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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36
작성일 : 19-11-01 13:22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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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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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이렇게 심하게 풍기는 누린내는 뭘까. 어째서 이런 냄새가 빌딩 속에 버젓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 누가 살아있는 고기를 빌딩 안에서 태우는 것일까. 아아, 이건 마치…….

  경비가 행방을 알 수 없는 불운한 누린내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30층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끼이이익 하는 기계의 마찰음이 한 차례 나더니 엘리베이터는 닿아야 할 곳을 향해 있는 힘을 다 해 보지만 닿지 못하고 힘겹게 멈춰 섰다. 경비는 몹시 당황했다. 처음 겪는 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은 누린내로 진동을 했고 에어컨디셔너가 나오지 않아 경비의 목덜미로 땀이 흘러내렸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다가 27층과 26층 사이에 어중간하게 멈춰서버렸다. 경비가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굳건하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비는 기계에 비교적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긴박한 상황에 당황하여 머릿속 지식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경비는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 들어찬 누린내로 인해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경비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땀이 불필요하게 많이 흘러내렸다. 에어컨디셔너는 기잉하며 소리를 냈지만 바람은 나오지 않았고 기잉 하는 소리가 엘리베이터 천장의 에어컨 구멍에서 날 때마다 누린내가 퍼져 들어왔다. 상황이 가져온 두려움에 경비는 한손으로 흐르는 땀을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대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두려움은 더욱 컸다. 엘리베이터안의 비상버튼을 누르면 외부에 있는 사설경비업체에 비상연락망이 전송이 된다. 하지만 경비는 그 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왠지 자신이 그동안 나태하게 경비업무를 한 탓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흐르는 땀의 양만 많아졌다.

  오늘 이후의 문책이 경비는 더욱 두려웠다. 땀의 굵은 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개울물처럼 흘러내렸다. 뺨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이 밑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땀방울이 뺨에 붙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고 뺨에 손을 갖다 대 보니 끈적끈적한 액체가 만져졌다.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액체는 손에 묻자마자 누린내가 역겹게 경비의 코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경비는 헛구역질을 했다. 경비는 액체가 떨어진 엘리베이터의 천장으로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았다. 경비의 목덜미가 몇 겹으로 접쳤다. 경비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우글거리는 괄태충들의 모습이었다. 괄태충은 엘리베이터 천장을 꾸물거리며 기어 다녔다. 그 모습은 지구상에서, 도심지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코감기가 심하게 걸린 어린아이가 코를 흘리듯 괄태충들은 바닥으로 끈적끈적한 액체를 뚝 뚝 떨어뜨리며 엘리베이터의 천장과 전선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괄태충들은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도르래와 철제구조물로 이루어진 줄에 엄청나게 붙어있었다. 경비의 얼굴은 땀과 괄태충의 몸에서 떨어진 점액질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누린내는 경비의 숨을 거칠게 내쉬게 만들었고 구토를 유발시켰다. 괄태충이 우글대는 천장에서 큰소리의 전기스파크가 일었고 그 순간 엘리베이터는 밑으로 쿠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2초가 흐른 뒤 엘리베이터는 안전장치가 작동을 했다. 엘리베이터 바닥의 안전장치가 펴지면서 엘리베이터는 하강하기를 거부하고 멈추었다. 공포 속에서 경비는 한숨을 삼켰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서 수십 마리의 괄태충의 몸이 엘리베이터의 도르래와 줄에 끼여 터졌다. 괄태충들의 몸이 터지면서 피가 섞인 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누린내가 엄청났고 경비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크게 뛰었다. 괄태충은 어린아이의 허벅지만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크고 암울한 괄태충들은 엘리베이터의 천장과 벽면, 바닥 그리고 엘리베이터 외부에 촘촘히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닥에서 펼쳐져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했던 안전장치도 부식이 빠르게 되었다. 경비의 심장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쿠르르르릉.

