 되든 내게 맡겨 줘. 너를 찾는 길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야. 불면에 시달려 날밤을 새우며 생각해야 했고 너를 찾아주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 하지만 꼭 해 낼 거야. 우린 잠깐 만나 쉬어가는 거야. 넌 돌아가야 해. 이제 좋은 일만 있을 지도 몰라. 사랑도 하고 명예도 얻고, 서라벌이 아닌 한양에서 말이야.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꼭 다시 돌아가야 해, 이 작업이 끝날 때 너는 나와 함께 살 거야.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 같은 건 없어. 너에 대한 숙제가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하루하루 먹고 자고 하다 보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 가겠지. 네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스무 살 생각만 해도 가슴 뛰지 않니? 무한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은 학습 때문일 거야. 꿈이 있기에, 일으켜 세워준 고마움에 견뎌 내는 거야.

  컴퓨터 앞에 머물러 있지 못 할 때는 TV 앞에서 시간을 세다가 지루하여 몸살이 날 때쯤이면 또 찾으려 노력하는 너의 행적이 페이지마다 까맣게 채워지곤 했지. 일상을 이야기하고 과거를 이야기하고 깨알 같은 언어가 자리를 찾아 갈 때마다 시대를 논하잖아.”

  무극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인간과 인연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연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곳 돌아가야 한다.

 

  “만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 깨어나지 않으니 무언가 잘못 되어 가는 것이 아니요?”

  안달흥이 임의원을 쳐다본다. 임의원은 환자의 몸에서 침을 제거하고 있었다. 체온이 정상이고 숨 쉬는 것도 고르니 몸의 상태가 정상이다. 의식을 회복해야만 처방해 다려놓은 탕약을 먹일 텐데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병조판서 안달흥이 날이 새기 무섭게 등청하여 내의원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대감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기다려야 하오. ”

  “어디 답답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지 않소.”

  손발을 닦아주고 얼굴을 씻겨 주고 환자를 돌보는 의녀의 손길에 정성이 남다르다. 미란 의녀는 누워있는 환자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편안하게 어쩌면 행복하게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세상이 어찌 된다 해도 모르고 누워 있는 모습이 간호하는 미란이나 바라보는 의원이나 무언가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리아는 무극의 팔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우리, 뭐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 시간이 아깝잖아, ”

  “힘이 없어 ”

  “차에 타 봐, ”

  “고기 주세요.”

  오글 한 상추를 펴 마늘, 고추를 잘라 넣고 장을 바르고 고기를 넣어 쌈을 싸서 무극과 먹었다. 침이 목구멍을 부드럽게 하였다. 양쪽 어금니에서 사각사각 쌈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고기의 담백함을 음미하기도 전에 꿀꺽 넘겨 버린다. 긴 여행 끝에 맛보는 그런 맛이다. 바람과 공기의 다름을 초월한 무극은 아무런 생각과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비웠을 뿐이고, 공간을 인간과 합일하여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천천히 먹어. 목에 걸리면 어쩌려고.

  여기요!”

  잔에다 술을 부었다. 고기 먹을 때는 술도 한잔 먹어야 되는 거야. 어느 정도 허기를 면하였는지 눈에 검은 동자가 빛났다. 오글 한 상추와 도톰한 고기가 배에서 안전하게 숙성할 수 있도록 술을 한 번에 마셨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전쟁터로 보내는 거야. 무극이 하는 말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중종 24년에 태어났으니, 왜국으로부터 침략이 빈번한 시대잖아. 백성들은 임금의 무능을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했지. 곳곳에서 농민들이 스스로 의병이 되어 들끓는 시대이기도 했지. 임금이 대궐을 버리고 도망간 사이 백성과 의병들이 대궐을 지켰던 적도 있었잖아. 그러한 일들이 그 시대에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 되었지. 그런 사건들 이후 조선의 임금은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 살았지. 임금의 명예는 땅에 떨어져 의병들이 시대의 영웅이 된 적도 기록으로 남았지. 시대적으로 보아 남자로 태어났으니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지 않았을까. 분명 무슨 일이든 하였겠지, 너는 힘들겠지만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나의 전생이잖아. 나는 현생에 여자로 태어나 지금에 살고 있지만 너와 만날 줄은 정말 몰랐어. 인간은 과거나 미래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다 죽잖아. 아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르고 산다고 해야 하겠지.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거야.”

