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지쳐가는 재수
소희가 실종된 지 석 달이 지났다. 재수는 석달 동안 소희를 찾아 다녔으나 일말의 단서도 찾지 못했다. 재수는 그래서 지쳐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소희를 찾는다고 해도 문제였다. 그대로 집으로 데려갔다가는 아버지한테 갖은 학대와 폭행을 당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한테서 자신은 소희를 보호해 줄 수도 없었다. 재수는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학교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안주도 없이 폭음을 한 후 술집을 나온 재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풍물패 동아리방에 가서 잠을 자려고 학교로 걸어갔는데 그만 술을 못 이기고 학교 정문에서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거리엔 어둠이 이미 내려 앉아 있었다. 간간히 학교 정문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다 재수를 못 본 척 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였다. 나연은 가방을 챙기고 도서관을 나왔다. 집으로 가려고 학교 정문을 나오던 나연은 정문 앞에 재수 오빠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연은 깜짝 놀라 그 곳으로 가서 재수를 깨웠다. 몸도 흔들어 보고 뺨도 때려 보았지만 재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연은 하는 수 없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재수를 업은 후 풍물패 동아리 방으로 걸어갔다. 재울 곳이 그 곳 말고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풍물패 동아리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나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아리방에 혼자 있던 준석은 나연이 재수를 업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학교 정문 앞에서 쓰러져 있어서 제가 업고 오는 거에요. 아무리 깨워도 정신을 못 차려서.”
나연은 재수를 방에 눕히며 말했다.
“근데 오빠는 왜 지금까지 있어요?”
“난 연습 할 게 있어서 연습 좀 했어. 이제 갈려고 하던 참인데.”
“이대로 놔 둬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동아리 방에서 잔 적 많으니까. 나가자.”
나연과 준석은 동아리방을 나왔다.
다음 날 준석은 오전 수업을 들어가기 전 재수를 보려고 풍물패 동아리 방으로 갔다. 재수는 깨어 있었는데 어젯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어나 있었냐?”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너 학교 정문 앞에 쓰러져 있는 거 나연이가 업고 왔어.”
“나연이가?”
“그래.”
“근데 너 무슨 고민 있냐?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
“고민은? 그런 거 없어.”
재수는 거짓말을 했다.
“그럼 난 갈게. 수업 있어서. 나중에 나연이한테 밥이나 사 줘라.”
“응.”
준석은 동아리방을 나갔다.