  50톤 트럭이 굉장한 속력으로 돌진하는 굉음이 들렸다. 엘리베이터는 거친 소리를 내며 다시 밑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경비는 몸이 따가웠고 누린내 때문에 구토를 하면서 비상벨을 눌렀고 동시에 엘리베이터는 바닥으로 떨어져 납작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부딪치자 괄태충의 몸은 모두 터져버린 점액질에 의해 엘리베이터가 추락한 바닥은 지하세계를 연상케 했다. 누린내가 빌딩 안으로 크게 번져갔다. 인슈타워에 남아서 야근을 하던 사람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는 하늘의 저편에서 자줏빛 연기를 뿜어내는 빌딩이 보였다. 빌딩은 최고층인 43층에서 그 밑으로 30층까지 무너져 내렸다. 인슈타워의 상층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근처 건물의 사람들도 대피를 했다. 소방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각 구에 배치되어있던 소방서에서 대원들이 대부분 출동을 했다. 밤인데도 인슈타워 주위에는 마치 숱이 많은 인도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인파가 우글거리며 구경을 했고 그들 대부분은 코를 막고 있었다. 누린내는 건물을 부식시키며 풍기는 냄새와 결함하여 더욱 고약하고 소름끼치는 악취로 사람들의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인슈타워가 무너지면서 만들어내는 연기는 확실히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빌딩바닥의 잔해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찢겨져나간 큰 괄태충의 몸통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빌딩바닥의 깨끗한 환석과 대리석은 괄태충의 점액질과 조각난 몸통으로 기이한 무늬를 만들었고 소방대원들은 누린내 때문에 작업이 더뎠다.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빌딩 안에 가족을 두고 땅을 치며 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경비는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심정지가 왔고 괄태충의 점막에 에워 쌓인 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퉁퉁 부은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 모습은 바다에 떠서 익어버린 채 죽은 50대 남자의 시신과 비슷한 형태였다. 의문스러운 점은 무너진 빌딩의 잔해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남자 3명의 시체도 발견되었다. 인슈타워 상층부의 철골구조물이 전부 부식이 되어 녹아 내렸다. 부식된 부위는 자줏빛을 띠는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인슈타워는 30층 밑으로는 빌딩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인슈타워의 위풍당당함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층부는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여 파손된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고 30층 밑으로 야간근무를 하던 사람들은 피해가 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골을 파내는 듯한 지독환 누린내의 영향으로 심각한 두통을 호소했고 지속적으로 구토를 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누린내로 인해서 빌딩진입이 어려웠다. 누린내의 악취는 방호복을 뚫고 마스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괄태충의 흩어진 몸뚱이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괄태충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딘가로 빠져나가 버렸는지 수백, 수천 마리의 괄태충이 지나간 자리가 부식된 모습만 경찰과 소방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경찰에게 보험회사 사고조사팀의 한 사람이 휴게실에서 본 괄태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은 믿으려 들지 않았고 종말론 자들은 해변의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사건 이후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다는 묵묵하게 그 자리를 늘 지켰다. 변한 것이라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이었다. 흐름 속에 휘말리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 흐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두워진 바다는 깊이를 숨긴 채 고요했으며 너울거리는 표면이 미약하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해무 때문에 바다의 모습은 더욱 혼돈스러웠고 신비하게 보였다. 달이 떠 있었다면 달빛을 반사시켜 자아내던 달무리의 잔인한 리리시즘도 녹아 있을법한 밤바다였다. 고요한 밤바다는 오후부터 시작된 비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것이 비에 젖어가는 세상에 되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제외하고.

  장군이의 눈꺼풀로도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눈을 깜빡이지는 않았다.

  -해무가 계속 되고 이다-

  “그렇습니다. 바다근처에 살고 있지만 여러 날 이렇게 집요하리만큼 짙은 해무가 계속되는 나날을 이전에는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둡지만 자세히 보는 것이 좋다 해무가 자줏빛을 띠고 이다 암흑의 우울함이다 이런 해무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좋은 예감은 아니다 저곳을 통해 무엇인가 무서운 무엇인가가 이리로 오다 아주 끔찍한 무엇인가가 말이다-

  마동은 장군이의 시선과 함께 바다의 표면으로 시선을 응시했다.

  바다와 하늘은 무엇을 불러내려고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충돌을 야기하는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나도 알 수 업다 다만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건 말해줄 수 이다-

  장군이는 반듯한 이마로 맞은 비를 땅 밑으로 흘려보내고 있었고 눈은 깜빡이지 않았다. 마동은 옆에서 우산을 펴들고 서 있었다. 등대 저 밑의 해변은 아직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고 여전히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까지 바리케이드 앞에까지 몰려들어 있었다. 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었다. 해무저편 먼 곳, 바다표면의 너울거림만 느껴졌다. 포세이돈이 제우스의 번개를 잠재우느라 실랑이를 한고 고된 몸을 바다에 뉘인 채 모든 바다생물에게 지금 나는 잠을 자야하니 나를 깨우지 말라, 하며 잠이 들어버리고 이내 바다는 숨죽여 고요함에 젖어 들어 버렸다. 마동은 잠을 자고 있는 포세이돈을 떠올리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실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삶에 무서운 순간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 피해가거나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줏빛 해무가 몰고 오는 무서움이란 어떤 형태의 무서움일까. 그 무서움이라는 것은 꿈을 꾸면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 세계가 암흑이 되는 모습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해무는 고요한 바다위의 작은 부표처럼 밤하늘의 공기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고 자줏빛을 띠는 해무가 마동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해무역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마법의 성 문지기처럼 입을 한일자로 다물었다. 해무는 배부른 흑동고래처럼 서서히 움직일 뿐 알아 볼 수도, 아무것도 알아 들을 수도 없었다. 소설 속의 연무처럼 신비로운 해무는 바다위에서 지상으로 옮겨가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해무를 보면서, 뱃고동소리를 들어가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애절한 관계도 만들었다. 그런 해무가 어두운 자줏빛을 뛴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해무였다. 바다에서만 존재하는 해무 그 자체로 마동의 눈에 비쳐져야 하는 해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속에는 사람들에게 결락과 혼란을 야기하는 어둠의 우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무서운 그것을 멈출 수 있습니까?”