  “그런다고 뭐 달라지나. 모르고 사는 게 어쩌면 행복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가 물려준 화두를 챙기며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것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나와 너의 숙제지. 그 무의식 엄정한 순서는 때에 따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학문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계속되는 시험문제를 풀듯 그 만큼 의미는 있는 거지. 이것이 꼭 진실이라고 말하기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야 기본 틀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는 거지. 먹는 것만으로 인간의 허기를 채울 수 없듯이 하는 일 없이 세월 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삶이 아니야. 너와 나의 합일이 없었다면 무극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무극은 과거 최치원의 서자 김미향의 아들로 태어났었음을 몰랐겠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용서할 수 없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를 가지고 허무의 실체를 벗겨내는 전생론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어. 과거를 걸으며 엮는 언어들이 세종대왕이 만들어 준 한글 28자 안에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이면 되잖아. 과학적인 것도 없고 지능적인 것도 없고 눈속임수도 없는 순수하고도 진실한 28자 안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야.”

  무극의 에너지는 2018 숫자에 있는 것이다. 전생으로 이어진 생명이 없었다면 2018이라는 수에 대한 꿈은 없는 것이다. 보상의 대가에 대한 큰 부분이다. 억울함의 정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든가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든가 하는 풀지 못하는 한이 가슴에 쌓여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몇 생을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보상을 받아야 끝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2018과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악의 순환을 벗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만큼 죄지은 대가를 감수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2018년의 올림픽은 많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은 것이리라 믿는다.

  앞으로 어떠한 세상이 초래된다고 해도 그것은 그 이 후의 사람들 몫이기에 여기에 토를 달 필요는 없다. 먹는 것에도 입는 것에도 버리는 것에도 게으른 것에도 최고치에 올라갔다는 이 시대에 스스로 반성하고 자연에 대한 경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두의 경계는 너무나 세밀하여 그 세밀함을 아는 사람은 등산길에서 사탕껍질 하나도 버리지 말고 주머니에 넣어야 만 되는 힘을 느낀다.

  전쟁의 시대를 만행으로 저질러 온 이웃 나라가 언제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 죽인 죄 값은 스스로 받는다는 게 진리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앙탈 부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죄 값을 지금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의원님! 환자가 눈을 떴어요.”

  “ 이보시요. 정신이 드십니까?

  “이제 살았어! 3일 만에 눈을 떴으니, 이제 되었어요!”

  엄의원은 너무 반가워 직분을 망각하고 호들갑스럽게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도 자부심은 있었다. 사경을 헤맸던 사람을 살렸으니 말이다. 큰소리는 쳐 놓았지만 환자의 동태가 움직임을 거부하고 있으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다.

  무극은 다시 눈을 감았다. 여기에 왜 누워있는지 자기를 내려다보고 환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하며 서 있는 저 여인은 누구이며, 걱정을 다 여의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였다.

  “되었네. 이제 환자에게 먹일 탕약을 가져오시오!”

  모여 바라보던 시선들은 환자의 안정을 생각하여 조용히 자리를 뜨고 있었다. 미란은 기뻤다. 그동안 간호하느라 정성을 다했다.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를 보아 왔지만 그런 마음은 처음이었다. 탕약을 끓이는 불을 조절하고 있었다. 이제 기력을 회복하는 약으로 정성을 다해야 했다. 며칠을 누워있었으니 우선 미음부터 먹여야 했다.

  무극은 눈을 뜨고 보니 누워있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놈이 이게 무슨 꼴이람. 미안하여 몸을 일으켜 앉아 보려고 하였지만 손끝 하나 음직일수 없다. 눈으로 알아차린 의녀는 무극의 손을 잡아 안 된다는 신호를 주었다.

  ‘아직은 아니 됩니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의원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누워 계셔야 합니다.‘ 의녀가 마음으로 하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일어나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도로 뉘여 했다. 또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사람들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무과에 장원한 젊은 놈이 무슨 영문인지 대궐 사람들만 드나들 내의원에 누워있으니 창피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며칠을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 모습을 이해하였는지 미란은 무극을 부축하여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제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삼일 전에 장군님께서 처소에서 정신을 잃어 대원이 엎여 왔습니다. 삼일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지요. 의원님이 침을 놓아 혈맥을 트고 퇴청도 못하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제 일어 나셨으니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미음을 드셔야 합니다. 기력을 회복하셔야지요.

