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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무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1.1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를 지나 첫번의 생을 살았고 두번째 생은 조선중기 그 격변하는 전쟁 중심의 시대를 돌파해 나가는데 무사의 길을 걸으며 살았다.
문과 시험을 치루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주인공 무극은 그 길을 접고 무사의 꿈을 꾸게된다. 그는 태어나면서 2018이라는 숫자에 매료된다. 그 숫자로인해 무사의 길이 열린다. 순막히는 순간에 2018의 숫자로부터 하늘의 에너지를 받게 된다. 인간의 삶이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소설속 < 동희> <승려포청전 > <무사 > 에서결정되었다.

 
1화
작성일 : 19-11-01 21:14     조회 : 443     추천 : 0     분량 : 17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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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전생에서 무극은 삽십 후반에 출가를 하였다. 불가에 입적하여 생을 마칠 때까지 부처님 제자로서 안정되게 불법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시대적 혼란과 부친이었던 최치원의 행방이 묘연하여 일생 동안 아들로서 다하지 못한 한을 불가에 바치면서 부처의 진리를 전파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어머니인 미향의 성을 받아 김동희로 첫 인생을 살았다. 부친을 그리는 강한 의지로 과거에 급제하여 신라 말 고려 초에 하슬라인 (강릉의 옛 지명) 강릉으로 왔다. 왕건의 칙사 명을 받고 명주군왕인 3대손과 대등한 직의로 정계를 이끌었다. 사회 혼돈의 변화 속에서도 학문의 경계를 넘어 하슬라 라는 좁은 공간을 적시에 위상을 높인 만큼 앞선 재질로 20십 년 남짓 짧은 세월을 명주군 새 건설에 헌신하였다.

  고려의 첫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고려왕인 왕건의 총애를 받았지만 관직을 초개처럼 버리고 혈혈단신 산속에 숨어버렸다. 그때가 부친인 최치원이 세상을 떠난 직후 이다. 동희는 그러한 현실을 놀라워하면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업적은 오랫동안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가 기적처럼 발굴되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살아나게 되었다.

  무극은 조선 중종 24년 본 이름을 가졌다. 무극 이름을 (춤출舞무 이길 극克) 찾아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았다.

  고려시대를 왕건과 함께 했던 동희는 죽어 조선 중기에 다시 태어났지만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스무 살 무극의 몸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맞을 것이다.

  고려의 첫 과거를 치룬 자가 아니던가. 제술업 문과에 일차적으로 합격하여 첫 번째로 부여받은 직책이 왕건의 칙사였다. 무엇을 못하겠냐고 다리를 쭉~윽 펴고 흔들었다. 앞산 두견화의 붉은 꽃술이 달콤한 추억 속에서 아름으로 다가온다.

 

 

  화두에 심취 되어 있을 때는 몸은 요동이 없지만 밖에서 고양이 말하는 소리가 아와아이~ 아와이 애기들 놀이하는 말소리 같다. 그 순간이 내 안에 있던 부처는 탑이고 천안통이 되어 자리를 차고 일어난다.

  노란 스마일 버스가 당도할 시간이다. 가위를 들고 화단으로 내려간다. 20분밖에 시간이 없다. 이리저리 잘라온 꽃들이 이미 새로운 환경을 받아 기품을 세워 자태를 드러낸다. 그 꽃들에게 샤워기를 세웠다. 사정없이 물세례를 퍼부었다. 먼지와 오염이 천둥번개를 맞고 떨어진다. 꽃잎 사이사이 줄기마다 뿌렸다. 사정없이 털었다. 와! 꽃들의 함성이 보인다. 꽃의 환희를 보았다. 색감이 화사한 꽃들의 기쁨이다. 꽃은 꺾였어도 어느 가슴에 환희의 기쁨을 주어 작은 후회도 없으리. 뿌리를 떠나는 아픔보다 천둥번개 같은 물소나기에도 당당함이 신선하다. 줄기, 꽃잎, 하나하나까지, 웃음이 만발하다. 하하하 신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일곱 가지 들꽃의 아름다움이다. 꽃 하나의 이름까지 나열하지 못하는 것은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머리의 한계를 어쩌랴.

  뿌리를 버리는 순간 그들은 진물이 났다. 가뭄에 겨워 목말라 시들어 가던 줄기에 가위가 사정없이 허리를 잘랐다. 꽃잎은 먼지와 황사에 지탱해 내느라 아침 햇살에도 힘들어 했다. 그러나 잘린 일곱 가지 꽃들은 균등하였다. 세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아홉 살 배기 형제가 된 다섯 꼬맹이들의 스승의 날, 챙겨줄 은혜에 보답으로 앞장서기 위한 행진이다.