  -나도 알 수가 업다 그것은 오고 있고 아주 무섭다는 것 밖에는 나도 알 수가 업다-

  “그것이 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는 꽤 기억력이 좋지 안다 말해주었다 나는 생각하다 정부와 그들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혼란이 야기될 거라고 말이다 다가오는 것은 우리 같은 형성변이자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우월한 공포스러운 존재들이다 정부도 그들이 타협을 하지 않아서 꽤 혼란스럽다 이 사실을 지난번에 너에게 말해주다 정부쪽에서 너에게 쏟던 감시를 풀었다 정부쪽 사람들은 네가 다가오는 저들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다 다만 네가 어느 쪽 편에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부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래서 정부 쪽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다-

  정부쪽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감시를 풀라는 명령을 윗선에서 전달 받았다고 했다. 마동은 전화통화로 스미스요원에서 그렇게 전혀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혼란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마동의 말에 장군이는 바다에 시선을 두고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언제나 그렇듯 무겁고 묵직했다. 억지로 들어 옮기려 해도 그 무게가 상당해서 어른 몇 명으로 어림도 없는 무게였다. 비는 떨어져서 반듯한 장군이의 이마를 타고 흘렀다.

  -나는 인간들을 좋아하다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며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그 쌓아올린 것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굉장히 비참해하며 한껏 나약해지다 나약함이라는 자아에서 벗어나면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하기 일쑤가 되다 마지막에는 공격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나는 좋아하다 그런 인간이 지극이 인간적이다-

  장군이는 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이번 침묵은 처음의 침묵보다 길지 않았다. 마동은 그 침묵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왼손으로 우산을 옮겼다.

  -개에 대한 형성변이는 매사에 게을러지게 마련이지만 선택이 좋다 나는 이제 다른 동물로 변이하는 방법을 잊어 버려다 무능해 진거다 이쪽 분야에서는 무척 실력이 하락하고 말았다 이 생활이 편안하니까 말이다 인간들은 개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적당히 짖어주고 꼬리를 흔들어주면 인간들은 자신의 개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무서운 건 말이다 저곳을 통해서 그 두려운 것이 이곳에 도달하고 나면 그러한 인간들이 혼란을 겪게 되다 말 그대로 혼. 란. 이다 서로에게 감정 없이 칼을 겨누게 될지도 모른다 중간단계가 없어져버리다 슬퍼하거나 나약해하는 순간이 사라져버린다 바로 환란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개 따위를 좋아하지 않고 인간들은 상대방에게 날을 휘두르게 되다 집에서 길러지던 개들은 무참히 도륙당하거나 쫓겨나서 개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그 상대방이라는 것은 어제까지 서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부부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갑자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인간들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알던 사람은 더 이상 업다 인간이 없어진다는 건 나 역시 힘이 든다는 말이다-

  이곳을 덮치려는 것은 어떤 존재이기에, 내 속에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마동은 자신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깊은 곳으로 떨어지며 봤던 고통에 찬 얼굴들이 떠올랐다. 작은 얼굴들이었지만 얼굴이 없었다.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거대한 통증의 고통이 여미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고통이 가득한 얼굴들이 너구리의 몸뚱이에 붙어있었다. 얼굴들이 어디선가 본 얼굴들이었다. 죽어가던 마동의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기찻길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군대에서 자살 한 전우의 얼굴이었고 아기를 유산한 연상의 동거녀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여러 개의 혼란스러움이 혼재해 있었고 얼굴들은 울부짖었다. 우는 소리가 마동의 고막을 찢어내고 가슴을 할퀴었다. 그 얼굴들의 코에서 꿈틀거리는 괄태충이 기어 나왔다. 그들은 괄태충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손이 없었다.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마동을 찾았다. 그 울음소리는 소리라는 균형에서 벗어나서 불규칙적이었고 자각적이었다. 무구한 여러 개의 소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동의 고막을 세차게 건드렸다. 미세하게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고통에 찬 얼굴들의 울부짖음은 더욱 커져갔다. 너구리의 눈은 여전히 냉소를 가득감고 불사의 몸으로 긴 시간을 마동을 따라 다녔다. 고통에 찬 얼굴을 괄태충 수십 마리가 덮어버리고 얼굴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얼굴은 고통을 호소하다 사라졌다. 그 얼굴이 사라지고 연기가 남은 곳에 또 다른 얼굴들이 탄생했다. 너구리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고 등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달려있었고 소피의 얼굴이 달려있었다. 옆에는 분홍간호사의 얼굴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밑에는 는개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붙어있었다. 마동은 너구리에게 달려가서 그 얼굴들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마동의 다리는 여전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봤지만 너구리에게 다가 갈 수가 없었고 너구리는 뒤를 돌아보며 등에 달린 그녀들의 얼굴을 손으로 떼어 내 씹어 먹었다. 마동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느새 마동의 얼굴은 비를 많이 맞고 있었다.