  미란이 자세하게 전해주는 말을 들으니 여기 와 누워있었던 내막을 알았다. 그럼에도 왜 정신을 잃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젊은 놈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것도 대궐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앉아 있으려니 어지럼증이 있어 도로 자리에 누웠다. 임언국 의원이 놀라 진맥을 짚었다. 진맥 결과 몸의 기가 제 구실을 못하여 뼈마디의 연결고리가 허해져 서로 힘의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결론 내려 그런 증상으로 알고 있지만 혹여 다른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된다. 미음을 서둘러 먹이라 하였다. 기별을 들은 의녀는 정성 드려 만든 미음을 하얀 사발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미란이 미음 그릇을 받아들고 무극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무극의 허리에 한 손을 집어놓고 다른 한 손은 무극의 머리를 받쳐 일으켰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한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기에 계면쩍은 얼굴로 그녀의 팔에 의지하여 일어났다. 미란이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이려 하자 그것만은 안 된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뺏어서 죽을 떠 입으로 넣으려 하는데 숟가락이 땅으로 떨어졌다. 손 뼈마디에 힘이 없어 숟가락 잡은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내 몸이 왜 이런 거야.’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란이 웃으며 숟가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씻어 오기 위함이다. 하얀 수건으로 숟가락에 물기를 닦아 내고 미음을 떠 무극의 입에 넣었다. 미음으로 해결될 위가 아니라서 숟가락에 담긴 미음이 성에 차지 않음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미란이 손으로 먹여주는 미음을 먹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입에 다 넣어도 될 미음이지만 입에 들어간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환자라는 실감이 났다. 천천히 먹여주는 그녀의 손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여자와 한 번도 이야기 한 적도 없고 마주서 보지도 못했는데 어머니도 아닌 예쁜 여인의 도움을 받으며 앉아있는 자신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넘어가는 미음은 힘들었지만 차츰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었다. 비어있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미음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정신이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별동부대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생사를 같이 한 사람들이 자기가 이렇게 허약하다고 믿을 것을 생각하니 자존심이 뒤틀려 자신에게 화가 났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의녀의 손에 들려온 약사발을 받아 스스로 마셨다. 희 벌건 미음 한 그릇이 창자에 들어가니 금방 효과가 있었는지 두 손으로 받쳐 든 약사발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입으로 얼른 가져가 마셨다. 그리고 자리에 누웠다. 잠 속에 빠져들었다. 의원이 진맥을 짚어 보는데도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깨어 나 셨다구요? 어이쿠 장군님!”

  다른 사람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훈련대장과 매성기가 대표로 병실에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지만 마음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의녀가 얼른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장군님! ”

  훈련대장은 감격하여 눈물을 쏟았다. 매일 밖에서 환자의 동태만 듣고 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맥을 놓고 사경을 헤매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깨어났다니 단걸음에 내의원으로 달려왔다.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병사들에게는 의원이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이제 장군님은 별 일 없는 거지요.”

  “이제 괜찮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밖에 대원들이 다 왔어요. 장군님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너무 반가워서 ”

  훈련대장은 무극의 손을 잡고 울먹이다가 뒤에 서있는 매성기 손을 끌어 함께 잡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전하께서 열어주신 연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여기와 있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무극은 얼굴을 붉혔다.

  “잠시 쉬어가시라고 그러는 겁니다. 아무런 생각 마시고 푹 쉬고 건강한 몸으로 나오십시오.”

  말이 없던 매성기가 한마디 하였다. 그 말을 받아, 훈련대장도 그러 하다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궁금해할까봐 말한다며 별동부대 전원을 대궐의 호위부대로 영입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제 모두 헤어지지 않고 함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생사를 같이 했는데 헤어진다면 너무 보고 싶었을 터인데, 전하께서 그리 명하셨으니 나라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몸을 아끼지 않은 결과로 내의원에서 의녀님의 간호를 받으며 호강하고 있지 않습니까?”

  훈련대장의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기운만 있다면 그들과 함께 걸어 나가고 싶었다. 병조판서 안달흥이 들어왔다.

  “한자가 웃는 것을 보니 다 낳은 모양이구만. 그래 어디 아픈 곳은 없는가?”

  “일어나 나가고 싶습니다.”

  하는 행동으로 몸을 움직여 보였다.

  “다행이네. 내의원에서 나가도 된다고 할 때까지 꼼짝 말고 몸을 편히 하게. 자네가 있을 곳이 정해졌으니 서둘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마치 사위라도 된 것처럼 정을 주었다. 환자 옆에서 도와주던 의녀 미란이 그들과 함께 기뻐하다가 쇠약한 환자에게 무리가 될까 두려워 그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끔 환자가 쉬어야 한다는 말을 어렵게 하자, 부대원들은 일어나 안심하고 돌아갔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이제 가을을 재촉하는 비라고 하였다. 핏기 없는 얼굴로 내의원 내를 걸어 보았다. 계절에 대한 느낌을 모르고 살았던 무극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좋았다. 의녀 미란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니 집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북한성에 있었던 일을 어머니가 안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마나 걱정하실까 염려 되었다. 이제 몸도 회복 되었으니 휴가라도 청하여 집에 다녀오고 싶었다. 자식의 일을 몰라 애태우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곳에서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의원님을 찾았다. 이제 자신의 몸이 완쾌되었다는 것을 의원의 눈에 보이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내보내 주십시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무엇 하러 여기에 있겠습니까. 내일은 퇴원하게 하여 주십시오.”

  사정하듯 말했다. 무극은 여유로움이 오히려 불안하여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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