  시간의 마음은 꽃들만은 아니다. TV 앞에서 곁눈질 하던 세살, 다섯 살의 도와 상후의 눈이다.

  꽃다발을 안기도 전

  “하~예쁘다!”

  일곱 가지 색감은 리본을 예쁘게 장식하고 유치원 가방을 메고 아이들을 따라 걸어간다. 꽃이 된 꼬맹이들 노오란 버스를 탄다. 천진의 마음에 상상의 나래를 안겨준 천안통이 꽃이 된 아이들 볼에 빨간 하트를 터트린다.

 

  올곧은 스승을 찾으러 사람들 틈에 끼어 설악산 봉정암으로 갔다. 그런 기회는 순전히 주문을 외운 탓이리라. 고마움에 처음 올라갈 산행이라 삼일 전부터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엄마의 유품인 바랑에 쌀 한 되박을 넣었다. 산세가 험하고 멀다 하여 무거운 것은 무리라고 택했던 것이다. 백담사 입구까지 가는 동안 버스 안은 주문을 생각하는 사람들만 탈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마이크로버스 안에는 새벽부터 방편설이라도 얻어올까 하는 무게가 신선하다. 하얀 돌 위로 내달리는 물줄기는 계곡의 길까지 올라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래서 이름이 하얗구나, 확인 할 수 있었다. 백팔의 복을 쌓아 전시한다는 백담사 골짜기 돌탑은 하얀 것들만 탑으로 둔갑하여 천에 얼굴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길래 탑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촘촘하여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백담사를 돌아 나와 점심을 먹었다. 갈 길이 바쁜 일행은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맑은 물줄기는 단풍에 물이 들어 예쁜 화선지가 되었다. 깊은 골짜기에는 33인의 독립선언문을 써 너래 반석에 새겨 놓은 듯 영원히 푸르게 흐르고 흘러 부드러워요. 그리워요, 하는 한용운의 시혼이 산의 메아리로 시어를 띄워 산속으로 풀어 놓았다.

  젊다는 발걸음은 앞질러 골짜기를 타고 촘촘이 산을 안았다. 산은 처음 맞이하는 초년생에게도 가슴을 내어주고 비밀스런 장소를 자랑하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던 10월 산중은 해를 밀어내는 속도가 더욱 짧았다. 어둑어둑할 무렵 곧추서서 올라간다는 빨딱 고개는 허리를 펴고 서 있었다. 등에 지고 온 쌀 한 되박의 무게가 감지된다. 곧추서서 오르는 길이 쉽겠는가. 그럼에도 제일 먼저 올랐고 긴 능선을 지나 5대 보궁 중 제일 높다는 부처님사리가 모셔져 있는 봉정암 보궁에 왔다. 그때 까지만 해도 보궁에 대한 지식이 짧았다. 먼저 올라왔다는 자부심에 긴 능선을 지나 마당에 들어설 무렵 해는 다 지고 뒤에 남은 사람들이 차례로 마당으로 들어섰다. 전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찾아드는 사람들이 언제 왔는지 방에 발 들여 놓을 틈도 없이 꽉 차 있었다. 팔 백 명이 미역국에 밥 한 주걱을 넣어 먹는 것이 다였다.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봉정암은 이미 밤이 되어버린 산속에 들어 있었다. 허방 허방 수그리고 올라온 발길은 치칠 대로 지쳐서 잠시라도 비좁은 자리를 뚫고 눕기를 원했다. ‘젊은 것이 그러면 안 되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냥 다리를 뻗고 산이 될 수는 없었다. 쌀 한 되박을 넘겨준 어깨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고 몸은 가벼웠다. 초저녁부터 하늘아래 어둠의 공간은 촛불만 타고 있었다. 앞에 아무도 없다. 부처를 닮은 얼굴도 금색을 모방한 허상도 없다. 유명하다는 봉정암인데 왜, 없을까? 촛불 뒤에 당연히 있어야 할 방편설이 보이지 않는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앞을 보고 서 있다. 언제부턴가 나는 주문만 외우고 살았던 것 같다.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고 늘 하던 대로 아무것도 아닌 내가 말 잘 듣는 순한 양처럼 그냥 서 있었다. 함께 오신 선 지식이 방편도 없는 곳에 옷매무새를 갖추고 들어왔다. 그제 서야 무릎이 꺾였다가 일어서서 어머니가 하신대로 주문을 율동에 맞게 외웠다. 거무칙칙한 촛불이 주위만 태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밤이 이슥 하자 몇 안 되던 사람들도 자리를 떠나고 둘 아니면 셋이 손을 모으고 서있다. 그저 그리해야 한다는 무의식의 명령대로 주문을 외고 시간을 잊고 무아의 밤을 가슴에 안았다. 두 눈은 모든 것을 지웠다. 생각도 육신도 공간도 지웠다. 두 손은 아주 간결한 리듬에 맞추어 주문만 외우고 서 있다. 처음부터 없었고 눈 안에도 없었다. 안으로 더 깊은 세계를 꿈꾸었다. 깊은 세계는 무아였다.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촛불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어둑컴컴한 유리벽 뒤에서 난데없이 유리벽을 뚫고 쏜살같이 날아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일직선으로 슝~응 날아오는 것은 삼층탑이었다. 무엇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못했던 내 가슴 안으로 쏘~옥 들어왔다. 두 손을 모아 요동도 없이 탑을 가슴에 넣었다. 새벽 두 시였다. 처음부터 아래로 실눈을 하고 서 있었는데 눈 아래로 물방울이 줄줄줄 내린다. 깊고도 먼 산중 어느 한 곳에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몸 하나가 설악을 다 안았다. 촛불이 꺼지지 않는 10월의 밤을 방석 두 개를 깔고 잠들었다.