  -너에게 말해다 무서운 것은 인간들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는 뇌수독룡이다 나도 어떤 식으로 정부가 그들을 지하세계에만 가둬놓고 살아가게 하는지 알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부도 참 대단하다 그 무서운 존재를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장군이는 말을 잠시 끊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의 세계는 태초에 지구가 생성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검은 물결이 넘실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존재가 지금 자줏빛의 해무를 통해 마른번개와 함께 이쪽세계로 다가오려 하다 다가오는 존재는 뇌수독룡을 불러 낼 것이다 지상으로 말이다 그들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 나도 모르다 아마 정부쪽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끈적끈적하고 질척한 곳에서 냄새 나는 액을 뿜어내면서 역병처럼 살고이다 괄태충을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어떤 형상인지는 알려진 바가 업다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뻔 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들을 공황상태로 몰고 가다 뇌수독룡이라는 존재는 바늘처럼 뾰족한 촉수에 위험하고 기분 나쁜 액을 담아서 다니며 인간의 뇌를 빨아 먹을 거다 인간의 뇌 속에 가득 들어있는 물컹하고 달짝지근한 뇌하수체의 맛을 그들은 알고이다 인간의 뇌를 빠라(빨아)먹으면 뇌 속에 스며들어 있던 개개인의 의식까지 뇌수독룡이 흡수해 버리다 괄태충의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무척 징그럽고 공포스러운 모습이다 그들은 고독하고 지하의 독한악취를 품고이다 그런 존재를 불러내려고 하다 지금 다가오는 무서운 것이 말이다-

  “그것들을 봤습니다. 바로 오늘, 집에 들어왔었습니다.” 마동은 누린내를 떠 올렸고 욕실에서 자신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기분 나쁜 그것들을 봤다. 사념 속에서 끔찍하게 나온 자줏빛의 먼지덩어리들을 떠올렸다.

  -그래 그들이 하나둘씩 나오려 하고 이다 정부쪽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우리의 존재도 알고 있기에 어제 나에게도 찾아왔지만 뇌수독룡이 그들의 세계에서 나오는 움직임을 포착해(했)다고 한다 그들과 정부쪽은 이미 오래전에 타협의 끈으로 결계가 강하게 쳐 있다고 생각하다 하지만 결계의 틈이 벌어지고 그 틈으로 어두운 존재가 이쪽으로 건너오려 하고 이다 불과 몇 시간 전 빌딩이 밀집한 지역에서 한 빌딩의 상층부가 부식되어 흘러내린 사고가 이써든(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다-

  비가 직선방향에서 사선방향으로 바뀌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했음에도 장군이는 그 비를 미동 없이 맞고 있었다. 장군이도 다가오는 존재에 대해서 불안하고 불쾌한 모양이었다. 비를 맞으니 큰 그레이드데인 장군이의 몸은 반질반질한 유물처럼 보였다. 바다에 떨어진 빗방울은 너울거리는 어두운 바다의 표면에 큰 물방울을 수처난 개 만들어 내며 바다 속으로 흡수됐다. 비 때문에 여름밤이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비와 해무가 동시에 존재하는 밤이다.

  -해무는 곧 어두운 자줏빛을 뛸 것이다 어두운 자줏빛이 강해지면 거대하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것이 바로 앞에 닥쳐왔다는 뜻이다 정부쪽도 그것이 아직 무엇인지 자세하게 간파하지 못하다 인간들은 잘 모르지만 너희들의 정부라고 불리는 곳은 오래전부터 모든 곳을 간파하고 이다 정부는 이름만 다르게 불렸지만 아주 무서운 곳이다 정부가 못 할 일은 업다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정부 역시나 진화되어왔다 예전처럼 정보를 캐거나 사람을 잡아들이는 짓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좀 더 생물학적이고 매커니즘 적이다 아주 새로워져다 꽤 복잡하고 정교하고 아주 거대해지고 결론적으로 무서워져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정부는 전부 볼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하며 일반인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정부는 할 수 이다 (잠시 침묵) 어두운 자줏빛이 강해져서 그것이 온다면 그렇게 대단한 정부쪽도 속수무책이다 아마도 지금 정부쪽에서는 연일 비상대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동안 일어난 사건들에 정부는 꽤 난처한 모습도 역력하다 방송국에서는 사건을 캐내려 하다 정부는 이곳의 물도 막아야하고 저곳의 물도 막아야 하다 하지만 이미 터지기 시작했고 땜 방식의 돌려막기는 이제 소용이 없어져다 소용이 없어-

  해무저편의 거대한 암흑의 그것은 독자적인 무서움을 지니고 점점 부풀어져서 이쪽 세계로 넘어와 서서히 잠식 할 것이다. 일단 독립된 공포가 확장되면 거대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것을 깨트리거나 변화하기는 어려워진다는 것이 장군이의 설명이었다.

  장군이는 암흑의 그것이 다가오면 바다근처에서 머리가 없는 존재들이 해변에 하나둘씩 나타나서 바다를 응시하며 그것의 마중을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장군이는 마동을 처음 만나고 마동에게서, 마동의 마음 깊은 곳에서 어둠의 도트를 감지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장군이도 그 어둠의 도트가 무엇인지, 어떤 형상을 띠고 어떤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경로를 종잡을 수 없는 매개를 통해 어둠의 도트가 마동에게 들어갔는지 아니면 마동이 원래 지니고 있는 어둠의 도트를 다가오는 저 무엇인가가 불러내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마동 속의 도트는 인간들과 타협을 거부한 뇌수독룡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고 장군이는 다섯 번 째 침묵을 만든 후 어렵게 말을 했다. 그런 기운이 가득한 어둠의 도트가 마동에게 가득하다고 했다.