  새벽 네시가 되어 하루를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봉정암 옆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발길이 멈추어 선 곳에 아~~ 어제 밤에 직선으로 날아 들어왔던 삼층탑이 거기에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날이 새려면 한참의 시간이 남았을 터인데 탑 위의 하늘은 빈틈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 또한 신기하여 하늘을 살펴보았다. 사방팔방이 먼 곳으로 별이 보이지 않았다. 탑 위쪽 하늘은 별들을 한곳으로 모아 쏟아 붓고 있었다. 그곳에 지난밤 가슴에 안겨왔던 사리탑이 있는 지도 몰랐던 무심, 아침 일곱 시 주먹밥 한 개씩 얻어먹고 산에 오르기 시작 하였다. 이제 봉정암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예감으로 그곳을 떠났다. 대청봉에도 올랐다. 시루에 콩나물처럼 모여선 사람들이 어렵게 올라온 흔적을 남기려 서로 고개를 내밀어 복제하기에 열을 올렸다. 그저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 것을 그런 생각으로 돌아 섰다.

 

  비로자나께서 전생의 깨달음을 펼쳐 주셨다. 의문과 의심의 꼬리를 물고 묻고 또 물었다.

  귀신의 속임수가 아닌가 의심의 촉을 세웠던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화두의 대가성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확연히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워낙 귀신들에게 속아본 경험이 있는 탓에 눈을 뜨나 감으나 점검하는 버릇이 오래도록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옛 선사의 말씀에도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음을 뺏긴다고 했다. 전생의 일을 안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오직 한 가지 주문으로만 집요하게 드리대는 탓에 비로자나께서 ‘성질머리가 그러하니 그러하구나. 하며 그것이 그리 되었지 따로 한 것이 없다고 하시던 말씀을 생각하면 오래전부터 비로자나께서 봉정암 불탑과 하나 되는 순간 광명을 느끼지 못함에도 광명과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제2의 숫자 스무살의 지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시대 인도에서는 여름 한 철 우기가 시작되면 구도자들은 탁발을 쉬고 기도하는 기간으로 석 달 동안 어디서든 자유로이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것이 현재에 이어오면서 이행되고 있다.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도 이천 오백 육십 년 전과 다르지 않음이다. 어디든 한 곳에 머물러 공부한다는 것은 인문학을 완성하고 무를 지향하는 길이다.

  인문학은 엄마의 뱃속에서 분리되어 “응애”하고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꽃술이 노출되기 시작하는 꽃잎의 사이사이를 바람이 흔들어주고 향기를 퍼담아 나르는 짧은 시간 꽃잎의 화려함은 바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무극은 19세에 임금의 책사 벼슬을 받았다. 신라말기의 혼란 속에서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북방을 넓혀가는 중요한 시기에 그는 맡은 책무를 다하면서 명주군을 발전시키는 업적을 남긴 터였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6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사이에 두고 나는 무극의 존재 가치를 찾아 전생론을 제기 하면서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 시킨다.

  현생에 여자로 태어나면서 전생이 내가 되었다. 동희의 이름 최치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내가 될 때 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화두의 위력으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는데 철저했으며 진실하였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삼생에 내가 무극과 인생을 풀어나갈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스무 살 때를 회상해본다. 무극은 목마르게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인 최치원을 찾기 위한 삶을 살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불제자의 길을 걸었다. 부처의 길에서 책무는 다 하였지만 스무 살의 나이에 꽃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삶이 다르구나. ”

  무극이였던 나와 시대에 따라 달리 살아야 했던 나의 인생은 다시 무극의 삶으로 돌아간다. 무극은 천 년전 해인사로 가던 길에 우물가에서 만난 세 여인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을 치루고 뒤도 보지 않고 돌아섰던 기억도 있었다.

  “내, 불명이 일현이었지.”

  무극의 인생은 거기에 있었고 나의 인생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여자의 섬세함은 없다. 조건이 성립되는 순간, 무극과 합류하여 오백 년 조선의 땅 그 마당을 밟아볼 준비를 마쳤다. 촉각이 살아난다. 조선 오백년 그 길을 거슬러 오른다. 아득 하기만 한 과거 무극을 찾아 재생시키는데 페달을 밟았다. 일념이 할 수 있는 건 안으로 안으로 되 돌려보는 어려움을 시도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억할 수 없음에도 지혜를 총 동원하여야 한다. 허공의 끈은 다양하여 마음의 불을 켜 밝혀야만 하고자 하는 새 생명을 탄생시켜 이어 나갈 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인연이든 업이든 꼭 만나야 할 때는 만남을 열어 주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선택되어진 하나는 정답이 꼭 있기 때문이다.

  이 길 위에 합일한 조건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허공에 차곡이 저장되어 있음을 안다. 인간의 오묘함이 태어나고 태어나서 세상이 존재하는 한, 천년이든 만년이든 해와 달이 소멸되지 않는 이상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어느 한 부분을 인연의 합일 하에 꺼내 보는 것은 이야기 거리를 펴 가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 중 전생론을 재생해 본다는 것, 그것 또한 결국 이야기인 것이다. 더러 하늘의 이야기로 책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세상사 어려울 때 잠시 쉼터라도 제공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숙성된 고목이 새순을 돋우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비바람, 눈보라, 인생 행로에서 비켜 갈 수 없는 길을 보며 업 연을 풀지 않고는 결코 돌아설 수 없음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무극이 조선 오백 년의 한 부분에 살아 있었음을 확인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다.

  하늘이 도왔다. 두 번째 환생이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어디에 있다가 조선에 태어났는가. 나는 무지의 알몸으로 무극과 하나의 인간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따라 빛 날 것인가,

 

  무극은 평양성 부근 남부에서 태어났다.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나 인간이 있은 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 전쟁에서 죽은 자가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니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태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면 기록 없는 기록을 재생시키는 데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한 인간의 생애를 건지는 일이다. 시간 흐름이 기록되어야한다. 글 쓰는 이의 촉각으로 그려내야 한다. 생명을 갖고 태어나 생명이 끝이 날 때 까지 산다는 것은 그 생명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무극과 만난 것도 그런 약속이 주어졌기에 가능 할 수 있는 것이다. 무극의 존재가치가 아직 또렷이 지면 속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답답함을 잊기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무얼.”

  남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울음소리가 달라. 그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이미 남녀의 길은 정해져 있는 거야.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자식 앞날을 위해 헌신하기로 되어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잘 먹여 아무 탈 없이 키울까를 생각하게 되지. 어느덧 문이 비좁게 커 있는 자식을 보며 걱정이 시작 되는 것이다.

  전쟁터에 보낼 것인가 벼슬길에 올라 편히 살게 할 것인가를 부모는 생각한다. 키우면서 그 아이의 앞날을 계획하고 꿈을 꾼다. 부모는 자신의 나이를 잊고 자식의 나이만 세면서 평생을 살다가 부모라는 이름을 벗어내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거야.

  엄마는 자식의 무병장수를 위해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아들의 생명을 가슴에 안고 비는 게 일이지. 엄마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손바닥이 달도록 비는 거잖아. 어느 집에든 그런 엄마가 있잖아. 자식 하나가 전쟁에 나가 죽어 없어져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남은 자식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엄마잖아. 조선 부모들은 그렇게 자식을 사랑했지.

  무극의 어머니가 분이다. 분이는 첫 자식으로 무극을 낳았다. 아버지는 글을 읽는 선비였지만 세상이 불안하여 무인으로 평양성을 지키는 병사가 되었다. 첫아들의 탄생을 히죽거리며 좋아 했지만 아들의 장래를 상상하며 어르고 안고 기뻐했다는 거다.

  무극의 아버지가 18세의 나이로 달랑성 아래 살던 16세 분이와 혼인한 지 일 년 반 만에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 분이 고 어린 것이 아기를 낳았다. 어른들 말씀이 장군감이란다. 틀림없는 말일 것이다. 분이가 낳은 아긴데 당연하다. 막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다. 오월의 해는 길기도 하다. 보초를 서면서 아기의 얼굴을 상상하며 높게 쌓아 올린 성담벼락 밑에서 오줌을 갈길 때도 아기 얼굴이 아롱거린다.

  나뭇잎이 팔랑팔랑 주름 펴는 오월, 모내기하던 사람들 발자국이 논두렁에서 집으로 기어간다. 마을 어귀를 지나는 귀에도 물동이에 물 퍼 담는 소리가 정답다. 어둑어둑 초가집 굴뚝에서 소여물 익는 달큰한 냄새가 구름에 합류한다. 산뽕나무 가지에 걸렸던 해가 마을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어둑한 지붕마다 엷어진 저녁연기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림 같은 풍경이 있는 동리다.