  인간은 두 가지 이상의 마음이 존재한다. 이 두 가지의 마음은 갈라져 서로가 원하는 형태로 변하여 한 인간을 형태에 맞게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기를 반복한다. 인지부조화가 심해지면 이 두 갈래의 마음이 서로의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의 또 다른 인격체가 형성된다. 모든 인간들은 어둠의 도트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하나씩은 어둠의 도트를 지니고 있다고 마동은 생각한다. 인간은 그 어둠의 도트를 통해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살인마들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어둠의 도트에게 뇌를 잠식당하고 의식을 빼앗기고 나면 그렇게 된다.

  얼마 전에 유명한 가수가 자살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 바른생활의 가수도 사람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은 가수였다. 언제나 바른 말투와 몸가짐을 지녔고 노래내용도 밝은 가사의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그 가수가 힘들어하면 대중도 힘들어했고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모두 따라 불렀다. 봉사활동을 많이 했고 정의로운 일에는 적극 나서서 정의가 있는 연예인의 표본이 되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따지지 않았고 전부를 보려고 했다. 그런 가수가 자살했다고 보도가 되었고 사람들은 놀람과 동시에 몹시 슬퍼했다. 그의 죽음은 기이한 형태를 띠었다. 자살이라고 초기수사에서 발표가 되었지만 며칠 만에 그는 살인이 아닌 살인이라고 보도가 났다. 가수 마음속에 존재해 있던 또 다른 자아가 거울에 비친 원래의 자신이 싫었던 것이다. 자신을 속이고 대중 앞에서 거짓의 진실을 드러내는 모습이 경멸스러워 무참히 짓밟고 싶었다. 가수의 또 다른 자아는 끊임없이 원래의 자아를 죽이려고 살인의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원래의 자아를 죽임으로서 또 다른 자신도 같이 죽어 버렸다.

 

 

  장군이는 마동 속에 강하게 존재해있는 어둠의 도트가 마동을 완전하게 잠식하지 못하고 마동과 타협을 통해 절충하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마동은 그 도트에게 모든 것이 잠식당하고 자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장군이는 여전히 미동 없이 비를 얼굴로 몽땅 받아내며 비가 쏟아지는 해무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장군이의 검은 코가 거센 비에 의해 약간의 움직임이 보였다.

  “당신은 제 속에 있는 어둠의 도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마동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었다.

  장군이는 고개를 돌려 마동을 보았다.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개의 그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숙여 마동이 서 있는 바닥을 한참 바라보았다. 마동의 발밑에 시선을 몇 분 동안 무심하게 두고 있다가 처음처럼 해무저편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해안가와 송림공원에 설치해둔 가로등 덕분에 여름밤의 새 찬 빗줄기가 선명하게 마동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어둠의 도트역시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트는 독보적인 힘과 거대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아주 확실하다 그런 강한 분위기가 다가오는 저것에서 느껴지다 그리고 너의 마음속, 어둠의 도트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다 너무 어둡고 거대하고 강한 기운이다 저기 다가오는 저것이 너를, 네 속의 어둠의 도트를 잠식하려고 하다 그것이 느껴지다-

  몇 번째 침묵인지 알 수 없었다. 침묵은 장군이와 마동이 각자의 생각 속으로 잠시 들어가게 만들어 주었다.

  -네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너의 도트가 독자적인 힘을 지니게 되고 그 힘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강하다 무척 강하다 그 도트가 힘이 커지고 세력이 확대되는 것이 다가오는 저들이 바라는 바다 저들은 뇌수독룡을 앞세워 너를 도트와 함께 몽땅 집어삼킬 거다 그리고는 넌 잠식당한 채 그들의 입장에 서게 되다 정부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아직 너의 독보적인 도트의 힘을 감지해내지는 못하다 그래서 너의 감시를 끊었는지도 모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부는 자네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다 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파악했던지 아니면 너를 없애려 하는지 정부의 행동도 예측 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던 간에 너는 선택을 해야 하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말이다 너의 마음 속, 그 어둠의 도트가 멈춰있다는 것이다 도트의 확장이 어느 순간 멈춰 버린 거다-

  도트의 확장이 멈춰버린 것처럼 장군이의 움직임도 시선도 정지화면처럼 멈춰버렸다. 돌같이 굳은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이와 또 다른 형성변이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니는 내과병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처방받은 주스를 마시고 있어요. 그 병원의 의사와 그곳의 간호사도 저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신 그 주스가 어떤 성분의 주스인지 몰라도 그것을 마시고 나면 아픈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 병원은 다시는 진료를 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거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저는 그 주스를 다시는 마시지 못하겠죠. 혹시 그 의사가 당신입니까?”

  장군이는 아무 말 없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돌처럼 굳어진 채 땅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동이 바라보는 그레이트데인 장군이의 얼굴 옆선은 곡선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었다. 곡선을 따라 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슈베르트의 피아노소나타가 흘렀다면 어울릴법한 광경이었다. 곡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얼굴을 돌려 마동을 바라보았다. 장군이의 눈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처럼 여러 가지 깊이가 혼재해 있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 그 깊이는 잴 수 없는 무한대의 우주로 바뀌었다. 바뀐 깊이에 빠져들어 버린다면 늪처럼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릴 것처럼 무시무시한 깊이가 장군이의 눈동자에 도사리고 있었다.

  -마음이다 너의 마음 깊은 곳에 누군가의 마음이 들어앉아서 너의 그 어두운 부분을 제어하고 이다 그렇게 느껴지다 네 혼자의 힘으로 그 도트의 확장을 멈추게 할 수는 업다 하지만 누군가 만지지도 안을 수도 없는 누군가의 마음 말이다 그 마음이 너의 마음 깊은 곳에서 도트의 확장을 막고 이다 그래서 도트가 너의 마음을 완벽하게 잠식하지 못한 채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아직 머무르고 있다-

  -너는 잘 몰랐겠지만 너의 그림자가 희미해졌다 몰랐나 너의 그림자는 아주 희미해져가고 있어 우리 같은 형성변이자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그림자가 필요하다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물체는 지구상에서 존재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물이나 빛과 같은 물질만이 그림자를 거부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이나 빛처럼 살아 갈수는 업다-

  마동은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자신을 관통해서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가로등빛이 통과한 마동 뒷모습의 끝은 장군이와 사뭇 달랐다. 장군이에 비해 자신의 그림자는 아주 희미해져있었다.

  -어둠의 도트가 자네의 그림자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나는 네가 다시 나를 찾아왔을 때는 그림자가 거의 사라져 있을 줄 알아다 어둠의 도트는 그런 것이다 헌데 너는 다행이도 잠식당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흠.

  해무의 저편에서 마른번개가 비 사이를 뚫고 크게 내리쳤다. 순간 먼 곳에서 하늘이 팽창하고 오므라들었다가 공기층이 갈라지고 시간이 구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하고 공룡의 등지느러미를 뚫고 그 속에 살고 있던 화석벌레가 뛰어 올라오듯 갈라지는 소리였다. 소리는 퀴퀴하고 어둡고 죽은 소리 같았다. 머리가 없는 사람들의 소리가, 무서운 이념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누린내는 땅에서 기어 올라와 서로를 응결시키려 하고 있었다

  -들리는가 그것이 다가오는 소리다 이제 아주 가까이까지 와버려다-

  “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글쎄 나로서는 확실하게 그 방법을 안다고 할 수가 업다-

  장군이는 커피 한 모금 마실 정도의 시간을 두었다.

  -네 속의 그 어두운 도트는 저 거대한 암흑의 독보성과 관련이 있다 도트가 어떤 식으로 확장이 되는가에 따라서 암흑의 그것에 잠식되거나 암흑을 누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은 어둠의 도트가 멈춰있지만 영원히 누르고 있을 수는 업다 시간이 업다-

  흠.

 

  오늘저녁 마동은 조깅을 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달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비가 쏟아지는 여름에는 비를 얼굴에 맞으며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달리면서 떨어지는 비를 사선으로 맞으면 비가 정당한 자연의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름에 쏟아지는 비는 마동의 감정을 잘 숨겨주었고 동시에 흐르는 땀도 씻어주었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조깅코스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비가 쏟아지는 여름밤에는 악착같이 밖으로 나갔다. 눈썹위에 비가 떨어지는 상쾌한 느낌을 좋아했다. 빗물이 속눈썹위에 맺혀있을 때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는 기분도 운치 있었다. 비가 쏟아질 때 달리는 맛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동은 그 맛을 잘 알고 있었다. 싫증나지 않았다.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완고하게 반복적으로 달리는 행위가 사람을 싫증나지 않게 했다.