  문밖 텃밭 이 랑 사이로 어둠의 그림자가 열기를 걷어 내린다. 우주의 근본 화합은 낮과 밤이 계절에 맞게 온기와 냉기를 조화롭게 골고루 분배하는 아우름에 있고, 인간의 노고는 그에 맞는 웃음과 행복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일에 억울함이 없이 한다. 인간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를 꼽는다면, 해가 지면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누구나 생각하는 공통의 의식이 그것이다.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평등 사상이 통용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율배반이다.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위대하다.

 

 불신은 살아남기 위한 방어벽이며 존재 가치를 깨달으면 “네, 그러게요.” 스스럼없이 각을 내려놓으며 유에서 무를 창조한다.

  끊임없는 의문의 고리가 때로 악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를 반문한다.

  실체를 보기 위한 숨을 쉬고 목숨을 유지하는 또 다른 내가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배를 빌려 물을 건넜다면 배의 역할은 끝난다. 다른 세상에 입문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무섭고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소리여야 하고, 그곳에 살아 있다는 진정한 울림의 소리여야 한다. 역사의 흐름은 한 인간의 삶과 같은 것이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것이나, 옳은 것을 상대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술상을 뒤엎는 옹졸한 마음이거나, 나라를 위한다는 목적이 사람의 목숨을 뺏는 일이거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태는 수 만 개로 갈라진 얼굴과도 같이 제각각 이다. 인간은 짧은 세상을 살면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긴다. 그럼에도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놓고 떠나는지 모르고, 할 일이 남음을 아쉬워하며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군더더기로 살아온 삶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그 본질을 드러내는 일에 무극을 잊으면 안된다. 정진하여 무극의 실체를 밝혀내야 하는 의무를 철저히 감내하며 나아가야 한다.

  철부지 분이 첫 출산은 하늘에 목숨을 걸고 생살이 찢기고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배 안의 자식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이를 악물고 그 모든 두려움과 고통의 아픔을 견디어 냈다. 아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조용한 마을을 흔들어 놓았다. 새벽바람에 나뭇가지에서 재잘거리던 새들이 놀라 자리를 옮겨 앉는다.

  목숨을 건 터널을 지나 자궁 밖으로 떨어진 무극은 자신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얼음 위 개구리 바동거리듯 추위에 떨다가 오그라드는 알몸을 소리로 조절하였다. 무극은 처음으로 하늘의 공기를 마셔보는 것이다. 벽에서 나는 향긋한 흙 냄새가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눈을 뜨고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향해 입이 함박이 되어 좋아하는 얼굴들이 느껴졌다.

  “분이야! 머스마다야! 너, 이제 살았다!”

  분이는 고개를 들어 아기를 보았다. 핏물이 아기의 몸 전체에 수채화 물감처럼 불긋불긋 묻어 있었다. 분이는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 보아왔던 송아지가 생각났고 개의 새끼를 상상해 보았다.

  짐승의 새끼도 아닌 사람의 새끼가 앙앙대는 입이 어찌나 커 보이는지 아기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열 달 동안 늘 마음속으로 놀아주던 그 사랑에 보답하듯 응답해 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는 한 올의 머리칼도 나 있지 않았고, 얼굴은 핏물에 젖어 입만 크게 보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바동거리는 아기는 다섯 손가락은 겨우 어른 엄지손가락 만 한 두 주먹을 쥐고 살려달라고 악을 쓰고 울어대는 작은 생명체는 산후를 책임지는 손놀림에 안정을 찾아 조용했다.

  계집애인지 머스마인지 배만 불러가는 분이의 산달에 대비하여 미리 새끼줄만 서둘러 꼬아 놓았는데 고맙게도 첫아들을 낳았다.

  “머스마다!”

  안방에서 내 지르는 소리에 놀람보다 자지러지는 사내 아기의 울음소리에 듣는 이의 입이 벙글어진다. 새끼줄에 살이 통통한 생솔가지를 끼우고 지난해 얻어놓았던 길고 잘생긴 빨간 고추를 생솔가지 사이마다 끼워놓고 처마 밑 서까래에 걸어 길게 묶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들 풍연이다 보니 귀하지 않은 아기 울음소리인 터라 새 생명의 탄생을 그러려니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나마 소나무 가지에 까치가 아기의 탄생을 기쁨으로 전해주었다.