  그러나 마동은 이제 조깅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 조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마동은 그동안 조깅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결국 생각은 아무런 해답에 도달하지 못했다. 긴 시간 달려온 조깅에 관하여 떠올렸지만 마동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총체적 고독을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마동은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그동안 죽음에 대해서 훈련을 쌓아왔다. 죽음이란 삶의 반대적 관념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자 그 부분으로 녹록히 녹아 흘러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인식하고 훈련을 했다. 질주하지 못하고 내 속에서 멈춰있는 어둠의 도트를 그대로 멈추게 하는 방법은 이제 딱 하나 뿐이다. 훈련해온 대로 실행하면 어둠의 도트는 사라지게 된다. 대 혼란도 멈출 수 있고 장군이도 인간세계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뇌수독룡도 가둬둘 수 있고 해무와 함께 저 먼 곳에서 다가오는 무서운 그 무엇인가도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한 부분도 눈을 뜨고 있을 때 이야기다. 눈이 감기고 뇌가 기능을 멈추고 폐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고 심장이 멈춰버리는 순간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동안 나를 소모하고 마모시키며 살아왔다. 축척하거나 집적은 나에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후회나 자의식 따위는 일지 않았다. 그것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나만의 방법이고 내 책임을 다하는 삶인 줄 알았다. (마동은 거실에서 창밖의 하늘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는개를 만나고 난 이후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버렸다. 그동안 여자들과 몇 번의 짧은 만남을 가졌고 연상의 여자와 동거도 했지만 간절함은 들지 않았다. 간절함을 내 마음속에서 힘이 좋은 누군가에 의해 몽땅 뽑혔다. 하지만 는개는 달랐다. 그녀는 부드러웠고 나에 대해서 믿음의 유보를 지니고 있었다. 대체로 굳어있고 딱딱한 나와는 다른 그녀였다. 는개는 아픔을 견뎌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시간의 통로를 거쳐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속에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는 연약하고 작은 부분을 그녀의 부드러움이 들어와 가득 채웠다. 그녀의 앞에서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창밖의 빛이 커튼에 가려져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그녀가 커튼을 걷고 나는 일어나서 그녀의 등을 끌어안고 그녀의 목에 입맞춤을 해주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와 닿자 나는 또 눈물이 나오려 했다. 내가 사라져 버린 다해도 울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피정도가 안타까워할까. 분홍간호사와 의사가 안타까워해줄까. 장군이가 안타깝다고 할까. 는개가 내 사진을 조금 어루만져 주지 않을까. 그동안 어떤 누구도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해도 나는 괜찮다고 잘 훈련해왔다. 그렇게 하나씩 나를 소모해가며 그동안 잘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상 달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무의식이 만들어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더 이상 는개의 작은 몸을 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슬프다고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슬퍼서 울어 본적은 언제였던가. 내 속의 눈물은 다 말라서 내 몸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쩍쩍 갈라지는 논두렁의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끊이지 않고 눈에서 흘러내려와 볼을 타고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다. 바다 깊은 곳의 모래알처럼 내 마음은 깊이 가라앉아서 이제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슬픔으로 나를 짓누른다. 는개가 보고 싶었다. 그녀를 안고 싶었다. 마지막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동은 집안에 남아있는 정리할 관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동은 시계가 인간에게 말해주는, 같은 시간의 반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게 시(時)와는 달랐다. 의미적으로는 잠을 자는 거와 같았다. 요컨대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는 것이다. 시계바늘이 흘러가는 것에는 길고 번거롭고 복잡한 논리는 없다. 시계바늘이 반복적으로 째깍째깍 흐르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은 이를테면 변이를 말한다. 시계가 하는 말은 마동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마무리가 너무 쉽게 되어서 마동은 기이했다. 정리할 것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는 달랐다. 마동은 어둠의 도트를 통해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둠의 도트를 떠올려 보았다. 떠올려 봤지만 도트의 형상은 어떤 형태로도 그려지지 않았다. 어둠의 도트라는 건 생각 그 너머의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그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훈련을 해왔던 것일까.

  죽음, 필멸하는 인간, 매일 약간의 시간을 들여 생각했던 관념. 그것은 절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점에 서는 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고 마동은 늘 훈련을 해왔다. 죽음 그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한 훈련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어떻게 이기느냐하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듯이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잘 견디고 잘 훈련해왔다. 마동은 그런 자신에게 훈장이라도 하나 주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생각하고 훈련했지만 막상 끝에 도달하니 우스웠다.

  과연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일까. 우습다.

  매일 밤공기를 가르며 달렸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달렸다. 쉬는 날은 반나절을 달리면서 보냈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이 기본을 적립하는 방법이고 최선이고 훈련을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마동은 그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덩이에 빠져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모순을 느껴야만 했다. 구덩이 속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검은 구덩이가 자아내는 어둠이 크고 막대하여 그 속에서 시력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동 자신을 발견했다. 마동은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난 후부터 자신만의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사후 기찻길에서 낱낱이 분쇄되어버린 친구들을 만나서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그때의 모습이겠지만 마동은 훌쩍 어른이 된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는개와 사랑을 나눈 후 지금의 길지 않은 시간까지 오는 동안 마동은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마동 자신의 마음속에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들어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마음은 주인에게서 떨어져 나와 위험을 무릅쓰고 마동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어렵게 들어온 마음은 아이처럼 약하기만 했다. 유약한 마음은 사념이 가득한 어둠의 도트가 진화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고 있었다. 그건 마치 엄마의 따뜻한 양수 속에 아기가 들어앉아 있듯 마동의 마음속에 마음 하나가 들어와서 엄마의 양수와 반대적인 개념으로 존재해 있었다. 작은 마음은 만져질 것 같았고 눈처럼 따뜻했으며 불처럼 시원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듯 그 마음은 아이를 차근차근 안아 주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마동은 자신 속에서 다른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이 따뜻한 눈물이 흐르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은 가을아침에 내리는 눈처럼 대책 없이 다가왔지만 눈물이 전하는 따뜻함은 대지에 오래도록 스며들었다. 그 마음은 마동에게 다가와서 뻥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나간 마동의 자질과 마동의 아름다웠던 감정을 주워 담았다.