  새로운 가족을 살펴보건대 서로 풍기는 따뜻함이 있어 마음 놓고 누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한 달여 쯤 시간이 지나갔다. 고개도 바로 들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 문밖의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몸인지 마음인지 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여인인지 사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급히 반겨 안는다. 오래전부터 그리해 왔던 것처럼 그와 나는 친숙했다. 그의 가슴에서 반짝거리는 2018 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내 몸에 각인된 숫자는 1529년 5월이다. 2018, 그런 숫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 달된 아기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품에 안겨 쳐다 보았다.

  “나는 머~언 미래에서 왔단다”

  너를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오월의 햇살이 뜰을 지우고 있었다. 2018의 미래에서 왔다는 사람은 아기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무엇이 통했다는 것을 느끼며 아기에게 숫자의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하나의 생명 은 무한의 공간에 아무런 경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무극은 미래의 사람과 헤어졌다. 그 이후 커 가면서 숫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부엌에서 분이는 분주하게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아기의 옷이며 귀저기를 빨기 위해 물을 데우고 있었다. 다행히 아기가 순해서 자는 시간동안 서둘러 집안의 많은 일을 하였다. 친정이 가까이 있는 탓도 남편이 받아온 녹봉도 살림이었다.

  빨래를 널고 아기를 안고 싶었다. 어떻게 아기를 안아야 하는지 어떻게 씻겨야 하는지를 두렵고 겁이 났지만 한 달여가 되어가자 수월하게 아기를 만질 수 있었다.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는 것도 능숙해졌다. 잠만 자는 아기를 흔들어 젖을 물리고 내려다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안은 듯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몰랐다. 매일 들어오지 못하는 남편이나 거의 홀로 키우는 엄마지만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다. 이제 아기의 이름도 지어 호적에 올려야 했다. 분이는 아기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매일 고민하고 있었다. 아기 이름을 멋지게 지어주고 싶은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기는 배가 부르면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엄마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극나이 15세가 되는 해 중종은 보위에 오른 지 39년을 일기로 승하하였다. 중종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던 첫 번째 아들인 인종이 보위를 물려받았다.

  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몸을 돌보지 않고 임금의 수발을 드느라 본인의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궁궐에서는 세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계모인 문정왕후가 시시때때로 인종에 대한 부정으로 심사를 괴롭혔다. 문정왕후의 소생인 경원 대군을 중종 다음의 왕으로 삼으려고 끊임없이 모략을 자행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종은 부왕에 대한 효심으로 자신을 버리며 효를 실천했다.

  중종이 승하하자 왕위를 승계 받은 인종은 나라에 대한 꿈을 설계하였지만 이미 쇠약해진 몸은 그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계모인 문정왕후의 계략과 모략에 친 어마마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인종의 마음은 모든 것이 허하여 즉위한 지 일 년도 채 안 돼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타계하고 말았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내내 병을 달고 살았는데, 몸의 병도 깊었지만 마음의 병은 더욱 깊었다. 인종은 부왕에 대한 효성뿐만 아니라 계모인 문정왕후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럼에도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인 경원 대군을 왕위에 올릴 속 샘을 감추고 조바심으로 살았다. 계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인종의 마음을 문정 왕후는 달가워하지 않아 하였고, 그러 메 인종은 슬퍼하였다.

  무정왕후의 동생 윤원형등과 인종을 괴롭혔고, 그것이 인종의 심신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인종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경원 대군이 12세가 되자 문정왕후와 소윤 일파는 경원 대군을 세제로 책봉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해 인종을 압박했다. 문정왕후 뜻대로 12살인 경원 대군이 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명종이었다.

  총명했던 무극은 자라면서 뛰어난 학문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무극의 나이 15세가 되던 해 4월 왜구가 사량진을 침략 했다. 조선 정부는 이에 대한 응징으로 일본 왕의 사신을 제외한 왜인들을 일절 거절하고, 제포와 부산포의 모든 왜관을 폐쇄하였다. 그럼에도 왜구의 침략이 잦은 달랑성 일대는 불안에 떨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조선의 정의 부대는 구호를 앞세워 장병들을 화합하는데 힘썼다. 살고자 해도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해도 산다는 구호가 어제 오늘의 구호가 아니다.