  마동은 마음의 금고 안에 진품을 담아놓고 무서워 꺼내지 못하고 벽에는 모사품을 걸어놓고 진품인양 바라만 봐야했다. 그렇게 지내온 그 동안의 삶에 작은 마음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훔쳐 갈까봐 겁이 나서 진품을 가둬 놔야만 했던 마동에게 그 마음은 진품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동은 이제 모사품을 버리고 진품을 벽에 걸어두고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은 구멍을 통해 버려진 마동의 하나하나를 이어 붙여 주었다. 그 마음은 마동에게 이렇게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을 숙명이라고 계속 속삭여주었다. 하루 종일 바다에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처럼 지치지 않고 마동에게 마음은, 만나게 된 운명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없으며 만남 그 자체가 정해져있는 숙명이라고 마동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용기를 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어떤 형태로도 바뀔 수 없으며 만남 그 자체가 정해져있는 숙명이라고 마동에게 전하고 또 전했다. 용기를 주었다. 마음은 마동에게 곁에서 언제나 있어 달라했고 마동의 옆에 늘 있겠다고 약속했다. 삶의 모든 부분은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반짝반짝 빛을 낸다고 말했다. 작은 마음의 울림이 전해졌다. 희망이 사라져도 그곳에 작은 용기가 씨가 되어 꽃이 되려고 했다.

  마. 음. 이. 전. 해. 지. 다.

  마동은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아마 내일은 시계의 시침이 나타내는 지금 이 시간을 보지 못하지도 모른다. 아니 보지 못할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구름은 비를 계속 뿜어내고 그 사이로 숨이 가뿐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은 어느새 밤의 깊은 세계로 발 빠르게 향해가고 있었다.

 

  [동양의 멋진 친구. 이곳 시간으로 내일 저녁이면 아시아 투어를 가게 돼. 내일모레쯤에 만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아시아의 나라 중에 동양의 멋진 친구의 나라로 제일 먼저 가니까.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번호를 남겨 둘 테니 만나도록 하자구. 그곳은 지금 무더울 테지. 무척 기대가 돼. 그때 보자고. 난 지금 짐을 정리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야. 동양의 멋진 친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해가 떠 있는 낮에 친구를 만나기가 나는 조금 부끄러운 것 같아. 저녁에 만나도 친구가 괜찮다면 오케이? 그럼 그때 봐. 다스 블레스 유]

 

  소피의 메시지가 트위터를 통해 들어와 있었다. 마동은 자신의 폰을 들고 트위터 창을 띄워 소피를 향해 많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타이핑을 하려 했지만 그만 두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트워터의 접속을 끊었다.

 

  소피는 매력적인 여자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소피는 그렇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관여하기도 싫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활자로 남겨 놓아도 재미있는 글이 탄생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피는 유명해져서 영화에도 출연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알파치노 같은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염문을 뿌리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성공을 거둘 것이다. 소피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한다. 내가 어려운 시절, 성인배우로 활동 할 때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동양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천재지변처럼 급변하게 일어났다. 동양의 친구가 사는 나라에 프로모션투어를 갔는데 그날 만나기로 한 그가 나오지 않았다. 난 몹시 안타깝지만 동양의 친구를 이해한다. 분명 그럴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보고 싶고 소식이 궁금하다. 하며 나를 한번 언급할지도 모른다.

 

  마동은 소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웃음을 지었다. 대수롭지 않지만 적금이 두 개가 있었고 자유 저축통장이 하나 있었다. 적금 하나는 소피에게 가슴수술비용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보내야겠는데 마동에게는 전해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피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기분 상하지 않게, 제대로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마동은 떠 올리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소피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적금통장에는 보잘것없는 돈의 액수가 태초에 지구에 나타난 벌레를 세는 것만큼의 숫자가 박혀있었다. 자유저축통장에는 상당한 금액이 회사의 오너로부터 입금이 되어 있었다.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꿈 리모델링 작업의 수고비였다. 그렇게 큰 액수를 본 적이 없는 마동으로서는 통장에 찍혀있는 금액의 숫자가 그저 타인의 꿈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드는 것과 같았다.

  마동은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줄까 하다가 그것도 그만 두었다. 자신의 어머니역시 돈을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어머니에게 돈이 많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든 어머니에게 달라붙어 괴롭힐지도 몰랐다. 고요하게 시간을 죽여 가며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머니에게 맞는 삶이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전세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은 어떤 식으로 해지하지, 가구와 옷들은, 까지만 생각하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뒷일은 는개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녀라면 똑 부러지게 뒤처리를 할 것이다. 마동은 는개와 함께 마셨던 와인을 몇 병 사들고 와서 마시기로 했다. 엷은 나이키 운동복 상의를 걸치고 지갑을 챙겼다. 현관을 나서기 전 마동은 현관에 붙박이 되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벽이 그대로 비쳤다. 거울 속의 비친 마동의 모습은 조금 투명해져 있었다. 그림자가 희미해졌듯 거울 속의 모습도 조금 엷어져 있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신발을 들어서 거울에 비쳐보니 신발은 또렷했고 자신의 손은 투명했다. 불안함은 들지 않았다. 상실해가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 둘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마동은 신발을 내려놓고 그것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상징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는 생성해가는 것만 바라보고 소멸해가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해가려고 아등바등 거린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 불안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서 죽는 순간을 생각하기 싫어하고 죽음을 피해가고 싶어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며 위안을 받고 지도자가 필요하고 권력 안에서 보호 받으며 기대려한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죽음으로 가는 항해일 뿐이다. 누구나 죽는다. 그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죽고 나면 모두 똑같은 한 줌의 재가 될 뿐이다. 죽는 방법은 조각케이크의 종류만큼 많다. 그중에서 하나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일단 한 번 죽고 나면 두 번째의 죽음이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불멸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이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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