  조선은 중종이 붕어하자 인종이 뒤를 이었지만 일 년도 넘지 않아 명을 달리하였다. 인종다음으로 어린 명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로부터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세력 강화로 ‘을사사화’로 인한 권력 다툼에 나라의 흉흉한 시기에도 학문에만 도취해 살았다. 어린 왕이 등극하여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시대를 맞아 명종은 문정왕후의 그늘에서 언제쯤 벗어 날 수 있을 것인지, 나라에 대해 걱정하는 민초들 간에도 주막에서 술을 벌컥거리며 인종을 아쉬워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한 때 무극은 배우던 학문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명종 즉위 2년차 1548년에 어린 임금이 무엇을 알겠는가. 하는 생각에 나는 학문에만 심취하던 마음을 바꾸었다. 이왕 태어났으니 나라를 위해 군인이 되리라는 굳은 의지로 변했다. 무인이 되기 위해 몸을 단련 했다. 책을 잡는 대신 무인이 가야할 길을 모색하는 데 심신을 쏟았다. 18세가 되면 문과 시험을 보고 정계에 나가든지 무과에 합격하여 어지러운 나라에 몸을 바치든지 해야 한다. 양단의 기로에서 무과를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남자로서 피해 갈 수 없는 결단이었다. 지금껏 해오던 학문을 접고 무과 시험을 위해 몸을 단련 하는 데는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집 기둥에다 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를 둥그렇게 감아 매 달았다. 시간 나는 대로 몸을 혹사하는 연습에 들어갔다. 또 가까운 산이나 벼랑을 오르고 내리며 무술의 기본인 칼 쓰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녁이면 무과에 대한 서책을 보고 무법을 익혀 단련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몸이 점점 날렵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명종 즉위부터 우수한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적시에 나라를 위해 쓰여 질 인재들이었지만 인재의 활용을 제대로 못하여 임금의 무능이 빚어 낸 역사는 불행이다. 명종 조부터 선조 초기까지 세종 조와  정조 조에 비견될 만큼 우수한 인재가 많이 등장 했다.  류성룡, 이이, 이황,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윤두수, 이산해, 이순신, 권율, 정인홍, 정문부 등이 모두 명종 시대를 거처 선조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허준의 경우 양민 출신이 지만 그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가까이서 중용하여 가까이 두고 최신 의서들을 수집해 동의보감을 쓰도록 지원해준 것은 선조의 눈이 밝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당대 화담학파의 박순, 허엽, 퇴계학파의 류성룡, 김성일 등은 물론 서인인 정철 등이 명종 때에 출사한 점을 들어 명종 대에 이미 조정을 사림계가 장악했고 선조는 그것을 이어받았을 뿐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윤씨 척신을 쳐내고 또 다른 척신들을 들인 명종의 정치를 생각하면, 이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고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논의될 수 있었던 건 분명 선조의 공이 맞다. 선조가 역량을 발휘해서 급작스럽게 사림이 득세하고 인재들이 쏟아진 건 아니지만 제대로 쓴 건 분명 명종이 아니라 선조다. 선조와 그러한 인물들이 한 시대를 공유함으로서 조선 오백년 중반 정치는 그때까지 나라에 대해 고민하고 충성하고 왜적으로 부터 조선을 지키려 했던 일념들을 응축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역사를 가능케 하였다.

  지난날의 과오란 충신을 적시에 알아보지 못하고 혹독한 시련 속으로 몰아넣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정치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러한 일들은 계속 될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인재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후대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 또한 발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한 발 뒤 떨어졌던 역사 뒤에 새로운 역사가 기다린다.

  그러한 인재들 속에서 무극도 18세 나이로 무과에 합격하였다. 부대에 배치를 받고 전방인 달랑 성 소속이 되었다. 부모님은 놀랐다. 문과에 급제하여 나라의 녹을 먹을 줄 알았던 아들이 난데없이 무과를 선택했으니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거에 급제해 나라에 보탬이 되어라.”

  하였던 아들이 커갈수록 어려운 상전이라 부모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말을 배우면서 천재가 났다고 하여 부모의 짧은 학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였지만 부모를 거스른 적은 없었다.

  “저는 왜군을 소탕하는 군인이 되겠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가 하고 있지 않으냐. 너는 대궐에 들어가 높은 벼슬을 하여 나라에 공헌하여 집안의 강녕을 책임져야 한다. 어찌 마음이 변하여 무과를 보았느냐?”

  아들의 재주가 아까워 부모는 한숨을 쉬었다.

  “임금이 셋이나 바뀌었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할 말이 없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아들이 아버지는 못내 섭섭하였다. 조선이 세워 지면서 젊은이들을 전장에서 몰살시키는 시대는 아니지만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벼슬길에 올라도 얼마든지 나라의 의인으로 남을 수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전쟁을 겪어본 아비로서 아들만큼은 자기가 살아온 세월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들의 그런 생각을 반드시 말리고 싶은 것이다.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조선의 형세는 언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시시 때때 로 조선을 넘보는 왜놈들의 총칼에 무참히 목숨을 잃는 전우들을 수없이 봐야 하는 가슴 떨리는 전쟁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남자이기에 무인이 될지 문인이 될지 선택하여야 하는 나이다.

  분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말을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맏이로 태어나 아래로 동생이 있는 탓에 하나의 입이라도 덜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성장한 아들의 의사를 꺾을 힘은 없는 것이다. 남편이 전쟁에 나갈 때마다 마음을 조이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아들이 남편 뒤를 이어 전쟁에 나간다고 하니 먹먹한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루 한 끼를 먹고 살더라도 그런 애끓는 일은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분이의 마음이지만 아들의 결심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아들에게 분이의 말은 입속을 맴돌 뿐 가슴만 졸이고 앉아 있었다. 이제 무과에 합격했으니 나라의 부름을 거역하기에는 명분이 서지 않았다. 분이는 생각했다. 남편은 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병으로 살고 있지만 아들은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이 된다면 그것도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극은 부모님의 거센 반대가 없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남자로 태어나 무관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대장이 된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이 어디에 있으랴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었다. 조선의 백성으로 18세나 19세가 되면 의례 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조선의 남자로서 당연하다. 전국에서 온 많은 병졸들이 연병장에 줄을 이어 그득했다.

  정의부대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여기에 들어온 이상 너희들은 하나도 나라, 둘도 나라, 세도 나라를 지키는 용사다. 왜놈들이 뺏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이 조선을 제군들이 지켜야 한다. 우리가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왜놈들의 세상이고 그들이 주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제군들 어머니나 누이 들을 왜놈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의 이름으로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그들이 침범할 수 없도록 철저히 방어를 해야 한다. 내 가족을 내가 지킨다는 굳은 의지로 나아가기 바란다.

  첫날부터 정의부대 훈령 병을 교육 시킬 대장이 긴 칼을 차고 새로 들어온 새내기 군병들을 정의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군병들은 소대로 나뉘어져 무장에 모여 연단을 바라보며 부대의 사명감을 강조하는 대장의 설명을 듣고 의기충전 하였다. 그들은 이미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어 대장의 말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그들의 등을 따뜻하게 하였다. 초가을에서 이제 머지않아 겨울을 맞을 것이다. 입고 들어온 옷들을 모두 벗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모두가 하나 되는 기분이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키와 몸집이 같았다. 모두 무관의 꿈을 안고 들어온 어엿한 조선의 아들로서 몸의 이상이 없음은 물 런이고 무과 시험을 통과 하고 들어온 탓에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앞에선 교육관의 구호에 맞추어 연병장을 돌기 시작 하였다.

  “하나 둘! 셋 넷!!! 더 크게! 하나 둘! 셋 넷!!”

  구호에 맞춰 한 소대씩 두 줄로 나뉘어서 돌고 있었다. 구호는 점점 넓은 운동장을 메웠다. 새로 입은 군복이 땀으로 얼룩진다. 무극은 미리부터 산을 오르고 물의 길을 알아 절벽을 오르고 내리며 축지법을 익히면서 몸을 단련 시켰기에 의기양양하였다. 구령 소리가 산이라도 삼킬 듯 진동하였다. 넓은 운동장을 수십 바퀴를 돌다보니 쓰러지는 사람이 늘어났다. 한 사람의 낙오자라도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반복된다는 명령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자기 몸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워 쓰러진 동료를 챙겨야하는 순간이 지나자 꿈을 안고 들어온 군병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새로 입은 군복이 땀범벅이 되고 몸은 기절 직전 파김치가 되었다. 첫날부터 호되게 훈련하는 바람에 서로 엉키어 소속이 어딘지 엉망이 되었다. 순식간에 꿈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것인가 눈에 살기가 생겼다. 그렇게 첫날부터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혼비백산 정신 못 차리는 신고 식 겸 훈련을 하게 되었다.

  혹독한 훈련은 정의부대의 자존심이었고 왜군을 무찌르는 무기가 되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구호 아래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훈련은 견디어 내는 힘의 원천이 되었고, 그 구호에 따라 살벌한 훈련을 이겨 내는 정신 무장으로 원동력이 되었다. 절벽을 타고 올랐고 강을 건너고 산길을 밤새도록 행군하면서 전우애를 키우며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그들을 강한 군인으로 단련시켰다.

  교관이 나무칼을 허리에 차고 연무장 중앙에 있는 연단에 섰다. 이제 제법 군기가 잡혀있는 장병들을 일렬로 새워둔 채 연무장에서 훈련시킬 때의 목소리와 달리 꽤 부드러운 음성으로 연무장을 좁힌다.

  “그동안 우리 정의 부대에 들어온 장병들이 특출하여 매 훈련마다 우수한 성적을 보여 주었다. 그 또한 교관으로서 마음 뿌듯함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올 곧은 정신으로 전쟁에 임하자면 많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여러분의 담력과 칼 쓰는 법을 시험해 보기로 한 날이다.

  적을 만났을 때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을 연마 해야만 한다. 그래야 적을 이기고 나라를 지킬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의 훈련이 각자에게 얼마나 연마되었는지 한번 겨루어 보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며 누구든지 우수한 병사가 된다면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대장님으로부터 한 계급 승진할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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